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사찰

청도 운문사 북대암, 북쪽 봉우리 아래 작은 암자.

경북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운문사에 딸린 작은 암자인 북대암(北臺庵)이다. 운문사 북쪽 600 m 정도 떨어진 봉우리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운문사 일대 5사찰을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신승이 수도했던 곳에서 200 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어 처음을 창건된 사찰로 여겨지고 있다. 운문사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전망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작은 암자로 원래는 불전과 수행공간을 겸한 작은 전각만 있었으나 지금은 산신각, 칠성각과 여러동의 요사채 건물들을 두고 있다. 신라 진흥왕 때 창건되었다는 5사찰 중 북쪽 소보갑사 역할을 계승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청도 운문사 북대암 01-20200106청도 운문사 북대암. 운문사를 내려다 보는 북쪽 봉우리 바로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운문사 5사찰을 창건했다는 신승이 수행했던 곳 부근이다.

청도 운문사 북대암 15-20200106북대암에서 내려다 보이는 운문사. 이 사찰을 대표하는 장면이다.

청도 운문사 북대암 08-20200106운문사 북쪽 봉우리 아래에 북대암이 보인다.

청도 운문사 북대암 09-20200106북대암은 운문사에서 600 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자동차로 암자 아래까지 올라올 수 있다.

청도 운문사 북대암 10-20200106북대암 옆 운문사를 창건했다는 신승이 수행했던 계곡이 보인다.

청도 운문사 북대암 07-20200106아래에서 본 북대암. 불전 아래에 여러동의 요사채 건물들을 두고 있다. 이곳에 머무는 승려들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청도 운문사 북대암 11-20200106안개 낀 운문사 일대.

청도 운문사 북대암 03-20200106운문사 주불전. 아미타여래를 모시고 있어 극락전이라 할 수 있는 불전이다. 원래 불전과 요사를 겸했던 암자건물이다.

청도 운문사 북대암 04-20200106북대암 뒷편 북대라 불릴 수 있는 바위봉우리와 그 아래에 있는 독성각과 산신각.

청도 운문사 북대암 13-20200106그 옆에 있는 칠성각.

청도 운문사 북대암 06-20200106승려들의 생활공간인 요사채.

청도 운문사 북대암 05-20200106요사채 위 장독대

청도 운문사 북대암 02-20200106그 뒷편으로 운문사를 창건한 신승이 수행했던 계곡이 있다.

호거산 북대암(北臺庵)
북대암은 운문산성(일명 지룡산성) 바로 아래에 세워져 있으며 운문산에서 최초로 세워진 암자이다. 북대는 운문사에서 보면 북쪽에 위치하고, 제비집처럼 높은 곳에 지어져 있어서 “북대”라 이름 지어졌다. 북대암에서 동쪽으로 약 200 m 옆 계곡을 건너 돌로 축대를 쌓은 곳이 있다. 이곳은 옛날 보양국사가 터를 잡은 곳이며 오작갑이 지어져 있다. 신승이라고만 전해져 온 창건자는 삼년만에 오작갑을 짓고 홀연히 사라졌다고 한다. 옆으로 30보 앞뒤로 10여보 정도의 채마밭에서 운문사를 내려다 보면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 하다. 특히 오후 4시 정도의 햇빛을 받을 때는 정말 멋진 선경이 펼쳐진다. 또 한번 뒤돌아보면 원효대사의 발심수행장에 있는 시 한 수가 생각이 난다. “높은산 험한 바위는 지혜있는 사람이 거처할 곳이요. 푸른솔 깊은 계곡은 수행하는 자가깃들 곳이니라” 북대암은 법당을 비롯한 산신각, 칠성각, 요사 및 신도들의 숙소인 동굴형 요사, 총 다섯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건물의 제일 위쪽에 축대를 쌓아 산신과 독성을 모시고, 그 옆에 칠성각, 아래에는 법당이 있다. 법당에는 주불로 아미타부처님, 협시보살이신 지장보살과 관세음보살님이 모셔져 있다. 70년대까지는 한 채의 집에 인법당과 스님들의 방도 있었으나 지금은 전체를 법당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그 옆에 스님들이 기거하는 요사가 있다. 앞마당은 시멘트 바닥인데 아래에는 방으로 꾸며져 신도들의 숙소로 사용된다. 북대암은 원래 운문사를 창건하기 전에 세워졌다고 하나 지금은 운문사에 소속된 “산내암자”이다. (안내문, 청도 운문사, 2020년)

