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고택

봉화 닭실마을 석천계곡(명승)과 석천정

경북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에 있는 석천계곡(명승)과 석천정(石泉亭)이다. 석천계곡은 닭실마을 북쪽을 흐르는 동막천과 마을 앞을 흐르는 창평천이 마을 서쪽에서 합류하여 작은 협곡을 이루면서 흐르는 곳이다. 수량이 풍부하며 기암괴석이 있는 좁은 계곡으로 맑은 개울물이 흐로고 있어 조용하면서도 풍치가 아름다운 곳이다. 이곳에는 권벌의 아들 권동보가 지은 정자 건물인 석천정이 있다.

봉화 닭실마을 석천정과 석천계곡(명승) 14-20221028<봉화 닭실마을 석천계곡(명승)>

석천정은 닭실마을 종가인 청암정에서 800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봉화읍으로 연결되는 오솔길에 위치하고 있다. 조용하고 한적한 곳에 위치하고 있지만 일반적 정자에 비해 규모가 상당히 큰 편이다. 조선시대 청암정은 경치가 좋은 명소이자 봉화읍을 지나는 주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어 손남들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닭실마을을 찾은 방문객들이 묵을 수 있도록 많은 건물들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봉화 닭실마을 석천정과 석천계곡(명승) 01-20221028<봉화 닭실마을 석천정>

정자는 앞면3칸 옆면 2칸의 건물과 앞면 2칸반 건물이 연결된 형태이다. 정자 옆에는 작은 별채가 있으며 담장 바깥쪽에도 독립된 별채 건물이 있다.

봉화 닭실마을 석천정과 석천계곡(명승) 03-20221028<석천정>

별채는 앞면 3칸 규모로 부엌과 온돌방이 있는 작은 건물로 손님들이 묵었던 곳으로 보인다.

봉화 닭실마을 석천정과 석천계곡(명승) 02-20221028<작은 별채>

바깥에 있는 별채는 온돌방과 큰 마루가 있는 독립된 건물로 별도의 손님이 묵을 수 있도록 배려한 것으로 보인다.

봉화 닭실마을 석천정과 석천계곡(명승) 17-20221028<바깥에 있는 별채>

석천계곡은 마을 앞을 흐르는 비교적 큰 하천인 창평천과 청암정 북쪽을 흐르는 동막천이 합류하여 작은 산을 휘감고 흐르고 있다. 수량은 비교적 풍부하고 계곡에는 바위가 많아 물이 상당히 맑아 보인다.

봉화 닭실마을 석천정과 석천계곡(명승) 08-20221028<청암정 앞을 흐르는 동막천>

봉화 닭실마을 석천정과 석천계곡(명승) 11-20221028<닭실마을 앞을 흐르는 창평천>

문수산을 분수령으로 남서류하는 창평천과 닭실마을 뒤에서 흘러 내리는 동막천이 유곡 앞에서 합류하여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이곳을 흘러 석천이라 한다. (안내문, 봉화군청, 2022년)

봉화 닭실마을 석천정과 석천계곡(명승) 10-20221028<창평천을 따라 석천정으로 연결되는 길>

봉화 닭실마을 석천정과 석천계곡(명승) 12-20221028<석천계곡 입구>

봉화 닭실마을 석천정과 석천계곡(명승) 13-20221028<기암괴석 사이를 흐르는 개울물>

봉화 닭실마을 석천정과 석천계곡(명승) 16-20221028<마을에서 흘러내려오는 석천계곡>

봉화 닭실마을 석천정과 석천계곡(명승) 05-20221028<석천정 아래>

봉화 닭실마을 석천정과 석천계곡(명승) 04-20221028<석천계곡과 석천정>

봉화 닭실마을 석천정과 석천계곡(명승) 07-20221028<봉화읍 내성천으로 흘러 내려가는 개울>

석천계곡은 맑은 물과 울창한 송림, 기암괴석들로 이루어져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척천정 정자가 있어 더욱 고아한 분위기를 주며 많은 인파가 찾고 있는 명소이다. 석천계곡과 가까운 거리에 권씨종가와 청암정 및 삼계서원, 충재유물전시관 등 조선시대 유교문화 유산이 산재해 있다.  (안내문, 봉화군청, 2022년)

