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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 모악산 금산사(사적 496호), 통일신라 법상종 근본도량이었던 사찰

전북 김제시 금산면 모악산에 있는 큰 사찰인 금산사(사적 496호)이다. 금산사는 화엄종과 함께 통일신라 불교를 이끌어왔던 법상종의 근본도량이다. 삼국시대 백제 무왕 때 처음 창건되었으며, 통일신라 때 진표가 미륵존불을 모시는 장륙전을 세우는 등 사찰을 크게 중창하였다. 이후 후삼국시대 견훤이 이곳에 유배되기도 했다. 고려 문종 때 왕사인 혜덕이 다시 중창하였는데 금강계단(보물 25호), 오층석탑(보물 26호) 현존하는 석조유물들은 이 때 조성되었다. 이후 임진왜란 때 사찰 대부분이 소실되었는데 승려 수문을 중심으로 다시 중창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옛 장륙전의 모습이 남아 있는 미륵전(국보 62호)를 비롯하여 목조건축물들은 이때 다시 지어진 것들이다. 임진왜란 때 금산사 승려를 중심으로 참전하여 많은 공을 세웠기때문에 국가와 지역사회의 후원을 받아 크게 중창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금산사는 삼국시대 장륙전의 모습이 남아 있는 미륵전(국보 62호), 주불전으로 보이는 대적광전, 목탑이었던 대정전(보물 827호)을 비롯하여 나한전, 원통보전, 명부전 등 많은 불전들을 두고 있다. 또한 고려초에 조성된 석가모시 사리를 모신 금강계단(보물 26호), 오층석탑(보물 25호), 육각다층석탑(보물 27호), 노주(보물 22호), 석련대(보물 23호), 석등(보물 828호) 등 많은 석조유물들이 남아 있다. 통일신라 때에는 미륵존상을 모신 장륙전을 중심으로 공간이 배치되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고려시대 이후 수계의식 등 사찰 주요 의식을 집행하던 공간인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적광전이 주불전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김제 모악산 금산사 전경. 삼국시대 장륙전을 연상시키는 미륵전이 동쪽에 배치되어 있으며, 주불전에 해당하는 대적광전과 금강계단을 비롯한 주요 불전들이 북쪽에 배치되어 있다. 미륵전 앞에는 목탑에 해당하는 대장전이 있었으나 바깥쪽으로 옮겨졌다.

SANYO DIGITAL CAMERA금산산 들어가는 길. 금산사는 전주 남쪽에 위치한 모악산(764 m) 서쪽 계곡에 위치하고 있다. 전주와 김제 주변 넓은 평야지대의 농업생산력을 바탕으로 삼국시대 이래 큰 사찰을 유지해 왔던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금산사 앞을 흐르는 계곡

SANYO DIGITAL CAMERA사찰 경내를 들어가는 첫번째 출입문인 금강문.

SANYO DIGITAL CAMERA금산사 당간지주(보물 28호). 기단과 받침을 제대로 갖추고 있으며 조각수법과 조형미가 우수한 통일신라 전성기 작품이다. 금강문 안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원래 이곳이 사찰입구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당간지주 주변에 볼 수 있는 오래된 고목들.

SANYO DIGITAL CAMERA2번째 출입문인 천왕문.

SANYO DIGITAL CAMERA천왕문을 들어서면 최근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상당히 큰 규모의 강당 건물을 볼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삼국시대 장륙전의 모습이 남아 있는 미륵전(국보 62호). 정유재란 때 소실된 장류전을 복구한 것으로 조선시대 건축양식이 반영되어 있지만 그 규모나 형태에서 거대한 미륵삼존상을 모시는 옛 장륙전의 웅장함을 느끼게 해준다.

SANYO DIGITAL CAMERA미륵전 맞은 편에 위치한 대장전(보물 827호)과 석등(보물 828호). 원래 미륵전 앞 불경을 보관하던 목탑건물이었는데 정유재란 때 소실된 후 1층 건물로 다시 지어졌다. 일제강점기에 현위치로 옮기면서 불전으로 바뀌었다.

SANYO DIGITAL CAMERA금산사 중심영역에 해당하는 금강계단(보물 26호)과 오층석탑(보물 25호). 통도사에서 볼 수 있는 석가모니 사리를 모신 금강계단과 비슷한 형태이지만 그 앞에 다시 오층석탑을 두고 있다. 왼쪽편 주불전인 대적광전과 함께 사찰의 주요 의례를 행하던 공간이었다. 대적광전은 불상을 모시는 불전으로 바뀌고 오른쪽에 불상이 없는 적멸보궁이 새로 지어졌다. 금강계단과 석탑을 같이 두는 등 사찰 공간배치에 일관성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금산사 금강계단(보물 26호). 통도사 금강계단과 비슷한 형태로 넓은 2단의 기단 위에 석종형 탑이 올려져 있다. 기단 네면에 돌기둥이 남아 있으며, 사천왕상이 세워져 있다. 석종형 탑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고려시대 초기에 조성된 것 추정된다.

