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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태백산 부석사, 통일신라 화엄십찰을 대표하는 사찰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에 있는 부석사(浮石寺)이다. 백두대간 태백산 끝자락 봉황산에 자리잡고 있다. 삼국이 통일되던 676년 의상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통일신라 주류였던 화엄십찰을 대표하는 사찰이다. 부석사가 있는 풍기 지역은 깊은 산중도 아니면서 산물이 풍부하고 죽령을 오가는 주요 교통로와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어 오랫동안 사찰이 유지된 것으로 보인다.

부석사는 봉황산 중턱에 거대한 돌로 석축을 쌓아서 터를 조성하였으며 그 위에 건물들을 올려 놓았다. 주불전인 무량수전과 그 앞 안양루에 올라서면 아래에서 보이는 편안한 모습은 풍경과는 달리 상당히 웅장하면서도 날아갈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된다. 무량수전(국보 18호)와 조사당(국보 19)는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목조 건축물이다. 통일신라 때의 전형적인 쌍탑식 가람배치와는 달리 무량수전 동쪽편 언덕에 삼층석탑이 세워져 있으며, 무량수전에 모셔진 불상도 동쪽을 향하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조사당은 무량수전 뒷편 언덕에 위치하고 있는데 내부에는 가장 오래된 불전 벽화(국보 46호)가 있었다. 부석사는 고려시대에 크게 번창한 수덕사, 봉정사 등 오래된 국보급 불전 건물이 있는 사찰들과 비슷한 가람배치를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영주 부석사. 백두대간 태백산 자락인 봉황산(818 m) 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무량수전이 있는 사찰 중심 영역은 거대한 돌로 석축을 쌓아 조성했으며, 그 앞에 안양루라는 누각을 세워 놓았다. 마치 봉황이 날아오르려는 형상을 하고 있다.

들어가는 길

부석사는 봉황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지만 들어가는 길은 평판한 편이다. 일주문을 지나서 걸어가는 호젓한 길은 가을 은행나무의 노란색과 더불어 가을 분위기를 물씬 풍겨주고 있다. 길 양쪽에 있는 주렁주렁 매달린 사과 과수원의 사과와 함께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게 해 준다. 봄에는 활짝핀 사과꽃 풍경을 만끽할 수 있는 상당히 아름다운 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부석사 주차장에서 일주문이 있는 입구로 들어가는 길.

OLYMPUS DIGITAL CAMERA부석사 일주문. ‘태백산 부석사’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봉황산 자락에 있지만 태백산의 한 줄기임을 강조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부석사 들어가는 은행나무길.

SANYO DIGITAL CAMERA은행나무길 아래로 보이는 사과나무밭.

OLYMPUS DIGITAL CAMERA초겨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일주문을 지나 부석사 오르는 길에 볼 수 있는 당간지주(보물 255호).

OLYMPUS DIGITAL CAMERA멀리 보이는 천왕문.

SANYO DIGITAL CAMERA부석사의 실질적 출입문인 천왕문. 이 곳부터 단계별로 축대를 쌓아서 공간을 조성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천왕문이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쌓은 석축.

안양루 아래 공간

부석사는 천왕문에서 시작해서 9단(혹은 10단)으로 석축을 쌓아 가람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이는 사찰 가람배치에 불교 사상을 구현하기 위함이라 한다. 삼층석탑과 종무소가 있는 공간을 오르는 3단계 석축이 있고, 범종루을 오르는 3단계 석축, 안양루를 오르는 3단계 석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공적인 아름다움이 뛰어난 불국사 석축과는 달리 자연석을 쌓아서 만든 석축으로 자연스러우면서도 웅장한 조형미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공간에는 불전을 두지 않고 승려들이 수행하는 여러동의 요사채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SANYO DIGITAL CAMERA천왕문을 들어서면 보이는 풍경. 정면에 석축을 쌓아 조성한 2번째 공간이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부석사 2번째 출입문인 회전문.

OLYMPUS DIGITAL CAMERA회전 옆 석축과 그 위에 올려진 요사채 건물.

SANYO DIGITAL CAMERA회전문을 들어서면 보이는 풍경. 범종루는 3번째 축대를 쌓은 공간으로 오르는 출입문 역할을 한다. 범종루가 가람배치에 있어 중심을 잡아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범종루 아래 공간에 있는 2기의 삼층석탑. 인근 절터에 있던 것을 옮겨온 것으로 통일신라 말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삼층석탑 뒷편 종무소.

SANYO DIGITAL CAMERA범종루는 부석사에는 뛰어난 목조 건축물 중 하나로 손꼽힌다. 주위 경치를 감상하기 좋은 누각 형태의 큰 건물로 ‘봉황산부석사’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범종루는 입구쪽은 팔작지붕을, 반대편으로는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특이한 형태의 건물이다. 옆면 4칸으로 누각 건물 중에는 크고 웅장한 규모이다.

SANYO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범종루.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범종루 내부에는 법고(북) 등이 있으나 범종은 없다. 내부는 상당히 넓은 편이며 경치를 감상하기 좋은 곳이다.

SANYO DIGITAL CAMERA서쪽편에 있는 범종각.

SANYO DIGITAL CAMERA범종각 위쪽 축대 위에 있는 요사채인 선열당.

