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사찰

강진 백련사, 고려중기 불교개혁 백련결사를 이끌었던 사찰

전남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에 있는 사찰인 백련사(白蓮社)이다. 남해안 강진만이 내려다 보이는 만덕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유서깊은 사찰이다. 통일신라 때 처음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며 고려중기 원묘국사가 크게 중창하였다. 고려중기 불교개혁운동 백련결사를 이끌었던 사찰로 수신결사를 이끌었던 지눌의 송광사와 함께 불교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사찰이다. 고려중기 이후 8명의 국사를 배출하였으나 고려말 왜구의 피해를 입어 거의 폐사되었다고 세종 때 효령대군의 후원을 받아 다시 중건되었다.

조선후기 지역유지들의 후원을 받아 크게 중건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으며, 당시 사찰을 중건하면서 세운 사적비(보물 1396호)가 경내에 남아 있다. 대웅전을 비롯하여 웅진전, 삼성각, 만령루 등의 여러 전각들이 있는데 대부분 조선후기 이후 중건된 것들이다. 만경루를 비롯하여 경내에서 내려다 보이는 강진만의 경치가 아름다우며, 백련사에서 다산초당으로 이어지는 산길에 조성된 동백나무숲이 천년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정약용은 강진 유배시절에 다산초당에서 가까운 이 곳을 자주 들러 차를 마시고 백련사 주지와 교류를 했다고 한다.

SANYO DIGITAL CAMERA강진 백련사. 고려중기 백련결사운동을 이끌었던 유서깊은 사찰로 강진만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만덕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경사진 지형에 축대를 쌓고 조성한 형태의 가람배치로 영주 부석사 등에서 볼 수 있는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백련사 강당건물인 만경루. 앞면 5칸의 상당히 큰 규모의 누각형태로 강진만 경치를 감상하면서 쉴 수 있는 공간이다.

SANYO DIGITAL CAMERA사찰 경내에서 본 만경루.

SANYO DIGITAL CAMERA만경루 옆에서 내려다 보이는 강진만 바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웅전이 있는 사찰 경내. 만경루를 들어서면 정면에 주불전인 대웅전이 있고 왼쪽을 여러 불전들이, 마당 양쪽으로 요사채들이 배치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백련사 주불정인 대웅전. 조선후기에 지어진 건물로 앞면 3칸에 다포계 공포를 사용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대웅전 현판. 다포계공포와 겹처마를 하고 있는 건물로 화려한 단청으로 장식하고 있다. 현판 양쪽에 용머리 장식을 달았다.

백련사 대웅전
백련사는 만덕산에 위치하고 있어 조선후기인 19세기에는 만덕사로 불려졌다. 백련사는 신라말에 창건되었다고 전하나 확실하지 않다. 고려 1232년에 원묘국사 요세(1163~1245)가 이곳에 보현도량을 개설하고 백련결사를 일으켰다. 대웅전은 팔작지붕의 단청이 화려한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식 건물이며, 1762년에 건립되었다. 각 추녀마다 활주를 세워 건물을 받치고 있으며, 건물 전면 2개의 주두에 용머리 조각을 장식하였다. 대웅 내부에는 조선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목조 여래삼존상이 봉안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대웅전에는 중앙에 본존불인 여래상과 좌우에 보살상을 봉안하는데, 백련사의 경우에는 보살상 없이 여래삼존상만 봉안하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안내문, 강진 백련사,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대웅전 옆에 있는 명부전.

OLYMPUS DIGITAL CAMERA명부전 옆에는 응진전과 천불전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웅전 오른쪽에 위치한 삼성각.

OLYMPUS DIGITAL CAMERA대웅전 앞 마당 왼쪽에 있는 요사채. ‘ㄱ’자 형태의 건물로 만경루와 함께 강진만 바다 경치를 감상하기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백련사를 찾은 손님들이 머무는 공간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안쪽에 있는 요사채

SANYO DIGITAL CAMERA마당 오른쪽에 있는 소박한 모습의 요사채. 승려들이 거처하는 공간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마당 한쪽편에 있는 백련사 사적비(보물 1396호). 고려중기에 조성된 원묘국사비를 받치고 있던 거북받침돌 위에 조선후기 지역 유력자들이 백련사를 중건한 내력을 기록한 비석을 올려 놓았다.

SANYO DIGITAL CAMERA백련사 아래 연못과 오래된 고목.

SANYO DIGITAL CAMERA백련사에서 정약용이 유배생활을 했던 다산초당으로 가는 길. 동백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출처>

  1. 안내문, 강진 백련사,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9년

여수 향일암, 일출이 아름다운 남해안 관음성지

전남 여수시 돌산읍 율림리 금오산에 있는 향일암이다. 삼국시대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작은 암자로 임진왜란 때 승병들이 머물렀던 곳이라고 한다. 사찰의 이름은 책륙암, 영구암 등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조선후기 숙종 때 인묵대사가 현 위치로 옮기면서 일출경관이 빼어나 향일암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남해 보리암, 강화 보문사, 양양 낙산사와 함께 대표적인 관음신앙 성지로 여겨지는 곳이다. 전각들은 최근에 중건한 것으로 대웅전, 용왕전, 관음전과 삼성각이 있었는데 지금은 삼성각을 제외하고는 관음보살을 모신 관음전과 원통보전으로 바뀌었다.

여수 돌산도 끝자락 금오산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암자로 바위산 중턱에 들어선 불전들과 그 앞에서 내려다 보이는 바다풍경이 인상적인 곳이다. 금오산(해발 323 m) 그리 높지 않은 산으로 거북 형상을 하고 있으며, 주변 바위들 또한 거북 등껍질 무늬를 가지고 있다 한다. 역사적 내력이나 전각 등은 큰 의미가 없지만 일출과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경관이 빼어나 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광명소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여수 향일암 관음보살입상. 남해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세워진 불상으로 이곳이 관음성지임을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여수 돌산도 끝자락에 위치한 금오산(해발 323 m). 기암괴석과 동백나무를 비롯하여 아열대성 상록수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향일암 아래 작은 어촌마을인 임포마을. 마을에서 언덕길을 10여분 걸어 오르면 향일암을 찾아갈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향일암을 오르는 계단길. 상록수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는 남해안 특유의 숲길을 걸을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향일암 아래 숲길.

