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근대건축

고성 화진포 이기붕 별장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화포리에 있는 이기붕 별장이다. 화진포호수와 바다의 경계를 만드는 모래톱에 형성된 울창한 소나무 숲에 자리잡고 있다. 일제강점기 외국인 선교사들이 별장으로 지은 건물로 주변에 있는 별장 건물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해방이후 북한 공산당 간부휴양소로 사용되어 오다가 한국전쟁 이후 부통령이었던 이기붕씨의 부인이 개인별장으로 사용했었다고 한다. 한동한 폐쇄되어 사용하지 않다가 1999년 이후 다시 수리하여 역사안보전시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건물은 화진포 호수를 내려다 볼 수 있는 방향으로 지어졌다. 건물은 단층으로 방과 거실의 구분이 거의 없으며, 외벽은 계곡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몽돌로 마감하고 있다. 내부는 침실, 책상과 응접실이 놓여져 있는 집무실로 구성되어 있다. 별장의 화려한 이미지와는 달리 소박하면서도 편한 느낌을 주는 별장 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화진포호수와 동해바다가 경계를 이루는 모래톱이 시작되는 지점에 위치한 이기붕 별장.

OLYMPUS DIGITAL CAMERA강원도 계곡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돌로 외벽을 마감하고 있다. 크지 않은 단층건물로 소박하면서도 편안한 분위기를 주고 있다. 호수 방향으로 출입문과 창문을 두고 있어서 호수의 경관을 즐기기 좋게 만들어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모습. 앞면에 비해 폭을 상당히 좁게 만들었다.

OLYMPUS DIGITAL CAMERA뒤쪽에서 본 모습. 바닷바람을 피하기 위해 창문을 작게 만들었으며, 출입문을 두고 있지 않다.

OLYMPUS DIGITAL CAMERA출입문을 열면 손님을 맞는 접견실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넓은 거실은 집무실로 사용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침실

OLYMPUS DIGITAL CAMERA화진포호수 출구까지 형성된 모래톱을 따라 도로가 이어진다.

OLYMPUS DIGITAL CAMERA별장 뒷편에서 보이는 화진포해수욕장. 멀리 화진포호수 출구가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별장 뒷편 언덕에는 한국전쟁 이전 김일성 가족이 사용했던 별장이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이승만 별장에서 보이는 모습.

이기붕 부통령별장
1920년대 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 건축되어 사용된 건물로써 해방이후 북한 공산당의 간부휴양소로 사용되어 오다가 휴전이후 부통령이었던 이기붕씨의 부인 박마리아 여사가 개인별장으로 사용하다가 폐쇄되었으나 1999년 7월 역사안보전시관으로 개수하여 관람객에게 전시하고 있다. (안내문, 고성군청, 2011년)

<출처>

  1. 고성군청

고성 화진포 김일성 별장, 북한 김일성 가족이 별장으로 사용했던 곳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화포리에 있는 ‘화진포의 성’이다. 화진포 해안에서 조망이 제일 빼어난 곳에 자리잡고 있는 곳으로 해방후 북한정부가 귀빈휴양소로 운영하면서 김일성 가족이 묵었다고 해서 김일성 별장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기인 1938년 독일 건축가 베베가 예배당으로 사용할 목적으로 지은 건물이다. 옥상 전망대에 올라서면 동해바다, 화진포 해안과 호수와 멀리 백두대간의 높은 봉우리들이 빼어난 경치를 만들어 낸다.

건물은 계곡에서 볼 수 있는 몽돌로 외벽을 마감한 2층 건물로 기념관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건물 1층에는 통일관련 전시공간이 마련되어 있고, 2층에 북한이 휴양소로 운영하던 시절의 모습을 재현해 놓고 있다. 외벽에서 주는 느낌이 유럽의 성채처럼 보여서 ‘화진포의 성’으로 불리웠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고성 화진포 해안 언덕에 있는 ‘화진포의 성’. 중세 유럽의 망루같은 외형에다 자연석을 쌓아서 성채같은 분위기를 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별장이 세워져 있는 언덕. 높지는 않지만 주위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별장 아래에서 본 모습. 울창한 소나무숲이 별장을 둘러싸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별장 입구. 2층 건물로 1층은 전시실로, 2층은 김일성 가족이 사용했던 당시의 모습을 재현해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집무실로 사용하던 당시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거실.

OLYMPUS DIGITAL CAMERA망루처럼 주위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넓은 거실.