OLYMPUS DIGITAL CAMERA맞은편에 있는 응향각

OLYMPUS DIGITAL CAMERA윗쪽에 있는 장경각.

무량수전이 있는 중심영역

부석사의 중심 영역은 10번째 축대로 조성된 영역으로 아미타불을 모신 무량수전이 주불전을 자리잡고 있다. 그 앞에는 석등이 놓여 있으며, 삼층석탑은 동쪽편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이 공간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누각 건물인 안양루가 자리잡고 있다. 안양루에서 내려다 보이는 백두대간 산자락이 이어지는 풍경은 손곱히는 명장면 중의 하나이다. 무량수전은 고려말에 지어진 가장 오래된 건축물 중 하나로 배흘림 기둥 등 주심포계 목조건축물을 가장 잘 구현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무량수전 뒷편에는 창건 설화가 얽혀 있는 부석바위가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주불전이 있는 중심영역. 높은 축대 위에 조성된 공간을 무량수전과 안양루 외 건물은 두고 있지 않다.

SANYO DIGITAL CAMERA부석사 안양루. 주불전 영역을 출입하는 출입문이자 강당 역할을 하는 누각 건물이다. 안양루는 축대 아래에서 보면 웅장해 보이지만, 무량수전에서 보면 아담하며, 하늘로 날아오를 듯한 느낌을 주는 건물이다.

SANYO DIGITAL CAMERA무랑수전이 있는 공간을 만들고 있는 축대.

OLYMPUS DIGITAL CAMERA안양루를 지나면 보이는 장면. 부석사를 대표하는 문화재인 무량수전(국보 18호)와 석등(국보 17호)를 볼 수 있다. 부석사를 대표하는 장면 중 하나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무량수전은 아미타여래를 모시는 불전이다. 건물은 앞면 5칸, 옆면 3칸의 규모가 상당히 큰 건물이다. 배흘림 기둥을 사용한 주심포계 건물로 상당히 간결하고 안정감 있게 보이는 건축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 ’무량수전’이라는 현판은 중국식으로 적혀있다. 고려 공민왕이 썼다고 전해지는데, 공민왕은 원나라에 자란 사람으로써 원나라 양식으로 글을 썼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지붕을 받치는 주심포양식의 공포와 안정감 있게 보이는 배흘림기둥.

국보18호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14-20101021
무량수전에 모셔진 소조여래좌상(국보 45호)

OLYMPUS DIGITAL CAMERA무량수전 뒷편에 있는 부석바위. 의상대사가 부석사를 창건할 때 설화가 전해오는 바위이다.

부석(浮石)
신라 문무왕 1년(661) 의상 대사가 화엄학을 공부하기 위해 당나라에 갔을 때 의상대사를 연모한 선묘라는 여인이 있었다. 의상 대사는 중국 장안에 있는 종남산 지상사의 지엄삼장에게서 10년간 화엄의 도리를 배우고 깨달음을 얻은 후 귀국길에 올랐다. 뒤늦게 소식을 들은 선묘가 부두로 달려갔을 때 대사가 탄 배는 이미 사리지고 없었다. 선묘는 바다에 몸을 던져 용으로 변신하여 의상대사가 탄 배를 호위하여 무사히 귀국하게 하였다. 그 후 의상대사가 화엄의 도리를 널리 펴기 위하여 왕명으로 이곳 봉황산 기슭에 절을 지으려고 할 때, 이곳에 살고 있던 많은 이교도들이 방해하였다. 이때 선묘 신룡이 바위를 공중으로 들어 올리는 기적을 보여 이교도를 물리쳤다. 그리하여 이 돌을 ‘부석’이라 불렀으며 사찰이름을 ‘부석사’라 불렀다고 한다. 그 후 선묘 신룡은 부석사를 지키기 위해 석룡으로 변신하여 무량수전 뜰아래 묻혔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조선 영조 때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위아래 바위 사이에 약간의 틈이 있어 줄을 넣어 당기면 걸림 없이 드나들어 떠 있는 돌임을 알 수 있다”라고 적고 있다. (안내문, 영주 부석사,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무량수정 앞에 있는 안양루. 앞면 3칸의 크지 않은 누각건물로 축대 아래에서 보면 웅장해 보이지만, 무량수정 앞 마당에서는 아담해 보인다. 하늘로 날아오를 듯한 느낌을 주는 건물이다.

SANYO DIGITAL CAMERA안양루에서 내려다 보이는 범종루와 주변 공간. 그 너머로 백두대간에서 뻗어내려간 작은 봉우리들이 바다를 이루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부석사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해가 넘어가는 일몰장면.

SANYO DIGITAL CAMERA무량수전 동쪽편에 세워진 삼층석탑(보물 249호). 통일신라 초기에 세워진 석탑으로 비슷한 시기에 세워졌던 경주의 쌍탑식 석탑에 비해 규모가 작고, 불전 동쪽 언덕에 세워져 있다. 조형미는 양호한 편이고 매우 안정적인 느낌을 주고 있는 석탑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삼층석탑 앞에서 내려다 보이는 무량수전.

SANYO DIGITAL CAMERA안양루와 무량수전 앞 마당.

OLYMPUS DIGITAL CAMERA삼층석탑과 무량수전.

