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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송광사 조계문, 첫번째 출입문

전남 순천시 송광면에 있는 송광사의 첫번째 출입문인 조계문이다. 일주문은 경내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것이 일반적인데, 송광사는 강당 앞 개울 건너에 위치하고 있다. 2개의 기둥이 지붕을 받치고 있는 전형적인 일주문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맞배지붕으로 화려한 다포계 공포가 지붕을 떠 받치고 있다. 청색 바탕에 화려한 금색으로 쓴 현판이 인상적이다. 현재의 건물은 19세기 초에 새로 지은 것인데, 사찰 일주문 중에서는 오래된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송광사 조계문. 다포계 공포와 화려한 단청으로 장식하고 있다. 양쪽에 담장을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조계문 현판. 푸른 바탕에 금색으로 글씨를 쓰고 있는데, 중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세로쓰기를 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내부에는 가로쓰기로 “승보종찰조계총림”이라 적힌 현판을 볼 수 있다. 전형적인 조선시대 현판 양식이다.

SANYO DIGITAL CAMERA개울 건너편에서 보이는 조계문.

송광사 조계문
조계문은 송광사의 첫 관문으로 일주문이라고도 부른다. 이 일주문은 신라말에 처음 세운 것을 1310년, 1464년, 1676년, 1802년에 고쳐 지었으며 현재의 조계문은 양식상 1802년에 새로 지은 것으로 보인다. 계단 좌우에 세운 돌짐승은 그 형태가 모호하여 사자같기도 하고 원숭이 같기도 하다. 일주문을 들어서는 것은 세속의 번뇌와 흐트러진 마음을 모아 진리의 세계로 들어선 것이니 가능한 행동과 마음가짐을 경건히 해야 한다. (안내문, 송광사, 2018년)

<출처>

  1. 안내문, 순천 송광사, 2018년

완도 묘당도 이충무공 유적(사적 114호), 정유재란 말 조.명연합군 수군이 주둔했던 곳

전남 완도군 고금면 덕동리에 있는 묘당도 이충무공 유적(114호)이다. 이곳은 정유재란이 끝나갈 무렵 충무공이 이끌었던 조선수군과 진린의 명나라 수군이 진을 치고 머물렀던 곳으로 사실상 조.명연합군의 해군본부였다. 현재는 충무공을 모시는 사당인 충무사와 그가 죽은 후 잠시 묻혔던 가묘터가 남아 있다. 묘당도는 고금도 끝에 있는 작은 섬이었으나 지금은 간척사업으로 고금도의 일부분으로 바뀌었다.

이곳은 임진왜란 승리를 기원하기 위해 진린이 세웠던 관왕묘가 있었다. 정유재란 말 이순신 장군이 전사하자 진린은 그의 유해를 이곳에 모시시고 장례를 치렀다. 이후 17세기부터 관왕묘에 이순신장군과 진린장군을 같이 모시고 제사를 올려왔다. 일제강점기에 사당이 없어지고 제사가 중단되었다가 해방 이후 다시 사당을 세우고 충무공에 대한 제사를 올리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완도 묘당도 이충무공 유적(사적 114호). 고금도 동쪽끝에 있는 작은 섬이었으나 간척사업으로 지금은 고금도의 일부부으로 바뀌었다.

OLYMPUS DIGITAL CAMERA묘당도 유적지로 들어가는 길. 하마비가 세워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충무공 가묘 유허, 이순신 장군은 노량에서 전사후 관음포에 올려졌고 남해 충렬사에 잠시 묻혔다가 이곳을 거쳐 충남 아산으로 옮겨졌다. 조.명연합군 수군 본영이 있었던 것으로 명나라 수군을 이끌었던 진린이 주도하여 이곳에서 장례를 치렀다고 한다.

충무공 이순신장군 가묘 유허
이곳은 임진왜란 때 왜적을 물리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유해을 임시로 안장하였던 터이다. 이순신 장군은 이 고금도에서 수군본영을 설치하여, 수군을 훈련하고 전선을 건조.수리하는 등 군비를 재정비하여 왜적의 침입을 물리쳤다. 장군이 1598년 11월 19일 노량해전에서 순국하자 본영이었던 이곳에 80여일간 안장한 후 이듬해에 충남 아산으로 옮겼다. (안내문, 완도군청,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가묘 유허 아래에 있는 재실로 보이는 건물.

OLYMPUS DIGITAL CAMERA묘당도 앞 바다. 앞쪽에 작은 섬들이 막고 있어 파도가 거의 없어 파도를 피하기 좋은 곳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묘당도 북쪽 바다.

