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근대건축

통영 해저터널

경남 통영시 당동에 있는 통영 해저터널이다. 일제강점기인 1932년에 건설된 동양 최초의 해저터널로 통영 도심과 미륵도를 연결하는 터널이다. 일제강점기에 선박을 통행을 위해 통영반도와 미륵도를 연결하는 지협에 통영운하를 개설하면서 같이 건설되었다.  터널은 길이 483 m, 폭 5 m로 해수면 아래 10 m 정도의 깊이에 있다. 광복 이후 통영운하를 연결하는 다리가 개설되면서 지금은 보행자 통행만 가능하며 사실상 관광시설로 운영되고 있다.

통영 해저터널 08-20220220<통영 해저터널>

터널 입구에는 용문달양(龍門達陽)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는데,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통영군수가 지은 것이라 한다. 터널 입구에는 일제강점기 건축물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왕대공 트러스 구조로 만들어진 복도형태로 구조물로 연결되어 있다.

통영 해저터널 01-20220220<통영 도심 터널 입구>

통영 해저터널 16-20220220<터널로 연결되는 통로>

통영 해저터널 13-20220220<안쪽에서 본 통로>

터널은 통영운하를 개설할 때 양쪽에 방파제를 막고 콘크리트를 타설하여 터널을 만든뒤 방파제를 철거하여 바닷물을 통과시켜 해저터널을 완공하였다. 해방 이후 통로 양쪽에 상수도관 등을 묻은 구조물이 추가되면서 폭이 좁아졌다.

통영 해저터널 14-20220220<터널 입구>

통영 해저터널 12-20220220<터널 내부>

해저터널이 보행자 공간으로 바뀌면서 관광시설로 운영되고 있다. 터널 중간에는 해저터널과 통영을 소개하는 공간이 있다.

통영 해저터널 10-20220220<터널 중간>

통영 해저터널 09-20220220<미륵도로 이어지는 터널>

통영 해저터널 07-20220220<미륵도 출구 부근>

통영 해저터널 06-20220220<미륵도 출구>

통영 해저터널 05-20220220<나가는 길>

통영 해저터널 03-20220220<일제강점기 건축물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목조구조물>

통영 해저터널 02-20220220<미륵도 방면 출구>

통영 운하는 일제가 통영반도와 미륵도 사이 지협을 준설하여 건설한 것으로 길이 1,420 m, 너비 42 ~ 55 m, 간조수심 3.1 m 규모이다. 해저터널과 함께 1932년에 완공되어 부산과 여수 사이 연안항로에 이용되고 있다. 원래는 너비 10 m 정도의 좁은 물길로 간조시에는 걸어서 지나다닐 수 있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왜선들이 이곳 물길을 더 크게 내어 도망치려 했다고 하여 ‘판데목’이라 불렀다.

통영 해저터널 15-20220220<해저터널 위 통영운하>

통영 해저터널 11-20220220<통영운하>

통영 해저터널, 국가등록문화재
통영 해저터널은 1932년 만들어진 동양 최초의 해저 구조물로서, 통영과 미륵도를 연결하는 터널이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의 이주가 본격화됨에 따라 두 지역 간 거리 단축을 위해 만들어 졌으며, 길이 483m, 폭 5m, 높이 3.5m, 해수면 아래 최대 10m 깊이 규모의 철근콘크리트조로 이루어져 있다. 비록 공사의 시행이 일제에 의한 것이라고 해도, 우리의 인력과 자재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있다. (안내문, 통영시청, 2022년)

