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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 벌교 홍교(보물 304호), 큰 규모의 조선시대 홍예교

전남 보성군 벌교읍 벌교리에 남아 있는 벌교 홍교(보물 304호)이다. 잘다듬은 석재로 아치모양으로 쌓은 홍예교이다 규모는 폭 4 m, 길이 80 m로 현재 남아 있는 홍예교 중 가장 큰 규모이다. 현재는 길이 약 27 m 정도로 높이 3 m의 홍예 3개가 남아 있으며, 나머지 부분은 최근 옛모습을 복원해 놓고 있다. 홍예 밑 천장에는 용머리를 조각한 돌이 돌출되어 있으며, 아래를 향하도록 되어 있다. 조선 후기 영조 때 (1729년) 선암사 승려들이 처음 만들었으며, 여러차례의 보수공사를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인근 조계산 선암사의 승선교(보물 400호)나 여수 흥국사 홍교(보물 563호)와 비슷한 형태이다. 조선후기 산성의 축조에 동원되었던 승병들의 건축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소설 『태백산맥』에는 주인공 김범우가 살던 마을 앞에 놓여진 다리로 묘사되고 있는데, 낙안벌을 지나 남해안으로 흐르는 벌교천을 건너는 다리이다. 아마도 동쪽 순천에서 서쪽 보성을 연결해주는 거의 유일한 육로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 다리가 세워지기 전에는 뗏목을 연결하여 만든 뗏목다리가 있었으며, 이 다리에서 ‘벌교’라는 지명이 유래했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보성 벌교 홍교(보물 304호). 순천과 보성을 연결하는 육상교통로에 세워진 큰 규모의 돌다리이다. 원래 이곳에 뗏목다리가 놓여 있어 이 지역을 벌교라고 불렀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원래 길이 80 m였는데 홍수로 일부가 유실되어 옛 다리중 3개의 홍예만 남아 있다. 홍예 가운데 돌출되어 있는 용머리 조각상을 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아치는 잘 다듬은 화강석 석재를 이용해서 쌓았는데 그 기술 수준이 높은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홍수로 유실된 것을 복원해 놓은 부분. 홍교 건너편으로 소설 『태백산맥』 주인공 김범우가 살았던 곳으로 소개된 마을이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다리 상판은 폭 4.5 m로 우마차가 충분이 지나갈 수 있는 규모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동쪽편에서 본 벌교 홍교. 홍수로 유실된 부분을 복원해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낙안들판을 지나 남해안으로 흘러드는 벌교천. 지금은 다리가 많이 있지만 옛날에는 이 돌다리가 벌교천을 건너는 유일한 다리였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다리 앞 도로변에 세워진 중수비. 벌교 홍교가 수차례의 수해로 무너진 것을 복구했음을 알 수 있다.

보성 벌교 홍교 중수비군
비는 어떤 일의 행적을 후세에 남기기 위해 세운 기념물이다. 보통 쇠나 돌에 글을 새겨 놓아 금석문이라고 한다. 금석문은 지역 역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홍교 앞 도로변에는 모두 5기의 비가 있다. 홍교가 낡고 헐어 다시 고친 내력과 참여자 등을 자세히 기록한 중수비와 단교명비이다. 이곳 홍교는 단교라고도 불렀는데, 큰 물이 나면 다리가 끊어지고 사람의 통해이 끊어진데서 유래되었다. 비문은 대부분 마모가 심하거나 훼손되어 내용 판독이 어려워 아쉬움이 남는다. 1737년, 1844년, 1899년에 건립한 3기의 중수비만이 연대가 밝혀질 뿐이다. 이 비군은 홍교의 역사와 지역의 연혁을 알 수 있는 자료로 가치가 있다. (안내문, 보성군청, 2012년)

