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고택

청도 삼족대, 조선중기 문신 김대유가 후학 양성을 위해 지은 정자

경북 청도군 매전면 금곡리에 있는 삼족대이다. 조선중기 문신 김대유가 세웠던 작은 정자로 동강천 경치가 아름다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삼족대’라는 이름은 김대유의 호 ‘삼족당’에서 따왔다. 김대유는 중종 때 일어난 기묘사화로 낙향하여 후학을 양성하면서 주세붕.조식.박하담 등 당대의 학자들과 교류를 하였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사방에 담을 두르고 있다. 후대에 여러차례 중수를 하면서 조선후기 건축양식을 하고 있다. 건물 마루에서 내려다 보는 동창천과 주변 경치가 아름답다.

청도 삼족대 01-20200106동창천을 내려보는 경치가 아름다운 곳에 세워진 작은 정자인 삼족대. 후학을 양성하기 위한 공간으로 공부에 집중하기 위해 담을 둘러 쌓은 것으로 보인다.

청도 삼족대 06-20200106건물은 온돌방 2칸, 부엌 등을 두고 있는 작은 살림집 형태이다. 마루에 걸터 앉아 내려다 보는 경치가 아름답다.

청도 삼족대 07-20200106마루에서 내려다 보이는 동창천(상류방향)

청도 삼족대 05-20200106동창천 하류 방향

청도 삼족대 03-20200106삼족대 아래 경치를 감상하기 위해 지은 작은 정자

청도 삼족대 02-20200106정자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

청도 삼족대 04-20200106삼족대 아래에 있는 집 마당에서 보이는 삼족대

청도 삼족대 11-20200204반대편에서 본 모습.

청도 삼족대, 경북 청도군 매전면 금곡리
이 정자는 조선 중종 14년(1519) 삼족당 김대유(1479 ~ 1552년)가 후진을 교육하기 위하여 처음 건립하였고, 그의 호를 따라 삼족대라 불렀다. 김대유는 조광조의 문인으로 중종 2년(1507) 정시에 장원급제한 이후 정언, 칠원 현감 등을 지내고 1519년 기묘사화 이후에는 관직을 사임하고 향리에 은거했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 팔작지붕으로 사방에 토담을 쌓고 일각문을 두어 그 안에 정자를 배치하였는데 방 두칸과 부엌, 우물마루가 ‘ㄱ’자로 배열되어 있다. 1519년 경에 건립되었다고 하나 후대에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치는 동안 조선후기 건축양식으로 변모하였다. (안내문, 청도군청, 2020년)

<출처>

  1. 안내문, 청도군청, 202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청도 신지리마을 섬암고택

경북 청도군 금천면 신지리마을에 있는 고택인 섬암고택이다. 조선후기 이 마을에서 터를 잡은 박시묵의 아들이 분가하면서 지은 집이다. 가옥은 안채, 사랑채, 중문채 등이 ‘ㅁ’자형을 이루고 있었는데 사랑채가 도로확장으로 철거되어 남아 있지 않다. 작은 사랑채로 사용되는 중문채가 옆쪽에 있어 안마당은 돌아서 들어가도록 되어 있다. 본가인 운강고택 서남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분가한 다른 형제들의 집도 인근에 모여 있어 집성촌을 형성하고 있다.

청도 섬암고택 01-20200106청도 신지리마을 섬암고택. 도로를 향해 있던 사랑채는 철거되어 없어지고 담장을 쌓아두고 있다. 중문 앞 마당이 사랑채 마당 역할을 하고 있다.

청도 섬암고택 02-20200106마당을 출입하는 대문채.

청도 섬암고택 05-20150902안마당을 출입하는 중문채. 사랑채가 없어진 지금은 사랑채 역할을 하고 있다.

청도 섬암고택 06-20150902안채는 ‘ㄱ’자형 건물로 사랑채와 함께 ‘ㅁ’자형 한옥을 형태를 하고 있었는데 마당을 약간 넓게 쓰고 있다.

청도 섬암고택 03-20200106사랑채가 있었던 자리에는 담장이 세워졌고 바깥은 정원으로 바뀌었다.

