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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특별전, 황금인간의 땅] 스키타이인의 화려한 금속세공품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018년 겨울 “황금인간의 땅, 카자흐스탄(Kazakhstan – The Cradle land of the “Gold Man”" 특별전을 개최하였다. 카자흐스탄국립박물관과 공동으로 개최한 전시에서는 중앙아시아 대초원 문명과 유라시아의 중심에서 정착과 이동을 반복하며 살아온 카자흐탄사람들의 문화유산을 살펴볼 수 있게 한다. ‘황금인간’을 포함하여 450점이 넘는 전시품은 선사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카자흐스탄의 역사와 문화를 대표하는 유물들이다.  중앙아시아 문화와 실크로드를 통해 한반도까지 전해진 서역 문화를 비교해 볼 수 있는 전시가 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말갖춤, 복원품, 기원전 4~3세기, 카자흐스탄 동부 베렐 쿠르간>

계림로 보검은 1973년 계림로 14호 무덤은 출토된 유물이다.  목제 칼집은 썩어 없어졌고 철제 단검과 금제 칼집 장식이 남아 있습니다. 금알갱이를 붙인 금판의 내부에 붉은 석류석과 유리를 넣었습니다.  중앙아시아, 흑해 연안, 또는 이란 지역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OLYMPUS DIGITAL CAMERA<계림로 보검, 보물 635호, 경주 계림로 14호 무덤, 5세기>

계림로 보검(Gyerim-ro Dagger)
1973년 경주 계림로 14호분에서 황금보검(이하 계림로 보검)이 출토되었다. 보석과 유리로 화려하게 장식된 이 보검은 카자흐스탄 보로보예 출토 보검 장식, 중국 신장 키질 석굴 제 69굴 벽화,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아프라시압 벽화 등에서 유사한 형태가 확인된다. 계림로 보검은 양날이 있는 ‘검(劍)’으로 신라 고분에서 출토되는 한쪽 날만 있는 도와는 형태가 다르다. 또 국내에서 석류석을 사용한 문화재는 계림로 보검 1점 뿐이다. 계림로 보검과 신라 금제품의 차이는 과학적 조사에서도 확인된다. 4~6세기 천마총, 금관총, 교동 출토 금관의 구리 함량은 모두 1% 미만인 반면에 계림로 보검의 구리 함량은 3.0~3.3%로 나타났다. 이는 2~7세기 우크라이나 크림반도와 헝가리 출토 금제품의 구리 함량과 유사하다. 계림로 보검은 광활한 초원길을 따라 신라로 전해진 동서 문물 교류의 대표적인 예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19년)

스키타이인(Saka)은 중앙아시아에 살았던 유목민족이다. 호화로운 무덤, 화려한 금속공예품, 뛰어난 미술양식 등이 스키타이문화의 특징이다. 카자흐스탄 이식고분군에서 출토된 스키타이 왕족의 갑옷은 스키타이문화와 카자흐스탄을 대표하는 중요한 유물이다. 삼국시대 신라 고분에서 출토되는 화려한 금관과 복식을 연상시키는 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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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 황금인간(복원품), 카자흐스탄 남부 이식고분군 기원전 4~3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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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 뿔과날개가 달린말모양장식(복제품), 카자흐스탄 남부 이식고분군 기원전 4~3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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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3 귀걸이, 카자흐스탄 남부 이식고분군 기원전 4~3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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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 얼굴을새긴반지, 카자흐스탄 남부 이식고분군 기원전 4~3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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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 나무위의새모양장식(복제품), 카자흐스탄 남부 이식고분군 기원전 4~3세기>

OLYMPUS DIGITAL CAMERA<007 산봉우리모양장식, 카자흐스탄 남부 이식고분군 기원전 4~3세기>

OLYMPUS DIGITAL CAMERA<010 사슴머리모양장식, 011 사슴머리모양장식, 카자흐스탄 남부 이식고분군 기원전 4~3세기>

OLYMPUS DIGITAL CAMERA<012 말을 묘사한장식, 카자흐스탄 남부 이식고분군 기원전 4~3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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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3 사슴을 묘사한장식(복제품), 카자흐스탄 남부 이식고분군 기원전 4~3세기>