<출처>

  1. 안내문, 봉화군청,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봉화 닭실마을 청암정(靑巖亭, 명승)

경북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에 있는 청암정(靑巖亭, 명승)이다. 조선중기 문신 권벌이 살았던 종가 옆에 위치하고 있다. 정자는 거북모양 바위에 위에 세워졌는데 주변에는 물이 흐르며 그 바깥으로 울창한 나무울타리가 있다. 퇴계 이황을 비롯하여 당대 학자들이 방문하여 학문을 교류했던 곳으로 관련된 많은 유물들이 전해오고 있다. 정자 앞에는 권벌이 공부를 했던 별채 건물인 충재(冲齋)가 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정자, 바위, 고목이 작은 숲을 이루고 있는 전통정원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봉화 닭실마을 청암정(명승) 01-20221028<봉화 닭실마을 청암정(명승)>

봉화 닭실마을 청암정(명승) 06-20221028<충재박물관 마당에서 보이는 청암정과 출입문>

거북모양의 바위 위에 정자를 세워놓고 있다. 거북바위 주위로 냇물을 끌여들여 작은 못을 조성하고 있다. 거북이 물위에 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연못 위에 돌다리를 만들어 건널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봉화 닭실마을 청암정(명승) 02-20221028<연못을 건너는 돌다리와 정자>

건물은 앞면 4칸, 옆면 2칸 규모이다. 1칸은 문이 있는 온돌방이며 나머지 3칸은 넓은 대청마루를 하고 있다. 온돌방은 양쪽에 누마루를 달아내어 주변 경치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봉화 닭실마을 청암정(명승) 22-20221028<청암정 정자 건물>

봉화 닭실마을 청암정(명승) 16-20221028<온돌방 바깥쪽 누마루>

봉화 닭실마을 청암정(명승) 21-20221028<반대편 누마루>

넓은 대청마루에는 이곳을 다녀간 유력인사들이 남겨둔 글과 글씨들이 남아 이다. ‘청암정(靑巖亭)’이라 적힌 현판의 글씨는 남명 조식이 쓴 글이라 전하고 있으며, ‘청암수석(靑巖水石)’이라 적힌 현판은 당대 명필이자 전서체의 대가로 손꼽히는 미수 허목이 쓴 글씨이다. 퇴계 이황이 청암정을 주제로 지은 시를 적은 현판인 <청암정제영시>가 있었다.

봉화 닭실마을 청암정(명승) 15-20221028<청암정 대청마루, ‘청암정’이라 걸린 현판이 보인다.>

봉화 닭실마을 청암정(명승) 20-20221028<’청암수석(靑巖水石)’이라 적힌 현판>

SANYO DIGITAL CAMERA<’청암수석’ 글씨 원본, 충재박물관>

SANYO DIGITAL CAMERA<’청암정제영시’, 충재박물관>

정자 앞 마당에는 충재 권벌(權橃, 1478 ~ 1548년)이 공부를 하던 작은 별채 건물이 충재(冲齋)가 있다. 앞면 3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작은 건물로 혼자 지내면서 공부하기에 좋은 건물이다.

봉화 닭실마을 청암정(명승) 19-20221028<청암정에서 내려 보이는 충재>

‘충재’는 그의 호로 그가 이 별채 건물을 좋아했던 것으로 보인다. 건물 1칸은 작은 마루로 되어 있는데, 공부할 때 청암정 경치를 볼 수 없도록 판문을 달아 놓았다.

봉화 닭실마을 청암정(명승) 12-20221028<별채 마루>

봉화 닭실마을 청암정(명승) 11-20221028<온돌방>

봉화 닭실마을 청암정(명승) 05-20221028<뒷편에서 본 별채>

청암정이 있는 거북바위 둘레에는 개울에서 끌어들인 물이 연못을 이루면서 흐르고 있으며 그 주위에는 왕버들과 단풍 등 다양한 나무들이 심어 놓고 있다. 왕버들은 오랜 세월을 보여주는 고목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넓지는 않지만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봉화 닭실마을 청암정(명승) 23-20221028<청암정에서 내려다 보이는 연못과 고목들>

