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서원/향교

청도 선암서원, 구한말 서원 훼철 이후 서당으로 다시 지어진 곳

경북 청도군 금천면 신지리 마을에 있는 선암서원이다. 삼족당 김대유와 소요당 박하담을 모시기 위한 서원으로 조선 선조 때(1567년)에 향현사라는 사당으로 처음 세워졌다 현재의 위치로 옮긴후 선암서원이라 하였다. 구한말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졌다가 박하담의 후손들이 서당으로 다시 지었다.

일반적인 서원과는 달리 사당이 없고 강당이 있는 선암서당과 살림집인 안채로 구성되어 있다. 선암서당은 앞면 5칸.옆면 2칸 규모이며, 문집 목판 등을 보관했던 장판각이 있다. 운문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낙동강 지류인 동창천 옆 경치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청도 선암서원 01-20200106청도 선암서원. 구한말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된 후 서당으로 다시 지어진 곳이다.

청도 선암서원 03-20200106서당으로 다시 지어진 강학공간. 큰 규모의 강당 건물과 사랑채, 목판을 보관했던 장판각이 있다.

청도 선암서원 04-20200106‘선암서당’ 현판이 걸려 있는 강당. 앞면 3칸의 강당 형태 건물로 가운데 넓은 대청마루를 두고 양쪽에 온돌방을 두고 있다.

청도 선암서원 05-20200106일상적인 생활공간인 사랑채. 행각 형태의 건물로 왼쪽편은 사랑방이, 오른쪽은 창고 등이 있다.

청도 선암서원 09-20200106살림집이 있는 안마당. 사랑채 한쪽편에 있는 창고가 보인다.

청도 선암서원 02-20200106선암서원 앞을 흐르는 낙동강 지류인 동창천.

청도 선암서원 07-20200106담장 바깥쪽 동천을 따라 이어지는 숲길.

청도 선암서원 06-20200106서당이 있는 마당을 출입하는 작은 출입문.

청도 선암서원 08-20200106출입문 앞에서 내려다 보이는 동창천. 경치가 빼어난 곳에 서원이 자리잡고 있다.

선암서원, 경북 청도군 금천면 신지리
이 건물은 삼족당 김대유, 소요당 박하담의 위패를 모시는 곳으로 원래 매전면 동산동 운수정에서 향현사로 건립되었으나 조선 선조 10년(1577)에 군수 황응규가 지금의 위치로 옮기고 선암서원으로 개칭하였다. 고종 15년(1878)에 다시 중건되고 선암서당으로 고쳐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건물은 강당인 소요당, 안채, 사랑채인 득월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선암서원 건축이 특징은 주택에서 서당으로 쓰일 건물이 추가된 유형이라고 할 수 있으며, 서원이나 서당보다는 지방 향리초호의 저택으로 더 가치가 있다. 선암서당의 뒤편 장판각에는 보물로 지정된 배자예부운략판목과 지방문화재 해동숙소학판목, 14의사목록판목 등이 보관되어 있어 한국학의 보고라 불렸다. 현재 이 유물들은 청도박물관과 안동 한국국학진흥원에 전시.보관 중이다. (안내문, 청도군청, 2020년)

<출처>

  1. 안내문, 청도군청, 202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상주 상주향교, 상주목 관아에서 설치.운영했던 중등교육기관

경북 상주시 신봉동에 있는 옛 상주목 관아에서 운영했던 중등교육기관인 상주향교이다.  상주향교가 언제 처츰 세워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조선초 감영이 설치되었던 상주목의 고을 규모나 위상 등을 고려해 볼 때 향교가 처음 세워졌던 고려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상주향교 건물들은 조선초 세종 때 처음 지어진 후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중수하였으며 그후 여러차례 중.보수가 계속되어 오다가 1961년 남산중학교 교실로 사용되고 있던 명륜당 등이 화재로 소실되면서 옛 건물은 대성전만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옛 상주목관아에서 운영했던 중등교육기관인 상주향교. 경상감영이 설치되었던 상주목의 규모와 위상에 걸맞게 크고 웅장하게 지어졌다. 일제강점기 이후 남산중학교 교사로 사용되기도 했으나 지금은 옛모습과 규모를 복원해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상주향교 출입문인 문루. “남루”라 적힌 현판이 걸리 2층 누각 건물로 앞면 5칸으로 상당히 큰 문루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모습. 일반적인 문루와는 달리 양쪽에 1칸씩 온돌방이 있는 날개채를 달아내어 다른 분위기를 주고 있다.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한 공간으로 교육기능이 남아 있었던 상주향교의 성격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강학공간의 중심건물인 명륜당. 일제강점기 이후 남산중학교 교사로 사용되다가 소실된 것을 최근에 복원하였다. 앞면 5칸의 상당히 큰 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유생들이 기숙사인 동재. 가운데 1칸 대청마루를 두고 양쪽에 2칸씩 온돌방을 두고 있다. 많은 유생들이 머물렀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맞은편 서재.