SANYO DIGITAL CAMERA 금산사 오층석탑(보물 25호). 통일신라 석탑의 기본 양식을 잘 따르고 있는 고려시대 작품으로 추정된다. 금강계단과 오층석탑이 같이 있는 특이한 형태의 공간배치를 보여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금산사 주불전에 해당하는 대적광전. 금강계단과 함께 사찰 중요 의식을 행하는 공간으로 원래는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삼신불을 모시는 공간이었는데, 정유재란 때 화재로 소실된 것을 복구하면서 극락전, 약사전에 모셨던 불상들을 같이 모시게 되었다. 원래는 보물47호로 지정된 불전이었으나 1986년 화재로 소실되면서 1990년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SANYO DIGITAL CAMERA대적광전 앞에 있는 육각다층석탑(보물 27호). 원래 금산사 봉천원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왔다. 고려초 사찰을 크게 중수할 때 조성한 것으로 흑색 점판암을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SANYO DIGITAL CAMERA석련대(보물 23호). 불상을 올려놓는 받침으로 그 형태가 특이하고 매우 큰 편이다. 원래 위치가 어디인지는 알 수 없다.

SANYO DIGITAL CAMERA노주(보물 22호). 불상을 얹는 대좌처럼 보이지만 꼭대기 꽃봉우리 조각이 있어 그 용도를 알 수 없는 석조유물이다. 다른 석조유물과 마찬가지로 고려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SANYO DIGITAL CAMERA대적광전 뒷편에 있는 나한전. 임진왜란 때 참전하면서 큰 역할을 했던 승려들의 위상을 보여주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역대 고승들의 영정을 모신 조사전.

진표율사
진표율사는 금산사를 미륵신앙 대가람으로 일으킨 중창 조사이다. 통일신라 경덕왕 때 완산주 만경현에서 아버지 정진나마와 어머니 길보랑 사이에서 태어났다. 율사는 12세에 우연히 아버지의 사냥길을 따라 갔다가 연못에 놀고 있는 개구리를 잡아 화살촉에 꿰어두고 돌아온 일이 있었다. 이듬해에 우연히 그곳을 다시 지나다가 전 해에 잡다둔 개구리들이 가엾게 울고 있는 소리를 듣고 자신으 지난 행동을 마음 속 깊이 뉘우쳤다. 이에 출가하여 금사사의 순제법사를 은사로 득도하였다. 율사의 나이 23세가 되어서는, 1년 동안 간절히 공부하면 무수보살의 현신계를 받을 수 있다는 은사의 가르침에 따라 변산의 부사방에 들어가 몸을 바위에 던지는 망신참법으로 수행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각을 이루지 못하자, 율사는 내생을 기약하며 벼랑에 투신하였더니 푸른 옷을 입은 동자가 나타나 율사를 구하였다. 그 후 다시 7일간 용맹정진하여 지장보살의 현전 수기로 계율을 받았다. 그러나 율사는 미륵보살에 뜻이 있었으므로 변산의 영산사로 자리를 옮겨 수행한 끝에 미륵보살로부터 점찰경 두권과 증과의 괘쪽을 받았다. 이후 율사는 금산사로 자리를 옮겨 금당(미륵전)을 짓고 그 안에 미륵장육상을 봉안하는 등 금산사를 미륵도량으로 크게 중창하였다. 해마다 단을 만들고 널리 설교하니 단을 베푼 좌석의 정결하고 엄숙한 품이 말세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현세에 용화세계를 건설하고자 전생에 지은 악업을 지극한 마음으로 참회하고 열가지 선업을 닦도록 한 것이나, 미륵으로부터 전해 받은 점찰경을 바탕으로 점찰법회를 봉행한 것 등은 모두 율사로부터 시작된 것이며, 이로 말미암아 불법의 교화가 삼한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금산사를 중창한 후, 율사는 속리산 법주사, 금강산 발연사 등으로 자리를 옮겨 미륵신앙의 대중화에 노력하였으며, 삼국통일 이후 이반된 민심을 위로하는 일에도 크게 애쓰셨다. 이에 경덕왕은 진표율사를 경주에 초청하여 보살계 계단을 열게하고, 율사의 미륵신앙 대중화 운동을 크게 지원하였다. 이에 율사의 미륵신앙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여기에 간략히 기록하여 둔다. (안내문, 김제 금산사, 2009년)

SANYO DIGITAL CAMERA명부전. 경내 서쪽편에 위치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관음보살을 모신 공간인 원통전.

SANYO DIGITAL CAMERA삼성각.

SANYO DIGITAL CAMERA미륵전 뒷편에 위치한 승려들의 수행공간인 요 사채들.

