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사찰

봉화 청량산 청량사

경북 봉화군 청량산에 있는 사찰인 청량사(淸凉寺)이다. 삼국시대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창건이후 오랜세월 동안 내력은 전해지지 않으며 고려말 송광사 16국사 중 한명인 고봉선사가 중건했다. 창건 당시에는 많은 부속건물들이 있는 큰 사찰이었다고 한다. 연화봉 아래 주불전인 유리보전과 요사채들이 있으며, 금탑봉 아래에는 웅진전이 별도로 떨어져 있다. 경사진 지형에 축대를 쌓고 사찰을 조성했는데 규모는 크지 않다. 유리보전 앞 전망좋은 곳에 6층석탑이 있는데 청량사를 대표하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소장문화재로는 건칠약사여래좌상(보물), 목조지장삼존상(보물), 건칠보살좌상, 유리보전 등이 있다. 사찰규모는 크지 않지만 오랜 세월 청량산을 대표하는 사찰로 명맥을 이어왔던 것으로 보인다.

봉화 청량사 20221029_001<봉화 청량산 청량사>

봉화 청량사<청량사 가람배치>

청량산(淸凉山, 명승)은 최고봉인 장인봉(해발 870m)을 비롯하여 800m 내외의 12개 암봉이 있다. 중생대 백악기에 퇴적된 암석들이 오랜세월 융기, 풍화, 차별침식 등을 거치면서 다양한 지형을 만들고 있다. 이중환의 <택리지>에 백두대간을 벗어난 4대 명산 중 하나로 평가 받았다.

봉화 청량사 20221029_014<일주문>

봉화 청량사 20221029_015<사찰 입구 작은 찻집, 안심당>

봉화 청량사 20221029_016<범종루>

 주불전인 유리보전(琉璃寶殿)은 약사여래삼존상을 모시고 있어 약사전이라고도 한다. 조선후기 건축물로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이다. 공포는 다포계인데 주심포계와 절충한 조선후기 건물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건물 대들보 밑에 사이기둥을 세워 후불벽을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경사진 지형에 축대를 쌓아 건물을 세웠는데 불전 앞 마당은 좁은 편이다.

봉화 청량사 20221029_009<주불전인 유리보전>

건칠약사여래좌상(보물)은 청량사 주불전에 모셔왔던 불상으로 통일신라 전성기 불상양식을 잘 따르고 있다. 흙으로 형태를 만들고 그 위에 삼베를 입히고 칠을 바르고 말리는 과정을 통해 개략적인 형태를 만들고 다시 조각하여 만든 건칠불상이다. 조성연대에 대해서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으나 재료로 사용된 삼베에 대한 방사선탄소연대 측정결과 8세기 후반에서 늦어도 10세기 전반 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국보)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건칠불상 중 하나이다.

봉화 청량사 20221029_006<주불전 내부에 모셔진 건칠약사여래좌상(보물)>

봉화 청량사 20221029_003<오층석탑 앞에서 보이는 유리보전>

주불전 왼쪽에는 최근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지장전이 있다. 내부에는 조선중기에 조성된 목조지장삼존상(보물)을 모시고 있다. 건물은 최근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봉화 청량사 20221029_013<지장전>

봉화 청량사 20221029_010<지장전 내부에 모셔진 목조지장보살삼존상(보물)>

주불전 오른쪽에는 여러동의 요사채 건물들이 있으며 뒷편에는 산신각이 있다. 명산으로 알려진 청량산에 자리잡고 있어 많은 신도와 탐방객들이 청량사를 찾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이에 걸맞게 사찰규모에 비해 요사채 건물들이 많다.

봉화 청량사 20221029_005<유리보전 옆 요사채들>

봉화 청량사 20221029_008<요사채 중 하나인 선불장>

봉화 청량사 20221029_007<산신각>

주불전 영역 앞 쪽 전망좋은 곳에 오층석탑이 있다. 최근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데 주변 경치와 어우러져 금탑봉을 배경으로 청량산을  대표하는 장면으로 손꼽힌다.