<출처>

  1. 안내문, 통영시청,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위키백과, 2022년

보성 벌교읍 옛 보성여관 건물, 벌교읍에 남아 있는 일본식 가옥

전남 보성군 벌교읍에 있는 옛 보성여관 건물이다. 이 건물은 조정래 소설 ‘태백산맥’의 배경이었던 벌교읍 옛 일본인 거리에 남아 있는 건물이다. 일제강점기인 1935년에 지어진 것으로 한옥과 일본식 가옥의 양식이 섞여 있는데 일본식 건물양식이 많이 반영되어 있다. 건물은 2층으로 된 주 건물과 부속건물들이 가운데 마당을 중심으로 ‘ㅁ’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벌교읍에서 공공건물을 제외하고는 가장 큰 규모의 건물이었다고 한다. 소설에서는 토벌대의 숙소로 사용된 남도여관으로 소개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벌교읍에 남아 있는 옛 보성여관 건물. 벌교읍에서도 가장 큰 규모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한옥과 일본식 가옥 양식이 섞여 있는 건물이다. 오늘날 일반적인 여관과는 달리 지역을 대표하는 호텔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보성여관 출입문. 도로 방향으로는 상가건물처럼 지어졌다.

보성 벌교 보성여관 09-20180324출입문을 들어서면 숙소가 있는 마당으로 복도가 연결되어 있다.

보성 벌교 보성여관 10-20180324지금은 방문객을 위한 휴식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는 도로옆 공간. 식당 등으로 사용했던 공간으로 보인다.

보성 벌교 보성여관 11-20180324전시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는 부분.

보성 벌교 보성여관 08-20180324가운데 복도를 지나면 아담하게 꾸며놓은 작은 마당이 있다. 마당을 중심으로 손님들이 묵는 숙소가 배치되어 있다. 전통 한옥의 ‘ㅁ’자형 공간배치를 볼 수 있는 부분이다.

보성 벌교 보성여관 01-20180324전통한옥의 대청마루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넓은 마루.

보성 벌교 보성여관 02-20180324툇마루가 있는 한옥양식이 반영되어 있는 부분.

보성 벌교 보성여관 03-20180324일본식 목조주택 양식이 반영되어 있는 부분.

보성 벌교 보성여관 07-20180324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보성 벌교 보성여관 12-20180324
2층복도. 전형적인 일본식 가옥의 형태를 하고 있다.

보성 벌교 보성여관 05-20180324다다미를 깔아놓은 2층.

보성 벌교 보성여관 04-201803242층 창문에서 보이는 벌교읍.

보성 벌교 보성여관 06-201803242층 복도에서 내려다 보이는 마당과 숙소건물들.

OLYMPUS DIGITAL CAMERA보성여관이 있는 벌교읍 거리. 경전선 벌교역에서 낙안읍성으로 연결되는 도로 주위로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조성한 일종의 신도시였던 공간이다. 1970년대를 지나면서 일본인 가옥들은 대부분 허물어지고 전형적인 시골 소읍 풍경으로 바뀌었다.

OLYMPUS DIGITAL CAMERA벌교읍에서 랜드마크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이는 옛 보성여관 건물.

남도여관
검은 판자벽에 함석지붕, 전형적인 일본식으로 지어진 2층 건물은 옛 모습 그대로이다. 일본인들은 강점기 동안 전국적으로 이런 건물들을 수없이 지었는데 그동안 무차별적으로 헐어버리고 시멘트 건물들을 짓게 되었다. 그 영향으로 이런 건물들은 구경하기 어려운 귀물이 되어가고 있는 형편이다. 역사는 문자의 기록만이 아니다. 유물을 보았을 때 설명이 필요 없이 지난 시대를 한순간에 실감하게 된다. 수난과 고통의 역사일수록 그 시대의 유물은 남겨지고 보호되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 중심거리로 소위 본전통이라고 불렸던 이 길에 이 건물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은 퍽 다행스러운 일이다. 소설의 배경이 되었던 그 시절에도 이 건물은 여관이었고, 그때의 실제 상호는 보성여관이었다. 소설에서는 임만수와 그 대원들이 한동안 숙소로 사용한다. (안내문, 보성군청, 2012년)

지금이 어느때라고, 반란세력을 진압하고 민심을 수습해야 할 임무를 띤 토벌대가 여관잠을 자고 여관밥을 먹어? (태백산맥 3권 85쪽)

<출처>

  1. 안내문, 보성군청, 2012년

광주 옛 전남도청 본관을 비롯한 관공서 건물들

광주 동구 광산동에 위치한 옛 전남도청을 비롯한 관공서 건물들이다. 광주와 전남지역을 대표하는 관공서 건물들로 오랜 세월 지역 중심 역할을 해왔던 중심지이자, 1980년 5.18민주화운동의 현장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에 건립된 전남도청을 중심으로 도청회의실, 1944년에 건립된 전남지방경찰청 민원실, 1966년대에 건립된 전남지방경찰청 건물 등이 남아 있다.