OLYMPUS DIGITAL CAMERA남쪽으로 보이는 바다. 사방이 섬으로 둘러 싸여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사당 입구에 세워진 홍살문.

OLYMPUS DIGITAL CAMERA충무사 외삼문.

OLYMPUS DIGITAL CAMERA충무공을 모신 사당인 충무사. 원래 관우를 모신 관왕묘가 있었으며, 그 앞쪽에 충무공과 진린을 모신 동.서무가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없어지고 지금은 해방 이후 다시 세운 충무공만을 모신 사당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충무사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사당에 딸린 건물. 제사를 준비하는 재실 역할을 하는 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마당 한쪽편에 있는 관왕묘비. 이곳에 관우를 모신 관왕묘가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비석은 숙종 39년(1713)에 세운 것으로, 관왕묘의 창건 이후의 내용을 기록한 비로, 명나라 수장이 충무공의 전사를 애석히 여겨 여기서 경혈하고 귀국하였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비의 규모는 높이 253 cm, 폭 93 cm, 두께 20 cm이다. 비각은 정.측면 1칸의 팔작집으로 원형초석 위에 두리기둥을 세웠다. (안내문, 완도군청,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묘당도 충무사 사당 아래 해안. 울창한 상록수가 숲을 이루고 있다.

완도 묘당도 이충무공 유적, 사적 114호, 전남 완도군 고금면 덕동리
묘당도 일원은 본래 진린 장군이 건립한 ‘관왕묘’였으며, 관우 장군을 사당에 모시고 전쟁의 승리를 기원했던 곳이다. 진린 장군은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순국하자 이곳 (월송대)에 장군의 유해를 안장하고 장례를 치러주었다. 1666년, 동무에 진린 장군을 모셨으며, 1683년에 서무에 이순신 장군을 모셨다. 1791년 정조가 관왕묘에 ‘타보묘’라는 사액을 내렸으며, 1792년 동무에 명나라 부총관 등자룡 장군을 함께 모셨다. 일제강점시기(1940년대 초)에 유물이 훼손되고 제사가 중단되었으며, 사당이 황폐화 되었다. 1947년 11월 19일 사당에 이신신 장군만을 모시고 다시 제향하기 시작했다. 1953년 사당을 증건하고, 사당 명칭을 ‘충무사’로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사당 내에는 숙종 39년 건립한 관왕묘비가 있으며,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후 명나라 진린 장군이 혈서로 애도문을 쓰고 명나라로 돌아갔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안내문, 완도군청, 2018년)

<출처>

  1. 안내문, 완도군청, 2018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완도 청해진 유적(사적 308호), 해상왕 장보고가 근거지로 삼은 작은 섬

전남 완도군 완도읍 장좌리 앞바다 작은 섬인 장도에 있는 청해진 유적(사적 308호)이다. 중국와 일본을 잇는 한반도 서남해안 연안항로의 주요 거점으로 통일신라 때 장보고가 해상무역을 장악하기 청해진을 설치한 곳이다. 지금도 이곳에서는 장보고를 기리는 제사(완도 장좌리 당제 및 당굿)를 올리고 있다.

장도는 육지에서 멀지 않은 작은 섬이다. 발굴.조사 결과 판축식 토성을 쌓았으며 둘레는 약 890 m이다. 서남쪽에 출입문인 외성문과 우물이 있으며, 안쪽에 내성이 있다. 섬과 육지사이는 수심이 얕아 걸어서 왕래할 수 있으며 방어력을 보완하기 위해 섬주위에 목책을 쌓았다. 동쪽 정상부에 올라서면 남쪽 신지도와 완도읍 사이, 동쪽 신지도와 고금도 사이 바다와 북쪽 강진만이 한눈에 들어온다.

OLYMPUS DIGITAL CAMERA통일신라 말 장보고가 근거지로 삼았던 청해진 유적지(사적 308호). 장도라 불리는 작은 섬으로 육지와 붙어 있어 썰물 때 걸어서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청해진 유적지와 육지를 연결해 놓은 다리. 섬과 육지 사이의 좁은 수로가 해자 역할을 하고 있으며, 섬 바깥에 목책을 설치하였다.

OLYMPUS DIGITAL CAMERA외성문. 청해진 성의 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외성문은 성의 내외를 연결하는 통로로 유사시 적의 공격을 저지하고, 적을 역습하거나 격퇴하는 통로이다.

OLYMPUS DIGITAL CAMERA‘ㄷ’자형 판축유구와 우물. 외성문 앞에는 식수를 공급하기 위한 우물이 있었고 그 주위 판축으로 성벽을 쌓아 우물을 보호하고 있다. 성벽은 외성문과 우물을 보호하기 위한 옹성 역할을 하고 있는데 청해진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시설이다.