벌교 홍교, 보물 304호, 전남 보성군 벌교읍 벌교리
홍교는 벌교천 위에 걸쳐진 돌로 만든 무지개 다리로 전체 길이 27 m, 높이 약 3 m, 폭 4.5 m 내외이다. 이 다리는 조선 영조 5년(1729)에 순천 선암사의 승려인 초안과 습성 두 선사가 만들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불교에서는 다리를 놓아 사람이 편안히 다닐 수 있게 하는 월천공덕을 중요한 보시(은혜를 널리 베품)로 꼽고 있다. 이 홍교는 영조 13년(1737)과, 다시 헌종 10년(1844)에 고친바 있다. 지금의 모습은 1981 ~1984년까지의 4년에 걸쳐 보수하여 원형을 찾은 것이다.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홍교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대표적인 돌다리이다. 홍교가 놓이기 이전에는 뗏목다리를 놓아 건너 다녔다고 하는데 벌교라는 이름이 여기에서 유래되었다. (안내문, 보성군청)

  1. 안내문, 보성군청, 2012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보성 벌교읍 김범우의 집, 소설 『태백산맥』에 소개된 대지주 저택

전남 보성군 벌교읍 봉림리에 있는 큰 규모의 낡은 고택이다. 저택은 낡은 담장으로 둘러져 있는데 대문을 들어서면 중문이 있는 사랑채가 있으며, 중문을 들어서면 안채가 배치되어 있다. 두건물 모두 ‘-’자형으로 앞뒤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담벼락이 허물어지는 등 아직 정비되지 않은 옛 한옥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붉은 벽돌로 수리해서 사용한 부분도 남아 있다.

이 집은 대지주였던 김씨집안 소유의 저택으로 조정래 소설 『태백산맥』에서 김범우의 집으로 소개된 곳이다. 조정래 작가 친구가 살았던 집으로 작가에게 좋은 기억이 남아 있어 소설에서는 긍정적으로 표현되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대저택인 현부자집이 당시 신흥부호가 살았던 일본식 주택양식이 반영된 대저택 형태를 하고 있는 반면, 이 저택은 전통 한옥양식을 하고 있다. 저택이 있는 봉림리 마을은 벌교읍이 내려다 보이는 양지바른 나즈막한 언덕에 자리잡고 있으며, 마을 앞 벌교천을 건너는 홍교(보물 304호)를 이용하여 벌교읍으로 들어갈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소설 『태백산맥』에서 주인공 김범우 일가의 대저택으로 소개된 고택이 있는 마을. 벌교읍이 내려다 보이는 양지바른 곳에 자리잡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저택 대문. 담장이 앞에 있기는 하지만, 안쪽에 문간방과 외양간이 있는 문간채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대문을 들어서면 안채 출입하는 중문이 있는 사랑채까지 골목처럼 만들어 놓았다. 왼쪽은 사랑채가 있는 마당이며, 오른쪽은 안채에서 사용하는 공간으로 보인다. 담장은 일제강점기 이후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문간채. 왼쪽에 문간방과 사랑채 마당이 있는데, 담장으로 공간을 분리하였으며, 별도의 출입문을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손님을 맞는 공간인 사랑채.

OLYMPUS DIGITAL CAMERA사랑채 앞 마당.

보성 벌교 김범우의집 04-20180324안쪽에서 본 사랑채. 왼쪽 2칸은 사랑채로, 오른쪽은 가족들이 사용하는 공간으로 보인다.

보성 벌교 김범우의집 02-20180324안채는 ‘-’자형 건물로 개방된 대청마루를 두지 않고 앞쪽에 약간 넓은 툇마루를 두고 있다. 가운데 제사 등을 지내는 대청마루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보성 벌교 김범우의집 01-20180324안채 앞 마당. 옆쪽에 곳간채를 두고 있다.

보성 벌교 김범우의집 03-20180324장둑대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이는 공간.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보이는 안채. 마당에는 다양한 정원수를 심어 놓았다.

OLYMPUS DIGITAL CAMERA저택을 두르고 있는 담장.

