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절터

영주 숙수사지 당간지주(보물 59호)

경북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 숙수사지 절터에 남아 있는 당간지주(보물 59호)이다. 최초의 서원인 소수서원 들어가는 소나무 숲길에서 볼 수 있다. 소수서원이 숙수사 절터에 세워졌음을 알려주는 문화재이다. 이곳은 순흥지역에서도 경치가 좋고 사람의 통행이 많은 교통의 요지로 인근 부석사 못지않게 큰 절이 있었다. 유물들은 부근 소수중학교 건립공사 중에 발견되었는데 모두 25구의 불상들이 출토되었다. 출토된 유물로서 볼 때 삼국시대 또는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며 고려시대 성리학을 도입한 안향과 그의 아들, 손자까지 숙수사에서 공부하였다는 것으로 볼 때 조선초까지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영주 소수서원 들어가는 길에 볼 수 있는 당간지주(보물 59호). 통일신라 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로 이곳에 절터가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전체적으로 소박하면서도 조각수법이 세련된 편이다.

숙수사지당간지주, 보물 59호
당간지주는 절의 위치를 알리는 상징적인 조형물이다. 절에서는 불교의식이나 행사가 있을 때 당이라는 깃발을 높이 달았다. 당간지주는 당을 매달던 깃대, 즉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한 돌기둥이다. 유교의 성지인 소수서원에서 불교 유적을 만나는 것이 이채로운데, 원래 이곳은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숙수사라는 절이 있었다. 출토된 유물이나 유적을 보면 인근 부석사 못지 않게 큰 절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당간지주 역시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절터에 세워진 서원임을 알 려주고 있다. (안내문, 영주시청, 2009년)

OLYMPUS DIGITAL CAMERA탄생불(신라 7세기), 반가사유상(신라 7세기)

OLYMPUS DIGITAL CAMERA부처(신라 7세기), 보살(신라 7세기)

OLYMPUS DIGITAL CAMERA공양자, 통일신라 9세기

OLYMPUS DIGITAL CAMERA신장, 통일신라 9세기

OLYMPUS DIGITAL CAMERA삼존불, 통일신라 9세기

숙수사 터에서 나온 불상
숙수사는 신라 때 창건된 사찰로 전해지며, 소수서원이 들어서기 이전에 이미 폐사되었다. 불상은 1953년 소수서원 뒤편에 신설된 소수중학교 건립공사 중에 발견되었는데, 현재 당간지주와 불상대좌, 광배 등이 남아 있다. 이곳에서 발견되 불상은 모두 25구로 제작 시기는 감국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며, 종류도 부처상, 보살상, 반가사유상, 탄생불, 신장상, 공양자상 등 매우 다양하다. (안내문, 대구박물관, 2013년)

<출처>

  1. 안내문, 영주시청, 2009년
  2. 안내문, 대구박물관, 2013년
  3.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8년

원주 거돈사지(사적 168호), 남한강 뱃길 부근에서 번창했던 사찰

강원 원주시 부론면 정산리에 있는 절터인 거돈사지(居頓寺址, 사적 168호)이다. 중문, 탑, 강당, 승방, 회랑 등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통일신라 평지사찰 모습을 하고 있는데, 당시로서는 보기드문 일탑식 가람배치를 하고 있다. 승방으로 쓰였던 것으로 보이는 많은 건물터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어 이곳에는 많은 승려들이 머물렀으며, 여행자들이 묵을 수 있는 공간도 충분했음을 알 수 있다. 절터에서는 원공국사탑(보물 190호)과 탑비(보물 78호), 그리고 삼층석탑(보물 750호)이 남아 있었는데, 그 중 원공국사탑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돌아와 현재는 중앙박물관에서 소장.전시되고 있다.