OLYMPUS DIGITAL CAMERA <015 호랑이머리모양장식, 016 삼엽형모양장식, 카자흐스탄 남부 이식고분군 기원전 4~3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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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7 산과 표범모양장식, 카자흐스탄 남부 이식고분군 기원전 4~3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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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 산모양장식, 카자흐스탄 남부 이식고분군 기원전 4~3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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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 표범모양장식, 카자흐스탄 남부 이식고분군 기원전 4~3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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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3 새날개모양장식, 카자흐스탄 남부 이식고분군 기원전 4~3세기>

OLYMPUS DIGITAL CAMERA<024 사각형장식, 카자흐스탄 남부 이식고분군 기원전 4~3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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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6 호랑이를 묘사한 장식, 카자흐스탄 남부 이식고분군 기원전 4~3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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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7 접시, 카자흐스탄 남부 이식고분군 기원전 4~3세기>

OLYMPUS DIGITAL CAMERA<029 팔찌, 030 반지, 식물문양꾸미개, 카자흐스탄 남부 사이림, 15세기초>

OLYMPUS DIGITAL CAMERA<031 반지, 036 꽃모양 꾸미개, 037 드리개, 카자흐스탄 남부 사이림, 15세기초>

OLYMPUS DIGITAL CAMERA<038 금덩이, 040 글자를 새긴 동전, 카자흐스탄 남부 사이림, 15세기초>

OLYMPUS DIGITAL CAMERA<044 소용돌이문양장식, 카자흐스탄 중부 탈리-2고분군, 기원전 7~6세기>

OLYMPUS DIGITAL CAMERA<045 소용돌이문양장식, 카자흐스탄 중부 탈리-2고분군, 기원전 7~6세기>

OLYMPUS DIGITAL CAMERA<048 토르크(Torq), 055 손잡이가 달린 거울, 카자흐스탄 서부 탁사이-1 고분군, 기원전 6~5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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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9 염소머리관모장식, 카자흐스탄 서부 탁사이-1 고분군, 기원전 6~5세기>

OLYMPUS DIGITAL CAMERA<050 산양-그리핀머리모양장식, 카자흐스탄 서부 탁사이-1 고분군, 기원전 6~5세기>

OLYMPUS DIGITAL CAMERA<051 산양머리모양장식, 카자흐스탄 서부 탁사이-1 고분군, 기원전 6~5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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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 그리핀머리모양장식, 카자흐스탄 서부 탁사이-1 고분군, 기원전 6~5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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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 그리핀머리모양장식, 카자흐스탄 서부 탁사이-1 고분군, 기원전 6~5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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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4 드리개, 카자흐스탄 서부 탁사이-1 고분군, 기원전 6~5세기>

대초원 문명, 황금으로 빛나다.
“대초원 문명, 황금으로 빛나다’는 카자흐스탄의 대초원 문명을 소개하기 위해 카자흐스탄 문화체육부가 주관하는 순회전시다. 이번 순회전시에는 이식 쿠르간에서 출토된 ‘황금인간’을 비롯하여 탈디, 탁사이, 사이람 유적지의 황금문화재가 전시된다. 이 황금문화재들은 작년 12월 벨라루스를 시작으로 올해 러시아, 아제르바이잔, 중국, 폴란드에서 전시되어 호평을 받았다. 이식 쿠르간은 카자흐스탄의 대표적인 고대 고분 유적지로 알마티에서 동쪽으로 50 km 떨어진 곳에 있다. 1969년 고고학자 아키셰프(K. A. Akishev)가 이식 쿠르간에서 끝이 뾰족한 모자를 쓴 사카인, 즉 ‘사카 티그라하우다(Saka tigraxauda)’를 발견하여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무덤에서 발견된 사카인 남성은 나이가 15~18세 정도이고, 키는 약 168 cm로, 화려한 황금장식으로 치장한 옷을 입고 있었다. 이 사카인은 황금인간 이라고 불린다. 학계에서는 이 황금인간을 왕자로 보기도 하고, 친위부대인 코미타투스(Comitatus)의 일원으로 보기도 한다. 이식 쿠르간에서 발견된 황금인간은 현재 카자흐스탄 국가의 상징이다. 탈디-2 고분군은 카자흐스탄 중부에 위치하며 쿠르간 2와 쿠르간 5에서 동물양식이 표현된 200여 개의 장신구와 1,800여 개의 금박 편, 2,100개의 금 구슬이 출토되었다. 이곳에서 출토된 금제 장식은 잘라울리, 실릭티, 아르잔-2 등 초기 사카시대 유적지의 출토품과 유사하다. 탁사이 -1 고분군은 카자흐스탄 서부에 위치하며, 이 유적지에서 이식 쿠르간 출토 황금인간의 관모처럼 뿔 달린 산양이 장식된 관모가 발견되었다. 무덤의 주인공은 불과 태양을 숭배한 사르마트인 여성 사제로 추정된다. 사이람(이스피자)은 카자흐스탄 남부 최대의 실크로드 도시였다. 7세기 현장의 구법 행적을 정리한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 권1에서는 사이람을 ‘백색 강 유역의 도시(白水城)’라 하였다. 퇴장유적지에서 실크로드 도시의 풍요로운 물질문화를 보여 주는 금제 장신구가 발견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19년_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황금인간의 땅, 카자흐스탄”, 2019년
  2. 안내문, 경주박물관, 2019년
  3. 위키백과, 2021년