김범우의 집
원래 대지주였던 김씨집안 소유의 집이다. 안채의 대문 옆에 딸린 아랫채에서 초등학생이었던 작가가 친구인 이집 막내 아들과 자주 놀았다는 것은 작은 흥미를 일으킨다. 소설에서는 품격있고 양심을 갖춘 김사용의 집으로 그려지고 있다 “과분한 땅이라고? 이 사람아, 요 정도가 내가 지닌 땅 중에서 젤로 나쁜 것이네. 눈 붉은 우리 선대의 유산이 어련허겼는가. 맘 쓰지 말고 밭 일구도록 허게…(태백산맥 1권 141쪽)”. 사랑채, 겹안채, 창고 자리, 장독대, 돌담 등 그 모든 형태와 규모들이 대주주의 생활상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한다. 특히 안채 오른쪽 앞부분 귀퉁이에 있는 돼지 우리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아무리 대지주라 하더라도 음식 찌꺼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으려고 돼지를 길렀음을 알 수 있다. 생활의 알뜰함과 환경오염을 막고자 했던 살아 있는 교훈이 아닐 수 없다. 이 집에서도 오른쪽으로 고읍들녁이 한눈에 들어오는 것은 집자리를 무심코 잡은게 아님을 보여준다. (안내문, 보성군청, 2012년)

<출처>

  1. 안내문, 보성군청, 2012년

보성 벌교읍 옛 보성여관 건물, 벌교읍에 남아 있는 일본식 가옥

전남 보성군 벌교읍에 있는 옛 보성여관 건물이다. 이 건물은 조정래 소설 ‘태백산맥’의 배경이었던 벌교읍 옛 일본인 거리에 남아 있는 건물이다. 일제강점기인 1935년에 지어진 것으로 한옥과 일본식 가옥의 양식이 섞여 있는데 일본식 건물양식이 많이 반영되어 있다. 건물은 2층으로 된 주 건물과 부속건물들이 가운데 마당을 중심으로 ‘ㅁ’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벌교읍에서 공공건물을 제외하고는 가장 큰 규모의 건물이었다고 한다. 소설에서는 토벌대의 숙소로 사용된 남도여관으로 소개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벌교읍에 남아 있는 옛 보성여관 건물. 벌교읍에서도 가장 큰 규모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한옥과 일본식 가옥 양식이 섞여 있는 건물이다. 오늘날 일반적인 여관과는 달리 지역을 대표하는 호텔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보성여관 출입문. 도로 방향으로는 상가건물처럼 지어졌다.

보성 벌교 보성여관 09-20180324출입문을 들어서면 숙소가 있는 마당으로 복도가 연결되어 있다.

보성 벌교 보성여관 10-20180324지금은 방문객을 위한 휴식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는 도로옆 공간. 식당 등으로 사용했던 공간으로 보인다.

보성 벌교 보성여관 11-20180324전시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는 부분.

보성 벌교 보성여관 08-20180324가운데 복도를 지나면 아담하게 꾸며놓은 작은 마당이 있다. 마당을 중심으로 손님들이 묵는 숙소가 배치되어 있다. 전통 한옥의 ‘ㅁ’자형 공간배치를 볼 수 있는 부분이다.

보성 벌교 보성여관 01-20180324전통한옥의 대청마루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넓은 마루.

보성 벌교 보성여관 02-20180324툇마루가 있는 한옥양식이 반영되어 있는 부분.

보성 벌교 보성여관 03-20180324일본식 목조주택 양식이 반영되어 있는 부분.

보성 벌교 보성여관 07-20180324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보성 벌교 보성여관 12-20180324
2층복도. 전형적인 일본식 가옥의 형태를 하고 있다.

보성 벌교 보성여관 05-20180324다다미를 깔아놓은 2층.

보성 벌교 보성여관 04-201803242층 창문에서 보이는 벌교읍.

보성 벌교 보성여관 06-201803242층 복도에서 내려다 보이는 마당과 숙소건물들.

OLYMPUS DIGITAL CAMERA보성여관이 있는 벌교읍 거리. 경전선 벌교역에서 낙안읍성으로 연결되는 도로 주위로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조성한 일종의 신도시였던 공간이다. 1970년대를 지나면서 일본인 가옥들은 대부분 허물어지고 전형적인 시골 소읍 풍경으로 바뀌었다.

