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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황 만리장성 옥문관(玉門關)과 한장성(漢長城)

중국 둔황에 있는 한대(漢代) 만리장성 서쪽 끝 관문인 옥문관(玉門關)이다. 한 무제 때 흉노를 공략하기 위해 하서사군(河西四郡)을 설치하면서 옥(玉)을 수입하던 통로라 하여 옥문관이라 불렀다. 옥문관은 설치된 이래 여러 차례 위치를 옮겼으며 당대(唐代)까지 서역과 연결되는 중요 교통로로 번창하였다. 둔황 북서쪽 9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옥문관 유적은 1907년 영국 탐험가가 소방반성(小方盤城)을 조사하다가 옥문도위(玉門都尉)라 적힌 목간을 발견하면서 그 위치가 확인되었다. 현재의 유적은 당나라 때 건설된 것이다.

옥문관은 ‘옥이 들어오는 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고대 옥의 산지인 타클라마칸 사막 남쪽에 위치한 허텐이라고 곳에서 중국의 은.주 시대부터 옥을 수입해 왔다고 한다. 이는 중국이 서역과 무역을 하고 서역을 경영하고자 했던 큰 이유 중의 하나라고 한다. 한무제때는 이 곳에 ‘옥문관도위’를 설치하고 흉노를 공략하기 위해서 수차례 출병하였으며, 실크로드를 개척한 장건 역시 아마도 이 곳을 거쳐서 서역으로 떠났던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옥문관 유적>

옥문관은 투루판을 거쳐 천산산맥을 따라 중앙아시아로 연결되는 오아시스 북로의 첫번째 관문이다. 옥문관을 지나면 중국땅을 떠나 서역으로 나가는 것으로 중화사상을 가진 중국인의 입장에서는 관문 바깥이 세상밖이라 여겨졌다. 둔황에서 옥문관까지 대중교통으로 갈 수는 없고 택시를 이용해서 찾아갈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옥문관 유적지 출입문>

SANYO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모습>

옥문관 주위는 사막이 끝없이 펼쳐져있고, 멀리 지평선이 보인다.  사막에서는 불어오는 거센 모래바람은 ‘삭풍(朔風)’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냈을 분위기이다. 수도 장안(시안)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이 곳에 주둔했던 병사들에게 변경이라는 의미를 뼈저리게 느끼게 했을 것이다. 초원에서 흉노 기마병이 갑자가 몰려오는 것을 상상해 보면, 장관을 이루었을 것으로 보이며 변경을 지키는 병사들에게는 공포 그 자체였을 것이다.

SANYO DIGITAL CAMERA<옥문관 주위 사막>

목간이 발견되어 옥문관이었음이 확인된 관성(關城)이다. 반상 작은 밥상처럼 생겨 소방반성(小方盘城)이라 불렸다. 관성은 동서로 24m, 남북으로 26.4m이 북쪽과 서쪽에 출입문을 두고 있다. 황토로 성벽을 쌓았는데 높이 10m, 상부 너비 3m, 하부너비 5m이다.

SANYO DIGITAL CAMERA<옥문관 관성>

SANYO DIGITAL CAMERA<관성 서문>

SANYO DIGITAL CAMERA<흙으로 쌓은 관성 성벽>

SANYO DIGITAL CAMERA<북쪽과 동쪽 성벽>

SANYO DIGITAL CAMERA<북문>

SANYO DIGITAL CAMERA<동쪽 성벽>

SANYO DIGITAL CAMERA<남쪽 성벽>

이 곳 사막은 모래가 거의 없고 메마른 흙만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장성 바깥쪽으로는 지금은 물을 볼 수 없지만 소륵하(疏勒河, Shule River)라는 강이 흘렀으며 주위는 초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막화가 진행되면서 사람이 살기 힘들어져 송대 이후 옥문관과 실크로드는 그 중요성이 크게 줄었다. 