OLYMPUS DIGITAL CAMERA거실에서 내려다 보이는 화진포 해안.

OLYMPUS DIGITAL CAMERA한쪽편으로는 이승만 별장과 금강산에서 뻗어 내려온 백두대간 봉우리들이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건물 옥상 전망대.

OLYMPUS DIGITAL CAMERA맞은편 이승만 별장에서 보이는 모습.

화진포의 성(김일성 별장)
일본 강정기인 1937년 일본이 중일전쟁을 일으키면서 원산에 있는 외국인 휴양촌을 화진포에 강제 이주시켰으며, 독일 건축가인 H.Weber가 1938년 건립하여 예배당으로 이용하였으며, 해안 절벽 위 송림속에 우아하게 자리한 모습에서 “화진포의 성”으로 불리워졌으며, 1948년 이후에는 북한이 귀빈 휴양소로 운영하였고, 당시 김일성과 그의 처 김정숙, 아들 김정일, 딸 김경희 등이 묵고간 적이 있어 지금까지 “김일성 별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음. “화진포의 성은” 당초 선교사 셔우드 홀 부부에 의해 1938년 독일 망명 건축가 베베가 건축하였으며, 한국전쟁 중 훼손된 건물을 2005년 3월 옛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안내문, 고성군청, 2011년)

<출처>

  1. 고성군청

고성 화진포 이승만 전대통령 별장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죽정리에 있는 이승만 전대통령 별장이다. 한국전쟁 이후 38도선 이북에 있던 화진포 일대가 수복되자 선교사 별장이 있던 이곳을 대통령별장으로 사용하였다. 4.19혁명 이후 방치되었다가 철거되었던 것을 1999년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하여 이승만 전대통령 기념관 건물로 사용하고 있다. 맞은편 해안가에 있는 김일성 별장 건물과 함께 화진포 호수 일대의 명소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장소이다.

별장 건물은 27평규모로 침실과 집무실, 거실로 구성되어 있는 소탈한 규모이다. 별장 건물 내부에는 옛날에 사용하던 집기들이 가져다 놓아 당시의 모습을 재현해 놓고 있다. 별장 건물 위쪽에는 2007년에 개관한 이승만 전대통령 기념관이 있으며, 약간의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고성 화진포 이승만 전대통령 별장. 한국전쟁 이후 화진포지역이 수복되자 선교사 별장이 있던 이곳에 별장을 지었다. 작고 아담한 단층 건물로 자연성을 외장으로 마감했으며, 응접실과 침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1950년대 주택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형태의 출입문.

OLYMPUS DIGITAL CAMERA소파가 놓여 있는 소박한 규모의 응접실. 이승만 전대통령과 부인이 환담하는 모습을 재현해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침대와 가구가 놓여 있는 침실.

OLYMPUS DIGITAL CAMERA별장 앞 마당에서 내려다 보이는 화진포 호수. 건너편에 부통령이었던 이기붕의 별장과 김일성 가족이 사용했던 별장이 자리잡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별장 윗편 언덕에 있는 이승만대통령 화진포 기념관.

OLYMPUS DIGITAL CAMERA기념관 내부에는 그의 행적을 보여주는 약간의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서한, 이동녕 선생이 보내옴, 1920년

OLYMPUS DIGITAL CAMERA서한, 김구선생에게 보냄, 1939년

OLYMPUS DIGITAL CAMERA서한, 손병희선생에게 보냄, 1920년

OLYMPUS DIGITAL CAMERA독립정신, 옥중 1904년 저술한 국민계몽서
OLYMPUS DIGITAL CAMERALOG BOOK5, 한국문제를 국제연맹에 제시 위해 제네바에서 중국과 서양 각국 외교관 및 언론인을 상대로 전개한 외교, 홍보활동이 간결히 기록

OLYMPUS DIGITAL CAMERA공채표, 구미위원부에서 독립자금 마련을 위해 발행한 공채표

OLYMPUS DIGITAL CAMERA임시정부문서, 1919년 4월23일 3.1운동 후 서울에서 선포된 임시정부 문서, 국민회 입회증서, 1910년 재미교포들이 조직해 대한민국에 가입한 증서

OLYMPUS DIGITAL CAMERA맞은편 해안 언덕에 위치한 김일성 별장에서 내려다 보이는 이승만 전대통령 별장. 호수 내 섬처럼 생긴 언덕에 세워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별장으로 들어가는 길.

