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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조동리 유적, 선사시대 생활유적

충북 충주시 동량면 조동리에 있는 선사시대 생활유적지이다. 남한강 충주댐 하류 방향 약 3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마을 유적으로서 신석기.청동기시대의 문화층이 잘 보존되어 있다. 남한강을 건너는 나루터로 원주와 제척지역을 연결해 주며, 남한강 조운에서도 중요했던 곳으로 보인다. 원주로 연결되는 국도 19호선 목행대교와 충북선 철도가 부근을 지나가고 있다.

1996년부터 여러차레 발굴조사가 이루어 졌다. 발굴.조사 결과 신석기 문화층에서는 빗살무늬토기가, 청동기 문화층에서는 민무늬토기 외에 집터, 불땐자리, 움, 도랑 등의 다양한 생활유적이 확인되어 큰 마을을 이루며 생활했음을 보여준다. 출토유물로는 각종 토기류와 화살촉, 돌도끼, 대패날, 그물추, 가락바퀴 등의 석기류가 나왔고 쌀, 보리, 밀 등의 곡물과 복숭아 씨앗, 도토리 등이 나와 당시 사람들의 식생활도 가늠해 볼 수 있다. 충주지역 신석기.청동기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충주 조동리 선사유적. 신석기 ~ 청동기시대 집터 등 마을 유적이 확인되었다. 이곳은 남한강을 건너는 나루터가 있던 곳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동량면소재지가 위치한 조동리 마을은 전체가 생활유적지라 할 수 있지만 남한강 제방 안쪽 농경지로 사용하던 곳에 옛 유물과 집터 등이 발굴되었다. 발굴조사가 끝난 지금은 다시 농경지로 사용되고 있다.

충주 조동리유적  21-20191212발굴조사 당시 모습.

조동리 선사유적
조동리 유적은 충북 충주시 동량면 조동리 조돈마을 1364-2(전) 일대에 위치한다. 1996년 1차 조사를 실시하여 중원지역에서는 드물게 신석기 ~ 청동기시대 문화층이 잘 발달되어 있음을 확인하였고, 유물포함층이, 청동기츠에서는 집터 9기.불때자리 49기.움 18기.도랑 유구 7기.돌무지 유구 1기 및 근대의 우물 1기.불땐자리 1기 등 모두 87기의 유구가 조사되었다. 이러한 다양한 유구와 많은 출토 유물상으로 볼 때 청동기시대에 이곳에 대규모 취락을 형성하고 활발한 생산경제활동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신석기층의 불땐자리가 6,200 bp로, 청동기층은 집터가 2,715 bp. 불땐자리가 2,995 bp로 측정되어, 약 7천년 전 처음신석기인이 조동리에 와서 살았고, 약간의 공백 상태로 있다가 약 3천년 전쯤부터 다시 청동기인이 와서 농경생활을하며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안내문, 충주시청, 2011년)

OLYMPUS DIGITAL CAMERA조동리 선사유적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굽잔토기(복제품), 조동리 유적지를 대표하는 유물로 강한 지역성을 보여주고 있다.

조동리의 굽잔토기
굽잔토기는 청동기시대 전기의 긴 네모꼴 집터에서 출토되며, 주로 경기도.강원도.충청도 등 중부지방에서 발견되고 있다. 바탕흙이 곱고 겉면에 산화철을 바르고 간 뒤 소성하여 제작하였다. 길고 가는 굽다리의 내부에 원통형 구멍이 깊숙이 뚫려 있으며, 배가 부른 몸통을 지닌 모습으로 주로 한강유역에서 출토되고 있어 강한 지역성을 띠고 있다. 이 토기는 청동기시대 토기 중 특징적인 것으로 집안에 둔 신성한 토기로서 제사와 같은 특수 목적용으로 사용되었다고 여겨진다. (안내문, 충주시청, 2011년)

OLYMPUS DIGITAL CAMERA조동리 유적에서 확인된 생활 유적들

조동리 유적의 발굴현황
조동리 유적은 남한강가에 형성된 넓은 충적대지에 위치한 선사시대 생활유적으로 크게 3지구로 구분되며, 1지구를 중심으로 3차에 걸쳐 신석기.청동기 문화층을 발굴조사하였다. 발굴결과 확인된 유구와 출토유물 및 입지환경으로 볼 때 조동리 유적은 청동기시대에 큰 규모의 마을을 형성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불땐자리 1기가 조사된 신석기층을 정밀 조사하면 중원지역의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로 이어지는 문화발달 과정을 밝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중요한 유적이다. (안내문, 충주시청, 2011년)

