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사찰

서울 관악산 호압사, 호랑이 기운을 누르기 위해 세운 사찰

서울 금천구 시흥2동 관악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사찰인 호압사(虎壓寺)이다.  조선 초 태종 때 (1407년)에 창건되었다. 조선이 한양에 도읍을 정하고 나서 호랑이가 한성을 향해 달려가는 형상을 하고 있는 이곳에 절을 지었다고 한다. 창건 이후 호압사에 대한 기록 거의 없어 그 내력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으며 1841년 상궁 남씨와 유씨의 후원으로 중창되었고 한다. 구한말 궁궐 여인들의 후원을 받아 새롭게 중건되었던 수도권 사찰의 특징을 보여준다.

사찰 내에는 조선전기에 조성된 석조약사여래좌상을 모신 약사전과 삼성각, 요사채 등을 두고 있다. 호암산(해발 393 m)으로 불리는 봉우리 아래에 자리잡고 있으며 사찰 앞을 막고 있는 산이 없어 금천구와 구로구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서울 관악산 호압사 04-20191203 관악산 중턱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호압사. 경사진 지형에 석축을 쌓고 건물을 올렸는데 규모는 크지 않은 편이다.

서울 관악산 호압사 01-20191203호압사 경내. 약사여래를 모신 약산전과 요사채 등을 두고 있는 작은 암자 규모의 사찰이다.

서울 관악산 호압사 05-20191203주불전인 약사전. 조선전기에 조성된 석조약사여래좌상을 모시고 있다.

서울 관악산 호압사 08-20191203뒷편에 있는 삼성각

서울 관악산 호압사 06-20191203마당에는 수령 5백년이 넘는 고목이 있어 사찰의 오랜 내력을 말해주고 있다.

서울 관악산 호압사 07-20191203사찰 뒷편으로 보이는 호암산. 호랑이 형상을 닮았다하여 그 기세를 누르기 위해 이곳을 절을 세웠다고 한다.

서울 관악산 호압사 02-20191203마당에서 내려다 보이는 모습. 멀리 구로구.금천구, 광명시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서울 관악산 호압사 03-20191203아래쪽에 본 호압사

호압사, 서울 금천구 시흥2동
호압사가 창건된 데에는 두가지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먼저 <신층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금천의 동쪽에 있는 산의 우측면 형상이 범이 걸아가는 것과 같고, 위태한 바위가 있는 까닭에 그 바위를 범바위라 부른다. 풍수가들이 이를 보고 바위 북쪽에다 절을 세워 호갑이라 하였다’라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1394년(태조 3)을 전후해 조선의 도읍을 서울로 정하고 궁궐을 짓는 과정에서 밤마다 괴물이 나타나 궁궐을 무너뜨리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에 무학대사의 조언을 받아 호랑이 꼬리에 해당하는 현재의 터에 사찰을 짓고 한양의 지세를 안정시켰다는 것이다. 이렇듯 호압사는 조선 초 한양을 수도로 정함에 관려된 일로 창건된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이후 호압사는 1841년(헌종 7)에 이르러 중창이 되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지금은 전하지 않지만 같은 해 의민스님이 쓴 <경기좌도 시흥삼성산호압사법당현판문>에 상궁 남씨와 유씨의 도움을 받아 법당을 고쳐 지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고 전해진다. (안내문, 서울 호압사, 2019년)

<출처>

  1. 안내문, 서울 호압사, 2019년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0년
  3.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칠곡 가산 송림사, 중국풍 전탑이 세워져 있는 고찰

경북 칠곡군 동면면 구덕리 가산(902 m) 아래에 있는 고찰인 송림사(松林寺)이다. 삼국시대 544년(진흥왕 5)에 승려 명관이 중국 진나라에서 가져온 석가모니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창건한 사찰로 알려져 있다. 이후 1092년 대각국사가 크제 중창한 것으로 볼 때 천태종 사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 전각 대부분이 소실되었으며 1858년에 크게 중건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경주에서 상주, 안동을 거쳐 한강유역으로 연결되는 중요 교통로 평지에 위치하고 있다. 벽돌로 쌓은 전탑이 세워져 있는 많지 않은 사찰 중 하나이다.