조사당을 비롯한 불전과 전각들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 초상을 모시기 위해 세워진 불전인 조사당(국보 19호)은 무량수전 동쪽 삼층석탑을 지나 숲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볼 수 있다. 조사당 바로 앞에는 의상대사 지팡이를 꽂은 곳에 핀 꼿인 어사화가 있으며, 동쪽편에는 사명대사가 수도했던 곳으로 유명한 취현암이 자리잡고 있다. 조사당을 지나면 응진전, 자인당과 함께 조그만 단하각이 자리잡고 있다. 삼성각은 무량수전 서쪽편 아래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장전은 범종루 동쪽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조사당(국보 19호)는 무량수전과 함께 고려말에 지어진 불전이다. 건물은 앞면3칸, 옆면1칸의 작은 건물로 맞배지붕과 주심포 양식을 사용하고 있다. 조사당 내부에는 고려시대 대표적 회화작품인 조사당 벽화(복제본)가 있다.

국보19호 영주 부석사 조사당 11-20151009조사당 벽화(국보 46호)

OLYMPUS DIGITAL CAMERA조사당 옆 사명대사가 머물렀다는 작은 암자.

OLYMPUS DIGITAL CAMERA웅진전은 부처님의 제자를 모신 불전으로 보통 사찰의 경우 대웅전 옆에 위치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부석사 웅진전은 무량수전 뒷쪽편 숲속에 자리잡고 있다. 자인당은 원래 스님들의 선방으로 사용했던 건물인데 인근 사찰터에서 옮겨온 삼존여래 좌상을 모시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자인당에 모셔진 북지리 석조여래좌상(보물 220호). 인근 절터에서 옮겨온 것으로 통일신라를 대표하는 비로자나불상이다.

SANYO DIGITAL CAMERA같이 모셔진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1636호). 인근 절터에서 옮겨온 것이다.

SANYO DIGITAL CAMERA작은 불전인 단하각.

SANYO DIGITAL CAMERA무량수전 아래에 있는 삼성각.

SANYO DIGITAL CAMERA지장전.

부석사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 해동 화엄종이 종조인 의상대사가 왕명으로 창건한 화엄종의 수사찰이다. 대사는 당나라에 유학하고 있을 때 당 고종의 신라 침략 소식을 듣고 이를 왕에게 알리고, 그가 깨달은 화엄의 도리로 국론을 통일하여 내외의 시련을 극복하게 하고자 귀국하여 이 절을 창건하였으며, 이후 부석사는 우리나라 화엄사상의 발원지가 되었다. 부석사로 불리우게 됨은 무량수전 서쪽에 큰 바위가 하나 있는데 이 바위는 아래의 바위와 서로 붙어있지 않고 떠 있어서 ‘뜬 돌’이라 한데서 연유한다. 고려시대에는 선달사 혹은 홍교사라 불리었다. 1916년 해체 보수 시에 발견된 묵서명에 의하면 고려 초기에 부석사는 무량수전 등이 크게 중창되었으나 공민왕 7년(1358) 외적의 병화를 당하였고, 그 후로 우왕 2년(1376)에 무량수전이 재건되었고, 우왕 3년(1377)에는 조사당이 재건되었다. 경내에는 신라시대 유물인 무량수전 앞 석등(국보 17호), 석조여래좌상(보물 220호, 1636호), 삼층석탑(보물 249호), 당간지주(보물 255호), 대석단 등이 있고, 고려시대 유물로는 무량수전(국보 18호), 조사당(국보 19호), 소조여래좌상(국보 45호), 조사당벽화(국보 46호), 고려목판(보물 735호), 원융국사비 등이 있다. 특히 무량수전은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건축물 중 하나이며, 조사당벽화는 목조건물에 그려진 벽화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현재 부석사 성보박물관 안에 보관되어 있다. 무량수전 안에 봉안된 소조여래좌상은 진흙으로 만든 소조불상으로 국내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것이다. (안내문, 영주 부석사, 2017년)

<출처>

  1. 안내문, 영주 부석사,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

 

합천 가야산 해인사(사적 504호), 고려팔만대장경이 있는 법보사찰

경남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에 있는 가야산 해인사(海印寺, 사적 504호)이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팔말대장경판을 비롯하여 많은 불경판을 보관하고 있어 법보사찰로 불리며 송광사, 통도사와 더불어 전국 3대 사찰로 손꼽히는 곳이다. 해인사는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통일신라 화엄십찰 중 한곳이었으며 실제로는 9세기에 당나라를 유학한 순응과 이정 두 승려가 창건했다고 한다. 고려를 건국할 때 큰 공을 세워 화엄사상을 크게 떨쳤다고 하며, 통일신라 말 혼란기에 희생된 승려와 주민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서 세운 길상탑이 해인사 입구에 있다. 왜구의 피해가 극심했던 조선초 강화 선원사에 있던 고려대장경판을 해인사로 옮겨오면서 법보사찰이 되었다.

