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사찰

당진 신암사(申庵寺)

충남 당진시 송악읍에 있는 사찰인 신암사(申庵寺)이다. 고려후기 능성구씨 4대손인 구예의 명복을 빌기 위해 가족들이 부인 아주신씨가 창건한 사찰이다. 신씨가 세운 암자라 하여 신암사라 불렀으며 그 이후 내력에 대해서 알려진 바는 없다. 창건 당시인 14세기에 조성된 금동여래좌상(보물)이 모셔져 있어 사찰이 내력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당진 신암사 20230316_01<당진 신암사>

당진 신암사 20230316_04<극락전>

당진신암사금동불좌상
<당진 신암사 금동여래좌상(보물)>

당진 신암사 금동여래좌상
신암사에 모신 불상으로 고려 충숙왕 때 능성구씨의 4대 손인 구예가 가교리에 터를 잡으면서 가문의 원찰로 창건했다고 전한다. 상체가 장대하고, 얼굴은 잔잔한 미소르 띄고 있으며, 귀가 길게 내려와 있다. 하체의 넓고 당당한 모습은 얼굴 및 상체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법의가 양 어깨에서 내려와 들고 있는 오른손에 걸려 배로 이어지고 있으며, 왼쪽 법의 속에 드러나 있는 장식 달린 옷과 배 앞에는 나비형 띠매듭이 있다. 이 불상은 14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서산 문수사나 청양 장곡사의 불상과 비슷한 형식을 보이고 있다. (안내문, 당진 신암사, 2023년)

당진 신암사 20230316_03<산신각>

당진 신암사 20230316_07<요사채>

당진 신암사 20230316_08<사찰 앞 연못>

<안내문>

  1. 안내문, 당진 신암사, 2023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3. ‘신암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3년

당진 영탑사, 옛 면천군 읍치 가까운 곳에 위치한 사찰

충남 당진시 면천면에 있는 영탑사(靈塔寺)이다. 통일신라 때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고려중기에 보조국사가 5층석탑을 세운 뒤 영탑사라 불렀다고 한다. 고려말 무학대사가 유광전 내부 바위에 불상을 조각하게 하면서 절을 중건하고 5층석탑을 뒷편으로 옮겼다고 한다. 그뒤 여러차례 중건을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옛 면천군 읍치와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역 중심사찰로 호국사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사찰의 규모는 크지 않은 편이며 자료 사진과 현재의 전각 등을 비교해볼 때 대웅전을 중심으로 크게 확장한 것으로 보인다. 소장 유물로는 금종비로자나불 삼존좌상(보물), 칠층석탑, 약사여래상 등이 있다.

당진  영탑사 20230316_01<당진 영탑사>

영탑사 전각은 동쪽편 언덕에 무학대사가 불상을 새겨 모시게 한 불전인 유리광전을 중심으로 요사채와 산신각이 있고 아래쪽에 주불전인 대웅전과 금동비로자나불 삼존좌상(보물)을 모신 인법당, 요사채인 적묵당 등이 있다.

당진 영탑사<영탑사 가람배치>

당진  영탑사 20230316_03<영탑사 입구>

당진  영탑사 20230316_02<영탑사 들어가는 길>

당진  영탑사 20230316_04<영탑사>

유리광전에는 바위에 돋을새김으로 조각한 높이 3.5m의 불상을 모시고 있다. 고려말 무학대사가 이곳에 불상을 조각하고 나라의 평안을 빌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읍성이 남아 있는 면천군은 조선시대 서해안 연안물류의 중심지로 조선초 왜구의 침입을 막고자 했던 바램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당진  영탑사 20230316_10<유리광전과 요사채>

주불전인 대웅보전은 최근에 새로 크게 지어진 것으로 보이며 그 옆으로 작은 불전건물인 인법당이 있다. 인법당에는 고려시대 불상인 금동비로자나불삼존좌상(보물)이 모셔져 있다.