경내 전각으로는 목조석가여래 삼존좌상(보물 1605호)를 모시고 있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석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등을 모신 오천불전과 명부전, 응진전, 요사채 등을 두고 있다. 대웅전 앞 경내에는 통일신라 때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세운 중국풍 오층전탑(보물 189호)이 있다. 1959년 탑의 해체.수리 과정에서 통일신라를 대표하는 사라장엄구(보물 325호) 등이 발견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칠곡 송림사. 삼국시대에 석가모니 사리를 모시기 위해 창건한 사찰로 경주에서 상주로 연결되는 주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는 평지사찰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송림사 주불전인 대웅전. 임진왜란 직후  다시 중건할 때 지은 것을 그후 여러차례 중수하였다. 앞면 5칸으로 맞배지붕에 다포계공포를 사용하고 있다. 조선후기 불전 건축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다.

칠곡 송림사 20200120-21
석가여래와 문수.보현보살로 구성된 삼존불상 중 본존불로 높이 3 m에 육박하는 큰 불상이다. 17세기 대웅전 중수과정에서 제작되었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웅전 앞에 우뚝 세워져 있는 중국풍의 오층전탑(보물 189호). 전체 높이 16 m로 상당히 높은 편인데 각층의 지붕돌을 넓게 만들어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주고 있다. 꼭대기에는 금동으로 만든 머리장식이 남아 있어 통일신라 전탑의 상륜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탑의 해체.수리 과정에서 발견된 사리장엄구. 닫침형태의 사리구 안에 유리잔과 사리를 담은 유리병이 있다. 통일신라 금속공예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오층전탑 옆 경내 마당에 있는 석재들. 사찰의 오랜 내력을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오층전탑 옆에 있는 명부전

OLYMPUS DIGITAL CAMERA응진전

OLYMPUS DIGITAL CAMERA산령각

OLYMPUS DIGITAL CAMERA사찰 입구에 있는 강당건물

OLYMPUS DIGITAL CAMERA요사채

OLYMPUS DIGITAL CAMERA최근에 지은 것으로 보이는 천불전. 석조아미타여래 삼존좌상(보물 1606호) 등이 모셔져 있다.

칠곡 송림사 20200120-21
석조아미타여래 삼존좌상 중 아미타여래좌상(보물 1606호)

송림사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의 말사이다. 신라 진흥왕 때 진나라 사신이 명관대사와 함께 불서 2,700권과 불사리를 가지고 와서 불사리를 봉안하기 위하여 창건한 사찰이다. 고려 선종 9년(1092)에 대각국사 의천이 중수하였으나 고종 22년(1235) 몽골의 3차 침입으로 전탑만 남고 가람이 모두 소실되었다. 그 뒤 중창했으나 조선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으로 또 한번 소실되어 재차 빈터만 남게 되었다. 이후 중창을 거쳐 숙종 12년(1686) 기성대사가 중건 당시 숙종의 어필로 현재 대웅전의 편액을 하사 받았으며, 철종 9년(1858) 영추 스님이 다시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주요 건물은 대웅전, 일주문, 설법전, 종각, 명부전, 삼천불전, 종무소, 요사채, 산령각, 응진전, 삼성각, 선불장 등이 있다. 칠곡송림사오층전탑(보물 189호), 칠곡송림사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보물 1605호), 칠곡송림사석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보물 1606호), 칠곡송림사명부전목조시왕상과제상, 송림사복장전적, 칠곡송림사대웅전, 송림사명부전석조삼장보살좌상 등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안내문, 칠곡 송림사, 2019년)

<출처>

  1. 안내문, 칠곡 송림사, 201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0년

군위 제 2 석굴암으로 불렸던 작은 사찰

경북 군위군 부계면 남산리 아미타여래삼존 석굴(국보 109호)이 사찰이다. 제2석굴암으로 곳으로 이름은 알 수 없지만 바위에 석굴을 파고 그 안에 불상을 모신 전통 석굴사원 형태를 제디로 갖추고 있는 곳이다. 석굴 앞에 중국 전탑을 모방해서 만든 모전석탑이 일부 복원되어 있으며 비로자나여래를 모신 비로전을 별도로 두고 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팔공산 자락 경치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고 독특한 형태의 사찰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제2석굴암으로 불렸던 사찰. 아미타여래삼존 석굴(국보 109호)를 중심을 비로전, 모전석탑 등을 두고 있는 작은 사찰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석굴 앞 마당에 있는 불전인 비로전.

OLYMPUS DIGITAL CAMERA비로전 옆 야외에 있는 삼존석굴 석조비로나불좌상.