OLYMPUS DIGITAL CAMERA발굴당시 확인된 집터

조동리의 집터
집터는 청기층에서 네모꼴 집터7기.둥근꼴 집터 2기 등 모두 9기가 조사되었는데, 유적의 중앙부에 서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독립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내부 시설물로는 기둥구멍(3.7.8호)과 불땐자리(1.4.7.9호)가 있으며 출입시설은 확인되지 않았다. 불땐 자리는 길죽한 강자갈돌로 만든 돌돌림형태로 1개(1.4호) 또는 2개(7.9호)를 설치하였다. 집터의 긴 길이방향은 대체로 남한강 흐름방향과 일치한다. 특히 7호 집터는 움 벽면에 상수리나무를 가공한 판지를 대어 벽체를 형성하였음이 확인되어 주목된다. 유물은 토기.석기.뼈연모.치레거리.곡물낟알.열매씨앗 등 많은 양의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연대 측정결과 2,700 bp로 밝혀져 이 시기 중원지역의 청동기시대 생활문화상을 이해할 수 있다. (안내문, 충주시청, 2011년)

OLYMPUS DIGITAL CAMERA발굴조사 결과를 토대로 재현해 놓은 마을

조동리마을의 생활상
남한강변의 넓은 충적대지 위에 자리잡은 조동리 마을은 청동기시대에 네모꼴과 둥근꼴의 집을 짓고, 식량 저장을 위한 움과 음식조리를 위한 야외 불땐자리를 설치하였으며, 여러 가지 용도에 맞는 토기와 석기를 제작하였다. 쌀.보리.밀.조 등의 곡물을 생산하고, 계절에 따라 주변에서 안정적으로 구할 수 있는 도토리.복숭아 등 야생식물을 채집하여 기본적인 식생활을 해결하고 움에 식량을 저장하였다. 물고기잡이와 짐승사냥을 통해서 단백질이 풍부한 먹거리를 확보하여 토기에 담아 삶거나 불때 자리에 익혀 먹었다. 실을 짜서 옷을 만들어 입었고, 옥으로 치레걸이를 만들어 몸을 치장하는 미의식을 표현하였을 뿐만 아니라, 제사와 같은 의식행위도 있었음을 출토유물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안내문, 충주시청, 2011년)

OLYMPUS DIGITAL CAMERA민무늬토기, 청동기시대

OLYMPUS DIGITAL CAMERA숫돌, 홈자귀, 갈판, 청동기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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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패날, 긴돌찰, 화살촐, 청동기시대

OLYMPUS DIGITAL CAMERA발화석, 청동기시대

석기류
석기는 땅을 파는 돌괭이.돌보습, 나무를 자르거나 다듬는 돌도끼.돌대패날, 사냥이나 무기로 사용된 간돌검.화살촉, 곡식을 수확하는데 쓰인 돌낫.반달돌칼, 곡식을 가공하는데 쓰인 갈돌과 갈판, 물고기잡이 도구인 그물추, 실을 감는데 사용하는 가락바퀴, 도구를 가는데 사용하는 숫돌, 불을 일으키는데 사용된 발화석, 도구를 제작하는 데 쓰인 망치돌 등 매우 다양한 석기가 출토되었다. 특히 뗀석기 전통을 지닌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뗀돌도끼가 많이 주목되며, 미완성 석기, 격지, 부스러기 등이 많이 출토되어 석기제작 행위가 매우 활발하였음을 알 수 있다. (안내문, 충주시청, 2011년)

OLYMPUS DIGITAL CAMERA유적지 앞을 지나는 도로.

OLYMPUS DIGITAL CAMERA도로와 제방 사이에 유적지가 위치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박물관 옆에 있는 동량면사무소. 선사시대 이래 교통의 중심지였던 이곳이 지금도 생활의 중심지임을 알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앞을 흐르는 남한강. 충주댐에 하류방향으로 약 3 km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협곡을 지나던 남한강이 평야지대와 만나는 지점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멀리서 보이는 조동리 주변지역