 

청송 주왕산 주왕계곡(周王溪谷) 일원(명승 11호),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경북 청송군 주왕산면에 있는 주왕산 주왕계곡(명승 11호)이다. 태백산맥 남단에 위치하고 있는 주왕산(周王山, 721 m)은 암벽이 발달해 있는 지형으로 산세가 웅장하고 경관이 빼어나다. 주왕계곡은 주왕산 북쪽편 동서방향으로 흐르는 주방천 상류를 말한다. 화산폭발 후 굳은 응회암이 풍화작용과 침식작용으로 계곡이 형성되었는데 경사가 급하고 유속이 빠르다. 계곡주변에는 풍화작용으로 형성된 기암절벽이 빼어난 경치를 만들고 있다.

청송 주왕산 일대는 수려한 자연경관과 생태자원, 지질학적 가치 등을 반영하여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청송계곡에는 기암단애, 주방천 페퍼라이트, 연화굴, 용추협곡, 용연폭포, 급수대 주상절리가 지질명소로 선정되어 있다. 주왕계곡은 기암단애를 배경으로 터를 잡고 있는 대전사에서 출발하여 계곡을 따라 약 3 km 정도를 걸으면서 탐방할 수 있다. 계곡을 따라 걸으면서 기암괴석, 바위산, 폭포, 협곡 등 다양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청송 주왕산 계곡 일원 명승11호 01-20201205<청송 주왕계곡 입구>

청송 주왕산 계곡 일원 명승11호 02-20201205<주왕산 대전사>

주왕계곡에서 첫번째로 볼 수 있는 장면이 대표명소인 기암단애(旗巖斷崖)이다. 화산폭발로 분출된 화산재가 두껍게 쌓여서 굳은 응회암이 오랜 세월 침식과 풍화작용으로 만들어졌다. 폭 150 m에 달하는 거대한바위는 6개의 수직절리를 따라 7개의 봉우리로 분리되어 있다. 설악산 울산바위와 함께 웅장한 바위산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명소이다.

청송 주왕산 계곡 일원 명승11호 03-20201205<기암단애>

 주왕산은 응회암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응회암은 화산이 폭발할 때 분출된 뜨거운 화산재와 암석조각들이 쌓이고, 서로 엉겨붙어 만들어진 암석입니다. 뜨거운 응회암은 식으면서 부피가 줄어들게 되어 세로 방향의 틈이 생겨납니다. 응회암에 발달한 틈 사이로 물이 들어가 틈이 벌어지고 침식이 일어나면서 가파른 절벽들이 생겨납니다. 이후, 오랜 세월동안 물이 흐르면서 크고 작은 폭포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안내문, 청송군청, 2020년)

청송 주왕산 계곡 일원 명승11호 04-20201205<주왕계곡 탐방로 입구>

청송 주왕산 계곡 일원 명승11호 05-20201205<주왕산 등산로 입구>

대전사를 지나면 주방천을 따라 계곡길이 이어진다. 주방천에서 1 km 정도 떨어진 자하교까지는 평이한 계곡을 모습을 보여준다. 계곡은 평이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계곡에는 화산에 퇴적암 파편이 섞여 있는 페퍼라이트라는 암석을 볼 수 있는데 ‘주방천 페퍼라이트’라 부르며 주왕계곡의 2번째 지질명소이다.