해인사는 고려팔만대장경판(국보 32호)을 보관하고 있는 장경판전(국보 52호)을 중심으로 사찰이 사찰이 유지되어 왔다. 조선시대 수차례에 걸친 화재로 오래된 전각은 남아 있지 않지만 장경판전과 팔만대장경판은 화재와 한국전쟁의 폭격 위험 속에서도 살아 남아 법보사찰로서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또한 가야산 깊은 산중에 자리잡고 있는 까닭에 통일신라 때 문인 최치원을 비롯하여 대각국사 의천, 사명대사, 최근의 성철스님까지 유명한 고승이나 문인들이 이 곳에 머무르면서 수도를 했다고 전해진다. 오늘날 해인사는 크고 작은 전각들을 새로 지어진 까닭에 봉정사나 부석사같은 고풍스러운 멋은 없지만, 팔만대장경판의 존재만으로도 유서깊은 사찰로서 의미를 갖는 곳이다.

SANYO DIGITAL CAMERA고려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장경판전(국보 52호). 해인사에서 가장 오래된 전각으로 오늘날 한국 3대 사찰 중 법보사찰로서 위상을 갖게하는 중요한 공간이다.

들어가는 길

해인사는 입구에서 많이 떨어져 있고, 들어가는 길은 수목이 우거진 숲길로 산사라는 의미가 깊게 다가오는 사찰이다. 여느 사찰과 마찬가지로 사찰입구에는 일주문이 세워져 있고 출입문으로 천왕문격인 봉황문과 그 안쪽에 해탈문이 있다. 봉황문과 해탈문 사이 공간에는 요사채와 가람을 수호하는 국사단이 자리잡고 있으며, 해탈문을 들어서면 큰 요사채와 강당건물들이 들어서 있는 넓은 마당이 있다. 이 마당에는 의상대사사 화엄사을 요약한 게송을 도안에 써 놓은 해인도를 형상화시켜 놓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해인사 일주문.

OLYMPUS DIGITAL CAMERA일주문을 지나 첫번째 출입문인 봉황문으로 들어가는 길. 울창한 고목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해인사 봉황문. ‘해인총림’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해인사 봉황문과 해탈문 사이 공간에 있는 작은 전각인 국사단. 해인사 도량을 관장하는 산신이자 토지의 신인 국사대신을 모신 곳이다.

SANYO DIGITAL CAMERA봉황문 옆에 있는 요사채인 우화당. 해인사를 찾은 신도들이 머물수 있도록 지은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두번째 출입문인 해탈문

OLYMPUS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해탈문. 옆쪽에 있는 전각과 함께 솟을대문 형식을 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강당 건물인 구광루. 근래 아주 크게 지은 건물로 현 해인사 중수 결과 중 보경당과 함께 혹평을 받는 부분이다. 강당은 사찰을 찾는 신도들이 설법을 듣거나 잠시 앉아서 쉬는 곳으로 사찰의 풍경을 조용히 차분히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지금의 구광루는 그런 기능을 하지 못하고, 보물을 보관하는 곳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건물 규모가 사찰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너무 크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구광루 앞 마당에 구현해 놓은 해인도.

해인도(海印圖)
해인도는 의상대사가 당나라 유학 시절 화엄사상을 요약한 210자 7언 30구의 게송(偈頌, 부처의 공덕이나 교리를 담은 노래 글귀)을 만(卍)자를 발전시킨 도안에 써넣은 것이다. 도안 중십에서 ‘법성원융무이상’으로 시작하여 ‘구래부동명위불’로 끝나기까지 210자의 게송을 미로와 같이 54번 꺾어 도는 동안 그 내용을 마음에 체득하면서 따라가면 깨달음에 도달한다. 여기는 처음 출발한 그 자리다. 이는 법성이 원융한 사바세계 이대로가 부처님의 세계임을 의미한다. 화엄일승법계도, 법계도서인, 화엄법계도, 법성도 등으로도 불린다. (안내문, 합천 해인사,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구광루 맞은편 종무소 건물인 사운당

SANYO DIGITAL CAMERA마당 동쪽에 있는 상당히 크게 지은 전각인 보경당. 강당 용도로 사용되는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해인도 옆에 있는 범종각.

SANYO DIGITAL CAMERA범종각 뒷편 요사채. ‘청화당’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손님이 머무는 공간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구광루 옆쪽으로 있는 승려들의 수행공간. 크고 작은 요사채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해인사는 주불전이 있는 공간은 구광루 양쪽에 있는 작은 협문을 통해 출입할 수 있다.

수행 및 예불공간

구광루 옆 협문을 지나면 주불전인 대적광전이 있는 공간으로 들어선다. 마당에는 비로탑으로 불리는 삼층석탑이 세워져 있고 양쪽에 요사채가 있다. 마당보다 높게 축대를 쌓아 조성한 공간에는 주불전인 대적광전을 비롯하여 비로전, 응진전, 명부전 같은 불전이 배치되어 있으며, 바깥쪽으로 승려들의 수행공간인 크고 작은 요사채들이 자리잡고 있다. 해인사는 수행을 중시하는 사찰로 다른 사찰에 비해 요사채가 상당히 많은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해인사 수행공간. 마당 가운데 석탑이, 그 좌우로 요사채가, 축대를 쌓은 높은 곳에 불전이 배치된 전형적인 산지사찰 가람배치를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불전들이 있는 공간. 경사진 지형에 축대를 상당히 높고 넓게 쌓은 후 건물을 지었다.

SANYO DIGITAL CAMERA해인사 주불전인 대적광전. 화엄경을 중시하는 사찰로 비로자나여래를 모시고 있다. 그 앞에 깃발 등을 걸었던 당간과 당간지주를 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적광전에 모셔진 비로자나여래.

