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고택

상주 수암종택, 손님 접대를 위한 큰 사랑채를 두고 있는 고택

경북 상주시 중동면 우물리에 있는 고택인 수암종택이다. 조선후기 17세기 후반에 지어진 큰 저택으로 풍산류씨 류성룡의 아들 류진의 터를 잡은 곳에 후손들이 지었다. 건물은 안채와 사랑채가 ‘ㅁ’자형을 이루고 있는 몸채와 그 앞 마당에 ‘ㄴ’자형의 큰 사랑채 건물인 녹사청이 자리잡고 있다. 녹사청은 여행하는 관리들이 묵을 수 있도록 지은 것으로 손님을 접대하기 위한 공간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상주 수암종택. 안채와 사랑채가 ‘ㅁ’자형을 이루고 있는 몸채.

상주 수암종택 20200107-05사랑채 바깥쪽에는 ‘ㄴ’자형 큰 사랑채인 녹사청을 두고 있다. 집주인이 이곳을 여행하는 관리들을 지은 것으로 녹사청이라 불렀다.

OLYMPUS DIGITAL CAMERA수리중인 녹사청.

OLYMPUS DIGITAL CAMERA대문은 문간채 없는 솟을대문을 하고 있다.

상주 수암종택 20200107-04뒷편에 있는 사당.

수암종택, 경북 상주시 중동면 우물리
이 건물은 1700년대 중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풍산류씨 우천파의 종택으로 우천세가 또는 대감댁이라 불린다. 건물이 자리잡은 이곳은 낙동강과 그 지류인 위강이 합류하고 속리산, 팔공산, 일원산의 지기가 한 곳에 모이는 삼산이수의 명당지이다. 건물은 큰 마당 좌측편에 ‘ㄴ’자형 녹사청이 놓여 있고, 마당 안쪽에 사랑채와 안채가 ‘ㅁ’자형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몸채 오른쪽 뒤편에는 별도의 곽으로 구성된 사랑이 자리잡았다. 녹사청은 녹방을 지고 오는 관리들을 영접하고 유숙케 하던 건물로 보기 드문 실례가 된다. (안내문, 상주시청, 2019년)

<출처>

  1. 안내문, 상주시청, 201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상주 양진당(보물 1568호), 낙동강 주변 자연환경이 잘 반영된 고택

경북 상주시 낙동면 승곡리마을에 있는 고택인 양진당(보물 1568호)이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동했던 검간 조정(1555 ~ 1536년)이 살았던 고택이다. 상량문에 따르면 1626년에 처음 짓기 시작하여 1628년에 완공되었으며 19세기에도 중수되었다는 사실도 확인되었다. 건물은 앞면 9칸, 옆면 7칸의 ‘ㅁ’자형 건물로 상당히 큰 규모의 대저택이었다. 낙동강 홍수로 자주 침수되는 지형적 조건 때문에 안채는 2층 누각처럼 지은 고상식 가옥이다. 세부적인 건축 수법 등에서 기술적으로 뛰어나며 침수지역이라는 지역적 특징이 잘 반영된 주거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상주  양진당(보물 1568호). 조선중기에 처음 지어진 앞면 9칸 옆면 7칸의 대저택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앞면은 가운데 중문을 중심으로 사랑채가 배치되어 있다. 1966년 대홍수로 낙동강이 범람했을 없어졌던 것을 최근에 복원하였다. 2층 누각형태의 안채와는 달리 일반적인 단층건무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큰 사랑채 대청마루.

OLYMPUS DIGITAL CAMERA옆면은 7칸으로 가운데 마당을 두고 양쪽에 날개채가 있는 형태이다. 안채는 지면보다 10 m 정도 높게 지은 누각 형태의 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대문 안으로 보이는 안채. 축대을 높게 쌓고 앞쪽에 큰 기둥을 세운 누각 형태를 하고 있다. 날개채는 다락방이 있는 부엌으로 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뒷면.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는 불천위 조상을 보시는 사당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앞 들판. 낙동강 지류인 장천이 마을 앞을 흐르고 있으며 낙동강에서 6 km 정도 떨어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분재기, 보물 1404-1호, 명종 9년(1544) 11월 27일 재주인 고 찰방 홍윤최의 처 홍씨가 집안 전래의 노비와 논 일부를 외손자 물단개(조정의 아경)에게 별급하는 문서입니다. (안내문, 상주박물관,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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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 문과급제 교지, 보물 1404-1호