거돈사는 충주나 제천지역에서 서울로 연결되는 육로상에 위치하고 있다. 지금은 도로나 철도에서 먼곳에 위치하고 있어 한적한 느낌을 주고 있지만, 지도를 살펴보면 걸어서 여행을 하던 시절에는 중요 교통 요지였음을 느낄 수 있다. 또한 남한강 뱃길의 주요 나룻터인 창말나루터가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고려시대 여행자들에게 숙소를 제공하는 역원기능을 겸하면서 크게 번창했던 것으로 보이며, 조선시대 억불정책으로 경제적 기반이 없어지면서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원주 거돈사지(사적 168호), 삼층석탑과 금당, 강당이 일렬로 나란히 배치된 1탑1금당식 가람배치를 하고 있는 사찰이다. 통일신라 사찰 중에서는 보기 드문 가람배치이다. 금당 앞에는 회랑을 두었으며, 주변에 많은 건물터가 확인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사찰 앞 중심 공간에 세워져 있는 삼층석탑(보물 750호). 일반적인 석탑과는 달리 넓게 축대를 쌓고 그 위에 삼층석탑을 올려놓고 있다. 축대가 넓은 기단과 같은 역할을 하여 안정감을 주면서 웅장하게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삼층석탑 뒷편에 있는 금당터. 금당 건물은 앞면 5칸, 옆면 3칸의 2층 건물로 추정되며, 지금의 금산사 미륵전과 비슷한 모습인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금당을 오르는 계단. 금당터는 잘다듬은 큰 화강석으로 축대를 쌓고 건물을 올렸다.

SANYO DIGITAL CAMERA금당터 중앙에는 불상을 올려 놓았던 석재로 만든 대좌가 있다.

SANYO DIGITAL CAMERA건물 기둥을 올려 놓았던 주춧돌.

SANYO DIGITAL CAMERA금당 뒷편에는 강당으로 보이는 큰 건물터가 있으며, 옆쪽에는 회랑으로 추정되는 긴 건물터가 있다.

SANYO DIGITAL CAMERA금당 뒷편 강당터로 보이는 건물터와 주위의 크고 작은 건물터.

SANYO DIGITAL CAMERA금당 옆쪽편으로는 승려들의 생활공간이자 손님들이 묵을 수 있는 크고 작은 요사채 건물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절터 뒷편 건물터와 축대.

SANYO DIGITAL CAMERA절터 뒷편 언덕에는 원공국사탑(보물 190호)를 볼 수 있다. 원래 있던 승탑은 중앙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으며 이곳에서는 복제품을 볼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원공국사탑(보물 190호, 복제품)

OLYMPUS DIGITAL CAMERA국립중앙박물관 야외에 전시되어 있는 거돈사지 원공국사탑(보물190호). 고려초 활동한 원공국사 지종(智宗)의 사리를 모신 승탑이다.

SANYO DIGITAL CAMERA절터에 입구에 있는 원공국사탑비(보물 78호)이다. 거북받침돌, 비몸, 머릿돌로 구성된 전형적인 탑비의 형태를 하고 있다. 거북받침돌 머리는 험한 인상의 용의 얼굴을 하고 있다. 등에는 육각형 무늬로 거북등껍질을 표현하고 하고 있는데 그 안에 卍자와 연꽃무늬를 새겼다. 비석의 글은 당대 학자였던 최충이 글을 짓고, 김거운이 글씨를 썼다.

SANYO DIGITAL CAMERA절터에서 출토된 석재들.

<출처>

  1. 안내문, 원주시청, 201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


 

원주 흥법사지, 섬강변 교통로에 자리잡은 절터

강원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에 있는 절터인 흥법사지(興法寺址)이다. 절터는 원주시 문막읍에서 여주 고달사지로 연결되는 도로 부근에 위치하고 있다. 남한강 지류인 섬강이 내려다 보이는 경치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통일신라 때 창건된 것으로 보이며 고려초 태조 왕건의 신뢰를 받았던 진감선사가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발견되었다고 전해지는 염거화상탑은 가장 오래된 승탑 중 하나이며, 이곳에 통일신라 말 선종계열 사찰이 있었음을 간접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고려초 번성했던 남한강 주변 교통로에 있었던 큰 사찰 중 하나였던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후 조선후기에 이곳에는 도천서원이 있었다고 한다.

흥법사는 1탑 1금당의 가람배치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동쪽을 향하고 있다. 지금 흥법사 절터에는 삼층석탑(보물 464호)과 진공대사탑비(보물 463호) 머릿돌과 거북받침돌이 남아 있으며, 건물터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절터 대부분이 경작지로 사용되고 있는데, 조선후기 도천서원을 세우면서 옛절터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진공선사탑(보물 365호)은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돌아와 지금은 중앙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염거화상탑(국보 104호)도 이곳에 있던 것이라 전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원주 흥법사지. 섬강이 내려다 보이는 전망좋은 곳에 있는 절터이다. 규모가 큰 것은 아니지만 삼층석탑을 비롯하여 중요한 유물들이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절터 아래쪽에서서 보이는 흥법사지. 큰 돌로 축대를 인공적으로 쌓아 사찰을 조성했음을 알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절터 가운데 남아 있는 삼층석탑(보물 464호).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려 놓은 통일신라 삼층석탑을 계승한 고려초기 석탑으로 보인다. 정형화 삼층석탑 형태를 하고 있는데, 기단과 몸돌간의 비례에서 보여주는 조형미가 떨어지는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조선시대 폐사된 이후 이곳에는 도천서원이 세워졌기 때문에 절터 흔적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지금도 농경지로 사용되고 있는 부분이 많다.