봉화 청량사 20221029_002<오층석탑과 금탑봉>

봉화 청량사 20221029_004<유리보전 앞에서 보이는 장면>

청량사(淸凉寺), 경북 봉화군 명호면 북곡리
청량산에는 원효대사가 우물을 파 즐겨 마셨다는 원효정과 의상대사가 수도했다는 의상봉, 의상대라는 명칭이 남아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청량사를 중심으로 크고 작은 33개의 작은 암자가 있어서 당시 신라 불교의 요람을 형성하였다고 한다. 청량사는 신라 문무왕 때 원효대사.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며 송광사 16국사의 끝 스님인 법장 고봉선사(1351~1428)에 의해 중창된 고찰이다. 본전(本殿)은 유리보전(琉璃寶殿)이며, 금탑봉 아래 웅진전은 683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유리보전은 동방유리광세계를 다스리는 약사여래를 모신 전각이라는 뜻으로, 법당 안에는 약사여래부처님을 중심으로 좌측에 지장보살 우측에 문수보살이 모셔져 있다. 약사여래 부처님은 특이하게도 종이재질을 이용한 지불(紙佛)로서, 이곳에서 지극 정성으로 기원하면 병이 치유되고 소원 성취의 영험이 있는 약사도량이다. (안내문, 봉화 청량사, 2022년)

<출처>

  1. 안내문, 봉화 청량사,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철원 화개산 도피안사(到彼岸寺)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관우리 화개산(花開山)에 있는 도피안사(到彼岸寺)이다. 도피안사는 ‘깨달음의 언덕으로 건너간다.’라는 뜻이다. 기록에 따르면 통일신라말 도선국사가 철원지역 호족들과 함께 이 절을 창건하면서 철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과 삼층석탑(보물)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도선은 이절을 비보국찰(裨補國刹)로 삼았으며 오랜세월 그 명맥을 이어왔다. 구한말 화재로 소실된 것을 중건하였으나 한국전쟁 때 소실된후 1959년 육군 15사단에서 절은 중건한 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통일신라말 신흥세력으로 부상했던 지방 호족들이 중심이 되어 창건된 사찰로 철조불상과 삼층석탑에서 기존 전통에서 벗어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곳이다.

철원 도피안사 01-20220726<철원 화개산 도피안사>

도피안사가 있는 화개산이 연꽃이 물에 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하여 특이한 형택의 삼층석탑과 철조불상으로 산세의 약점을 보완하고자 했다고 전한다. 도피안사는 휴전선에서 부근에 있어 외진곳에 자리한 사찰로 생각될 수 있지만 옛 철원역과 철원군청이 가까운 곳에 있는 사찰이다. 서울과 함경도를 연결하는 교통로이자 넓은 철원평야의 경제력이 뒷받침하고 있는 지역 중심사찰이다.

철원 도피안사 06-20220726<도피안사가 있는 화개산>

철원 도피안사 07-20220726<일주문>

철원 도피안사 08-20220726<천왕문>

철원 도피안사 13-20220726<연지>

철원 도피안사 12-20220726<해탈문>

불전으로는 물로는 철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를 모신 대적광전과 천불전, 삼성각이 있으며 강당건물인 설법전, 승려들이 생활하는 요사채가 있다. 승려들이 수행하는 공간이 많지 않은 사찰로 수행공간이라기보다는 지역 신도들이 찾아 기도를 올리는 성격의 사찰이다.

철원 도피안사 03-20220726<도피안사 경내>

철원 도피안사 16-20220726<주불전인 대적광전>

철원 도피안사 17-20220726<대적광전 내부>

대적광전에 모셔진 철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은 철로 만든 불상으로 대좌까지 철로 만들었다. 손은 왼손 집게손가락을 펴서 바른손을 감싸는 지권인(智拳印)을 하고 있어 비로자나불을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불상 뒷면에 신라 경문왕 때(865년) 만들었다는 내용의 있어 조성연대를 확실히 알 수 있는 불상이다.

철원 도피안사 05-20220726<철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

철원 도피안사 20-20220726<천불전>

철원 도피안사 22-20220726<삼성각>

삼층석탑(보물)은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려 놓은 삼층석탑을 높이는 4.1m이다. 통일신라말에 조성된  일종의 이형 석탑으로 불상대좌처럼 생긴 기단 위에 탑신을 올려 놓고 있다.

