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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오타루, 역사경관구역] 일본은행지구(日本銀行地区)

일본 오타루 역사경관구역 중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일본은행지구(日本銀行地区)’이다. 전성기 오타루시 본통선(本通線)으로 불렸던 이로나이(色内)와 일본은행 앞을 지나는 큰길인 니시긴(日銀)거리가 만나는 사거리 주변지역을 말한다. <일본은행 오타루지점>을 중심으로 많은 은행과 상사 지점들이 모여 있어 오타루의 월스트리트로 불렸다. 현재도 옛 건물들이 제대로 남아 있어 전성기 오타루시의 모습을 관광객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오타루 일본은행지구 20230531_27<일본은행지구(日本銀行地区)>

일본 대형은행인 <미쓰이은행>, <미츠비시은행>, <제일은행>, <홋카이도타쿠쇼쿠은행> 지점들과 지역은행인 <홋카이도은행 본점>, <오타루우체국>, <미쓰이물산> 등이 모여 있어 대도시와 비슷한 규모의 금융가(金融街)가 형성되어 있었다. 북쪽 ‘이로나이 1, 2초메지구’에는 <제47은행>, <야스다은행> 지점이, 남쪽 ‘사카이마치혼도리지구’에는 <하쿠쥬산은행>, <다이하쿠주산국립은행>, <나카고에은행> 지점이 있었다. 2002년 <미쓰이은행>을 마지막으로 영업중인 은행은 남아 있지 않으며 건물들은 관광객을 위한 시설로 사용되고 있다. 오타루 금융가는 웬만한 대도시보다 큰 규모를 하고 있었다. 금융권과 상사 등에 고급인력을 공급했던 국립 <오타루 상과대학>은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단과대학이다.

오타루 일본은행지구20230530_41<오타루 우체국 앞 사거리>

‘일본은행 오타루 지점(日本銀行旧小樽支店)’은 니시긴(日銀)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1912년에 지어진 건물이다. 첨탑을 네모퉁이에 배치하고, 철골구조를 사용하는 등 당시의 최첨단 건축기술이 적용되었다. ‘일본은행 오타루지점’은 1893년에 처음 설치되었으며 2002년 폐지될때까지 홋카이도 경제의 상징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지금은 ‘일본은행 구 오타루 지점 금융 자료관’으로 사용되고있다.

오타루 일본은행지구 20230530_02<일본은행 오타루 지점>

오타루 일본은행지구 20230530_06 <오타루 니시긴(日銀)거리, 일본은행 오타루지점 앞>

오타루 구도심은 구국철 테미야선과 오타루운하 사이에 형성되어 있다. 도심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테미야선 철도에는 이로나이(色内) 역이 간이역규모로 있었다. 전성기 오타루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사용했던 통근열차였던 것으로 보인다.

오타루 일본은행지구 20230530_10<테미야선 철도(남쪽방향)>

오타루 일본은행지구 20230530_03<테미야선 철도(북쪽방향)>

오타루 일본은행지구 20230530_05<옛 이로나이역>

이로나이역 앞에는 옛 건물을 활용한 <시립오타루미술관>, <시립오타루문학관>이 있다.

오타루 일본은행지구 20230530_04<시립오타루미술관>, <시립오타루문학관>

이로나이(色内) 역을 지나면 JR오타루역 앞 중심상업지구와 연결된다. 니시긴(日銀)거리 양쪽으로 오타루를 대표하는 쇼핑거리가 형성되어 있다. 남쪽편 시장을 ‘오타루선물일번지(小樽サンモール一番街)’라 부른다. 1917년 고노오복점(河野呉服店)을 시작으로 후에 백화점으로 변신하는 유력 오복점(呉服店) 3곳이 이로나이 거리에서 이곳으로 이전하면서 쇼핑의 중심지가 되었다. 입구에는 ‘구 무카이 우복점 지점창고(旧向井呉服店支店倉庫)’건물이 남아 있다. 우복상(呉服商)은 일본에서 옷의 판매와 관련된 상인을 말한다. 에도시대에 유래를 하고 있으며 메이지시대 이후에는 백화점 역할을 했다.

오타루 쥬오거리 20230530_04<’오타루선물일번지’와 ‘구 무카이 우복점 지점창고’>

오타루 쥬오거리 20230530_05<오타루 선물일번지 상가>

오타루 쥬오거리 20230530_03<니시긴 거리에 있는 낡은 상가 건물>

오타루 쥬오거리 20230530_06<맞은편 상가건물>

‘구 미츠이 물산 오타루 지점(旧三井物産小樽支店)’는 1937년에 지어진 철근 콘크리이트조 5층 건물이다. 현재적인 외관을 하고 있는 큰 규모의 상업용 빌딩이다. 오타루의 월스트리트로 불렸던 니시긴(日銀)거리를 가운데 두고 구 일본은행 지점과 마주보고 있다. 미츠이 물산(三井物産株式会社, MITSUI & CO., LTD)은 일본 최초의 종합상사이자 미츠비시와 함께 근대 일본을 대표하는 재벌이었다. 아래쪽에 있는 미츠비시은행과 비슷한 외형을 하고 있으며 규모는 큰 편이다. 두 재벌 그룹의 경쟁관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오타루 일본은행지구 20230530_07<구 미츠이 물산 오타루 지점>

‘구 홋카이도 은행 본점(旧北海道銀行本店)’은 1912년에 지어진 석조 2층 건물이다. 오타루의 월스트리트로 불렸던 니시긴(日銀)거리를 가운데 두고 구 일본은행 지점과 마주보고 있다. 일본은행 오타루지점을 설계한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로 두 건물은 거의 비슷한 느낌을 주고 있다. 홋카이도 은행(北海道銀行)은 1891년 삿포로에 설립된 둔다 은행과 1894년 요이치에 설립된 요이치(오타루은행)이 합병해 만든 은행이다. 제2차세계대전 중에 다른 은행에 통합되어 현재는 남아 있지 않다.

오타루 일본은행지구 20230530_08<구 홋카이도 은행 본점>

오타루우체국은 <일본은행 오타루지점>과 함께 오타루의 월스트리트로 불렸던 이로나이 거리에서 이정표가 되었던 건물이다. 영화 ‘러브레터’에 등장했던 우체국 앞 사거리로 유명하다.  사거리에는 <구 홋카이도타쿠쇼쿠 은행>, <제일은행>, <미츠비시은행>이 있었는데 그 이름만으로도 일본을 대표하는 은행임을 알 수 있다.

오타루 일본은행지구 20230531_23<오타루 우체국>

오타루 일본은행지구 20230530_09<오타루 우체국 앞 사거리>

‘구 홋카이도타쿠쇼쿠 은행 오타루 지점(旧北海道拓殖銀行小樽支店)’은  1923년에 지어진 철근코크리트조 4층 건물로 은행과 일반 사무실이 같이 있는 큰 상업용 빌딩이었다. 홋카이도타쿠쇼쿠은행(北海道拓殖銀行, 홋카이도척식은행)은 2차대전까지는 식민지개발 등을 위한 특수은행이었다 이후 일반은행으로 전환하여 1998년까지 존재했다.

오타루 일본은행지구 20230531_24 <구 홋카이도타쿠쇼쿠 은행 오타루 지점>

‘구 미츠비시 은행 오타루 지점(旧三菱銀行小樽支店)’은 1922년에 지어진 철근코크리트조 4층 건물이다. 1층 정면에 6개의 기둥으로 건물을 장식하고 있다. 미츠비시은행은 일본 대표 재벌인 미츠비시(三菱) 계열사였다. 현재는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오타루 일본은행지구 20230531_25 <구 미츠비시 은행 오타루 지점>

‘구 제일은행 오타루 지점(旧第一銀行小樽支店)’은 1924년에 지어진 철근코크리트조 4층 건물이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한국의 현대식 건물과 비슷한 외형을 하고 있다. 제일은행은 일본 최초의 은행이자 주식회사였다. 웅장한 외형과는 달리 지금은 의류공장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오타루 일본은행지구 20230531_26 <구 제일은행 오타루 지점>

오타루 일본은행지구 20230531_21<니시긴(日銀)거리, 일본은행방향>

오타루 일본은행지구 20230531_22<니시긴(日銀)거리, 오타루운하 방향>

오타루 일본은행지구 20230530_33<니시긴(日銀)거리>

니시긴 거리 입구에는 오타루운하의 랜드마크가 되고 있는 망루가 있는 건물과 식당 건물들이 모여 있다. 이곳을 ‘小樽出抜小路’라고 부른다. 원래는 운하에 있는 창고 뒷편에 화물을 운반하던 좁은 골목길을 뜻하며 서울 종로의 피맛길과 비슷한 분위기를 주고 있다.

오타루 일본은행지구 20230531_31<오타루 출발 코지(出抜小路)와 망루>

오타루 일본은행지구 20230530_14<야경>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오타루 운하 양쪽으로는 창고 건물들이 들어서 있었는데 이곳에는 업무용 건물들이 있으며 호텔들도 들어서  있다. 업무용 건물로는 <구 통신전설하마빌딩>, <구 아리타상사>가 있으며, 창고 건물로는 <구 다카하시 창고>, <구 시마타니창고>가 있다. 건물 앞은 운하의 일부를 매립하여 조성한 큰 도로가 지나간다.

오타루 일본은행지구 20230531_29<오타루 운하 옆 거리>

오타루 일본은행지구 20230531_30<도로 옆 건물들>

‘구 통신전설 하마 빌딩(旧通信電設浜ビル)’은 1933년에 지어진 현대식 철근 콘크리트 4층 건물로 사무실 용도로 지어졌다. 현관 좌우에는 화강암 기둥을 장식했으며 창의 프레임은 아치를 그리며 4층까지 연결되어 있다. 다양한 장식을 했던 1930년대 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는 건물이다. 배가 정박했던 오타루운하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창고 건물들과 함께 지어졌다.