OLYMPUS DIGITAL CAMERA벌교읍에서 랜드마크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이는 옛 보성여관 건물.

남도여관
검은 판자벽에 함석지붕, 전형적인 일본식으로 지어진 2층 건물은 옛 모습 그대로이다. 일본인들은 강점기 동안 전국적으로 이런 건물들을 수없이 지었는데 그동안 무차별적으로 헐어버리고 시멘트 건물들을 짓게 되었다. 그 영향으로 이런 건물들은 구경하기 어려운 귀물이 되어가고 있는 형편이다. 역사는 문자의 기록만이 아니다. 유물을 보았을 때 설명이 필요 없이 지난 시대를 한순간에 실감하게 된다. 수난과 고통의 역사일수록 그 시대의 유물은 남겨지고 보호되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 중심거리로 소위 본전통이라고 불렸던 이 길에 이 건물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은 퍽 다행스러운 일이다. 소설의 배경이 되었던 그 시절에도 이 건물은 여관이었고, 그때의 실제 상호는 보성여관이었다. 소설에서는 임만수와 그 대원들이 한동안 숙소로 사용한다. (안내문, 보성군청, 2012년)

지금이 어느때라고, 반란세력을 진압하고 민심을 수습해야 할 임무를 띤 토벌대가 여관잠을 자고 여관밥을 먹어? (태백산맥 3권 85쪽)

<출처>

  1. 안내문, 보성군청, 2012년

순천 조계산 송광사(사적 506호), 고려중기 불교개혁 이후 한국 불교를 이끌어 온 승보사찰

전남 순천시 조계산 자락에 위치한 송광사(松廣寺, 사적 506호)이다. 양산 통도사, 합천 해인사와 함께 3대사찰로 여겨지며 수행을 중시하는 승보사찰로 불리우고 있다. 이곳에는 통일신라 때 창건된 길상사라는 작은 사찰이 있었는데, 고려중기 보조국사가 불교개혁 운동인 정혜결사의 중심지로 삼으면서 송광사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통일신라 때 창건된 유서깊은 사찰에서 볼 수 있는 석탑이나 불상같은 조형미가 뛰어난 불교 예술품들은 많지 않은 반면, 고승들의 영정을 모신 국사전을 비롯하여 고려 이후 불교 관련 유물들을 많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송광사는 크고 작은 불전들이 불전이 있기는 하지만 그 규모가 크거나 유서깊은 내력을 가진 불전은 많지 않다. 반면에 승려들이 수행하는 공간인 승방이나 요사채가 상당히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송광사를 대표하는 국사전(국보 56호)도 원래는 승려들이 수행하는 공간이었으며, 고려말 건축양식이 잘 남아 있는 하사당(보물 263호) 또한 승려들이 수행했던 공간이다. 전성기 때 송광사에는 많은 승방들과 사찰 관련 일을 보던 사람들이 살던 건물들로 아주 큰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고 한다. 송광사의 많은 전각들은 1842년의 화재와 한국전쟁 등으로 많이 소실되기는 했지만, 여러차례 중창을 통해 옛규모를 찾아가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송광사는 조계산 계곡 내 비교적 평탄한 곳에 자리잡고 있다. 가운데 대웅전을 비롯한 부처님을 모신 불전이 있으며 그 주위로 수행공간들이 고루 배치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송광사 가람배치 모형. 남향을 하고 있지만 축대를 쌓아 공간을 조성하여 질서를 추구하는 전통적인 사찰 가람배치와는 달리 동.서로 흘러내리는 계곡을 중심으로 전각을 배치하여 편안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주고 있다. 입지조건이나 가람배치 등에 있어 수행중심 공간으로서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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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규장각에서 소장하고 있는 송광사지도. 19세기 전반에 그려진 이 지도는 <송광사사적>에 실려있는 가람배치도이다. 조선후기에는 많은 전각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송광사 뒷편 언덕에 있는 보조국사 감로탑. 고려중기 불교개혁 운동을 이끈 보조국사 지눌의 승탑이다. 조형미가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불교역사에서 차지하는 지눌의 승탑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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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세 보조국사 지눌(1158 ~ 1210) 영정.