SANYO DIGITAL CAMERA<옥문관 남쪽 지평선>

SANYO DIGITAL CAMERA<옥문관 주변에 보이는 봉수대 자리>

새원(塞垣)이라 불린 옥문관 주변 한장성(漢長城)은 옥문관 주위 한무제 때 흉노를 공락하기 위해 실크로드를 개척하면서 건설되었다.  둔황 동쪽 안서(安西)부터 서쪽 로프노르 호수부근까지 약 150km이르며 현재 남아 있는 유적은 동서로 45km, 폭 500m 정도로 분포하고 있다. 현존하는 유적으로 고성(古城) 2곳, 봉수대 20곳, 성벽 18 정도가 남아 있으며 그중 옥문관과 대방반성(大方盘城)이라 불리는 고성이 잘 알려져 있으며 여러곳의 창고터가 있다.

SANYO DIGITAL CAMERA<옥문관 부근 한대 장성 유적>

명대에 벽돌로 쌓은 북경 주변 만리장성에 비해서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당나라 때까지 유지되었던 성벽이다. 한무제때 명장 곽거병, 서역으로 가는 실크로드를 개척한 장건, 후한때 명장 반초, 고구려인 후손으로 서역을 경영하였던 고선지 장군까지 수많은 역사적인 인물들이 이 곳을 거쳐갔던 역사적인 의미가 큰 유적이다.

SANYO DIGITAL CAMERA<한장성 성벽>

만리장성 성벽은 지역에 따라 다른 형태로 쌓았는데 둔황지역은 주변 오아시스에서 자라는 갈대와 모래자갈을 섞어서 쌓았는데 비가 없는 사막지역에 있어 거의 원형에 가까운 모습을 남겨 놓고 있다. 진시황이 건설했던 옛 만리장성의 원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갈대와 자갈을 섞어 쌓은 고대 둔황지역 성벽>

SANYO DIGITAL CAMERA<가까이서 본 모습>

SANYO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모습>

SANYO DIGITAL CAMERA<인근 양관에 재현해 놓은 옛 성벽 모습>

옥문관 앞쪽으로는 로프노로 호수로 흘러가는 지금은 말라버린 소륵하가 있었다. 사방이 사막으로 되어 있는 지금과는 달리 옛날에는 물이 부족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인근 오아시스에서 성벽을 쌓았던 갈대를 볼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인근 오아시스와 근처에서 자라는 갈대들>

SANYO DIGITAL CAMERA <사막을 따라서 이어지는 만리장성 흔적>

SANYO DIGITAL CAMERA<멀리 보이는 봉수대>

<출처>

  1. 위키백과, 2020년
  2. 실크로드 문명기행, 정수일, 한겨레출판, 2006년
  3. 실크로드사전, 편저 정수일, 창비, 2013년
  4. 百度百科, 2020년

시안 대청진사(西安大淸眞寺, The Great Mosque of Xi’an)

중국 고대 수도였던 시안 중심부 종루(鐘樓)와 고루(鼓樓)를 지나 이슬람 주거지역인 회족거리에 들어서면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회교사원인 시안대청진사(西安大清真寺, The Great Mosque of Xi’an)를 볼 수 있다. 기록에 따르면 당현종 때(742년) 처음 세워졌으며, 송,원,명,청대에 여러차례 중수를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국공내전 이후 한때 철강공장으로 개조되기도 했으나 1956년 문화유적지로 지정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건물들은 명나라 초에 중건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데  중국적인 모습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이슬람사원(Mosque)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시안 대청진사(西安大清真寺)>

대청진사는 벽으로 둘러싸인 5개의 안뜰로 이루어져 있으며, 서쪽 메카방향으로 건물이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다. 건물은 높은 첨탑과 웅장한 돔으로 상징되는 아랍의 이슬람사원과는 달리 전통적인 중국 사당 건물형식과 공간배치를 보여주고 있다. 건물은 패루(牌樓), 오간루(五間樓), 칙사전(敕賜樓), 선례루(宣禮樓), 일진정(一眞亭), 예배대전(禮拜大展)이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독립된 공간을 형성하고 있으며 양쪽에 부속건물들을 두고 있다. 전체적으로 공자를 모신 문묘(文廟)의 건축양식과 공간배치를 보여주고 있다. 3번째 안뜰에 있는 3층 누각건물인 선례루가 첨탑역할을 하고 있으며, 대성전과 비슷한 형태의 대예배전이 대형돔이 있는 기도실 역할을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시안 대청친사 가람배치>