당진  영탑사 20230316_06<주불전인 대웅전>

당진  영탑사 20230316_09<불상이 모셔진 인법당>

당진  영탑사 20230316_21<창문 안으로 보이는 삼존불상(보물)>

보물_당진_영탑사_금동비로자나불삼존좌상_20160728-02_문화재대관(보물-불교조각1)
<당진 영탑사 금동비로자나불 삼존좌상(보물)>

당진 영탑사 금동비로자나불 삼존좌상, 보물
영탑사에 모셔진 불상으로서 8각형 연꽃무늬의 대좌 위로 본존불인 비로자나 부처님과 문수, 보현의 좌우 협시보살이 함께 주조되어 있다, 본존불인 비로자나 부처님의 얼굴 상호(相好)는 볼이 풍성한 모습의 네모진 형태를 띄고 있으며 가늘게 내려 뜬 눈, 오똑한 코, 미소를 머금은 작은 입 등이 전형적인 고려 불상의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다. 좌우 협시보살은 모습과 손 모양의 수인이 동일하며 전체적으로 화려한 모습을 하고 있다. 삼존불의 받침인 좌대는 연꽃 모양으로서 좌대에서 나온 두 개의 연꽃 줄기는 좌위 협시보살의 좌대를 받치고 있는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다. (안내문, 당진 영탑사, 2023년)

당진  영탑사 20230316_11<인법당과 뒷편 요사채>

당진  영탑사 20230316_07<맞은편 요사채인 적묵당>

당진  영탑사 20230316_05<영탑사에서 보이는 들어오는 길>

<출처>

  1. 안내문, 당진 영탑사, 2023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3. 영탑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소, 2023년

예천 용문산 용문사

경북 예천군 용문면 내지리에 있는 용문사(龍門寺)이다. 통일신라 경문왕 때(870년) 승려 두운이 창건한 사찰로 절을 창건할 때 용이 영접하였가고 하여 용문사(龍門寺)라 하였다. 고려 중기 의종 때(1165년) 승려 조응이 크게 중건하였다고 하며 윤장대가 있는 대장전(국보)는 이때 처음 조성되었다고 한다. 티벳불교에 볼 수 있는 마니차(摩尼車)와 같은 형태인 윤장대가 있는 것으로 볼 때 원나라 불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조선 성종의 폐비 윤씨와 정조의 장자 문효세자의 태실이 이곳에 있는 것으로 볼 때 왕실의 후원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 이후 여러 전각들이 크게 중건되었다. 한국 불교의 큰 업적을 남긴 승려를 배출한 곳은 아니지만 교통요지에 위치하고, 지역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비교적 번창했던 사찰로 보인다. 소장유물로는 대장전과 윤장대(국보), 감역교지(보물),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보물),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보물), 목조아미타여래좌상(보물), 팔상탱(보물), 괘불탱(보물) 등이 있다.

예천 용문사 20221130_001<예천 용문사>

용문사는 산정상 아래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지만 공간은 상당히 넓은 편이다. 출입문인 회전문, 문루인 해운문, 주불전인 보광명전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으며 동쪽에 대장전을 비롯한 불전들이, 서쪽에 요사채들이 주로 배치되어 있다.

예천 용문사<용문사 가람배치>

예천 용문사 20221130_024<용문사 경내>

예천 용문사 20221130_014<응진전 앞에서 보이는 모습>

예천 용문사 20221130_020<관음전 앞에서 내려다 보이는 모습>

용문사는 예천군 용문면소재인 금당실마을에서 약 4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용문면 일대는 양반들이 많이 살았던 고택들이 많이 남아 있어 조선시대 경제력이 높은 고장이다. 사찰은 용문산(해발 770m) 중턱 400m 정도에 위치하고 있지만 마을과 가까워 예로부터 신도들이 많이 찾았던 것으로 보인다. 사찰 출입문으로는 일주문, 회전문이 있으며 신도들을 위한 공간인 큰 문루가 2곳 있다.

예천 용문사 20221130_028<용문사 일주문>

예천 용문사 20221130_029<회전문>

예천 용문사 20221130_030<회전문에 모셔진 사천왕상>

주불전이 있는 경내를 출입하는 문루인 해운루는 앞면 5칸의 상당히 큰 규모의 건물이다. 사찰을 찾는 신도들을 위한 공간으로 강당역할을 하는 건물이다. ‘소백산 용문사’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예천 용문사 20221130_031<해운루>

예천 용문사 20221130_032<해운루 옆 석축>

해운루 동쪽에는 대장전과 마주보고 있는 누각인 자운루가 별도로 있다. 임진왜란 때 승병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백성들이 짚신을 만들었던 유서깊은 건물이라 한다. 해운루와 비슷한 규모의 건물이다.