국사는 황해도 서흥 출신으로 성은 정씨고, 자호는 목우자이다. 8세 때 종휘선사에게 출가하였다. 길상사에서 정혜결사 운동을 하며 불교계의 중흥을 이끌었고, 산 이름을 조계산, 절 이름을 수선사로 고쳤다. 진영 상단에 ‘원력수행해동불일보조국사’라고 적혀 있다. 이를 통해 원력수생, 즉 대승보살행에 힘썼음을 알 수 있다. 하단의 화기를 통해 1780년 16국사의 진영을 완성하여 영당에 모셨음을 알 수 있다. 국사의 탑은 송광사 관음전 뒤에 모셔져 있다. (안내문, 송광사박물관, 2018년)

송광사
조계산 북서쪽 자락에 자리잡은 송광사는 우리나라 삼보사찰의 하나인 승보종찰(僧寶宗刹)의 근본도량으로서, 한국불교와 역사를 함께해온 유서 깊은 고찰이다. 송광사는 신라 말 혜린선사에 의해 창건되어 송광산 길상사라고 하였다. 고려 중기의 고승 보조국사 지눌스님이 9년 동안의 중창불사를 통해 절의 규모를 확장하고, 정혜결사를 통하여 한국 불교의 새로운 전통을 확립한 근본도량으로서 참선을 중요시하는 선종사찰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이후 보조국사 지눌을 포함해 16분의 국사가 주석했던 선종사찰로, 오늘날까지도 승보종찰로 불리는 한국의 대표적 선종사찰로 여겨지고 있다. 그 동안 정유재란 및 임인년(헌종 8년, 1842년)의 대화재, 6.25사변 등 숱한 재난을 겪었으나 8차례의 대규모 중창불사로 지금의 위용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송광사는 한국에서 가장 많은 불교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는 사찰로 목조삼존불감(국보 42호), 고려고종제서(국보 43호), 국사전(국보 56호), 금동요령(보물 179호), 하사당(보물 263호) 소조사천왕상(보물 1467호) 등을 비롯해 총 8천여점의 불교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안내문, 순천 송광사, 2018년)

들어가는 길

송광사는 입구에서 일주문까지 계곡을 따라 이어진 숲길을 걸어서 들어 갈 수 있다. 들어가는 길은 수목이 우거지고, 옆으로는 계곡물이 흘러내리는 고즈넉하고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주는 길로 사찰 들어가는 길 중에서 손꼽히게 아름다운 길이다. 일주문은 사찰을 출입하는 통로인 삼청교 앞에 세워져 있으며, 사찰 앞을 흐르는 개울이 송광사와 속세와 분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개울 바깥쪽에는 세속적인 의미를 갖는 공간인 세월각과 척주당이 배치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송광사 입구 매표소. 원래부터 사찰에 있던 공간은 아니다.

OLYMPUS DIGITAL CAMERA송광사 들어가는 길. 계곡을 따라 10여분을 걸어갈 수 있는 길로 울창한 숲과 계곡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송광사 계곡.

OLYMPUS DIGITAL CAMERA송광사 경내 입구. 멀리 첫번째 출입문인 일주문이 보이고, 주변에 당간지주, 비석 등이 세워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송광사 조계문. 일주문은 보통 매표소 부근에 위치있는데 송광사에서는 천왕문을 들어가기 직전에 위치하고 있다. 19세기 초에 지은 것으로, 사찰 일주문 중에서는 꽤 오래된 편이다. 양쪽에 담장이 있는 것도 특이하다.

OLYMPUS DIGITAL CAMERA조계문 안쪽에 있는 작은 사당 형태의 건물인 세월각과 척주당. 토속신앙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며, 사찰영역 바깥쪽이라 할 수 있는 계곡 바깥쪽에 위치하고 있다.

