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목조건축

청양 장곡사 하 대웅전(보물 181호)

충남 청양군 칠갑산 장곡사 하 대웅전(보물 181호)이다. 칠갑산 중턱에 자리잡은 장곡사는 경사진 지형에 위,아래에 2개의 대웅전을 배치하고 있다. 상 대웅전보다 늦은 조선 중기에 지어졌으며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고려말 충목왕 때(1346년) 조성된 금동약사여래좌상(보물 337호)를 모시고 있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로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지붕을 받치는 공포는 화려한 다포계 공포를 사용하고 있다.

청양 장곡사 하 대웅전 보물 181호 01-20210414<청양 장곡사 하 대웅전 (보물 181호)>

청양 장곡사 하 대웅전 보물 181호 03-20210414<대웅전 현판과 공포>

청양 장곡사 하 대웅전 보물 181호 02-20210414<지붕을 받치는 다포계 공포와 화려한 단청>

청양 장곡사 하 대웅전 보물 181호 04-20210414<하 대웅전 내부에 모셔진 금동약사여래좌상(보물 337호)>

청양 장곡사 하 대웅전 보물 181호 08-20210414<정면에서 본 모습<

청양 장곡사 하 대웅전 보물 181호 05-20210414<옆쪽에서 본 모습>

청양 장곡사 하 대웅전 보물 181호 06-20210414<아래쪽에서 본 모습>

청양 장곡사 하 대웅전 보물 181호 07-20210414<장곡사 하 대웅전 영역>

청양 장곡사 하 대웅전 (靑陽 長谷寺 下 大雄殿)
장곡사 850년(신라 문성왕 12년)에 보조선사(普照禪師)가 처음 건립하였다고 전하는데,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변천이 있어 지금은 대웅전(大雄殿)이 상 • 하 두 곳으로 나뉘어져 있다. 하 대웅전(下 大雄殿)은 조선 중기에 건립되었다. 이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대체로 소규모의 맞배식 건물에는 주심포(柱心包) 양식을 따르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 건물은 특이하게 다포식(式)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공포(包)가 배치되어 있는데, 특히 중앙 칸은 간격이 넓어서 공포가 두 개 배치되어 있다. 자연석의 기단(基) 위에 다듬지 않은 주춧돌을 놓고, 기둥은 민흘림에 가까운 배흘림의 등근 기둥을 세웠다. 대응전에는 석가여래(釋迦如來)를 주존으로 모시는 것이 보통이나, 이 건물 내에는 금동약사여래좌상(金銅藥師如來坐像)을 모시고 있다. (안내문, 청양 장곡사, 2021년)

<출처>

  1. 안내문, 청양 장곡사, 2021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청양 장곡사 상 대웅전(보물 162호)

충남 청양군 칠갑산 장곡사 상 대웅전(보물 162호)이다. 장곡사는 경사진 지형에 2개의 대웅전이 있는데 그중 윗쪽 공간에 위치하고 있어 상 대웅전이라 부른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이며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계 공포인데 주심포 양식도 일부 남아 있다. 고려시대에 지어진 후 여러 차례 수리를 거쳤지만 내부 바닥에 전돌이 깔려 있고 주심포 공포양식이 일부 보이는 등 옛 건축 양식이 많이 남아 있는 건물이다.

청양 장곡사 상 대웅전_보물162호01-20210414<청양 장곡사 상 대웅전(보물 162호)>

청양 장곡사 상 대웅전_보물162호06-20210414<옆에서 본 모습>

청양 장곡사 상 대웅전_보물162호03-20210414<지붕을 받치는 공포와 겹처마 서까래>

청양 장곡사 상 대웅전_보물162호02-20210414<모퉁이 지붕을 받치는 공포>

건물 내부 바닥에는 마루 대신 전돌이 깔려 있다. 내부에는 철조약사여래좌상(국보 58호)를 비롯하여 철조비로자불좌상(보물 174호), 철조아미타여래좌상을 모시고 있다.

