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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박물관] 천안의 읍지

조선시대 천안지역에는 천안군, 목천현, 직산현이 있었다. 천안 삼거리는 삼남지방으로 연결되는 교통로의 분기점이었던 이 지역의 특징을 잘 말해주고 있다. 교통의 요지이자 평야가 비교적 넓은 지역으로 고대 이래로 많은 사람들이 살아왔던 고장이다. 조선시대 천안은 경제적으로는 풍요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유교문화가 많이 발달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이며 이름난 서원이나 고택 등이 많이 남아 있지는 않다. 현재는 옛 직산현 관아가 비교적 원형이 잘 남아 있다.

천안의 읍지
“하늘아래 가장 편안한 곳” 천안은 고려 태조 왕건이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루기 위해 태조산에 올라 도솔의 땅을 살펴보고 내린 이름이다. 천안시는 선사시대부터 많은 사람들이 살던 곳으로 백제시조 온조가 졸본부여로부터 내려와 위례성에 도읍했다고 전해지는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다. 현재의 천안시는 1914년 천안군으로 통합되기 이전까지 천안.목천.직산으로 나뉘어 발전해 왔다. 천안은 고려시대 이후 환주, 영주, 영산군 등으로 불리다 조선 태종 때 천안으로 복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시 동쪽에 위치한 목천은 백제시대에는 대목악군으로, 통일신라시대에는 대록군으로, 고려 초에는 목주로 불리다가 조선 태종 때 목천이라 하고 현감을 두었다. 시 북쪽에 위치한 직산은 본래 삼한 목지국의 옛 터로 고구려가 취한 이후 사산현으로 불리다가 고려 때부터 직산이라 하였고 조선 태종 때 현감을 두었다. 1963년 1월1일 천안읍이 발전하여 천안시로 승격되면서 천안군과 분리되었다가 1995년 5월10일 천안시와 천안군이 통합되었고 2008년 7월 동남구와 서북구가 개청하였다. (안내문, 천안박물관,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영성지, 1852년, 천안군수 한여가 사족들의 협조를 얻어 편찬한 천안읍지로 건치연혁, 산천, 풍속, 인물 등 62개 항목이 수록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대록지, 1817년, 1779년 안정복이 편찬한 대록지를 1817년 조국언이 중보하여 편찬한 목천현로 건치연혁, 산천, 풍속, 인물 등 41개 항목이 수록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대록삼강실록, 1903년, 목천지역의 충신, 효자, 열부, 효부 등의 행적을 모아 간행한 책

OLYMPUS DIGITAL CAMERA한명회 묘지석, 조선 중종2년(1507)

네모난 모양의 분청사기 묘지석으로 중종반정 이듬해에 2차로 제작된 것이다. 한명회의 인적사항, 선대가계, 행적, 관로, 성풍 등의 기록되어 있으며, 찬자는 최숙생이다. 충남 공주 학봉리 가마터에서 한명회 묘지석 파편이 확인되어 공주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총24매이다. (안내문, 천안박물관,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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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도 초상, 조선

이 초상화는 1624년 그려진 정사공신상이 아니라 18세기 전반에 작은 종이 초본의 얼굴 모습을 토대로 하여 다시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 초상화가 특이하게 얼굴과 사모의 모사법은 17세기 초반 공신상의 전형적인 모습과 유사하지만, 신체와 관복, 교의자, 각담의 모사법은 18세기 전반 초상화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특히 정1품의 품대인 서대를 착용한 것으로 보아 홍진도가 영의정으로 추증된 이후에 그렸을 가능성이 높다. 17세기 공신화상을 대체하기 위해 그린 18세기 초상화의 매우 특이한 사례로 주목된다. (안내문, 천안박물관,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홍진도 시호완의, 1741년

시호는 왕과 왕비를 비롯하여 벼슬을 한 사람이나 학덕이 높은 선비들이 죽은 뒤에 그의 행적에 의하여 왕으로부터 받은 이름을 말한다. 이 자료는 홍진도에게 충목이라는 시호를 내리기로 한다는 내용의 완의로 1741년 9월 27일 사간원에서 작성한 것이다. 충목은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임금을 받들었기에 충’ 그리고 ‘덕을 베풀고 항상 정의롭게 행하였기에 목’이라 한 것이다. (안내문, 천안박물관,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조주부유서자필, 1636년

홍희가 아들 홍진도에게 남긴 유서를 옮겨 적은 것이다. 종가를 팔지 말 것, 조상의 신주를 종가에 보관할 것을 먼저 당부하고, 이어서 조부모와 부모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배정한 전답과 노비에 대해 자세히 기록하였다. 이로써 당시 집안이 소유한 재산을 대략 파악할 수 있는데, 동대문 밖, 남양, 수원, 용인 등 경기 일대에 산재하며 상당한 규모로 추정된다. (안내문, 천안박물관,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 박문수 시권, 1722년, 박문수가 과거 시험을 보며 작성한 시권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박문수 유지, 1728년, 영조가 경상도 관찰사 박문수에게 내린 유지이다. 박문수가 관할 지방관의 근무성적을 올린 장계에 대해 그중 성적이 좋은 정석범에게 포상을 내리겠다는 내용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박문수 증시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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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수 비문

OLYMPUS DIGITAL CAMERA비문, 1899년

OLYMPUS DIGITAL CAMERA수령관안, 18세기말, 충청도의 각 고을 수령, 찰방, 절도사, 진관 등 현황을 기록한 병풍식 책자

OLYMPUS DIGITAL CAMERA차정첩, 조선시대, 유학 김택수를 춘향 석전제에 집례로 선정되어 참석을 알리는 문서

OLYMPUS DIGITAL CAMERA천안군수 첩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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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구단자, 조선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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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호구, 1689년 12월