청송 주왕산 계곡 일원 명승11호 06-20201205<주왕계곡>

청송 주왕산 계곡 일원 명승11호51-20201205<페퍼라이트를 볼 수 있는 계곡>

청송 주왕산 계곡 일원 명승11호 07-20201205<주왕계곡 탐방로>

아들바위는 주왕계곡 입구에서 100여 미터 위쪽에 위치해 있으며, 바위를 등지고 다리 가랑이 사이로 돌을 던져 바위에 올리면 아들을 낳는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다.

청송 주왕산 계곡 일원 명승11호 08-20201205<아들바위>

청송 주왕산 계곡 일원 명승11호 10-20201205<주왕계곡 전망이 좋은 지점>

청송 주왕산 계곡 일원 명승11호 11-20201205<주왕굴 오르는 길이 있는 분기점>

주왕굴을 오르는 분기점을 지나면 계곡 양쪽에 하늘로 솟은 형상을 보여주는 바위산 봉우리들을 볼 수 있다. 대표적인 봉우리로 연화봉, 시루봉, 학소대, 급수대 등이 있다. 계곡 입구에서 2 km 정도 떨어진 용추협곡까지 바위산 봉우리 사이에 형성된 협곡을 감상할 수 있다.

청송 주왕산 계곡 일원 명승11호 12-20201205<계곡에서 보이는 연화봉>

청송 주왕산 계곡 일원 명승11호 13-20201205<계곡 탐방로에서 보이는 급수대>

청송 주왕산 계곡 일원 명승11호 14-20201205<글자가 새겨진 구암>

이곳 구암 상단에는 세로로 주방동천(周房洞川) 문림천석(文林泉石) 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빼어난 산수의 주왕산과 물과 돌은 문림랑의 것이다”라는 의미이다. 문림은 고려시대 “문림랑위위시승” 벼슬을 지낸 청송심씨 시조 심홍부를 칭하는 것으로 청송심씨 봉토 완문표석” 이다. 암벽 글씨 아래 끼워 넣은 사각의 표석은 상단 암벽에 새겨진 큰 글씨에 대한 유래를 설명한 것으로, 청송심씨 종유사 심호창과 심호택이 주방천 자연석에 새긴 주방동천(周房洞川) 문림천석 (文林泉石)의 원석이 파손되어 1990년(경오년) 5월에 당시 종유사 심완택, 심상일이 이 바위에 옮겨 새겼다는 기록이다. (안내문, 청송군청, 2020년)

청송 주왕산 계곡 일원 명승11호 15-20201205<이어지는 탐방로>

청송 주왕산 계곡 일원 명승11호 16-20201205<급수대>

급수대는 응회암이 냉각되면서 수축에 의해 생긴 주상절리를 선명하고 볼 수 있는 명소이다. 바위산 봉우리의 웅장한 모습과 주상절리를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청송 주왕산 계곡 일원 명승11호 17-20201205<급수대 주상절리>

주왕산 국립공원을 이루고 있는 대표 암석은 응회암입니다. 응회암은 화산폭발 때 뿜어져나온 화산재가 굳어져 만들어진 암석입니다. 주상절리는 주로 빠르게 식는 암석에서 형성되어 기둥 모양의 틈이 생긴 것을 말합니다. 급수대는 이러한 주상절리를 잘 살펴볼 수 있는 곳입니다. (안내문, 청송군청, 2020년)

청송 주왕산 계곡 일원 명승11호 18-20201205<급수대 아래 계곡>

청송 주왕산 계곡 일원 명승11호 19-20201205<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바위절벽>