OLYMPUS DIGITAL CAMERA별장 아래 주차장에서 보이는 풍경. 화진포 해안에서 별장으로 연결되는 다리가 놓여 있고 멀리 화진포 해수욕장이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주차장에서 보이는 별장과 기념관.

OLYMPUS DIGITAL CAMERA별장이 있는 언덕을 오르는 길.

화진포 기념관의 유래
본 건물은 1954년, 27평 규모로 1960년까지 이승만 대통령의 별장으로 사용했으나, 이후 건물을 방치하여 폐허로 철거 되었던 것을 새로 지어 육군관사로 사용해 왔다. 그 후 1997년 현재의 위치에 본래의 모습대로 별장 건물을 복원하여 역사적 자료와 유품을 전시해 오다가 2007년 2월에 고성군과 육군복지단에서 본래의 별장터에 세워진 본 건물을 보수하고, 별장에 있던 일부 유품과 이화장에서 역사적인 자료를 추가로 기증 받아 2007년 8월, 이승만 대통령 화진포 기념관으로 개관하였다. (안내문,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2011년)

<출처>

  1. 이승만대통령 화진포 기념관
  2. 고성군청

아산 공세리성당,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성당

충남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에 있는 공세리성당이다. 이곳에는 본당을 비롯하여 사제당.피정의 집 등의 건물들이 있다.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사제관은 1897년에 지어진 건물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본당은 1922년에 지어졌는데 붉은 벽돌로 지은 고딕양식을 하고 있다. 내부는 좌우 기둥에 의해 3개열로 구분되는 삼랑식 평면구성이며, 아치형의 천장을 하고 있다. 초기에 지어진 명동성당, 약현동성당, 원효로성당 등과 설계와 공법에 있어서 비슷하며 초기 성당건축에 큰 역할을 한 프랑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성당이 있는 이곳은 한적한 시골마을 성당처럼 보이며, 공세곶 언덕의 울창한 숲과 성당건물들의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내는 곳이다. 아산 공세리는 평택과 아산을 연결한 아산만방조제의 아산쪽 연결지점으로 충남 서해안 내포평야의 입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지금은 평지에 솟은 작은 동산처럼 보이지만, 조선시대 세금을 걷어들이는 바닷길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공세곶고가 있었던 곳이다.

SANYO DIGITAL CAMERA아산 공세리성당. 본당은 초기 성당건축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고딕양식의 건축물로 1922년에 지어졌다.

SANYO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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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정면 출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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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딕양식의 첨탑.

SANYO DIGITAL CAMERA윗부분이 아치형인 작은 창문을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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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에서 본 창문. 스테인드글라스로 성화를 표현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예배를 집전하는 제단이 있는 건물 앞쪽. 특별한 장식을 하고 있지는 않다.

SANYO DIGITAL CAMERA본당 내부. 2개의 기둥으로 공간을 3개로 분리한 삼랑식 평면구조를 하고 있다. 지붕은 아치형 회색천장을 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사제관. 벽돌로 지은 2층 건물로 1897년에 지어졌다. 정면에 ‘八’자모양의 계단을 두고 있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뒷쪽에서 본 모습.

SANYO DIGITAL CAMERA언덕 아래에는 피정의 집을 비롯하여 여러동의 부속건물들이 있다.

SANYO DIGITAL CAMERA입구에서 본 모습.

SANYO DIGITAL CAMERA공세리성당 들어가는 길. 나즈막한 동산에 자리잡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성당입구.

SANYO DIGITAL CAMERA성당이 있는 언덕에 조성해 놓은 ’십자가의 길’이라고 불리는 산책길이 있다.

SANYO DIGITAL CAMERA공세리성당에서 내려다 보이는 아산만 입구 마을.

SANYO DIGITAL CAMERA성당이 위치한 작은 언덕은 공세곶이라 불렸으며, 조선시대 세곡을 보관하던 창고가 있던 지역이다.