금산사
금산사는 백제 법왕 원년(599)에 창건되어 신라 혜공왕 2년 진표율사가 금당에 미륵장육상을 모시고 도량을 중창하여 법상종을 열어 미륵신앙의 근본도량으로 삼았다. 후백제 견훤이 아들 신검에 의하여 유폐되었다고 전해오고 있으며 고려 문종 33년(1079) 혜덕왕사가 대사구, 봉천원, 광교원 등을 설치하여 전성기를 이루었다.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당시에는 처영뇌묵 대사 등 일천여 승병들의 훈련장이 되기도 하였다. 그 후 정유재란 시 80여 동의 전각과 산내 암자가 왜군의 손에 전소되는 비운을 겪기도 하였다. 선조 34년(1601) 수문대사가 10여명의 도반들과 함께 35년 간에 걸쳐 복원불사를 추진하여 대사구 지역만 일부 재건하였다. 이조 말엽에는 환성지안대사가 수많은 스님들이 운집한 가운데 화엄 산림법회를 성대하게 개최하였으며 용명 스님의 순교 등 수 많은 고승 대덕 스님들이 주석하던 절이다. 한국 불교의 정화와 중흥을 위해 진력하던 월주 화상이 1961년 주지로 부임한 후 도영.도법 등 도제들과 사부대중의 원력을 모아 대적광전, 미륵전, 대장전, 하서전, 방등계단, 삼성각, 적멸보궁 등을 중건 중수하고 보네루, 일주문, 상서전, 서래선원, 범종각, 종무소, 향적당, 보현당, 설법전, 만월당, 성보박물관, 적묵당, 나한전, 조사전 등을 새로 건립하여 대사구를 완전 복원하고 확장하였다. 1986년 원인 모를 화재로 대적광전이 소실되었으나 월주화상의 원력으로 도제들과 사부대중의 협력을 받아 복원하였고 전주시내에 전북불교 회관을 건립하여 전북지역의 포교를 맡고 있는 호남 제일의 수도와 교화의 중심 도량으로 그 면모를 갖추어 미륵십선운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안내문, 김제 금산사, 2009년)

<출처>

  1. 안내문, 김제 금산사, 200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
  4. 위키백과, 2019년

강진 월출산 무위사, 수륙재로 유명했던 사찰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출산 자락에 있는 사찰인 무위사(無爲寺)이다. 조선전기 불교건축을 대표하는 주불전인 극락보전(국보 13호)으로 유명한 사찰이다.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통일신라말 선각대사가 중창하였으면 보림사와 함께 지역을 대표하는 선종사찰이었다. 조선초 태종이 전국 사찰을 군현중심으로 재편할 때 천태종 17자복사 중 하나가 되면서 지역을 대표하는 사찰로 자리잡았다. 조선시대에는 죽은이의 영혼을 위로하는 수룍재가 유명한 사찰이었다고 한다. 한때는 건물이 58동에 이르는 큰 사찰이었으나 쇠락하여 최근까지 극락보전, 명부전과 요사채만 있는 작은 사찰이었다가 최근에 불전 등을 중창하면서 옛 모습을 일부 찾아가고 있다.

주불전인 극락보전은 조선전기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간결하면서 단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내부에는 아미타여래삼존벽화(국보 313호), 백의관음도(보물1214호), 사면벽화(보물1315호) 등 불교미술사에 큰 의미를 가지는 불화들로 장식하고 있다. 사찰 경내에는 무위사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선각대사를 기리는 탑비(보물 507호)와 고려초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삼층석탑이 남아 있다.

SANYO DIGITAL CAMERA강진 월출산 무위사. 지역을 대표하는 큰 사찰이었는데 쇠락하여 주불전을 제외하고는 비어있는 공간이 많다.

SANYO DIGITAL CAMERA무위사 출입문인 천왕문. 월출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기는 하지만 산중사찰이라기 보다는 교통요지에 세워진 평지사찰에 가까운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천왕문을 들어서면 원래 많은 전각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지금은 주불전인 극락보전까지 공간이 비어 있어 넓은 느낌을 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무위사 극락보전 앞 공간. 비교적 공간을 넓게 쓰고 있으며, 원래 상당히 많은 전각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무위사 주불전인 극락보전(국보 13호). 조선전기를 대표하는 불교건축물로 극락세계를 상징하는 아미타여래를 모신 불전이다.