<출처>

  1. 안내문, 청도 운문사, 202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0년

청도 운문사 내원암, 동쪽 계곡에 세워진 암자

경북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운문사에 딸린 작은 암자인 내원암(內院庵)이다. 운문사 동쪽 1 km 정도 떨어진 계곡에 위치하고 있다. 삼국시대 원응국사가 창건했으며, 조선 숙종 때(1694년), 순조 때(1831년) 다시 중건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현재의 건물들은 일제강점기에 옛 암자터에 다시 지은 것들이다. 전각으로는 무량수전을 중심으로 삼성각, 요사채 등이 있다. 북대암이나 사리암과는 달리 아늑한 계곡 속에 자리잡고 있다. 신라 진흥왕 때 창건되었다는 5사찰 중 동쪽 비슬갑사 역할을 계승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청도 운문사 내원암 03-20200106청도 운문사 내원암. 운문사 동쪽 계곡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다.

청도 운문사 내원암 01-20200106내원암 주불전인 무량수전. 내원암은 일제강점기에 다시 지어진 암자로 주불전을 중심으로 불전과 요사채가 배치된 전형적인 가람배치를 보이고 있다.

청도 운문사 내원암 07-20200106대웅전 앞 마당에서 내려다 보이는 계곡

청도 운문사 내원암 05-20200106대웅전 앞 마당 동쪽편에 있는 전각

청도 운문사 내원암 10-20200106맞은편에 있는 요사채

청도 운문사 내원암 06-20200106뒷편에 있는 요사채들

청도 운문사 내원암 08-20200106무량수전 뒷편 높은 곳에 위치한 삼성각.

청도 운문사 내원암 09-20200106삼성각 앞에서 내려다 본 모습.

청도 운문사 내원암 02-20200106내원암 아래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

청도 운문사 내원암 04-20200106내원암 옆으로 흐르는 계곡.

<출처>

  1. 안내문, 청도 운문사, 202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0년

청도 운문사 사리암, 남쪽 계곡에 세워진 암자

경북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운문사에 딸린 작은 암자인 사리암이다. 사리암은 운문사에서 남쪽으로 3 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계곡에서 1 km 정도 떨어진 해발 500 m 정도의 산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경사가 심한 바위 절벽에 위치하고 있다. 전각으로는 관음전을 비롯하여 천태각, 산령각, 요사채 등이 있다. 특히 천태각 아래 사리굴은 운문사 4굴 중 하나로 손꼽히는 기도처이다.

신라 진흥왕 때 운문사를 비롯하여 5곳에 절이 세워졌는데 그때 남쪽에 세워졌던 천문갑사는 아니지만 그 역할을 계승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리암은 고려초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며 구한말 1845년에 승려 효원이 중창하였다. 이후 나반존사상을 봉안하면서 나반존자의 기도처로 알려졌다. 나반존자는  스스로 깨달음을 얻은 성자를 일컫는 말로 독성이라고도 부른다. 미륵불이 출현하기까지 중생을 제도하라는 가르침에 따라 열반에 들지 않고 미륵불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청도 운문사 사리암 01-20200106청도 운문사 사리암. 운문사에서 남쪽 삼계봉 중턱 경사진 지형에 세워져 있다. 

청도 운문사 사리암 15-20200106사리암 주불전인 관음전.

청도 운문사 사리암 16-20200106관음전 바위 아래에 천태각과 산령각이 있다. 천태각은 나반존자를 모신 전각으로 일반 사찰의 독성각에 해당한다.