오타루 일본은행지구 20230531_15<구 통신전설 하마 빌딩>

‘구 아라타 상사(旧荒田商会)’이다. 1935년에 지어진 현대식 목조 2층 건물로 사무실 용도로 지어졌다. 배가 정박했던 오타루운하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창고 건물들과 함께 지어졌다. ‘오타루예술촌(小樽芸術村)’은 오타루시가 번성했던 20세기초에 지어진 구 아라타상회, 구 다카하시 창고, 구 미쓰이은행 오타루지점, 구 홋카이도 다쿠쇼쿠은행 오타루지점 건물을 활용하여 조성한 전시관이다. 각 건물에는 일본화 및 공예품 등 다양한 작품을 공개 전시하고 있다.

오타루 일본은행지구 20230531_16 <구 아리타 상사>

‘구 다카하시 창고(旧高橋倉庫)’는 1923년에 지어진 목골 석조 2층 건물이다. 콩을 저장하기 위해 창고로 지어진 건물로 배가 정박했던 오타루운하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다른 창고 건물들과 함께 자리잡고 있다.

오타루 일본은행지구 20230531_17<구 다카하시 창고>

‘구 시마타니 창고(旧嶋谷倉庫)’는 1892년에 지어진 목골 석조 건물이다. 실내에 나무로 골조를 만들고 바깥쪽에 돌을 쌓는 구조이다. 19세기말에 지어진 전형적인 창고 건물의 형태를 잘 보여준다. 오타루에는 비슷한 창고 건물이 350 정도 있었다고 한다. 배가 정박했던 오타루운하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다른 창고 건물들과 함께 자리잡고 있다.

오타루 일본은행지구 20230531_18<구 시마타니 창고>

이로나이(色內) 거리는 사카이마치(堺町)와 함께 오타루운하와 나란히 연결되는 도로이다. <구 일본운선(주) 오타루지점>에서 시작하여 <메르헨교차로>까지 오타루 도심의 중심 역할을 했던 거리로 중앙통(中央通)이라 불린다.

오타루 일본은행지구 20230531_32<이로나이 거리>

‘구 미쓰이은행 오타루 지점(旧三井銀行小樽支店)’은 1927년에 지어진 현대식 철골 철근 콘크리트조 건물이다. 화강암을 쌓아 올려 석조를 본뜬 외벽, 그리스.로마풍 외부장식, 철골로 지탱되는 영업실의 대공간 등은 도쿄의 본점와 거의 같은 형태를 하고 있다. 미쓰이 은행은 1880년 오타루에 출장소를 개설한 이래 2002년까지 122년간 영업을 해왔다. 오타루 금융의 중심을 북쪽의 월가로 불렸던 이로나이(色內) 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마지막으로 철수했다.

오타루 일본은행지구 20230530_12<구 미쓰이은행 오타루지점>

오타루 일본은행지구 20230531_19<뒷편에서 본 모습>

‘구 엣츄야 호텔(旧越中屋ホテル)’은 1931년에 지어진 철근 콘크리이트조 4층 건물이다. 여관 부속건물로 지어진 것으로 근대 항구도시 오타루를 대표하는 서양식 호텔이었다. 중앙에 있는 세로 2열의 베이 윈도우와 양쪽 둥근 창문과 수직의 창문 배치 등이 특징이다. 오타루 금융의 중심으로 북쪽의 월가로 불렸던 이로나이(色內)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오타루 일본은행지구 20230530_13<구 엣츄야 호텔>

오타루 역사 경관구역(小樽歴史景観区域)
오타루시에서는 “오타루 역사 자연을 살린 마을 만들기 경관 조례”를 제정하여 역사 및 문화 등의 측면에서 오타루다운 양호한 경관을 형성하고 있는 중요한 구역을 “오타루 역사 경관 구역”으로서 지정했습니다. 아래의 그림은 “오타루 역사 경관 구역”의 범위도 입니다. 이 구역을 경관 특성과 역사적 배경을 고려하여 15개의 지구로 나누어, 각각의 기준을 마련하여 각 지구의 특성에 맞는 양호한 도시경관 형성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안내문, 오타루시, 2023년)

오타루 일본은행지구 20230530_11<오타루 역사경관구역 범위도>

<출처>

  1. 안내문, 오타루시, 2023년
  2. ‘景観計画区域の行為の制限’, 오타루시, 2023년

[일본 오타루] 구 엣츄야 호텔

일본 오타루시에 있는 ‘구 엣츄야 호텔(旧越中屋ホテル)’이다. 1931년에 지어진 철근 콘크리이트조 4층 건물이다. 여관 부속건물로 지어진 것으로 근대 항구도시 오타루를 대표하는 서양식 호텔이었다. 중앙에 있는 세로 2열의 베이 윈도우와 양쪽 둥근 창문과 수직의 창문 배치 등이 특징입니다. 오타루 금융의 중심으로 북쪽의 월가로 불렸던 이로나이(色內)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오타루시 역사 건조물 16호이다.

일본 오타루 구앳추야호텔 20230530_01<구 엣츄야 호텔>

일본 오타루 구앳추야호텔 20230530_03<현관 포치와 출입문>

일본 오타루 구앳추야호텔 20230530_02<옆에서 본 모습>

오타루-미쓰이은행-20230531_03<금융 중심지였던 이로나이(色內) 거리>

구 엣츄야 호텔
엣츄야는 1897~1906년 이후의 영국 여행 안내서에도 실린 여관입니다. 이 건축은 외국인 이용객을 위한 별관으로 국제 무역항 오타루를 상징하는 건축의 하나입니다. 정면에서 보이는 모습은 중앙에 있는 세로 2열의 베이 윈도우와 양쪽 둥근 창문과 수직의 창문 배치 등이 특징입니다. 또한, 내부에 박혀 있는 스테인드글라스에는 제1차 대전 후의 알데코 양식의 영향이 보입니다. 설계는 “구라사와 구니하루”입니다.  (안내문, 오타루시청, 2023년)

<출처>

  1. 안내문, 오타루시청, 2023년
  2. ‘小樽市指定歴史的建造物 第16号 旧越中屋ホテル’, 오타루시, 202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아스테카] 신성구역과 템플로 마요르

템플로 마요르(Templo Mayor)는 멕시코시티에 남아 있는 신전 유적으로 아즈테카의 수도의 중심 신전이다. 피라미드의 꼭대기에는 전쟁의 신 우치칠로포츠틀리와 비와 농사의 신인 틀랄록의 신전 2개가 있었다. 1325년에 지어진 이후 개축, 확장되었다. 신전은 스페인에 점령된 이후 대성당을 짓기 위해 헐러나갔으며 사람들의 기억에 사라졌다가 1978년에 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그 실체가 발견되었다. 유적들은 의외로 잘 보존되어 있었으며 신들의 모습이 새겨진 점토항아리 등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03<제의용 칼 모양 대형 석판>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04<제이용 칼 모양 대형 석판>

세상의 중심, 신성구역과 템플로 마요르
이스테카 사람들은 테노츠티틀란의 신성 구역을 세상의 중심으로 여겼습니다. 이곳에서 아스테카의 종교, 정치, 경제 행위가 복합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동-서 440m, 남-북 380m 크기의 이 구역에는 다양한 신전과 학교, 공놀이장 등이 자리하였습니다. 사제들은 멕시코 전역에서 가져온 공물들을 한데 모아 신께 봉헌하고, 신성한 제의를 거행했습닏. 이것은 태양, 즉 세상을 창조하기 위해 희생을 감내한 신들에 대한 보답이었습니다. 귀족 청년들은 칼메칵이라는 학교에 다녔으며, 아스테카의 통치자 우에이 틀라토아니의 즉위식 또한 이곳에서 치러졌습니다. 그리고 정복지의 틀라토아니를 제의나 축제에 초대하여 아스테카의 부와 권력을 과시했습니다. 신성 구역의 중심에는 대신전, ‘템플로 마요르’가 있었습니다. 신전 꼭대기에는 아스테카의수호신 우이칠로포츠틀리와 틀랄록을 모신 신전이 나란이 있었습니다. 우이칠로포츠틀리의 신전에는 정복지의 신상을 가져와 보관하는 코아칼코가 있었는데, 이는 아스테카 수호신의 우월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01<음악과 쾌락의 신 쇼치필리의 머리, 아스테카, 1500년경, 화산암, 오스트리아 빈 세계박물관>

쇼치필리는 음악과 춤, 놀이 외에도 귀족, 꽃, 옥수수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조각상은 새 부리 사이로 쇼치필리 신이 얼굴을 내밀고 있는 듯한 모습입니다. 구슬로 장식한 목걸이와 귀걸이, 코걸이를 착용하고 있으며, 본래 눈에는 보석을 박아 장색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02<아스테카의 전통 북 모형>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15<아스테카의 전통 북 모형>

1. 아스테가의 전통적인 북을 화산암으로 만든 모형입니다. 북에는 재규어 가죽을 씌웠습니다. 제의나 행렬 때 두르리며 연주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14<나무북 ‘테포나츨리’ 모형>

2. 기다란 나무 북 ‘테포나츨리’의 모형입니다. 오늘날에도 몇몇 원주민 공동체는 이 북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계속 전승되어 수백 년 동안 사용한 북도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08<틀랄록이 지녔던 뱀 모양 지휘봉>

3. 비의 신 틀랄록이 지녔던 뱀 모양의 지휘봉입니다. 틀랄록이 대지에 양분을 주는 물줄기나 번개를 상징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10<’치카우아틀리’라 부르는 지휘봉>

4. ‘치카우아틀리’라고 부르는 이 지휘봉은 주로 나무로 만들고, 안에 씨앗이나 작은 돌을 넣었습니다. 그래서 지휘봉을 흔들면 빗소리가 났습니다. 대지에 양분을 주는 뜨거운 빛을 상징하며, 풍요를 기원하는 제의에 사용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05<미스테 양식 가면 모형> <틀랄락신 작은 모형> <제의 때 사용하는 가면 모형> <고둥 장식물>

5. 미스테 양식의 가면 모형입니다. 미스테카 사람들이 고향은 오악사카 지역이며, 쇼치필리 신의 기원지도 오악사카 지역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에 쇼치필리 산을 위한 봉헌물에 미스테카 양식의 물품을 담았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11. 녹색 돌로 만든 비의 신 틀랄록의 작은 모형입니다. 이렇게 작게 묘사한 조각을 틀랄록의 조수인 ‘틀라토케’라 불렀습니다. 이들은 산에 살며 틀랄록을 도와 비를 내리게 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12. 제의 때 사용하는 가면의 모형입니다.