철원 도피안사 15-20220726<삼층석탑(보물)>

신도들이 잠시 쉴 수 있는 공간이자 설법을 하는 강당건물인 설법전은 경내 서쪽편에 자리잡고 있다. 요사채인 무설전은 사찰 동쪽 언덕 전망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철원 도피안사 19-20220726<설법전>

철원 도피안사 11-20220726<요사채>

철원 도피안사 04-20220726<요사채 마당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

도피안사(到彼岸寺)
도피안사는 ‘깨달음의 언덕으로 건너간다.’라는 뜻을 가진 사찰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의 말사(末寺)다. 국보 철조비로자불좌상이 모셔져 있고 보물 삼층석탑이 있다. 통일신라 제48대 왕인 경문왕 5년(865)에 도선국사가 철원 지방의 향도 천여 명을 거느리고 산수가 좋은 곳을 찾던 중 화개산 현 위치에 터를 잡고 도피안사를 처음 세웠다. 대한제국 광무 2년(1898)에 화재가 발생하여 소실된 것을 당시 주지 스신미었던 법운 스님이 다시 세웠다. 그후 1941년 1월 당시 주지 스님이었던 김의권 스님이 사찰을 고치고 정비하여 전통사찰로 이어져 오게 되었다. 광복 후에는 철원 지역이 공산 치하에 있었던 시기에 사찰도 공산 치하에 있었다. 1950년 한국전쟁으로 인해 완전 소실된 것을 1957년 11월 육군 제15산이 복원하에 군(軍)에서 관리하게 되었다. 1986년에 사찰 관리권이 민간으로 이관되면서 1988년부터 정부의 지원으로 대적광전과 삼성각을 개축하고 범종각, 사천왕문, 일주문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안내문, 철원 도피안사, 2022년)

<출처>

  1. 안내문, 철원 도피안사,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4. 위키백과, 2022년

울진 천축산 불영사(佛影寺)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 천축산(天竺山)에 자리한 불영사(佛影寺)이다. 신라 진덕여왕 때(651)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고찰로 서쪽 산 등성이에 부처님 형상을 한 바위가 절 앞 연못에 비침으로 불영사라 하였다. 임진왜란 때 영산전(현 응진전)을 제외하고 화재로 모두 불타버렸으며 그 이후에 여러차례 화재가 있었으며 화기(火氣)를 누르기 위해 큰 연못을 조성하고 대웅전 기단에는 2기의 거북상이 건물을 받치고 있다. 불영사에는 대웅보전(보물), 웅진전(보물), 영산회상도(보물), 삼층석탑, 부도 등 많은 문화재들이 이 절의 오랜 역사를 잘 보여주고 있다. 1968년부터 비구니 선원 수행도량으로 지정되었다.

울진 천축산 불영사 01-20220711<울진 천축사 불영사>

불영사는 울진군과 봉화군을 연결하는 옛 36번 국도와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옛도로는 광천 계곡을 따라 이어지고 있다. 울진과 봉화를 왕래하는 신도들이 잠시 머물수 있는 입지조건을 갖고 있다.옛 도로에서 계곡을 건너 숲길을 따라 20 분 정도 걸어 들어가면 된다. 계곡이 사찰을 태극모양으로 휘감으면서 돌고 있어 빼어난 길지로 손꼽힌다.

울진 천축산 불영사 11-20220711<도로 근처에 있는 일주문>

울진 천축산 불영사 12-20220711<불영사 계곡>

울진 천축산 불영사 13-20220711<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숲길>

울진 천축산 불영사 14-20220711<불영사 들어가는 길>

불영사는 주불전인 대웅전을 중심으로 응진전, 의상전, 극락전, 명부전 등 불전과 비구니 선원 수행도량답게 여러동의 요사채 건물들을 두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부처바위가 연못에 비치는 모습이 인상적인 불영지가 있다.

울진 불영사<불영사 가람배치>

주불전인 대웅보전(보물)은 여러차례 화재로 소실되면서 조선후기 영조  때 중건된 불전이다. 건물 내부에 원래 칠했던 단청이 잘 남아 있는데 그린 기법의 수준이 매우 놓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건물 기단 밑에는 돌거북을 놓아 건물을 받들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이는 여러차례 화재로 소실된 점을 고려하여 화재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 한다. 건물내부에는 영산회상도(보물)와 신중탱화 등 수준높은 불화들이 모셔져 있다.

울진 천축산 불영사 22-20220711<주불전인 대웅보전>

영산회상도(보물)는 석가여래가 영취산에서 설법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가운데 석가여래가 있는데 손가락을 땅으로 항하게 하고 있는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다. 주위에 10대보살, 사천왕산, 10대 제자 등이 있다. 석가여래의 옷이 붉은색이고 광배가 붉은 테를 두른 점은 조선후기 불화양식보다 약간 앞선 양식이다. 조선후기 영조 때(1733년)에 그려진 그림이다.

