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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루판 아스타나 고분군(阿斯塔那古墓)

중국 투루판시에 있는 아스타나 고분군(阿斯塔那古墓, Astana Cemetery)이다. 주로 당나라 때 고창국에 정착한 한족들의 무덤으로 10 ㎢ 의 넓은 면적에 1,000개 이상의 무덤들이 모여있다. 투루판 분지의 건조한 기후 때문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미라를 비롯하여 많은 유물들이 남아 있다. 20세기 이후 여러 차례 발굴.조사를 통해 많은 문서들과 개인용도의 물품, 인형, 그림 등이 출토되었는데 그중 복희(伏羲)와 여와(女媧)를 그린 그림과 6첩 병풍 형식의 동물을 그린 벽화 등이 유명하다. 또한 이곳에서는 많은 문서들이 출토되었는데 소그드어, 위구루어로 쓰인 불교, 마니교, 경교 등의 종교 문서 있어 사료적 가치가 상당히 높다.

아스타나 고분군은 옛 실크로드에서 투루판분지로 들어오는 화염산 계곡 입구에 위치하고 있는데 고창국 수도였던 가오창고성에서 북쪽으로 2 km 정도 떨어져 있다. 유적지 입구를 들어서면 정면에 12지신상과 함께 사람 얼굴에 뱀의 꼬리를 달고 있는 여와복희상을 볼 수 있으며 그 뒷편에 유적지 전체와 주변지역을 감상할 수 있는 이층 누각이 있다.

SANYO DIGITAL CAMERA<투루판 아스타나 고분군>

중국 전설에서 창조신으로 여겨지는 복희와 여와(伏羲女媧)를 표현한 그림이 이곳에서 출토되어 복희와 여와가 유적지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자리잡고 있다. 두 신은 상반신을 사람, 하반신은 뱀의 형상을 하고 있는데 각가 컴퍼스와 구부러진 자를 들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복희와 여와를 표현현 조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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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신 복희와 여와, 伏羲女媧圖, 투루판 아스타나, 7세기, 복제품>

중국의 천지창조 신화에 등장하는 복희와 여와를 소재로 삼은 그림이다. 중앙에 두 신이 상반신은 사람, 하반신은 뱀의 모습을 하고 등장하며, 왼쪽이 여와, 오른쪽이 복희이다. 각각 컴퍼스와 구부러진 자를 들고 있다. 이는 둥근 하늘과 네모난 땅으로 이루어진 중국의 전통적인 우주관과 관련된 상징물이다. 배경에는 해와 달, 별자리가 그려져 있어 하나의 소우주를 재현하고 있다. 중국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얼굴과 손에 보이는 음영 표현, 해와 달의 형상화 방식에서 중앙아시적인 특징이 잘 드러난다. <출처:중앙박물관>

아스타나는 위구어로 휴식처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당대 이전 고창국부터 당나라 시대에 주로 사용된 공동묘지라 한다. 이층 누각에 올라서면 남쪽편에 넓게 고분이 펼쳐져 있는데 우리나라 고분과는 달리 봉분을 크게 만들지 않고 고분인지 구분하기 힘들정도로 낮은 봉분들이 고분군을 형성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유적지를 살펴볼 수 있는 2층 누각>

SANYO DIGITAL CAMERA<누각에서 내려다 보이는 유적지 입구>

SANYO DIGITAL CAMERA<아스나타 고분군>

SANYO DIGITAL CAMERA<일반에 공개된 215호와 216호 무덤으로 가는길>

이곳에 있는 무덤은 대부분은 지하로 내려가는 경사진 길과 시신을 놓은 묘실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에서는 벽화를 비롯하여 비단, 마포, 종이에 그린 회화, 문서, 직물, 묘지, 나무와 흙으로 만든 인형, 토기, 나무 그릇, 금속기, 화폐 등이 발견되었다. 현재는 215호와 216호 무덤이 일반에 공개되어 내부를 둘러볼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일반에 공개된 무덤>

OLYMPUS DIGITAL CAMERA<무덤 내부 구조>

SANYO DIGITAL CAMERA<경사로가 있는 대표적인 무덤>

215호 무덤은 경사로가 있는 굴식 무덤으로 길이 31.98 m, 깊이 5.26 m 규모이다. 《唐冯怀盛等夫役名籍》、《唐 战书牍》 문서 등이 출토되었으며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6폭 병풍 형식의 꽃과 새 등이 그려진 벽화가 유명하다.