청송 주왕산 계곡 일원 명승11호 21-20201205<용추협곡 입구 전망대>

청송 주왕산 계곡 일원 명승11호 20-20201205<시루봉>

시루봉은 그 생김새가 떡을 찌는 시루와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측면에서 바라보면 마치 사람의 옆모습 처럼 보이기도 한다. 시루봉에는 옛날 어느 겨울에 한 도사가 이 바위 위에서 도를 닦고 있을 때 신선이 와서 불을 지펴 주었다는 전설이 전해 오고 있으며 바위 밑에서 불을 피우면 그 연기가 바위 전체를 감싸면서 봉우리 위로 치솟는다고 한다. <안내문, 청송군청, 2020년>

청송 주왕산 계곡 일원 명승11호 23-20201205<바위산과 협곡>

시루봉이 있는 용추협곡 입구에서는 남쪽편 바위산 학소대 아래로 연결된 길을 통해 주왕암과 주왕굴을 탐방할 수 있다. 이 길에서는 바위산 중턱에서 주왕계곡과 봉우리들의 다양한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주왕계곡을 끝까지 돌아본 후 내려올 때 이 탐방로를 이용하면 된다.

청송 주왕산 계곡 일원 명승11호 24-20201205<학소대>

학소대(鶴巢臺) 하늘을 찌를 듯이 솟은 절벽 위에는 청학과 백학 한 쌍이 둥지(巢)를 짓고 살았다하여 학소대로 불린다. 어느 옛날 백학이 사냥꾼에게 잡혀 짝을 잃은 청학은 날마다 슬피 울면서 바위 주변을 배회하다가 자취를 감추었다는 슬픈 사연이 전해 오고 있다. 지금 학은 간데 없고 그들의 보금자리 터만 절벽 위에 남아 옛 주인을 그리워하고 있다. (안내문, 청송군청, 2020년)

청송 주왕산 계곡 일원 명승11호 25-20201205<주왕암 가는 길이 있는 분기점>

청송 주왕산 계곡 일원 명승11호 46-20210225<급수대와 맞은편 봉우리>

청송 주왕산 계곡 일원 명승11호 47-20210225<연화봉과 주변 봉우리들>

청송 주왕산 계곡 일원 명승11호 48-20210225<주왕암>

청송 주왕산 주왕암 05-20210225<주왕굴>

용추협곡은 주왕암을 오르는 분기점에서 용추폭포까지 약 1 km의 협곡을 말한다. 협곡은 응회암이 굳으면서 생긴 틈이 오랜 세월 계곡물이 흐르면서 암반을 깎아서 깊은 골짜리를 형성한다. 주왕계곡 중에서도 가장 빼어난 경치를 자랑한는 대표적인 지질명소이다. 주왕계곡을 소개하는 대표적인 장면이다.

청송 주왕산 계곡 일원 명승11호 22-20201205<용추협곡>

청송 주왕산 계곡 일원 명승11호 26-20201205<바위가 깎여 형성된 좁은 통로>

청송 주왕산 계곡 일원 명승11호 27-20201205<이어지는 길>

청송 주왕산 계곡 일원 명승11호 28-20201205<협곡 아래로 흐르는 계곡물>

청송 주왕산 계곡 일원 명승11호 29-20201205<용추폭포로 이어지는 길>

청송 주왕산 계곡 일원 명승11호 31-20201205<용추폭포 앞에서 보이는 협곡>

협곡이 시작되는 용추폭포는 웅장하지는 않지만 폭포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폭포는 3단으로 되어 있는데 1단과 2단 아래는 선녀탕, 구룡소가 있고 3단 폭포 아래에는 폭호가 있다.

청송 주왕산 계곡 일원 명승11호 30-20201205<용추폭포 3단 폭포>

청송 주왕산 계곡 일원 명승11호 32-20201205<2단 돌개구멍 구룡소>

돌개구멍과 폭호는 어떤 관계? 돌개구멍은 암석의 깨어진 틈을 따라 자갈과 모래가 같혀 물과 함께 소용돌이치면서 생긴 원통형의 구멍입니다. 폭호는 폭포의 아래에서 떨어지는 물에 의해 만들어진 웅덩이 입니다. 즉, 물이 흐르면서 생긴 것이 돌개구멍, 물이 떨어져 만들어진 것이 폭호입니다. (안내문, 청송군청, 2020년)