청도 운문사 사리암 17-20200106천태각 아래 있는 사리굴. 운문사 4굴 중 하나로 손꼽히는 공간이다.

청도 운문사 사리암 14-20200106암자 아래에 있는 요사채. 많은 승려들이 머무는 것으로 보인다.

청도 운문사 사리암 08-20200106사리암을 오르는 길이 시작되는 계곡에 위치한 주자창. 운문사에서 남쪽으로 계곡을 따라  2 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청도 운문사 사리암 07-20200106주차장에서 보이는 사리암. 산봉우리 중턱 험한 지형에 암자가 세워져 있다.

청도 운문사 사리암 06-20200106사리암 오르는 길. 암자 아래까지 자동차길이 있기는 하지만 경사가 심하고 험한 편이다.

청도 운문사 사리암 04-20200106사리암 오르는 길.

청도 운문사 사리암 05-20200106도로 중간 쯤에서 보이는 남쪽 운문산 계곡

청도 운문사 사리암 03-20200106자동차가 올라올 수 있는 끝부분. 이곳에서 10여 분을 걸어 오르면 사리암에 도착한다.

청도 운문사 사리암 02-20200106사리암 옆을 흐르는 험준한 계곡

청도 운문사 사리암 09-20200106계곡을 지나는 다리.

청도 운문사 사리암 10-20200106사리암을 오르는 계단길.

청도 운문사 사리암 11-20200106중간쯤 약간 평탄한 길도 있다.

청도 운문사 사리암 12-20200106아래에서 보이는 사리암.

청도 운문사 사리암 13-20200106사리암 입구 풍경.

청도 운문사 사리암 18-20200106사리암 요사채 앞 작은 마당.

청도 운문사 사리암 19-20200106마당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

<출처>

  1. 안내문, 청도 운문사, 202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0년

청도 운문산 운문사, 현대 불교 대표적 비구니 수행 사찰

경북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운문산(해발 1,188 m) 북쪽 계곡에 있는 운문사(雲門寺)이다. 삼국시대 신라 진흥왕 때 한 신승이 이곳에 대작갑사(현 운문사)를 비롯하여 5개의 사찰을 창건하였다. 진평왕 때 화랑 세속오계를 지은 원광이 크게 중건하였다. 고려말 고려 태조왕건을 도왔던 보양이 다시 크게 중창하였으며 이때 국왕으로 부터 ‘운문선사’라는 이름을 하사받았다. 고려초 숙종 때 학일 이곳에 머물서 크게 중창하였고, 일연은 이곳에서 머물면서 삼국유시 집필을 시작하였다. 1958년 불교정화운동 후 비구니 수행사찰로 정해지면서 현대불교를 대표하는 사찰로 거듭났다. 현재 승가대학과 대학원, 율원과 선원을 갖춘 전국 최대 비구니 교육도량이다.

운문사는 비로전(보물 835호)옛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오백전, 관음전 등의 불전과 요사채인 금당, 강당인 만세루 등이 있었으며 최근 대웅보전 등 많은 전각들이 지어져 상당히 큰 규모를 하고 있다. 특히, 승려들의 수행공간인 요사채가 규모도 크고 그 수도 많다. 비로전 앞에는 통일신라 가람배치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동.서삼층석탑(보물 678호)를 비롯하여 금당 앞 석등(보물 193호),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317호), 석조사천왕상(보물 318호) 등 많은 문화재들이 전해오고 있다. 부속암자로 북쪽 북대암, 남쪽 사리암, 동쪽 내원암 등이 있으며 서쪽에는 대비사가 있어 창건 당시의 전통이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다.

청도 운문사 01-20200106북대암에서 내려다 보이는 운문사 전경. 동쪽 지룡산, 서쪽 호거산, 남쪽 운문산 등 높은 봉우리들로 둘러싸여 있는 깊은 계곡에 위치하고 있지만, 비교적 넓고 평탄한 곳에 자리잡고 있다. 북쪽에 불전들이 있는 중심영역이, 남쪽에 요사채들이 있는 수행공간이 배치되어 있다.