울진 천축산 불영사 25-20220711<주불전에 모셔진 불상과 영산회상도(보물)>

울진 천축산 불영사 26-20220711 <대웅보전에 있는 신중탱화>

대웅전 앞 삼층석탑은 2층 기단 위에 3층탑신을 올려 놓은 전형적인 삼층석탑이다. 기단과 탑신 몸돌에는 기둥모양을 새겨 놓은 것 외 특별한 장식이 없다. 높이 3.2m 정도의 작은 석탑으로 전체적인 비례가 안정적이다. 조각수법이 양식 등으로 볼 때 고려초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울진 천축산 불영사 19-20220711<삼층석탑>

울진 천축산 불영사 23-20220711<대웅보전 앞 강당건물인 설법전>

응진전(보물)은 임진왜란 때 화재로 불영사가 불에 타 버렸을 때 홀로 남은 불전으로 당시는 영산전이었다고 한다. 이후 어느 시기에 석가모니와 제자들을 모신 응진전으로 바뀌었으며 영산전의 기능은 주불전인 대웅전으로 옮겨진 것으로 보인다. 조선후기에 조성된 영산회상도는 대웅전에 모셔져 있다.

울진 천축산 불영사 04-20220711<응진전(보물)>

대웅보전과 응진전 외에 극락전, 명부전, 의상전, 칠성각 등의 불전이 있는데 대부분 최근에 다시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울진 천축산 불영사 02-20220711<명부전>

울진 천축산 불영사 03-20220711<의상전>

울진 천축산 불영사 05-20220711<칠성각>

극락전은 대웅전이 있는 중심영역에서 약간 떨어진 불영지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별도의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깊은 산중에 있는 사찰의 성격을 강조하기 위한 공간으로 아미타불을 모시는 불전이다.

울진 천축산 불영사 08-20220711<극락전>

불영사는 석가모니와 제자들을 모시는 응진전을 두고 있어 예로부터 수행중심의 사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1968년부터 비구니 수행도량으로 지정되어 있다고 하는데 스님들의 수행공간인 많은 요사채들을 두고 있다.

울진 천축산 불영사 20-20220711<대웅전 앞 종무소>

울진 천축산 불영사 21-20220711<맞은편 황화실>

울진 천축산 불영사 16-20220711<큰규모의 수행공간인 청풍당>

울진 천축산 불영사 18-20220711<무위당, 천축선원 등 요사채들>

물위에 비치는 바위의 모습이 석가모니를 연상시킨다고 하여 불영사라고 이름지어진 사찰이다. 부처바위가 물위에 비친다는 불영지가 사찰의 중심공간이 되고 있으며 그 주위로 불전들이 주로 배치되어 있다. 또한 여러차례 화재로 전각들이 소실된 사찰내력을 고려항 화기(火氣)를 누르고자 하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웅전 기단을 받치는 거북모양 조각상도 이런 역할을 하고 있다.

울진 천축산 불영사 15-20220711<불영지와 법영루>

울진 천축산 불영사 24-20220711<대웅보전 기단 아래 돌거북>

천축산 불영사
천축산 불영사는 광천이 휘돌아 감아 산태극(山太極).수태극(水太極)을 이루어 양 기운이 서로 합치는 자리에 위치하고 있어 길지에 해당한다. 불영사는 신라 진덕여왕 5년(651) 의상대사가 이곳에 도착하여 산세를 보니 서역의 천축산과 비슷하고 물 위에 부처님의 그림자가 비치므로 절을 짓고 그 이름을 ‘천축산 불영사’라 칭하였다고 전한다. 이후 ‘불귀사’ 또는 ‘불영암’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불영사는 1396년(태조 5) 화재로 소실되어 이듬해 소운법사가 재건하였으며,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영산전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불탔으나, 1602년(선조 35) 인섬스님이 대웅전을 중건하고 1609년(광해군 1) 성원법사가 불영사를 중창하였다. 다시 1720년(숙종 46) 불영사에 화재가 발생하여 대웅전과 선당 등이 소실되었으나 1725년(영조 1) 천옥법사가 불영사를 중수하였으며, 1899년(고종 광무 3) 설운선사가 중수하는 등 여러 차례 중수되어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는 고찰로 전통사찰로 지정되어 있다. (안내문, 울진 불영사, 2022년)