SANYO DIGITAL CAMERA<215호 무덤>

216호 무덤은 경사로가 있는 굴식무덤으로 길이 31.26 m, 깊이 5.28 m 규모이다.  묘실에는 유교의 가르침을 풀이한 6첩 병풍이 그려져 있다. 그 중 4첩은 성인도로서 왼쪽 앞가슴이나 등에 ‘옥인’, ‘금인’, ‘석인’, ‘목인’ 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SANYO DIGITAL CAMERA<216호 무덤>

210호 무덤은 경사로가 있는 굴식무덤으로 길이 20.05 m, 깊이 5.55 m이다. 부부합장 무덤으로 나무그릇, 항아리, 빗, 청동거울 등이 출토되었다.

SANYO DIGITAL CAMERA<210호 무덤>

SANYO DIGITAL CAMERA<발굴조사가 이루어진 무덤>

SANYO DIGITAL CAMERA<옆에 있는 무덤>

아스타나 고분군은 아스타나와 카라호자의 두 구역으로 나누지만, 일반적으로 아스타나 고분군이라고 부른다. 1959년부터 수차례의 발굴을 통해 약 400기가 넘는 무덤이 발굴.조사되었다. 고분군 바깥에는 투루판분지에 살았던 위구르인들의 무덤들이 남아 있다.

SANYO DIGITAL CAMERA<봉분이 남아 있는 무덤들>

SANYO DIGITAL CAMERA<유적지 바깥쪽 위구르인 무덤들>

SANYO DIGITAL CAMERA<멀리 보이는 화염산>

SANYO DIGITAL CAMERA<화염산과 전망대>

아스타나 무덤은 서역 북도의 투루판 시에서 동남쪽으로 35 km 떨어진 곳에 위치하하고 있다. 아스타나와 카라호자의 두 구역으로 나주지만, 일반적으로 아스타나 고분군이라고 부른다. 1959년부터 수차례의 발굴을 통해 약 400기가 넘는 무덤이 발견되었다. 아스타나에서 무덤은 기원후 3세기경부터 시작되어, 국씨 고창국(502~640)과 당 왕조 지배기(640~8세기 후반)에 계속해서 만들어졌다. 일부 무덤은 수직으로 구덩이를 파 시신을 놓은 수혈식이지만, 대부분은 지하로 내려가는 경사진 길과 시신을 놓은 묘실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에서는 벽화를 비롯하여 비단, 마포, 종이에 그린 회화, 문서, 직물, 묘지, 나무와 흙으로 만든 인형, 토기, 나무 그릇, 금속기, 화폐 등이 발견되었다. 투루판에는 일찍부터 한족 집단이 형성되었던 까닭에 아스타나 고분군 출토품은 중국적인 요소와 중앙아시적인 요소가 혼합되어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7년)

중앙박물관에는 상당히 많은 중앙아시아지역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 교토 니시혼간지의 주지승이었던 오타니 고즈이가 20세기초 3차의 원정을 통해 중앙아시아에서 수집, 약탈해 왔던 유물들을 일제강점기에 총독이었던 데라우치를 통해 조선총독부에 기증한 것이 오늘날까지 중앙박물관에 남아 있다.

카라호자에 있는 무덤에는 시신을 안치한 널방 입구에 이와 같은 상상의 동물 한 쌍이 배치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들을 진묘수라고 하며, 널방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 사람 또는 짐승의 얼굴을 지닌다. 비슷한 시기에 조성돤 백제 무령왕릉에서도 상상의 동물 진묘수가 발견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무덤을 지키는 상상의 동물(鎭墓獸頭部), 8세기, 투루판. 투루판의 아스타나, 중앙박물관>