예천 용문사 20221130_005<자운루>

예천 용문사 자운루
용문사 자운루(慈雲樓)는 용문사 경내 마당을 사이에 두고 대장전을 마주 보고 있는 누각이다. <사적기>에 따르면 자엄대사가 고려 의종 20년(1166)에 처음 세웠고, 조선 명종 16년(1561) 및 광해군 13년(1621) 두 차례에 걸쳐 고쳐 지었다고 한다. 이후 1979년에 다시 고쳐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자운루는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이층 누각 건물로, 위층과 아래층에 둥근 기둥을 각각 따로 세웠다. 전체적인 건축 양식은 조선 중.후기의 기법으로 보인다. 처음 건립 당시의 모습에서 다소 변화는 있으나, 장식성이 두드러지지 않는 익공계 수법으로 꾸몄다. 임진왜란 때는 승병들의 회담 장소였으며, 백성들이 승병들을 돕기 위해 짚신을 만들었던 호국의 장소이기도 하다. (안내문, 예천 용문사, 2022년)

용문사의 주불전은 비로자나불과 아미타여래, 약사여래를 모신 보광명전이다. 그중 목조아미타여래좌상(보물)은 1515년에 중수했다는 발원문이 발견되었으며 조형미나 조각수법이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예천 용문사 20221130_024<용문사 중심 영역>

예천 용문사 20221130_004<주불전인 보광명전>

예천 용문사 20221130_027<보광명전 내부>

대장전은 불경을 보관하는 불전으로 내부에는 불경을 보관하는 윤장대가 있다. 고려 명종 때(1173년) 조응대선사가 처음 조성했으며 그후 여러차례 보수를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의 건물은 조선후기에 크게 수리한 것으로 발원자와 건립시기, 건립목적이 기록으로 정확하게 남아 있는 유적이다.

예천 용문사 20221130_026<대장전(국보)>

내부에는 조선후기에 조성한 목조아미타여래삼존불상(보물)과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보물)이 모셔져 있다.

예천 용문사 20221130_021<바깥에서 보이는 내부 모습>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보물)과 목조아미타여래설법상(보물)은 17세기에 단응(端應)을 비롯한 9인의 조각승이 공동작업한 것으로 보인다. 목조아마타여래삼존상은 가운데는 아미타여래, 왼쪽은 관세음보살, 오른쪽은 대세지보살을 표현하고 있다.

예천 용문사 20221130_008<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보물)과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보물)>

윤장대는 불경을 보관하는 일종의 책장이다.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 윤장대를 돌리면 불경을 읽는 것과 같은 효과를 본다고 여겼다. 고려중기 이후 원나라를 통해 전해진 티벳불교에 볼 수 있는 마니차(摩尼車)와 같은 형태이다. 오른쪽에 있는 윤장대는 여덟면을 빗살면으로 꾸몄는데 내부에 경전이 모셔진 모습을 볼 수 있다. 왼쪽은 8면에 각기 다른 꽃살문으로 장식하고 있다.

예천 용문사 20221130_007<오른쪽 윤장대(국보)>

예천 용문사 20221130_006<왼쪽 윤장대(국보)>

이외의 불전으로는 석가모니 제자들을 모신 응진전, 지장보살을 모신 명부전, 관세음보살을 모신 관음전, 천불전, 산신각 등을 두고 있다. 건물들은 대부분 최근에 새로 지은 것으로 보인다.

예천 용문사 20221130_010<명부전>

예천 용문사 20221130_011<명부전 내부>

예천 용문사 20221130_012<응진전>

예천 용문사 20221130_013<응진전 내부>

예천 용문사 20221130_016<관음전>

예천 용문사 20221130_017<관음전 내부>

예천 용문사 20221130_019<천불전>

예천 용문사 20221130_018<산신각>

용문사는 신도들이 많이 찾는 사찰로 수행하는 승려들이나 신도들을 위한 공간으로 많은 요사채를 두고 있다. 적묵당은 인조 때 지었다고 하며 응향각, 진영당, 감로당, 동향각, 서향각 등 여러채의 요사채 건물들이 있다. 대부분 최근에 크게 지은 것으로 보인다.