청도 운문사 24-20200106오늘날 운문사 출입문으로 사용하고 있는 범종루. 서쪽을 향하고 있다.

청도 운문사 11-20200106운문사 중심영역. 주불전이었던 비로전을 중심으로 그 앞에 동.서삼층석탑, 서쪽에 나한전에 해당하는 오백전이, 동쪽에 관음전과 강당인 만세루가, 남쪽에 금당을 비롯한 요사채들이 배치되어 있다.

운문사는 신라 진흥왕 18년(567)에 대작갑사로 창건되었으며, 고려 대조 왕건이 ‘운문선사’라는 사액을 내린 이후 운문사로 불리게 되었다. 신라 원광국사가 세속오계를 설하고, 일연스님이 삼국유사의 집필을 시작한 곳이기도 하다. 조선후기 설송대사 이후 여러 차례 중창을 통해 오늘날의 사세를 이루었으며, 1950년대 비구니 사찰이 되어 현재 승가대학과 대학원, 율원과 선원을 갖춘 전국 최대 비구니 교육도량이 되었다. (안내문, 청도 운문사, 2020년)

청도 운문사 09-20200106주불전이었던 비로전, 조선후기 숙종 때(1718) 지어졌다. 최근 만세루 뒷편에 대웅보전을 크게 신축하면서 비로자나여래를 모신 비로전으로 바뀌었다.

청도 운문사 대웅보전 보물835호 11-20200130
비로자나불 좌상 뒷편 벽면에 그려진 벽화인 비로자나삼신불회도(보물 1613호)

청도 운문사 대웅보전 보물835호51-20200201대웅보전에 있는 관음보살.달마대사 벽화(보물 1817호)

1105년(고려 숙종 10) 원응국사가 건립하였다고 전하며, 1653년(조선 효종 4)에 중창하였다. 건물 중앙에는 비로자나불이 모셔져 있고, 좌측에는 신중탱화, 우축에는 삼장탱화를 모셨다. 건축물 자체가 보물일 뿐 아니라 주불전인 비로자나불좌상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5-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후불벽 뒷면에 관음보살과 달마대사가 나란히 앉아 있는 벽화는 보물 1817호이다. 서쪽 천장에 매단 용가와 악착보살로 불리고 있는 청의동자상도 귀중한 불교문화유산이다. (안내문, 청도 운문사, 2020년)

청도 운문사 10-20200106운문사 동.서삼층석탑(보물 678호). 정형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통일신라 삼층석탑으로 9세기경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전체적인 비례나 조각수법 등은 양호한 편이다.

 

청도 운문사 08-20200106작압전. 운문사의 유래를 알게 해주는 불전이다. 원래는 전탑으로 세워졌는데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후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세워졌다. 내부에는 옛 전탑에 있던 석조사천왕상(보물318호)와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318호)가 모셔져 있다.

청도-운문사-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317호-01-20200106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317호). 석굴암 본존불의 형태를 하고 있는데 신체의 비례나 투박한 조각수법 등에서 통일신라말 불상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청도-운문사-석조사천왕상-보물318호-04-20200106옛 전탑 감실 입구를 지키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석조사천왕상(보물 318호).

운문사의 전신인 대작갑사의 유래를 알게 하는 유일한 건물이다. 나말려초의 보양국사가 작탑이라는 전탑 형식으로 초창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된 이후 현재의 형식으로 재건되었다. 작압이라는 말은 보양 스님이 까치떼가 땅을 쪼고 있는 곳에 절을 지었다는 작갑사(운문사의 전신)에서 유래한 것이다. 1941년 현재의 위치로 옮기면서 지금과 같은 모습의 전각으로 바뀌었다. 내부에는 보물 317호 석조여래좌상과 318호 사천왕 석주가 봉안되어 있다. (안내문, 청도 운문사, 2020년)

청도 운문사 16-20200106석가모니 제자인 오백나한을 모신 불전이다. 수행중심 사찰로서의 운문사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공간이다. 최근에 대웅보전을 새로 지으면서 그 옆에 응진전도 새로 세워졌다.