SANYO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극락보전. 주심포양식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건축양식이 잘 나타나 있다.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22-20190712
주불전에 모셔진 아미타여래삼존좌상(보물 1312호)와 아미타여래삼존삼존벽화(국보 313호), 불전내부를 장식하고 있는 내사면벽화(보물 1315호)와 함께 화려하면서도 장엄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24-20190712
극락보전 내부를 장식하고 있는 내사면벽화(보물 1315호) 중 서쪽 벽면에 그려진 벽화. 극락보전 안쪽에는 삼존불화를 비롯하여 총 29점의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무위사 극락전 내벽사면벽화, 보물 1315호
1974년 극락보전을 보수하면서 벽면의 벽화들을 원형대로 뜯어내어 보존한 것이며 아미타내영도, 석가여래설법도, 휙휙 그려낸 너울과 옷자락이 멋있는 해수관음좌상도, 보살좌상도, 오불도, 하늘을 날며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의 비천선인도 등 29점이 보물로 지정보존되고 있다. 이중 아미타내영도는 흙벽에 채색된 것으로 사람이 죽을때나 수행이 성숙해지면 아미타불이 마중와서 서방극락으로 인도해 간다는 내용을 도상화한 것으로 아미타불과 8보살 8비구가 구름 위에서 좌우로 길게 늘어서서 왕생자를 맞이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이 그림은 과감할 정도로 밝고 엷은 적색과 녹색 등 고려불화의 양식이 짙게 나타나 있는 반면, 화면에 나한이 등장하는 등 세부묘사에서 조선초의 새로운 양식이 표현되어 있다. 현재 극락전 좌우 벽면에 그려진 아미타내영도와 설법도 등 2점은 모사본이며 원본은 전시관 내에 보존되어 있다. (안내문, 강진 무위사, 2010년)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21-20190712
백의관음도(보물 1314호). 아미타여래삼존벽화 뒷쪽에 그려진 벽화로 고려불화의 영향이 남아 있는 대표적인 조선초기 불화로 손꼽힌다.

SANYO DIGITAL CAMERA극락보전 오른쪽에 위치한 명부전. 죽은이의 영혼을 위로하는 공간으로 수륙재로 유명했던 무위사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까지 무위사에는 불전으로 극락보전과 명부전만 있었다고 한다. 현재의 건물로 새로 지은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극락보전 왼쪽편에 위치하는 나한전.

SANYO DIGITAL CAMERA나한전 윗쪽 언덕에 위치한 천불전.

SANYO DIGITAL CAMERA토속신과 관련된 산신각

SANYO DIGITAL CAMERA극락전 앞 마당 한쪽편에 세워져 있는 삼층석탑. 고려초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며 정형화된 삼층석탑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강진 무위사 선각대사탑비(보물 507호). 통일신라말 당나라 비석의 영향을 받은 전형적인 탑비의 형식을 하고 있다. 조각수법이 사실적이면서 섬세한 동시대를 대표하는 걸작 중 하나이다. 고려초 문장가 최언위가 비문을 지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SANYO DIGITAL CAMERA무위사 유물전시공간. 극락보전을 해체.수리하면서 불전 내부에 있는 벽화 등을 소장.전시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명부전 아래에 있는 요사채들.

SANYO DIGITAL CAMERA사찰 앞쪽에 있는 최근에 새로 지은 것으로 보이는 큰 규모의 요사채.

SANYO DIGITAL CAMERA무위사 뒷편 동백나무숲.

SANYO DIGITAL CAMERA무위사 뒷편으로 보이는 월출산. 기암괴석들의 솟아오른 듯한 빼어난 절경을 보여주고 있다.

무위사(無爲寺)
『무위사사적』에 의하면, 무위사는 원효스님에 의해 창건되고 도선국사에 의해 중창되었다고 한다. 무위사의 역사는 선각대사 형미스님이 중창한 10세기 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무위사는 고려 초에는 선종사찰로 유명하였으나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수륙사로서 유명하였다. 죽은 영혼을 달래주는 수륙재를 행하였던 사찰이었던 만큼, 중심 건물은 극락세계를 관장하는 아미타여래를 모신 극락보전(국보 13호)이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극락보전으로, 우리나라 조선시대 불교 건축물 중에서도 초기 형태에 속한다. 눈여겨 볼 것은 맞배지붕과 주심포양식으로 지어진 극락보전은 단아하면서도 소박한 건축이다. 특히 극락보전 측면의 기둥과 보가 만나 이루는 공간분할의 절제된 아름다움도 놓쳐서는 안 될 감상 포인트이다. 또한 단정하고 검소한 극락보전의 겉모습과 달리 서방 정토 극락세계를 묘사한 화려한 건물 내부는 물로, 조선 초기 불교 미술의 극치를 보여주는 불상과 불화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이다. (안내문, 강진 무위사, 2018년)

<출처>

  1. 안내문, 강진 무위사, 201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9년


 

강진 백련사, 고려중기 불교개혁 백련결사를 이끌었던 사찰

전남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에 있는 사찰인 백련사(白蓮社)이다. 남해안 강진만이 내려다 보이는 만덕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유서깊은 사찰이다. 통일신라 때 처음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며 고려중기 원묘국사가 크게 중창하였다. 고려중기 불교개혁운동 백련결사를 이끌었던 사찰로 수신결사를 이끌었던 지눌의 송광사와 함께 불교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사찰이다. 고려중기 이후 8명의 국사를 배출하였으나 고려말 왜구의 피해를 입어 거의 폐사되었다고 세종 때 효령대군의 후원을 받아 다시 중건되었다.