<출처>

  1. 안내문, 울진 불영사,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4. 위키백과, 2022년

 

산청 지리산 덕산사(옛 내원사)

경남 산청군 삼장면 대포리에 있는 지리산 덕산사(德山寺)이다. 통일신라 말 무염대사가 덕산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다. 임진왜란 이후 폐사되어 삼층석탑과 절터만 남아 있었다.  1959년에 내원사라는 이름으로 중건되었다가 출토 유물 등을 통해 덕산사 절터임이 확인되어 2021년 덕산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절터에 대웅전, 비로전, 등의 전각들을 다시 지었는데 원래의 규모에 비해 작은 느낌을 준다. 비로전에는 인근 석남암사지에서 옮겨온 석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이 모셔져 있으며 그 앞에는 덕산사가 창건한 시기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 삼층석탑(보물)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산청 지리산 덕산사 01-20220222<산청 지리산 덕산사>

산청 덕산사<덕산사 가람배치>

덕산사 불전으로는 대웅전, 비로전, 산신각 등이 있으며 건물 규모는 크지 않은 편이다. 비로전에는 인근 석남암사지에서 옮겨온 석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을 모시고 있다. 대웅전은 앞면 3칸의 작은 불전이었는데 최그 건물을 중건하기 건물을 헐고 임시로 요사채를 대웅전으로 사용하고 있다.

산청 지리산 덕산사 06-20220222<비로전>

비로전에는 인근 석남암사지에서 옮겨온 석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을 모시고 있다. 이 불상에 중대석에서 발견된 납석사리호에 적힌 글자를 통해 신라 혜공왕 때(766년) 조성되었음이 밝혀졌다. 지권인(智拳印)을 하고 있는 비로자나불상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국보_제233-1호_산청석남암사지_석조비로자나불좌상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국보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진리 그 자체를 상징하는 부처인 비로자나불을 화강암으로 조각한 불상이다. 원래 지리산 중턱의 석남암사지로 알려진 절터에 방치되어 있던 것을 9159년 덕산사가 재건될 때 사찰로 운반하였다고 한다. 불상의 정수리에는 부처의 지혜를 상징하는 육계가 크게 솟아 있고 목에는 번뇌, 업, 고통을 상징하는 삼도가 표현되어 있다. 양쪽 어깨를 덮는 법의의 옷주름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으며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가 일부 남아 있다. 불상의 신체 비례가 적절하여 안정감이 있고 조각 수준이 높아 조형적으로 우수하다. 이 불상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지권인 비로자나불상이다. 불상을 받치고 있는 대좌 안에서 사리 단지가 발견되었는데, 단지 표면에 영태 2년(혜공왕 2년, 766)에 불상을 조성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제작 연대를 밝힐 수 있는 자료가 부족한 고대 조각사 연구에 기준이 되며, 불교 역사와 미술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는 문화재이다 (안내문, 산청 덕산사, 2022년)

불상 중대석에서 발견된 납석사리호(국보)는 곱돌을 다듬어서 만든 항아리이다. 항아리 표면에 15행으로 비로나자불의 조성기록과 함께 영태 2년(신라 혜공왕 2년, 766년)이라는 기록이 있다. 두 승려가 죽은이의 혼령을 위로하고 중생을 구제하기를 바라며 석조비로자나불상을 조성하여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봉안하였다는 내용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납석사리호(국보)>

 산청 지리산 덕산사 04-20220222<대웅전 건물터>

산청 지리산 덕산사 09-20220222<임시로 대웅전으로 사용하고 있는 요사채>

산청 지리산 덕산사 03-20220222<칠성각, 산신각>

덕산사 삼층석탑(보물)은 통일신라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덕산사 대웅전 건물터 앞에 남아 있었다. 탑은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린 전형적인 통일신라 삼층석탑이. 기단과 탑신 몸돌에는 기둥모양을 새긴 것 외에 특별한 장식이 없으며 지붕돌은 밑면 받침을 4단씩 두었다.