세월각.척주당, 19세기초
일주문 안쪽에 죽은 자의 위패를 두고 그 영혼이 속세의 때를 벗는 관욕처(관욕: 불교에서 재를 올릴 때 영혼을 정화하는 일)로 세월각과 척주당이 있다. 이곳에서는 혼백을 목욕시켰으며, 세월각은 여자 영가, 척주당은 남자 영가의 관욕처로 사용되었다. 정면 1칸, 측면 1칸 규모로 작은 건물이다. 두 건물의 내부는 비어 있다. (안내문, 순천 송광사, 2018년)

삼청교와 우화각 주변

송광사에 경치가 가장 아름다운 장소를 꼽으라고 하면 아마도 천왕문 앞 홍예가 설치된 다리인 삼청교 주변일 것이다. 삼청교는 홍예 형태로 쌓은 돌다리로 건축수법이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그 아래로 흐르는 계곡과 주위 건물들이 어우러져 하나의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내기 때문일 것이다. 삼청교를 건너면 사찰 출입문인 천왕문이 있으며 왼쪽에는 요사채인 임경당이, 오른쪽에는 강당건물인 사자루가 배치되어 있다. 두 건물 모두 신도들을 위한 공간으로 여겨진다.

OLYMPUS DIGITAL CAMERA송광사를 대표하는 장면으로 손꼽히는 삼청교 주변. 사찰이라기 보다는 선비들이 경치좋은 곳에 세워 풍류를 즐겼던 정자같은 분위기를 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사찰 경내 출입문인 천왕문 앞 개울에 세워진 돌다리. 그 위에 지붕이 있는 건물을 올려 정자같은 분위기를 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돌다리 위에 세워진 건물인 우화각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삼청교 위쪽으로는 신도들이 잠시 쉴 수 있는 강당 건물인 사자루가 있다. 강당은 대웅전 앞에 문루 형태로 세우는 것이 보통인데, 송광사에서는 천왕문 오른편에 강당을 배치하고 있다. 앞면 7칸의 상당히 큰 규모의 건물로 계곡 옆에 기둥 세우고 건물을 올렸다. 물 위에 떠 있는 느낌을 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사자루. 원래는 신도들이 잠시 앉아 쉬거나 강론을 듣는 공간인데, 지금은 평상시 문이 닫혀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삼청교 아래쪽에 위치한 요사채인 임경당. 계곡으로 돌출된 누마루를 두고 있는 상당히 고급스러운 건물이다. 선비들이 즐기던 정자와 같은 형태를 하고 있는 건물로 이곳을 찾은 고위 인사들의 숙소로 지어진 건물로 여겨진다.

OLYMPUS DIGITAL CAMERA경내를 출입하는 천왕문. 내부에는 소조사천왕상(보물 1467호)이 모셔져 있다. 사천왕상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복장유물(보물 1468호)가 발견되었다.

대웅전을 비롯한 여러 불전들

송광사는 고려중기 이후 수행도량으로 한국 불교를 이끌어온 사찰이다. 그러나 사찰의 명성이나 내력, 규모 등에 비해 불전의 규모는 크지 않은편이며 오래된 내력을 보여주지도 않고 있다. 대웅전 앞 작은 불전인 약사전(보물 302호), 영산전(보물 303호)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최근에 중창되었으며, 그 규모 또한 크지 않은 편이다. 불전들은 대웅전을 중심으로 양쪽에 승보전과 지장전, 앞쪽에 약사전과 영산전, 뒷편에 관음전이 배치되어 있다. 불전의 공간배치에 있어 규칙성은 거의 없는 편이며, 당시의 필요에 따라 불전들이 자연스럽게 추가된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웅전이 있는 공간으로 들어서는 문루형태의 출입문인 범종각. 일반적인 사찰의 공간배치와는 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송광사 주불전인 대웅보전. 최근에 크게 중창한 불전으로 현대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평지보다 약간 높게 기단을 조성하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렸다. 웅장함을 크게 강조하지 않는 수행사찰로서 특징을 잘 보여주는 형태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웅전 왼쪽편에 있는 승보전. 원래 대웅전으로 사용하던 건물로 현재의 대웅전을 크게 중창하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석가모니를 비롯하여 나한, 비구 등을 모시는 불전으로 승보사찰인 송광사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불전이다. 나한전과 비슷한 성격의 불전으로 볼 수 있다.