OLYMPUS DIGITAL CAMERA절터에서 내려다 보이는 남한강 지류인 섬강.

OLYMPUS DIGITAL CAMERA절터 뒷편 농가.

OLYMPUS DIGITAL CAMERA절터 뒷편에 진공대사 탑비가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원주 흥법사지 진공대사탑(보물 463호). 절터에는 거북받침돌과 머릿돌이 남아 있다. 거북받침돌과 머릿돌은 힘이 넘치는 생동감있는 표현과 조각수법이 돋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중앙박물관에서 소장.전시하고 있는 비몸, 태조 왕건이 직접 글을 짓고 당태종의 왕희지체 행서를 집자하여 글자를 새겼다.

OLYMPUS DIGITAL CAMERA중앙박물관 야외에 전시 중인 흥법사지 진공대사탑과 석관(보물 365호). 탑은 대좌형태의 기단 위에 탑신을 올려 놓고 있다. 전체적인 비례에서 주는 조형미가 우수하며, 세부 조각수법 또한 뛰어나다.

OLYMPUS DIGITAL CAMERA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에 전시되어 있는 염거화상탑(국보 104호)이다. 강원도 원주시 흥법사지 절터에 있던 것이라고 하나 확인된바는 아니다. 이 승탑은 팔각형 평면에 3단의 기단과 탑신, 머리장식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승탑의 형태를 하고 있다. 비슷한 형태의 승탑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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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춘천시 국립춘천박물관에서 소장.전시하고 있는 동제염거화상탑지(1871호)이다. 이 탑지는 강원도 원주시 흥법사지 절터에 있었다고 전해지는 염거화상탑(국보 104호)에서 발견되었다. 염거화상탑의 조성 내력을 정확하게 알려주는 유물이다. 염거화상(廉居和尙, ?~844)은 선종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하나인 가지산문(迦智山門)의 2대조로 도의선사의 제자이다. 주로 설악산에 머물면서 선을 널리 알리는데 힘썼으며, 보조선사 체징이 그의 가르침을 계승하였다.

흥법사지
영봉산 아랫자락에 있는 흥법사가 언제 처음 세워졌는지는 알 수 없다. 적연국사 영준이 932년에 이곳에서 태어났다는 것과 이 곳에 있었던 진공대사탑비에서 진공대사가 940년에 이 곳에서 돌아가셨다는 기록으로 보아 이미 신라말에 거대한 규모의 사찰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절이 언제 없어졌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조선시대 전기까지 절과 진공대사탑에 대한 언급이 있는 것으로 보아,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1693년 이 곳에 도천서원을 건립하였다가 1871년에 폐지하였다. 이 절은 1탑식 절 배치를 하고 있으며, 유물로는 흥법사지 3층석탑과 보물 463호인 흥법사지 진공대사탑비의 귀부 및 이수가 있다. 건물터로는 탑의 동쪽 10 m 지점 축대 위에 중문으로 보이는 터가 있고, 탑의 앞인 서쪽에 절의 중심 건물이 금당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도 샘과 여러 건물터가 주변에 있고, 절의 북동쪽 산기슭에는 서울 경복궁으로 옮겨 간 진공대사탑을 모셨던 자리가 남아 있다. 이 절은 고려 태조가 흥법선원을 만들어 진공대사에게 교화를 맡기자 많은 사람이 모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인근의 정산리 거돈사, 여주 고달사 등과 더불어 고려 전반기 선종계 절로 큰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안내문, 원주시청, 2011년)

<출처>

  1. 안내문, 원주시청, 2011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
  4. 중앙박물관, 2012년
  5. 춘천박물관, 2011년

제천 장락사지, 삼국시대 당나라와 교류를 보여주는 남한강유역 절터

충북 제천시 장락동에 있는 옛 절터인 장락사지(長樂寺址)이다. 이곳에는 통일신라 말에 조성된 칠층모전석탑(보물 459호)가 남아 있다. 장락사는 삼국시대에 처음 창건되어 조선중기까지 존속하다가 17세기경에 폐사되었다. 삼국시대 당나라와 교류가 많았던 신라의 특성이 반영된 남한강 유역과 경북 북부지방 사찰과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절터 발굴.조사 결과 여러 건물터와 담장, 우물 등이 확인되었으며 기와류같은 건축부재와 생활용품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6세기 후반경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기와 등이 출토되어 당시 당나라와의 문화교류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고려 때 조성된 건물터가 대부분 영역에서 확인되고 유물도 많이 출토되어 당시 크게 번창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통일신라말에 조성된 칠층모전석탑(보물 459호)가 남아 있는 제천 장락사지.