청송 주왕산 계곡 일원 명승11호 33-20201205<1단 돌개구멍 선녀탕>

청송 주왕산 계곡 일원 명승11호 34-20201205<용추폭포 탐방로>

속세와 천상을 가르는 침식협곡 용추폭포는 용이 승천한 폭포라는 뜻이며, 총 3단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단과 2단 폭포 아래에는 각각 선녀탕, 구룡소라고 불리는 돌개구멍이 있고, 3단 폭포 아래에는 폭호가 있습니다. 폭포 주변의 주왕산 응회암 절벽에서는 피아메에 의한 용결엽리를 관찰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곳은 예로부터 청학동이라 불리며 선비들이 자연을 벗삼아 풍류를 즐기던 곳으로, 협곡 입구에 들어서면 마치 신전세계에 발을 딛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합니다. 응회암에 발달하는 수직절리를 따라 침식작용이 일어나면서 첩첩산중의 보배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안내문, 청송군청, 2020년)

용추협곡을 지나면 계곡의 폭은 넓어지고 주변 산세도 평이한 모습을 보인다. 계곡길을 따라 700 m 정도 걸어어가면 아담한 형태의 분기점과 주왕산 정상으로 오르는 등산로 입구가 있다. 등산로 입구에서 200 m 정도 걸으며 주왕계곡 탐방의 마지막 코스이자 폭포 중에서는 가장 웅장한 모습을 보여주는 용연폭포에 도착한다.

청송 주왕산 계곡 일원 명승11호 35-20201205<용추폭포를 지나서 이어지는 탐방로>

청송 주왕산 계곡 일원 명승11호 36-20201205<평이한 모습을 보여주는 계곡>

청송 주왕산 계곡 일원 명승11호 43-20201205<절구폭포로 들어가는 계곡>

청송 주왕산 계곡 일원 명승11호 45-20201205<절구폭포>

주왕산응회암의 절벽에 자라는 이끼들의 고장 절구폭포는 주왕산 응회암에 발달한 세로방향의 틈에 의해 생긴 폭포이며, 2단 폭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단 폭포 아래에는 선녀탕이라 불리는 돌개구멍이 있으며, 2단 폭포 아래에는 폭호가 발달되어 있습니다. 절구폭포는 협곡 내부에 위치하고 있어 습도가 높고 폭포 주변 바위에는 이끼류가 자라고 있습니다. 절구폭포는 마치 조각가가 공을 들인 작품처럼 오묘하고 아름 다운 폭포입니다. (안내문, 청송군청, 2020년)

청송 주왕산 계곡 일원 명승11호 37-20201205<주왕산 등산로 갈림길을 지나 용연폭포로 가는 길>

용연폭포는 주왕산 폭포 중 가장 크고 웅장하다. 폭포는 2단으로 되어 있으며 폭포가 발달하면서 침식에 의해 생긴 작은 하식동굴을 볼 수 있다.

청송 주왕산 계곡 일원 명승11호 38-20201205<탐방로에서 내려다 보이는 용연폭포>

청송 주왕산 계곡 일원 명승11호 42-20201205<용연폭포 아랫단>

청송 주왕산 계곡 일원 명승11호 41-20201205<폭포 아래로 흐르는 계곡>

청송 주왕산 계곡 일원 명승11호 40-20201205<용연폭포 윗단>

용연폭포(龍淵瀑布)는 2단 폭포로 구성되며, 주왕산의 폭포 중 가장 크고 웅장한 규모를 자랑합니다. 이 폭포는 두 줄기의 낙수현상으로 인해 쌍용추폭포라고도 불립니다. 1단 폭포의 양쪽 벽면에서는 각각 3개씩의 하식동굴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폭포가 형성되고 발달하면서 침식에 의해 폭포면이 차츰 뒤로 물러나게 됩니다. 지금의 폭포면에서 가장 먼 곳의 하식동이 가장 먼저 만들어졌고 폭포가 점차적으로 후퇴하면서 두 번째, 세 번째 하식동굴이 만들어졌습니다. (안내문, 청송군, 2020년)

청송 주왕산 계곡 일원 명승11호 39-20201205<용연폭포 상류>

<출처>

  1. 안내문, 청송군청, 2020년
  2. 청송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청송군청, 2021년
  3.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1년
  5. 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소, 2021년
  6. 위키백과, 2021년