OLYMPUS DIGITAL CAMERA관안, 조선후기

관안(官案)으로 구성된 존안류이다. 관안은 각 관서별로 현임자의 명단이다. 이러한 존안류는 편의상 기름먹인 장지에 철첩으로 장첩한 다음에 현임자의 명단을 소편지로 써서 붙여놓았고, 인사이동으로 변화가 있으면 구임자 것을 떼고 새로 부입자를 써놓는 것이다. (안내문, 천안박물관,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호패, 조선후기

OLYMPUS DIGITAL CAMERA인장, 조선후기

OLYMPUS DIGITAL CAMERA천안군관아 지도

OLYMPUS DIGITAL CAMERA천안군관아 모형

OLYMPUS DIGITAL CAMERA목천향교 모형

OLYMPUS DIGITAL CAMERA직산현 관아 모형

직산현 관아와 영소정
조선시대 직산현의 지방행정사무를 보던 관청 건물이다. 1872년 제작된 직산현 지도에 의하면 이때까지 많은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현재는 호서계수아문, 내삼문, 동헌, 책방 등 4동만 남아 있다. 관아의 정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누각형태의 건물로 호서계수아문이라는 현팜이 걸려 있는데, 이는 조선시대 직산현이 경기도를 지나 충청도의 첫번째 고을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충청도읍지」에 의하면 1665년 현종이 온행 때 이곳에 이르러 작은 연못을 감상하고 연회를 베풀었다고 한다. 이듬해인 1666년 현감 윤취은이 정자를 건립하고 송시열에게 이름을 청하니, 연못의 아름다음을 칭하여 영소정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영소정은 1870년 흥선대원군에 의해 철거되었지만 부왕인 현종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과 영소정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숙종대왕의 어제시와 송시열의 직산영소정기 등 44명의 신료들의 시를 묶어 직산영소정어제서 갱화첩이 전한다. (안내문, 천안박물관,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천안삼거리 부근에 위치한 천안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박물관에서 내려다 보이는 천안삼거리 부근

<출처>

  1. 안내문, 천안박물관,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7년

 

[천안박물관] 천안의 불교문화

천안은 중부지방 교통의 요지에 있기는 하나 통일신라 이래 큰 세력이 없었던 지방으로 불교가 발달하지는 않았다. 천안에 지금 남아 있는 큰 사찰로는 차령산맥 줄기 광덕산에 자리잡고 있는 광덕사가 있다. 광덕사는 조선초 세종의 형인 효령대군이 자주 찾았던 사찰로 당시의 위상을 보여주는 여러 유물들이 지금도 남아 있다. 교통 요지에 크고 작은 사찰이 세워졌던 고려시대의 흔적으로 봉선홍경사 갈기비(국보7호), 천흥사명 동종(국보 280호), 보협인석탑(국보 209호) 등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봉선홍경사 갈기비, 국보7호, 고려시대, 복제품. 갈비(碣碑)는 보통 석비보다 규모가 작고 간략화된 것을 말하지만, 이 비석은 머릿돌, 몸돌, 거북받침돌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석비의 형식을 하고 있다. 거북받침돌의 머리는 어룡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오른쪽으로 머리를 돌리고 있다. 비석에는 사찰을 세운 내력이 적혀 있다. 글은 당대 학자로 해동공자로 불렸던 최충이 지었고 백현례가 썼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천안시 성환읍 대흥리 1번국도 도로변에 남아 있는 비석과 절터. 이지역은 교통의 요지이지만 마을이 없고 주변에 습지가 많아 도적이 자주 출몰했기 때문에 여행객의 안전을 위하여 현종이 절과 숙소인 원(院)을 세웠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절터에서 출토된 유물.

OLYMPUS DIGITAL CAMERA천흥사명 동종, 국보280호, 고려시대, 중앙박물관. 국내에 남아 있는 고려시대 범종 중 가장 큰 규모로 높이 1.33m이다. 유곽 아래 위패형 틀을 설치하고, 범종을 조성한 내력을 적은 글을 새겨 놓고 있다. 요나라 통화(統和) 28년인 1010년 성거산 천흥사에서 만들었다는 내용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범종이 있었던 천흥사 절터. 지금도 오층석탑(보물 354호)와 당간지주(보물 99호)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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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협인석탑(寶篋印石塔, 국보 209호)이다. 보협인탑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특이한 형태의 석탑으로 ‘보협인다라니경’을 안치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기단과 탑신을 구별하기 힘들며, 5개의 돌만 남아 있는 것을 조립한 것으로 원래의 모습을 완전히 복원한 것은 아니다. 천안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에 방치되어 있던 것을 동국대박물관으로 옮겼다.

OLYMPUS DIGITAL CAMERA광덕사 면역사패교지, 보물 1246호, 1457년. 광덕사와 개천사의 잡역을 경감하라는 내용을 담은 교지로 조선 초기 사패교지의 형식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불설대보부모은중경, 보물 1247호, 1457년, 부모의 은혜를 크게 10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은혜를 갚기 위해 공양하며 경전을 읽고 외울 것을 권장하는 불경으로 효령대군이 부인, 아들과 함께 시주하여 제작하였다.