 조동리선사유적
충주댐으로부터 약 3 km 하류의 남한강변 충적대지에 위한 선사시대의 대규모 마을 유적으로서 신석기.청동기시대의 문화층이 잘 보존된 곳이다. 신석기시대의 문화층에서는 민무늬토기 외에 집터, 불땐자리, 움, 도랑 등의 다양한 생활유적이 드러나 대규모의 사람들이 큰 마을을 이루며 생활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출토유물로는 각종의 토기류와 화살촉, 돌도끼, 대패날, 그물추, 가락바퀴 등의 석기류가 나왔고 쌀, 보리, 밀 등의 곡물과 복숭아 씨앗, 도토리 등이 나와 당시의 식생활도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지이다. 이곳은 충주지역의 신석기.청동기시대의 역사를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안내문, 충주시청, 2011년)

<출처>

  1. 안내문, 충주시청, 2011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

강진 송정리 지석묘군

전남 강진군 칠량면 송정리에 있는 지석묘군이다. 고인돌이라 부르는 청동기시대 지배계층 무덤 유적이다. 이곳에는 24기의 고인돌이 남아 있는데 대부분 남방식으로 불리는 바둑판식이다. 발굴.조사 결과 민무늬토기.붉은간토기조각.돌화살촉 등의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이곳은 강진만 서쪽 해안에 위치하고 있는데 고대 이래 한.중.일을 연결하는 연안해상교통로 주요 거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인근 대구면에는 고려시대 청자를 굽던 가마터(사적 68호)가 있으며, 병영면에는 조선시대 전라병영이 설치되었다.

SANYO DIGITAL CAMERA강진 송정리 지석묘군. 남방식 고인돌로 불리는 청동기시대 무덤유적이 남아 있다.

SANYO DIGITAL CAMERA상당히 큰 규모의 고인돌.

SANYO DIGITAL CAMERA받침돌이 없는 전형적인 바둑판식 고인돌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안쪽에 있는 큰 규모의 고인돌들.

<출처>

  1.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영주 가흥리 암각화,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새겨놓은 바위그림

경북 영주시 가흥동에 있는 암각화이다. 마애여래삼존상(보물 221호)이 새겨진 바위 아래에 새겨진 것으로 높이 1 ~ 1.5 m, 너비 4.5 m 정도이다. 바위에 도구로 쪼아 새긴 방법을 사용한 것으로 3 ~ 5개의 선을 연결하고 있는데 청동기시대에 새겨진 것으로 보인다. 고령 장기리 암각화(보물 605호)의 얼굴그림을 변형하여 표현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 의미는 알 수 없다. 암각화란 선사시대 바위나 동굴벽면에 기호나 물건, 동물 등을 새겨 놓은 것으로 풍요와 생산을 기원하는 주술행위의 결과로 보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영주 가흥리 암각화. 청동기시대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되며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제의 활동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고령 장기리 암각화처럼 큰 하천이 내려다 보이는 바위에 새겨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그림은 얼굴모양을 간략화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 내용은 알 수 없다.

OLYMPUS DIGITAL CAMERA암각화가 새겨진 큰 바위. 위쪽에 통일신라 때 조성한 것으로 보이는 마애여래삼존상이 있다. 지역에서 큰 의미를 갖는 장소였던 것으로 보인다.

영주 가흥리 암각화, 경북 영주시 가흥동
이 암각화는 내성천의 지류인 서천이 영주시 서편을 따라 남쪽으로 흐르다가 다시 서남쪽으로 굽어도는 지점에 있다. 가흥리 마애삼존불상과 같은 암반의 남쪽 수직 석벽에 새겨져 있으며 1989년에 발견되었다. 그림이 새겨진 암벽은 거친 화강암질로 높이 약 4 m, 폭이 5 m가 넘는 꽤 큰 규모이다. 암벽은 상하로 구분되는데, 암각화는 하단부에 있으며, 전체 암각화가 차지하는 규모는 높이 1.5 m, 길이 4.5 m 정도이다. 검포형의 암각화가 점차 도식화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며 청동기 시대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암벽에 신앙의 대상물을 새기고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던 제의 장소로서의 특징이 나타난다. (안내문, 영주시청, 2017년)

<출처>

  1. 안내문, 영주시청,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8년

제천 청풍지역 고인돌

충풍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 청풍문화재단지에 전시해 놓은 청동기시대 무덤인 고인돌이다. 옛 청풍. 수산.덕산.한수 지역에 산재해 있던 에 산재해 있던 것들을 충주댐 건설로 수몰되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 남한강 유역의 청동기시대 문화를 살펴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북방식과 남방식 고인돌이 같이 발견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청풍문화재단지로 옮겨 놓은 고인돌. 충주댐 건설로 수몰된 지역에 있던 고인돌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절반이 깨어진 채 남아 있는 고인돌. 탁자모양을 하고 있는 북방식 고인돌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북방식으로 보이는 고인돌.