OLYMPUS DIGITAL CAMERA풍양조씨세보

상주 양진당, 보물 1568호, 경북 상주시 낙동면 승곡리
이 건물은 조선중기 문신 검간 조정(1555 ~ 1636년) 선생의 가옥이다. 1985년 보수 중 발견된 상량문에 의하면 1626년에 착공하여 3년의 공사로 1628년 6월에 준공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1966년 대홍수로 대문채 등이 유실되었던 것을 2005년 발굴하여 복원하였다. 상습적 침수지역에 정면 9칸 측면 7칸의 ‘ㅁ’자형 평면을 고상(누각)식으로 지은 외관과 다소 복잡하면서 치밀한 내부 공간구성 그리고 정성어린 조형시상을 읽게 해 주는 목조 주택 수법들이 돋보이는 보기 드문 상류주택이다. 1973. 12. 30 자로 경상북도 유형문화재(제85호)로 지정.관리되어 오던 중 조선시대 주거 건축의 지역적 특성과 역사적 변천과정을 파악할 수 있는 학술적 가치를 높이 평가받아 2008. 7. 10자로 국가지정 보물로 승격되었다. (안내문, 상주시청, 2013년)

<출처>

  1. 안내문, 상주시청, 2013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0년

상주 오작당, 임진왜란 직후에 지은 고택

경북 상주시 낙동면 승곡리에 있는 고택인 오작당이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동했던 조정(1555 ~ 1636년)이 지은 집이다. 임진왜란 직후인 1601년에 처음 지었으며, 1661년(현종 3)에 현재이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건물은 안채와 사랑채가 ‘ㅁ’자형을 이루고 있으며 뒷편에 사당이 있다. 낙동강변 저지대에 있는 지형적 조건 때문에 안채는 축대를 높게 쌓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려 놓고 있다. 인근에 있는 조정이 살았던 양진당(보물 1568호) 보다 먼저 지어진 집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상주 오작당. 조선중기에 처음 지어진 고택으로 여러 차례 중수를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원래는 40여칸의 큰 저택이었으나 지금은 안채, 사랑채, 사당 만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사랑채. 앞면 4칸으로 왼쪽 2칸은 온돌방 오른쪽 2칸은 넓은 대청마루를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가운데 마루가 열려 있을 때의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안채를 출입하는 중문과 앞면 2칸 규모의 작은 사랑채

OLYMPUS DIGITAL CAMERA중문 사이로 보이는 안마당과 안채. 낙동강 홍수로 인한 침수에 대비하기 위해 안채는 축대를 높게 쌓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렸다.

OLYMPUS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안채와 사랑채.

OLYMPUS DIGITAL CAMERA상주 오작당 대문 앞 마당.

상주 오작당
이 건물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하고 후에 이조참판에 추증된 검간 조정(1555 ~ 1636년) 선생이 선조 34년(1601)에 처음 지었다가 현종 2년(1661) 현 위치에 옮겨 지었다. 당초이 건물은 내사와 외사를 합여여 모두 40여 칸이었다고 하나 정조 5년(1781) 중수 때 부분적으로 훼철되었다. 현재는 안채.사랑채 가묘가 남아 있고, 안채는 겹집이며 본래 좌우에 익사가 있었으나 없어졌다. 또한 기둥에는 모접과 부엌의 판문, 격자창 등이 중후함을 보이며 고식을 간직하고 있다. 인근의 양진당과는 같은 유형이면서도 그보다 오랜 건물로 주목된다. (안내문, 상주시청, 2019년)

<출처>

  1. 안내문, 상주시청, 201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강진 영랑생가, 일제강점기 부호가 살았던 저택

전남 강진군 강진읍 남성리에 있는 영랑생가이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시인으로 활동하며 큰 자취를 남긴 영랑 김윤식이 태어나 살았던 곳이다. 생가는 안채, 사랑채, 문간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건물은 초가지붕을 얹었지만 기둥이나 벽면 등에서 솜씨좋은 목수가 건축에 참여 했음을 알 수 있다. 사랑채 마루에서 강진 읍내를 내려다 볼 수 있으며, 마당에는 커다란 은행나무와 목란 등이 심어져 있다. 일제강점기 호남지역 부호가 살았던 일종의 개량한옥을 전통한옥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강진 영랑생가.