OLYMPUS DIGITAL CAMERA제향공간인 대성전 내삼문.

OLYMPUS DIGITAL CAMERA대성전은 앞면 5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전국 향교 중에서도 상당히 큰 규모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성전 앞 동무. 선현들을 모시는 공간으로 앞면 10칸의 상당히 큰 규모의 거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맞은편 서무.

OLYMPUS DIGITAL CAMERA명륜당 동쪽에 위치한 건물.

OLYMPUS DIGITAL CAMERA현재 유림들의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는 건물. 보통 유림회관이라 부른다.

상주향교 대성전
이 건물은 조선초에 건립되었으며, 정확한 처음 건립 연대는 알 수 없고 세종 8년(1426)에 판목 조치가 남루를 세웠고, 성종 15년(1485)에는 목사 강구촌이 성전과 재.루를 중수하였다. 임진왜란 떄 완전히 불탄 후 광해군 10년(1618) 목사 정호선이 정경세와 더불어 성묘.동서무.명륜당.동서재 등을 중건하였다. 고종 29년(1892) 목사 유병주가 다시 중건한 후 여러번의 중.보수가 이루어져 오다가 명륜당을 1949년에 상주고등공민학교 교실로, 1961년에는 남산중학교 교실로 사용하다 소실되었다. 그 후 1989년 내삼문 신축, 1991년 명륜당 복원, 1992년 서재 복원, 1994년 고직사 이건, 1995년 외삼문 신축 등이 이루어져 어느 정도 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웅장한 건물로 상당히 큰 규모(정면 10칸)의 동.서무와 함께 대설위 향교로서의 위용을 읽게 한다. (안내문, 상주시청, 2013년)

<출처>

  1. 안내문, 상주시청, 2013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0년


 

상주 도남서원, 정몽주 등을 배향하기 위해 지역 유림들이 세운 서원

경북 상주시 도남동에 있는 도남서원이다. 조선중기 선조 때(1606년) 정경세를 중심으로 지방유림들이 당시 상주목사였던 류성룡의 품의를 받아 정몽주, 김굉필, 정여창, 이언적, 이황을 모시기 위해 처음 세워졌다. 이후 노수신, 유성룡, 정경세가 추가로 배향되었다. 조선후기 숙종 때 ‘도남서원’이란 현판을 하사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선현들을 모신 서원이지만 지방유림들이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교육 중심의 서원이다. 구한말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어 옛 건물들은 대부분 없어졌다가 최근에 다시 복원되었다.

경내에는 사당인 도정사, 강당인 일관당, 누각인 정허헌, 출입문인 입덕문이 경사진 언덕에 일렬로 배치되어 있으며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서재와 전사청, 고직사 등의 건물들이 있다. 옛모습을 그대로 복원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낙동강이 내려다 보이는 경치좋은 곳에 안동 도산서원과 비슷한 형태로 건물들을 배치해 놓았다.

OLYMPUS DIGITAL CAMERA상주 도남서원. 서원으로 구한말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던 것을 최근에 복원하였다. 상주지방을 대표하는 서원으로 낙동강변 경치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도남서원 출입문인 입덕문

OLYMPUS DIGITAL CAMERA낙동강 경치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세워진 상당히 큰 규모의 누각인 정허루.

OLYMPUS DIGITAL CAMERA정허루에서 강당으로 오르는 계단

OLYMPUS DIGITAL CAMERA강당 건물인 일관당.

OLYMPUS DIGITAL CAMERA아래쪽에 있는 원래 강당인 일관당이었다는 건물. 지금은은 고직사 건물처럼 사용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도남서원 현판, 조선시대

창건 당시 정경세는 원호의 제정 등 제반사항을 유성룡에게 품의하여 정했는데, 그 바탕에는 상주를 영남유학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하려는 큰 뜻이 있었다. 서원 명칭인 ‘도남’은 정자가 제자 양시를 고향으로 보낼 때 ‘내 도가 남쪽으로 가는구나’라고 한 말에서 유래한다. (안내문, 상주박물관,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동재인 손학재

OLYMPUS DIGITAL CAMERA서재인 민구재. 그 옆에 장판각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사당인 도정사.