진묘수는 무덤을 지키는 역할을 하는 상상의 동물이다. 시신을 안치하는 널방의 문에 한 쌍이 배치되며, 때로는 천왕을 표현한 인형과 함께 등장하기도 한다. 사람이나 짐승의 얼굴을 하고 있으며, 엉덩이를 땅에 붙이고 앞다리를 세워 정면을 향해 응시하고 있는 자세를 취한다. 묘를 지키는 역할에 어울리게, 상대를 위협하는 듯한 사나운 표정을 짓고 있다. 이 두상은 투구를 쓰고 있는 사람 얼굴을 보여준다. 머리 윗부분에는 잘려나간 뿔의 흔적이 남아 있고, 목 아래에도 짐승의 털이 묘사되어 있어 진묘수의 머리 부분임을 알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무덤을 지키는 상상의 동물(鎭墓獸, 투루판 아스타나, 6~7세기, 중앙박물관>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들 중에는 사산조 페르시아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이는 유물들이 다수 출토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구슬 문양으로 장신된 그릇(連珠紋明器), 투루판 아스타나, 6~7세기>

그릇 표면을 장식한 문양을 연주문이라고 하며, 작은 흰 구슬을 이은 것과 같은 모양을 띤다. 서아시의 사산조 페르시아의 대표적인 문양으로, 중앙아시아, 중국, 우리나라, 일본에까지 전해졌다. 여기 전시된 그릇은 무덤에 넣기 위해 만든 명기로 주로 쟁반에 얹어 시신의 머리맡에 놓았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새머리 장식이 있는 병, 鳳首形壺, 투루판 카라호자, 7~8세기, 투루판 카라호자, 중앙박물관>

물따르는 곳과 손잡이가 만나는 부분에 새의 눈을 표현하여, 물따르는 부분이 새의 부리와 같은 느낌을 준다. 이와 같은 기형은 그리스의 오이노코에에서 유래한 것으로 지중해지역, 사산조 페르시아, 중국에서 금은기, 유리기, 도자기 등으로 다양하게 제작되었다. 신라의 황남대총 남분에서도 유사한 형태의 유리병이 발견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7년)

생전에 높은 지위에 있었던 관리의 무덤에서는 시종, 무사, 관리, 무용수나 약사를 표현한 인형이 다량으로 출토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현세에서 누렸던 삶이 내세에도 이어지기를 바람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문인상(文人像)은 당나라 관복의 형태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인형이다. 조선시대 관리들의 관식과 비슷하게 생겼다. 몸통을 폐지를 이용해서 만들었던 종이에 다양한 기록들이 남아 있어 중요한 연구자료가 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문인상, 文人像, 투루판 카라호자, 7~8세기,

당대(唐)의 전형적인 관식(冠飾)인 복두(幞頭)를 쓰고 있다. 팔 부분은 종이를 꼬아서 만들었으며, 이는 투루판에서만 볼 수 있는 방식이다. 이처럼 이 지역에서는 부장품을 만들 때 폐기된 문서를 재활용한 경우가 많다. 이러한 자료는 ‘투루판 문서’라고 불리며, 당시 역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7년)

무덤에서는 당시 투루판 사람들이 사용했던 생활용기들도 다수 출토되고 있는데 중국적인 형태를 보여주는 유물도 상당수 있어 당시의 문화교류를 알 수 있게 해준다.

OLYMPUS DIGITAL CAMERA<나무 항아리(木製小壺), 그릇받침(明器), 투루판 아스타나, 6~7세기>

OLYMPUS DIGITAL CAMERA<나무 굽다리접시(木製高杯), 투루판 아스타나, 6~7세기,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표주박 그릇, 瓢制容器, 투루판 아스타나, 중앙박물관>

<출처>

  1. 위키백과, 2020년
  2. 百度百科, 2020년
  3.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7년
  4. 실크로드문명기행, 정수일, 한겨레출판사, 2006년

투루판 가오창고성(高昌古城), 당 장안성을 모방해서 건설한 도성

중국 투루판시에 있는 옛 고창국 도성이었던 가오창고성(高昌古城)이다.  현 투루판시 동쪽 화염산 계곡에서 강물이 흘러드는 투루판 분지 북쪽편에 자리잡고 있다. 실크로드 천산북로의 주요 교통로에 위치하여 교역을 통해 크게 번창했으며 당 현장법사가 인도를 방문하는 길에 설법을 펼쳤던 곳으로 유명하다. 투루판 분지내에서도 계곡과 가까운 까닭에 지금도 고창고성 주변에는 농지가 많고 주민들도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이슬람 세력이 터를 잡기 이전에는 불교가 번창했던 곳으로 화염산 협곡에 있는 베제클라크 석굴, 토유크 석굴 등 많은 불교 유적을 남겨 놓고 있다.