청송 주왕산 주왕암(周王庵)

경북 청송군 주왕산면 주왕산계곡에 있는 주왕암(周王庵)이다. 대전사(大典寺)에 딸린 작은 암자로 대전사와 비슷한 시기에 창건된 것으로 보인다. 당나라에서 반란에 실패하고 이곳으로 피신왔던 주왕(周王)이 숨었다는 전설이 있는 주왕굴이 가까운 곳에 있다. 전각으로는 2층 문루인 가학루(駕鶴樓), 요사채, 나한전이 있다. 나한전에는 석가여래삼존불과 16나한 및 후불탱화가 있다.

청송 주왕산 주왕암 06-20210225<주왕암 가학루>

청송 주왕산 주왕암 01-20210224<요사채>

청송 주왕산 주왕암 02-20210225<나한전>

주왕암(周王庵)
이 암자는 대전사와 함께 창건되었다 하며 주왕의 혼을 위안하기 위하여 지은 것이라고도 한다. 문간채인 가학루는 중층 누각으로 되어 있고 기와는 이끼가 그윽하여 오랜 풍상을 보여준다. 또한 16나한을 모신 나한전이 있다. 주왕암 옆에는 주왕의 최후 전설이 전해져 오는 주왕굴로 들어가는 협곡의 좁은 길이 있다. (안내문, 주왕산 대전사, 2020년)

주왕암에 좁은 계곡을 따라 200 m 정도 들어가면 협곡사이에 있는 작은 동굴인 주왕굴(周王窟)을 볼 수 있다. 깊이 2 m 정도의 좁은 동굴로 지금은 석굴사원처럼 사용되고 있다.

청송 주왕산 주왕암 03-20210225<주왕굴로 들어가는 협곡>

청송 주왕산 주왕암 11-20210225
<협곡사이로 만든 탐방로>

청송 주왕산 주왕암 04-20210225<주왕굴 입구>

청송 주왕산 주왕암 05-20210225<주왕굴 내부>

주왕굴(周王窟)
주왕굴은 협곡 사이 암벽에 위치한 자연동굴입니다. 당나라 때 스스로 주왕이라고 칭하고 반란을 일으켰다가 패한 주도라는 사람이 주왕산으로 숨어 들어온 뒤, 이곳에 은거하였다고 합니다. 신라왕은 주왕을 토벌하기 위해 마장군을 보냈고 주왕은 굴 입구에 떨어지는 물로 세수를 하다 발각되어 마장군의 군사가 쏜 화살에 맞아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안내문, 주왕산 대전사, 2020년)

<출처>

  1. 안내문, 청송  대전사, 202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1년
  4. 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소, 2021년
  5. 위키백과, 2021년

청송 주왕산 대전사(大典寺), 주왕산을 대표하는 사찰

경북 청송군 주왕산면에 있는 대전사(大典寺)이다. 사찰 창건에 대한 기록은 없으나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하며 대전사라는 이름은 고려말 나옹화상이 붙였다고 한다. 사찰 내력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지 않지만 조선중기 보광사를 중수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볼 때 그 이전에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청송군은 세종의 비 소헌왕후 조상 무덤이 있어 보광사와 함께 원찰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청송의 고을 규모가 크지 않아 구한말 이후 쇠락하였으나 근래에 들어 경치가 빼어난 주왕산(명승11호)의 명성과 함께 크게 번창하고 있다.

청송 주왕산 대전사 01-20201205<주왕산 대전사>

대전사는 경치가 빼어난 주왕산 계곡 입구에 위치하고 있어 많은 관람객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사찰 가람배치는 큰 바위봉우리를 배경으로 주불전인 보광전(보물1570호)이 자리잡고 있으며 그 양쪽에 관음전과 명부전이 있고 약간 뒷쪽에 작은 규모의 산신각이 있다.

청송 주왕산 대전사16-20201205<주불전인 보광전(보물 1570호)>

청송 주왕산 대전사 10-20201205<보광전 내부, 석조여래삼존상>

보광전 앞에는 복원해 놓은 통일신라 삼층석탑이 있다. 기단에 신장상을 새겨놓고 있다.