군위 삼존석굴 석조비로자불좌상
군위 삼존석굴 석조비로자나불 좌상은 삼존석불이 모셔진 이후인 9세기 경에 만들어졌다. 당시에 유행하던 신라 비로자나불상의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불상의 변천과 신앙 추이를 확인할 수 있다. 불상은 결가부좌를 하고, 통견식의 법의를 입고 있다. 양쪽 어깨에 법의가 조금씩 걸쳐져 있어 앞가슴이 넓게 드러나 있다. 두 팔을 타고 내려온 옷 주름은 두 무릎에서 다시 물결무늬를 만들고 있다. 수인은 지권인이며 목에는 삼도가 있다. 두 빰은 풍만하며 귀가 길게 늘어져 있고, 머리는 소라 껍대기처럼 말린 모양이며, 육계는 편평하다. 원래는 파괴된 대좌와 함께 지금의 위치에서 약 30 m북쪽에 있었으나 1990년 대웅전을 늘려 지으며 대좌와 불단을 새로 만들고 옮겼다. (안내문, 군위군청,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석굴 앞 마당에 있는 모전석탑. 지금은 단층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원래는 3층이었다고 한다. 이 석탑이 조성된 유래에 대해선는 알려진 바가 없다고 한다.

군위 삼존석굴 모전석탑
이 모전석탑은 단층 기단 위에 단층의 탑신부를 조성한 특이한 형태로써 작자와 유래는 알 수 없다. 본래 3층이었으나, 탑신부에 자생한 소나무가 태풍에 쓰러지면서 탑도 같이 무너졌다고 한다. 1949년 당시 창건주가 주선하여 군위군 우보면 신도들의 힘을 모아 현재 모습대로 복원하였다고 한다. 탑의 전체 높이는 400 cm, 기단의 한 변은 390 cm이며, 우주와 탱주는 약 16 cm, 옥개석에서 정상부까지는 약 165 cm이다. 모서리 기둥과 각 면 3개의 안 기둥 및 기단 덮개돌이 있으며, 1층 탑신부에는 약 20여 단의 일정하지 않은 직사각형 판석을 쌓았다. 1층 지붕돌의 층급은 3단이며 지붕돌 상면에도 다시 여러 단의 층급을 놓아 점차 체감되게 하였고 다시 그 상부 중앙에 노반 및 보주를 배치하였다. (안내문, 군위군청,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국보 109호). 원래는 석굴 앞까지 갈 수 있도록 1960년대에 계단을 만들었는데 지금은 사용하고 있지 않다.

OLYMPUS DIGITAL CAMERA석굴로 오르는 계단 입구.

OLYMPUS DIGITAL CAMERA석굴 앞 계단.

OLYMPUS DIGITAL CAMERA석굴에는 아미타여래를 본존불로, 좌우에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협시보살로 두고 있다. 바위에 불상을 새기던 삼국시대 석굴사원과는 달리 석굴을 파고 불상을 모신 정통 석굴사원을 제대로 구현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비로전 뒷편 불전과 승방들이 있는 공간.

OLYMPUS DIGITAL CAMERA석굴이 있는 바위산.

OLYMPUS DIGITAL CAMERA석굴 앞을 흐르는 개울.

<출처>

  1. 안내문, 군위군청, 201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국보 109호), 제대로된 모습을 갖춘 삼국시대 석굴사원

경북 군위군 부계면 남산리에 있는 아미타여래삼존 석굴(국보 109호)이다. 제2석굴암이라고 불렸던 이곳은 팔공산 자락 절벽에 동굴을 만들고 불상을 모신 석굴사원이다. 불국사 석굴암과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석굴사원으로 바위에 마애불상을 새기고 그 앞에  전실을 두었던 삼국시대에 비해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곳에 모신 불상들은 700년 경에 조성된 것으로 아미타여래를 본존불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협시보살로 모시고 있다. 본존물은 대좌위에 앉아 있는 자세로 머리에는 큼직한 육계가 있으며 삼국시대 불상에서 볼 수 있는 미소띤 얼굴 대신 위엄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좌.우의 보살은 작은 불상과 정병이 새겨진 관을 들고 있는데 당나라 불상의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국보 109호).  바위에 마애불상을 새기고 그 앞에 전실을 두었던 이전의 석굴사원과는 달리 바위를 파서 동굴을 만들고 그 안에 불상을 안치했던 인도, 중국의 정통 석굴사원을 구현해 놓았다.