OLYMPUS DIGITAL CAMERA향일암 입구. 좁은 바위틈을 통해 사찰 경내로 들어갈 수 있다. 향일암을 대표하는 장면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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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틈새에 만든 좁은 통로.

OLYMPUS DIGITAL CAMERA향일암 경내로 들어서면 첫번째로 볼 수 있는 관음전. 향일암에는 관음보살을 보신 관음전을 상.하 두곳에 두고 있는데 이 불전은 아래쪽 관음전. 1986년에 지어진 것으로 2009년 화재때 소실을 면했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관음전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향일암에서 내려다 보이는 남해바다. 해가 뜨는 동쪽을 향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향일암 주불전인 원통보전. 석가모니를 모신 대웅전이 있었는데, 2009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새로 중건할 때 관음보살을 모시는 원통보전으로 바뀌었다. 향일암은 관음성지임을 강조하기 위해 원통보전 외에도 상.하 관음전을 별도로 두고 있는데 일반적인 가람배치는 아닌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원통보전 뒷편 삼성각.

OLYMPUS DIGITAL CAMERA사찰 안쪽에 위치한 요사채

OLYMPUS DIGITAL CAMERA윗쪽 관음전을 오르는 길 앞에 있는 고목.

OLYMPUS DIGITAL CAMERA윗쪽 관음전을 오르는 길 입구.

OLYMPUS DIGITAL CAMERA향일암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관음전으로 오르는 길.

OLYMPUS DIGITAL CAMERA윗쪽에 위치한 관음전. 향일암에서 사실상 주불전에 해당하는 곳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관음전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관음전 앞 좁은 마당.

OLYMPUS DIGITAL CAMERA마당에서 내려다 보이는 남해바다. 이곳에서 보는 일출장면이 유명한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향일암에서 내려다 보이는 임포마을

OLYMPUS DIGITAL CAMERA임포마을 앞 선착장 주변

OLYMPUS DIGITAL CAMERA향일암 아래 갯바위

향일암, 전남 여수시 돌산읍 율림리
향일암(向日庵)은 백제 의자왕 4년(644)에 신라 원효대사께서 창건 원통암이라 칭하였고 그 후 윤필대사께서 수도하면서 금오암이라 개명하였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는 승군의 본거지이기도 하였으며 숙종 41년(1715) 인묵대사께서 현 위치로 이건하고 향일암이라 개칭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안내문, 여수 향일암, 2012년)

<출처>

  1. 안내문,여수 향일암, 2012년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9년

여수 영취산 흥국사, 전라좌수영과 함께 했던 호국사찰

전남 여수시 중흥동 영취산 자락에 있는 사찰인 흥국사이다. 고려중기 불교개혁을 이끈 지눌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호국의 염원을 담아 흥국사라 이름지어졌던 남해안 변방의 작은 사찰이었다. 고려말 왜구의 침입과 조선초 불교 탄압으로 폐허화 되었던 것을 조선중기 명종 때 법수화상이 중창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이끌고 참전하면서 전라좌수영의 지원을 받아 호국사찰로 자리매김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중기 인조 때 계측대사가 사찰을 크게 중창하면서 600여명의 승려가 상주하는 큰 사찰로 변모하였다. 대웅전(보물 396호)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불전과 요사채 등이 이 시기에 지어진 것들이다. 흥국사는 구한말까지 전라좌수영과 연계하여 승병체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전국의 승병들과 연계한 조직체제를 갖추고 있었으며 조선후기 산성 축성의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흥국사 홍교를 비롯하여, 선암사 홍교와 벌교 홍교에서도 당시 승려들의 토목기술 수준을 잘 살펴볼 수 있다. 승병들이 기거하면서 수행활동을 했던 곳으로 조선후기 불교문화와 사회적 위치를 잘 보여주는 사찰이라 할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여수 흥국사. 조선후기 전라좌수영과 연계하여 600여 명이 넘는 많은 승병들이 머물면서 수행했던 전형적인 호국사찰이다. 흥국사에는 대웅전(보물 396호), 홍교(보물 563호), 대웅전 목조석가여래삼존상(보물 1550호), 대웅전 후불탱화(보물 578호) 등 많은 문화재들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들어가는 길

흥국사는 여수시 입구 여천공단에 뒷편 영취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화학공장들이 자라잡고 있는 공단지역으로 주택이나 마을이 거의 없지만, 흥국사 계곡으로 들어서면 조용한 숲속길과 계곡이 어울져 있다. 이곳에는 원래 성벽과 성문인 공북루가 있었다고 하며, 승병들이 토목기술을 보여주는 현존하는 가장 큰 규모의 홍교(보물 563호)가 사찰 입구에 세워져 있다. 홍교를 지나면 흥국사 중창을 기념하여 세운 사적비가 세워져 있으며 작은 개울 돌다리를 천왕문이 있다. 천왕문 안쪽에는 신도들을 대상으로 법회를 열거나 신도들이 잠시 쉴 수 있는 강당 건물인 봉황루가 있는데 다른 사찰에 비해 그 규모가 상당히 큰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사찰 입구 계곡에서 볼 수 있는 홍교(보물 563호)이다. 아치형 돌다리인 홍교로 아치의 높이가 가장 가장 높고 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진왜란 이후인 인조 17년(1639) 흥국사를 중건할 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홍교에서 내려다 본 흥국사 계곡. 화학공장이 즐비한 공단에 위치하고 있지만, 계곡이 깊고 숲이 우거졌다. 계곡 옆에는 이곳에 식당들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구조물들이 남아 있다. 한때는 북적거리던 행락지였음을 알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홍교를 지나서 숲길을 걸어가면 볼 수 있는 흥국사 입구. 개울을 건너는 돌다리가 천왕문 앞에 놓여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흥국사 사적비. 조선중기 흥국사가 크게 중창된 이후 그 내력을 새겨놓은 비석이다.