광덕사
광덕사는 신라 선덕여왕 12년(643) 자장율사가 창건하고 흥덕왕 7년(832) 진산화상이 중건한 사찰로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희묵상인이 중창하였다. 이 곳에는 광덕사고려사경(보물 390호), 조선 세조가 승려들의 부역을 면제한다는 면역사패교지(보물 1246호), 태종의 둘째 아들이 효령대군이 시주한 부모은중장수태골합부 등 사경7점(보물 1247호), 화려한 도솔천의 세계를 구현한 노사나불괘불탱(보물 1261호) 등의 보물이 있다. 지방문화재인 부도, 삼층석탑, 대웅전, 천불전과 천불전 후불탱화도 있어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된다. (안내문, 천안박물관,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감지은니묘법연화경, 보물 169호, 조선시대

OLYMPUS DIGITAL CAMERA감지금니묘법연화경, 보물270호, 조선시대

<출처>

  1. 안내문, 천안박물관,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7년

 

[천안박물관] 삼국시대 천안

원삼국시대 천안지역은 해상교통로의 거점이었던 아산만과 수로를 통해 중부 내륙지역과 연결되는 교통의 중심지였다. 당시 이 지역에는 목지국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백제가 주도권을 잡기까지 마한연맹체의 중심국가였으며 삼국시에는 백제의 주요 지방세력이었다. 천안지역에는 당시의 위상으로 보여주는 유물들이 여러 지역에서 출토되고 있는데, 청당동에 출토된 말모양 띠고리가 이 지역을 대표하는 유물이다.

고대사회 천안의 위상
천안지역은 아산만으로 이어지는 수로를 통해 바닷길로의 접근이 쉽고, 남부지역으로 통하는 육로상의 길목이라는 유리한 교통로상에 위치한다. 따라서 일찍부터 상당한 위세를 가진 세력이 자리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원삼국시대 청당동유적은 금박유리구슬, 청동곡봉형대구 등 중국(군현)과의 교류를 보여주는 출토유물을 통해 이러한 면모를 보여준다. 이후 백제에 편입된 천안지역의 위상은 화성리, 용원리유적에서 확인할 수 있다. 화성리.용원리유적에서는 청자반구호, 흑유계수호 등의 중국제 자기류와 은상감.용봉문 환두대도, 관모장식, 마구류 등이 출토되었다. 이것은 백제 중앙이 지방 세력가에게 하사한 위세품으로 천안지역이 백제에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지역으로 인식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고대 천안지역은 마한의 중요국에서 백제의 중요지역으로 여전히 상당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안내문, 천안박물관,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9호 돌덧널무덤, 천안 용원리유적, 백제시대, 천안시 동남구 성남면 용원리 산직마을

토광묘 밀집지역에서 남쪽으로 거리를 두고 1기만 조사된 구덩이식 돌덧널무덤. 무덤은 긴 사다리꼴이며 규모는 남북간 760 cm, 동서간 490 cm, 깊이는 190 cm 정도로 크다. 바닥은 돌이 깔려져 있고, 묘광(무덤구덩이) 내 묘실의 규모는 바닥을 기준으로 남북간 445 cm, 동서간 115 cm 정도이다. 출토유물은 토기류와 철기류인데 토기류는 발형토기, 짧은목항아리 등이, 철기류로는 쇠창,쇠도끼와 다량의 관못과 꺽쇠가 출토되었다. 특히 위세품으로 볼 수 있는 유물들인 금동관모, 고리자루큰칼, 금동제 귀걸이, 중국제 자기, 뚜껑있는 검은간토기, 화살통, 말갖춤 등의 풍부하게 보여지고 있다. (안내문, 천안박물관,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청당동 유적 출토 말모양 허리띠고리, 원삼국시대

OLYMPUS DIGITAL CAMERA은세김고리자루큰칼, 천안 용원리유적, 삼국시대

OLYMPUS DIGITAL CAMERA뚜껑있는 검은간토기, 천안 용원리유적, 삼국시대

OLYMPUS DIGITAL CAMERA검은간토기, 천안 용원리유적, 삼국시대

OLYMPUS DIGITAL CAMERA용무늬고리자루큰칼, 천안 용원리유적, 삼국시대

OLYMPUS DIGITAL CAMERA금동관모, 천안 용원리유적, 삼국시대

OLYMPUS DIGITAL CAMERA귀걸이, 천안 용원리유적, 삼국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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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토기, 천안 화성리 유적, 삼국시대

OLYMPUS DIGITAL CAMERA유리제구슬, 천안 화성리 유적, 삼국시대

원삼국시대 천안
원삼국시대는 삼국시대의 원형을 보여주는 시기로 대체로 1~3세기를 말한다. 이 무렵 낙랑과의 접촉을 통해 철기생산이 본격화됨에 따라 철제 무기류나 농공구류 등의 사용이 확대된다. 이에 다수의 세력집단이 출현하였고, 중부 이남에서는 삼한이라 일컬어졌던 소국들이 자리하였다. 천안지역에는 마한 소국의 맹주국인 목지국이 자리하였던 것으로 보고 있고, 또 그에 상당하는 중요한 유적과 유물들이 확인되었다. 원삼국시대 주거지유적으로는 장산리, 용원리, 두정동유적 등이 있고, 분묘유적으로 청당동, 운전리, 두정동, 신풍리유적 등이 조사되었다. 주거지유적은 대체로 직사각형의 평면을 갖고 있는 것으로 한강유역의 출입구가 시설된 여(呂)자형, 철(凸)자형의 중도유형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한 분묘유적의 경우 도랑이 구획된 주구묘가 확인되는 등 지역적인 특징을 보이고 있다. (안내문, 천안박물관,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둥근바닥짧은목항아리