고려 원응국사가 창건하고 운악화상이 중수를 하였다고 전해지며, 근대에 들어서는 금광스님이 대대적으로 중수하고 오백나한상을 채색하였다. 오백명의 아라한상이 모셔져 있어 오백전이라 하며, 주불로 석가모니불과 좌측 제화갈라보살, 우측 미륵보살이 모셔져 있다. 아라한을 줄여서 보통 나한이라고 하는데, 부처님께 가르침을 받아 깨달음을 얻은 제자들을 이르는 말이다. 자유분방한 모습을 하고 있는 운문사 오백나한상 각각에게 공양을 올리는 오백미 전통이 있다. (안내문, 청도 운문사, 2020년)

청도 운문사 06-20200106경내 동쪽편에 위치한 관음전.

관음전은 1680년(숙종 6) 초창하고 1780년(정조 4) 중수되어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관세음보살은 일체 중생들을 고통에서 구해내리라는 서원을 세운 대자대비의 상징으로, 운문사 관음전에는 1868년 제작한 수월관음도와 1861년에 만일염불회와 관련하여 제작된 신중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건물 안팎에는 『묘법연화경』에서 설한 관세음보살의 공덕이 벽화로 표현되어 있다. (안내문, 청도 운문사, 2020년)

청도 운문사 12-20200106비로전과 만세전 사이에 ‘감로천’이란 글자가 새겨진 물이 담긴 석조가 있다. 사찰에서 신앙공간으로 들어가기전 몸과 마음을 씻는 다는 의미를 갖는곳으로 옛 대웅전 영역과 새 새웅전 영역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청도 운문사 18-20200106최근에 새로 지은 대웅보전. 많은 승려들이 거주하면서 수행하는 운주사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옛 대웅보전이 승려와 신도들을 수용하기에 좁아 뒷편에 새로운 대웅보전을 세웠다.

기존의 대웅보전이었던 현재의 비로전에 늘어난 대중을 수용하기 어려워지자, 1994년에 새로 건립하였으며 현재 조석예불을 모시는 주법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상단에는 과거 연등불, 현재 석가모니불, 미래 미륵불인 삼세불과 대세지, 보현, 문수, 관음의 사대보살을 모셨다. 좌측에 신중탱화, 우측에 53선지식 탱화를 모셨으며 좌우의 윤장대에는 경전이 봉안되어 있다. (안내문, 청도 운문사, 2020년)

청도 운문사 23-20200106대웅보전 앞 마당 한쪽에는 앞면 5칸 규모의 응진전이 있다. 응진전은 나한전의 다른 이름으로 비로전 앞 오백전과 같은 역할을 하는 공간이다. 석가모니 제자들을 중시하는 수행사찰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청도 운문사 17-20200106응진전 맞은 편 요사채.

청도 운문사 20-20200106대웅전 뒷편에 조성해 놓은 작은 동산. 뒷편으로 북대암이 있는 봉우리가 보인다.

청도 운문사 21-20200106대웅보전과 마주보고 있는 만세전(2020년 공사중인 모습)

청도 운문사 31-20050620만세루는 조선후기에 지어진 건물이다. 앞면 7칸의 벽면이 없는 형태의 누각건물이다. 신도들을 위한 공간으로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는 법회 등을 열 수 있는 곳이다. 운문사의 수행사찰 전통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원래는 대웅보전 옆에 있는 가람배치를 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다른 사찰처럼 대웅보전과 마주보고 있다. 그 사이에 석탑은 없지만 넓은 공간이 형성되어 있다.

청도 운문사 22-20200106만세루 옆에 있는 처진소나무(천연기념물 180호)이다. 가지가 밑으로 처진 모습을 하고 있는 처진소나무 품종 중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이다. 출입문인 범종루를 들어서면 제일 먼저 이 소나무를 보게 된다.