OLYMPUS DIGITAL CAMERA석굴사원에 모신 불상. 석굴 높이는 4.25 m이며, 높이 4.25 m의 본존불은 아마타여래를 표현하고 있다. 미소를 띤 삼국시대 불상과는 달리 근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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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편 협시보살. 보관을 쓰고 있는 관세음보살을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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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편은 대제지보살을 표현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이 있는 절터.

군위 아마타여래삼존 석굴, 국보 109호
군위 아미타여래 삼존 석굴은 이곳에서 오른쪽 계단을 오르면 보이는 석굴로 아미타여래 삼존불을 모신곳이다. 이 석굴은 지금으로부터 1500여 년 전인 신라 눌지왕 대에 아도하상이 수도전법한 곳이며, 문무왕 대에 원효대사가 본존불과 본존불의 좌우에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모신 곳이다. 이 삼존 석굴은 8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경주 토함산 석굴암의 모태가 되었다. 가람은 오랜 세월 폐허로 방치되었는데, 1927년 새롭게 발견되어 삼층 모전 석탑을 보수하였고, 1961년에는 초대 주지 스님이 부임하면서 법당을 지었다. 삼존 석굴은 1962년 황수영 박사의 학술 조사를 통해 그 가치를 인정받아 국보로 지정되었고, 그 해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예산을 받아 석불교, 계단, 석난간이 추가로 설치되었다. 1985년부터 삼대 법등 주지 스님이 다시 절을 지어 지금의 도량이 되었다. (안내문, 군위군청, 2019년)

<출처>

  1. 안내문, 군위군청, 201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0년
  4. 위키백과, 2020년

양평 용문산 용문사, 은행나무로 유명한 사찰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신점리 용문산(1,157 m) 자락에 있는 고찰인 용문사(龍門寺)이다. 통일신라 신덕왕 때(913년) 대경대사가 처음 창건하였다고 한다. 고려말 정지국사가 이곳에 대장견을 봉안하였으며 조선 태조 때 조안이 크게 중창하였다. 이후 수양대군이 모후 소헌왕후 심씨를 위해 보전을 짓고 원찰로 삼았다. 이후 1907년 항일의병이 근거지로 삼으면서 일본군에 의해 사찰 전체가 불타버렸으며 이후 여러차례 중건을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각으로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지장전, 관음전, 삼성각, 요사채 등을 두고 있는데 대부분 최근에 중건된 것이다. 사찰 뒷편 언덕에는 고려말 활동했던 정지국사 승탑(보물 531호) 비가 있으며 관음전에는 고려말.조선초기 불상양식을 잘 보여주는 금동관음보살좌상(보물 1790호)를 모시고 있다. 한국 불교에서 역사적,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찰은 아니지만 가장 크고 오래돤 은행나무가 있는 서울에서 가까운 경치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양평 용문사 20191109-41양평 용문산 용문사. 통일신라 때 창건된 사찰로 조선시대에는 세종비 소현왕후를 모시는 원찰로 여겨졌다. 용문산 중턱 계곡에 축대를 쌓아 터를 잡고 그 전각들을 세웠는데 공간은 비교적 넓은편이다.

양평 용문사 20190603-02용문사 산문.

양평 용문사 20190603-03산문에서 계곡을 따라 20여분을 걸으면 용문사 사천왕문이 보인다.

양평 용문사 20190603-04용문사 앞을 흐르는 계곡

양평 용문사 20191109-49용문사 사천왕문

양평 용문사 20190603-10천왕문 부근에서 본 모습. 수령 1,100년이 넘은 은행나무과 용문산 정상을 배경으로 우뚝 솟아있다.

양평 용문사 20191109-48
가을 용문사 은행나무(천연기념물 30호)

양평 용문사 20191109-46은행나무를 지나 계단을 올라서면 주불전인 대웅전이 보인다. 동쪽으로는 지장전을 비롯한 불전들이, 서쪽으로는 승려들이 기거하는 요사채가 배치되어 있다.

양평 용문사 20190603-13대웅전 내부

양평 용문사 20190603-12용문사 마당에서 보이는 은행나무.

양평 용문사 20191109-45대웅전 옆에는 죽인이의 명복을 비는 공간인 지장전이 있다. 신도들을 위한 공간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수도권 사찰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양평 용문사 20190603-16지장전 내부.

양평 용문사 20190603-15경내 마당 동쪽편에 위치한 관음전.