공세리 성지.성당
1890년에 시작된 120년 역사를 지닌 유서 깊은 공세리 성지.성당은 충청남도 지정 문화재 144호이며, 350여 년이 넘은 다수의 국가 보호수가 있으며, 높은 언덕에 우뚝 서 있는 근대 고딕식 조적조 종교건물로 그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고 수려한 자연 경관과 잘 어우러져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이라는 명성답게 공세리 성당만의 독특한 매력과 아름다운 자태를 맘껏 뽐내고 있다. 공세리 성당의 아름다움은 이미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서도 더 잘 알려져 있다. 성당이 위치한 1만 여평의 부지는 성종 9년(1478)부터 영조 38년(1762)까지 근 300년 동안 운영되었던 충청도 일대에서 거두어들인 세곡을 저장하던 공세 창고지인 역사 유적지이기도 하다. 공세리 성당이 위치한 이곳은 내포지방의 입구로써 내포지역은 한국천주교의 신앙의 못자리라 불릴만큼 한국 천주교 역사에 중요한 중심지였다. 공세리 성당에는 1801~1873년 신유, 병인박해 때 이 지역에서 순교하신 32위의 순교자들을 모시고 있는 순교 성지이기에 더욱 경건하고 의미있는 곳이기도 하다. 공세리 성당은 1890년 프랑스 외방선교회 파스키에 신부님에 의해 예산 간양골에서 시작되어 그 후 5년 뒤인 에밀 드비즈(파리외방선교회) 신부님에 의해 지금 이 자리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드비즈 신부님은 이곳에서 많은 일들을 하시는데 특이할 만한 업적 중 하나는 우리에게 이명래 고약으로 알려진 바로 그 고약의 원 개발자였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고약을 만들어 무료로 나누어주튼데 그 빕을 당시 드비즈 신부님을 도와주었던 이명래(요한)에게 전수하여 전국적으로 보급되었기에 공세리 성당은 “이명래 고약의 발원지”라고 할 수 있다. (안내문, 공세리성당, 2014년)

<출처>

  1. 공세리성당
  2. 문화재청

옛 서울특별시 청사, 서울의 랜드마크가 되었던 공공건축물.

서울시 중구 세종대로에 위치한 오랜 세월 서울의 랜드마크로 자리잡고 있는 서울특별시 옛 청사이다. 일제강점기인 1926년 준공되어 경성부 청사로 사용되었으며, 해방 이후에는 2008년까지 서울특별시 청사로 사용되었다. 건물은 지상 4층의 철근콘그리이트 건축물로 르네상스 양식을 잘 따르고 있지만, 장식성을 배제한 외관, 실용적인 내부 공간 배치 등 근대 건축의 특징도 잘 갖추고 있다고 한다. 서울시의 기능이 확장되면서 여러차례 수리와 증축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원래의 모습이 많이 남아 있는 편이다. 지금은 서울도서관으로 기능이 바뀌면서 전면적으로 리모델링되었다. 건물 전면, 옥탑 및 돔, 중앙홀은 원형대로 보존하였으며, 대회의실인 태평홀은 지하로 이전하여 재현하였다. 또 시장실과 기획상황실은 마감재 등은 원형을 유지하였다.

일제는 식민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한양의 중요한 축이었던 경복궁에서 덕수궁에 이르는 육조거리에 남북으로 일직선이 되게 총독관저, 조선총독부, 경성부청, 서울역을 배치하였다. 총독관저는 ‘大’, 조선총독부는 ‘日’, 경성부청은 ‘本’ 자 모양을 본떠서 만들었다는 의견도 있다. 지금은 세 건물 중 경성부청 청사였던 이 건물만 현재 남아 있다. 일제가 이곳에 경성부청을 옮긴 것은 경복궁에 조선총독부 청사을 건축한 것과 마찬가지로 대한제국 정궁이었던 경운궁(덕수궁)의 상징적 의미를 말살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시청 앞에 있던 대한제국의 상징이었던 환구단에는 조선호텔을 비롯하여 상업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일제강점기인 1926년에 처음 세워진 이래 90여년 동안 지금의 자리에서 서울의 랜드마크가 되었던 옛 서울시 청사. 지상 4층의 철근콘크리트 건물로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조선총독부나 조선은행(현 한국은행) 건물과는 달리 장식적인 면이 거의 없다.

1965년 4월 27일 서울특별시청
1960년대 서울특별시청의 모습과 그 주변 풍경을 볼 수 있는 사진이다. 이 당시 서울 거리를 달리던 자동차들의 모습과 덕수궁 담의 형태, 시청 앞 광장의 모습 등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시청 하늘 위에는 ‘시민의 날(4월28일)’을 알리는 5개의 애드벌룬이 떠 있다. 사진에 더해진 정보 중 주황색 글은 실제하는 지명과 건물에 대한 것이고, 흰색 정보는 역사에 상상력이 가미된 허구이다. <출처: 서울시청>

OLYMPUS DIGITAL CAMERA50년 전인 1965년에 찍은 서울시청과 주변 사진.