OLYMPUS DIGITAL CAMERA대적광전 옆에 있는 비로전. 대적광전과는 별도로 비로자나여래를 모신 비로전을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비로전에 모셔진 비로자나여래. 특이하게 두분의 비로자나여래가 모셔져 있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되었다고 전하나 확인되지는 않은 듯 하다.

대비로전
비로자나불을 모신 법당을 비로전이라고 한다. 비로자나불은 왼손 집게손가락을 오른손으로 감싸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는 중생과 부처, 번뇌와 깨달음이 본래 하나라는 것을 상징한다. 해인사 대비로전에는 9세기에 조성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동형쌍불 비로자나불이 모셔져 있다. 비로자나불 내부에서 나온 묵서명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씌여져 있다. “서원합니다. 대각간님의 비로자나부처님이시여! 오른쪽 부처님은 비(妃)님의 부처님입니다. 중화 3년(서기 883년) 계묘년 여름, 부처님을 금을 입혀 이루었습니다.” (안내문, 합천 해인사,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비로전 뒷편에 있는 독성각. 앞쪽에 산신을 모시는 국사단이 있어 이곳에는 독성각이 있다. 통일신라 때 최치원이 은거했다는 학성대 바로 옆에 있어 의미가 있는 듯 하다.

OLYMPUS DIGITAL CAMERA독성각 내부. 스스로 수행해서 도를 깨친 성자를 모시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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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성각 옆에 있는 학사대. 오래된 전나무가 학사대의 의미를 더해주고 있다.

학사대(學事臺)
학사대는 신라 말기의 문장가이자 학자였던 고운 최치원(875~?)이 만년에 가야산에 은거하여 시서에 몰입하던 곳이다. 그가 이곳에서 가야금을 연주할 때 수많은 학이 날아와 경청했다고 한다. 당시 거꾸로 꽂아 두었다고 전해지는 전나무 지팡이가 지금까지 살아 있으며,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가지가 아래로 쳐져 거꾸로 자라는 것처럼 보인다. (안내문, 합천 해인사,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학사대 아래에 있는 요사채들.

OLYMPUS DIGITAL CAMERA대적광전 동쪽에 있는 응진전.

OLYMPUS DIGITAL CAMERA응진전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대적광전 옆에 있는 명부전.

OLYMPUS DIGITAL CAMERA명부전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응진진 뒷편 요사채

OLYMPUS DIGITAL CAMERA대적광전 앞 마당. 비로탑이라 불리는 통일신라 삼층석탑이 세워져 있다. 일반적인 사찰과는 달리 대적광전과 일직선으로 배치되지 않았다.

OLYMPUS DIGITAL CAMERA마당 동쪽에 있는 요사채. 안쪽에 관음전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마당 서쪽에 있는 요사채인 궁현당. 양쪽 건물 모두 그 규모가 상당히 크다.

수행 및 예불공간
비로탑과 석등이 있는 마당 좌우로 궁현당과 관음전이 있다. 궁현당 너머에는 적묵당과 진영전이, 관음전 너머에 정수당이 있다. 이들 전각은 대부분 해인사 승가대학(강원) 스님들의 수행공간이다. 높은 축대 위에 솟은 대적광전을 중심으로 왼쪽의 대비로전과 독성가, 오른쪽의 명부전과 응진전은 예불, 참회, 기도 등 주요 종교활동이 이루어지는 예불공간이다. 대적광전은 비로자나불을 본존불로 모신 해인사의 중심 법당이며, 대비로전은 9세기에 조성된 국내 최고 목조 비로자나불을 봉안하고 있다. 응진전 뒤쪽에는 한때 선원으로 사용되었던 선열당(법계당), 퇴설당이 있고, 그 위로 조사전이 있다. (안내문, 합천 해인사, 2018년)

법보공간

법보공간은 고려 팔만대장경(국보 32호)를 비롯한 불경 목판을 보관하고 있는 전각으로 해인사에서도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장경판전은 해인사에 가장 오래된 건물로 언제 처음 지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현재의 건물은 조선 세조 때 크게 다시 지었으며, 성종 때 다시 중건한 건물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해인사 경내 여러 전각들은 여러 차례 화재로 소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장경판전은 피해를 입지 않고 오늘날까지 팔만대장경을 지켜오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대적광전 뒷편 법보공간을 출입하는 작은 협문. ‘팔만대장경’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법보공간 중 앞쪽에 위치한 수다라장. 앞면 15칸의 긴 건물로 장식성을 배제하고 목판을 보관하기 위한 기능성을 중시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수다라장 출입문과 내부. 일년 중 춘분과 추분 부근 3시경에 출입문 기와의 곡선과 함께 연꽃무늬 그림자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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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라장 내부에 모셔진 고려팔만대장경(국보 32호).

OLYMPUS DIGITAL CAMERA법보공간 안쪽에 있는 건물인 법보전. 수다라장과 비슷한 양식의 건물이다.