예천 용문사 20221130_009<대장전 옆 진영당>

예천 용문사 20221130_015<대장전 뒷편 만월당>

예천 용문사 20221130_003<영남제일강원>

성보박물관에는 감역교지(보물), 팔상탱(보물), 영산회 괘불탱(보물) 등 문화재들을 소장, 전시하고 있다.

예천 용문사 20221130_023<성보박물관과 요사채들>

예천_용문사_감역교지(醴泉_龍門寺_減役敎旨)<예천 용문사 감역교지(보물)>

예천용문사영산회괘불탱
<예천 용문사 영산회 괘불탱(보물)>

예천용문사팔상탱<예천 용문사 팔상탱(보물)>

 <출처>

  1. 안내문, 예천 용문사,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문경 사불산 대승사

경북 문경시 산북면 사불산(四佛算)에 있는 사찰인 대승사(大乘寺)이다. 삼국시대 신라 진평왕 때 창건되었다고 전해진 문경에서는 가장 오래된 사찰이다. <삼국유사> 따르면 진평왕 때 하늘에서 사면에 불상이 새겨진 큰 돌이 떨어져 그곳에 절을 세우고 ‘대승사(大乘寺)’라 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전각들이 소실된 것을 중건하였다. 그후에도 여러차례 화재로 전각들이 소실되었으며 현재은 건물들은 1966년에 중건한 것이다. 소장 유물로는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국보)>과 관계문서(보물)>, 금동관음보살좌상(보물), 금동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보물), 사면석불 등이 있다.

문경 대승사 20221129_01<문경 대승사 전경>

대승사는 사면석불이 있는 사불산 정상 바로 아래 해발 500m 이상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지만 공간은 비교적 넓은 편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죽령 동쪽 100리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서쪽 100리 정도 떨어져 있다. 백두대간의 주요 교통로였던 죽령과 조령에서 가까운 곳에 있으며 삼국시대 백제와 영토분쟁이 많았던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이 신라의 영토임을 알리고 영토를 수호하고자 하는 호국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문경사면석불전경
<문경 대승사 사면석불>

사불산 굴불산 만불산(四佛山 掘佛山 萬佛山)
죽령(竹嶺) 동쪽 1백리 가량 떨어진 마을에 높은 산이 있는데, 진평왕(眞平王) 46년 갑신(甲申)에 홀연히 사면이 한 발이나 되는 큰 돌에 사방여래(四方如來)를 조각하고 모두 붉은 비단으로 감싼 것이 하늘로부터 그 산 정상에 떨어졌다. 왕은 그 말을 듣고 [그곳에] 가서 쳐다보고 예경한 후 드디어 그 바위 곁에 절을 창건하고 이름을 대승사(大乘寺)라 하였다. ≪법화경(法華經)을 외우는 이름이 전하지 않는 비구를 청하여 절을 맡게 하여 깨끗하게 하고 돌을 공양하며 향불이 끊어지지 않게 하였다. 그 산을 역덕산(亦德山)이라고 하며, 혹은 사불산(四佛山)이라고도 한다. 비구가 죽자 장사지냈더니 무덤위에서 연(蓮)이 났었다. (출처: 삼국유사 권 제3  제4 탑상(塔像第四)  사불산 굴불산 만불산,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

대승사는 여러차례 화재로 소실되면서 중건되었으며, 현재의 건물들은 대부분 1966년 새로 지어졌다고 한다. 요사채로 솟을대문을 하고 있는 백련당과 강당겸 누각인 만세루, 주불전인 대웅전이 경사진 지형에 일렬로 배치되어 있다. 동쪽에는 극락전, 명부전, 응진전 등 불전들이, 서쪽에는 요사채인 청련당이 배치되어 있다. 사불산 정산 바로 아래에 위치하고 있지만 공간은 상당히 넓은편으로 예로부터 상당히 큰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문경 대승사<대승사 가람배치>

사찰 출입문으로 금강문이나 천왕문 등을 두지 않고 조선후기 한옥형태를 하고 있는 요사채 가운데 있는 솟을대문을 사찰 출입문으로 사용하고 있다.