OLYMPUS DIGITAL CAMERA건물의 중심이 되는 중앙 현관 출입문. 일제강점기 공공건물에 거의 대부분 있었던 차량이 멈출 수 있는 포치(Porch)가 없다. 업무 중심으로 지어진 근대적인 공공건축물의 특징과 경성부청의 특별한 지위를 보여주고 있다.

옛 청사의 구조
철근콘크리트 라멘조 형식으로 이루어진 구조체는 기둥과 보, 바닥 슬래브로 이루어져 있다. 고층에 해당하는 중앙 옥탑 코어 부분과 태평홀의 안족 기둥은 철골철근콘크리트 구조로 되어 있으며, 그 위에 트러스 지붕을 얹었다. 기초는 청사부지가 습기가 많고 연약한 지반이라 파일을 바았는데 깊이를 15~18척으로 하여 신축 당시 특허 받은 압축기식 항타기초로 시공하였다고 한다. 사무실 복도 옆 통로에는 직경 5촌, 길이 15척의 생 소나무 원목을 박아 지반을 보강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출처: 서울시청>

OLYMPUS DIGITAL CAMERA건물은 특별한 장식이 없는 4층 철근콘크리트 구조의 검물이다. 1층 외벽에는 화강석을 붙였으며,

벽체
중앙옥탑코어 및 태평홀은 철골철근콘크리트조, 나머지는 철근 콘크리조로 하고 기둥 사이는 벽돌조의 ‘커튼월’로 되어 있다. 외벽면 아래쪽은 화강석 붙임을 하고 상부는 석재 뿜질로 마감되어 있으며, 옥상 바닥부분에는 석재돌림띠와 난간벽 위에는 두겁돌이 설치되어 있다. 상부의 석재뿜칠 면은 신축 당시에는 지금은 쓰이지 않는 리싱이라는 재료로 마감되어 있었다. <출처: 서울시청>

OLYMPUS DIGITAL CAMERA서울시 청사 1층. 외벽은 화강석을 붙여 마감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지상 2~4층 외벽과 창호. 외벽은 석재뿜질로 마감했다.

창호
옛 청사에 설치되었던 창호는 수량이 800여 개에 달하며, 내부창호 일부가 원형대로 남아 있다. 신축 당시의 창호는 방화셔터나 외부 덧창을 제외하고 거의 모두 목재창호였다. 창의 경우 외부창은 준공 당시 목재 오르내리창이었다. 사용하면서 원래의 목재창틀에 알루미늄새시를 설치하였는데, 공사중에 원래의 창무틀은 보존처리 및 보수를 하고 그 위에 열손실과 차음을 고려하여 새로운 알루미늄새시(내부는 목재)를 설치하였다. 색상은 준공당시의 색상인 연한 청색으로 마감하였다. 문은 중앙현관 주출입구와 중앙홀 창고 및 승강기실 문 등은 준공 당시 티크원목에 바니시칠을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중앙현관 주출입구는 원래와 유사하게 사용중에 새로 교체되었고 실내의 문틀 및 문짝은 대부분 원래의 것이다. <출처: 서울시청>

OLYMPUS DIGITAL CAMERA첨탑에 전시해 놓은 창틀.

오르내리창
창에 추를 달아 문틀 윗부분에 댄 도르레에 줄로 걸어 창이 오르내릴 수 있는 창이다. 창틀 양쪽의 선틀에 추상자를 만들어 창무게(유리와 칠 무게 포함)와 평형이 되는 주철제 추(지름 40mm, 길이 450mm)를 상부의 도르래에 면사를 꼬아서 만든 줄로 매달아 놓았다. 추는 창 한짝에 좌우 2개를 매달고, 창은 상하 두짝이 따로 오르내리게 하였다. 선틀의 추상자 속에는 2개의 추를 분리하는 널을 설치하였으며, 추상자는 판재로 막고 하부에 점검 할 수 있는 뚜껑을 설치하였다. <출처: 서울시청>

OLYMPUS DIGITAL CAMERA청사 중앙 현관 로비. 정면에 폭이 넓은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연결되며, 양쪽으로 사무공간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이 있다.