한(漢) 시기 투루판 교하고성에서 번성했던 차사전국(車師前國) 국경 부대원들이 만든 요새였던 곳으로 남북조시대 북량(北凉) 망명정권이 442년 이곳에 터를 잡았으며 450년 교하고성(交河古城)에 있던 기존 세력을 몰아내면서 투루판분지의 정치, 경제의 중심지가 되었다. 당(唐) 시기 한족정권이 고창국이 크게 번성했으며 이후 위구르세력인 회골칸국 자리잡았다. 14세기 몽골과의 전쟁으로 도시 대부분이 파괴되었으며 그 기능을 잃었다.

SANYO DIGITAL CAMERA<가오창고성 북문을 들어서면 볼 수 있는 풍경>

가오창고성은 북문을 통해 출입할 수 있으며 북문 주변에 마을과 농경지들이 형성되어 있다. 내부는 100만 ㎡에 이르는 넓은 지역으로 건물터 등의 많이 남아 있지 않으며 유적지는 외성, 내성, 궁성 등 성벽과 궁성터, 대불사터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건물터 등을 볼 수 있다. 당나귀가 끄는 마차를 타고 궁성터, 대불사터 등 주요 유적지들을 탐방하게 된다.

SANYO DIGITAL CAMERA<주요 유적지로 이동하는 수단인 당나귀가 끄는 마차>

가오창고성운 둘레 5.4km, 면적, 200만 ㎡의 상당히 넓은 도성(都城)이다. 지금은 폐허가 건물들은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상당히 큰 규모의 형성하고 있다. 이전 시기 중심지였던 자오허고성(交河古城)이 강을 끼고 있는 요새 형태를 하고 있는데 반해 가오창고성은 평지에 높은 성벽을 쌓은 중국 읍성의 형태를 하고 있다. 성벽은 외성과 내성, 궁성으로 나뉘어 있으며, 외성은 벽의 두께가 12m에 높이가 11m에 달한다.

SANYO DIGITAL CAMERA<북문 옆에 남아 있는 외성 성벽>

SANYO DIGITAL CAMERA<북문 서쪽 외성 성벽>

SANYO DIGITAL CAMERA<보존상태가 좋은 서쪽 외성 성벽>

가오창 고성은 당(唐) 장안성을 모방하여 건설했는데 전체적으로 직사각형 형태를 하고 있다. 도시는 외곽, 도심, 궁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영역은 높은 성벽으로 지역을 구분하고 있으며 도로는 잘 정비되어 있었다. 실크로드와 연결되는 북문을 들어서 비교적 많은 건물터들이 남아 있는데 많은 상인들이 거래를 했던 상업지구였던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북문 입구에 있는 건물터>

SANYO DIGITAL CAMERA<상가건물로 보이는 건물터>

SANYO DIGITAL CAMERA<북문에서 내성과 궁성으로 들어가는 길>

북문에서 남쪽으로 200 m 정도 들어가면 내성 성벽으로 보이는 큰 건물터가 나타난다. 높은 성벽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바깥쪽에 크고 작은 건물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북문을 들어서면 보이는 내성 성벽>

SANYO DIGITAL CAMERA<내성 성벽과 주변 건물터>

SANYO DIGITAL CAMERA<내성 안쪽에 있는 건물터>

SANYO DIGITAL CAMERA<궁성 바깥쪽 성벽>

SANYO DIGITAL CAMERA<내성 안쪽 도심 건물터>

내성을 들어서면 200 m 정도 안쪽에 옛 고창국 궁성이었던 건물터와 성벽이 보인다. 궁성터는 비교적 넓은 규모로 개별 건물터에 대한 역할과 기능들에 대해서 설명이 없지만 상당히 큰 규모의 건물들의 밀집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나라 궁궐을 모방한 것으로 보이는 공간배치를 보여주고 있으며 탑처럼 보이는 큰 구조물이 궁궐터에 자리잡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2개의 탑의 우뚝 서 있는 궁성터>