청양 장곡사 상 대웅전_보물162호07-20210414<철조약사여래좌상 및 석조대좌(국보 제58호)>

청양 장곡사 상 대웅전_보물162호11-20210414 <철조비로자나불좌상 및 석조대좌(보물 제174호)>

청양 장곡사 상 대웅전_보물162호12-20210414<철조 아미타여래좌상>

청양 장곡사 상 대웅전_보물162호04-20210414<청양 장곡사 상 대웅전 영역>

청양 장곡사 상 대웅전_보물162호05-20210414<아래쪽에서 본 상 대웅전>

청양 장곡사 상 대웅전, 보물 162호,
장곡사는 850년(신라 문성왕 12)에 보조선사(普照禪師)가 처음 건립하였다고 전하는데, 오랜 세월 동안에 변천이 있어 지금은 대웅전이 상.하 두곳으로 나뉘어져 있다. 상 대웅전은 고려시대에 처음 건립되었고 조선말기에 고쳐 지었다. 건물은 약간 높이 설치된 기단 위에 둥근 자리가 있는 주춧돌을 놓고 그 위에 배흘림이 뚜렷한 기둥을 세운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이다. 다포식이지만 평방(平枋)이 없고, 기둥 사이에 공간포(空間包)가 하나씩만 배치되는 등 주심포 양식의 특징도 함께 갖고 있다. 기둥머리에는 굽 받침과 같은 고려시대의 특징이 일부 남아 있으나, 쇠서와 보머리는 조선 중기 이후의 수법을 보이고 있어 중간에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대웅전에는 석가여래를 주존으로 모시는 것이 보통이나, 이 곳에는 2기의 석조대좌 위에 철조약사여래좌상과 철조비로자나불좌상, 좌측으로는 철조여래좌상을 모시고 있다. (안내문, 청양 장곡사, 2021년)

<출처>

  1. 안내문, 청양 장곡사, 2021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청양 장곡사 설선당, 조선중기 건축특성이 남아 있는 요사채

충남 청양군 칠갑산 장곡사에 있는 요사채인 설선당(說禪堂)이다. 승려들이 수행하면서 거처하는 건물로 하대웅 마당 서쪽편에 자리잡고 있다. 하대웅전과 함께 조선중기에 지어진 것으로 여러차례 다시 고쳐 지으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물은 동쪽을 향하는 앞면 3칸 건물에 남쪽에 3칸 익랑 건물을 연결하여 ‘ㄱ’자형을 하고 있다. 본채에 해당하는 건물은 주심포 양식이 남아 있는 공포와 세부적인 건축수법 등 조선중기 건축양식이 잘 남아 있으나 익랑은 승려들의 생활공간을 위해 후대에 민간 가옥 형식으로 증축한 것으로 보인다.

장곡사 설선당 01-20210414<장곡사 설선당>

본채에 해당하는 건물은 다포계 특징을 많이 따른 주심포 양식으로 조선 중기 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앞면 3칸으로 앞쪽에  툇마루를 달아 내었다. 남쪽편으로 1칸을 달아내어 부엌으로 사용하고 있다.

장곡사 설선당 07-20210414<조선중기 건축양식이 남아 있는 본채>

장곡사 설선당 02-20210414<앞쪽에서 본 모습>

장곡사 설선당 03-20210414<조선중기 건축양식이 잘 남아 있는 주심포양식의 공포>

장곡사 설선당 04-20210414<툇마루>

장곡사 설선당 05-20210414<주춧돌 위에 올려 놓은 기둥>

장곡사 설선당 06-20210414<부엌 내부>

남쪽에는 2칸 규모의 살림집 형태의 건물을 달아내었다. 격식을 잘 갖추고 있는 본채와는 달리 민간가옥의 형태를 하고 있다.