오간루(五間樓) 앞 첫번째 안뜰

대청진사는 동.서방향으로 건물이 배치되어 있으며 동쪽에 첫번째 출입문이 오간루를 중심으로 첫번째 안뜰이 조성되어 있다. 넓은 광장과 웅장한 출입문이 있는 전통적인 이슬람사원과는 달리 회족거리라 불리는 상업지구 골목길과 연결된 북쪽 대사정문(大寺正門)을 통해 안뜰에 들어서면 동쪽 방향으로 중국 전통 패루(牌樓)가 있고 정면에는 명대에 조성된 조벽(照壁, Screeen wall)이라 불리는 벽돌담장이 있다. 안뜰 양쪽에는 사무실로 보이는 북전청(北殿廳)과 남전청(南殿廳)이 자리잡고 있다. 손을 씻을 수 있는 수조(水操)가 있는 전통 이슬람사원과는 달리 중국식 정원이 조성되어 있다. 패루에서 직선방향으로 중국 사당 출입문 양식을 보여주는 앞면 5칸 규모의 큰 출입문이 오간루를 통해 2번째 안뜰로 들어갈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회족거리 골목길에서 대청진사를 출입하는 1칸 규모의 작은 정문>

OLYMPUS DIGITAL CAMERA<조벽(照碧, Screen wall), 이슬람양식 문양으로 벽을 장식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패루와 첫번째 안뜰>

OLYMPUS DIGITAL CAMERA<북전청(北殿廳)>

대청진사의 실질적인 출입문인 오간루(五間樓)는 문묘 출입문인 대성문과 거의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출입문에는 청진사(淸眞寺)라 적힌 청나라 양식의 현판이 걸려 있으며 바닥에는 북모양의 석고(石鼓)가 세워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오간루(五間樓)>

OLYMPUS DIGITAL CAMERA<이슬람 양식을 보여주는 오간루 내부 벽면 장식>

OLYMPUS DIGITAL CAMERA<중국적인 석고>

OLYMPUS DIGITAL CAMERA<2번째 안뜰에서 본 오간루>

칙사전(敕賜樓) 앞 2번째 안뜰

오간문을 지나면 칙사전(敕賜樓) 앞 2번째 안뜰로 들어선다. 2번째 안뜰은 대리석으로 조각한 삼문형식의 패방을 중심으로 충천이룡비(沖天驪龍碑)라 불리는 중요한 비석이 세워져 있어 문묘의 비림을 연상시키는 공간이다. 비명에 <칙사(敕賜)>라는 글자가 있는 것으로 볼 때 국가에서 내린 것으로 보인다. 칙사전 내부에는 여러기의 중요한 비석들이 있으며 가운데 답도에서 볼 수 있는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어 성스러운 공간임을 보여준다. 남쪽편 건물은 목욕실(沐浴室)로 소개되어 있는데 기도실을 출입하기 전 몸을 씻는 공간이 있는 이슬람사원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칙사전 앞 2번째 안뜰>

OLYMPUS DIGITAL CAMERA<2번째 안뜰 가운데 위치한 패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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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째 안뜰에 세워진 비석>

OLYMPUS DIGITAL CAMERA<2번째 안뜰 북전청>

OLYMPUS DIGITAL CAMERA<2번째 안뜰 남쪽 목욕실로 소개된 건물>

3번째 안뜰로 출입하는 문은 가운데 앞면 3칸 규모의 칙사전 건물이 있고 양쪽에 작은 협문이 있다. 신도들은 협문을 통해 출입하는 것으로 보인다. 칙사전 내부 바닥에는 답도로 보이는 조각이 있고 양쪽에 비석들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칙사전>

OLYMPUS DIGITAL CAMERA<칙사전 벽면 장식>

OLYMPUS DIGITAL CAMERA<칙사전 현판, 칙사예배사(敕賜禮拜寺)라 적혀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칙사전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칙사전 내부 바닥에 있는 답도처럼 보이는 조각상>