청송 주왕산 대전사 15-20201205
<보광전 앞 삼층석탑>

청송 주왕산 대전사 06-20201205<관음전>

청송 주왕산 대전사 12-20201205<명부전>

청송 주왕산 대전사 04-20201205<산신각>

청송 주왕산 대전사 03-20201205<응진전>

대전사는 사찰내 수행하는 승려는 많지 않아 보이지만 유명 관광지에 위치하고 있어 손님들을 위해 여러동의 요사채를 두고 있다. 종무소 건물인 탐진당을 비롯하여 수월당, 이 있으며 회연당, 심검당 등이 있다. 사찰 뒷편에는 4기의 승탑을 볼 수 있다.

청송 주왕산 대전사 05-20201205<대전사 마당>

청송 주왕산 대전사 13-20201205<탐진당>

청송 주왕산 대전사17-20201205<봉향각>

청송 주왕산 대전사 14-20201205<수월당>

청송 주왕산 대전사 02-20201205<요사채>

청송 주왕산 대전사 07-20201205<사찰 뒷편에 있는 승탑>

주왕산 계곡에는 주왕산 전설과 관련된 작은 암자인 주왕암(周王庵)이 있다. 주왕암에는 옛날 당나라를 피해 이곳에 왔던 동진의 주왕(周王)이 숨었던 작은 굴이 있다.

청송 주왕산 대전사 08-20210224<주왕암>

<출처>

  1. 안내문, 청송  대전사, 202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1년
  4. 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소, 2021년
  5. 위키백과, 2021년

청송 대전사 보광전(普光殿, 보물 1570호)

경북 청송군 부동면 주왕산 대전사(大典寺) 주불전인 보광전(보물 1570호)이다. 조선후기 현종 때(1672년)에 중건된 건물이다. 화강석으로 쌓은 기단 위에 건물을 올려놓았다. 앞면 3칸, 옆면 2칸의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조선후기 불전 건축 양식이 잘 반영되어 있다. 불전 내부 벽면 단청과 벽화는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그림으로서 예술성이 뛰어나다. 바위산 봉우리를 배경으로 한 보광전의 모습은 주왕산을 대표하는 풍경으로 손꼽힌다.

청송 대전사 보광전 보물1570호 01-20201205<청송 대전사 보광전(보물 1570호)>

청송 대전사 보광전 보물1570호 03-20201205<보광전 현판, 지붕을 받치는 공포와 겹처마>

청송 대전사 보광전 보물1570호 04-20201205<창호는 장식성이 없는 띠살을 사용하고 있다.>

청송 대전사 보광전 보물1570호 06-20201205<옆면 출입문>

불전 내부에는 닫집에 석조여래삼존상을 모시고 있다. 우물천장을 사용하고 있으며 벽면과 천정을 장식하고 있는 불화와 단청은 건축당시 원형이 비교적 잘 남아있고 작품성도 뛰어난 편이다.

청송 대전사 보광전 보물1570호 05-20201205<보광전 내부>

청송 대전사 보광전 보물1570호 07-20201205<바위 봉우리를 배경으로 서 있는 모습>

청송 대전사 보광전 보물1570호 02-20201205<앞쪽에서 본 모습>

청송 대전사 보광전(大典寺 普光殿), 보물 1570호
청송 대전사는 신라 문무왕 12년(672)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며, 보광전은 1976년 중수 시 발견된 상량문에 의해 그 건축연대가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조선 현종 13년(1672) 에 중창하였음을 알 수 있다. 건물 구조는 화강석 기단위에 화강석 초석을 놓고 약간 흘림이 있는 원주를 세워 구성된 정면 3칸, 측면 3칸의 겹처마 맞배지붕이고, 건물의 구조는 2고주 5량가 다포계 양식으로 외 2출목 3제공, 내 2출목 3제공 이다. 건물 전면은 앙설형이고 배면은 교두형으로 되어 있어 조선 중기 이후 목조 건축양식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내부단청과 벽화는 회화성이 돋보이는 빼어난 작품으로 건축 당시의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안내문, 청송 대전사, 2020년)

<출처>

  1. 안내문, 청송  대전사, 202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1년
  4. 위키백과, 202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