흥국사 중수 사적비, 1703년(숙종 29년)
흥국사의 창건과 중수 등에 대해 기록한 사적비로서 비문은 당대의 명문장인 최창대가 지었으며, 비문을 쓴 이 역시 당대 명필이었다. 비문에는 창건자 지눌과 무의자 담당과의 관계, 송광사가 세워진 직후 흥국사가 창건되었다는 사실, 1560년(명종 15년) 법수화상에 의해 사찰 건물 1천여간이 증축되었다는 것, 1624년(인조2년) 계특의 대대적인 사찰 중건의 사실, 통일의 법당 개축사실 등 흥국사의 사적들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중수비 뒷면에는 정동호가 지은 발문을 문세욱이 썼는데, 흥국사의 창사와 중건과정에서 공로를 세운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다. 보조국사가 흥국사를 창건한 이래 조선에 들어와 임진왜란을 겪으며 온갖 고충을 극복하며, 약 470년 동안 중건한 승려들을 높이 평가한 내용이다. 바로 이어서 중건 과정에서 협조한 김덕항을 비롯한 약 140명의 명단이 적혀 있다. 중건과정에 도움을 준 지방관과 중앙정계의 인물, 관련 승려, 여성을 포함한 신도, 석동들의 명단까지 기록되어 있어서 당시 중수비의 건립 과정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안내문, 여수 흥국사, 2012년)

OLYMPUS DIGITAL CAMERA흥국사 입구에 세워져 있는 고승들의 부도.

OLYMPUS DIGITAL CAMERA흥국사 출입문인 천왕문.

OLYMPUS DIGITAL CAMERA천왕문을 들어서면 상당히 큰 규모의 강당 건물인 봉황루를 볼 수 있다. 앞면 5칸의 상당히 큰 규모의 건물로 조선중기 흥국사가 중건될 때 세워졌으며, 현재의 건물은 1925년에 고쳐졌다.

OLYMPUS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봉황루. 강당은 법회를 여는 공간이지만 좌수영 객사인 진남관처럼 승병들이 회의 등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대웅전 영역 사이 중문을 두고 있어 분리되어 있는 느낌을 주고 있다. 아마도 유생들이었던 지방 관료들이 이곳을 방문했을 때 머물수 있도록 고려한 것으로도 보인다.

대웅전 영역

주불전인 대웅전이 있는 공간은 전형적인 조선후기 사찰의 공간배치를 볼 수 있다. 석가삼존불을 모신 대웅전을 중심으로 양쪽에 요사채인 심검당과 적묵당이 배치되어 있다. 대웅전은 다포계 공포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전형적인 불전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양쪽 요사채는 승병들이 기거했던 사찰답게 상당히 큰 규모를 하고 있다. 반면에 사리를 모신 석탑은 두지 않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흥국사 대웅전 영역

OLYMPUS DIGITAL CAMERA대웅전 영역을 출입하는 중문인 법왕문. 강당이 있는 영역과 공간적으로 분리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주불전인 대웅전(보물 396호). 조선중기 인조 2년 흥국사가 중건될 때 새로 지어졌는데 동시대를 대표하는 불전 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화려하면서도 장엄한 분위기를 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웅전 내부. 석가삼존불(보물 1550호)를 모시고 있으며 뒷면는 영산회상을 표현한 후불탱화(보물 578호)가 있다. 불단 위에는 닫집을 두어 장엄함을 더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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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국사 대웅전 관음보살 벽화(보물 1862호), 한지에 그림을 그려 벽에 붙여 만든 첩부벽화이다. 17세기 불화의 특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응전 앞 석등. 거북이 등에 석등이 올려져 있는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다. 중생이 깨달음을 얻어 극락정토를 향해 타고 가는 배라는 의미를 표현하고 있다. 전라좌수영과 연계된 흥국사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유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승려들이 기거하는 요사채인 적묵당.  조선중기 흥국사가 중창될 때 처음 1624년에 세워 졌으며, 현재의 건물은 1895년에 중수되었다.  앞면 4칸 규모의 상당히 큰 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심검당, 1645년 중건될 때 세워졌으며, 현재의 건물은 1895년에 중수되었다. 일반적인 요사채는 보통 낮은 지붕에 한옥의 형태를 하고 있는데 반해 흥국사 요사채는 맞배지붕을 하고 있으며, 불전처럼 크고 웅장한 건물 형태를 하고 있다. 이는 많은 승려들을 수용할 수 있도록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범종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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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국사 동종(보물 1556호), 조선중기 사인비구에 버금가는 역량을 지녔던 김애립이 1665년에 조성한 종이다.

불전과 요사채 등

흥국사에는 조선중기 이후 크게 번창한 호국사찰로 그 특징을 보여주는 여러 불전들을 두고 있다. 옛 대웅전 건물의 부재들을 활용하여 지은 팔상전을 비롯하여, 수행하는 승려들을 상징하는 웅진전, 역대 고승들의 영정을 모셨던 불조전, 전란을 통해 죽은 승려들이나 신도들을 위한 지장보살을 모신 무사전과 남해안이라는 지역적 특성을 잘 보여주는 관음보살을 보신 원통전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웅전 옆에 위치한 무사전. 지장보살을 모신 불전으로 보통 지장전이라 부르는데 죽은이의 명복을 비는 공간이다. 다른 사찰에 비해 그 규모가 작은 것은 그 내력이 오래되었기 때문으로 승병들을 비롯하여 임진왜란 때 희생된 이들을 위해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무사전에 모셔진 목조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보물 1566호). 조선중기 인조 때 조각상들이 참여하여 조성한 작품으로 지장보살 삼존상과 시왕.권속들을 표현한 21점의 불상들과 발원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 대웅전 뒷편에 위치한 팔상전. 조선중기 인조 때 흥국사를 크게 중창할 때 옛 대웅전 건축자재를 사용하여 지었다고 한다. 현재의 건물은 최근에 크게 수리한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팔상전 옆 웅진전. 흥국사는 많은 승병들이 수행하면서 거처했던 사찰로 석가모니의 제자를 모신 웅진전을 중요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수 흥국사27-20190531흥국사 십육나한도(보물 1333호), 조선후기 십육나한도의 본보기가 되었던 작품이라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웅전 뒷편에 위치한 불조전. 역대 고승들의 영정을 모신 공간으로 보통 조사당이라 부르는 불전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불조선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적묵당 뒷편 백련사. 앞면 3칸, 옆면 3칸의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상당히 큰 규모의 요사채이다. 양쪽에 툇마루를 두고 있는데 이곳을 찾은 손님들을 위한 공간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백련사 뒷편에 위치한 선방이 해동선관. 양반들이 살았던 전통 한옥의 모습을 하고 있는 건물로 흥국사 주지 등 고위층 승려가 머무는 공간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흥국사 전경. 진달래가 유명한 영취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상당히 큰 규모의 사찰이다.