OLYMPUS DIGITAL CAMERA<칙사전 내부에 있는 비석들>

OLYMPUS DIGITAL CAMERA<3번째 안뜰로 들어가는 협문>

OLYMPUS DIGITAL CAMERA<3번째 안쯜에서 본 칙사전>

선례루(宣禮樓) 앞 3번째 안뜰

3번째 안뜰에는 모스크 첨탑 역할을 하는 3층 누각건물인 선례루(宣禮樓)를 중심으로 정원이 꾸며져 있다.  선례루는 시안 대청진사를 대표하는 장면으로 성심루(省心樓)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건물은 문묘 대성전 앞 벽옹(辟雍)이나 행단(杏壇)을 연상시킨다. 기도실에 해당하는 대예배전을 출입하기 전에 예를 갖추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청진사를 대표하는 선례루>

OLYMPUS DIGITAL CAMERA<선례루 바닥에 있는 답도 장식>

선례루를 지나면 대예배전이 있는 4번째 안뜰을 출입하는 작은 협문인 달삼문(達三門)이 있고 그 앞에는 청나라 말(1809년)에 세워진 공덕비가 있다.  남.북으로 부속건불인  남방(南房), 남궁전(南宮殿)이 배치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달삼문과 공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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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말(1809년)에 세워진 공덕비>

OLYMPUS DIGITAL CAMERA <북쪽 부속건물인 홍경당(洪經堂)>

OLYMPUS DIGITAL CAMERA<남쪽 부속건물>

OLYMPUS DIGITAL CAMERA<협문을 통해 연결되는 통로>

예배대전(禮拜大展)이 있는 4번째 안뜰

4번째 안뜰은 대청진사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으로 서방에서는 돔으로 된 지붕이 있는 거대한 모스크에 해당하는 공간이다. 달삼문을 지나면 신도들이 모스크에 들어가지 전에 대기하는 공간인 일진정(一眞亭)이 있고, 비석들이 세워져 있는 마당을 지나면 예배대전 월대를 출입하는 출입문을 볼 수 있다. 문묘 대성전과 비슷한 건물형태로 일반적인 모스크에 비하면 작게 보이지만 중국 사당건물 중에는 상당히 큰 규모를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달삼문을 지나면 보이는 일진정>

OLYMPUS DIGITAL CAMERA<일진정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북청(北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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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청 앞 마당에 세워진 비석>

OLYMPUS DIGITAL CAMERA<남청(南廳)>

OLYMPUS DIGITAL CAMERA<일진정을 지나 예배대전으로 연결되는 길>

OLYMPUS DIGITAL CAMERA<월대 앞 답도>

예배대전(禮拜大殿, Prayer Hall)을 모스크에서 기도를 올리는 핵심공간이다. 건물은 문묘 대성전과 비슷한 형태로 앞면 7칸, 옆면 9칸의 상당히 큰 건물이다. 내부는 1,300 ㎡로 1,000명 이상의 신도들이 동시에 기도를 올릴 수 있다. 내부에는 중국을 비롯하여 각국에서 받은 코란이 벽면에 새겨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예배대전>

OLYMPUS DIGITAL CAMERA<아랍어로 적혀 있는 현판>

OLYMPUS DIGITAL CAMERA<예배실 앞, 1칸 정도의 툇간을 두고 있는 대성전의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예배실로 들어가는 출입문>