OLYMPUS DIGITAL CAMERA깊은바리토기

OLYMPUS DIGITAL CAMERA둥근바닥짧은목항아리

OLYMPUS DIGITAL CAMERA청동곡봉형띠고리, 말모양 띠고리

OLYMPUS DIGITAL CAMERA원삼국시대 마한지역의 주요 유적지 중 한 곳인 청당동 유적지

청당동유적
청당동유적은 청당동 산성에서 서쪽으로 완만하게 흐르는 구릉이 남향선상에 위치한 중서부지역 원삼국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유적이다. 1990년 이후 4차례에 걸쳐 발굴이 이루어져 모두 22기의 토광묘가 조사되었다. 그중에 13기는 무덤 구덩이 위쪽에서 무덤을 감싸듯이 ∩모양의 도랑이 갖춰져 있다. 이러한 형태의 주구묘는 청당동 유적에서 처음 확인되었고, 주로 충청도 내륙지방에서 보여지고 있다. 출토유물은 토기류와 철기류, 청동기, 구슬류, 칠기 등으로 토기류는 원저단경호와 심발형토기가 조합되는 모습이다. 청동기로는 청동마형대구와 곡봉형대구가 출토되고 있는데 곡봉형대구는 토기 조합과 함께 낙랑지역 목관묘와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안내문, 천안박물관,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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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제구슬, 곱은옥, 금박구슬,유리구슬

OLYMPUS DIGITAL CAMERA시루

OLYMPUS DIGITAL CAMERA두귀달린단지

OLYMPUS DIGITAL CAMERA화로모양토기

OLYMPUS DIGITAL CAMERA네발달린항아리

OLYMPUS DIGITAL CAMERA소뿔모양손잡이, 얼굴모양손잡이

OLYMPUS DIGITAL CAMERA철도끼

두정동 유적
두정동 유적은 노태산에서 동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과 그 주변의 퇴적평야에 위치한다. 청동기시대 주거지를 비롯해 백제초기 주거지 및 본묘유적이 조사되었다. 중심 유구는 원삼국시대에서 초기 백제에 이르는 유적이다. 주거지는 인근의 장산리 유적에서도 확인된 수혈주거지로 평면은 직사각형이며, 지붕구조는 화재주거지를 통해 맞배식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한 분구묘, 토광묘, 옹관묘 등 다양한 분묘유적이 조사되었다. 특히 무덤구덩이를 얕게 파거나 분구 중에 여러 개의 매장주체를 마련하고 다짐토로 봉토를 만든 분구묘는 천안지역에서는 처음 확인된 것으로 서울 가락동 1,2호분 등과 비교된다. 출토유물은 가야계의 화료형토기.손잡이잔.이중구연호.사족호 등의 토기류와 환두대도.마구류 등의 철기류가 있다. 그 외에도 금박옥 등의 구슬류도 출토되었다. 두정동 유적은 3~4세기대 주거지와 마구류 등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안내문, 천안박물관, 2017년)

삼국시대 천안
천안지역은 백제가 고대국가 체제를 확립하고, 본격적으로 마한지역을 병합해 가는 과정에서 백제의 세력권내에 편입되었다. 이 무렵 화성리, 용원리유적 등의 분묘유적은 이러한 한성 백제와의 관련성을 보여주고 있다. 화성리 유적은 목관 또는 목곽을 사용한 토착적 무덤인 토광묘 유적이면서 직구단경호, 흑색마연토가기(검은간토기) 등 백제초기 토기 기종이 보여지고 있어 백제 중앙의 직간접적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위세품적 성격의 은상감 환두대도, 중국제 자기류 등은 백제 중앙의 하사품으로 중요지역 세력가들에게 주어졌던 것이다. 이러한 예는 용원리 유적에서도 확인할 수 있어 백제내에서 천안의 위치를 짐작케한다. 천안지역은 백제가 마한지역을 병합하는데 있어서 마한의 중심국으로써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지리적으로도 한강유역이나 금강유역으로 진출할 수 있는 위치에 있어 이후에도 중요한 방어상의 요지로 삼국시대 천안이 갖는 중요성은 매우 컸음을 알 수 있다. (안내문, 천안박물관,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짧은목항아리

OLYMPUS DIGITAL CAMERA살포

OLYMPUS DIGITAL CAMERA쇠낫, 쇠끌

OLYMPUS DIGITAL CAMERA쇠집게, 철도끼, 쇠못

용원리 유적
용원리 유적은 천안시 성남면 용원리 산직마을 뒤편 야산에 위치하는 백제 초기의 대규모 분묘군으로 토광묘 137기, 석곽묘 13기, 용관묘 2기와 주거지 1기 등이 확인되었다. 석곽묘는 토광묘와 함께 일정하게 배치되거나 구역을 달리해 조성되었다. 토광묘와 석곽묘에서 출토된 유물은 유물내용에 있어 같은 성격이나 석곽묘가 보다 화려하다. 토광묘에서는 흑색마연토기를 비롯 단경호, 발형토기 등 벡제초기이 토기류와 환두대도 등의 무기류, 금제이식.구슬류 등의 장식품이 출토되었다. 석곽묘에서는 중국제 흑유계수호, 금동용봉문.은상감환두대도, 관모장식, 마구류 등이 출토되었다. 용원리유적은 4세기 중후반으로 추정되는 백제시대 대규모 분묘유적으로 당시에 천안지역의 위상과 문화상을 엿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유적이다. (안내문, 천안박물관,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짧은목항아리, 운전리

OLYMPUS DIGITAL CAMERA긴목항아리,

OLYMPUS DIGITAL CAMERA짧은목항아리, 손잡이잔

천안의 관방유적
천안지역에서는 다른 지역에 비해 관방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지금까지 조사된 광방유적은 대부분 산성유적이라는 특징을 갖느다. 천안지역에는 20여개소에 이르는 산성유적이 알려져 있는데 위례산성, 사산성, 백석동 토성 등 많은 예가 있다. 대부분의 토성은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천안지역이 한강이남 지역과 남부지역을 이어주는 길목으로 이를 방어하기 위하여 많은 관방이 축성되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안내문, 천안박물관,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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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지역 산성분포도. 삼국시대 천안지역은 주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어 여러곳에 산성들이 남아 있다.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 때까지 축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위례산성 발굴모습