SANYO DIGITAL CAMERA<궁성 성벽>

SANYO DIGITAL CAMERA<궁성 성벽>

SANYO DIGITAL CAMERA<궁성 내부>

SANYO DIGITAL CAMERA<궁성터에 남아 있는 탑>

SANYO DIGITAL CAMERA<궁성 성벽>

궁성과 서쪽 내성은 약  200 m 정도 떨어져 있으며 도심이 형성되어 있다. 내성 서쪽 성벽은 비교적 보존 상태가 좋은 편이며 그 사이에는 큰 규모의 건물들이 여러곳 남아 있다. 가오창고성 내에서 관청같은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공간으로 보이며 남쪽편에 대불사 절터가 배치되어 있다.  내성 성벽 안쪽에는 건물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흔적들이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보존상태가 좋은 내성 서쪽편 성벽>

건물들은 흙벽돌로 쌓아 올렸는데 대부분 2층 이상의 건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투루판 분지의 더운 날씨를 고려하여 석굴처럼 벽을 두껍게 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궁성 서쪽 내성>

SANYO DIGITAL CAMERA<궁성 서쪽 내성>

SANYO DIGITAL CAMERA<건물터>

SANYO DIGITAL CAMERA<궁성과 서쪽 내성 사이 공간>

SANYO DIGITAL CAMERA<궁성 바깥 건물터>

SANYO DIGITAL CAMERA<궁성 바깥 건물터>

가오창고성 남서쪽에는 현장법사가 설법을 했다고 전해지는 대불사 절터가 남아 있으며 주변에 내성 성벽과 주거지들이 비교적 원형을 잘 보전하고 있다. 대불사 절터는 높은 성벽의 내성 바깥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주변에는 크고 작은 건물들이 밀집해 있다. 종교 사원을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되어 있는 고대도시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SANYO DIGITAL CAMERA<궁성터 남쪽>

SANYO DIGITAL CAMERA<대불사까지 이어지는 내성 성벽>

SANYO DIGITAL CAMERA<궁성 남서쪽 대불사 부근>

대불사 부근에 남아 있는 성벽과 건물터를 살펴보면 내성은 상당히 높게 쌓았으며 성벽 안밖으로 성벽을 이용하여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SANYO DIGITAL CAMERA<가오창고성 내성과 대불사 사이의 공간>

SANYO DIGITAL CAMERA<가오창 고성 내성>

SANYO DIGITAL CAMERA<대불사와 내성 사이 건물터>

SANYO DIGITAL CAMERA<대불사 남쪽 상업지역으로 보이는 건물터>

건물들은 벽돌로 두꺼운 벽을 쌓아 더위를 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대부분 2층 이상의 건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건물터 내부>

SANYO DIGITAL CAMERA<대불사 바깥쪽에 남아 있는 건물터>

SANYO DIGITAL CAMERA<가오창고성 남문으로 이어지는 내성 바깥쪽 큰 길>

대불사는 당나라 현장법사가 인도로 순례를 떠나는 길에 잠시 들러서 1개월 동안 설법을 했던 곳이다. 내부에는 불상을 모셨던 불전과 법회가 열렸던 강당, 승려들이 기거했던 요사채 건물들이 남아 있다. 가오창고성에 남아 있는 건물들 중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어 당시 사람들이 살았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대불사 절터>

SANYO DIGITAL CAMERA<불상을 모셨던 불전>

SANYO DIGITAL CAMERA<현장법사가 설법했던 강당건물>

SANYO DIGITAL CAMERA<승려들이 기거했던 요사채 건물들>
<출처>

  1. 위키백과, 2020년
  2. 百度百科, 2020년
  3. 실크로드문명기행, 정수일, 한겨레출판사, 2006년

투루판 가오창고성 대불사(大佛寺)터, 당 현장법사가 인도 순례길에 머물렀던 곳

중국 투루판 옛 고창국 도성이었던 가오창고성(高昌古城) 외성 남서쪽에 위치한 대불사(大佛寺) 절터이다. 당나라 승려 현장법사가 인도로 순례를 떠나는 길에 잠시 들러서 설법을 했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실크로드에 있었던 많은 사찰들 중 그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어 지금은 없어진 서역의 불교 사찰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지이다. 현장법사는 고창국 국왕 국문태의 초청을 받아 이곳에서 1개월 동안 ‘인왕반야경(仁王般若經)’을 설법했으며 국왕으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10년 후 순례를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이곳을 다시 찾으려 했으나 고창국은 당(唐)에 의해 멸망하여 다른 길로 돌아왔다고 한다.