청해진 성의 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ㄷ’자형 판축유구는 해안 구조물로서 국내는 물론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그 유례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ㄷ’자형 판축유구는 우물을 보호하고, 외성문을 보완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우물은 잔존깊이 5.8 m이며, 이곳에서는 주름무늬 병과 철제편 등 다량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안내문, 완도군청,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외성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성벽. 성벽은 흙을 쌓아 만든 판축 토성이다. 전체 성벽의 둘레는 890 m 정도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성벽을 쌓은 판축.

청해진이 성벽은 판축법으로 만들어졌다. 판축이란 흙으로 기초 및 성벽을 쌓는 방법 중 하나로 돌을 판판하게 깔고 그 위에 흙을 고르며 다져가는 공법을 말한다. 청해진 성은 자연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여 능선을 따라 축조하였으며, 성의 규모는 둘레 길이가 890 m이다. 성벽은 좌우 내.외측에 기단석렬을 깔고 기단석렬을 맞물린 상태에서 그 안쪽으로 흙을 시루떡처럼 다져 쌓은 판축토성이다. (안내문, 완도군청,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외성문 안쪽 중턱에 위치한 내성문. 청해진은 외성문과 내성문을 두어 방어력을 보완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내성 성벽과 내성문.

OLYMPUS DIGITAL CAMERA성의 남쪽 높은 지점에 위치한 고대(高臺). 바깥쪽 바다에서 들어오는 선박을 감시하기에 좋은 곳에 위치하고있다.

동서로 이어지는 청해진 남쪽, 성벽의 높은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청해진 성의 고대는 동쪽, 북쪽, 남쪽 3곳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은 일본과 중국 등 외국에서 내륙으로 통하는 길목으로 연안의 상선과 해적을 감시하기 유리한 곳이다. (안내문, 완도군청,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고대를 지나 동남 치로 이어지는 성벽. 비교적 평탄한 지형을 이루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동남쪽 모서리에 위치하고 있는 동남 치(雉). 남쪽 바다와 완도읍 일원을 조망하고 있으며, 바깥쪽 바다에서 안쪽으로 들어오는 배를 살피는 기능을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동남 치에서 내려다 보이는 남쪽바다. 멀리 완도읍과 신지도를 연결하는 신지대교가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동쪽으로는 신지도와 고금도를 연결하는 장보고대교가 보인다. 강진만으로 들어노는 선박들을 한눈에 감시할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동쪽으로 이어지는 성벽

OLYMPUS DIGITAL CAMERA성벽 아래로 보이는 바다. 고금도와 육지 사이에 있는 내해로 비교적 넓은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동쪽 섬 정상부는 평탄한 지역을 이루고 있다. 이곳에는 장보고 등을 모시는 사당이 있다. 이곳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 아침 동이 틀 무렵 이곳에서 당제(완도 장좌리 당제 및 당굿)를 지낸다. 모시는 신격으로는 장보고, 송징, 정년, 혜일대사 등 네 분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사당 남쪽편에 있는 건물터.

OLYMPUS DIGITAL CAMERA사당 북쪽편에 있는 건물터. 굴립주(堀立住)라고 부르며 사당 북쪽과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굴립주는 기초를 놓지 않고 땅에 기둥을 박아 세운 건물이며, 주변 해역과 완도 본 섬을 조망할 수 있었던 시설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사당 앞 성벽

OLYMPUS DIGITAL CAMERA청해진 북쪽에 위치한 북치(雉). 인근 강진, 해남쪽에서 들어오는 배들을 감시하고 주변을 조망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북치에서 내려다 보이는 강진만 바다.

OLYMPUS DIGITAL CAMERA북쪽을 따라 이어지는 성벽

OLYMPUS DIGITAL CAMERA성의 북서쪽 모서리에 위치한 서북치.

OLYMPUS DIGITAL CAMERA서북치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성벽.

OLYMPUS DIGITAL CAMERA서쪽 성벽에서 올려다 보이는 내성문과 고대.

OLYMPUS DIGITAL CAMERA섬의 서쪽 수로를 감시하기 위해 세워진 서치.

OLYMPUS DIGITAL CAMERA서쪽 성벽.

OLYMPUS DIGITAL CAMERA성벽 아래 해안에는 목책을 쌓아 방어를 보완하였다.