SANYO DIGITAL CAMERA문간채 대문 사이로 보이는 안채. 전통한옥과는 달리 대문을 들어서면 안채가 먼저 나온다. 사랑채는 별도의 출입문을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모란꽃을 심은 정원 너머로 보이는 안채. 앞면 5칸 규모의 큰 집이다. 초가 지붕을 얹고 있지만 사용한 목재의 형태나 누마루 등에서 고급주택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사랑채도 초가지붕을 얹고 있는 건물이자만 개방적이고 상당히 고급스러워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사랑채가 있는 마당 한쪽편에 심어진 은행나무.

<출처>

  1.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정읍 전봉준 유적(사적 293호), 전봉준 선생이 살았던 옛 집

전북 정읍시 이평면 장내리 조소마을에 있는 전봉준 유적(사적 293호)이다. 동학농민운동 지도자인 전봉준이 살았던 옛집이다. 구한말(1878)에 처음 지어진 건물로 건물은 앞면 4칸, 옆면 1칸 규모로 초가지붕을 하고 있다. 부엌.큰방.웃방.끝방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는데 일반적이 민가와는 다른 배치를 하고 있다 고택 앞 마을에는 당시에 사용되었던 공동우물이 남아 있다. 전봉준에는 이곳에서 농사일과 동네서당 훈장을 지내며 살았다고 한다.

SANYO DIGITAL CAMERA정읍시 이평면 장내리 조소마을에 있는 전봉준 선생이 살았던 옛 집(사적 293호).

SANYO DIGITAL CAMERA옛집은 앞면 4칸의 ‘-’형을 하고 있는 작은 초가집이다. 건물 오른쪽에 부엌이 배치되어 있는 점이 특이하다.

SANYO DIGITAL CAMERA고택 앞에 있는 우물. 이곳 마을사람들이 공동으로 사용했던 우물이다.

전봉준 선생 고택 우물
예로부터 우리고장 정읍은 수질이 좋은 물이 풍부한 고장으로 알려져 왔으며 곳곳에 우물이 형성되고 각 마을에는 공동우물이 발달하여 왔다. 이 우물은 조소마을 주민들이 사용해 온 공동우물로 근대사의 여명을 밝힌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 전봉준 선생이 이곳에 거주할 때 사용했던 역사적 의미가 담겨 있는 곳이다. (안내문, 정읍시청, 2010년)

SANYO DIGITAL CAMERA고택 옆에 있는 비슷한 규모의 초가집.

SANYO DIGITAL CAMERA전봉준 선생 고택이 있는 조소마을.

전봉준선생 고택지, 사적293호, 전북 정읍시 이평면 장내리
남향으로 터를 잡은 이 초가집은 동학농민군의 지도자 전봉준(1854 ~ 1895)이 살던 곳으로, 조선 고종 15년(1878)에 지어졌다. 동쪽으로부터 부엌.큰방.윗방.끝방이 나란히 달린 집으로, 남부지방 일반 민가의 구조와는 다른 특징을 보여준다. 이곳에서 전봉준은 농사일과 동네 서당의 훈장 등을 지내며 가난하게 살고 있었는데, 고부 군수 조병갑이 만석보를 설치하고 과중한 물세를 거두는 등, 농민에게 각종 수탈을 자행하자 고종 31년(1894) 분노에 찬 천 여명의 농민을 이끌고 고부관아를 공격 조병갑의 잘못을 응징하였다. 이 사건은 동학농민혁명의 불길을 당기는 서막이 되었다. (안내문, 정읍시청, 2010년)

<출처>

  1. 안내문, 정읍시청, 201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