여수 흥국사26-20190531흥국사 노사나불괘불탱(보물 1331호), 18세기 화승 비현이 참여해 그린 그림으로 색채가 선명하고 아름다우며 장식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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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국사 수월관음도(보물 1332호), 18세기 최고 화승 의겸이 그린 그림으로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손꼽힌다.

  1. 안내문,여수 흥국사, 2012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9년

순천 조계산 송광사(사적 506호), 고려중기 불교개혁 이후 한국 불교를 이끌어 온 승보사찰

전남 순천시 조계산 자락에 위치한 송광사(松廣寺, 사적 506호)이다. 양산 통도사, 합천 해인사와 함께 3대사찰로 여겨지며 수행을 중시하는 승보사찰로 불리우고 있다. 이곳에는 통일신라 때 창건된 길상사라는 작은 사찰이 있었는데, 고려중기 보조국사가 불교개혁 운동인 정혜결사의 중심지로 삼으면서 송광사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통일신라 때 창건된 유서깊은 사찰에서 볼 수 있는 석탑이나 불상같은 조형미가 뛰어난 불교 예술품들은 많지 않은 반면, 고승들의 영정을 모신 국사전을 비롯하여 고려 이후 불교 관련 유물들을 많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송광사는 크고 작은 불전들이 불전이 있기는 하지만 그 규모가 크거나 유서깊은 내력을 가진 불전은 많지 않다. 반면에 승려들이 수행하는 공간인 승방이나 요사채가 상당히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송광사를 대표하는 국사전(국보 56호)도 원래는 승려들이 수행하는 공간이었으며, 고려말 건축양식이 잘 남아 있는 하사당(보물 263호) 또한 승려들이 수행했던 공간이다. 전성기 때 송광사에는 많은 승방들과 사찰 관련 일을 보던 사람들이 살던 건물들로 아주 큰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고 한다. 송광사의 많은 전각들은 1842년의 화재와 한국전쟁 등으로 많이 소실되기는 했지만, 여러차례 중창을 통해 옛규모를 찾아가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송광사는 조계산 계곡 내 비교적 평탄한 곳에 자리잡고 있다. 가운데 대웅전을 비롯한 부처님을 모신 불전이 있으며 그 주위로 수행공간들이 고루 배치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송광사 가람배치 모형. 남향을 하고 있지만 축대를 쌓아 공간을 조성하여 질서를 추구하는 전통적인 사찰 가람배치와는 달리 동.서로 흘러내리는 계곡을 중심으로 전각을 배치하여 편안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주고 있다. 입지조건이나 가람배치 등에 있어 수행중심 공간으로서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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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규장각에서 소장하고 있는 송광사지도. 19세기 전반에 그려진 이 지도는 <송광사사적>에 실려있는 가람배치도이다. 조선후기에는 많은 전각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송광사 뒷편 언덕에 있는 보조국사 감로탑. 고려중기 불교개혁 운동을 이끈 보조국사 지눌의 승탑이다. 조형미가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불교역사에서 차지하는 지눌의 승탑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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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세 보조국사 지눌(1158 ~ 1210) 영정.

국사는 황해도 서흥 출신으로 성은 정씨고, 자호는 목우자이다. 8세 때 종휘선사에게 출가하였다. 길상사에서 정혜결사 운동을 하며 불교계의 중흥을 이끌었고, 산 이름을 조계산, 절 이름을 수선사로 고쳤다. 진영 상단에 ‘원력수행해동불일보조국사’라고 적혀 있다. 이를 통해 원력수생, 즉 대승보살행에 힘썼음을 알 수 있다. 하단의 화기를 통해 1780년 16국사의 진영을 완성하여 영당에 모셨음을 알 수 있다. 국사의 탑은 송광사 관음전 뒤에 모셔져 있다. (안내문, 송광사박물관, 2018년)

송광사
조계산 북서쪽 자락에 자리잡은 송광사는 우리나라 삼보사찰의 하나인 승보종찰(僧寶宗刹)의 근본도량으로서, 한국불교와 역사를 함께해온 유서 깊은 고찰이다. 송광사는 신라 말 혜린선사에 의해 창건되어 송광산 길상사라고 하였다. 고려 중기의 고승 보조국사 지눌스님이 9년 동안의 중창불사를 통해 절의 규모를 확장하고, 정혜결사를 통하여 한국 불교의 새로운 전통을 확립한 근본도량으로서 참선을 중요시하는 선종사찰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이후 보조국사 지눌을 포함해 16분의 국사가 주석했던 선종사찰로, 오늘날까지도 승보종찰로 불리는 한국의 대표적 선종사찰로 여겨지고 있다. 그 동안 정유재란 및 임인년(헌종 8년, 1842년)의 대화재, 6.25사변 등 숱한 재난을 겪었으나 8차례의 대규모 중창불사로 지금의 위용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송광사는 한국에서 가장 많은 불교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는 사찰로 목조삼존불감(국보 42호), 고려고종제서(국보 43호), 국사전(국보 56호), 금동요령(보물 179호), 하사당(보물 263호) 소조사천왕상(보물 1467호) 등을 비롯해 총 8천여점의 불교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안내문, 순천 송광사, 2018년)

들어가는 길

송광사는 입구에서 일주문까지 계곡을 따라 이어진 숲길을 걸어서 들어 갈 수 있다. 들어가는 길은 수목이 우거지고, 옆으로는 계곡물이 흘러내리는 고즈넉하고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주는 길로 사찰 들어가는 길 중에서 손꼽히게 아름다운 길이다. 일주문은 사찰을 출입하는 통로인 삼청교 앞에 세워져 있으며, 사찰 앞을 흐르는 개울이 송광사와 속세와 분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개울 바깥쪽에는 세속적인 의미를 갖는 공간인 세월각과 척주당이 배치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송광사 입구 매표소. 원래부터 사찰에 있던 공간은 아니다.

OLYMPUS DIGITAL CAMERA송광사 들어가는 길. 계곡을 따라 10여분을 걸어갈 수 있는 길로 울창한 숲과 계곡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송광사 계곡.

OLYMPUS DIGITAL CAMERA송광사 경내 입구. 멀리 첫번째 출입문인 일주문이 보이고, 주변에 당간지주, 비석 등이 세워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송광사 조계문. 일주문은 보통 매표소 부근에 위치있는데 송광사에서는 천왕문을 들어가기 직전에 위치하고 있다. 19세기 초에 지은 것으로, 사찰 일주문 중에서는 꽤 오래된 편이다. 양쪽에 담장이 있는 것도 특이하다.