완도 청해진 유적, 사적 308호, 전남 완도군 완도읍 장좌리
신리 흥덕왕 3년(828) 장보고는 서남해안의 중심지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고 해적을 소탕하였다. 이후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제패한다’는 신념으로 청해진 본영을 중심으로 한민족의 기상을 떨치며 해양을 개척하였다. 장보고는 한국과 중국, 일본을 연결하는 장대한 해상항로를 개척하였으며, 청해진을 본거지로 중국과 일본을 잇는 중계무역을 실시하고, 이슬람 세계와도 교역한 아시아 최초의 민간 기업인이자 세계적 무역왕이 되었다. (안내문, 완도군청, 2018년)

주요 발굴성과 (1991 ~1998년)

  •  판축기법으로 이루어진 890 m에 달하는 성벽과 내부 건물지, 굴립주 건물지, 매납유구 등을 확인하였으며, 331 m에 달하는 해안 원목렬의 분포 범위 확인과 함께 총 3만여 점이 넘는 많은 유물을 발굴하여 장도가 청해진의 주요 근거지였음을 밝혀내는 성과를 거두었다.
  •  매납유구는 직경 1 m, 깊이 150 cm 정도의 원형 구덩이 안에 인위적으로 유물을 매납한 제사와 관련된 유구이다. 수혈 중앙의 가장 바닥에 회청색 경질 대옹을 바로 안치하고, 대옹과 수혈벽 사이에 토기편병 2점.철제 솥 2점.한 개체를 반으로 절단하여 각각 나누어 묻은 철제반 1점.청동병 1점.철제 자물쇠 등의 철기류를 매납하였다. 이들 유구와 유물은 청해진 조음도에서 중사(中祀)를 거행했다는 「삼국사기 권32잡지 1 제사조」의 기록과 견주어 검토해 보아야 할 자료이다. 또한 국가 제사인 중사가 지내졌던 장도 유적은 청해진 내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주요 발굴 성과 (2, 3차 발굴: 1999 ~ 2001년)

  • 7차 발굴조사에서는 장보고의 해상활동과 관련된 해안 출입 겸 접안시설로 ‘ㄷ’자형 석축석렬 유구와 우물 등 중요 유구들을 발굴하여 청해진의 본영이 바로 이 장도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자료를 확보하게 되었다.
  • 8차 발굴조사에서는 섬 입구 해안지대에서 노출 된 ‘ㄷ’자형 석축석렬 유구와 우물의 구조에 대한 조사를 마무리 지어 그 구조를 파악하였으며, 그 앞의 바다 해저 면에서 기존에 이미 알려져 있던 원목렬과 나란히 또 하나의 목책렬이 지나가고 있음을 새로이 확인하였다. 그 외에도 성벽에 나 있는 배수구를 처음으로 발굴조사하였고, 청해진의 판축토성 성벽이 내외측 모두 2중 기단 석렬을 깔고 조성한 것도 함께 밝혀냈다. ‘ㄷ’자형 석축석렬 유구는 21 x 22 m 정도의 규모로서 내외측에 기단 석렬을 깔거나 석심을 쌓고, 그 사이에 판축다짐을 하여 만든 해안 구조물로서 국내는 물론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그 유례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물은 깊이 6 m로 바닥에는 통나무를 ‘井’자형으로 깔아 기초를 잡고 그 위에 석축을 쌓아 만들었는데 위가 좁고 (직경 150 cm 내외) 중간이 약간 넓어지다가 (직경 180 cm 내외) 바닥은 다시 좁아지는 모양이다. 우물의 바닥에는 자갈을 약 50 cm 두꼐로 깔아 물을 정화할 수 있게 하였음이 확인되었다. 이 우물 바닥에서는 사면편병, 주름무늬 병 등의 토기류와 재갈편, 철제자귀, 금제고리 등의 금속제 유물과 어망추, 가락바퀴, 숫돌 등의 유물이 다수 출토되었다. 특히 이곳에서 출토된 편병류는 구연부만 파손된 채 4점이 나란히 깔려 있어 우물을 축조할 때에 의도적으로 매납한 것이 분명하다고 보여 지며, 이는 우물의 축조 및 사용 시기가 청해진 성의 축성 및 운영시기와 동일하였음을 증명한다. 또한 깊이 6 m의 이 우물은 청해진 뿐만 아니라 항해하는 장보고 선단의 주요 식수원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장도 서쪽 저지대에서는 성벽의 사이에 좌우 양쪽으로 석축을 하여 막음을 하고, 바닥에는 판석을 깔고 그 사이에는 잡석을 채워 물이 스며들게 하는 암거식 배수구가 조사되었는데 입구가 깔대기 모양으로 되어 있어 물이 잘 모여들게 하였다. 이러한 구조는 판축토성의 배수방법과 관련된 대단히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주요 발굴 결과