근.현대 역사의 현장이자 시대별 관공서 건물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곳이다. 지금은 옛 건물들을 리모델링하여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옛 건물 원형이 잘 남아 있기는 하지만 리모델링 과정에서 건물을 거의 비워 놓고 있어 생동감이 약간 부족해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일제강점기 이래 전남지역 중심지 역할을 했던 옛 전남도청. 지금은 근.현대사를 체험할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였다.

OLYMPUS DIGITAL CAMERA옛 전남도청 본관. 1930년에 지어진 건물로 건축가 김순하가 설계와 시공에 참여하였다. 3층 건물로 그 규모가 크지 않으며, 일제강점기 관공서 건물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본관 출입문에는 앞쪽으로 돌출된 포치가 설치되어 자동차가 정차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관공서 건물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형태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뒷면에서 본 전남도청 본관.

OLYMPUS DIGITAL CAMERA오른쪽에 있는 별관 건물. 도청 실무부서들이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모습.

전남도청 본관, 1930년 건립
이 건물은 관공서 건물의 설계와 시공을 일본인들이 독차지하던 시기에 한국인 건축가 김순하가 설계와 시공 과정에 참여하여 완성하였던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건립이후 70년 이상 전라남도의 행정적 중심이 된 곳이며, 1980년에는 5.18민주화운동의 산 현장으로서 전남 지역 근.현대사의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정면에 수직으로 나란히 3개의 창을 설치하고 창문 사이에는 코린트 양식을 단순화한 주두로 장식하였는데, 이는 당시 건축물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의장이다. (안내문, 광주시청,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본관 왼쪽편에 있는 회의실 건물. 본관과 함께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건물이다. 2층 건물이지만 외부에서는 3층 건물처럼 보인다.

전라남도 도청 회의실,
이 건물은 일제시대 광주에서 활동했던 건축가 김순하가 설계했다. 광주에 남긴 그의 작품으로는 전라남도청.호남의원.춘목암 등이 있다. 지하1층, 지상 2층의 붉은 벽돌 건물로 2층 창문이 상.하로 나뉘어 있어 밖에서는 3층으로 보이게 했다. 또한 건물 좌.우 모서리의 곡면 처리와 출입구 정면의 유리장식은 시대를 앞선 조형구상으로 광주지역 근대 건축의 귀중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안내문, 광주시청,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도청 본관 건물 뒷편에 있는 옛 전남지방경찰청 본관. 1960년대에 지어진 관공서 건물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도청과 경찰청 건물이 나란히 있는 특이한 건물 배치를 하고 있다. 두 건물 사이 공간에 방문자 센터가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뒷편 아시아문화전당 광장에서 보이는 전남지방경찰청 본관.

전남지방경찰청 본관, 1960년대 건립
이 건물은 1960년대 후반에 완공되어 2007년까지 전남지방경찰청 본관으로 사용되었다. 건축적 조형미보다는 관공서로서이 기능성을 우선시한 단순하고 반복적인 구조를 보인다. 콘크리트 격자 프레임을 통한 입면의 강한 질서감, 정면과 배면 출입구이 수직성 등 당시 한국 건축의 모더니즘 경향을 반영하고 있다. 『5.18민주평화기념관』으로 활용되는 내부는 수직.수평 노출 철골 프레임 구조를 사용하여 당시의 건축 양식과 조화를 이루도록 리모델링되었다. (안내문, 광주시청,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전남지방경찰청 민원실.