대불사절터는 고성 남서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규모는 남북 70 m, 동서 120 m 정도이다. 가오창고성 내성이 있는 동쪽에 출입문을 두고 있으며 건물외벽들이 담장을 이루고 있는 도시형 사찰이다. 서역의 종교시설과 비슷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대불사 절터>

SANYO DIGITAL CAMERA<투루판 가오창고성 대불사 정문과 외벽>

SANYO DIGITAL CAMERA<정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불상을 모신 불전이 보인다.>

대불사는 불상을 모신 불전을 중심으로 왼쪽에 법회가 열리는 돔형 강당이 배치되어 있으며, 내부에는 승려들이 거처하는 요사채들을 두고 있다. 실크로드에 있는 교통요지에 있는 사찰답게 사막을 여행하는 순례객들을 위한 요사채가 상당히 많은 것이 특징이다.

SANYO DIGITAL CAMERA<대불사  주불전>

SANYO DIGITAL CAMERA<주불전 앞 마당>

주불전은 불상을 모신 공간으로 중앙에 불상을 모시기 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으며 벽면에도 불상을 모시는 감실을 두고 있다. 목조건축물로 지어진 동아시아의 불전과는 달리 흙벽돌로 쌓은 서역의 불전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벽돌로 기단을 쌓고 건물을 올렸는데 아치형 지붕이 있었다고 한다.

SANYO DIGITAL CAMERA<대불사 주불전>

SANYO DIGITAL CAMERA<불상을 모셨던 자리>

주불전 마당 북쪽편에는 법회가 열렸던 강당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현장법사가 설법을 펼쳤던 유서깊은 곳으로 옛 모습을 복원해 놓고 있다. 건물 벽면은 사각이며 돔형 지붕을 올려놓은 형태를 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대불사 강당, 돔형 건물로 외부는 벽면으로 되어 있다.>

SANYO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모습>

대불사 절터에는 벽돌로 지은 크고 작은 건물들이 있는 대부분 승려들이나 순례객들이 머물 수 있는 요사채였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사람들이 살았던 주거지 형태를 살펴볼 수 있다. 불전 앞 마당 주위에는 상히 큰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SANYO DIGITAL CAMERA<사찰 입구 강당 옆에 있는 건물, 2층 이상의 크고 높은 건물이다.>

SANYO DIGITAL CAMERA<강당 맞은편에 있는 건물, 상당히 큰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모습>

SANYO DIGITAL CAMERA<강당 옆 주불전 뒷편에 있는 건물들>

SANYO DIGITAL CAMERA<주불전 옆 건물터>

SANYO DIGITAL CAMERA<주불전 뒷편>

SANYO DIGITAL CAMERA<주불전 뒷편 요사채로 보이는 건물>

SANYO DIGITAL CAMERA<대불사 담장너머로 가오창고성 외성 성벽이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주거지 모습을 보이는 요사채 내부>

SANYO DIGITAL CAMERA<요사채 건물터>

가오창고성은 투루판 분지에 있었던 고성으로 서한(西漢)시대부터 13세기까지 존재했던 지역의 중심지였다. 현재 남아 있는 고성터는 둘레 5.4km 정도로 당나라 장안성을 모방하여 만들었다. 성터에는 외성과 내성 성벽을 비롯하여 고창국 궁굴터, 대불사 절터 등이 남아 있다.

SANYO DIGITAL CAMERA<많은 건물터가 남아 있는 투루판 가오창 고성>

<출처>

  1. 위키백과, 2020년
  2. 百度百科, 2020년
  3. 실크로드문명기행, 정수일, 한겨레출판사, 2006년

투루판 토유크 마가촌(吐峪沟麻扎村), 전통 위구르인 마을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투루판(吐鲁番)시 신산현(鄯善县)에 있는 토유크 마가촌(吐峪沟麻扎村)이다. 투루판 도심 옛 고창고성에서 남서쪽으로 약 12 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위구르인 전통마을이다. 실크로드에서 투루판 분지로 들어가는 계곡에 위치하고 있다. 서진(西晉)시대 중국 최초로 석굴사원이 형성된 불교성지이자 7세기 이슬람이 발생한 이후 예멘 선교사들이 이곳에 머물면서 이슬람을 전파했던 역사적, 문화적으로 중요한 유적이다. 당대(唐代)에는 고창현에 속했으며 원나라 이후 불교는 쇠퇴하고 이슬람이 자리잡게 되었다. 지금은 모스크를 중심으로 주거지 형성되어 있는 대표적인 위구르인 전통마을로 손꼽히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토요크 계곡 입구에 형성되어 있는 마가촌마을>