장곡사 설선당 09-20210414<남쪽편 익랑 건물>

장곡사 설선당(說禪堂), 조선중기
강설과 참선을 하던 선방건물로 건축된 설선당은 하 대웅전과 거의 같은 때인 조선 중기의 건물로 추정된다. 본래 정면 4칸 측면 3칸의 ‘-’형이었으나, 건물의 남쪽과 서쪽으로 2 부분을 승방으로 증축하여 현재는 ‘ㄱ’형의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건축양식은 세부 수법이 다포계 특징을 많이 따른 주심포이며, 외부로만 2출목을 둔 공포의 돌출된 쇠서(牛舌)의 곡선이 완만하고 힘차게 뻗어 있는 조선 중기 경의 건축 특징이 잘 나타난 훌륭한 건물이다. 기둥은 약간의 배흘림과 민흘림, 원통형 기둥으로 되어 있다. 부엌인 남쪽 1칸은 맞배집 부분을 고쳐 지은 부분이고, 여기에 동서로 서익사 3칸을 잇대어 늘려지였다. 서익사는 민간 주택 구조를 취한 요사이다. (안내문, 청양 장곡사, 2021년)

<출처>

  1. 안내문, 청양 장곡사, 2021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청송 대전사 보광전(普光殿, 보물 1570호)

경북 청송군 부동면 주왕산 대전사(大典寺) 주불전인 보광전(보물 1570호)이다. 조선후기 현종 때(1672년)에 중건된 건물이다. 화강석으로 쌓은 기단 위에 건물을 올려놓았다. 앞면 3칸, 옆면 2칸의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조선후기 불전 건축 양식이 잘 반영되어 있다. 불전 내부 벽면 단청과 벽화는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그림으로서 예술성이 뛰어나다. 바위산 봉우리를 배경으로 한 보광전의 모습은 주왕산을 대표하는 풍경으로 손꼽힌다.

청송 대전사 보광전 보물1570호 01-20201205<청송 대전사 보광전(보물 1570호)>

청송 대전사 보광전 보물1570호 03-20201205<보광전 현판, 지붕을 받치는 공포와 겹처마>

청송 대전사 보광전 보물1570호 04-20201205<창호는 장식성이 없는 띠살을 사용하고 있다.>

청송 대전사 보광전 보물1570호 06-20201205<옆면 출입문>

불전 내부에는 닫집에 석조여래삼존상을 모시고 있다. 우물천장을 사용하고 있으며 벽면과 천정을 장식하고 있는 불화와 단청은 건축당시 원형이 비교적 잘 남아있고 작품성도 뛰어난 편이다.

청송 대전사 보광전 보물1570호 05-20201205<보광전 내부>

청송 대전사 보광전 보물1570호 07-20201205<바위 봉우리를 배경으로 서 있는 모습>

청송 대전사 보광전 보물1570호 02-20201205<앞쪽에서 본 모습>

청송 대전사 보광전(大典寺 普光殿), 보물 1570호
청송 대전사는 신라 문무왕 12년(672)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며, 보광전은 1976년 중수 시 발견된 상량문에 의해 그 건축연대가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조선 현종 13년(1672) 에 중창하였음을 알 수 있다. 건물 구조는 화강석 기단위에 화강석 초석을 놓고 약간 흘림이 있는 원주를 세워 구성된 정면 3칸, 측면 3칸의 겹처마 맞배지붕이고, 건물의 구조는 2고주 5량가 다포계 양식으로 외 2출목 3제공, 내 2출목 3제공 이다. 건물 전면은 앙설형이고 배면은 교두형으로 되어 있어 조선 중기 이후 목조 건축양식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내부단청과 벽화는 회화성이 돋보이는 빼어난 작품으로 건축 당시의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안내문, 청송 대전사, 2020년)

<출처>

  1. 안내문, 청송  대전사, 202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1년
  4. 위키백과, 2021년

청송 찬경루(讚慶樓, 보물 2049호), 관아에 운영했던 누각

경북 청송군 청송읍에 있는 찬경루(讚慶樓, 보물 2049호)이다. 조선초 세종 때(1428년) 군수 하담이 객사와 함께 관아에 속한 누각으로 처음 세웠다. 청송군이 세종의 비 소현왕후의 관향임을 들어 당시 관찰사가 찬경루(讚慶樓)라 이름 지었다. 현재의 건물은 1972년 중건한 것이다. 관아에서 사신접대나 연회 등을 위해 세운 큰 규모의 누각 건물이다. 청송은 작은 고을이었지만 권문세가였던 청송심씨 관향이었던 까닭에 많은 손님을 접대하기 위해 큰 규모의 건물을 세웠던 것으로 보인다.