가야산 해인사
해인사는 서기 802년(신라 애장왕 3)에 순응, 이정 두 스님이 창건하였다. 해인사의 이름은 화엄경의 ‘해인삼매’에 기초하였다고 전해진다. 해인삼매는 바다에 풍랑이 그치면 그 모든 형상이 온전히 비치듯이 법계의 실상을 본래 모습 그대로 자각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해인사는 창건 이래 우리나라 화엄종의 근본 도량이어었으며 현재는 대한불교 조계종이 지정한 최초의 총림(선원, 강원, 율원을 모두 포함한 종합수행도량)으로 운영되고 있다. 특히 고려팔만대장경판을 봉안하고 있어 불법의 큰 보배가 현전하는 법보종찰로 유명하다. 유네스코는 해인사에 보관된 고려팔만대장경의 고유한 역사.문화적 가치를 인정하여 1995년 장경판전을 세계문화유산으로, 2007년 대장경 경판을 비롯한 해인사의 모든 경판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였다. (안내문, 합천 해인사, 2017년)

<출처>

  1. 안내문, 합천 해인사,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

합천 해인사 홍제암(보물 1300호), 사명대사가 입적한 유서깊은 암자

경남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해인사에 있는 암자인 홍제암(弘濟庵, 보물 1300호)이다. 이곳은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이끌고 큰 역할을 했던 사명대사가 머물다 입적한 곳이다. 그의 사후 광해군이 ‘자통홍제존자’라는 시호를 내리면서 홍제암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의 사후 영정을 모시기 위해 현 건물이 세워졌으며 여러차례 수리를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물은 불상을 모시는 불전과 생활공간인 요사채를 겸하고 있는 인법당(因法堂) 형식을 하고 있다. 양쪽이 누마루처럼 돌출되어 있으며, 전체적으로 ‘工’자형 평면배치를 하고 있다. 가운데 불상을 모시는 불전을 중심으로 양쪽에 영정을 모시는 조사전을 비롯하여 여러 기능의 방들이 배치되어 있으며, 툇마루를 통해 연결되고 있다. 여러 기능의 공간이 한 건물에 있는 독특한 형태의 암자로 건축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합천 해인사 홍제암(보물 1300호). 사명대사가 마지막으로 머물다 입적한 유서깊은 암자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홍제암 출입문인 보승문. 유교식 삼문 형식을 하고 있는 출입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홍제암 건물은 그의 사후 영정을 모시기 위해 세워졌다. 불전과 생활공간이 한 건물에 있는 특이한 형태의 암자로 ‘工’자형 평면배치를 하고 있다. 1970년대에 크게 수리하여 지금은 새로 지은 건물처럼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홍제암 가운데는 불상을 모신은 불전 역할을 하는 공간이다. ‘홍제암’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홍제암 내부에 모셔진 불상.

OLYMPUS DIGITAL CAMERA동쪽은 앞면 2칸의 누마루처럼 생긴 형태로 ‘표충사’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영자각(影子閣)이라 하며 고승 16명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다고 한다. 영조 때 표충사라고 불렀는데 밀양에 표충사가 있어 이후에 이곳을 폐하였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서쪽편도 앞면 2칸의 누마루처럼 생겼다

OLYMPUS DIGITAL CAMERA홍제암의 공간들은 툇마루를 통해 연결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모습. 안쪽에 생활공간인 요사채가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동쪽에서 본 홍제암.

OLYMPUS DIGITAL CAMERA홍제암 서쪽편에 있는 큰 규모의 요사채.

OLYMPUS DIGITAL CAMERA안쪽에 있는 작은 요사채. 승려들이 머무는 공간이 상당히 많은 편으로 해인사 승려들이 머물기를 선호하는 공간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홍제암 동쪽 석장비와 승탑들이 있는 공간과 연결되는 작은 협문.

OLYMPUS DIGITAL CAMERA사명대사 석장비(보물 1301호). 사명대사의 행적을 기록한 비석으로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이 비문을 지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훼손한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석장비와 함께 있는 승탑과 비석들.

합천 해인사 홍제암 사명대사 석장비 10-20180205홍제암 뒷편 언덕에 있는 사명대사 사리를 모신 승탑(보물 1301호)

홍제암, 보물 1300호
홍제암은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켜 나라를 지킨 사명대사가 선조대왕의 하사로 1608년에 창건하여 수도하시다가 입적하신 곳이다. 1614년(광해 6)에 혜구 스님이 양자전을 지어 서산, 사명, 영규대사의 영정을 봉안하였고, 1674년에 현종께서 홍제당(암)을 사핵하였으며 그동안 6차례 보수하였는데, 현존 건물은 당시 고 박정희 대통령의 특별예산 조치로 1979년 10월에 완전 해체 복원하였다. 경내에는 보물 1301호 사명대사탑 및 석장비가 있다. 사명대사 부도 및 탑비는 대사의 일대기를 기록한 것으로 1612년(광해 4)에 건립하였고, 1943년에 일본인 합천 경찰서장이 파손하였던 것을 1958년에 복원하였다. 부도는 사명대사의 사리를 봉안한 석조물로서 1610년 입적하신 해에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안내문, 합천 해인사, 2017년)

<출처>

  1. 안내문, 합천 해인사,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8년

영덕 칠보산 유금사

경북 영덕군 병곡면 금곡리 칠보산에 있는 유금사(有金寺)이다. 사찰 내력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통일신라 때 조성된 삼층석탑(보물 674호)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볼 때 오랜 내력을 갖고 있는 사찰로 여겨진다. 오래전에 폐사되었다가 조선중기 이후 중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불전으로 대웅전이 있으며, 산왕각, 향로전, 요사채 등이 있는데, 현 사찰 규모는 크지 않은 편이다.