바닥
현관은 화강석물갈기로 마감하고, 1층 홀 및 동,서쪽 계단은 대리석으로 중앙홀은 모자이크타일로, 사무실은 리놀륨을 특별한 실은 융단을 깔았다. <출처: 서울시청>

OLYMPUS DIGITAL CAMERA1층 사무공간으로 들어가는 출입문. 지금은 서울도서관 자료실로 사용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도서관 자료실로 사용되고 있는 옛 1층 사무공간.

OLYMPUS DIGITAL CAMERA2층 로비. 서울시청 로비 역할을 했던 공간이다. 양쪽에 도서관 자료가 있는 열람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신청사와 연결되는 연결통로가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특별전시가 진행되고 있는 공간.

OLYMPUS DIGITAL CAMERA2층 일반자료실.

OLYMPUS DIGITAL CAMERA3층 로비. 3층에는 서울시장실, 서울의 역사를 보여주는 기록문화관 등이 자리잡고 있다.

서울자료실
서울특별시의 행정과 정책에 대한 모든 자료가 소장되어 있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서울시정개요’, ‘서울도시기본계획’, ‘올림픽백서’ 등 3만여 권의 자료를 직접 열람할 수 있다. <출처: 서울시청>

OLYMPUS DIGITAL CAMERA서울의 역사를 보여주는 서울자료실.

OLYMPUS DIGITAL CAMERA서울 기록문화관.

옛 시장실.기획상황실
이곳은 서울시 옛 청사의 시장실 및 기획상황실 공간이다. 옛 시장실은 해방 이후부터 2008년 5월까지 60여 년 동안 역대 서울시장이 사용했던 집무공간이었다. 시장실은 시청사 3층 정중앙에 위치하며 집무실.접견실.비서실.탕비실.개인화장실.대기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기획상황실은 서울시정의 심장부로 시장과 서울시 공무원, 전문가, 시민이 다양한 의제에 대해 보고받고 심의.결정했다. 본래 옛 청사 3층의 동쯕 끝부분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현재는 비서실 공간으로 옮겨 재현하였다. 이밖에도 옛 청사 3층에는 행정 1.2부시장과 정무부시장 집무실, 대회의실인 태평홀 등이 있었다. <출처: 서울시청>

OLYMPUS DIGITAL CAMERA3층 옛 서울시장 집무실.

서울특별시 옛 시장실
옛 서울시장 집무실과 접견실, 기획상황실이 복원되어 상설전시실로 꾸며져 있다. 역대 서울시장의 모습과 해방 이후 서울특별시 주요 시정 기록물, 서울의 역사 연표 등을 살펴 볼 수 있다. <출처: 서울시청>

OLYMPUS DIGITAL CAMERA집무실에 걸려 있는 역대 서울시장들.

OLYMPUS DIGITAL CAMERA접견실.

OLYMPUS DIGITAL CAMERA접견실 창문


현관 허리돌림띠와 중앙홀 걸레받이는 대리석을 사용하고, 귀빈실 등 특별한 실은 징두리벽을 설치하고 벽지로 마감되어 있다. 그 이에 내벽은 하얀 회반죽으로 마감되어 있다. <출처: 서울시청>

OLYMPUS DIGITAL CAMERA서울시청 기획상황실.

OLYMPUS DIGITAL CAMERA옛 서울청사 관련 자료들을 볼 수 있는 5층 돔으로 올라가는 계단.

돔 및 첨탑
옛 청사의 지붕은 전체적으로 평슬래브로 이루어진 지붕을 갖고 있지만, 중심축에 위치한 정면부에는 상징적 요소로 동판을 덮은 돔을 설치하였다. 돔은 일반적으로 원형을 하고 있지만 옛 청사에서는 사각형으로 낮게 이루어져 있다. 철골트러스 구조위에 콘크리트 슬래브를 설치하고 그 위에 목재를 설치 후 판재를 깔은 후 동판을 평판잇기로 하였다. 돔 위에 첨탑을 설치하였는데 목재로 형태를 만들어 세우고 외부 면을 동판으로 장식하여 둘렀다. 전체 높이는 4,132m로 하부는 기단형태를 하고 있으며, 그 위로 박공을 둔 창모양의 벽면이 4면에 설치되어 있다. 그 위로 8면으로 분할한 원주가 서고, 원주 상부에 수평띠를 둘렀으며, 그 위에 철퇴 모양의 구(球)를 올린 후 피뢰침을 설치하였다. 돔은 중앙홀 내부로 빛이 들어올 수 있도록 철골트러스를 둔 상태에서 유리돔으로 바뀌었다. <출처: 서울시청>

OLYMPUS DIGITAL CAMERA옛 서울시 청사 돔과 옥상. 구형을 하고 있는 일반적인 총독부 청사나 한국은행 청사와는 달리 낮은 사각형 돔을 사용하고 있다.