문경 대승사 20221129_19<백련당 솟을대문>

강당으로 사용되는 2층 누각건물인 만세루를 출입문으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문경 대승사 20221129_05<만세루>

문경 대승사 20221129_17<대웅전에서 본 만세루>

주불전인 대웅전에는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국보)이 모셔져 있다. 원래 부석사에 있던 것을 조선후기 고종 때 (1869년) 대승사로 옮겨졌다. 당시 이와관련하여 소송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관련 소송문서 11점(보물)이 남아 있다.

문경 대승사 20221129_07<대웅전>

문경_대승사_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_및_관계문서(聞慶_大乘寺_木刻阿彌陀如來說法像_및_關係文書) (1)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국보)>

문경_대승사_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_및_관계문서(聞慶_大乘寺_木刻阿彌陀如來說法像_및_關係文書)
<관계문서(보물)>

문경 대승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국보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은 나무판을 조각해서 만든 후불탱화로, 불화와 조각을 절묘하게 접목했다 해서 흔히 ‘목각탱(木刻幀)’이라 부르기도 한다. 문경 대승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은 대승사 대웅전에 모셔져 있는데, 판목 10장을 조합하여 아미타여래가 말씀하는 장면과 극락세계에 구품왕생(九品往生)하는 장면을 장엄하게 표현하였다. 이 설법상은 숙종 1년(1675)에 제작된 것으로, 현재 남아 있는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크며, 부처와 보살상을 조각한 수법이 매우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다. 원래 영주 부석사 금색전에 모셔져 있다가 고종 6년(1869)에 대승사로 옮겨졌다. 이때 발견된 소송 문서 11점이 전하며, 이 중 4점은 보물 제575호(문경 대승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관계문서)로 지정되었다. (안내문, 문경 대승사, 2022년)

문경 대승사 20221129_09<대웅전>

<노주석>은 <불우리>, <화사석>이라고도 하며 야간법회 등의 행사 때에 주위를 밝히는 석등의 일종으로서 국내에서는 봉암사, 김용사 등 몇 곳에 없는 독특한 문화유산이다.

문경 대승사 20221129_08<문경 대승사 노주석(露柱石)>

경내 동쪽으로는 불전들 주로 배치되어 있다. 주요 불전으로는 아미타여래를 모신 극락전, 석가모니 제자들을 모신 응진전, 지장보살을 모신 명부전 등이 있다. 극락전에 모신 금동아미타여래좌상(보물)은 고려말에 제작된 것으로 고려중기 불상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문경 대승사 20221129_15<대웅전 동쪽 영역>

문경 대승사 20221129_11<극락전>

보물_제1634호_문경_대승사_금동아미타여래좌상_및_복장유물(2010년_국보,보물_지정보고서)
<금동아미타여래좌상(보물)>

문경 대승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 보물
아미타불은 중생을 고통에서 벗어나 극락세계에 태어나게 해 주는 부처이다. 대승사 극락전에 모셔진 문경 대승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은 불상의 머리 부분에서 고려 충렬왕 27년(1301)에 제작된 아미타삼존다라니가 발견됨에 따라 14세기 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양손 엄지와 약지를 구부리고 있고, 손바닥에 우물 정(井)자 모양의 손금이 남아 있다. 이 불상은 고려 후기 원나라의 영향을 받은 개성 지역 불상과 달리 고려 중기 불상의 전통을 잇는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 시기 유행한 금동 불상 가운데 조형적 완성도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안내문, 문경 대승사, 2022년)

문경 대승사 20221129_12<명부전>

문경 대승사 20221129_13<응진전>

문경 대승사 20221129_10<삼성각>

문경 대승사 20221129_14<조사전>

대웅전 서쪽 영역에는 요사채인 청련당이 배치되어 있는데 이외에도 대승사에는 대승선원을 비롯하여 많은 요사채들을 두고 있다. 문경새재를 넘어가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어 예로부터 많은 신도들이 찾았던 것으로 보이며 그 전통을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경 대승사 20221129_06<청련당>