OLYMPUS DIGITAL CAMERA세발토기

OLYMPUS DIGITAL CAMERA쇠뿔모양손잡이, 기대편, 토기편

OLYMPUS DIGITAL CAMERA도장무늬굽다리사발, 토기편

OLYMPUS DIGITAL CAMERA토기편

OLYMPUS DIGITAL CAMERA흙으로 빚은 말

위례산성
위례산성은 천안시 북면 운용리와 입장면 호당리의 경계에 위치하는 관방유적이다. 차령산맥의 중간지점에 위치하는 위례산은 해발 529.5 m로 성거산과 함께 이 일대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차량산맥 북서쪽의 천안, 직산, 입장, 안성 일대의 평야지대와 멀리 아산만과 평택까지 내려다 볼 수 있는 요새이다. 산성은 산정상을 중심으로 한 테뫼식산성과 산성의 남북으로 이어지는 포곡식산성이 연결된 복합형 산성이다. 테뫼식산성의 평면은 남북으로 긴 타원형이고 구간별로 토석혼축성과 석성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둘레는 950 m로 포곡식 산성까지 합하면 2 km 정도로 본다. 석성은 문지로 연결되는 경사가 심한 곳에 40 m 구간이 남아 있고, 높이는 4 m 가량이다. 토석혼축성은 1~2열의 석렬을 놓고 그 위에 흙을 덮었는데 높이는 1.5 m 정도이다. 성내에 시설물로는 산성의 서북쪽 모서리에서 우물 1기가 조사되었다. 백제의 삼족기를 비롯한 토기편이 출토되고 있어 성의 초축연대를 4세기 까지 올려보는 연구자들도 있으나 현존하는 성벽의 초축시기와 관련된 유물은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그 시기를 확실하게 단언하기는 어렵다. (안내문, 천안박물관,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안장틀

OLYMPUS DIGITAL CAMERA재갈

OLYMPUS DIGITAL CAMERA재갈, 표주박형 인수호

OLYMPUS DIGITAL CAMERA발걸이, 띠고리

OLYMPUS DIGITAL CAMERA말띠드리개, 말띠꾸미개

OLYMPUS DIGITAL CAMERA화살통

OLYMPUS DIGITAL CAMERA쇠화살촉

OLYMPUS DIGITAL CAMERA쇠창

OLYMPUS DIGITAL CAMERA은세공봉황무늬고리자루큰칼

<출처>

  1. 안내문, 천안박물관, 2017년

 

[천안박물관] 선사시대 천안지역

천안지역은 한강유역과 충청지역을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으나, 큰 강이 발달한 지역이 아니어서 중요한 선사시대 유적이 발굴되는 지역은 아니다. 최근의 발굴.조사 과정에서 천안 두정동 지역에서 구석기 유적이 발견되었으며 신석기시대 유물도 일부 발굴.조사되고 있다. 청동기에는 주요 교통로에 위치한 지역적 특징으로 여러곳에서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고 있으며, 이후 삼한시대에는 마한의 중심지역으로 자리잡게 된다.

석기시대 천안
석기시대는 돌을 도구로 활용한 시기로 구석기시대는 뗀석기를, 신석기시대는 돌을 갈아서 사용한 간석기가 만들어졌다. 또한 토기의 발명으로 음식물을 조리하거나 저장할 수 있게 되어 정착생활이 시작되었음을 보여준다. 천안에서는 두정동에서 구석기시대의 유적이 처음 발굴되었고 최근에는 용곡동과 청당동 등에서 유적이 확인되었다. 신석기시대 유적은 정식으로 조사되진 않았지만 봉룡동에서, 최근에는 백석동 고재미골에서 빗살무늬 토기편 등이 확인되었다. (안내문, 천안박물관,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찍개, 좀돌날몸통, 천안 두정동 C.D지구 유적

OLYMPUS DIGITAL CAMERA여러면석기, 망치돌, 긁개, 홈날, 천안 두정동 C.D지구 유적

천안에서는 두정동에서 구석시대의 유적이 처음 발굴되었고 최근에는 용곡동과 청당동 등에서 유적이 확인되었다. 신석기 유적은 정식으로 조사되진 않았지만 봉룡동에서, 최근에는 백석동 고재미골에서 빗살무늬 토기편 등이 확인되었다.  (안내문, 천안박물관,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밀개, 빗살무늬토기편, 천안 백석동 고재미골 유적

천안지역의 청동시대 유적은 1960년대부터 알려져 왔는데 최근 많은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그 수가 급증하고 있다. 특히 천안지역은 대규모의 주거지 유적이 발굴되고 있다. 전기 청동기시대 유적으로는 청당, 백석동, 쌍룡동, 용원리, 두정동, 업성동, 불당동, 운전리 유적 등이 있는데 대체로 긴 직사각형의 주거지이다. 후기 유적은 두정동, 남관리, 대흥리 유적 등으로 원형의 송국리형 주거지가 대부분이다.  (안내문, 천안박물관,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천안지역 청동기시대 유적지

OLYMPUS DIGITAL CAMERA청동기시대 전기 집자리 모형

OLYMPUS DIGITAL CAMERA볍씨자국 저부편,

OLYMPUS DIGITAL CAMERA바닥편, 공주대학교박물관(천안 백석동 유적)

OLYMPUS DIGITAL CAMERA항아리, 운전리

OLYMPUS DIGITAL CAMERA반달돌칼, 신방동, 천안 백석동유적,

백석동 유적
백성동 유적은 천안시 백석동.성성동 일대에 위치한 청동기시대 전기의 대규모 취락지로 주거지 86기와 백제토성이 조사되었다. 주거지는 대부분 긴 직사각형, 직사각형 모양의 수혈주거지(움집터)이다. 내부시설은 불뗀자리와 저장구덩이, 도랑이 있다. 출토유물은 무문토기와 마연토기 등의 토기류와 석기류가 있다. 백석동유적에서 출토된 토기류는 공열.구순각목.이중구연단사선문양 등이 단독 혹은 짝을 이루고 있어 여주 흔암리 유형과의 연관성을 보여주고 있다. 백석동 유적은 다양한 종류의 유물이 출토되어 전기 청동기시대 생활상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토기 바닥의 볍씨자국과 반달모양돌칼 등은 농경생활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어 일찍부터 천안지역에 농경이 시작되었음을 보여준다.  (안내문, 천안박물관,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돌끌,

OLYMPUS DIGITAL CAMERA겹아가리 단사선토기

OLYMPUS DIGITAL CAMERA굽다리토기, 단지.