지붕
철근콘크리트 슬래브 위에 아스팔트방수를 한 평지붕이고, 중앙의 돔지붕 및 배면의 태평홀 경사지붕은 철골 트러스 구조 위에 콘크리트 슬래브를 설치하고 목재를 설치 후 판재를 깔은 후 동판으로 마감되어 있었다. <출처: 서울시청>

OLYMPUS DIGITAL CAMERA돔 내부.

천장
현관 및 계단실, 1~3층 사무실 천장은 콘크리트 바탕에 회반죽 바르기를 하였고, 중앙홀 및 복도, 4층 사무실은 목조반자틀에 졸대를 설치하고 회반죽 바르기를 하였다. 보와 벽, 그리고 천장과 만나는 부분, 모서리 등은 장식문양을 석고로 만들어 붙였다. <출처: 서울시청>

OLYMPUS DIGITAL CAMERA돔천장. 리모델링하면서 내부에 빛이 들어올 수 있도록 유리천장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돔 내부는 이 건물의 옛 흔적들을 보여주는 자료들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각종 건축부재들이 전시되어 있다.

옛 청사의 첨탑, 참호 마감.

OLYMPUS DIGITAL CAMERA목재 징두리벽, 3층 목재문틀, 각종 출입문들, 2층 중앙홀 목재 환기창

OLYMPUS DIGITAL CAMERA3층 시장집무실 목재커튼박스, 3층 내부복도 목재창

OLYMPUS DIGITAL CAMERA태평홀 아치 석고장식, 1차형틀

OLYMPUS DIGITAL CAMERA창호철물

OLYMPUS DIGITAL CAMERA돔하부 장식벽 동판, 돔지붕 동판, 첨탑내 하부 모서리 목재

OLYMPUS DIGITAL CAMERA목재 콕센트박스, 배터리, 선홈통받이, 도르레, 검 도장,

옛 청사의 내.외부 마감재

OLYMPUS DIGITAL CAMERA목심박힌 적벽돌, 중공적벽돌, 원형철근, 대리석 걸레받이, 바닥 모자이크타일

OLYMPUS DIGITAL CAMERA중앙홀 기둥주두 석고장식, 중앙홀 기둥모서리 석고장식, 계단실 창 모서리 석고장식, 4층 중앙홀 원형기둥 상부 석고장식

OLYMPUS DIGITAL CAMERA출입문.

OLYMPUS DIGITAL CAMERA초배지

OLYMPUS DIGITAL CAMERA태평홀 보 상부 수평 석고장식

OLYMPUS DIGITAL CAMERA보 상부 석고 장식

OLYMPUS DIGITAL CAMERA중앙홀 천장틀 및 회반죽 바르기, 천장 환기구, 천장 석고장식

회반죽 바르기
내부 바름벽 재료인 회반죽은 소석회, 여물을 해초풀로 반죽한 것이다. 바탕면에 균열방지와 탈락을 방지하기 위하여 수염을 마름모형으로 작은 못으로 박아대고 바탕 바르기를 하여 면을 평탄하게 만든 후 그 위에 고름질, 잔고름질, 재벌, 정벌바름을 하였다. <출처: 서울시청>

OLYMPUS DIGITAL CAMERA중앙홀 철골기둥 주작

OLYMPUS DIGITAL CAMERA철골 구조물

OLYMPUS DIGITAL CAMERA철골구조물.

OLYMPUS DIGITAL CAMERA철근콘크리트 보 및 슬래브

OLYMPUS DIGITAL CAMERA지정말목

군기시터 발굴현장 북쪽 끝 근대 문화층에서 확인된 나무말뚝으로 기초 하부의 연약한 지층의 지내력을 보강하기 위하여 사용되었다. 이 나무 말뚝은 일제강점기 때 건물 기초시설로 추정된다. <출처: 서울시청>

OLYMPUS DIGITAL CAMERA옛 청사 외벽. 독일제풍인 리싱을 발랐다.