봉화 닭실마을 청암정(명승) 14-20221028<동쪽편 왕버들>

봉화 닭실마을 청암정(명승) 25-20221028<서쪽편 왕버들>

봉화 닭실마을 청암정(명승) 04-20221028<바깥에서 보이는 청암정>

봉화 닭실마을 청암정(명승) 13-20221028<권벌 종가>

봉화 닭실마을 청암정(명승) 21-20221028<바깥에서 본 청암정 정자>

SANYO DIGITAL CAMERA<종가에서 보이는 청암정>

청암정(靑巖亭)
조선 중종 떄의 문신 충재 권벌선생의 유적지로 종가 우측에 위치하며 거북바위 위에 건립되었다. 정자 둘레로 물이 흐르고 그 밖은 나무울타리가 쳐있으며 동,남,북쪽으로 3개의 문이 있으며 정자 1동 외 충재선생이 공부하던 별채가 있으며, 바로 옆에는 충재유물 전시관이 있다. (안내문, 봉화군청, 2022년)

<출처>

  1. 안내문, 봉화군청,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22년
  4. 위키백과, 2022년

울진 평해황씨 해월종택

경북 울진군 기성면 해월헌길에 있는 평해황씨 해월종택(海月宗宅)이다. 경북 울진지역을 대표하는 상류층 저택으로 ‘ㅁ’자형 본채와 ‘-’자형 정자, 사당, 방앗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채는 앞면 7칸, 옆면 6.칸 규모로 앞쪽에 중문과 사랑채가, 중문 안쪽에 ‘ㄷ’자형으로 안채 살림집이 배치되어 있다. 큰사랑채 역할을 하는 정자는 원래 다른곳에 있던 것을 19세기에 후손들이 종택 옆으로 이전하였다. 정자 뒷편 사당은 불천위 조상을 모시는 전형적인 양반가옥 사당이다.

울진 평해황씨 해월종택 01-20220711<울진 평해황씨 해월종택>

대문채는 1990년대에 새로 지은 건물로 대문과 문간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울진 평해황씨 해월종택 07-20220711<대문채>

울진 평해황씨 해월종택 03-20220711<안쪽에서 본 대문채>

‘ㅁ’자형 본채는 앞쪽에 중문과 사랑채로 구성되어 있다. 작은 사랑채 역할을 하는 사랑채는 안채와 연결되어 본채를 구성하고 있지만 앞면 3칸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독립적인 건물로 원래 큰 사랑채였음을 알 수 있다.

울진 평해황씨 해월종택 04-20220711<본채>

울진 평해황씨 해월종택 10-20220711<사랑채>

안채는 중문을 통해 출입할 수 있는데 가운데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방과 부엌 등이 배치되어 있다.

울진 평해황씨 해월종택 02-20220711<안채를 출입하는 중문>

울진 평해황씨 해월종택 12-20220711<옆에서 본 안채>

정자는 ‘해월헌’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건물로 원래 다른곳에 독립적으로 있는 정자 건물인데 19세기에 후손들이 현재의 위치로 옮겨 큰 사랑채로 사용하고 있다. 건물은 앞면 4칸, 옆면 1.5칸 규모로 팔작지붕을 하고 이다. 앞쪽에 툇마루를 달아내고 난간을 설치하여 누마루처럼 꾸며 놓았다.

울진 평해황씨 해월종택 08-20220711<정자>

울진 평해황씨 해월종택 14-20220711<’해월헌’ 현판이 걸려 있는 정자>

울진 평해황씨 해월종택 09-20220711<정자 앞 마당>

정자 뒷편에 있는 사당은 앞면 3칸의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이다. 집안의 불천위 조상으로 여겨지는 해월 황여일(1556~1662년)의 신위를 모시고 있다.

울진 평해황씨 해월종택 11-20220711<사당>

안채 옆에는 방앗간이 있어 대지주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울진 평해황씨 해월종택 15-20220711<안채 옆에 있는 방앗간>

고택 앞에는 후손으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였던 황만영이 살았던 작은 초가집이 있다.