조선후기 지역유지들의 후원을 받아 크게 중건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으며, 당시 사찰을 중건하면서 세운 사적비(보물 1396호)가 경내에 남아 있다. 대웅전을 비롯하여 웅진전, 삼성각, 만령루 등의 여러 전각들이 있는데 대부분 조선후기 이후 중건된 것들이다. 만경루를 비롯하여 경내에서 내려다 보이는 강진만의 경치가 아름다우며, 백련사에서 다산초당으로 이어지는 산길에 조성된 동백나무숲이 천년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정약용은 강진 유배시절에 다산초당에서 가까운 이 곳을 자주 들러 차를 마시고 백련사 주지와 교류를 했다고 한다.

SANYO DIGITAL CAMERA강진 백련사. 고려중기 백련결사운동을 이끌었던 유서깊은 사찰로 강진만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만덕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경사진 지형에 축대를 쌓고 조성한 형태의 가람배치로 영주 부석사 등에서 볼 수 있는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백련사 강당건물인 만경루. 앞면 5칸의 상당히 큰 규모의 누각형태로 강진만 경치를 감상하면서 쉴 수 있는 공간이다.

SANYO DIGITAL CAMERA사찰 경내에서 본 만경루.

SANYO DIGITAL CAMERA만경루 옆에서 내려다 보이는 강진만 바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웅전이 있는 사찰 경내. 만경루를 들어서면 정면에 주불전인 대웅전이 있고 왼쪽을 여러 불전들이, 마당 양쪽으로 요사채들이 배치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백련사 주불정인 대웅전. 조선후기에 지어진 건물로 앞면 3칸에 다포계 공포를 사용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대웅전 현판. 다포계공포와 겹처마를 하고 있는 건물로 화려한 단청으로 장식하고 있다. 현판 양쪽에 용머리 장식을 달았다.

백련사 대웅전
백련사는 만덕산에 위치하고 있어 조선후기인 19세기에는 만덕사로 불려졌다. 백련사는 신라말에 창건되었다고 전하나 확실하지 않다. 고려 1232년에 원묘국사 요세(1163~1245)가 이곳에 보현도량을 개설하고 백련결사를 일으켰다. 대웅전은 팔작지붕의 단청이 화려한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식 건물이며, 1762년에 건립되었다. 각 추녀마다 활주를 세워 건물을 받치고 있으며, 건물 전면 2개의 주두에 용머리 조각을 장식하였다. 대웅 내부에는 조선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목조 여래삼존상이 봉안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대웅전에는 중앙에 본존불인 여래상과 좌우에 보살상을 봉안하는데, 백련사의 경우에는 보살상 없이 여래삼존상만 봉안하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안내문, 강진 백련사,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대웅전 옆에 있는 명부전.

OLYMPUS DIGITAL CAMERA명부전 옆에는 응진전과 천불전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웅전 오른쪽에 위치한 삼성각.

OLYMPUS DIGITAL CAMERA대웅전 앞 마당 왼쪽에 있는 요사채. ‘ㄱ’자 형태의 건물로 만경루와 함께 강진만 바다 경치를 감상하기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백련사를 찾은 손님들이 머무는 공간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안쪽에 있는 요사채

SANYO DIGITAL CAMERA마당 오른쪽에 있는 소박한 모습의 요사채. 승려들이 거처하는 공간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마당 한쪽편에 있는 백련사 사적비(보물 1396호). 고려중기에 조성된 원묘국사비를 받치고 있던 거북받침돌 위에 조선후기 지역 유력자들이 백련사를 중건한 내력을 기록한 비석을 올려 놓았다.

SANYO DIGITAL CAMERA백련사 아래 연못과 오래된 고목.

SANYO DIGITAL CAMERA백련사에서 정약용이 유배생활을 했던 다산초당으로 가는 길. 동백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출처>

  1. 안내문, 강진 백련사,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9년

여수 향일암, 일출이 아름다운 남해안 관음성지

전남 여수시 돌산읍 율림리 금오산에 있는 향일암이다. 삼국시대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작은 암자로 임진왜란 때 승병들이 머물렀던 곳이라고 한다. 사찰의 이름은 책륙암, 영구암 등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조선후기 숙종 때 인묵대사가 현 위치로 옮기면서 일출경관이 빼어나 향일암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남해 보리암, 강화 보문사, 양양 낙산사와 함께 대표적인 관음신앙 성지로 여겨지는 곳이다. 전각들은 최근에 중건한 것으로 대웅전, 용왕전, 관음전과 삼성각이 있었는데 지금은 삼성각을 제외하고는 관음보살을 모신 관음전과 원통보전으로 바뀌었다.