청도 운문사 05-20200106처진 소나무 앞에 있는 칠성각. 다른 사찰에 비해 칠성각을 크게 지었으며, 사찰 입구에 있는 것이 특이하다.

청도 운문사 07-20200106관음전 옆 명부전.

신라시대 원광국사가 건립하였고, 나말려초 보양국사가 중창하여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옥 중생을 남김 없이 제도하겠다는 원력을 세운 지장보살과 십대왕을 모신 전각으로 지장전이라고도 한는데, 명부전이라는 명칭은 지장보살과 시왕이 머무는 곳이 저승세계 증 명부이므로 붙여진 명칭이다. (안내문, 청도 운문사, 2020년)

청도 운문사 03-20200106칠성각이 있는 사찰 입구 마당에는 3기의 비석이 세워져 있는데 그 중 가운데 비각에 있는 원응국사비(보물 316호)가 많이 알려져 있다.

청도-운문사-원응국사비-보물316호03-20200106
원응국사비(보물 316호). 고려중기 승려 원응국사 학일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는 탑비이다. 받침돌과 머릿돌은 남아 있지 않고 비몸만 3조각으로 잘라져 있던 것을 복원해 놓고 있다. 비의 앞면에는 그의 행적이, 뒷면에는 제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비문은 윤언이가 짓고 글씨는 명필로 알려진 승려 탄연이 쓴 것이라 한다.

청도 운문사 04-20200106칠성각 앞으로는 대표적인 비구시 수행사찰답게 크고 많은 전각들이 들어서 있다. 그 공간의 규모도 상당히 넓다.

청도 운문사 13-20200106옛 중심영역인 비로전 앞 마당에서 요사채가 있는 수행공간을 출입하는 불이문

청도 운문사 14-20200106비로전과 마주보고 있는 금당. 승려들이 수행하는 요사채로 오래된 건물이지만 규모는 큰 편이다.

청도 운문사 32-20060220
운문사 금당 앞 석등(보물 193호). 팔각형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 건물형태의 통일신라 석등 양식을 따르고 있다. 8세기 이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청도 운문사 15-20200106그 옆으로 많은 요사채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청도 운문사 26-20200106운문사 출입문으로 사용되고 있는 범종루. 뒤로 보이는 동쪽편 계곡에는 내원암이 자리잡고 있다.

청도 운문사 42-20200106운문사 동쪽 계곡에 있는 내원암.

청도 운문사 02-20200106범종루 앞 마당에서 보이는 북대암이 있는 봉우리.

청도 운문사 43-20200106운문사 북쪽봉우리 아래에 있는 북대암. 이곳에서 내려다 보이는 운문사의 경치가 훌륭하다.

청도 운문사 25-20200106운문사 범종루 앞에서 남쪽 사리암으로 가는 길. 이곳에서 약 3 km 정도 떨어진 곳에 사리암이 위치하고 있다.

청도 운문사 41-20200106운문사 시리암. 운문사 남쪽  삼계봉 정상 아래 해발 500 m 정도 되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운문사(雲門寺)
신라 진흥왕 18년(557)에 한 신승이 현재의 북대암 옆 금수동에서 3년간 수도하여 깨달음을 얻은 후 다섯 곳에 절을 창건하였는데, 중앙에 대작갑사(현 운문사), 동쪽에 가슬갑사, 남쪽에 천문갑사, 서쪽에 대비갑사(현 대비사), 북쪽에 소보갑사인 오갑사이다. 600년 신라 원광국사가 중창하였으며, 이때 귀산과 추항 두 화랑에게 세속오계를 전수하였다. 이후 후삼국의 혼란기에 폐허가 된 절을 930년에 보양국사가 크게 중창하였으며, 고려태조 왕건이 통일을 도운 보양국사에 대한 보은으로 937년 운문선사라는 사액을 내리고 전지 500결의 넓은 토지를 하사였다. 이때부터 운문사라는 명칭으로 부르게 되었다. 고려중기 가지산문의 원응 학일 스님이 주석하면서 나라의 제2선찰이라 할 정도로 사세가 커졌으며, 1277년 일연 스님이 주지로 머물면서 이곳에서 삼국유사의 집필을 시작한 곳이기도 하다. 불교정화 직후인 1955년부터 비구니 사찰이 되어 1958년 비구니 전문강원이 개설되었고, 1977년 이후 명성 스님이 주지로서 도량의 면모를 크게 일신시켜 현재 승가대학과 대학원, 율원과 선원을 갖춘 전국 최대 규모의 비구니교육 도량으로 자리매기하고 있다. (안내문, 청도 운문사, 2020년)