리싱 바름
외벽 마감 재료인 리싱은 독일제품으로 규산석회가 주성분이다. 입자에 따라 대, 중, 소 3가지가 있으며, 색채가 다양하나 옛 청사에는 흰색의 중간 크기 입자를 사용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옛 청사에 처음 사용되었다. <출처: 서울시청>

OLYMPUS DIGITAL CAMERA옛 청사 리모델링 공법 모델.

뜬구조 공법
옛 청사의 원형보존 구간인 중앙홀 및 전면외벽을 존치한 상태에서 지하 골조공사를 진행하기 위하여 뜬구조 공법을 도입하였다. <출처: 서울시청>

서울시 옛 청사의 역사
조선시대 한성부 청사는 광화문 앞 육조거리 동쪽의 세번째 자리에 있었다. 170칸이 넘는 큰 규모의 청사였다. 19세기 후반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경희궁 앞쪽으로 옮겼고 그 뒤에도 여러 차례 청사를 옮겼다. 일제강점기 한성부가 경성부로 바뀌고 청사는 중구 충모로 1가(현 신세계백화점)에 있었다. 1920년대 들어 시세가 팽창하자 일제는 청사 신축을 계획하고 1923년 2월 당시 경성일보사가 있던 자리로 위치를 선정하였다. 당시 위치 선정 배경에는 건립 중이던 조선총독부 청사와 함께 덕수궁(경운궁)이 지니는 상징적 의미를 말살하려는 의도가 강하게 깔려 있었다. 일제는 1924년 신청사를 착공하여 1926년 현재의 서울시청 자리에 새청사를 준공하였다. 광복 후 서울시는 경성부 청사를 그대로 서울특별시 청사로 사용하였으나 인구의 폭발적 증가와 시정업무의 확대 등으로 1987년까지 6차례의 증축과정을 거쳐 확장되었으며, 내.외부 공간의 개보수도 지속적으로 진행되었다. 이후 행정수요 변화에 대응하는 공간의 변용이 요구됨에 따라 시민의 행정, 문화, 예술, 사회생활의 중심공간으로서 자치시대의 자유로운 개방공간을 확보하고자 새로운 청사를 짓고 옛 청사는 서울도서관으로 조성하는 공사를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시행하였다. <출처: 서울시청>

OLYMPUS DIGITAL CAMERA시울시청 옥상 공원. 덕수궁을 비롯하여, 서울시청광장, 광화문 대로 등 주변 경치를 감상하기 좋은 명소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서울시청과 마주 하고 있는 프리자 호텔

OLYMPUS DIGITAL CAMERA숭례문과 서울역으로 연결대는 광화문 대로.

OLYMPUS DIGITAL CAMERA울창함 숲으로 둘러 싸인 덕수궁.

OLYMPUS DIGITAL CAMERA대한성공회 성당과 서울시의회(옛 국회의사당)

OLYMPUS DIGITAL CAMERA광화문 대로.

OLYMPUS DIGITAL CAMERA옛 서울시 청사과 신청사.

서울시 옛 청사, 일제강점기, 서울 중구 세종대로
서울시 옛 청사는 일제강점기인 1026년 경성부 청사로 건축되어 사용되다가 광복 후 서울특별시 청사로 사용된 건물이다. 이 건물은 좌우 대칭적인 정면성과 입면과 평면의 3분할 구성 등 르네상스 양식의 기본 틀을 갖추면서도 대지 형태에 맞춘 합리적인 배치, 개방형 사무 공간, 장식성을 배제한 수수한 외관 등 역사주의 건축 양식에서 근대주의 건축으로 이행되는 과도기적 성격을 보여준다. 인구의 폭발적 증가와 시정의 확대로 수차례 증축과 개수와 보수작업이 이루어졌는데, 21세기 행정 수요의 변화에 대응하고, 세계 도시로서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뒤편에 새로운 청사를 짓게 되었다. 신청사 건축으로 내부와 외관 일부가 변경되었고,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새단장 공사를 거치면서 서울도서관과 전시관, 역사관을 갖춘 시민 문화 공간이 조성되었다. 이 건물은 옥탑과 전면 파사드(facade), 현관과 중앙 홀 등 주요 부분에 건립 당시의 모습이 잘 남아 있어 당시의 건축 기술 수준을 가늠할 수 있으며, 주변의 덕수궁과 성공회 성당, 구 국회의사당(현 서울시의회) 등과 함께 서울 태평로 일대의 역사적 도시 경관의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다. <출처: 문화재청>

<참고문헌>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문화재청, 3.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