양평 용문사 20200115-31
관음전에 모셔진 금동관음보살좌상(보물 1790호). 고려말.조선초 불상양식이 잘 반영되어 있는 불상이다.

양평 용문사 금동관음보살좌상
관음전에 모셔진 이 금동관음보살좌상은 전형적인 고려 후기의 조각 양식을 계승한, 15세기 초의 우수한 작품으로 전체적으로 당당하면서도 화려한 귀족적인 분위기를 띠고 있다. 관음보살은 자비로써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로, 손에 보명이나 연꽃을 들며 머리에는 아미타불이 새겨진 보관을 쓰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다. 높이가 73 cm인 이 보살상은 자비로운 표정을 짓고 있다. 높게 묶은 머리에는 보관을 쓰고 있으며 계율을 지키고 열심히 수행한 사람이 태어날 수 있는 극락 세계를 의미하는 중품중생인의 손 모양을 하고 있고 참선할 때의 자세인 길상좌로 앉아 있다. 왼쪽 가슴께에는 아래 내의를 고정시킨 삼각형 고리가, 배 위쪽에는 치마를 묶은 매듭이 있다. 이처럼 신체에 자연스럽게 걸쳐진 옷은 발목 부분에서 부드럽게 주름지며 양 무릎을 덮었고 그 위에 영락이 장식되었다. 이 보살 좌상은 전형적인 고려 후기의 보살상의 양식적인 특징인 높게 묶은 머리, 가슴 및 무릎의 구슬을 꿰어 만든 영락 장식, 왼쪽 가슴의 삼각형 고리를 갖추고 있어 장육사 건칠보살좌상(1395년, 보물 933호)이나 파례사 목조 관음보살 좌상(1447년 이전, 보물 992호) 등과 더불어 고려 말과 조선 초기의 조각 양식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안내문, 양평 용문사, 2019년)

양평 용문사 20191109-47경내 동쪽편에 있는 요사채.

양평 용문사 20190603-20뒷편으로 승려들이 생활하는 공간이 있다.

양평 용문사 20191109-42요사채 뒷편에 있는 산령각.

양평 용문사 20191109-43산령각 아래 칠성각.

양평 용문사 20191109-44그 아래에는 미소전이라 불리는 불전이 있다.

양평 용문사 20190603-07관음전 뒷편 정지국사탑이 있는 곳을 오르는 길에서 내려다 보이는 용문사 경내. 깊은 산중에 있지만 공간은 넓은 편이다.

양평 용문사 20190603-08용문사 정지국사비(보물 531호). 고려말 활동한 정지국사(1324 ~ 1395년)의 사리를 모신 승탑이다. 조선초에 조성한 것으로 목조건축물 형태를 하고 있는 통일신라 이래 전통 승탑 양식을 따르고 있다.

양평 용문사 20190603-09용문사 정지국사 비(보물 531호). 비는 부도에 딸린 탑비로 조선 태조 7년(1398)에 건립되었으며 조성당시의 찬조자 명단과 정지국사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양평 용문사 20190603-05최근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요사채 성격의 건물들

양평 용문사 20190603-06승려들의 사리를 모신 승탑들.

용문사
신라 신덕왕 2년(913) 대경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며 일설에는 경순왕이 친히 행차하여 창사하였다고 한다. 고려 우왕 4년(1378) 지천대사가 개풍 경천사의 대장경을 옮겨 봉안하였고 조선 태조 4년(1395) 조안화상이 중창하였다. 세종 29년(1447) 수양대군이 모후 소현왕후 심씨를 위하여 보전을 다시 지었고 세조 3년(1457) 왕명으로 중수하였다. 성종 11년(1459) 서현스님이 중수한 뒤 고종 30년(1893) 봉성대사가 중창하였으나 순종 원년(1907) 의병의 근거지로 사용되자 일본군들이 불태웠다. 1909년 취운스님이 큰방을 중건한 뒤 1938년 대욱스님이 대웅전, 어실각, 노전, 칠성각, 기념각, 요사 등을 중건하였으며, 1982년 선결스님이 주지로 취임하여 대웅전, 삼성각, 범족각, 지장전, 관음전, 요사, 일주문 등을 새로 중건하고 불사리탑, 미륵불을 조성하였다. 경내에는 권근이 지은 보물 531호 정지국사 부도 및 비와 천연기념물 제30호 은행나무가 있다. (안내문, 양평 용문사, 2019년)

<출처>

  1. 안내문, 양평 용문사, 201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