문경 대승사 20221129_18<대승선원>

문경대승사금동보살좌상
<금동관음보살좌상(보물)>

문경 대승사 금동관음보살좌상, 보물
문경 대승사 금동관음보살좌상은 대승선원에 모셔져 있으며, 기록으로 미루어 볼 때 15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머리에는 화려한 금속의 관을 썼으며 양쪽 귀에 걸친 머리카락은 여러 가닥으로 흩어져 어깨를 덮었다. 가슴, 배, 무릎에 표현된 구슬 장식이 영덕 장육사 건칠보살좌상(보물)과 비슷하지만 어깨와 등의 번잡한 장식이 옷 속에 감추어진 점이 다르다. 긴 상체의 가운데에 때매듭과 치마상단을 둘러 마치 보살상을 둘로 나눈 것처럼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안내문, 문경 대승사, 2022년)

문경 대승사 20221129_04<백련당>

문경 대승사 20221129_02<아래쪽 요사채들>

사불산 대승사(四佛山 大乘寺)
사불산 대승사는 문헌 기록상 문경에서 가장 먼저 세운 사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8교구 본사 직지사의 말사이다 <삼국유산>에 따르면 죽령 동쪽 산꼭대기에 사방 여래불상이 조각된 큰 돌이 나타나 진평왕이 587년에 행차하여 예배하고 바위 옆에 절을 지어 ‘대승사’라 하였으며, 연경(蓮經, 법화경)을 외는 비구를 청하여 주지로 삼고, 산명은 ‘사불산’이라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대승사 선원에는 “천강사불 지용쌍련(天降四佛 地聳雙蓮)”, 즉 하늘에서 사면석불이 내려오고 땅에서 쌍연꽃이 솟았다는 창건 설화 내용을 담은 현판이 걸려 있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건물을 복구하면서 17~18세기에 걸쳐 대승사는 조선시대 산중가람의 면모를 갖추었다. 그러나 철종 13년(1862)에 대승사에 다시 큰 불이 나서 여러 건물이 불탔으나 1966년에 대웅전, 응진전, 대방, 일주문 등을 다시 지어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대승사 부속암자로는 나옹혜근의 출가처이자 성철스님이 정진했던 묘적암, 비구니 선원으로 이름난 윤필암 등이 있다. 현재 대승사에는 국보 외에도 보물로 지정된 선방의 금동관음보살좌상, 극락전의 금동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 유물이 있다. 그리고 마애여래좌상, 사면석불, 노주석, 나옹화상 영정 등이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이외에도 응진전의 오백나한 등 지정문화재 못지 않은 문화 유적이 대승사와 산내 암자 곳곳에 남아 있다. (안내문, 문경 대승사, 2022년)

<출처>

  1. 안내문, 문경 대승사,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봉화 청량산 청량사

경북 봉화군 청량산에 있는 사찰인 청량사(淸凉寺)이다. 삼국시대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창건이후 오랜세월 동안 내력은 전해지지 않으며 고려말 송광사 16국사 중 한명인 고봉선사가 중건했다. 창건 당시에는 많은 부속건물들이 있는 큰 사찰이었다고 한다. 연화봉 아래 주불전인 유리보전과 요사채들이 있으며, 금탑봉 아래에는 웅진전이 별도로 떨어져 있다. 경사진 지형에 축대를 쌓고 사찰을 조성했는데 규모는 크지 않다. 유리보전 앞 전망좋은 곳에 6층석탑이 있는데 청량사를 대표하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소장문화재로는 건칠약사여래좌상(보물), 목조지장삼존상(보물), 건칠보살좌상, 유리보전 등이 있다. 사찰규모는 크지 않지만 오랜 세월 청량산을 대표하는 사찰로 명맥을 이어왔던 것으로 보인다.