15. 고둥으로 만든 장식물로, 물과 지하 세계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러한 바다 고둥은 멕시코만 연안에서 서식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16<’래틀’의 모형>

6.7. 흔들어서 소리를 내는 악기, ‘래틀’의 모형입니다. 래틀은 제의에서 춤을 출 때 필수적이었습니다. 박의 속을 파낸 다음, 그 안에 씨앗을 넣어 만들었습니다. 이때 부채도 사용했는데, 주로 나무 막대에 깃털을 연결하여 만들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17<’래틀’의 모형><구이로>

10. 사람의 넓적다리뼈로 만든 악기의 모형입니다. ‘구이로’라고 부르는 이 악기는 현재도 조롱박 등으로 만들어 메소아메리카 지역에서 널리 연주되고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13<’래들’ 모형><치치틀리><틀라피찰리>

13. 미스테카 양식의 호루라기 ‘치치틀리’입니다.
14. 미스테카 양식의 피리 ‘틀라피찰리’입니다.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06<화살 모양 꾸미개>

8. 화살 모양의 꾸미개로, 머리에 장식한 새의 깃털을 흉내 낸 것입니다. 쇼치필리 신의 머리에도 이러한 새 깃털 장식이 있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11<거북 등딱지 모형>

9. 돌로 만든 거북이 등딱지 모형으로, 목걸이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불과 태양, 음악을 상징하는 거북이는 쇼치필리 신과 연관된 동물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신을 위한 봉헌물
템플로 마요르 주변에서 앞선 시대인 테오티우아칸 양식의 건물들을 발견했습니다. 테우티우아칸은 아스테카 사람들에게 신들의 도시이자 태양과 달이 탄생한 곳입니다. 이 가운데 ‘남쪽 붉은 신전’이라고 불리는 건물 내부에서 화산암으로 만든 상자를 발견하였고, 상자 안은 다양한 봉헌물로 가득했습니다. 주변에서 제의용 칼 모양의 대형 석판을 발견하였는데, 그 중 하나에 마쿠일쇼치틀-쇼치필리 신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이 78번 봉헌물 일괄이 그에게 바친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발견 당시, 상자 내부의 봉헌물이 물에 의해 한곳으로 쏠려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 건물은 1440년에서 1502년 사이에 지은 것으로, 테노츠티틀란에 대홍수가 일어난 1499년 이전에 봉헌물들을 매납한 것으로 보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19<깃털 달린 뱀, 아스테카, 16세기 초, 돌, 안료, 스위스 바젤 문화박물관>

메소아메리카 전역에서 숭배한 케찰코아틀 신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깃털 달린 뱀’의 모습입니다. 이 모습의 케찰코아틀은 새벽의 신이자 인류의 창조자이며, 지식의 수호신입니다. 케찰코아틀의 또 다른 모습으로 붉은 부리 장식이 특징인 바람의 신 에에키틀-케찰코아틀 등이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21<피리>

1. 비의 신틀랄록을 장식한 피리, 콜리마, 멕시키, 기원전 200~ 기원후 300년, 점토, 오스트리아 빈 세계박물관
바람을 부는 취구 부분에 얼굴 장식이 있는 피리입니다. 얼굴에서 비의 신 틀랄록의 특징이 보입니다. 틀랄록은 아스테카뿐만 아니라 메소아메리카 전역에서 오랜 기간 특별하게 모신 신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2. 이중 피리, 아스테카, 1450~1521년, 점토, 네덜란드 국립세계문화박물관
메소아메리카의 음악은 한 옥타브가 다섯 개의 음으로 이루어진 5음계를 기초로 했습니다. 피리, 나팔, 북, 구이로 등 다양한 악기를 사용해 음악을 연주했으며, 종교의식에서 음악은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습니다. 음악가들은 제의와 축제에서의 엄숙한 임무를 위해 많은 훈련을 받았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3. 사람의 뼈로 만든 피리, 아스테카, 1328~1415년, 사람의 뼈, 독일 슈투르가르트 린덴박물관
사람의 허벅지 뼈로 만든 피리입니다. 음악은 메소아메리카의 제의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필수적입니다. 사슴과 인간의 허벅지 뼈로 만든 피리는 생명을 유지하고 풍요를 기원하는 중요한 제의에서 연주되었습니다. 허벅지 뼈는 다산과도 관련이 있으며, 전투에서 승리한 전사들은 자신의 군사적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처형한 포로의 허벅지 뼈를 간직하기도 했습니다. 이 피리에는 두 인물이 모습이 새겨져 있습니다. 한 명은 독수리 전사이며, 다른 한 명은 신의 모습으로 분장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22<4. 통나무 북 테포나츨리, 미스테카, 1000~1500년경, 나무, 스위스 바젤 문화박물관>

아스테카에는 두 종류의 북이 있습니다. 하나는 속이 빈 통나무로 만들어 가로로 뉘어 놓고 연주하는 테포나츨리입니다. 다른 하나는 나무와 동물 가죽으로 만들어 세로로 세워 놓고 연주하는 우에우에틀입니다. 모두 축제와 제의에서 음악을 연주하는데 사용했습니다. 현대 원주민 공동체는 수백년 동안 사용한 테포타츨리 북을 여전히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 북에는 희생제의를 위해 새 복장을 한 두 명의 인물이 제의 물품 주위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못브을 장식했습니다. 측면에는 ‘꽃’과 ‘노래’를 나타내는 기호가 새겨져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23<1. 뼈무늬 채색 바리, 아스테카, 1450~1521년, 토기, 멕시코 국립인류학박물관>

아스테카 사람들은 음식과 음료를 신이 주신 선물로 여겼습니다. 이에 아름답게 장식한 그릇에 제의 음식을 담아 다시 신에게 바쳤습니다. 그릇 가운데를 장식한 뼈와 주변의 두개골 장식으로 이 그릇에 담긴 음식들이 돌아가신 조상들에게 바쳐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25<2. 방울 달린 향로, 아스테카, 1450~1521년, 토기, 멕시코 국립인류학박물관>

공처럼 생긴 향로 다리에 점토로 만든 작은 구슬이 들어 있어 흔들면 악기처럼 소리가 났습니다. 아스테카의 제의에서 송진으로 만든 향을 피우는 것은 필수적이었습니다. 중요한 제의와 축제가 있을 때마다 많은 양의 향을 피웠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24<3. 공놀이장 모형, 아스테카 추정, 1100~1400년경, 돌, 독일 함부르크 로텐바움세계문화예술박물관>

공놀이는 여러 명의 선수가 두 팀으로 나뉘어 고무로 만든 공을 엉덩이로만 쳐서 둥근 골대 안에 넣는 경기입니다. 일상적인 놀이이기도 했지만 제의의 일부로도 열렸습니다. 신성 구역에서의 공놀이는 아스테카의 창조신화를 재현하기도 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56
<1. 마쿠일쇼치틀-쇼치필리, 아스테카, 1500년경, 화산암, 오스트리아 빈 세계박물관>

‘다섯 송이의 꽃’이라는 이름을 가진 마쿠일쇼치틀 신입니다. 그는 음악과 춤, 쾌락과 활기의 신이었으며, 쇼치필리 신의 또 다른 형상으로 여겨졌습니다. 전체적으로 붉은색이 감돌고 머리에는 새의 볏과 비슷한 장식이 있습니다. 다리를 구부린 채 앉아 그 위에 팔을 얹은 자세는 마쿠일쇼치틀 조각상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57
<2. 지휘봉 치카우아스틀리, 아스테카, 1500년경, 규암, 멕시코 템플로마요르박물관>

‘치카우아스틀리’라고 부르는 이러한 지휘봉은 태양의 광선과 번개의 섬광을 상징합니다. 주로 풍요와 전쟁, 재생의 신 시페 토텍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는 이 지휘봉으로 번개를 만들고 땅에 구멍을 내어 옥수수가 자랄 수 있도록 했습니다. 돌이 아닌 다른 재료로 만든 치카우아스틀리는 악기로도 사용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20220824_71<1. 코펄, 2019년>

아스테카는 나무에서 나온 진액을 굳혀 만든 코펄을 불에 태워 향으로 사용했습니다. 오늘날의 제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고폴은 현대의 것이지만, 500년 전 테노츠티틀란에서도 이와 비슷한 것을 사용했을 것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26<2. 비의 신 틀랄록 장식 화로, 아스테카 16세기 초, 토기, 멕시코 템플로마요르박물관>