송광사 승보전
승보사찰인 송광사를 상징하는 승보전에는 부처님 당시에 영축산에서 설법하시던 장엄한 모습을 재현하여 부처님과 10대제가, 16나한을 비롯한1250몀의 스님을 모신 전각이다. 이 건물은 한국전쟁 당시 소실된 대웅전을 송광사 7차 중창 당시에 복원하면서 지어졌으나 송광사 8차중창때 현재의 대웅보전을 지으면서 지금의 위치로 옮긴 것이다. (안내문, 순천 송광사,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대웅전 오른쪽에 위치한 국사전.

OLYMPUS DIGITAL CAMERA대웅전 마당 한쪽편에 있는 약사전(보물 302호)과 영산전(보물 303호). 공간을 분리하는 담장은 없지만 대웅전 영역과는 독립된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송광사 약사전(보물 302호).  앞면과 옆면이 각 1칸씩으로 현존하는 불전 중 가장 작은 규모이다.  건물 형태 등으로 볼 때 17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송광사 영산전(보물 303호). 석가모니의 일생을 그린 팔상도와 영산대회 그림(보물 1368호)를 모시고 있다. 기록에 따르면 조선 중기 인조 때(1639년)에 지어졌으며 그후 여러차례 수리가 있었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송광사 관음전. 구한말 왕실 기도처로 지어진 건물로 지금은 관세음보살을 모신 관음전으로 사용하고 있다. 구한말 건축양식이 잘 반영되어 있는 건물이다.

송광사 관음전
관음전은 본래 성수전(聖壽殿)이라 하여 1903년 고종황제의 성수망육(51세)을 맞아 임금이 이름을 지어서 편액을 내린 황실 기도처로 건축되었으나 1957년 옛 관음전을 해체하면서 관세음 보살님을 옮겨 모시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관세음보살 좌우에 그려진 태양과 달이고종황제와 명성황후를 상징하고 있고 내부 벽화에 문신들이 허리를 굽히고 불단을 향해 서 있다. 또한 내외벽에는 화조도, 산수화 등이 그려져 일반 사찰의 벽화와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것이 송광사 관음전의 특징이다. (안내문, 순천 송광사, 2018년)

국사전을 비롯한 수행공간

송광사는 수행도량이라는 사찰의 성격에 걸맞게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크고 작은 요사채 건물들을 두고 있다. 대웅전 뒷편 언덕에 고승들의 영정을 모신 국사전(국보 56호)를 중심으로 하사당(보물 263호), 상사당, 응진당, 시자실, 설법전 등 유서깊은 요사채 건물들이 모여 있는데 이 공간은 담장으로 공간이 분리되어 있어 수행을 위한 독립적인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이외에도 대웅전 서쪽으로 대지전, 중현당,도성당,응향각,응현당 등 많은 요사채 건물들이 있으며 사찰 바깥으로도 여러동의 요사채 건물들을 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송광사 대웅전 뒷편 언덕에는 국사전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요사채들이 모여 수행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순천 송광사 국사전 국보56호 02-20181219송광사 국사전(국보 56호). 고려말 승방으로 지어진 건물로 지금은 고승들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 건물은 앞면 4칸, 옆면 2칸 규모로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지붕을 받치는 공포는 주심포계인데, 고려말 주심포에서 익공형으로 바뀌어가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대웅전 뒷편으로 보이는 설법전.

OLYMPUS DIGITAL CAMERA국사당과 함께 승보사찰로서 송광사의 위상을 잘 보여주는 건물인 하사당(보물 263호)이다. 송광사의 많은 요사채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건물은 앞면 3칸에 맞배지븡을 하고 있는데, 부엌 위에 환기구를 두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국사당과 함께 조선초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당시 승려들이 수행했던 공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웅전 뒷편 언덕에서 내려다 보이는 수행공간. 하사당, 상사당, 응진당, 시자실, 설법전, 수선사 등 승려들이 수행하는 크고 작은 승방 건물들이 모여 독립된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하사당 뒷편 우물.