청송 찬경루 보물2049호 01-20201204<청송 찬경루(보물 2049호)>

건물을 앞면 4칸, 옆면 4칸의 2층 누각으로 강변 경치가 좋은 암반 위에 세워져 있다. 경치좋은 용전천 주변 풍경과 멀리 청송심씨 시조 심홍부의 무덤이 보이는 방향으로 넓은 대청마루가 있으며 뒷편에 온돌방이 배치되어 있다.

청송 찬경루 보물2049호 02-20201204<정면에서 본 모습. 겹처마에 화려한 단청을 >

청송 찬경루 보물2049호 11-20201204<찬경루 현판>

청송 찬경루 보물2049호 12-20201204<자연 암반 위에 올려놓은 건물 기둥>

건물 내부 뒷편에는 2칸 정도의 온돌방을 두고 있다. 온돌방 앞에는 국왕이 앉을 수 있도록 마루바닥을 주변보다 한단 높게 만들어 놓고 있다. 일반적인 관아 누각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찬경루만의 특징이다.

청송 찬경루 보물2049호 06-20201204<찬경루 내부>

건물 내부에는 안평대군이 쓴 송백강릉(松栢岡陵) 이라는 액자가 걸려 있었으나 화재로 불타서 없어지고 정조 때 (1792) 한철유가 쓴 액자가 걸려 있다. 유명인사였던 서거정, 김종직, 송시열, 홍성민 등이 시문을 남겼다.

청송 찬경루 보물2049호 05-20201204 < ’송백강릉(松栢岡陵)’이라 적힌 현판>

청송 찬경루 보물2049호 08-20201204<뒷편에서 본 모습>

청송 찬경루 보물2049호 10-20201204<동쪽에서 본 모습>

청송 찬경루 보물2049호 07-20201204<서쪽에서 본 모습>

청송 대전사 보광전 보물1570호 21-20201205<주왕산 대전사>

찬경루(讚慶樓), 보물 제2049호
찬경루는 세종 10년(1428)에 운봉관과 함께 청송 군수였던 하담이 2층 16칸 으로 세운 누각이다. 조선시대 때 누각은 객사와 이웃하여 있으면서, 사신들을 위한 연회나 지방 유생들을 위한 백일장 장소로 사용되었다. 숙종 14년(1688)에 손보고 고쳤으며, 화재로 인해 불타서 없어진 것을 정조 16년(1792)에 다시 일으켜 세우는 등 여러 차례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2008년에 건물을 다시 고치고 단청(丹靑)도 새로 하였다.  경상도 관찰사 홍여방이 찬경루에 대해 쓴 문서에는 “지금까지 왕후와 왕족이 끊이지 않는 복을 누리고 있으니 이 누(樓)에 올라 그 묘(墓)를 바라보면 저절로 우러러 찬미하게 되어 찬경(讚慶樓)이라 이름 지었다.” 라고 하는 기록이 있다. 이렇듯 ‘찬경루’ 라는 이름은, 청송 심씨 가문에서 소헌왕후가 탄생하였고 이 누각이 청송 심씨 시조 묘소를 바라보고 있음에 따라, ‘우러러 찬미하다’ 라는 의미를 지닌다. 건물 내 사분합문 위쪽에는 세종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安平大君)이 쓴 송백강릉(松栢岡陵) 이라는 액자가 걸려 있었으나 화재로 불타서 없어졌다. 지금은 정조 16년(1792)에 부사 한광근(韓光)의 아들 한철유(裕)가 쓴 송백강릉(松岡陵)이라는 액자가 걸려 있다. 건물 안에 조선시대 때 명성을 떨치던 서거정, 김종직, 송시열, 홍성민 등이 남긴 시문이 보관되어 있다.(안내문, 청송군청, 2020년)

<출처>

  1. 안내문, 청송군청, 202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3. 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소, 2021년
  4. 위키백과, 202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