봉화 청량사 20221029_001<봉화 청량산 청량사>

봉화 청량사<청량사 가람배치>

청량산(淸凉山, 명승)은 최고봉인 장인봉(해발 870m)을 비롯하여 800m 내외의 12개 암봉이 있다. 중생대 백악기에 퇴적된 암석들이 오랜세월 융기, 풍화, 차별침식 등을 거치면서 다양한 지형을 만들고 있다. 이중환의 <택리지>에 백두대간을 벗어난 4대 명산 중 하나로 평가 받았다.

봉화 청량사 20221029_014<일주문>

봉화 청량사 20221029_015<사찰 입구 작은 찻집, 안심당>

봉화 청량사 20221029_016<범종루>

 주불전인 유리보전(琉璃寶殿)은 약사여래삼존상을 모시고 있어 약사전이라고도 한다. 조선후기 건축물로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이다. 공포는 다포계인데 주심포계와 절충한 조선후기 건물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건물 대들보 밑에 사이기둥을 세워 후불벽을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경사진 지형에 축대를 쌓아 건물을 세웠는데 불전 앞 마당은 좁은 편이다.

봉화 청량사 20221029_009<주불전인 유리보전>

건칠약사여래좌상(보물)은 청량사 주불전에 모셔왔던 불상으로 통일신라 전성기 불상양식을 잘 따르고 있다. 흙으로 형태를 만들고 그 위에 삼베를 입히고 칠을 바르고 말리는 과정을 통해 개략적인 형태를 만들고 다시 조각하여 만든 건칠불상이다. 조성연대에 대해서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으나 재료로 사용된 삼베에 대한 방사선탄소연대 측정결과 8세기 후반에서 늦어도 10세기 전반 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국보)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건칠불상 중 하나이다.

봉화 청량사 20221029_006<주불전 내부에 모셔진 건칠약사여래좌상(보물)>

봉화 청량사 20221029_003<오층석탑 앞에서 보이는 유리보전>

주불전 왼쪽에는 최근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지장전이 있다. 내부에는 조선중기에 조성된 목조지장삼존상(보물)을 모시고 있다. 건물은 최근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봉화 청량사 20221029_013<지장전>

봉화 청량사 20221029_010<지장전 내부에 모셔진 목조지장보살삼존상(보물)>

주불전 오른쪽에는 여러동의 요사채 건물들이 있으며 뒷편에는 산신각이 있다. 명산으로 알려진 청량산에 자리잡고 있어 많은 신도와 탐방객들이 청량사를 찾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이에 걸맞게 사찰규모에 비해 요사채 건물들이 많다.

봉화 청량사 20221029_005<유리보전 옆 요사채들>

봉화 청량사 20221029_008<요사채 중 하나인 선불장>

봉화 청량사 20221029_007<산신각>

주불전 영역 앞 쪽 전망좋은 곳에 오층석탑이 있다. 최근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데 주변 경치와 어우러져 금탑봉을 배경으로 청량산을  대표하는 장면으로 손꼽힌다.

봉화 청량사 20221029_002<오층석탑과 금탑봉>

봉화 청량사 20221029_004<유리보전 앞에서 보이는 장면>

청량사(淸凉寺), 경북 봉화군 명호면 북곡리
청량산에는 원효대사가 우물을 파 즐겨 마셨다는 원효정과 의상대사가 수도했다는 의상봉, 의상대라는 명칭이 남아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청량사를 중심으로 크고 작은 33개의 작은 암자가 있어서 당시 신라 불교의 요람을 형성하였다고 한다. 청량사는 신라 문무왕 때 원효대사.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며 송광사 16국사의 끝 스님인 법장 고봉선사(1351~1428)에 의해 중창된 고찰이다. 본전(本殿)은 유리보전(琉璃寶殿)이며, 금탑봉 아래 웅진전은 683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유리보전은 동방유리광세계를 다스리는 약사여래를 모신 전각이라는 뜻으로, 법당 안에는 약사여래부처님을 중심으로 좌측에 지장보살 우측에 문수보살이 모셔져 있다. 약사여래 부처님은 특이하게도 종이재질을 이용한 지불(紙佛)로서, 이곳에서 지극 정성으로 기원하면 병이 치유되고 소원 성취의 영험이 있는 약사도량이다. (안내문, 봉화 청량사, 2022년)

<출처>

  1. 안내문, 봉화 청량사,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