오카피 마자(霍加木麻扎)는 이슬람 성인들의 무덤으로 13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유서깊은 곳이다. 마자촌 마을 뒷편 언덕에 위치하고 있으며 초기 이슬람 선교사들이 묻혔다고 알려져 있으며 주변에 무덤들이 형성되어 있다. 마자(麻扎)는 중국 신장 지역의 이슬람 현자들의 무덤으로 돔형태의 무덤과 에배당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SANYO DIGITAL CAMERA<오카피 마자(霍加木麻扎)>

SANYO DIGITAL CAMERA<아래쪽에 있는 무덤으로 보이는 곳>

토유크 마가촌(麻扎村)은 18세기에 지어진 대모스크를 중심으로 상업시설, 주택들이 마을 형성하고 있다. 주거지는 계곡 주변 경사지에 형성되어 있으며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투루판에서 옛 주거형태가 잘 남아있으며 대부분 100년이 넘은 오래된 고택들이다.

SANYO DIGITAL CAMERA<마가촌 마을>

마을 중앙에 있는 대모스크(大清真寺)는 청나라 때(1780년)에 처음 지어졌는데 2,00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다. 전통 이슬람 건축과 위구르 건축이 결합된 양식이다.

SANYO DIGITAL CAMERA<모스크와 주변 주택들, 시장이 형성되었던 마을 중심부이다.>

SANYO DIGITAL CAMERA<뒷편 주택들>

SANYO DIGITAL CAMERA<마을 큰 길>

SANYO DIGITAL CAMERA<마을에 있는 다른 모스크>

주택은 대부분 2층 건물로 황토로 지어졌다. 위층은 방갈로이며 아래층은 땅을 파서 만든 동굴 형태이다.

SANYO DIGITAL CAMERA<마가촌 마을 주택>

SANYO DIGITAL CAMERA<내부에는 가구처럼 보이는 구조물들을 볼 수 있다. >

SANYO DIGITAL CAMERA<수리 중인 주택>

SANYO DIGITAL CAMERA<수리중인 주택>

SANYO DIGITAL CAMERA<현대적인 모습을 보이는 주택>

SANYO DIGITAL CAMERA<큰 길 주변에 있는 실제 주민들이 거주하는 주택들>

마을 뒷편에는  진(西晉)시대 처음 조성되어 1600여년 역사를 지닌 중국에서도 가장 오래된 불교 유적인 토유크석굴(吐峪沟石窟)이 있다.

SANYO DIGITAL CAMERA<토유크 석굴>

<출처>

  1. 위키백과, 2020년
  2. 百度百科, 2020년
  3.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2년
  4. 실크로드문명기행, 정수일, 한겨레출판사, 2006년

투루판 토유크석굴(吐峪沟石窟), 서진시대 처음 조성된 석굴사원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투루판(吐鲁番)시 신산현(鄯善县)에 있는 토유크석굴(吐峪沟石窟)이다. 투루판 도심 옛 고창고성에서 남서쪽으로 약 12 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서유기에 등장하는 화염산 골짜기로 천산산맥 눈이 녹아내린 물이 투루판분지로 흘러드는 계곡이다. 옛 문헌에 정곡사(丁谷寺)라 불렸던 곳으로 서진(西晉)시대 처음 조성되어 1600여년 역사를 지닌 중국에서도 가장 오래된 불교 유적지 중 하나이다. 위구르 전통 마을이 남아 있는 외진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지만, 사막과 황무지로 이루어진 투루판지역에서 사람의 통행이 많았던 주요 교통로였던 곳이다.