OLYMPUS DIGITAL CAMERA간돌칼, 간돌칼, 용곡동 두터골/신방동

OLYMPUS DIGITAL CAMERA간돌화살촉, 용곡동 두터골/공정리

OLYMPUS DIGITAL CAMERA돌도끼, 가락바퀴, 숫돌

OLYMPUS DIGITAL CAMERA달모양도끼, 신방동

OLYMPUS DIGITAL CAMERA바리, 운전리

OLYMPUS DIGITAL CAMERA민무늬토기편, 천안 용원리 A지구유적, 골아가리구멍띠토기

OLYMPUS DIGITAL CAMERA반달모양돌칼, 간돌칼

OLYMPUS DIGITAL CAMERA홈자귀, 돌도끼, 숫돌, 천안 남관리유적,

OLYMPUS DIGITAL CAMERA정자형석기, 간돌칼, 천안 남관리유적

남관리유적
남관리유적은 천안시 풍세면 남관리 야산에 위치한 청동기새 중.후기의 주거지유적이다. 1994년 발굴이 이루어져 원형주거기4기, 방형주거지 1기 등 모두 5기의 주거지가 확인되었다. 1기를 제외하고는 타원형의 작업구멍이 있는 송국리형 주거지이다. 출토유물은 무문토기 등 토기류와 지석.석착.석부 등의 석기류가 있다. 대부분 토기류는 저부편이, 석기류는 지석이 출토되었다. 출토유물 중 J자형 석기와 홈자귀는 농경과 관련해서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안내문, 천안박물관, 2017년)

 

<출처>

  1. 안내문, 천안박물관, 2017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이집트보물전] 신성한 동물들

고대 이집트 종교에서는 동물들도 신성한 존재로 여겼으며, 수많은 신들과 동물들의 특징을 연관지어 신과의 매개체로 여겨습니다. 초기에는 조각상 등으로 만들어져 신전에 모셔졌으며, 후대에 미라로 만들어져 신에게 받쳐졌다. 바스테트와 연관된 고양이를 비롯하여 호루스를 상징하는 매, 태양신 레(Re)와 동일한 존재로 여겨졌던 암사자 여신 사크메트, 혼돈과 두려움의 존재인 소베크를 상징하는 악어, 고대 멤피스에서 숭상받았던 아피스 황소 등 다양한 동물들이 신을 상징하는 신성한 동물로 여겨졌다.

신성한 동물들
이집트인들은 영원한 삶을 얻기 위해 자신이 가지지 못한 능력을 동물에게서 찾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그 능력은 곧 신의 능력이었습니다. 그들은 동물이 사람과 함께 창조되었다고 믿었을 뿐만 아니라 신처럼 자신을 보호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수많은 신들을 숭배하던 이집트인들에게 다양한 동물의 특성들은 신들과 비교할 때 좋은 대상이었습니다. 그 결과 동물의 얼굴을 한 신이 등장하게 되었고, 때로는 동물 그 자체가 신으로 여겨져 신전에서 길러지기도 하였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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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관, 기원전 664~332년(제26왕조 ~ 제31왕조), 나무.아마천.고양이

고양이는 고대 이집트에서 가장 흔하게 미라로 만들어진 동물 가운데 하나입니다. 고양이 미라는 바스테트, 사크메트(Sakmet)와 같은 고양이과 동물과 연결된 신과 관련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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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관, 사카라, 기원전 664 ~332년(제26왕조 ~제31왕조), 나무.고양이

고대 이집트에서는 정교하게 금박을 입힌 고양이 형상의 목관에 고양이 미라가 안치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 나무로 만들어진 고양이 모양 관에도 고양이가 들어가 있었습니다. 머리 부분에는 도금한 흔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고양이의 관, 사카라, 기원전 850 ~ 540년(제22왕조 ~ 제26왕조), 청동, 아마천.고양이

새끼 고양이 조각상과 관 안에 안치된 동물 미라가 함께 등장하는 것은 봉헌용 조각상에서 봉헌용 동물 미라로 넘어가는 시기의 과도기적 유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동물 미라와 조각상은 모두 신에게 바치는 동일한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고양이와 쥐, 테베, 기원전 1295 ~ 1075년경(제19왕조 ~ 제20왕조), 석회석에 안료

귀족과 같은 옷차림으 통통한 쥐가 의자에 앉 술잔과 꽃(혹은 생선가시), 직물 조각으로 보이는 물건을 들고 있습니다. 그 앞에 있는 홀쭉한 고양이는 쥐의 시종과 같은 모습으로 부채질을 하면서 다리를 묶은 가금류를 쥐에게 건네고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땃쥐의 관, 기원전 664 ~ 30년(제26왕조 ~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청동.땃쥐

OLYMPUS DIGITAL CAMERA땃쥐의 관, 기원전 664 ~ 30년(제26왕조 ~ 프톨레마이오스왕조), 청동.땃쥐

이집트인들은 야성성 땃쥐를 숭배하였습니다. 야행성인 이집트몽구스처럼 땃쥐도 뱀을 물리치는 동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밝은 눈’이라는 의미를 갖는 케티이르티(Khenti-Irty)는 어둠 속에서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바로 땃쥐는 켄티이르티의 야행성을 나타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따오기의 관, 투나 엘게벨, 기원전 305 ~ 30년(프톨레마이오스 시대), 나무.은.금.수정.아마천.따오기