산청 지리산 덕산사 07-20220222<덕산사 삼층석탑(보물)>

산청 지리산 덕산사 05-20220222<덕산사 삼층석탑, 뒤에서 본 모습>

산청 지리산 덕산사 08-20220222<요사채>

산청 지리산 덕산사 02-20220222<요사채>

산청 지리산 덕산사 10-20220222<덕산사 계곡>

신라 무열왕 4년(657)에 원효대사가 지리산 동남쪽 30리에 형성된 성지에 덕산사를 세웠다. 훗날 동방의 대보살로 불렸던 무염국사가 덕산사에 상주하여 많은 수행자들이 모여들었고 그렇게 천여 년을 면면히 이어오다가 조선조 광해군 1년(1609)에 원인모를 화재로 전소되었다. 이후 수백년 동안 절터로 방치되었다가 1959년 원경스님이 절을 다시 세워 내원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현재 대웅전, 비로전, 산신각, 요사채 등이 있으며 유물로는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과 산청 내원사 삼층석탑(보물)이 있고,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과 함께 있었던 산청 석탐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납성사리호(국보)는 현재 부산시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안내문, 산청 덕산사, 2022년)

<출처>

  1. 안내문, 산청 덕산사,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4. 위키백과, 2022년

 

 

산청 지리산 대원사

경남 산청군 상장면 유평리 지릿산 동쪽 계곡에 위치한 대원사(大源寺)이다. 신라 진흥왕 때(548년) 연기조사가 평원사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다. 이후 폐사되어 절터만 남아 있던 것을 조선후기 숙종 때(1685년) 운권선사가 대원암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중건하였다. 한국전쟁 때 폐허가돠었다가다시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오늘날 대원사는 비구니들이 수행하는 사찰로 알려져 있다.

산청 대원사 01-20220222<산청 지리산 대원사>

산청 대원사<대원사 가람배치>

산청 대원사 17-20220222<최근 크게 신축한 봉상루>

산청 대원사 08-20220222<대웅전 마당>

대원사는 지리산 동쪽 깊은 계곡에 위치하고 있지만 비교적 공간이 넓은 편이며 불전과 요사채들이 질서있게 배치되어 있다. 주불전인 대웅전을 중심으로 원통보전과 명부전을 두고 있다.

산청 대원사 02-20220222<대웅전>

산청 대원사 05-20220222<원통보전>

산청 대원사 13-20220222<명부전>

대원사는 비구니들이 수행하는 사찰로 많은 요사채를 두고 있다. 요사채들은 대부분 최근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규모가 비교적 큰 편이다.

산청 대원사 11-20220222<원통보전 옆 큰 요사채>

산청 대원사 12-20220222<명부전 옆 요사채>

산청 대원사 03-20220222<대웅전 마당에 있는 요사채들>

산청 대원사 07-20220222<대웅전 오른쪽 요사채>

대웅전 뒷편에는 비구니들의 수행공간인 사리전이 있으며 그 앞에 다층석탑(다층석탑)이 자리하고 있다. 다층석탑(보물)은  2층 기단 위에 8층의 탑신을 올려 놓은 다층석탑이다. 2층 기단에는 4면에 사천왕상을 새겨놓고 있으며 모서리 기둥모양 대신 사람형상이 탑신을 받치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산청 대원사 09-20220222<사리전>

산청 대원사 10-20220222<대원사 다층석탑(보물)>

대원사는 지리산에서 동쪽 계곡에 자리잡고 있다. 입구에서 대원사에 이르는 약 2km의 계곡의 지리산을 대표하는 명소 중 한곳으로 손꼽힌다.

산청 대원사 15-20220222<대원사 계곡>

산청 대원사 16-20220222<대원사 계곡>

대원사는 해인사의 말사로서 신라 진흥왕 무진 서기 548년에 연기조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나 창건연대는 확실하지 않다. 초창 때에는 평원사라 불리었고 이후 숙종 을축년에 중암 운권선사가 대원암이라 개칭했으며 그후 고종 경인년에 구봉 혜흔선사가 지금의 대원사라 개칭했다. 창건 이후 세번의 화재와 재건이 거듭되었는데, 여순사건 때 또 한번의 화재로 소실되었다. 현재의 대원사는 1959년 김 법일 스님에 의해 지건되었다. 신라 자장율사가 세운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봉안된 구층석탑과 대웅, 사리전 등을 갖추었고 현재는 비구니들의 참선도량으로 이용되고 있다.  (안내문, 산청 대원사, 2015년)

<출처>

  1. 안내문, 산청 대원사, 2015년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3. 위키백과, 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