SANYO DIGITAL CAMERA<투루판 토요크 계곡>

SANYO DIGITAL CAMERA<계곡 아래쪽>

SANYO DIGITAL CAMERA<계곡 아래로 보이는 투루판 분지, 입구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석굴사원은 계곡 양쪽으로 500 m 정도의 범위에 분포하고 있는데 동쪽에 2곳, 서쪽에 2곳의 동굴군이 있으며 현재 46기의 석굴이 남아 있다. 석굴사원은 대부분 5세기 말과 7세기 사이에 만들어졌으며 13세기 이슬람세력이 자리잡으면서 그 기능을 잃었다. 3~9세기 불교 벽화가 일부 보존되어 있으며 20세기 초 해외탐험가에 의해 많은 문서와 불화 등이 발굴되었다. 석굴사원의 모습이 잘 남아 있으며 실크로드를 통한 중국과 서역의 문화 교류를 잘 보여주는 유물로 높은 가치를 지닌다.

SANYO DIGITAL CAMERA<토유크 석굴 사원>

일제강점기인 20세기초에는 세계적인 중앙아시아 유물 수집의 유행이 있었는데, 이때 일본 교토 니시혼간지의 주지승인 오타니 고즈이라는 사람이 대규모의 자본과 인력을 동원하여 3차에 걸쳐서 중앙아시아 원정을 떠났는데, 현지에서 약탈과 구매 등의 방법으로 무려 5천여점에 이르는 유물을 수집했으며 이를 오타니 컬렉션이라고 있다. 많은 중앙아시아 유물들을 수집한 오타니가 파산을 하게 되면서 이를 구매한 일본 자본가 구하라가 당시 조선총독부 총독이었던 데라우치를 위해 조선총독부에 이를 기증하면서 오늘날까지 그 유물이 남아 있다.

화면의 중앙에 앉아 있는 보살은 보관에 작은 불좌상이 있어 일찍부터 관음보살로 판명되었다. 가운데 관음보살이 있으며, 그 주위에 관음보살을 모시고 예배하는 보살과 인물이 여럿 그려져 있다. 관음보살이 쓰고 있는 높은 모자의 정면에는 관음보살이 모시는 부처인 아미타여래가 작게 표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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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보살이 그려진 번, 觀音普薩幡, 투루판 토유크 석굴, 9~10세기.>

토유크석굴에서 출토된 회화단편이다. 이 그림에는 왼쪽에 있는 문을 향해 세 명의 인물이 나란히 서 있다. 문의 왼쪽에도 또 다른 인물의 윤곽이 희마하게 보인다. 배경은 붉은색이며 오른쪽 윗부분은 여러 개의 검은 점으로 덮여 있다. 세명이 인물이 흰옷을 입고 있어 마니교도를 그린 그림으로 알려져 있지만, 논란이 되는 부분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회화 단편( 繪畵斷片), 투루판 토유크 석굴, 10~11세기>

앞뒷면에 그림이 그려져 있는 드리개이다. 상단의 삼각형 공간에는 작은 불좌상이 있고, 그 아래에 몸을 한쪽으로 약간 틀고 있는 보살이 서 있다. 머리에는 화려한 관을 쓰고, 어깨에는 휘날리는 천의를 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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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이 그려진 드리개, 菩薩幡, 토유크 석굴사원, 8~9세기>

토요크 계곡은 실크로드 상 주요 교통로였기때문에 다양한 문화가 교류하였다. 당나라 때는 정곡사(丁谷寺)라는 사찰을 중심으로 불교가 크게 번창했으며 이슬람 선교사가 중국을 처음 방문하여 선교를 시작한 곳이기도 하다. 위구르인이 투루판 지역에 정착한 이래 이슬람 성지가 되었으며 석굴사원들은 이슬람 수도원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계곡 아래에는 가장 오래된 위구르인 마을인 마자촌(麻扎村)이 있으며 이곳에 있는 마자(麻扎)는 대표적인 이슬람 성지로 손꼽힌다.

SANYO DIGITAL CAMERA<계곡 입구에 있는 위구르인 마을 마자촌(麻扎村)>

SANYO DIGITAL CAMERA<서유기에 등장하는 화염산>

SANYO DIGITAL CAMERA<화염산 아래 투루판 분지>

<출처>

  1. 위키백과, 2020년
  2. 百度百科, 2020년
  3.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2년
  4. 실크로드문명기행, 정수일, 한겨레출판사, 200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