동해안에서 경치가 좋고 비교적 높은 칠보산(해발 811 m)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주변에 넓은 영해평야가 있고, 후포항을 비롯하여 항구도 발달되어 있어 경제적으로도 풍족한 지역으로 큰 사찰이 갖추어야 입지조건은 잘 갖추고 있는 곳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영덕 칠보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유금사. 주불전을 제외하고는 전각이 많지는 않지만 통일신라 삼층석탑이 남아 있고 절터가 꽤 넓은 사찰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사찰 출입문인 서운루(棲雲樓). 앞면 3칸으로 강당 겸 누각 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서운루.

OLYMPUS DIGITAL CAMERA유금사 주불전인 대웅전. 원래 앞쪽에 있던 삼층석탑을 뒷편으로 옮겼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웅전 뒷편 삼성각.

OLYMPUS DIGITAL CAMERA삼성각 앞쪽에 삼층석탑이 있었는데 지금은 해체.수리 중이다.

영덕 칠보산 유금사 10-2017_12_19
삼성각 앞 삼층석탑. 현재의 삼성각도 최근에 새로 지었음을 알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해체.수리중인 삼층석탑.

OLYMPUS DIGITAL CAMERA악기를 연주하는 천인, 동제 주악천인상(銅製 奏樂天人像), 경북 영덕 유금사 출토, 통일신라 8세기. 삼층석탑을 옮기는 과정에서 석탑 내부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금동 장식, 8~9세기, 경북 영덕 유금사.

OLYMPUS DIGITAL CAMERA대웅전 아래 요사채.

OLYMPUS DIGITAL CAMERA요사채 맞은편 불전.

<출처>

  1. 안내문, 영덕군청, 2017년
  2. 영덕군 군지, 영덕군청, 2017년
  3.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7년
  4. 한국민족문화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7년

부산 금정산 범어사, 화엄십찰 중 한곳으로 대표적인 호국사찰

부산시 금정구 청룡동 금정산 중턱에 위치한 범어사(梵魚寺)이다. 신라 의상대사가 전국에 창건한 화엄십찰 중 한 곳으로 신라와 불편한 관계에 있었던 왜(倭)의 침입을 물리치고자 하는 소망을 담은 전형적인 호국사찰이다. 고려시대 역사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으며, 임진왜란때 불타버린 것을 광해군때 묘전화상을 비롯한 여러 고승들이 크게 중건하였다. 숙종 때에는 금정산에 큰 산성을 축조되면서 성곽의 유지.보수와 방어를 담당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후 정조때 백암선사가 크게 중건하여 현재 범어사의 모습을 갖추었다.

범어사는 화엄십찰에서 볼 수 있는 산중사찰의 가람배치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제일 상단에는 주불전인 대웅전을 비롯하여 여러 불전들을 배치하였다. 그 아래 공간에는 신도들이 잠시 쉬거나, 불법을 공부하는 강당공간인 보제루를 비롯하여 심검당과 같은 요사채, 미륵전과 비로전 같은 불전을 두고 있다. 출입문으로는 일주문, 천왕문, 불이문을 두고 있는데 전체적으로 경사진 지형을 따라 위로 올라가는 구조를 하고 있다. 가람배치는 규칙성을 갖추고 조성되었다기 보다는 시대의 변천에 따라서 필요한 전각들이 추가된 것으로 보인다. 경내 문화재로는 대웅전(보물 434호), 3층석탑(보물 250호), 일주문(보물 1461호)가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부산 금정산 범어사. 의상대사가 창건한 통일신라 화엄십찰 중 한곳으로 부산을 대표하는 큰 사찰이다. 임진왜란 이후 금정산성을 담당하는 승병의 근거지가 되면서 사찰규모가 크게 확장된 것으로 보인다.

들어가는 길

범어사는 금정산 동쪽편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전형적인 산중 사찰이다. 경사진 지형에 축대를 쌓고 전각을 배치하고 있는 형태이다. 출입문으로는 일주문,천왕문,불이문이 가까운 거리에 차례로 배치되어 있으며, 누각인 보제루가 경내 입구 출입문 역할을 하고 있다. 대도시에 자리잡고 있어 사찰입구까지 자동차 도로가 개설되어 있으며, 도로에서 경내까지는 사찰까지도보로 약 5분 정도 소요된다. 도심과 가깝지만 범어사 맑은 계곡과 숲이 있어 많은 신도들과 탐방객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범어사가 있는 금정산 중턱까지 도로가 개설되어 있으며, 도심 가까운 곳에서 자리잡은 큰 사찰로 공원처럼 주변을 잘 가꾸어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범어사로 들어가는 길. 경사진 길이 사찰 경내까지 이어지며 주변으로는 고승들의 승탑과 탑비들이 세워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멀리 범어사 첫번째 출입문인 조계문이 보인다. 주변 숲이 정원처럼 잘 가꾸어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조계문(曹溪門, 보물 1461호)은 화강석을 다듬은 높은 돌기둥 위에 짧은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을 올려 놓았다. 화려한 다포계 공포를 사용하고 있으며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건축물로서 짜임새가 있으며 조형적인 면에서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아 보물로 지정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조계문을 지나면 나타는 천왕문. 화재로 소실되었을 때 모습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천왕문 오른쪽 아래에 보이는 성보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천왕문을 지나면 보이는 세번째 출입문이 불이문. 앞면 3칸 규모의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이다. 범어사는 화엄십찰인 해인사, 부석사 등과 마찬가지로 계단식으로 가람을 배치하여 조금씩 올라가는 느낌을 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일주문에서 천왕문을 지나 불이문으로 들어오는 길.