OLYMPUS DIGITAL CAMERA제사를 준비하는 전사청

OLYMPUS DIGITAL CAMERA도남서원 앞 표지석. 그 뒤로 낙동강과 상주보가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도남서원 상량문, 조선시대

정경세가 지은 도남서원 상량문이다. 영남에서 일어나 전해진 도학의 정맥이 이 서원을 통해 천년이나 이어질 것을 기원하는 내용이다. 정경세는 원우의 제도와 위치, 원호의 제정, 각종 예식문의 찬솔 등 제반사항을 앞에서 지휘했다. 이로써 정경세는 사후 2년 뒤인 1635년에 사후 2년 뒤인 1639년에 자신도 추배되었으며, 당시 봉안문은 전식이 지었다. (안내문, 상주박물관,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도남강학계안과 조선팔도 서원록(도남서원이 적혀 있다.)

도남서원
1606년에 창건되어 1676년에 사액서원이 되었으며, 1871년(고종 8)에 국령으로 훼철되었으나 향토 유림에서 복원하여 지금의 모습에 이른다. “도남”이란 명칭은 송나라 정자가 제자 양씨를 고향으로 보낼 때 “우리의 도가 장차 남방에서 행해지리라”한 말에서 비롯된 것으로 조선의 유학 전통은 바로 영남에 있다는 자부심에서 명명한 것이다. 서원에는 정몽주, 김굉필, 정여창, 이언적, 이황, 노수신, 류성룡, 정경세, 이준 선생을 모시고 해마다 춘추향사를 지내고 있다. 낙동강가에 자리잡은 서원에서 바라보는 경관과 정취는 매우 수려하다. (안내문, 상주박물관, 2019년)

<출처>

  1. 안내문, 상주시청, 2019년
  2. 안내문, 상주박물관,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9년

 

상주 옥동서원 (사적 532호), 조선초 황희 정승을 모신 서원

경북 상주시 모동면 수봉리에 있는 옥동서원(사적 532호)이다. 이 서원은 고려말.조선초에 활동한 황희 선생을(1363 ~ 1452년)를 모시기 위해 세워졌다. 조선 중종 때(1518년) 황희의 영정을 모신 영당을 세우면 시작되었다. 조선후기 숙종 때 현재의 위치에 사당을 옮기고 강당을 지으면서 서원의 모습을 갖추었으며 정조 때(1787년)에 ‘옥동서원(玉洞書院)’ 현판을 하사받으면서 사액서원이 되었다. 조선후기에 전식, 황효헌 황뉴 등이 추가로 배향되었다. 구한말 서원철폐령 때 황희를 모신 서원 중 유일하게 훼철되지 않은 중요한 서원이다.

서원은 문루인 회보문, 강당인 온휘당, 사당인 경덕사가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서재가 없는 등 부속시설들이 많지 않다. 후학을 양성하는 강학기능이 약화되고 선현을 모시는 제사기능이 중시된 17~18세기 서원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OLYMPUS DIGITAL CAMERA상주 옥동서원(사적 532호). 조선초 명재상 황희를 모신 서원으로 구한말 서원철폐령에 훼손되지 않은 중요 서원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회보문’이러 적힌 현판이 걸려 있는 문루.  앞면 5칸의 2층건물이다. 1층은 출입문으로, 2층은 가운데 넓은 대청마루를 두고 양쪽에 온돌방을 두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문루 바깥쪽 난간이 있는 마루.

OLYMPUS DIGITAL CAMERA옆족에서 본 모습. 옆면 3칸으로 앞쪽에 난간이 있는 툇마루를 두고 있다. 1층은 난방시설로 사용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강당에서 본 문루. 강당 앞 마당을 축대를 쌓아 조성하여 문루 2층과 같은 높이를 만들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옥동서원’이란 현판이 걸려 있는 강당. 강당은 앞면 5칸의 전형적인 서원 강당 건물 형태를 하고 있다. 가운데 3칸은 넓은 대청마루를, 양쪽에 1칸씩 온돌방을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옥동서원’이라 적힌 현판. 조선후기 정조때 국왕이 현판을 하사한 사액서원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강당 대청마루. ‘온휘당’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오른쪽 온돌방에는 탁장재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맞은편 방에는 ‘착로재(斲露齋)’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탁장재 온돌 아궁이. 온돌방 바깥쪽에는 난간이 있는 툇마루를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강당. 양쪽 온돌방에는 아궁이 위로 서적들을 보관하는 책장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강당 옆 관리사를 출입하는 작은 협문.