OLYMPUS DIGITAL CAMERA조계문 안쪽에 있는 작은 사당 형태의 건물인 세월각과 척주당. 토속신앙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며, 사찰영역 바깥쪽이라 할 수 있는 계곡 바깥쪽에 위치하고 있다.

세월각.척주당, 19세기초
일주문 안쪽에 죽은 자의 위패를 두고 그 영혼이 속세의 때를 벗는 관욕처(관욕: 불교에서 재를 올릴 때 영혼을 정화하는 일)로 세월각과 척주당이 있다. 이곳에서는 혼백을 목욕시켰으며, 세월각은 여자 영가, 척주당은 남자 영가의 관욕처로 사용되었다. 정면 1칸, 측면 1칸 규모로 작은 건물이다. 두 건물의 내부는 비어 있다. (안내문, 순천 송광사, 2018년)

삼청교와 우화각 주변

송광사에 경치가 가장 아름다운 장소를 꼽으라고 하면 아마도 천왕문 앞 홍예가 설치된 다리인 삼청교 주변일 것이다. 삼청교는 홍예 형태로 쌓은 돌다리로 건축수법이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그 아래로 흐르는 계곡과 주위 건물들이 어우러져 하나의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내기 때문일 것이다. 삼청교를 건너면 사찰 출입문인 천왕문이 있으며 왼쪽에는 요사채인 임경당이, 오른쪽에는 강당건물인 사자루가 배치되어 있다. 두 건물 모두 신도들을 위한 공간으로 여겨진다.

OLYMPUS DIGITAL CAMERA송광사를 대표하는 장면으로 손꼽히는 삼청교 주변. 사찰이라기 보다는 선비들이 경치좋은 곳에 세워 풍류를 즐겼던 정자같은 분위기를 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사찰 경내 출입문인 천왕문 앞 개울에 세워진 돌다리. 그 위에 지붕이 있는 건물을 올려 정자같은 분위기를 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돌다리 위에 세워진 건물인 우화각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삼청교 위쪽으로는 신도들이 잠시 쉴 수 있는 강당 건물인 사자루가 있다. 강당은 대웅전 앞에 문루 형태로 세우는 것이 보통인데, 송광사에서는 천왕문 오른편에 강당을 배치하고 있다. 앞면 7칸의 상당히 큰 규모의 건물로 계곡 옆에 기둥 세우고 건물을 올렸다. 물 위에 떠 있는 느낌을 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사자루. 원래는 신도들이 잠시 앉아 쉬거나 강론을 듣는 공간인데, 지금은 평상시 문이 닫혀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삼청교 아래쪽에 위치한 요사채인 임경당. 계곡으로 돌출된 누마루를 두고 있는 상당히 고급스러운 건물이다. 선비들이 즐기던 정자와 같은 형태를 하고 있는 건물로 이곳을 찾은 고위 인사들의 숙소로 지어진 건물로 여겨진다.

OLYMPUS DIGITAL CAMERA경내를 출입하는 천왕문. 내부에는 소조사천왕상(보물 1467호)이 모셔져 있다. 사천왕상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복장유물(보물 1468호)가 발견되었다.

대웅전을 비롯한 여러 불전들

송광사는 고려중기 이후 수행도량으로 한국 불교를 이끌어온 사찰이다. 그러나 사찰의 명성이나 내력, 규모 등에 비해 불전의 규모는 크지 않은편이며 오래된 내력을 보여주지도 않고 있다. 대웅전 앞 작은 불전인 약사전(보물 302호), 영산전(보물 303호)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최근에 중창되었으며, 그 규모 또한 크지 않은 편이다. 불전들은 대웅전을 중심으로 양쪽에 승보전과 지장전, 앞쪽에 약사전과 영산전, 뒷편에 관음전이 배치되어 있다. 불전의 공간배치에 있어 규칙성은 거의 없는 편이며, 당시의 필요에 따라 불전들이 자연스럽게 추가된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웅전이 있는 공간으로 들어서는 문루형태의 출입문인 범종각. 일반적인 사찰의 공간배치와는 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송광사 주불전인 대웅보전. 최근에 크게 중창한 불전으로 현대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평지보다 약간 높게 기단을 조성하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렸다. 웅장함을 크게 강조하지 않는 수행사찰로서 특징을 잘 보여주는 형태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웅전 왼쪽편에 있는 승보전. 원래 대웅전으로 사용하던 건물로 현재의 대웅전을 크게 중창하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석가모니를 비롯하여 나한, 비구 등을 모시는 불전으로 승보사찰인 송광사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불전이다. 나한전과 비슷한 성격의 불전으로 볼 수 있다.

송광사 승보전
승보사찰인 송광사를 상징하는 승보전에는 부처님 당시에 영축산에서 설법하시던 장엄한 모습을 재현하여 부처님과 10대제가, 16나한을 비롯한1250몀의 스님을 모신 전각이다. 이 건물은 한국전쟁 당시 소실된 대웅전을 송광사 7차 중창 당시에 복원하면서 지어졌으나 송광사 8차중창때 현재의 대웅보전을 지으면서 지금의 위치로 옮긴 것이다. (안내문, 순천 송광사,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대웅전 오른쪽에 위치한 국사전.

OLYMPUS DIGITAL CAMERA대웅전 마당 한쪽편에 있는 약사전(보물 302호)과 영산전(보물 303호). 공간을 분리하는 담장은 없지만 대웅전 영역과는 독립된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송광사 약사전(보물 302호).  앞면과 옆면이 각 1칸씩으로 현존하는 불전 중 가장 작은 규모이다.  건물 형태 등으로 볼 때 17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송광사 영산전(보물 303호). 석가모니의 일생을 그린 팔상도와 영산대회 그림(보물 1368호)를 모시고 있다. 기록에 따르면 조선 중기 인조 때(1639년)에 지어졌으며 그후 여러차례 수리가 있었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송광사 관음전. 구한말 왕실 기도처로 지어진 건물로 지금은 관세음보살을 모신 관음전으로 사용하고 있다. 구한말 건축양식이 잘 반영되어 있는 건물이다.