OLYMPUS DIGITAL CAMERA절터 면적이 꽤 넓은 편이며 발굴.조사 결과 34개 동의 건물터가 확인되었다. 삼국시대 이래 여러 차례 중건을 거치면서 다양한 시기의 건물터가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발굴.조사결과 확인된 건물터.

OLYMPUS DIGITAL CAMERA1차 발굴 당시 사진.

OLYMPUS DIGITAL CAMERA장락사지 7,8 건물터. 모전석탑 가까운 곳에 위치한 건물터 삼국시대 처음 조성된 건물터이다.

장락사지 7,8건물터, 삼국.통일신라시대,
제7건물터는 장락사지의 최초 건물터로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복원한 제8건물터는 장락사지의 1차 중창기 유구로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졌다. 건물터의 기단렬은 서쪽과 북쪽 일부가 확인되었고, 서쪽 기단의 남은 길이는 9.1 m이며 북쪽 기단의 남은 길이는 4.4 m이다. 기단은 다듬지 않은 돌을 사용하였고 기초의 내부 흙속에서 삼국시대 직선문, 사선문, 무문 기와 등이 확인되었다. (안내문, 제천시청,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바깥쪽에 있는 고려시대에 조성된 건물터.

장락사지 17.18.19건물터, 고려시대
제17건물터는 고려 후기에 조성되었다. 4기이 적심석(주춧돌의 기초)이 확인되었고, 적심열 서쪽으로 기단열이 있어 건물지와 건물지를 구분지어 주고 있다. 복원한 제18건물터도 고려 후기에 조성되었으며 10기의 주춧돌이 확인되었는데 2기는 추춧돌이 없어졌다. 정면 4칸, 측면 1칸으로 서쪽 열 1칸이 다른 곳 보다 넓다. 건물의 기단이 밀려나는 것을 방지하고 결구력을 높이기 위해 기단열 사이에 대형 석재를 끼워 넣었다. 제19건물터는 고려후기에 만들어졌으며 5기의 적심석이 확인되었다. (안내문, 제천시청,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바깥쪽 뒷편에 있는 건물터, 고려후기와 조선시대에 조성된 건물터이다.

장락사지, 13.14.20.21.22 건물터, 우물터, 고려.조선시대,
복원한 제 13건물터는 고려 후기에 조성되었고 서쪽을 바라보는 건물이다. 장락사터의 남아 있는 유구(옛 건축물의 남은 흔적) 중 가장 잘 남아 있는 건물터이다. 긴 사각형으로 다듬은 돌로 기단을 만들고 안쪽에 온돌시설을 마련하였다. 제14건물터는 제12건물터와 제13건물터 윗면에 조성된 유구로 3차례에 걸쳐 지어진 건물터로 확인되었다. 제20.21건물터는 조선 중기에 만들어졌다. 제22건물터는 고려 중기에 해당되고 건물의 규모는 정면 1칸, 측면 1칸만 남아 있다. 우물터는 제11건물터의 서쪽에서 확인되었고, 고려중기에 조성되었다. 우물의 전체 폭은 2.3 m이고, 깊이는 3 m이상 된다. (안내문, 제천시청,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북쪽에서 본 장락사지 절터

OLYMPUS DIGITAL CAMERA절터에 남아 있는 칠층모전석탑(보물 459호). 전탑을 모방하여 만든 모전석탑으로 벽돌처럼 생긴 점판암을 다듬어 쌓아서 다른 모적석탑과는 달리 전탑과 외형이 거의 흡사하다.