<출처>

  1. 안내문, 청도 운문사, 202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0년

서울 관악산 호압사, 호랑이 기운을 누르기 위해 세운 사찰

서울 금천구 시흥2동 관악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사찰인 호압사(虎壓寺)이다.  조선 초 태종 때 (1407년)에 창건되었다. 조선이 한양에 도읍을 정하고 나서 호랑이가 한성을 향해 달려가는 형상을 하고 있는 이곳에 절을 지었다고 한다. 창건 이후 호압사에 대한 기록 거의 없어 그 내력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으며 1841년 상궁 남씨와 유씨의 후원으로 중창되었고 한다. 구한말 궁궐 여인들의 후원을 받아 새롭게 중건되었던 수도권 사찰의 특징을 보여준다.

사찰 내에는 조선전기에 조성된 석조약사여래좌상을 모신 약사전과 삼성각, 요사채 등을 두고 있다. 호암산(해발 393 m)으로 불리는 봉우리 아래에 자리잡고 있으며 사찰 앞을 막고 있는 산이 없어 금천구와 구로구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서울 관악산 호압사 04-20191203 관악산 중턱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호압사. 경사진 지형에 석축을 쌓고 건물을 올렸는데 규모는 크지 않은 편이다.

서울 관악산 호압사 01-20191203호압사 경내. 약사여래를 모신 약산전과 요사채 등을 두고 있는 작은 암자 규모의 사찰이다.

서울 관악산 호압사 05-20191203주불전인 약사전. 조선전기에 조성된 석조약사여래좌상을 모시고 있다.

서울 관악산 호압사 08-20191203뒷편에 있는 삼성각

서울 관악산 호압사 06-20191203마당에는 수령 5백년이 넘는 고목이 있어 사찰의 오랜 내력을 말해주고 있다.

서울 관악산 호압사 07-20191203사찰 뒷편으로 보이는 호암산. 호랑이 형상을 닮았다하여 그 기세를 누르기 위해 이곳을 절을 세웠다고 한다.

서울 관악산 호압사 02-20191203마당에서 내려다 보이는 모습. 멀리 구로구.금천구, 광명시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서울 관악산 호압사 03-20191203아래쪽에 본 호압사

호압사, 서울 금천구 시흥2동
호압사가 창건된 데에는 두가지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먼저 <신층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금천의 동쪽에 있는 산의 우측면 형상이 범이 걸아가는 것과 같고, 위태한 바위가 있는 까닭에 그 바위를 범바위라 부른다. 풍수가들이 이를 보고 바위 북쪽에다 절을 세워 호갑이라 하였다’라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1394년(태조 3)을 전후해 조선의 도읍을 서울로 정하고 궁궐을 짓는 과정에서 밤마다 괴물이 나타나 궁궐을 무너뜨리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에 무학대사의 조언을 받아 호랑이 꼬리에 해당하는 현재의 터에 사찰을 짓고 한양의 지세를 안정시켰다는 것이다. 이렇듯 호압사는 조선 초 한양을 수도로 정함에 관려된 일로 창건된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이후 호압사는 1841년(헌종 7)에 이르러 중창이 되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지금은 전하지 않지만 같은 해 의민스님이 쓴 <경기좌도 시흥삼성산호압사법당현판문>에 상궁 남씨와 유씨의 도움을 받아 법당을 고쳐 지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고 전해진다. (안내문, 서울 호압사, 2019년)

<출처>

  1. 안내문, 서울 호압사, 2019년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0년
  3.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