불전들

범어사는 석가여래를 모신 대웅전을 중심으로 여러 불전들을 두고 있다. 축대를 높게 쌓아 조성한 곳에 불전들을 배치하고 있는 전체적으로 질서가 있거나 일관성이 있는 건물 배치는 아니고 필요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확장된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인 사찰에서 주불전에 모시는 비로자나여래를 모시는 비로전과 미륵전이 아래쪽에 있고, 약사여래를 모신 약사전이 대웅전 왼쪽편 구석에 위치하고 있다. 반면에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을 모신 관음전과 지장전이 대웅전 양쪽에 자리잡고 있으며 그 규모 또한 큰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주불전인 대웅전(보물 434호)이다.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미륵보살, 제화갈라보살을 모시고 있는 불전이다. 축대를 쌓아 조성한 높은 공간에 대웅전을 비롯하여 주요 불전들이 배치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불전들이 세워져 있는 곳. 비교적 공간을 넓게 쓰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웅전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대웅전 오른쪽 관음전. 앞면 5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웅전 왼쪽에 위치한 지장전

OLYMPUS DIGITAL CAMERA지장전 옆 축대를 쌓아 조성한 공간에 팔상전.나한전.독성전, 산신각, 약사전 등의 불전이 조성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팔상.독성.나한전은 하나의 건물에 3개의 불전이 있는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다. 18세기초에 처음 지어졌을 때는 팔상전과 나한전이 나란히 세워져 있었으며, 가운데 천태문이 있었다고 한다. 1907년 건물을 수리할 때 팔상전과 나한전은 옛 건물을 그대로 두고 가운데 독성전이 새롭게 지었다.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 위치한 약사전

OLYMPUS DIGITAL CAMERA지장전 왼쪽편으로 골목길이 연결되어 있으며 위.아래에 크고 작은 요사채들이 들어서 있다.

대웅전 아래 마당이 있는 공간

불전이 있는 공간 아래에는 다른 사찰과 마찬가지로 삼층석탑이 있는 넓은 마당이 있으며, 양쪽으로 불전과 요사채가 있다. 마당 오른쪽에는 불전인 비로전과 미륵전이 있고 그 뒷편에 요사채들이 들어서 있다. 아마 통도사처럼 불전이 있는 독립된 공간을 형성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맞은편에는 요사채인 심검당이 있고 그 뒷편으로 큰 규모의 강당 건물과 크고 작은 요사채들이 들어서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웅전 아래 마당. 보제루가 있던 자리(2011년 당시)가 비어 있다.  지금은 큰 누각건물이 세워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범어사 삼층석탑(보물 250호)이다. 주불전이 대웅전 앞 마당 한쪽편에 세워져 있다. 제작수법이 간단하면서 정형화된 통일신라 후기와 고려초기의 석탑 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범어사 경내에 남아 있는 석등. 석탑과 함께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마당 한쪽편에 있는 비로전. 독립된 공간의 주불전으로 세워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 옆에 미륵전이 있는데 통도사 중로전과 비슷한 공간배치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미륵전.

OLYMPUS DIGITAL CAMERA미륵전 뒷편 요사채를 출입하는 문. 안쪽은 승려들이 수행하는 공간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바깥쪽 출입문.

OLYMPUS DIGITAL CAMERA맞은편에 위치한 큰 요사채인 심검당.

OLYMPUS DIGITAL CAMERA심검당 옆 작은 요사채. 그 너머로 강당과 크고 작은 요사채들이 들어서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범종루.

금정총림 범어사
금정총림(金井總林) 범어사(梵魚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로서 10개의 산내 암자와 2백여 개의 산외말사로 이루어진 영남 3대 사찰 중 하나이다. 신라 문무왕 18년(678) 의상대사의 화엄십찰 중 하나이며 화엄경의 이상향인 화장세계 구현과 왜구를 막는 호국 사찰로 창건되어 졌다. 흥덕왕 10년(835)에 크게 중창되었으며,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으로 전소된 것을 묘전화상과 그 문도들에 의해 복구되었다. 숙종 29년(1703) 금정산성 축조 후 승군사령부로서 성곽수비를 맡는 등 지역방위체제의 일익을 맡았다. 구한말에는 선풍 진작을 위한 민족불교운동의 구심점으로서 선찰대본산이 되었고, 1919년 3.1독립만세운동 때는 범어사 학림의거를 주도하는 등 항일운동을 펼쳤다. 1950년대는 동산대종사가 주도한 불교정화운동의 중심지로서 한국 근대 불교사에 큰 족적을 남기는 등 수많은 고승들을 배출하면서 오늘의 종합 수행도량인 총림으로 발전해 왔다. (안내문, 부산 범어사, 2017년)

<출처>

  1. 부산 범어사
  2. 문화재청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