여수 돌산도 끝자락 금오산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암자로 바위산 중턱에 들어선 불전들과 그 앞에서 내려다 보이는 바다풍경이 인상적인 곳이다. 금오산(해발 323 m) 그리 높지 않은 산으로 거북 형상을 하고 있으며, 주변 바위들 또한 거북 등껍질 무늬를 가지고 있다 한다. 역사적 내력이나 전각 등은 큰 의미가 없지만 일출과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경관이 빼어나 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광명소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여수 향일암 관음보살입상. 남해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세워진 불상으로 이곳이 관음성지임을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여수 돌산도 끝자락에 위치한 금오산(해발 323 m). 기암괴석과 동백나무를 비롯하여 아열대성 상록수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향일암 아래 작은 어촌마을인 임포마을. 마을에서 언덕길을 10여분 걸어 오르면 향일암을 찾아갈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향일암을 오르는 계단길. 상록수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는 남해안 특유의 숲길을 걸을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향일암 아래 숲길.

OLYMPUS DIGITAL CAMERA향일암 입구. 좁은 바위틈을 통해 사찰 경내로 들어갈 수 있다. 향일암을 대표하는 장면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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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틈새에 만든 좁은 통로.

OLYMPUS DIGITAL CAMERA향일암 경내로 들어서면 첫번째로 볼 수 있는 관음전. 향일암에는 관음보살을 보신 관음전을 상.하 두곳에 두고 있는데 이 불전은 아래쪽 관음전. 1986년에 지어진 것으로 2009년 화재때 소실을 면했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관음전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향일암에서 내려다 보이는 남해바다. 해가 뜨는 동쪽을 향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향일암 주불전인 원통보전. 석가모니를 모신 대웅전이 있었는데, 2009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새로 중건할 때 관음보살을 모시는 원통보전으로 바뀌었다. 향일암은 관음성지임을 강조하기 위해 원통보전 외에도 상.하 관음전을 별도로 두고 있는데 일반적인 가람배치는 아닌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원통보전 뒷편 삼성각.

OLYMPUS DIGITAL CAMERA사찰 안쪽에 위치한 요사채

OLYMPUS DIGITAL CAMERA윗쪽 관음전을 오르는 길 앞에 있는 고목.

OLYMPUS DIGITAL CAMERA윗쪽 관음전을 오르는 길 입구.

OLYMPUS DIGITAL CAMERA향일암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관음전으로 오르는 길.

OLYMPUS DIGITAL CAMERA윗쪽에 위치한 관음전. 향일암에서 사실상 주불전에 해당하는 곳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관음전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관음전 앞 좁은 마당.

OLYMPUS DIGITAL CAMERA마당에서 내려다 보이는 남해바다. 이곳에서 보는 일출장면이 유명한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향일암에서 내려다 보이는 임포마을

OLYMPUS DIGITAL CAMERA임포마을 앞 선착장 주변

OLYMPUS DIGITAL CAMERA향일암 아래 갯바위

향일암, 전남 여수시 돌산읍 율림리
향일암(向日庵)은 백제 의자왕 4년(644)에 신라 원효대사께서 창건 원통암이라 칭하였고 그 후 윤필대사께서 수도하면서 금오암이라 개명하였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는 승군의 본거지이기도 하였으며 숙종 41년(1715) 인묵대사께서 현 위치로 이건하고 향일암이라 개칭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안내문, 여수 향일암, 2012년)

<출처>

  1. 안내문,여수 향일암, 2012년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9년

여수 영취산 흥국사, 전라좌수영과 함께 했던 호국사찰

전남 여수시 중흥동 영취산 자락에 있는 사찰인 흥국사이다. 고려중기 불교개혁을 이끈 지눌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호국의 염원을 담아 흥국사라 이름지어졌던 남해안 변방의 작은 사찰이었다. 고려말 왜구의 침입과 조선초 불교 탄압으로 폐허화 되었던 것을 조선중기 명종 때 법수화상이 중창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이끌고 참전하면서 전라좌수영의 지원을 받아 호국사찰로 자리매김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중기 인조 때 계측대사가 사찰을 크게 중창하면서 600여명의 승려가 상주하는 큰 사찰로 변모하였다. 대웅전(보물 396호)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불전과 요사채 등이 이 시기에 지어진 것들이다. 흥국사는 구한말까지 전라좌수영과 연계하여 승병체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전국의 승병들과 연계한 조직체제를 갖추고 있었으며 조선후기 산성 축성의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흥국사 홍교를 비롯하여, 선암사 홍교와 벌교 홍교에서도 당시 승려들의 토목기술 수준을 잘 살펴볼 수 있다. 승병들이 기거하면서 수행활동을 했던 곳으로 조선후기 불교문화와 사회적 위치를 잘 보여주는 사찰이라 할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여수 흥국사. 조선후기 전라좌수영과 연계하여 600여 명이 넘는 많은 승병들이 머물면서 수행했던 전형적인 호국사찰이다. 흥국사에는 대웅전(보물 396호), 홍교(보물 563호), 대웅전 목조석가여래삼존상(보물 1550호), 대웅전 후불탱화(보물 578호) 등 많은 문화재들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들어가는 길