전남지방경찰청 민원실, 1944년대 무렵 건립
이 건물은 1944년 무렵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졌으며, 벽돌 조적조 벽체와 목조 트러스 구조로 설계되었고, 책을 펼쳐서 엎어놓은 모양의 박공지붕으로 구성된 절충주의 양식 건물이다. 노후된 지붕의 기와 대신 단열과 채광효과가 있는 로이유리로 지붕을 교체하여 근대 건축물이 외향적 특징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상징하는 빛의 산란 효과가 조화를 이루도록 리모델링되었다.  (안내문, 광주시청,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경찰청 본관 뒷편에 조성된 아시아문화전당 광장. 뒷편에 있던 건물들을 허물고 그 자리에 건물을 조성하였다. 전시공간들은 광장 지하에 지어졌다.

OLYMPUS DIGITAL CAMERA도청 앞 광정 너머로 보이는 전일빌딩. 1980년 5.18민주화운동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공간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도청 앞 상업지구를 형성했던 충장로 거리.

<출처>

  1. 안내문, 광주시청, 2018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원주 구조선식산은행 원주지점

강원 원주시 중앙동 구도심에 있는  옛 조선식산은행 원주지점 건물이다. 원주에서 맨처음 생긴 은행으로 1934년에 지어졌다. 단층 건물로 외관은 서구식이지만 외벽은 모르타르로 마감하는 등 일제강점기 후반부에 많이 나타나는 공공건축물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원주지역에서 거의 유일한 일제강점기 흔적을 보여주는 근대식 건축물이다. 원주는 강원감영이 있던 곳이지만 일제강점기 강원도청이 춘천으로 옮겨지면서 당시 흔적이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원주 도심에 있는 옛 조선식산은행 원주지점. 일제강점기 이후 생긴 은행 건물들과 비슷한 느낌을 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앞쪽으로 약간 돌출되어 있는 출입문. 일제강점기 공공건물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출입문 형태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창문은 수직적인 느낌을 강조하고 있다. 대리석 기둥을 본떠서 모르타르로 마감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은행 앞 거리. 강원감영 객사를 비롯하여 관아건물이 들어서 있던 곳으로 원주의 대표적인 상업지구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길바닥에는 타일로 옛 강원감영의 모습을 그려놓고 있다. 객사를 중심으로 관아 건물들이 있던 곳임을 알려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도심 거리가 시작되는 지점.

구 조선식산은행 원주지점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 일제의 경제적 침략에 큰 역할을 한 조선식산은행 원주지점으로, 원주 지역에서 맨처음 건립된 은행이다. 외관은 전체적으로 좌우 대칭을 이루며 창문을 위아래로 길게 반복 배치하여 수직성을 강조하였고, 외벽은 인조석 질감의 모르타르로 마감하는 등 일제강점기 은행 건축물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안내문, 원주시청, 2011년)

<출처>

  1. 안내문, 원주시청, 2011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영덕 송천예배당, 7번국도변 마을에 있는 작은 시골교회

경북 영덕군 병곡면 송천리에 있는 송천예배당이다. 1953년 미국의 지원을 받아 건립된 건물로 등록문화재이다. 목조건물로 동서로 긴 사각형 평면을 하고 있는데 정면 출입구를 돌출시킨 포치(Portch)형태를 하고 있다. 출입구 지붕 아래에 목구조를 이용하여 십자가를 표현하고 있다. 최근 외벽에 목판을 붙이는 등 수리를 하여 옛모습과는 약간 다른 느낌을 주고 있기는 하지면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는 편이다. 동해안 주요 교통로인 옛7번 국도변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시골교회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영덕 송천예배당. 1950년대에 지어진 작은 시골교회이다.

영덕 송천예배당 05-2004_04_25수리하기 전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교회마당에 있는 오래된 교회종.

OLYMPUS DIGITAL CAMERA교회 앞을 지나가는 옛 7번국도.

<출처>

  1. 안내문, 영덕군청, 2017년
  2. 영덕군 군지, 2017년
  3.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7년
  4. 한국민족문화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7년
  5. 두산백과, 201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