정교하게 도금된 이 따오기 형태의 관 안에는 따오기 미라가 있습니다. 수정으로 만든 뒤 금 테두리를 입힌 눈, 도금된 몸체, 그리고 은으로 된 다리와 섬세한 묘사가 돋보이는 발은 이 관이 훌륭한 동물 관으로 뽑히는 이유입니다. 따오기는 달, 지혜, 글의 신으로 알려진 토트를 상징하는 동물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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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관, 사카라, 기원전 664 ~30년(제26왕조 ~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구리.합금.새.아마천

이 관에는 새의 미라 두 개체가 들어 있었습니다. 이집트 신전처럼 생긴 이 관의 양 옆면에는 이시스와 네프티스가 애도하고 있는 모습이 새겨져 있습니다. 관의 뒷부분에는 오시리스의 척추를 상징하는 제드 기둥이 남아 있습니다. 이 관을 만든 주인공은 ‘리헤테크’라는 남성인데, 이처럼 특이한 형태의 관을 제작한 이유에 대해 서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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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모습의 호루스, 기원전 664 ~ 30년(제26왕조 ~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청동.금

‘이중관’을 쓰고 있는 매는 오시리스의 적법한 왕위 계승자인 호루스를 상징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샤크메트(Sakhmet), 기원전 664 ~ 332년(제26왕조 ~ 제31왕조), 청동

몇몇 신화에서 암사자 여신 사크메트는 태양신 ‘레(Re)’의 눈과 동일한 존재로 인식되었습니다. ‘레’의 눈은 모든 적으로부터 태양신 자신을 보호하는 위력을 가졌기 때문에 사크메트 역시 매우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되어 때로는 위협적인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이때는 사람의 피처럼 보이는 붉은 맥주만이 사크메트의 화를 달랠 수 있었는데, 맥주는 그녀를 고양이처럼 조용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고 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소베크(Sobek), 기원전 664 ~ 30년(제26왕조 ~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청동

소베크는 흔히 악어 머리에 인간의 몸을 한 것으로 묘사됩니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소소한 일상의 문제점들을 해결해 달라는 바람과 함께 악어 미라를 소베크에게 봉헌했습니다. 다 큰 악어는 위험했기 때문에 주로 어린 악어를 잡아 미라로 만들어 바쳤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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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브라를 쥐고 있는 이시스, 기원전 1세기, 로마 시대, 청동

이집트 신앙의 복잡한 성격은 각각의 신들이 가진 특징적인 물건을 통해 드러납니다. 오시리스의 아내 이시스가 들고 있는 고브라는 남편을 부활시키고, 그녀의 아들 호루스를 보호하는 마법의 힘을 상징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아누비스(Anubis), 사카라, 기원전 664 ~ 30년(제26왕조 ~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아누비스는 미라를 방부 처리하는 미라제작자, 죽은자를 심판하는 재판의 기록관, 죽은 자를 사후 세계로 인도하는 안내자로 묘사되었으며 가끔은 미라의 수호자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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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코원숭이, 신왕국시대 이후, 나무

개코원숭이는 따오기와 마찬가지로 글쓰기와 지식의 신인 토트에게 바쳐지던 봉헌물이었습니다. 나무로 만든 개코원숭이 조각상은 토트의 신전을 꾸미던 장식품입니다. 작은 공예품처럼 만든 것은 개코원숭이 이라를 장식하던 것이며,청동으로만든 조각상은 토트를 숭배한 서기들이 사용한 상징물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사자, 소하그 혹은 빌라나, 기원전 3300 ~ 3100년경(나카다 3기), 페그마카타이트(화강암의 일종)

머리만 남아 있는 이 사자 조각상은 형태로 보아 이른 시기에 만들어진 동물조각상으로 보입니다. 이집트에서는 예로부터 사자가 왕의 힘과 권력을 상징했기 때문에 이 조각상은 왕의 권력을 드러내는 용도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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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렛세게르(Meretseger), 사카라, 기원전 1479 ~ 1400년경(제 18왕조), 사암에 채색

사람의 머리에 코브라의 몸을 가진 이 여신은 얼굴과 왕관에 있는 두 손가락의 특징적인 모습을 보아 풍요와 풍년을 관장하는 신인 ‘메셋세게르’로 보입니다. 테베의 수호신 메셋세게르는 ‘왕가의 계곡’과 그 일대에서 일하는 장인들을 보호한다고 여겨졌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하마, 기원전 664 ~ 30년(제26왕조 ~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석회석

사원에 봉헌된 이 독특한 조각상은 종 모양의 몸체에서 튀어나오 ㄴ두 동물의 머리가 특징적입니다. 머리와 귀를 보면 하마인 듯하지만, 비늘이 덮힌 피부는 악어와 비슷합니다. 수컷 하마의 조각상은 위험, 혼돈, 무질서의 신인 세트(Seth)를 뜻하고, 암컷 하마는 출산과 다산의 여신 타와레트(Tawaret)를 상징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뱀의 관, 기원전 664 ~ 30년(제26왕조 ~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청동

이 관에서 볼 수 있는 사람 머리를 한 코브라는 태양신 아툼(Atum)을 나타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악어가 있는 새김돌, 다함사, 기원전 1295 ~ 1070년경(제19왕조 ~ 제20왕조), 석회석