송광사 관음전
관음전은 본래 성수전(聖壽殿)이라 하여 1903년 고종황제의 성수망육(51세)을 맞아 임금이 이름을 지어서 편액을 내린 황실 기도처로 건축되었으나 1957년 옛 관음전을 해체하면서 관세음 보살님을 옮겨 모시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관세음보살 좌우에 그려진 태양과 달이고종황제와 명성황후를 상징하고 있고 내부 벽화에 문신들이 허리를 굽히고 불단을 향해 서 있다. 또한 내외벽에는 화조도, 산수화 등이 그려져 일반 사찰의 벽화와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것이 송광사 관음전의 특징이다. (안내문, 순천 송광사, 2018년)

국사전을 비롯한 수행공간

송광사는 수행도량이라는 사찰의 성격에 걸맞게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크고 작은 요사채 건물들을 두고 있다. 대웅전 뒷편 언덕에 고승들의 영정을 모신 국사전(국보 56호)를 중심으로 하사당(보물 263호), 상사당, 응진당, 시자실, 설법전 등 유서깊은 요사채 건물들이 모여 있는데 이 공간은 담장으로 공간이 분리되어 있어 수행을 위한 독립적인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이외에도 대웅전 서쪽으로 대지전, 중현당,도성당,응향각,응현당 등 많은 요사채 건물들이 있으며 사찰 바깥으로도 여러동의 요사채 건물들을 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송광사 대웅전 뒷편 언덕에는 국사전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요사채들이 모여 수행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순천 송광사 국사전 국보56호 02-20181219송광사 국사전(국보 56호). 고려말 승방으로 지어진 건물로 지금은 고승들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 건물은 앞면 4칸, 옆면 2칸 규모로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지붕을 받치는 공포는 주심포계인데, 고려말 주심포에서 익공형으로 바뀌어가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대웅전 뒷편으로 보이는 설법전.

OLYMPUS DIGITAL CAMERA국사당과 함께 승보사찰로서 송광사의 위상을 잘 보여주는 건물인 하사당(보물 263호)이다. 송광사의 많은 요사채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건물은 앞면 3칸에 맞배지븡을 하고 있는데, 부엌 위에 환기구를 두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국사당과 함께 조선초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당시 승려들이 수행했던 공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웅전 뒷편 언덕에서 내려다 보이는 수행공간. 하사당, 상사당, 응진당, 시자실, 설법전, 수선사 등 승려들이 수행하는 크고 작은 승방 건물들이 모여 독립된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하사당 뒷편 우물.

OLYMPUS DIGITAL CAMERA지장전 뒷편 수행공간을 들어가는 출입문.

OLYMPUS DIGITAL CAMERA지장전 뒷편에 있는 요사채인 해청당.

OLYMPUS DIGITAL CAMERA영산전 앞쪽에 모여 있는 요사채들. 정혜사를 비롯하여 여러동의 요사채들이 모여 있다. 강당인 사자루와 함께 송광사를 찾은 손님들을 위한 공간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약사전 앞 마당에 있는 2칸짜리 작은 요사채 건물.

OLYMPUS DIGITAL CAMERA승보전 뒷편에 모여 있는 요사채들. 국제선원으로 사용하고 있는 공간이라 한다.

SANYO DIGITAL CAMERA바깥쪽에 있는 큰 규모의 요사채

OLYMPUS DIGITAL CAMERA송광사의 명소 중 한곳인 해우소 건물.

OLYMPUS DIGITAL CAMERA송광사에 많은 승려들이 머물면서 수행했음을 보여주는 유물인 비사리구시. 사찰에서 큰 행사가 있을 때 찾은 손님들을 위해 밥을 담아두는 곳이다. 약 4천명 분의 밥이 들어간다고 한다.

비사리구시
송광사 비사리구시는 1724년 남원에서 태풍에 쓰러진 싸리나무를 옮겨와 만들어 졌다고 하나 사실은 보성군 문덕면 내동리 후곡(너문골) 봉갑사 인근 마을의 느티나무(귀목)이다. 그 쓰임새는 국가 제사시에 대중을 위해 밥을 담아 두는 것으로, 쌀 7 가마(4천명 분)의 밥이 들어간다고 한다. 송광사 이외에도 비슷한 용도를 지닌 구시가 있으나 많은 사찰들에서는 종이를 만드는 일에 지통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상광사의 경우에는 여러 근거로 지통이 아니라 밥통이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송광사 3대 명물로 비사리구시, 능견난사, 쌍향수가 있다. (안내문, 순천 송광사, 2018년)

<출처>

  1. 안내문, 송광사박물관, 2018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대백과,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19년

영주 태백산 부석사, 통일신라 화엄십찰을 대표하는 사찰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에 있는 부석사(浮石寺)이다. 백두대간 태백산 끝자락 봉황산에 자리잡고 있다. 삼국이 통일되던 676년 의상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통일신라 주류였던 화엄십찰을 대표하는 사찰이다. 부석사가 있는 풍기 지역은 깊은 산중도 아니면서 산물이 풍부하고 죽령을 오가는 주요 교통로와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어 오랫동안 사찰이 유지된 것으로 보인다.

부석사는 봉황산 중턱에 거대한 돌로 석축을 쌓아서 터를 조성하였으며 그 위에 건물들을 올려 놓았다. 주불전인 무량수전과 그 앞 안양루에 올라서면 아래에서 보이는 편안한 모습은 풍경과는 달리 상당히 웅장하면서도 날아갈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된다. 무량수전(국보 18호)와 조사당(국보 19)는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목조 건축물이다. 통일신라 때의 전형적인 쌍탑식 가람배치와는 달리 무량수전 동쪽편 언덕에 삼층석탑이 세워져 있으며, 무량수전에 모셔진 불상도 동쪽을 향하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조사당은 무량수전 뒷편 언덕에 위치하고 있는데 내부에는 가장 오래된 불전 벽화(국보 46호)가 있었다. 부석사는 고려시대에 크게 번창한 수덕사, 봉정사 등 오래된 국보급 불전 건물이 있는 사찰들과 비슷한 가람배치를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영주 부석사. 백두대간 태백산 자락인 봉황산(818 m) 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무량수전이 있는 사찰 중심 영역은 거대한 돌로 석축을 쌓아 조성했으며, 그 앞에 안양루라는 누각을 세워 놓았다. 마치 봉황이 날아오르려는 형상을 하고 있다.