청도 섬암고택 04-20200106뒷편에서 본 안채

섬암고택, 경북 청도군 금천면 신지리
이 가옥은 조선 말기에 운강 박시묵의 둘째 아들인 박재소가 분가하면서 건립한 가옥이다. 본가인 운강고택의 남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다른 형제들의 가옥도 주변에 있다. 가옥의 구성은 ‘ㄱ’자형의 안채를 제외한 중문채, 도장채 등이 일자형의 평면을 이루고 있다. 안채는 돌아서 통행하게 하여 양반가옥의 폐쇄성을 잘 보여준다. 사랑채의 상부가구 5량가는 격을 높여 화려한 조각장식을 하였고, 안채에 비하여 기단과 지붕을 높게 하여 화려하면서도 격식을 갗준 집으로 꾸며졌다. 19세기 중엽에 건축된 이 주택은 운강고택을 중심으로 한 전통마을의 분위기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몫을 담당하고 있다. 사랑채는 1990년 도로확장 때에 철거되었다. (안내문, 청도군청, 2020년)

<출처>

  1. 안내문, 청도군청, 202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청도 신지리마을 명중고택

경북 청도군 금천면 신지리마을에 있는 명중고택이다. 운강고택 주인의 손자가 분가하면서 1881년에 지은 집이다. 건물은 ‘-’자형 안채와 중사랑채가 차례로 있으며 안마당에는 곳간채와 방앗간채가 마주보고 있어 전체적으로 ‘ㄹ’자형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앞쪽에 있던 사랑채와 대문채는 도로를 개설하면서 없어졌다.

청도 명중고택 05-20200106청도 신지리마을 명중고택. 구한말에 지어진 양반가옥으로 사랑채, 중사랑채, 안채가 일렬로 배치되어있는 큰 규모의 저택이었다.

청도 명중고택 02-20200106안채와 사랑채 사이에 있었던 중사랑채.

청도 명중고택 01-20200106중사랑채 안쪽으로 보이는 안채.

청도 명중고택 03-20200106옆에서 본 안채와 마당 안족에 있는 곳간채

청도 명중고택 04-20200106옆쪽 도로에서 보이는 명중고택. 비교적 큰 규모의 저택이다.

명중고택, 경북 청도군 금천면 신지리
이 고택은 운강 박시묵의 손자인 박래현이 고종 18년(1881)에 별서로 건립한 것이다. 그후 의 차자 순희공이 입주하여 명중고택이라 하였다. 가옥의 구성은 전체적으로 트인 ‘ㅁ’자형의 평면을 이루고 있고, 대문을 들어서면 사랑마당과 지금은 없어진 사랑채가 있었다. 안마당의 좌.우측에는 방앗간채와 곡간채가 있으며, 정침의 대청 전체에 문을 달아 폐쇄적인 양반댁 부녀자의 생활양식을 보여주기도 한다. 대문채는 6.25 전쟁 때 손실되었고 사랑채도 1990년 도로확장 공사로 철거되었다. 조선 말기 경북 남부지방 상류주택의 공간구성을 잘 보여주는 건물이다. (안내문, 청도군청, 2020년)

<출처>

  1. 안내문, 청도군청, 202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청도 신지리마을 운남고택

경북 청도군 금천민 신지리 마을에 있는 운남고택이다. 대저택인 운강고택 옆에 있는 집으로 19세기에 분가하면서 지었다. 건물은 -’자형 안채와 사랑채가 앞.뒤로 배치되어 있으며 안채 마당에 헛간채를 두고 있다. 사랑채 앞 마당에는 운강고택처럼 작은 사랑을 두었는데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옆집 명중고택과 함께 후손들이 일가를 이루면서 모여살고 있다.

청도 운남고택 01-20200106운남고택 사랑채.

청도 운남고택 06-20200106사랑채 앞 마당에는 작은 사랑채가 있었다고 하는데 일제강점기에 화재로 손실되었다고 한다.

청도 운남고택 03-20200106대문채. 헛간과 대문이 있는 단순한 구조이다.

청도 운남고택 08-20200106안쪽에서 본 대문채. 작은 문간방과 헛간이 있다.

청도 운남고택 04-20200106안채는 ‘-’자형 건물을 하고 있다.

청도 운남고택 05-20200106안마당. 사랑채와 사이에 헛간채를 두고 있다.