울진 평해황씨 해월종택 05-20220711<독립운동가 황만영선생 가옥>

울진 평해황씨 해월종택
이곳은 황여일(1566~1622년)의 종택이다. 황여일의 본관은 평해이며, 자는 회원, 호는 하담.해월.만귀이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문장으로 이름났으며, 선조 때 변무진주사 서장관이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고 임진왜란 때 권율의 종사관으로 공을 세워 선무원종공신녹권 2등을 받았다. 광해군 때 동래부사.공조참의를 지냈으며, 가선대부 이조참판에 증직되었다. 해월종택은 뒤편의 야산을 등지고 안채, 정자와 사당이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안채를 중심으로 서쪽에는 방앗간채, 동쪽에는 정자와 사당이 있으며, 남쪽 앞에는 큰 마당을 사이에 두고 대문채가 자리잡고 있다. 이중 안채, 정자와 사당이 문화재로 재정되어 있다. 안채는 민도리 홑처마집으로, 마루를 중심으로 좌.우에 안방과 상방을 두고, 전면으로 양 익사채와 중문간채, 사랑채를 연결하여 전체적으로 정면 7칸, 측면 6.5칸의 ‘ㅁ’자형 배치를 하고 있다. 지붕의 형태는 안채 및 양 익사채와 중문간채가 맞배기와지붕의 연접형태로 구성된 반면 사랑채는 독립된 팔작기와지붕을 하였다. 정자는 정면 4칸, 측면 1.5칸의 홑처마 팔작기와집으로 전면에 누마루를 꾸며 난간을 돌렸다. 이 정자에는 ‘해월헌’이란 편이 걸려 있는데, 영의정을 지낸 아계 이산해의 친필이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5칸의 홑처마 맞배기와집으로 황여일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어서 ‘불천묘’로 불리고 있다. 이 평해황씨 해월종택은 전체적으로 주택의 배치와 이 지역 상류 주택의 특성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건축물이다. (안내문, 울진군청, 2022년)

<출처>

  1. 안내문, 울진군청,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위키백과, 2022년

산청 남사마을 사양정사

경남 산청군 단성면 남사리에 있는 고택인 사양정사(泗陽精舍)이다. 1920년대 유학자 정제용의 후손들이 그를 추모하기 위해 지은 재실이다. 앞면 7칸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상당히 큰 규모의 재실 건물이다. 가운데 2칸 대청마루를 두고 왼쪽에 온돌방 2칸 오른쪽에 온돌방 1칸이 있으며 양쪽에 1칸씩 누마루를 두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일종의 개량한옥으로 자재나 건축수법이 뛰어난 편이다.

산청 남사마을 사양정사 01-20220222<산청 남사마을 사양정사>

산청 남사마을 사양정사 04-20220222<가운데 대청마루>

산청 남사마을 사양정사 05-20220222<왼쪽 온돌방과 누마루>

산청 남사마을 사양정사 03-20220222<오른쪽 온돌방과 누마루>

산청 남사마을 사양정사 06-20220222<사양정사 마당>

산청 남사마을 사양정사 02-20220222<산청 사양정사>

대문채는 솟을대문과 광과 문간방이 있는 7칸 규모의 건물로 웅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산청 남사마을 사양정사 08-20220222<대문채>

남사마을을 지리산 중산리로 연결되는 교통로에 있는 전통마을로 지금은 남사예담촌이라 부른다. 마을에는 20세초에 지어진 많은 기와집이 모여있다. 성주 이씨, 밀양 박씨, 진양 하씨가 주로 모여살고 있다.

산청 남사마을 사양정사 07-20220222<산청 남사마을>

산청 사양정사(泗陽精舍), 경남 산청군 단성면 지리산대로
사양정사는 한말의 유학자 계제 정제용(1865~1907년)의 아들 정덕영과 장손 정종화가 남사로 이전한 후 선친을 추모하기 위하여 마련한 정사로 1920년대에 지어졌다. 정제용은 포은 정몽주의 후손으로 한말의 유학자인 후산 허유와 유림을 대표하여 파리장서를 작성한 면우 곽종석의 문인이다. 사양정사란 ‘사수’ 남쪽의 학문을 연마하는 집이라는 뜻이다. 여기서의 ‘사수’는 공자의 고향인 중국 산동석 곡부에 있는 강이름인데 공자를 흠모하는 뜻으로 남사마을 뒤에 있는 개울을 사수라 부르고 정사가 개울의 남쪽에 있어 사양정사라 이름하였던 것이다. 건립 이후 주로 자손을 교육하고 문객을 맞아 교유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사양정사는 정면 7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집으로 천장이 높고 부재가 튼실하며 치목이 정교할 뿐 아니라 다락과 벽장 등 수납공간을 풍부하게 설치하였으며 또한 당시로서는 새로운 건축재료인 유리를 사용하여 근대기 한옥의 변회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4칸의 광을 넣어 7칸의 장대한 규모로 구성한 대문채에는 충절을 상징하는 홍살을 넣은 솟을대문을 달아 사양정사의 풍경과 풍부한 경제력을 나타내었다. (안내문, 산청군청, 2022년)