OLYMPUS DIGITAL CAMERA<벽면에 새겨진 장식과 화병>

OLYMPUS DIGITAL CAMERA<예배대전 앞 월대>

OLYMPUS DIGITAL CAMERA<월대를 출입하는 출입문>

Introduction to Xi’an Great Mosque
Upon arriving in the ancient capital Xi’an, after passing the Bell Tower and Drum Tower, you will be in the Muslim residential area – Bei Yuan Men. Here, you will see a historic and magnificent ancient architectural complex – Xi’an, Great Mosque, a nationally famous mosque located in Huajue Lane in northwest corner of the Drum Tower. According to the existing inscription records, the Mosque was built in the first year of Tianbao period (742 A.D) under the reign of Emperor Xuanzong LI Long)l in Tang Dynasty, with a history of more than 1,270 years. It was rebuilt and expanded in the Song, Yuan, Ming and Qing Dynasties, especially after the founding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relevant departments appropriated special funds for renovations year by year under the correct ethnic and religious policies of the Chinese Communist Party and the People’s Government. Finally, a large-scale great ancient architectural complex was gradually formed, with buildings, platforms, pavilions and halls standing together harmoniously. Xi’an Great Mosque was announced as a provincial key cultural relic protection unit in 1956 and was included in the third batch of the national key cultural units in 1988. Since its opening in 1978, the Mosque has attracted a large number of tourists from more than 100 countries and regions around the world with a total of over ten million people, including Muslims and compatriots from Hong Kong, Macao and Talwan, and has received many heads of states, senior government officials and other honored guests. We believe that you will know more about this ancient architectural complex and the Muslims’ religious life after your visit. (안내문, 시안 대청진사, 2019년)

<출처>

  1. 안내문, 시안 대청진사, 2019년
  2. 위키백과, 2020년
  3. 百度百科, 2020년

군위 제 2 석굴암으로 불렸던 작은 사찰

경북 군위군 부계면 남산리 아미타여래삼존 석굴(국보 109호)이 사찰이다. 제2석굴암으로 곳으로 이름은 알 수 없지만 바위에 석굴을 파고 그 안에 불상을 모신 전통 석굴사원 형태를 제디로 갖추고 있는 곳이다. 석굴 앞에 중국 전탑을 모방해서 만든 모전석탑이 일부 복원되어 있으며 비로자나여래를 모신 비로전을 별도로 두고 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팔공산 자락 경치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고 독특한 형태의 사찰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제2석굴암으로 불렸던 사찰. 아미타여래삼존 석굴(국보 109호)를 중심을 비로전, 모전석탑 등을 두고 있는 작은 사찰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석굴 앞 마당에 있는 불전인 비로전.

OLYMPUS DIGITAL CAMERA비로전 옆 야외에 있는 삼존석굴 석조비로나불좌상.

군위 삼존석굴 석조비로자불좌상
군위 삼존석굴 석조비로자나불 좌상은 삼존석불이 모셔진 이후인 9세기 경에 만들어졌다. 당시에 유행하던 신라 비로자나불상의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불상의 변천과 신앙 추이를 확인할 수 있다. 불상은 결가부좌를 하고, 통견식의 법의를 입고 있다. 양쪽 어깨에 법의가 조금씩 걸쳐져 있어 앞가슴이 넓게 드러나 있다. 두 팔을 타고 내려온 옷 주름은 두 무릎에서 다시 물결무늬를 만들고 있다. 수인은 지권인이며 목에는 삼도가 있다. 두 빰은 풍만하며 귀가 길게 늘어져 있고, 머리는 소라 껍대기처럼 말린 모양이며, 육계는 편평하다. 원래는 파괴된 대좌와 함께 지금의 위치에서 약 30 m북쪽에 있었으나 1990년 대웅전을 늘려 지으며 대좌와 불단을 새로 만들고 옮겼다. (안내문, 군위군청,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석굴 앞 마당에 있는 모전석탑. 지금은 단층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원래는 3층이었다고 한다. 이 석탑이 조성된 유래에 대해선는 알려진 바가 없다고 한다.

군위 삼존석굴 모전석탑
이 모전석탑은 단층 기단 위에 단층의 탑신부를 조성한 특이한 형태로써 작자와 유래는 알 수 없다. 본래 3층이었으나, 탑신부에 자생한 소나무가 태풍에 쓰러지면서 탑도 같이 무너졌다고 한다. 1949년 당시 창건주가 주선하여 군위군 우보면 신도들의 힘을 모아 현재 모습대로 복원하였다고 한다. 탑의 전체 높이는 400 cm, 기단의 한 변은 390 cm이며, 우주와 탱주는 약 16 cm, 옥개석에서 정상부까지는 약 165 cm이다. 모서리 기둥과 각 면 3개의 안 기둥 및 기단 덮개돌이 있으며, 1층 탑신부에는 약 20여 단의 일정하지 않은 직사각형 판석을 쌓았다. 1층 지붕돌의 층급은 3단이며 지붕돌 상면에도 다시 여러 단의 층급을 놓아 점차 체감되게 하였고 다시 그 상부 중앙에 노반 및 보주를 배치하였다. (안내문, 군위군청,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국보 109호). 원래는 석굴 앞까지 갈 수 있도록 1960년대에 계단을 만들었는데 지금은 사용하고 있지 않다.