  • 완도 청해진 유적에서 발굴조사 된 수 많은 유구와 유물들을 장보고의 해상 활동의 근거지로서의 청해진의 실체를 규명하는 기초 자료가 될 것이며, 특히 절대연대가 9세기 전반인 많은 유물들은 앞으로 통일신라시대이 ‘표지유물’로서의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안내문, 완도군청, 2018년)

<출처>

  1. 안내문, 완도군청, 2018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완도 완도항, 청해진 가까운 곳에 있는 큰 항구

전남 완도군 완도읍에 있는 완도항이다. 남해안 크고 작은 섬을 연결하는 거점이자 남해안 연안 항로에서 중요한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주변에 3,0009 ~ 5,000 톤급 대형 선박이 정박할 수 있는 무역항이다. 신지도, 고금도, 조약도 등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어 폭풍우를 피하기 좋은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조선시대 수영인 가리포진이 설치되었던 곳이며, 장보고의 청해진이 멀지 않은 곳에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남해안의 큰 항구 중 하나인 완도항. 어선이 주로 정박하는 곳이기는 하지만 비교적 큰 규모의 무역항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완도항 동쪽으로 큰 섬이 신지도가 막고 있어 천혜의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멀리 완도와 신도를 연결하는 다리인 신지교가 보인다. 그 너머로 장보고의 청해진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요트 선착장.

OLYMPUS DIGITAL CAMERA완도수산고 학생들의 실습선인 청해진호.

OLYMPUS DIGITAL CAMERA항구 안쪽.

OLYMPUS DIGITAL CAMERA조선시대 수영인 가리포진 관아가 있던 곳. 항구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완도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청해진(사적 308호). 해안 가까운 곳에 위치한 작은 섬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청해진에서 내려다 보이는 완도항.

<출처>

  1. 안내문, 완도군청, 2018년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

완도 가리포진, 객사 건물이 남아 있는 조선시대 수영

가리포진은 완도읍에 설치되었던  조선시대 수영으로 첨사가 파견되었다. 완도는 남해안 연안항로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곳으로 통일신라 때 장보고의 청해진이 있었다. 청해진이 해체된 이후 조선초까지는 인근 강진현과 해암군, 영암군에서 분할하여 관장하였으며, 조선 중종 때 수영이 설치되었다.

전남 완도군 완도읍 군내리에는 가리포진에서 사용했던 관아 건물인 객사가 남아 있다. 조선후기 경종 때 가리포진 첨사 이형이 처음 지었으며, 현재의 건물은 구한말인 1796년에 고쳐 지은 것이다. 건물은 앞면 5칸, 옆면 2칸이지만 그 규모는 크지 않은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완도 부근 해역을 관장하기 위해 설치된 수군 진영인 가리포진에서 사용했던 관아 건물인 객사이다. 정면에 ‘청해관’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건물은 앞면 5칸, 옆면 2칸으로 가운데 3칸은 넓은 대청마루가, 양쪽에 1칸씩 온돌방을 두고 있다. 가운데 정청을 두고, 양쪽에 익랑이 있는 일반적인 관아 객사에 비해 건물 규모가 작은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가운데 대청마루, 국왕을 상징하는 궐패(전패)를 모셨던 공간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오론쪽에 1칸규모의 온돌방, 이곳을 찾은 관리들이 묵을 수 있는 공간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모습,  앞쪽에 마루를 비교적 넓게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객사 마루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 출입문 너머로 지금은 마을 건물들이 보이지만, 배들의 정박했던 포구가 내려다 보였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솟을삼문 형식을 하고 있는 객사문. ‘호남제일번’이러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객사 뒷편에 있는 오래된 고목이 이곳에 관아가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가리포진 선박들이 정착했던 완도항.

완도 객사, 전남 완도군 완도읍 주도길
객사는 고려.조선시대에 각 고을에 둔 관사로 객관이라고도 한다. <고려사>에는 1279년(충렬왕 5) 8월에 객관을 처음 지었다는 기록이이 있으나, 실제로는 고려 초부터 지어지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조선시대에는 객사에 왕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시고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대궐을 향해 예를 올렸으며, 외국 사신이나 중앙에서 내려오는 관리들의 숙소로도 사용했다. 완도 객사는 1722년(경종 2)에 가리포진 124대 첨사 이형이 세웠다. 1869년(고종 6)에 첨사 이위소가 중수하였으며, ‘호남제일번’이란 현판은 1854년(철종 5) 첨사 홍선이 쓴 것이다. 이 객사는 일명 ‘청해관’이라고도 불린다. (안내문, 완도군청, 2018년)

<출처>

  1. 안내문, 완도군청, 2018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