<출처>

  1. 안내문, 산청군청,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대한민국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2022년

산청 남사리 최씨고가

경남 산청군 단성면 남사리에 있는 고택인 ‘최씨고가’이다. 남사마을에 남아 있는 고택 중 가장 큰 규로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지어진 한옥이다. 건물은 안채, 외양간채, 사랑채가 ‘ㅁ’자형 평면을 하고 있다. 사랑채 양쪽에 중문을 두고 있으며 안채가 있는 마당은 외부와 분리되어 있어 유교적인 격식을 강조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남사마을 한옥을 대표하는 고택이라 할 수 있다.

산청 남사마을 최씨고가 01-20220222<산청 남사마을 최씨고가>

남사마을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큰 저택으로 고즈넉한 담장이 있는 골목 안쪽에 위치하고 있다. 대문은 담장에 의지해 4개의 기둥이 있는 사주문으로 기와를 올린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산청 남사마을 최씨고가 02-20220222<대문>

산청 남사마을 최씨고가 07-20220222<안쪽에서 본 대문>

사랑채는 앞면 5칸, 옆면 2칸 규모로 앞뒤로 툇마루를 두고 있다. 가운데 마루가 있고 양쪽에 2칸씩 온돌방이 있어 가족들이 거처하는 생활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산청 남사마을 최씨고가 05-20220222<사랑채>

산청 남사마을 최씨고가 08-20220222<왼쪽 온돌방>

산청 남사마을 최씨고가 09-20220222<가운데 대청마루>

산청 남사마을 최씨고가 10-20220222<오른쪽 온돌방>

산청 남사마을 최씨고가 06-20220222<사랑채 마당에 있는 창고(외양간)>

산청 남사마을 최씨고가 04-20220222<사랑채 마당 정원>

산청 남사마을 최씨고가 12-20220222<사랑채>

산청 남사마을 최씨고가 11-20220222<안채를 출입하는 중문>

안채는 앞면 6칸, 옆면 3칸 규모의 큰 건물로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산청남사리최씨고가<안채>

남사마을을 지리산 중산리로 연결되는 교통로에 있는 전통마을로 지금은 남사예담촌이라 부른다. 마을에는 20세초에 지어진 많은 기와집이 모여있다. 성주 이씨, 밀양 박씨, 진양 하씨가 주로 모여살고 있다.

산청 남사마을 최씨고가 03-20220222<산청 남사마을>

산청 남사리 최씨고가, 경남 산청군 단성면 지리산대로
이 고택은 전통적인 남부지방의 사대부 한옥이다. 건물은 안채를 중심으로 사랑채, 익랑채가 ㅁ자형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사랑채 좌우에는 중문이 두 곳 설치되어 있다. 동쪽 중문을 통과하면 안채가 한 눈에 들어오지만, 서쪽 중문을 지날 경우 ㄱ자 담으로 차단되어 안채와 익랑채가 보이지 않게 되어 있다. 전통적인 유교 사상에 따라 남녀의 생활상의 공간 분화를 분명히 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안채는 정면 6칸, 측면 3칸 규모에 앞뒤 툇간이 있고, 들보 5량으로 조성된 높은 팔작지붕 건물이다. 뒤 툇간은 폭이 넓어 수장기능의 벽장이 설치되거나 방으로 분할되고 있으며, 겹집형식으로 변모되고 있다. 건물의 사용 자재들은 견실하고 이중 방문의 조각 장식도 섬세하고 아름답다. 사랑채는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에 앞뒤 툇간이 있으며, 들보 5량으로 조성된 팔작지붕 건물이다. 안채와 마찬가지로 겹집형식으로 취하고 있다. (안내문, 산청군청, 2022년)

<출처>

  1. 안내문, 산청군청,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대한민국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