OLYMPUS DIGITAL CAMERA절터 입구에 있는 최근에 다시 세워진 사찰

장락사지
장락사지(長樂寺址)는 충북 제천사 장락동 65-2번지 일원에 위치한 옛 절터이다. 2003년부터 2008년까지 한 차례의 시굴조사와 세 차례의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34개 동의 건물터와 담장지, 보도시설, 우물을 확인하였고, 기와류, 토기류, 자기류, 흙거푸집, 글씨 없는 비석, 쇠솥, 쇠못, 쇠자물쇠, 청동숟가락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장락사지는 삼국시대에 창건된 이래 조선 중기까지 존속하다가 17세기경에 폐사되었다. 창건 이후 다섯 차례에 걸친 중창불사가 이루어졌고, 가장 번성했던 때는 고려시대로 조사지역 전체에서 유구가 확인되었으며, 유물 또한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다. 장락사지 발굴조사의 가장 큰 성과는 제천 지역에서 최초로 확인된 삼국시대 불교유적이라는 점과 연화문수막새와 새끼줄무늬 및 직선문이 새겨진 기와 등은 제작 시기가 6세기 후반경으로 추정되고 있어 고대의 문화 전파 경로와 제천 지역의 고대 역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안내문, 제천시청, 2017년)

  1. 안내문, 제천시청,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

합천 황매산 영암사지(사적131호), 석축을 쌓아 조성한 산지사찰을 대표하는 절터

경남 합천군 가회면 둔내리 황매산 남쪽 기슭에 있는 절터인 영암사지(사적 131호)이다. 사찰 건립 연대에 대해서 알려진 바는 없지만 고려초(1015년) 적연선사가 이곳에서 입적했다는 기록이 있다. 지리산과 가야산을 연결하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는데 신령스러운 곳으로 여겨졌던 모산재 바위산 아래 전망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사찰 건물배치나 독특한 건축방식 등으로 볼때 통일신라 말에 성행한 밀교와 관련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화엄십찰 중 하나였던 영주 부석사와 비슷한 분위기를 주고 있으면서, 인공적으로 석축을 쌓아 조성한 경주 불국사의 건축양식을 참조한 것으로 보인다.

발굴.조사 결과 금당터, 서금당터, 회랑터와 여러 부속 건물터가 확인되었는데 사찰 규모가 상당히 큰 편이다. 건물터를 조성한 축대나 건물 기단은 잘다듬은 화강석으로 쌓아 조성했는데 궁궐 건물을 연상시키는 형태이다. 금당 앞에는 치성처럼 돌출된 축대를 쌓고 양쪽에 무지개 모양 계단이 있으며, 금당 기단에 다양한 조각상을 새겨놓고 있다. 유물로는 삼층석탑(보물 480호), 쌍사자석등(보물 353호), 거북받침돌(보물 489호)이 남아 있으며, 건물을 올렸던 축대 등이 잘 보존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합천 영암사지(사적 131호). 황매산에서 빼어낸 경치를 자랑하는 모산재를 배경으로 조성한 전형적인 산지 사찰이다. 금당, 회랑, 여러 부속건물이 있었던 상당히 큰 규모의 사찰이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영암사지 절터의 중심영역. 삼층석탑, 석등, 금당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다. 불국사처럼 석탑 주위에는 회랑이 있었다.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영암사지. 금당, 석등, 탑, 회랑이 있는 공간과 부속건물이 동.서 방향 일직전으로 배치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금당터. 잘다음은 화강석으로 기단을 쌓고 건물을 올렸다. 4면에 불전을 출입할 수 있는 계단을 두고 있으며, 가운데에 불상을 올려 놓았던 자리가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잘다듬은 화강석으로 조성한 금당터 기단.

OLYMPUS DIGITAL CAMERA금당터에 남아 있는기둥을 올렸던 초석을 비롯한 석재들.

OLYMPUS DIGITAL CAMERA건물 가운데에 있는 불상을 올렸던 자리. 잘다듬은 화강석으로 만든 8매의 장대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표면에 팔부중상이 새겨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금당을 오르는 계단. 소맷돌에 용을 조각해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양쪽 계단에는 가릉빈가를 조각해 놓았다.

OLYMPUS DIGITAL CAMERA계단 좌.우에 새겨 놓은 사자상.

OLYMPUS DIGITAL CAMERA기단 면석에는 연꽃모양 안상을 새겨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금당 옆 작은 건물터.

OLYMPUS DIGITAL CAMERA금당이 있는 공간은 잘다듬은 화강석으로 축대를 높게 쌓았으며, 가운데는 치성처럼 돌출되어 있는 축대 위에 쌍사자석등이 놓여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쌍사자석등이 놓여진 축대. 양쪽에 무지개모양의 돌계단을 놓았다. 다른 사찰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건축양식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합천 영암사지 쌍사자석등(보물 353호). 두마리의 사자가 석등을 받치고 있는 형상의 석등으로 생동감있고 사실적인 표현이 돋보이는 걸작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금당터 뒷편 공간을 조성하고 있는 축대.