비의 신 틀랄록을 묘사한 화로는 템플로 마요르 옆에 위치한 ‘독수리의 집’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이곳은 새로운 왕이 왕좌에 오르기 전에 마지막 의식을 거행한 곳으로 알려졌습니다. 건물의 건축 장식과 그곳에서 발견된 것들은 대부분 톨테카 양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아스테카 사람들은 테오티우아칸과 함께 톨테카를 영광스러운 선조로 생각했으며, 자신들이 이들을 계승한다고 여겼습니다. 톨테카를 모방함으로써 새로운 아스테카의 왕은 톨테카와 자신을 연결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27<3. 손잡이 향로, 아스테카, 1450~1521년, 토기, 멕시코 국립인류학박물관>

신성 구역에서 거행된 모든 제의에는 향연이 피어올랐습니다. 대부분 바닥에 놓인 큰 화로에 향을 피웠지만, 제사장들은 특정한 방향으로 향을 피우기 위해 이와 같이 손잡이가 달린 향로를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55
<바람의 신 에에카틀, 아스테카, 1480~1519년, 안산암, 독일 퀼른 라우테스트라우흐-외스트박물관>

아스테카에서 바람의 신은 매우 중요한 존재였습니다. 사람들은 바람의 신이 강한 바람을 일으켜 태양과 달을 움직이제 만들었다고 믿었습니다. 또한 회오리바람을 불러일으켜 농작물에 필요한 비를 내리게 한다고 여겼습니다. 이 독특한 조각상은 바람의 신 에에카틀을 묘사한 것으로, 회오리바람을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바람의 신을 모신 신전은 대부분 지붕과 건물이 둥근 형태로 지어졌는데, 바람이 자유롭게 건물 주변을 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신성 구역의 에에카틀 신전 역시 둥글게 만들어졌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봉헌물의 발굴과 연구
템플로 마요르 발굴 조사를 담당한 ‘템플로마요르프로젝트’ 팀은 1978년부터 지금까지 총 204개의 봉헌물 상자를 발견했습니다. 이는 사제들이 제의 때 묻은 것으로 신에게 바치는 석제품 및 동물과 인간의 뼈, 그리고 각종 예술품 등을 넣었습니다. 아스테카가 번영할수록 봉헌물의 수도 늘어나, 14번 봉헌물에는 18,400여 점에 달하는 물품이 담겨 있었습니다. 봉헌물은 메소아메리카의 다양한 자연 생태계를 반영합니다. 지금까지 500여 종의 동물이 확인되었으며, 대부분 공물이나 교역을 통해 메소아메리카 전역에서 들여온 것입니다. 이는 아스테카의 정치적, 종교적 위상과 영향력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사진에서 보이는 126번 봉헌물 상자는 4개 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총 13,000여 점의 봉헌물을 담고 있습니다. 가장 아래층에는 동물 뼈 9,000여 점을, 두 번째 층에는 불가사리 등의 해양 생물을 담았습니다. 세번째 층에는 희생제의용 칼을 넣었고, 마지막 맨 위층에는 틀랄록을 그린 파란색 토기를 봉헌했습니다. 상자에 담긴 봉헌물은 세상만물을 상징하는 동시에, 봉헌의 대상이 되는 신을 나타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신성한 구역은 ‘뱀벽(coatepantli)’이라는 벽으로 둘러져 있다. 주요 건물로는 칼메카크(성직자들을 위한 공간), 케찰코아틀 신전, 테스카틀리포카 신전, 태양의 신전, 테오틀라츠코(공놀이장) 등이 있다.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29<신성구역 모형>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30<템플로 마요르 모형>

위대한 신전, 템플로 마요르
아스테카의 피라미드 신전은 산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산은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며, 대지에서 생명을 자라나게 하는 비의 신 틀랄록이 사는 곳이기도 합니다. 템플로 마요르는 아스테카의 수호신 우이칠로포츠틀리가 탄생한 산, 코아테펙을 재현한 것입니다. 템플로 마요르 꼭대기에는 두 개의 신전이 있습니다. 남쪽은 태양과 전쟁의 신 우이칠로포츠틀리에게, 북쪽은 비의 신 틀랄록에게 헌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도시 위로 높이 솟은 이곳에서 봉헌물과 살아있는 제물을 신에게 바쳤습니다. 아스테카 사람들은 태양을 창조하기 위해 희생한 신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태양과 세상이 계속 움직일 수 있도록 자신들도 희생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템플로 마요르의 발굴
1521년, 아스테카를 정복한 스페인 사람들은 템플로 마요르를 파괴하고, 여기서 나온 돌로 새로운 가톨릭 성당을 지었습니다. 한참이 흐는 1978년, 멕시코시티 중심가의 메트로폴리타나 대성당의 공사 중에 오래된 건물의 기초가 우연히 발견됩니다. 멕시코의 고고학자 에두아르도 마토스 목테스마는 이 흔적이 템플로 마요르임을 밝혀냅니다. 이로써 전설과 신화를 걷어내고 진짜 역사에 한걸음 다가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많은 전시품이 바로 템플로 마요르와 그 주변에서 발굴한 것입니다. 고고학자들은 지금도 이곳에서 새로운 발견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31<비의 신 틀랄록을 묘사한 제단 착물, 아스테카, 1450~1521년, 돌, 멕시코 국립인류학박물관>

템플로 마요르 꼭대기의 틀랄록 신전 앞에는 제물을 바치는 제단, ‘착몰’이 있었습니다. 이 착몰은 비의 신 틀랄록을 묘사한 것으로 제물 그릇을 들고 반쯤 누워 있는 자세입니다. 몸에는 귀걸이, 목걸이, 팔찌와 같은 귀한 장신구를 차고 있습니다. 손에 든 그릇에는 신에게 올릴 신성한 액체와 제물을 담았습니다. 제물로 동물과 인간의 피와 심장을 바쳤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32<제의용 돌 테말라카틀, 아스테카, 1450~1521년, 돌, 멕시코 국립인류학박물관>

이러한 모양의 석조품을 ‘테말라카틀’이라 불렀습니다. 전쟁에서 잡혀 온 포로들 가운데 몇몇은 아스테카 전사와 결투를 펼쳐야 했습니다. 그러나 포로는 이러한 둥근 돌에 한쪽 발이 묶인 채 싸워야 했습니다. 또한 깃털로 만든 옷을 입고 깃털로 만든 검을 들기도 했습닌다. 이에 반해, 아스테카의 전사는 재규어 가죽을 입고 흑요석 칼날이 달린 무시무시한 검을 들고 결투에 임했습니다. 결투의 결과는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33<전쟁과 재생의 신 시페 토텍, 아스테카, 1450~1521년, 응회암.안료, 스위스 바젤 문화박물관>

전쟁과 재생의 신 시페 토텍은 항상 인간의 살가죽을 입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는데, 전쟁 포로의 살가죽을 벗겨내 입은 것입니다. 살가죽을 벗기는 것은 봄에 옥수수를 심기 위해 대지의 초목을 베고 불태우는 것과 비슷합니다. 또한 옥수수가 싹을 틔우기 위해 씨앗을 껍질을 벗는 것과도 같습니다. 이는 삶과 죽음의 순환을 상징한느 것으로, 시페 토텍은 부활과 재생의 신이기도 합니다. 스페인 정복자들의 기록에는 살아 있는 사람의 살가죽을 잔인하게 벗기는 제의 모습이 묘사되었으나 이는 직접 보고 기록한 목격담이 아닙니다. 살가죽을 벗기는 행위가 제의적 처형으로 적군이나 범죄자에게 겁을 주기 위해 행해졌을 수 있으나, 이에 대한 증거는 불분명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34<제단, 아스테카, 16세기 초, 돌, 멕시코 국립인류학박물관>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데 사용한 제단입니다. 테오티우아칸의 상징들로 꾸며졌는데, 아스테카 신화에서 테오타우아칸은 태양이 탄생한 곳입니다. 제단을 장식한 인간의 심장은 가장 귀한 제물이었으며, 태양의 신에게 바쳤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35<심장을 담는 그릇 쿠아우시칼리, 아스테카, 1500년경, 돌, 오스트리아 빈 세게박물관>

가장 귀한 제물인 피와 심장을 담아 신에게 바친 그릇입니다. ‘독수리 그릇’이라는 이름처럼 바깥쪽을 독수리 깃털무늬로 장식했습니다. 그릇 안쪽 가운데에는 다섯번째 태양이자, 아스테카의 태양인 ‘움직임의 태양’기호가 새겨져 있습니다. 그릇 바닥에는 생명을 주는 동시에 이를 파괴할 수도 있는 대지의 신 틀랄테쿠틀리가 묘사되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36<심장, 아스테카, 1450~1521년, 옥, 독일 함부르크 로테바움 세게문화예술박물관>

옥은 아스테카에서 가장 귀한 재료이며, 어린 옥수수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옥의 산지는 테노츠티틀란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템플로 마요르에 제물로 바치기 위해 수백 킬로미터를 운반해야 했습니다. 인간의 심장은 신에 바치는 최고의 선물로 심장의 모형 역시 귀한 재료로 만들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38<심장, 아스테카, 16세기 초, 금, 멕시코 템플로마요르박물관>

신에게 바치는 가장 귀하고 신성한 제물은 인간의 심장이었습니다. 금은 나우아틀러어로 테오쿠이카틀, 즉 ‘신들의 배설물’이라 불리며, 가장 귀한 재료였습니다. 따라서 금으로 만든 심장은 신에게 올리는 가장 강력하고 귀한 선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심장 가운데에 구멍이 있어 목걸이나 팔찌 같은 장신구의 일부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37<얼굴 모양 의례용 칼, 아스테카, 16세기 초, 부싯돌.조개껍데기, 적철석, 코펄, 흑요석, 멕시코 템플로마요르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39<향로, 아스테카, 16세기초, 토기, 멕시코 국립인류학박물관>