OLYMPUS DIGITAL CAMERA석굴로 오르는 계단 입구.

OLYMPUS DIGITAL CAMERA석굴 앞 계단.

OLYMPUS DIGITAL CAMERA석굴에는 아미타여래를 본존불로, 좌우에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협시보살로 두고 있다. 바위에 불상을 새기던 삼국시대 석굴사원과는 달리 석굴을 파고 불상을 모신 정통 석굴사원을 제대로 구현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비로전 뒷편 불전과 승방들이 있는 공간.

OLYMPUS DIGITAL CAMERA석굴이 있는 바위산.

OLYMPUS DIGITAL CAMERA석굴 앞을 흐르는 개울.

<출처>

  1. 안내문, 군위군청, 201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경북 청도군

선사/역사 유적

자연/풍경

유교문화/한옥

 

불교문화

근대/현대

충주 윤양계 고택, 19세기 중부지방 양반가옥

충북 충주시 엄정면 미내리에 있는 윤양계 고택이다. 이 가옥은 병마절제도위를 지낸 윤양계가 1873년에 건립되었다. 건물은  ‘-’자형 안채를 중심으로 서쪽에 사랑채를 동쪽에 별채를 두고 있다.  각 건물들은 대부분 ‘-’형을 이루고 있으며 안채와 사랑채 앞에 넓은 마당을 두고 있다. 앞쪽에 사랑채를 두고 안쪽에 안채를 두어 ‘ㅁ’자형을 이루는 전통적인 양반가옥과는 달리 여러동의 건물을 넓은 공간에 배치하고 있는 등 19세기 중엽 중부지방 양반가옥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충주 윤양계 고택. 널은 공간에 안채, 사랑채, 별채 등의 넓게 배치되어 있다. 사랑채 앞 마당과 안채 마당 사이는 담장이 없는데 원래부터 그러지는 알 수 없다. 마당을 넓게 사용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솟을대문을 하고 있는 문간채. 바깥쪽을 향해 창문을 두고 있는 도시형 한옥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문간채. 문간방과 외양간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사랑채로 들어가는 중문이 있고 안채 앞 마당으로는 출입로를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안채는 ‘ㄱ’자형 건물로 여러개의 방과 부엌을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사랑채는 앞면 3칸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가운데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에 온돌방과 누마루를 두고있다. 사랑채 뒷편으로 초가지붕을 하고 있는 안채에 딸린 건물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동쪽을 향하고 있는 별채. 독립된 살림공간을 형성하고 있으며 안마당을 향해 방문과 툇마루를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바깥에서 보이는 모습. 상당히 큰 규모의 대저택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입구에 있는 고목

중원 윤민걸가옥, 충북 충주시 엄정면 미내리
우리나라 조선시대 양반 가옥의 형태는 사랑채가 있어 남자와 여자의 공간을 구분하고 있는데 남자는 집밖의 사회적 일을, 여자는 집안의 생활과 살림살이를 맡아하는 생활방식에서 연유하고 있다. 마당은 주요 생활의 무대가 되는 중심 공간이며, 마당을 중심으로 여러 건물이 배치되어 있어 전체적 통합이 이루어지게 하는 곳이라는 점을 이 가옥은 잘 보여주고 있다. 이 가옥은 조선말기 중부지방의 전형적인 양반 가옥의 형태로 집 뒤로 낮은 동산이 있고 앞으로는 개울이 흐르는 배산임수 지형이다. ‘ㄱ’자형의 안채를 중심으로 왼쪽에 행랑채, 오른쪽에는 별당이 동쪽을 향해 배치되어 있었지만 현재 행랑채는 없어졌고 사랑채는 조선중기 건축에 주로 썼던 사각뿔형 주춧돌을 사용하였다. (안내문, 충주시청, 2011년)

<출처>

  1. 안내문, 충주시청, 2011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