흥국사는 여수시 입구 여천공단에 뒷편 영취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화학공장들이 자라잡고 있는 공단지역으로 주택이나 마을이 거의 없지만, 흥국사 계곡으로 들어서면 조용한 숲속길과 계곡이 어울져 있다. 이곳에는 원래 성벽과 성문인 공북루가 있었다고 하며, 승병들이 토목기술을 보여주는 현존하는 가장 큰 규모의 홍교(보물 563호)가 사찰 입구에 세워져 있다. 홍교를 지나면 흥국사 중창을 기념하여 세운 사적비가 세워져 있으며 작은 개울 돌다리를 천왕문이 있다. 천왕문 안쪽에는 신도들을 대상으로 법회를 열거나 신도들이 잠시 쉴 수 있는 강당 건물인 봉황루가 있는데 다른 사찰에 비해 그 규모가 상당히 큰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사찰 입구 계곡에서 볼 수 있는 홍교(보물 563호)이다. 아치형 돌다리인 홍교로 아치의 높이가 가장 가장 높고 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진왜란 이후인 인조 17년(1639) 흥국사를 중건할 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홍교에서 내려다 본 흥국사 계곡. 화학공장이 즐비한 공단에 위치하고 있지만, 계곡이 깊고 숲이 우거졌다. 계곡 옆에는 이곳에 식당들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구조물들이 남아 있다. 한때는 북적거리던 행락지였음을 알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홍교를 지나서 숲길을 걸어가면 볼 수 있는 흥국사 입구. 개울을 건너는 돌다리가 천왕문 앞에 놓여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흥국사 사적비. 조선중기 흥국사가 크게 중창된 이후 그 내력을 새겨놓은 비석이다.

흥국사 중수 사적비, 1703년(숙종 29년)
흥국사의 창건과 중수 등에 대해 기록한 사적비로서 비문은 당대의 명문장인 최창대가 지었으며, 비문을 쓴 이 역시 당대 명필이었다. 비문에는 창건자 지눌과 무의자 담당과의 관계, 송광사가 세워진 직후 흥국사가 창건되었다는 사실, 1560년(명종 15년) 법수화상에 의해 사찰 건물 1천여간이 증축되었다는 것, 1624년(인조2년) 계특의 대대적인 사찰 중건의 사실, 통일의 법당 개축사실 등 흥국사의 사적들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중수비 뒷면에는 정동호가 지은 발문을 문세욱이 썼는데, 흥국사의 창사와 중건과정에서 공로를 세운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다. 보조국사가 흥국사를 창건한 이래 조선에 들어와 임진왜란을 겪으며 온갖 고충을 극복하며, 약 470년 동안 중건한 승려들을 높이 평가한 내용이다. 바로 이어서 중건 과정에서 협조한 김덕항을 비롯한 약 140명의 명단이 적혀 있다. 중건과정에 도움을 준 지방관과 중앙정계의 인물, 관련 승려, 여성을 포함한 신도, 석동들의 명단까지 기록되어 있어서 당시 중수비의 건립 과정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안내문, 여수 흥국사, 2012년)

OLYMPUS DIGITAL CAMERA흥국사 입구에 세워져 있는 고승들의 부도.

OLYMPUS DIGITAL CAMERA흥국사 출입문인 천왕문.

OLYMPUS DIGITAL CAMERA천왕문을 들어서면 상당히 큰 규모의 강당 건물인 봉황루를 볼 수 있다. 앞면 5칸의 상당히 큰 규모의 건물로 조선중기 흥국사가 중건될 때 세워졌으며, 현재의 건물은 1925년에 고쳐졌다.

OLYMPUS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봉황루. 강당은 법회를 여는 공간이지만 좌수영 객사인 진남관처럼 승병들이 회의 등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대웅전 영역 사이 중문을 두고 있어 분리되어 있는 느낌을 주고 있다. 아마도 유생들이었던 지방 관료들이 이곳을 방문했을 때 머물수 있도록 고려한 것으로도 보인다.