아스테카 사람들은 템플로 마요르 곳곳에 향로를 두고 나무 진액으로 만든 코펄을 불에 태워 끊임없이 향연이 피어오르게 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불을 52년마다 거행되는 ‘새로운 불’ 의식 때 꺼졌습니다. 이후 테노츠티틀란 외곽의 산꼭대기에서 새로운 불을 지핀 후, 가장 먼저 템플로 마요르의 향로에 불을 붙였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40<물과 풍요의 신 찰치우틀리쿠에 화로, 아스테카, 16세기 초, 토기, 멕시코 국립인류학박물관>

템플로 마요르에 배치한 향로 가운데에는 신의 모습을 한 것도 있습니다. 목에 화환을 걸고 머리에는 종이로 만든 화려한 장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물과 풍요의 신 찰치우틀리쿠에를 나타낸 것으로 보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41<뱀, 아스테카, 1450~1521년, 돌, 독일 함부르크 로테바움세계문화예술박물관>

뱀을 묘사한 조각상은 템플로 마요르 곳곳에서 발견되었습니다. 템플로 마요르는 아스테카의 수호신 우이칠로포츠틀리의 탄생 신화를 건축적으로 재현한 것으로 그가 태어난 곳은 ‘뱀의 산’이라는 뜻의 코아테펙입니다. 이곳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신전 여기저기에 뱀 석상을 배치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43<코욜샤우키의 귀걸이, 아스테카, 16세기 초, 금, 멕시코 템플로마요르박물관>

이 귀걸이는 코올샤우키의 상징물 가운데 하나입니다. 템플로 마요르 앞에서 발견된 코욜샤우키 석판에서도 이러한 형태의 귀걸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20220824_72<방울, 아스테카, 16세기 초, 금, 멕시코 템플로마요르박물관>

아스테카의 신화에 따르면, 우이철로포츠틀리는 자신을 죽이려는 누이 코욜샤우키를 무찌르고 목을 잘라 그 시체를 산 아래로 던졌습니다. 이를 상징하는 조각상이 템플로 마요르 계단의 발치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코욜샤우키의 이름은 ‘종으로 치장한 산을 의미합니다. 이 방울틀은 사우키를 물리치고 탄생한 우이칠로포츠틀리를 기념하기 위해 바친 봉헌물 가운데 하나로 보입니다. 방울과 함께 매납된 봉헌물에는 뱀조각상도 있었는데, 이는 우이칠로포츠틀리의 탄생지인 ‘뱀의 신’ 코이테펙을 상징한 것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신화를 담은 템플로 마요르
이제 아스테카의 신성한 제의가 열렸던 대신전, 템플로 마요르와 마주하게 됩니다. 높이 60m의 피라미드 신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이 계단의 주변에는 신의 형상, 봉헌물, 그리고 신성한 제의도구가 있습니다. 템플로 마요르는 이스테카의 수호신 우이칠로포츠틀리가 태어난 코아테펙산과 탄생 신화를 건축적으로 재현했습니다. 어느날 대지의 여신 코아틀리쿠에의 배에 깃털이 내려앉아 우치칠로포츠틀리를 임신했습니다. 이를 불명예스럽게 여긴 코아틀리쿠에으이 딸 코올사우키와 400명의 형제들이 그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에 우이칠리포츠틀리가 무장한 상태로 태어나 형제들을 모두 물리치고 고콜사우키의 목을 자른 후 산 아래로 던졌습니다. 이후 우이칠리포츠틀리는 태양이 되고 코올샤우키는 달, 그리고 400명의 형제는 별이 되었습니다. 아스테카 사람들은 아침마다 어둠과 달이 사라지고 태양이 떠올는 것은 우이칠로포츠틀리가 코올사우키를 무찔렀기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우이칠로포츠틀리를 모심 템플로 마요로를 태양이 떠오르는 방향에 맞추어 건설하고, 신화 속의 상징적 요소를 건물에 장식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44<비의 신 틀랄록의 머리, 아스테카, 16세기 초, 돌, 멕시코 국립인류학박물관>

틀랄록 신은 두꺼운 안경을 쓴 듯한 눈과 입 밖으로 튀어나온 긴 앞니가 특징입니다. 비와 풍요를 가져오는 신으로, 아스테카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신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이리로포츠틀리가 아스테카의 고유의 신인데 반해, 틀랄록은 메소아메리카 전역에서 오랫동안 숭배된 신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지역마다 틀랄록을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20220824_73<틀랄록의 조수 틀랄로케, 아스테카, 1470 ~ 1515년경, 돌, 오스트리아 빈 세계박물관>

틀랄로케는 틀랄록이 땅에 비를 내리게 하는 것을 돕는 조수들입니다. 그들은 물병을 가지고 다녔는데, 비를 내리게 할 때는 이 물병을 깨트렸습니다. 사람들은 비가 내릴 때 나는 천둥소리를 틀랄로케가 물병을 깨트릴 때는 나는 소리라고 믿었습니다. 이와 같이 작은 틀랄로케 조각상을 커다란 틀랄록 항아리에 담아 신께 봉헌한 것으로 보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45<비의 신 틀랄록을 그린 항아리, 아스테카, 16세기 초, 토기, 멕시코 템플로마요르박물관>

두 마리의 뱀이 서로 얽혀 틀랄록의 눈과 눈썹을 나타내고 뱀들의 입으로 틀랄록의 입을 묘사했습니다. 비의 신 틀랄록은 템플로 마요르에서 가장 많이 만날 수 있는 신으로 토기와 크고 작은 석조 조각, 다양한 제단과 건물 장식 등에서 발견됩니다. 이에 반해 아스테카의 수호신 우이칠로포츠틀리의 조각상은 템플로마요르에서 한 점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우이칠로포츠틀리 신상은 아마란스 반죽으로 만들어 내구성이 약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53
<지하세계의 신 믹틀란테쿠틀리, 아스테카, 1430~1502년, 점토, 멕시코 템플로마요르박물관>

믹틀란테쿠틀리는 지하세계의 신으로 죽은 자와 조상의 영역을 다스립니다. 죽음을 맞이한 모든 사람은 지하세계에서 그와 대면하게 됩니다. 아스테카 신화에 따르면 창조의 신 케찰코아틀은 믹틀란테쿠틀리가 다스리는 지하세계에서 거인의 뼈를 가져와 새로운 인간을 만들어냈습니다. 이 조각상은 신성 구역에 있는 ‘독수리의 집’에서 거의 동일한 형태의 다른 조각상과 쌍으로 발견되었습니다. 본래 하나에는 파란색과 붉은색이, 다른 하나에는 검은색, 갈색, 붉은색이 칠해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머리에 있는 구멍에는 검은 곱슬머리 가발이 붙어 있었습니다. 갈비뼈 아래로 간과 쓸개가 튀어나와 있는데, 아스테카 사람들은 간에 ‘신성한 숨결’인 ‘이히요틀’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히요틀은 모든 인간에게 있는 세가지 영혼 중 하나로, 나머지 두 영혼은 각각 머리와 심장에 있었습니다. 발견당시 이 조각상은 수백 개의 조각으로 부서진 상태였습니다. 발굴하는 데만 5개월이 걸렸고 복원 작업은 거의 일년이 소요되었습니다. 복원된 모습은 높이 176cm, 무게 128kg에 달합니다. 아스테카 예술가들의 뛰어난 기술을 보여주는 훌륭한 작품 중 하나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우이칠로포츠틀리와 틀랄록
템플로 마요르 꼭대기에는 두개의 신전이 있었습니다. 북쪽은 비의 신 틀랄록을 위한 것이고, 남쪽은 아스테카의 수호신이자 전쟁과 태양의 신 우이칠로포츠틀리를 위한 것입니다. 두 신이 함께하면 습함과 건조함, 차가움과 따뜻함, 농업과 전쟁 등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이 세상, 그리고 인간의 삶과 관련된 모든 것을 상징합니다. 틀랄록에게 비를, 우이칠로포츠틀리에게 전쟁의 승리를 기원했습니다. 이로써 풍요로운 농작물과 전쟁의 전리품인 공물이 아스테카 사회의 경제적 토대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52
<두개골 장식 잔, 미스테카, 1507년경, 토기, 멕시코 국립인류학박물관>

본래 쌍을 이루는 잔 가운데 하나로, 1000개 이상의 토기가 포함된 대규모 봉헌물에서 발견했습니다. 목테수마 2세기 통치하던 1507년에 거행된 ‘새로운 불’ 의식에 바친 봉헌물로 보입니다. 잔에 칠해진 빨간 줄무늬는 전쟁과 재생의 신 시페 토텍을 상징하며, 두개골 장식은 촘판틀리를 떠올리게 합니다. 이 잔에는 제의에서 희생된 제물의 피를 담았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51
<풀케 술잔, 아스테카, 16세기 초, 천매암, 오스트리아 빈 세계박물관>

이 용기는 성스러운 제의에서 풀케를 담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풀케는 선인장의 일종인 용설란의 수액을 발효시켜 만든 알코올음료로 아스테카의 제의에서 필수적이었습니다. 용기의 윗부분에는 태양 원반을 장식하였고 원반 안에는 ‘움직임의 태양’을 나타내는 기호가 새겨졌습니다. 용기의 뒷면에는 52년을 상징하는 갈대 다발 두 개와 신의 형상이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46<촘판틀리에 진열한 두개골, 아스테카, 15세기 또는 16세기, 사람의 뼈, 멕시코 템플로마요르박물관>

양쪽에 커다란 구멍이 있어 두개골을 나무 장대에 꿰어 진열하였던 두개골의 벽 ‘촘판틀리’와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015년, 발굴조사단은 템프롤마요르의 서쪽에서 촘판틀리 유적을 발견했습니다. 아직 일부만 조사하였으나, 현재까지 1000여개 이상의 두개골을 발견했습니다. 대부분 젊은 남성들의 것으로 전쟁에서 패배한 적군과 제의 및 공놀이 경기에서 희생된 사람으로 추정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템플로마요르 20220824_47<두개골 가면, 아스테카, 15세기, 사람 뼈, 부싯돌, 조개껍데기, 황철석, 멕시코 템플로마요르박물관>