OLYMPUS DIGITAL CAMERA강당 뒷편 마당에는 제사를 준비하는 공간인 전사청 건물이 있다. 제사를 올리는 기능을 중시했던 18~19세기 서원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경덕사 삼문.

OLYMPUS DIGITAL CAMERA사당인 경덕사. 앞면 3칸의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전형적인 사당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황희초상, 조선시대

조선 세종 때의 재상인 황희의 초상화이다. 옥동서원 소장 자료에 따르면 황희 생전인 62세(1424) 때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비단에 채색된 형태이며, 초상화의 표현이나 묘사 등을 고려했을 때 전체적으로 고식을 따르고 있다. 황희.전식.황효헌.황뉴를 모신 사액서원이자 미훼철 서원인 옥동서원(사적 532호)에는 이 밖에 황희 초상 모사본 3본이 전해져 내려온다.

OLYMPUS DIGITAL CAMERA옥동서원 앞 들판.

상주 옥동서원, 사적 532호, 경부 상주시 모동면 수봉리
이 서원은 방촌 황희(1363 ~ 1452년) 선생의 영정을 봉안하여 존현하고, 교학하던 사학기관으로 1518년(중종 13) 백화서원이 효시가 되었다. 당초 신덕리(현재 서원의 북쪽)에 백옥영당으로 자리했으나, 1715년(숙종 41)에 이곳 백옥봉 산자락 남동쪽으로 옮겨 사당인 경덕사를 이건하고, 1716년 강당인 온휘당을 지었으며, 이후 1789년(정조13)에 옥동서원으로 사액받아 개칭하였다. 배향선현으로는 세종조의 명재상이요, 청백리인 방촌 황희 선생을 비롯하여 사서 전식, 축옹 황효헌, 반간 황뉴 등의 명현을 배향하였다.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시에도 훼철되지 않은 전국 47개 서원 중의 하나로 역사적, 건축사적 가치를 높이 인정받아 2015년.11.10자로 지방문화재 기념물에서 국가지정 문화재 사적(제532호)으로 승격되었다. (안내문, 상주시청, 2019년)

<출처>

  1. 안내문, 상주시청, 201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

나주 창계서원, 조선후기 학자 임영을 모신 서원

전남 나주시 다시면 가운리에 있는 창계서원이다. 조선후기 대제학을 지낸 임영을 모신 서원으로 숙종 때인 1711년 처음 세워졌다. 구한말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서원이 있던 자리에 재실인 영성각이 세워졌다가 최근에 사당을 다시 지으면서 서원으로 복원되었다. 조선후기 전국각지에 많은 서원 중의 하나로 교육기능보다는 문중을 대표하는 인물을 모시는 제향공간의 성격이 강한곳이다.

SANYO DIGITAL CAMERA나주 창계서원.

SANYO DIGITAL CAMERA솟을대문을 하고 있는 문간채

SANYO DIGITAL CAMERA서원 강당 건물. 창계서원이 훼철된 후 1907년 집안 제사를 위해 그 터에 지은 재실인 영성각 건물이다. 교육을 하던 강당이기보다는 제사를 준비하고 문중회의를 하는 공간이다.

SANYO DIGITAL CAMERA뒷편에 있는 사당을 최근에 다시 지으면서 창계서원이 복원되었다.

창계서원, 나주시 다시면 가운리
창계 임영(1649~1696)선생을 모신 서원, 임영의 자는 덕함이요, 본관은 나주이시고, 창계는 그의 호이다. 일찍이 문과에 급제, 벼슬은 부제학, 대사헌에 이르렀으나, 일생을 학문 연구에 힘써 큰 업적을 남기신 호남이 배출한 빼어난 학자이기에 훌륭한 스승으로 길이 추모하고 사표로 삼기 위해 서원을 건립한 것이다. 창계서원은 숙종 37년(1711), 회진 마을에 세워졌던 바 영조 43년(1767) 무렵 중건을 하면서 이곳 신걸산 아래로 옮겨지게 되었다. 19세기 말 전국적으로 단행했던 서원철폐로 이 서원 역시 훼철을 당하고 말았는데 후일 그 터에 영성각이 세워졌다. 근래 민족 문화유산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높아 지면서 창계서원을 복원해야 한다는 생각이 힘을 얻어 본 서원은 다시 복원 되기에 이르렀다. 원래의 위치에 선생의 위패를 모신 창계사원  청계사와 건순문이 경향의 뜻 있는 인사들과 문중의 협찬을 받아 2000년 3월 중건된 것이다. 기존의 건물인 영성각은 서원의 강당으로 함께 쓰이고 있다. (안내문, 나주시청, 2009년)

<출처>

  1. 안내문, 나주시청, 200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