OLYMPUS DIGITAL CAMERA작은 규모의 남방식 고인돌. 별자리모양을 새긴 성혈이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고인돌에 새겨진 성혈.

고인돌과 성혈(星穴)
고인돌은 선사시대 거석문화의 일종으로 지상이나 지하의 무덤방 위에 괴었던 거대한 돌로 이루어진 일종의 무덤양식이다. 지역에 따라 조금씩 형태의 차이는 있으나 일반적으로 받침돌 위에 덮개돌이 있는 탁자모양을 띄고 있다. 본 고인돌군은 충주댐 건설로 인해 수몰된 청풍면 황석리 지역에서 옮겨온 남방식 고인돌로 특히, 중앙에 배치된 고인돌은 하늘의 별로 보이는 성혈이 새겨져 있어 특이하다. 전국에 있는 많은 고인돌 중 별자리가 표시되어 있는 고인돌은 그리 흔치 않으며, 약 2,500여 년의 세월을 거치며 풍화작용에 의해 다른 별자리들은 마모되어 알아 볼 수 없지만 북두칠성(큰곰자리)과 북극성(작은곰자리)만은 선명히 남아 있다. 이 성혈은 묻힌 사람의 영생불멸을 기원하여 새긴 것으로 보이며, 별자리의 위치로 보아 당시 4~5월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안내문, 제천시청, 2011년)

OLYMPUS DIGITAL CAMERA작은 크기의 고인돌.

OLYMPUS DIGITAL CAMERA북방식으로 보이는 고인돌. 덮개돌만 남아 있다.

<출처>

  1. 안내문, 제천시청, 2011년

 

제천 입석리 선돌, 마을 입구에 세워졌던 큰 돌

충북 제천시 송학면 입석리 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는 선돌이다. 3단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7개의 돌을 쌓아 만든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는 선돌이다. 충북지방에서 확인된 선돌 중 가장 큰 편으로 위쪽이 뾰족한 남성 선돌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입석리’라는 마을 이름도 이 선돌에서 유래하였다.

선돌은 길쭉한 자연석 또는 일부분 가공한 기둥 모양을 돌을 땅위에 세워 기념물 또는 신앙대상물로 삼는 것을 말한다.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에 조성된 것을 주로 선돌이라 일컫는다. 우리나라에서는 고인돌에 비해 그 숫자는 적지만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으며 대부분 단독으로 마을 어귀나 평지에 위치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제천 입석리 선돌.  7개의 돌을 쌓아 하나의 선돌을 만들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선돌.

OLYMPUS DIGITAL CAMERA반대편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선돌이 세워져 있는 입석리 마을.

제천 입석리 선돌, 충북 제천시 송학면 입석리
이 선돌은 입석마을 입구의 길 옆 가장자리에 세워져 있으며, ‘선돌백이’라 불리고 있다. ‘입석리(立石里)’라는 마을 이름도 여기서 유래하였다. 선돌은 전체적으로 3단 구성을 하고 있다. 가장 아랫부분은 높이 66 cm의 낮고 폭이 넓은 3개의 돌을 놓았고, 그 위에 높이 96 cm, 너비 140 cm, 두께 96 ~116 cm 크기의 돌 3개를 올려 놓아 중앙부를 이루고 있다. 가장 윗부분에는 높이 245 cm, 너비 258 cm, 둘레 654 cm의 커다란 돌을 올려놓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7개의 돌을 쌓아 하나의 선돌 형태를 이루고 있는 독특한 구조이다. 입석리 선돌은 지금까지 충북지방에서 확인된 선돌 가운데 가장 큰 편에 속하며, 위 끝 한쪽이 뾰족한 남성 선돌의 특징을 가진다. 남한강 유역의 대표적 선돌의 하나인 입석리 선돌은 제천 황석리 선돌, 단양 각기리 선돌들이 짝을 이루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홀로 있으며, 이 마을의 문화적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마을에서는 이 선돌을 보존하기 위하여 1974년부터 주민들이 ‘선돌회’를 조직하여 관리하고 있고, 마을의 무사태평을 기원하는 ‘선돌제’를 지내고 있다. (안내문, 제천시청, 2017년)

<출처>

  1. 안내문, 제천시청,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