두개골 가면은 전투에서 패배한 정예 전사들의 두개골로 만들었습니다. 아스테카 왕의 화장용 항아리나 귀족들의 무덤에 이러한 두개골 가면을 함께 묻었습니다. 가면으로 불리지만 실제 가면처럼 착용하지는 않았으며, 제의용 머리장식이나 허리띠를 꾸미는데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죽음과 해골 = 생명과 사랑
아스테카 사람들은 돌아가신 조상을 위한 제의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조상들은 여전히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인생의 행로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도움을 준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멕시코에는 이러한 전통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널리 알려진 ‘죽은 자의 날’ 축제도 그중 하나입니다. 아스테카 예술에 해골과 뼈의 형상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이것을 처음 본 유럽인들은 심한 충격과 공포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들에게 해골과 뼈는 죽음, 악마, 주술을 연상시키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 오해였을 뿐입니다. 유럽 사람들은 ‘죽음의 이미지’를 떠올렸지만, 아스테카 사람들에게는 돌아가신 조상을 의미합니다. 죽음보다는 생명을, 파괴보다는 선조들의 사랑을 상징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스페인의 침략과 아스테카의 멸망
1519년 목테수마 2세가 통치하는 아스테카는 40여 개의 도시국가에 수백만명이 사는 거대한 국가였습니다. 면적이 200,000㎢ 이상으로 당시 메소아메리카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였습니다. 그러나 같은해 스페인의 정복자 에르난코르테스가 멕시코 만에 상륙하였고, 곧 이들에 의해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코르테스는 단 500명의 병사, 100명의 선원, 16마리의 말과 아프리카 및 쿠바 원주민 짐꾼과 함께 아스테카의 중심 네토츠티틀란으로 진격했습니다. 그리고 아스테카의 지배를 받던 많은 도시국가들이 코르테스의 편에 서서 그를 도왔습니다. 결국 테노츠티틀란은 1521년 8월 13일 함락되었고, 식민 도신인 멕시코시티로 바뀌게 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아스테카의 유산
아스테카는 500년 전에 멸망했지만 그 문화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숨쉽니다. 현대 멕시코 문화는 아스테카로 대표되는 토착문화와 스페인문화를 기반으로 성장했습니다. 토착 종교들과 기독교, 전통의학과 현대 의학, 토착 언어와 스페인어가 함께 공존하며, 독특한 양상으로 융합하여 멕시코 특유의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멕시코라는 국가명도 아스테카 사람들이 스스로를 불렀던 ‘메시카’라는 이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테노츠티틀란의 상징인 독수리와 선인장은 오늘날 멕시코 국기에 그려져 있습니다. 현재 약 150만 명의 사람들이 아스테카 언어인 나우아틀어를 사용하며, 공동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기회의 부족으로 인해 공동체를 떠난 이들도 많지만, 세계화의 변화 속에서 여전히 그들의 언어와 전통문화를 지켜가고 있습니다. 500여 년의 식문과 차별의 역사에도, 멕시코의 토착 문화는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2. ‘템플로 마요르’, 위키백과, 2023년
  3. ‘Aztecs’, Wikipedia, 2023년

[중앙박물관 조각.공예관] 불교조각,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진 불상들

불상은 부처를 형상화한 것을 말하며 불교가 전래된 이래로 부처의 사리를 모신 탑과 함께 중요한 신앙의 대상이었다. 불상은 크게 그 재료에 따라서 석조불상, 목조불상, 철조불상, 금동불상 등이 있으며, 새겨진 부처님의 모습에 따라서 석가여래, 비로자나여래, 아미타여래, 약사여래가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많은 불상들을 소장,전시하고 있는데 석굴암 본존불과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2점의 삼국시대 반가사유상을 소장하고 있다.  이외에 경주 감산사터에서 발굴된 미륵보살입상(국보)과 아미타여래좌상(국보) 등이 있으며,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초기에 만들어진 철불상이 여러점 볼 수 있다. 불전에 모시는 불상들은 유명 사찰에서 대대로 전해내려 오기때문에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고, 주로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에 크게 융성했다가 폐사된 절터에서 발굴된 불상들을 볼 수 있으며, 개인들이 소장했던 작은 금동불상들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발굴되고 있어 박물관이나 개인들이 소장하는 경우가 많다.

OLYMPUS DIGITAL CAMERA<중앙박물관 3층 조각.공예관>

석조불상

삼국시대 석조불상은 암벽에 돋을새김을 하여 표현했는데 중국의 영향을 받은 삼존불상 형태가 많았다. 7세기 중엽부터는 불상의 표현에 입체감이 강조되었으며 측면이나 뒷면의 묘사에도 관심을 두게 되었다. 통일신라 때에는 화강암을 조각하여 입체적인 모습을 보이는 석조불상이 주류를 이루어 신라 특유의 조형미와 조각 기법을 보여준다. 고려시대 석조불상은 신라 불상 양식을 계승하고 있으나 세부적인 표현이나 조각수법 등에서 뒤떨어진 면을 보이며 호족의 영향을 받아 강한 지방색을 보여준다.

경주 감산사 석조미륵보살입상(국보), 석조 아미타여래입상(국보)은 통일신라 성덕왕 때(719년)에 김지성이 부모의 명복을 위해 조성한 불상이다. 신체의 비례는 인체에 비례와 비슷하며, 각 비례에서 주는 전체적인 조형미도 뛰어난 편이다. 얼굴의 세부 표현도 섬세하며 사실적이다. 광배 뒷면에 불상을 조성한 내력에 대해서 기록해 놓고 있다.

중앙박물관 불교조각 불상 20220803_03<경주 감산사 석조미륵보살입상(국보), 석조 아미타여래입상(국보)>

감산사 미륵보살.아미타불,
두 불상은 경주의 감산사(甘山寺) 터에서 옮겨온 것으로 광배 뒷면에는 이 불상을 만든 사람, 만든 목적 등이 자세하게 새겨져 있다. 명문에 따르면, 이 불상들은 집사부시랑(執事部侍郞) 김지성이 부모의 은혜와 임금의 언덕에 보답하고자 성덕왕 18년(719)에 만들기 시작한 아미타불과 미륵보살이다. 불상을 만들던 도중 성덕왕 19년(720)에 김지성이 죽자 김지성의 명복을 비는 내용도 아미타불 광배 뒷면에 함께 새겨졌다. 미륵보살은 온화한 표정과 허리를 약간 비튼 자세를 보이며, 이미타불은 엄숙한 표정으로 곧게 선 자세를 하고 있다. 통일신라 8세기 전반 석조 조각의 수준을 잘 보여 주는 빼어난 작품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石彫 毘盧遮那佛 坐像)은 경북지역 절터에서 있었다고 전해지는 불상이다. 통일신라 말기인 9세기에 조성된 불상으로 지권인 손갖춤을 하고 있는 비로자나불을 형상화하고 있다. 사실적인 조각수법, 화려하고 생동감 넘치는 광배와 대좌 등 통일신라말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중앙박물관 불교조각 불상 20220803_01
<비로자나불(石彫 毘盧遮那佛 坐像), 통일신라 9세기, 중앙박물관 소장>

비로자나불은 온 누리에 가득 찬 진리의 빛을 형상화한 부처이다. 우리나라에서 비로자나불상은 8세기에 등장하여 9세기에 크게 유행하였는데,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보관을 쓰지 않은 부처의 모습으로 표현되는 것이 특징이다. 손갖춤으로는 한쪽 손으로 반대편 손가락을 감싸 쥔 지권인(智拳印)을 하고 있다. 이 비로자나불상은 얼굴이 동그랗고 표정이 현실적이며, 신체는 둔중하고 옷주름은 계단 모양으로 규칙적이다. 화려하고 생동감 넘치는 광배와 대좌는 통일신라 후반기 석불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부처가 설법한 진리가 태양 빛처럼 우주에 가득 비치는 것을 형상화한 것이 비로자나불이다. 화엄신앙의 비라자나불은 진리 그 자체를 뜻하는 법신불(法身佛)이기 때문에 형상화하기 어려운 것이었으나, 7세기 무렵 중국에서 불상이 만들어졌으며 우리나라에서는 9세기 널리 유행하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경주 남산 삼릉곡 6번째 절터에 있던 불상을 옮겨온 것이다. 석조약사여래좌상은 석가여래가 도를 깨닫는 순간을 표현한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는 약사여래의 모습을 하고 있다. 약사여래는 질병을 고쳐주는 부처로 둥근 약단지를 들고 있어 쉽게 구분할 수 있다. 광배에는 불상과 꽃무늬, 불꽃무늬로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으며 대좌에는 향로와 공양천인상을 새겨놓고 있다. 신체의 표현이나 옷주름 등에서 통일신라 전성기 불상의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화려한 광배 장식 등 9세기 불상의 특징도 같이 가지고 있다.