청도 운남고택 07-20200106뒷마당

운남고택, 경북 청도군 금천면 신지리
이 고택은 조선말기 운강 박시묵의 셋째 아들인 박재중이 분가하면서 건립한 것으로 운강고택 서편에 인접해 있다. 가옥의 구성은 ‘-’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사랑채 대청의 대들보와 보고임이 특이하고 대청 끝의 보고임에는 태극문양을 그려 넣어 멋을 더하였다. 안마당 동쪽에 위치한 중 사랑채는 1935년 경 화재로 인하여 손실되었다. 운강고택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놓여서 운강고택의 주변 경관을 고풍스럽게 유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안내문, 청도군청, 2020년)

<출처>

  1. 안내문, 청도군청, 202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청도 신지리마을 운강고택 및 만화정, 조선후기에 지은 대저택

경북 청도군 금천면 신지리 마을에 있는 고택인 운강고택과 만화정이다. 조선 선조 때 박하담이 서당을 짓고 후학을 양성했던 곳에 후손 박시묵이 분가하면서 살림집으로 지은 집이다. 집은 생활공간인 안채와 사랑채를 분리해 놓고 있다. 사랑채를 중심으로 양쪽에 건물을 ‘ㅁ’자로 배치하고 있다.사랑채 앞 마당에는 중사랑채를 두고 있는데 후학을 양성했던 서당 역할을 기대했던 것으로 보인다. 마을 동창천 옆에 있는 선암서원과 비슷한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구한말 대지주 계층이 살았던 대저택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데 마당을 상당히 넓게 쓰고 있으며 큰 규모의 곳간채를 두고 있다. 만화정은 이 집을 지은 박시묵이 동강천 옆 경치좋은 곳에 정자로 지은 건물이다.

청도 운강고택과 만화정 05-20200106청도 운강고택. 사랑채를 중심으로 양쪽에 ‘ㅁ’자로 건물들을 배치하고 있는 상당히 큰 규모의 대저택이다.

청도 운강고택과 만화정 04-20200106사랑채 마당을 출입하는 대문채.

청도 운강고택과 만화정 03-20200106운강고택 사랑채. 안마당과 사랑채 마당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데 바깥주인이 일상적으로 거처하는 공간이다.

청도 운강고택과 만화정 01-20200106사랑채 마당 가운데 있는 중사랑채. 앞면 4칸 규모로 가운데 넓은 대청마루를, 양쪽에 온돌방을 두고 있는 강당형태의 건물이다. 박하담이 서당을 지어 후학을 양성했던 전통을 계승하고자 하는 의도가 엿보인다.

청도 운강고택과 만화정 02-20200106사랑채 마당에 있는 곳간채

청도 운강고택과 만화정 12-20100705안채는 앞면 7칸 규모의 ‘-’자형 건물로 ‘ㅁ’자형을 하고 있는 경북 북부지방의 전통한옥과는 달리 마당을 넓게 쓰고 개방적인 면모를 보인다.

청도 운강고택과 만화정 13-20100705안마당에 있는 행랑채

청도 운강고택과 만화정 14-20100705넓은 안마당과 행각처럼 길게 지어진 곳간채. 상당한 수준의 경제력을 갖춘 대지주계층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청도 운강고택과 만화정 06-20200106저택 뒷편에 있는 사당.

청도 운강고택과 만화정 11-20100705집주인이 동창천 옆 경치좋은 곳에 지은 정자 형태의 건물인 만화정.

청도 운강고택 및 만화정, 경북 청도군 금천면 신지리
운강고택은 소요당 박하담(1479 ~ 1560년)이 벼슬을 사양하고 은거하며 사당을 지어 후학을 양성했던 옛터에 조선 순조 9년(1809)에 현재 소유자의 6대조인 박정주가 분가하면서 살림집으로 건립한 가옥이다. 이후 순조 24년(1824)에 운강 박시묵, 1905년에 박순병이 크게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집은 안채와 사랑채가 별도로 ‘ㅁ’자형으로 되어 있는 대 주택이다. 짜임새 있는 구조와 필요에 따라 세분된 각 건물의 평면배치와 합리적인 공간구성 등이 한층 더 조화를 이루고 있는 상류주택이다. 만화정은 운강고택의 부속 정자로 동창천변에 위치하고 있다. (안내문, 청도군청, 2020년)

<출처>

  1. 안내문, 청도군청, 202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