OLYMPUS DIGITAL CAMERA석탑이 있는 아래쪽 공간. 회랑으로 둘러져 있었으며, 앞쪽에는 종루 등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돌출된 석축이 있다. 불국사 중심영역의 공간배치를 참조한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영암사지 삼층석탑(보물 480호). 모서리에 새긴 기둥 모양 외 특별한 장식이 없는 통일신라 삼층석탑 양식을 잘 계승하고 있다. 전체적인 비례와 조각수법 등은 양호하다.

OLYMPUS DIGITAL CAMERA석탑이 있는 공간 북쪽에 금당터가 있다. 후대에 회랑을 허물고 그 자리에 금당을 옮겨 가람배치를 남향으로 바꾼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금당터 뒷편 건물터. 부속 건물들이 있었던 곳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남쪽편 회랑이 있는 공간 바깥쪽 건물터. 출입문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회랑이 있는 공간에 축대를 쌓아 치성처럼 생긴 공간을 조성해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금당터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 주변 경치가 한눈에 들어온다.

OLYMPUS DIGITAL CAMERA아래쪽 부속건물들이 있던 공간. 이곳도 축대를 쌓아 넓게 공간을 조성했다.

OLYMPUS DIGITAL CAMERA부속 건물터.

OLYMPUS DIGITAL CAMERA뒷편 2기의 거북받침돌(보물 489호)과 석등 받침돌이 남아 있는 서금당터. 부속암자와 같은 역할을 했던 공간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서금당이 있던 건물터. 잘다듬은 화강석으로 기단을 쌓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렸다. 가운데 불상이 놓였던 자리가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서금당을 오르는 계단.

OLYMPUS DIGITAL CAMERA잘다듬은 화강석으로 쌓은 기단. 주불전에 비해 기단 높이가 약간 낮다.

OLYMPUS DIGITAL CAMERA동쪽편에 있는 거북받침돌. 용의 얼굴을 하고 있는데, 전체적으로 생동감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비를 받치는 비좌에 구름무늬를 조각해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 금당터 서쪽에 남아 있는 거북받침돌. 동쪽의 것에 비해 왜소한 느낌을 주며 조각수법이 떨어지는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영암사지 건물 배치도.

OLYMPUS DIGITAL CAMERA항아리, 사발, 합천 영암사지 출토, 고려시대, 진주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접시, 합천 영암사지 출토, 고려시대, 진주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절터 한쪽편으로 옮긴 영암사.

합천 영암사지, 사적 131호, 경남 합천군 가회면 둔내리
영암사지는 경상남도 합천군 가회면 둔내리 황매산 남쪽 기슭에 있는 신라시대의 절터로 그 정확한 연대가 알려져 있지 않으나 고려 때인 1014년(현종5)에 적연선사가 이곳에서 83세로 입적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그 이전에 세워졌던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1984년 절터 일부의 발굴조사를 통해, 불상을 모셨던 금당과 서금당, 회랑과 부속된 건물터 등이 확인되었다. 원래의 절에는 탑, 석등, 금당이 일직선으로 배치되었고, 금당의 동서에 각각 하나의 비석이 있어, 금당이 세 차례에 걸쳐 개축되었음이 확인 되었다. 절터에는 통일신라시대에 만든 합천 영암사지 쌍사자석등(보물 353호), 합천 영암사지 삼층석탑(보물 480호)과 서금당지 좌.우로 함천 영암사지 귀부(보물 489호) 2기가 남아 있다. 통일신라시대 말부터 고려시대까지 걸쳐 기둥 초석, 각종 기와와 함께 8세기경의 금동여래입상이 출토되어, 이 절의 창건 연대를 짐작할 수 있다. 영암사의 건물터는 일반 사찰 건물과 다른 몇가지 특징이 있다. 금당이 있는 상단 축대의 중앙 돌출부 좌우에 무지개모양의 계단이 있는 점, 금당 기단 면석에 얼굴모양이 조각되었고 뒷면을 제외한 3면에 신비스런 동물모양을 돋을새김한 점, 서남쪽 건물터의 기단 좌우에 계단이 있는 점이 특이하다. 이러한 특징과 아울러 절터 내에 흩어져 있는 석조물은 이색적인 느낌마저 준다. (안내문, 합천군청, 2017년)

<출처>

  1. 안내문, 합천군청,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