중앙박물관 불교조각 불상 20220803_04 <경주 남산 삼릉곡 제6사지 석조약사여래좌상>

석조 약사불 좌상(石彫 藥師佛 坐像), 통일신라 9세기, 경주 남산 삼릉곡
이 불상은 원래 경주 남산 삼릉곡 정상 가까이에 있는 마애대불(磨崖大佛) 건너편에 있던 것을 옮겨온 것이다. 약사불은 질병을 고쳐주고 재난에서 구해주며 음식과 옷을 주는 부처로 왼손에는 약단지를 들고 있다. 통통한 얼굴, 건장한 신체, 얌전하게 흘러내린 계단식 옷주름 등에서 통일신라 절정기인 8세기 불상의 여운이 보인다. 그러나 엄숙한 얼굴표현, 고개를 앞으로 숙인 자세, 화려하고 장식적인 광배와 대좌 등은 9세기 불상의 특징이므로 800년을 전후한 시기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약사불(藥師佛)
약사불은 모든 육체의 질병뿐만 아니라 무지의 병까지도 고쳐주는 부처로서 대의왕불(大醫王佛)이라고도 불린다. 이 부처는 둥근 약단지를 들고 있어 쉽게 알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불교조각 불상 20220803_08<부처, 석조 불두, 통일신라 8~9세기>

철조불상

철조불상은 중국 수나라 때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신라 때 등장하여 고려 때까지 유행하였다. 철불을 만들던 시기는 왕실의 권력이 흔들리고 지방 호족들이 세력을 키우던 시기이다. 지방호족들이 후원하여 많은 불상을 조성하면서 청동 대신 철을 이용하여 불상을 조성하게 되었다. 이전의 불상에 비해 투박하면서도 웅장한 모습을 보여준다.

하남 하사창동 철조석가여래좌상(보물)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철조불상으로 높이 2.8.m의 거대 불상이다. 석굴암 본존불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으나 세부표현이나 조각수법이 떨어지는 고려초기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무릎에 옻칠 흔적이 남아 있어 불상 전체에 옻칠을 한 다음 도금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초기 지방 호족세력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조성했던 거대 불상 중 하나이다.

중앙박물관 불교조각 불상 20220803_05 <하남 하사창동 철조 석가여래 좌상, 보물, 고려 10세기, 경기 하남 하사창동 절터 출토>

“보이지 않는 절대의 힘이 방안 분위기의 장엄함을 한층 조성해 준다는 느낌이다. 정면을 바라보는 얼굴을 앞에서 우러러도 좋지만 고요한 시간에 먼 곳에서 옆 얼굴을 바라보노라면 일점 속기(俗氣)없는 신비로운 검은 영상이 마치 슬픈 마음처럼 가슴을 일렁이게 해 줄 때가 있다.”
- 최순우, 『철조석가여래좌상』(1980년) -

철조불 좌상(鐵造 佛 坐像), 고려 10세기, 경기 하남 하사창동 절터, 보물
쇠로 만든 이 부처는 경기도 하남시 하사창동의 한 절터에 있던 것을 옮겨온 것이다. 지금도 하사창동의 절터에는 돌로 만든 대좌의 일부가 남아 있다. 이 부처는 높이가 2.88m에 무게가 6.2톤에 달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철불이다. 석굴암 본존불과 같은 형식의 옷차림과 손갖춤을 하고 있으나 허리가 급격히 가늘어진 조형감과 추상화된 세부 표현으로 미루어 통일신라 불상을 계승한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보인다. 부처의 양 무릎에는 딱딱하게 굳은 옻칠의 흔적이 남아 있어, 원래 불상 전체에 두껍게 옻칠을 한 다음 도금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포천 철조 여래좌상은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으며, 편단우견의 착의법 등 석굴암 본존불의 특징을 계승하고 있다. 조각수법이나 조형미가 통일신라 불상에 비해 떨어지며 부자연스러운 점 등은 고려초기 경기 북부 지방 불상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경기도 포천에서 출토된 불상으로 어떤 사찰에 있던 불상인지는 알 수 없다.

중앙박물관 불교조각 불상 20220803_07<철조 불 좌상, 고려 10세기, 경기 포천>

철조 불 좌상, 鐵造 佛 坐像, 고려 10세기, 경기 포천 출토
두 손이 모두 없어졌지만, 오른 손목의 위치로 보아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석가모니가 보드가야의 보리수 아래에서 도를 깨닫는 순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손갖춤)의 손갖춤을 취한 것으로 추정된다. 편단우견(偏袒右肩, 오른쪽 어깨는 드러내고 겉옷인 대의를 왼쪽 어깨와 오른쪽 허리에 걸친 모습)의 착의법, 무릎 앞의 부채꼴 주름 등에서 석굴암 본존불의 모습을 따르고 있으나, 허리가 길어진 부자연스러운 조형미 등으로 미루어 석굴암 본존불을 계승한 고려 초기 불상임을 알 수 있다. 이 부처에서 볼 수 있는 둥글고 온화한 얼굴, 항마촉지인의 손갖춤, 대의의 깃이 왼편 어깨에서 뒤집힌 점, 대의의 물결식 옷주름 등은 개성을 중심으로 한 경기 북부지역 불상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철조 비로자나불 좌상은 비로자나불을 형상화한 불상으로 여래(如來)의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 단정한 얼굴, 뛰어난 주조기술 등에서 통일신라 불상의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형식화된 옷주름 등 세부표현에서 사실성이 떨어지는 편이다.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초에 조성된 불상으로 추정된다. 출토 지역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

중앙박물관 불교조각 불상 20220803_11<철조 비로자나불 좌상, 통일신라 말 ~ 고려 초>

 철조 비로자나불 좌상, 鐵造 毘盧遮那佛 坐像, 통일신라 말 ~ 고려초
비로자나불은 온 누리에 가득 찬 진리의 빛을 형상화한 부처이다. 우리나라에서 비라자나불상은 8세기에 등장하여 9세기에 크게 유행하였는데,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여래(如來, 부처를 부르는 다른 말로 ‘진리의 체현자’ ‘열반에 다다른 자’라는 뜻) 모습으로 표현되는 것이 특징이다. 단정한 얼굴, 안정감 있는 자세, 표면에 이음매가 보이지 않는 뛰어난 주조 기술 등에서 통일신라 불상의 전통이 엿보인다. 그러나 형식화된 옷주름 등 세부 표현에서는 사실성이 떨어지는 고려 철불의 특징도 함께 나타낙 있어, 통일신라 말 고려 초에 제작된 불상으로 보인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보원사지 철조여래좌상은 쇠로 만든 불상으로 고려초인 11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두 손은 없어졌지만 손목의 형태 등으로 볼 때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는 석가모니를 형상화한 불상으로 보인다. 몸에 비해 큰 머리, 부자연스러운 옷주름 등 투박하면서, 호족세력의 힘을 과시하는 고려 초기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중앙박물관 불교조각 불상 20220803_02<서산 보원사지 철조여래좌상, 고려 11세기, 2022년>

 부처, 철조 불 좌상(鐵造 佛 坐像), 고려 11세기, 충남 서산 보원사 터 출토
쇠로 만든 이 부처는 충남 서산시 운산면 보원사 터에서 옮겨온 것이다. 두 손이 모두 없어졌지만 오른 손목의 위치로 보아 손갖춤은 석가모니가 보드가야의 보리수 아래에서 도를 깨닫는 순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항마촉지인으로 추정된다. 몸에 비해 큰 머리와 부자연스러운 옷주름 등은 고려 철불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 특히 강원도 원주에서 출토된 철불3구와 얼굴모습, 왼쪽 어깨에서 한 번 접혀져 있는 편단우견(偏袒右肩, 오른쪽 어깨는 드러내고 겉옷인 대의를 왼쪽 어깨와 오른쪽 허리에 걸친 모습), 왼팔이 접히는 곳에 표현된 리본 형태의 옷주름, 항마촉지인의 손갖춤 등에서 거의 동일한 수법을 보이고 있어 같은 조각가 집단이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불교조각 불상 20220803_09<부처, 철조 불두, 고려 10세기>

중앙박물관 불교조각 불상 20220803_10<부처, 철조 불두, 고려 10세기>

“이 부처님을 보는 순간 가벼운 마음의 흥분을 감출 수 없을 만큼 대번에 좋아졌다. 너그럽고도 앳된 얼굴의 싱싱하면서도 그윽한 미소 속에 스며진 더도 덜도 할 수 없는 참사랑의 간절한 뜻이 내 마음을 훈훈하게 어루만져 주었던 것이다. 마음이 어두울 때 바라보면 그 얼굴은 내가 네 마음 속을 헤아리노라 하는 듯, 혹은 이해하는 듯한 표정으로 굽어보는 것 같다.”
- 최순우, 『철조여래불두』(1980년)

금동불상

금동불상은 동을 부어 만든 후 금도금을 한 불상이다. 불교가 전래된 시기부터 만들어져 왔으며 석조불상과 함께 대표적인 불상을 만든 재료였다. 오늘날 예술적인 조형미와 작품성을 보여주는 불상들이 많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 이후 급격하게 사라지면서 소조불상과 목조불상으로 대체되었다.

금동 아미타삼존상은 방 극락정토을 관장하는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양쪽에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서 있는 삼존상이다. 발원문에 따르면 고려시대(1333년)에 조성되었으며 다양한 계층의 많은 사람들이 불상 조성에 참여하였다. 인체를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정형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중앙박물관 불교조각 불상 20220803_13<금동 아미타삼존상, 고려 1333년>

 금동 아미타삼존상, 고려 1333년
서방 극락정토를 관장하는 아미타불, 관음보살, 대세지보살의 삼존상이다. 양옆 두 보살상의 바닥판에 쓴 글에 따르면 1333년 장현과 부인 선씨의 시주로 불상이 제작되었다. 불상 안에 넣었던 복장물 조성 발원문에는 신분이 높은 사람부터 낮은 사람까지 다양한 계층의 많은 사람들이 기록되어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금동 관음보살 좌상이다. 초선초기에 조성된 불상으로 수월관음을 표현하고 있다. 기존의 불상과는 달리 세부적인 내용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중국 명나라의 영향을 받은 불상이다.