들어가는 길

부석사는 봉황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지만 들어가는 길은 평판한 편이다. 일주문을 지나서 걸어가는 호젓한 길은 가을 은행나무의 노란색과 더불어 가을 분위기를 물씬 풍겨주고 있다. 길 양쪽에 있는 주렁주렁 매달린 사과 과수원의 사과와 함께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게 해 준다. 봄에는 활짝핀 사과꽃 풍경을 만끽할 수 있는 상당히 아름다운 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부석사 주차장에서 일주문이 있는 입구로 들어가는 길.

OLYMPUS DIGITAL CAMERA부석사 일주문. ‘태백산 부석사’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봉황산 자락에 있지만 태백산의 한 줄기임을 강조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부석사 들어가는 은행나무길.

SANYO DIGITAL CAMERA은행나무길 아래로 보이는 사과나무밭.

OLYMPUS DIGITAL CAMERA초겨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일주문을 지나 부석사 오르는 길에 볼 수 있는 당간지주(보물 255호).

OLYMPUS DIGITAL CAMERA멀리 보이는 천왕문.

SANYO DIGITAL CAMERA부석사의 실질적 출입문인 천왕문. 이 곳부터 단계별로 축대를 쌓아서 공간을 조성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천왕문이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쌓은 석축.

안양루 아래 공간

부석사는 천왕문에서 시작해서 9단(혹은 10단)으로 석축을 쌓아 가람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이는 사찰 가람배치에 불교 사상을 구현하기 위함이라 한다. 삼층석탑과 종무소가 있는 공간을 오르는 3단계 석축이 있고, 범종루을 오르는 3단계 석축, 안양루를 오르는 3단계 석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공적인 아름다움이 뛰어난 불국사 석축과는 달리 자연석을 쌓아서 만든 석축으로 자연스러우면서도 웅장한 조형미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공간에는 불전을 두지 않고 승려들이 수행하는 여러동의 요사채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SANYO DIGITAL CAMERA천왕문을 들어서면 보이는 풍경. 정면에 석축을 쌓아 조성한 2번째 공간이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부석사 2번째 출입문인 회전문.

OLYMPUS DIGITAL CAMERA회전 옆 석축과 그 위에 올려진 요사채 건물.

SANYO DIGITAL CAMERA회전문을 들어서면 보이는 풍경. 범종루는 3번째 축대를 쌓은 공간으로 오르는 출입문 역할을 한다. 범종루가 가람배치에 있어 중심을 잡아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범종루 아래 공간에 있는 2기의 삼층석탑. 인근 절터에 있던 것을 옮겨온 것으로 통일신라 말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삼층석탑 뒷편 종무소.

SANYO DIGITAL CAMERA범종루는 부석사에는 뛰어난 목조 건축물 중 하나로 손꼽힌다. 주위 경치를 감상하기 좋은 누각 형태의 큰 건물로 ‘봉황산부석사’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범종루는 입구쪽은 팔작지붕을, 반대편으로는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특이한 형태의 건물이다. 옆면 4칸으로 누각 건물 중에는 크고 웅장한 규모이다.

SANYO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범종루.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범종루 내부에는 법고(북) 등이 있으나 범종은 없다. 내부는 상당히 넓은 편이며 경치를 감상하기 좋은 곳이다.

SANYO DIGITAL CAMERA서쪽편에 있는 범종각.

SANYO DIGITAL CAMERA범종각 위쪽 축대 위에 있는 요사채인 선열당.

OLYMPUS DIGITAL CAMERA맞은편에 있는 응향각

OLYMPUS DIGITAL CAMERA윗쪽에 있는 장경각.

무량수전이 있는 중심영역

부석사의 중심 영역은 10번째 축대로 조성된 영역으로 아미타불을 모신 무량수전이 주불전을 자리잡고 있다. 그 앞에는 석등이 놓여 있으며, 삼층석탑은 동쪽편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이 공간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누각 건물인 안양루가 자리잡고 있다. 안양루에서 내려다 보이는 백두대간 산자락이 이어지는 풍경은 손곱히는 명장면 중의 하나이다. 무량수전은 고려말에 지어진 가장 오래된 건축물 중 하나로 배흘림 기둥 등 주심포계 목조건축물을 가장 잘 구현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무량수전 뒷편에는 창건 설화가 얽혀 있는 부석바위가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주불전이 있는 중심영역. 높은 축대 위에 조성된 공간을 무량수전과 안양루 외 건물은 두고 있지 않다.

SANYO DIGITAL CAMERA부석사 안양루. 주불전 영역을 출입하는 출입문이자 강당 역할을 하는 누각 건물이다. 안양루는 축대 아래에서 보면 웅장해 보이지만, 무량수전에서 보면 아담하며, 하늘로 날아오를 듯한 느낌을 주는 건물이다.

SANYO DIGITAL CAMERA무랑수전이 있는 공간을 만들고 있는 축대.

OLYMPUS DIGITAL CAMERA안양루를 지나면 보이는 장면. 부석사를 대표하는 문화재인 무량수전(국보 18호)와 석등(국보 17호)를 볼 수 있다. 부석사를 대표하는 장면 중 하나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무량수전은 아미타여래를 모시는 불전이다. 건물은 앞면 5칸, 옆면 3칸의 규모가 상당히 큰 건물이다. 배흘림 기둥을 사용한 주심포계 건물로 상당히 간결하고 안정감 있게 보이는 건축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 ’무량수전’이라는 현판은 중국식으로 적혀있다. 고려 공민왕이 썼다고 전해지는데, 공민왕은 원나라에 자란 사람으로써 원나라 양식으로 글을 썼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지붕을 받치는 주심포양식의 공포와 안정감 있게 보이는 배흘림기둥.

국보18호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14-20101021
무량수전에 모셔진 소조여래좌상(국보 45호)

OLYMPUS DIGITAL CAMERA무량수전 뒷편에 있는 부석바위. 의상대사가 부석사를 창건할 때 설화가 전해오는 바위이다.