OLYMPUS DIGITAL CAMERA지장전 뒷편 수행공간을 들어가는 출입문.

OLYMPUS DIGITAL CAMERA지장전 뒷편에 있는 요사채인 해청당.

OLYMPUS DIGITAL CAMERA영산전 앞쪽에 모여 있는 요사채들. 정혜사를 비롯하여 여러동의 요사채들이 모여 있다. 강당인 사자루와 함께 송광사를 찾은 손님들을 위한 공간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약사전 앞 마당에 있는 2칸짜리 작은 요사채 건물.

OLYMPUS DIGITAL CAMERA승보전 뒷편에 모여 있는 요사채들. 국제선원으로 사용하고 있는 공간이라 한다.

SANYO DIGITAL CAMERA바깥쪽에 있는 큰 규모의 요사채

OLYMPUS DIGITAL CAMERA송광사의 명소 중 한곳인 해우소 건물.

OLYMPUS DIGITAL CAMERA송광사에 많은 승려들이 머물면서 수행했음을 보여주는 유물인 비사리구시. 사찰에서 큰 행사가 있을 때 찾은 손님들을 위해 밥을 담아두는 곳이다. 약 4천명 분의 밥이 들어간다고 한다.

비사리구시
송광사 비사리구시는 1724년 남원에서 태풍에 쓰러진 싸리나무를 옮겨와 만들어 졌다고 하나 사실은 보성군 문덕면 내동리 후곡(너문골) 봉갑사 인근 마을의 느티나무(귀목)이다. 그 쓰임새는 국가 제사시에 대중을 위해 밥을 담아 두는 것으로, 쌀 7 가마(4천명 분)의 밥이 들어간다고 한다. 송광사 이외에도 비슷한 용도를 지닌 구시가 있으나 많은 사찰들에서는 종이를 만드는 일에 지통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상광사의 경우에는 여러 근거로 지통이 아니라 밥통이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송광사 3대 명물로 비사리구시, 능견난사, 쌍향수가 있다. (안내문, 순천 송광사, 2018년)

<출처>

  1. 안내문, 송광사박물관, 2018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대백과,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19년

순천 송광사 보조국사 감로탑

순천 송광사 경내에 있는 보조국사 감로탑이다. 보조국사가 열반하자 왕으로부터 ‘불일 보조국사’란 시호와 ‘감로탑’이라는 탑호를 받았으며, 감로탑은 3년뒤인 1213년에 세워졌다. 원래 다른 곳에 있었으나 여러차례 옮겨졌다가 관음전 뒷편으로 옮겨졌다. 탑은 4각형의 대좌 위에 몸돌과 지붕돌을 올려 놓았다. 몸돌은 구형을 하고 있으며 지붕돌은 팔각형을 하고 있는데 고려후기 조각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조각수법이나 조형미가 빼어난 것은 아니지만 고려중기 불교개혁을 이끈 지눌의 승탑이라는데 큰 의미가 있는 승탑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송광사 뒷편 언덕에 있는 보조국사 감로탑. 고려중기 불교개혁 운동을 이끈 보조국사 지눌의 승탑이다. 조형미가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불교역사에서 차지하는 지눌의 승탑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SANYO DIGITAL CAMERA받침돌.

SANYO DIGITAL CAMERA둥근 구형의 몸돌.

SANYO DIGITAL CAMERA팔각형의 지붕돌은 고려후기 조각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감로탑이 있는 언덕에서 내려다 보이는 송광사 수행공간.

송광사 보조국사 감로탑
송광사 16국사 가운데 제1세인 불일 보조국사 지눌스님의 부도탑이다. 보조국사는 1210년(희종 6) 열반하였으며 고려 희종이 ‘불일 보조국사’란 시호와 ‘감로탑’이란 탑호를 내렸고 3년 후인 1213년(강종 2년) 음력 4월 10일에 세워졌다. 독특한 형태와 고려 고승의 부도라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안내문, 순천 송광사, 2018년)

<출처>

  1. 안내문, 순천 송광사, 2018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