중앙박물관 불교조각 불상 20220803_14<금동 관음보살 좌상, 조선 초 15세기 경>

 금동 관음보살 좌상, 조선 초 15세기 경
관음보살이 가진 자비의 마음이 예술로 발현되어 성스러운 미의 경지에 도달한 상이다. 세운 무릎 위에 오른팔을 올리고 왼손으로 바닥을 짚은 자세은 수월관음 모습에서 연유하며, 전륜성왕이 취하는 자세라는 의미로 윤왕좌(輪王坐)라 부른다. 역삼각형 얼굴과 가늘고 긴 상체, 원형의 커다란 귀걸이와 온 몸을 휘감은 화려한 장신구는 명나라 영락 연간(1403~1424) 불상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2016년 조사에서 조선 15세기와 17세기 두 차례 복장물이 납입된 것이 확인되었으며, 조선 전기 직물 편 일부와 “뎡향(정향)”, “인삼(인삼)” 등 옛 한글이 표기된 포장 종이 등도 함께 발견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목조불상

목조불상은 나무를 조각하여 만든 부처와 보살의 형상이다. 목조불상은 주변에서 재료를 구하기 쉽고 조각하기도 용이하여 이른 시기부터 만들어졌으며 석조불상이 많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일본은 목조불상이 주를 이루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소조불상과 함께 많이 만들어 졌다. 조형적인 예술성이나 종교적인 표현 등이 돋보이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특색있는 고유의 불상의 형태를 보여준다.

조선후기(17~18세기)에 조성된 목조여래좌상이다. 조선후기 사찰 주불전인 대웅전에 모셔졌던 삼방불 중 동방 유리광(琉璃光) 정토의 약사불로 추정된다. 신체에 비해 머리를 크게 표현하고 있으며, 얼굴이나 신체를 단순하면서 간략하게 표현하고 있다. 고개를 앞으로 숙인 모습을 하고 있는데 불전에서 기도를 올리는 신도들이 불상의 얼굴을 올려다 볼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어떤 사찰에 있었던 것인지는 설명이 없다.

중앙박물관 불교조각 불상 20220803_06<목조 약사여래좌상, 조선 17~18세기, 중앙박물관>

부처, 목조불좌상(木造佛坐像), 조선 17~18세기
조선 후기에 널리 제작된 삼방불(三方佛) 중의 한 점이다. 삼방불은 일반적으로 가운데 석가불, 석가불의 왼쪽에 약사불, 오른쪽에 아미타불로 구성된다. 각기 중방, 동방, 서방을 관할하는 삼방불은 조선 후기 사찰에서 가장 중요한 전각인 대웅전에 봉안되었으며, 이 불상은 석가불의 왼쪽에 봉안된 동방 유리광(琉璃光) 정토의 약사불로 추정된다. 불상의 머리는 신체에 비해 크고 어깨는 움츠렸으며 고개를 앞으로 숙인 모습이다. 이러한 불상의 형태와 자세는 높은 불단에 봉안된 불상을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예불자의 시선을 고려하여 제작한 결과로 추정되며, 조선후기 불상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목조 보살입상은 조선후기 17세기에 조성된 높이 93cm의 비교적 큰 규모의 불상이다. 삼존불상 중 좌협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머리에 쓴 보관, 장신구 등 장식성과 화려한 세부표현이 특징인 불상이다.

중앙박물관 불교조각 불상 20220803_15<목조 보살입상, 조선 17세기 전반>

목조 보살입상, 조선 17세기 전반
화려한 의복과 장신구를 걸치고 손에 연꽃 가지를 든 보살입상으로, 조선 후기 불교미술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주는 상이다. 왼손을 위로 올리고 오른손을 내려 연꽃 봉오리가 달린 가지를 든 자세로 미루어 보아, 삼존상의 일부였다면 좌협시였을 가능성이 있다. 이 보살상은 상체에 내의와 천의, 하체에 군의와 요포를 겹겹이 입었고, 머리에 보관을 쓰고 가슴, 팔, 허리에 모두 장신구를 걸쳐 장식성이 풍부한 것이 특징이다. 두 팔의 좌우로 물결치며 흘러내리는 천의 자락과 통통한 얼굴 표현, 신체 구조의 뛰어난 조형성에서 조선 17세기 전반에 제작된 상으로 추측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도제불상

도제 여래 좌상은 흙으로 빚어 유약을 발라 구운 도제 불상으로 문헌 상에서 남아 있는 도제 불상의 사례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조선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중앙박물관 불교조각 불상 20220803_12<도제 여래 좌상, 조선후기>

도제 여래 좌상, 조선후기
흙으로 빚고 유약을 발라 구운 도제불상이다. 유약이 없는 부분을 보면 백자용 백토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1634년(인조12) 청의 사신이 요구한 물건 중 “번조석불(燔造石佛)”이 포함돼 있고, 정시한은 그의 <산중일기>에서 1687년(헌종 13) 금강산 보덕굴에서 “번자불(燔磁佛”을 보았다고 기록했다. 이 상은 문헌기록 속 도제불상의 존재를 입증하는 중요한 자료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불교조각
우리나라에 불상이 처음으로 소개된 때는 불교가 전래된 4세기 후반이지만 본격적으로 만들기 시작한 것은 6세기부터이다. 불상제작 초기에는 단순히 중국 불상을 모방하였으나, 점점 우리나라 특유의 조형감각이 두드러진 불상을 만들게 되었다. 삼국시대 고구려 불상이 사실적인 인체표현보다 강건한 기상을 강조하였다면, 백제불상은 정교함과 세련미가 돋보이며, 신라 불상에는 소박한 아름다움이 있다. 통일신라는 삼국 불상의 특징을 하나로 아우르는 한편 8세기에는 중국 당나라의 사실적인 조각 양식인 성당양식을 받아들여 조화와 균형을 이룬 이상적인 불상을 만들었다. 9세기부터는 중국의 영향에서 벗어나 새로운 불상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특히 중국이나 일본에서 유행하지 않던 항미촉지인(降魔觸地印, 석가모니가 보드가야의 보리수 아래에서 도를 깨닫는 순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손갖춤)을 한 불상이나 지권인(智拳印, 곧추세운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싼 손갖춤)을 한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눈에 보이지 않는 진리의 빛을 형상화한 부처)이 유행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새 왕조의 활력을 반영한 거대한 불상과 지역별로 특색있는 불상을 만들었다. 고려 후기에는 중국 원나라의 영향을 받은 불상을 만들기도 하였다. 조선시대는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누르는 정책을 따르던 시기였다. 그러나 초기에는 왕실이나 상류계층에서 불상 제작을 후원하였으며, 조선후기에는 여성과 지역민의 후원 아래 전국 각지에서 승려 조각가들이 집단을 이루며 불상을 제작하였다. 불교조각실에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대표적인 불상과 보살상을 시대별, 주제별로 전시하였다.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에 쇠와 돌로 만든 대형불상, 국보로 지정된 반가사유상과 금동으로 만든 작은 불상들을 통하여 우리나라 불교조각의 특징과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2. ‘불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소, 2023년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

충남 당진시 정미면 안국사지 절터에 있는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이다. 본존불을 중심으로 양쪽에 협시보살이 배치된 삼존석불이다. 본존물은 머리에 커다란 사각형 갓을 쓰로 있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얼굴이 신체에 비해 큰 편이며 몸체는 조형미가 없는 편이며 신체만 간략하게 표현하고 있다. 옆에 있는 보살상도 본존불과 비슷한 형태이다. 고려시대 지방호족들을 중심으로 조성했던 거대 석조불상들과 비슷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 20230316_01<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

커다란 돌에 신체를 얇게 조각하여 새겨 놓고 있는데 비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멀리서 보면 하나의 기둥처럼 보인다.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 20230316_11
<갓을 쓰고 있는 형태의 본존불>

오른쪽 협시보살은 인동당초문이 있는 높은 보관을 쓰고 있다.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 20230316_12
<오른쪽 협시보살>

왼쪽 협시보살은 얼굴이 남아 있지 않다.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 20230316_13
<왼쪽 협시보살>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 20230316_06
<오른쪽 아래에서 본 모습>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 20230316_04<옆에서 본 모습>

안국사는 안국산에 위치한 절터이다. 2003년 출토된 기와에서 요나라 연호가 적혀 있어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절터에는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 삼층석탑(보물), 맹향암각 등이 남아 있다. 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안국산에 안국사가 있다.’는 기록만 있을 뿐 사찰에 내력에 대해서 알려진 내용은 없다.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 20230316_05<당진 안국사지>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 및 석탑, 보물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의 조성시기는 2003년 발굴조사시 출토된 태평(요나라 성종 연호) 명문기와로 보아 고려 현종 12~21년(1021~1030년)으로 추정된다. 중앙의 본존불은 얼굴과 몸이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고 머리에 네모난 갓 모양의 보개를 쓰고 있다. 두 팔과 두 손이 신체에 조각되어 있고, 좌우에 있는 협시보살도 본존불과 같은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불상 하단의 석탑은 원래 5층일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는 1층에 1매의 몸돌만 남아 있고 그위에 4매의 지붕틀이 겹쳐져 있으며 받침부의 구조는 매우 간략하다. 1층 몸톨의 네 모서리에 기둥 형태가 표현되어 있고 3면에는 여래좌상, 1면에는 문고리형이 조각되어 있어 4면에 불상을 조각하는 기본 형식에서 벗어난 특이한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은 형태의 불상과 석탑은 고려시대 충청도 지방에서 많이 나타난 양식으로 혼란기 백성들이 마을 공동으로 세운 것으로 거칠고 섬세하지는 않지만 종교적인 구원사상을 넘어 힘든 현실세계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노력한 지역공동체의 모습이 엿보인다. (안내문, 당진시청, 2023년)

<출처>

  1. 안내문, 당진시청, 2023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3.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3년
  4. 홈페이지, 당진시청,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