부석(浮石)
신라 문무왕 1년(661) 의상 대사가 화엄학을 공부하기 위해 당나라에 갔을 때 의상대사를 연모한 선묘라는 여인이 있었다. 의상 대사는 중국 장안에 있는 종남산 지상사의 지엄삼장에게서 10년간 화엄의 도리를 배우고 깨달음을 얻은 후 귀국길에 올랐다. 뒤늦게 소식을 들은 선묘가 부두로 달려갔을 때 대사가 탄 배는 이미 사리지고 없었다. 선묘는 바다에 몸을 던져 용으로 변신하여 의상대사가 탄 배를 호위하여 무사히 귀국하게 하였다. 그 후 의상대사가 화엄의 도리를 널리 펴기 위하여 왕명으로 이곳 봉황산 기슭에 절을 지으려고 할 때, 이곳에 살고 있던 많은 이교도들이 방해하였다. 이때 선묘 신룡이 바위를 공중으로 들어 올리는 기적을 보여 이교도를 물리쳤다. 그리하여 이 돌을 ‘부석’이라 불렀으며 사찰이름을 ‘부석사’라 불렀다고 한다. 그 후 선묘 신룡은 부석사를 지키기 위해 석룡으로 변신하여 무량수전 뜰아래 묻혔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조선 영조 때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위아래 바위 사이에 약간의 틈이 있어 줄을 넣어 당기면 걸림 없이 드나들어 떠 있는 돌임을 알 수 있다”라고 적고 있다. (안내문, 영주 부석사,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무량수정 앞에 있는 안양루. 앞면 3칸의 크지 않은 누각건물로 축대 아래에서 보면 웅장해 보이지만, 무량수정 앞 마당에서는 아담해 보인다. 하늘로 날아오를 듯한 느낌을 주는 건물이다.

SANYO DIGITAL CAMERA안양루에서 내려다 보이는 범종루와 주변 공간. 그 너머로 백두대간에서 뻗어내려간 작은 봉우리들이 바다를 이루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부석사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해가 넘어가는 일몰장면.

SANYO DIGITAL CAMERA무량수전 동쪽편에 세워진 삼층석탑(보물 249호). 통일신라 초기에 세워진 석탑으로 비슷한 시기에 세워졌던 경주의 쌍탑식 석탑에 비해 규모가 작고, 불전 동쪽 언덕에 세워져 있다. 조형미는 양호한 편이고 매우 안정적인 느낌을 주고 있는 석탑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삼층석탑 앞에서 내려다 보이는 무량수전.

SANYO DIGITAL CAMERA안양루와 무량수전 앞 마당.

OLYMPUS DIGITAL CAMERA삼층석탑과 무량수전.

조사당을 비롯한 불전과 전각들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 초상을 모시기 위해 세워진 불전인 조사당(국보 19호)은 무량수전 동쪽 삼층석탑을 지나 숲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볼 수 있다. 조사당 바로 앞에는 의상대사 지팡이를 꽂은 곳에 핀 꼿인 어사화가 있으며, 동쪽편에는 사명대사가 수도했던 곳으로 유명한 취현암이 자리잡고 있다. 조사당을 지나면 응진전, 자인당과 함께 조그만 단하각이 자리잡고 있다. 삼성각은 무량수전 서쪽편 아래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장전은 범종루 동쪽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조사당(국보 19호)는 무량수전과 함께 고려말에 지어진 불전이다. 건물은 앞면3칸, 옆면1칸의 작은 건물로 맞배지붕과 주심포 양식을 사용하고 있다. 조사당 내부에는 고려시대 대표적 회화작품인 조사당 벽화(복제본)가 있다.

국보19호 영주 부석사 조사당 11-20151009조사당 벽화(국보 46호)

OLYMPUS DIGITAL CAMERA조사당 옆 사명대사가 머물렀다는 작은 암자.

OLYMPUS DIGITAL CAMERA웅진전은 부처님의 제자를 모신 불전으로 보통 사찰의 경우 대웅전 옆에 위치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부석사 웅진전은 무량수전 뒷쪽편 숲속에 자리잡고 있다. 자인당은 원래 스님들의 선방으로 사용했던 건물인데 인근 사찰터에서 옮겨온 삼존여래 좌상을 모시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자인당에 모셔진 북지리 석조여래좌상(보물 220호). 인근 절터에서 옮겨온 것으로 통일신라를 대표하는 비로자나불상이다.

SANYO DIGITAL CAMERA같이 모셔진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1636호). 인근 절터에서 옮겨온 것이다.

SANYO DIGITAL CAMERA작은 불전인 단하각.

SANYO DIGITAL CAMERA무량수전 아래에 있는 삼성각.

SANYO DIGITAL CAMERA지장전.

부석사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 해동 화엄종이 종조인 의상대사가 왕명으로 창건한 화엄종의 수사찰이다. 대사는 당나라에 유학하고 있을 때 당 고종의 신라 침략 소식을 듣고 이를 왕에게 알리고, 그가 깨달은 화엄의 도리로 국론을 통일하여 내외의 시련을 극복하게 하고자 귀국하여 이 절을 창건하였으며, 이후 부석사는 우리나라 화엄사상의 발원지가 되었다. 부석사로 불리우게 됨은 무량수전 서쪽에 큰 바위가 하나 있는데 이 바위는 아래의 바위와 서로 붙어있지 않고 떠 있어서 ‘뜬 돌’이라 한데서 연유한다. 고려시대에는 선달사 혹은 홍교사라 불리었다. 1916년 해체 보수 시에 발견된 묵서명에 의하면 고려 초기에 부석사는 무량수전 등이 크게 중창되었으나 공민왕 7년(1358) 외적의 병화를 당하였고, 그 후로 우왕 2년(1376)에 무량수전이 재건되었고, 우왕 3년(1377)에는 조사당이 재건되었다. 경내에는 신라시대 유물인 무량수전 앞 석등(국보 17호), 석조여래좌상(보물 220호, 1636호), 삼층석탑(보물 249호), 당간지주(보물 255호), 대석단 등이 있고, 고려시대 유물로는 무량수전(국보 18호), 조사당(국보 19호), 소조여래좌상(국보 45호), 조사당벽화(국보 46호), 고려목판(보물 735호), 원융국사비 등이 있다. 특히 무량수전은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건축물 중 하나이며, 조사당벽화는 목조건물에 그려진 벽화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현재 부석사 성보박물관 안에 보관되어 있다. 무량수전 안에 봉안된 소조여래좌상은 진흙으로 만든 소조불상으로 국내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것이다. (안내문, 영주 부석사, 2017년)

<출처>

  1. 안내문, 영주 부석사,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