악어가 새겨진 이 새김돌은 제단과 함께 신전에 놓여 있던 것으로 악어 숭배에 사용되었습니다. 새김돌의 윗부분에서 제단 형상의 주춧돌 위에 있는 악어는 깃털 두 개와 태양 원반으로 이루어진 왕관을 쓰고 있으며, 그 오른편에는 음식과 꽃이 봉헌되어 있습니다. 아랫부분에는 관을 쓰지 않은 두 마리의 악어가 비어 있는 봉헌 탁자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개코원숭이 장식, 사카라, 기원전 305 ~30년(프톨레마이오스 시대), 리넨

OLYMPUS DIGITAL CAMERA오릭스 모양의 접시, 기원전 1390 ~ 1352년경(제18왕조), 나무

사막에 사는 영양의 일종인 오릭스는 정의의 신인 마아트(Ma’at)를 위협하는 악마의 신으로 여겨졌습니다. 오시리스의 적으로도 인식된 오릭스는 보통 묶여 있는 상태로 표현되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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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과 함께 있는 호루스, 기원전 3세기(프톨레마이오스 시대), 동석

이집트인들은 이시스가 호루스를 세트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습지에 숨겨서 길렀다고 믿었습니다. 습지에서 자란 호루스는 전갈과 독사의 공격을 이겨냈으며, 이러한 전설은 주술적인 새김돌(이집트어로 ‘카푸스(Cappus)’, 마법의 석비’라는 의미가 만들어지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이 새김돌에는 악어를 딛고 서서 양손에 뱀과 전갈을 쥐고 있는 어린 호루스가 새겨져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황소의 머리, 기자, 기원전 664 ~ 332년(제26왕조 ~ 제31왕조), 나무.유리.상아

황소는 이로운 힘과 풍요로움을 가져다 주는 신이었습니다. 또한 힘과 생식력은 왕과 연관되었기 때문에 초기 왕들은 자신의 무덤에 황소 미라를 함께 넣었습니다. 신으로 선택된 황소는 특별한 표시가 있었는데, 이마에 흰색 점이 있는 어두운 색의 소가 바로 아피스 황소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물고기, 사카라, 기원전 1390 ~ 1336년경(제18왕조), 토기에 채색

흙으로 빚은 다음 아름답게 색을 칠한 이 물고기는 나일강에 사는 ‘틸라피아(tilapia)’를 나타낸 것입니다. 틸라피아는 수정된 알을 부화할 때까지 입에 담고 있기 때문에 이집트인들은 이를 부활, 재생, 번식의 상징으로 여겼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물고기, 기원전 664 ~ 30년 (제26왕조 ~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청동

‘물고기들의 우두머리’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델타의 여신 하트메히트(Hatmehit)는 물고기 쉴브(shilbe)의 모습 혹은 물고기 장식을 한 여인으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한편 물에 빠져 죽은 오시리스의 몸을 물고기가 내세에서 부활하기 전에 뜯어 먹었다는 신화 때문에 일반인들과는 달리 왕족은 물고기를 먹을 수 없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아피스 황소 (Apis Bull), 기원전 664 ~ 30년(제26왕조 ~ 트톨레마이오스 왕조), 청동

아피스 황소는 동물 중에서도 가장 신성하게 여져졌습니다. 고대 그리스 역사가 헤라도토스는 아미스 황소를 ‘검은 이마에 하얀 다이야몬드가 박혀 있고, 등에는 독수리처럼 날개가 달렸으며, 꼬리에는 털이 두 가닥 있고, 혀 아래에는 쇠똥구리 모양의 표시가 있다”고 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동물무늬 건축용 장식, 헤라클레오클리스, 기원후 4세기(로마시대), 석회석에 채색

둥근 덩굴무늬 안에 동물이 새겨진 이 새김돌은 건물을 장식하던 부재의 일부입니다. 여기에는 야생돼지가 가젤을 쫓고 있고, 하이에나는 개를 쫓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개구리, 원숭이, 고슴도치

개구리. 개구리 조각상은 글을 새겨 부적으로도 사용했는데, 특히 안전한 출산과 다산을 기원하는 여인들에게 인기가 많았습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부활의 시기인 신년에 개구리 조각상을 선물로 주고 받았다고 합니다. 원숭이. 귀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으로 보아 원래는 금속 귀걸이를 하고 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집트인들은 인간 흉내를 곧잘 내고 익살스러운 원숭이를 좋아했습니다. 고슴도치.고슴도치는 식량이 부족해지면 오랫동안 땅굴에서 은둔하다가 풍족한 시기가 되면 다시 밖으로 나와 활동합니다. 이집트인들은 이런 습성을 부활관련시켜서 생각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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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양을 숭배하는 모습의 비석, 수단 어머라, 기원전 1292 ~1196년경(제19왕조), 사암

이 새김돌의 가장 윗부분에는 “아문 레, 서 아마라 앞 두 개의 땅(이집트)에 있는 왕좌의 주인”이라는 내용의 글이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주인공은 양의 머리를 한 사자 앞에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양은 생색력, 사자는 힘을 상징합니다. 한편 이집트에서의 숫양 숭배는 숫양을 제물로 바치는 유대계 관습과 마찰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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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피스, 그리스, 기원전 30년 ~ 기원후 335년(로마시대), 대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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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피스(앞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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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피스(뒷면)

이집트를 통치하던 그리스인들은 그리스와 이집트 신들을 결합함으로써 통치를 공고히 하였습니다. 세라피스는 이런 과정에서 나타나 이집트와 그리스 신들이 합쳐진 것을 말합니다. 수염이 난 쪽은 이집트 신 오시리와 그리스 신 제우스, 그리고 수염이 없는 여성스런 모습은 이집트 신 이시스와 그리스 신 헤라가 합쳐진 모습입니다. 그리스에서 만들어진 이 조각상은 사람의 얼굴에 동물의 뿔과 귀를 결합하는 이집트의 관습을 따르고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 “이집트 보물전”, 2017년
  2. 위키백과, 20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