대웅전 영역

주불전인 대웅전이 있는 공간은 전형적인 조선후기 사찰의 공간배치를 볼 수 있다. 석가삼존불을 모신 대웅전을 중심으로 양쪽에 요사채인 심검당과 적묵당이 배치되어 있다. 대웅전은 다포계 공포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전형적인 불전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양쪽 요사채는 승병들이 기거했던 사찰답게 상당히 큰 규모를 하고 있다. 반면에 사리를 모신 석탑은 두지 않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흥국사 대웅전 영역

OLYMPUS DIGITAL CAMERA대웅전 영역을 출입하는 중문인 법왕문. 강당이 있는 영역과 공간적으로 분리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주불전인 대웅전(보물 396호). 조선중기 인조 2년 흥국사가 중건될 때 새로 지어졌는데 동시대를 대표하는 불전 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화려하면서도 장엄한 분위기를 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웅전 내부. 석가삼존불(보물 1550호)를 모시고 있으며 뒷면는 영산회상을 표현한 후불탱화(보물 578호)가 있다. 불단 위에는 닫집을 두어 장엄함을 더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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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국사 대웅전 관음보살 벽화(보물 1862호), 한지에 그림을 그려 벽에 붙여 만든 첩부벽화이다. 17세기 불화의 특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응전 앞 석등. 거북이 등에 석등이 올려져 있는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다. 중생이 깨달음을 얻어 극락정토를 향해 타고 가는 배라는 의미를 표현하고 있다. 전라좌수영과 연계된 흥국사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유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승려들이 기거하는 요사채인 적묵당.  조선중기 흥국사가 중창될 때 처음 1624년에 세워 졌으며, 현재의 건물은 1895년에 중수되었다.  앞면 4칸 규모의 상당히 큰 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심검당, 1645년 중건될 때 세워졌으며, 현재의 건물은 1895년에 중수되었다. 일반적인 요사채는 보통 낮은 지붕에 한옥의 형태를 하고 있는데 반해 흥국사 요사채는 맞배지붕을 하고 있으며, 불전처럼 크고 웅장한 건물 형태를 하고 있다. 이는 많은 승려들을 수용할 수 있도록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범종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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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국사 동종(보물 1556호), 조선중기 사인비구에 버금가는 역량을 지녔던 김애립이 1665년에 조성한 종이다.

불전과 요사채 등

흥국사에는 조선중기 이후 크게 번창한 호국사찰로 그 특징을 보여주는 여러 불전들을 두고 있다. 옛 대웅전 건물의 부재들을 활용하여 지은 팔상전을 비롯하여, 수행하는 승려들을 상징하는 웅진전, 역대 고승들의 영정을 모셨던 불조전, 전란을 통해 죽은 승려들이나 신도들을 위한 지장보살을 모신 무사전과 남해안이라는 지역적 특성을 잘 보여주는 관음보살을 보신 원통전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웅전 옆에 위치한 무사전. 지장보살을 모신 불전으로 보통 지장전이라 부르는데 죽은이의 명복을 비는 공간이다. 다른 사찰에 비해 그 규모가 작은 것은 그 내력이 오래되었기 때문으로 승병들을 비롯하여 임진왜란 때 희생된 이들을 위해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무사전에 모셔진 목조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보물 1566호). 조선중기 인조 때 조각상들이 참여하여 조성한 작품으로 지장보살 삼존상과 시왕.권속들을 표현한 21점의 불상들과 발원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 대웅전 뒷편에 위치한 팔상전. 조선중기 인조 때 흥국사를 크게 중창할 때 옛 대웅전 건축자재를 사용하여 지었다고 한다. 현재의 건물은 최근에 크게 수리한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팔상전 옆 웅진전. 흥국사는 많은 승병들이 수행하면서 거처했던 사찰로 석가모니의 제자를 모신 웅진전을 중요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수 흥국사27-20190531흥국사 십육나한도(보물 1333호), 조선후기 십육나한도의 본보기가 되었던 작품이라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웅전 뒷편에 위치한 불조전. 역대 고승들의 영정을 모신 공간으로 보통 조사당이라 부르는 불전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불조선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적묵당 뒷편 백련사. 앞면 3칸, 옆면 3칸의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상당히 큰 규모의 요사채이다. 양쪽에 툇마루를 두고 있는데 이곳을 찾은 손님들을 위한 공간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백련사 뒷편에 위치한 선방이 해동선관. 양반들이 살았던 전통 한옥의 모습을 하고 있는 건물로 흥국사 주지 등 고위층 승려가 머무는 공간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흥국사 전경. 진달래가 유명한 영취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상당히 큰 규모의 사찰이다.

여수 흥국사26-20190531흥국사 노사나불괘불탱(보물 1331호), 18세기 화승 비현이 참여해 그린 그림으로 색채가 선명하고 아름다우며 장식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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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국사 수월관음도(보물 1332호), 18세기 최고 화승 의겸이 그린 그림으로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손꼽힌다.

  1. 안내문,여수 흥국사, 2012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