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탑/승탑

순천 송광사 보조국사 감로탑

순천 송광사 경내에 있는 보조국사 감로탑이다. 보조국사가 열반하자 왕으로부터 ‘불일 보조국사’란 시호와 ‘감로탑’이라는 탑호를 받았으며, 감로탑은 3년뒤인 1213년에 세워졌다. 원래 다른 곳에 있었으나 여러차례 옮겨졌다가 관음전 뒷편으로 옮겨졌다. 탑은 4각형의 대좌 위에 몸돌과 지붕돌을 올려 놓았다. 몸돌은 구형을 하고 있으며 지붕돌은 팔각형을 하고 있는데 고려후기 조각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조각수법이나 조형미가 빼어난 것은 아니지만 고려중기 불교개혁을 이끈 지눌의 승탑이라는데 큰 의미가 있는 승탑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송광사 뒷편 언덕에 있는 보조국사 감로탑. 고려중기 불교개혁 운동을 이끈 보조국사 지눌의 승탑이다. 조형미가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불교역사에서 차지하는 지눌의 승탑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SANYO DIGITAL CAMERA받침돌.

SANYO DIGITAL CAMERA둥근 구형의 몸돌.

SANYO DIGITAL CAMERA팔각형의 지붕돌은 고려후기 조각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감로탑이 있는 언덕에서 내려다 보이는 송광사 수행공간.

송광사 보조국사 감로탑
송광사 16국사 가운데 제1세인 불일 보조국사 지눌스님의 부도탑이다. 보조국사는 1210년(희종 6) 열반하였으며 고려 희종이 ‘불일 보조국사’란 시호와 ‘감로탑’이란 탑호를 내렸고 3년 후인 1213년(강종 2년) 음력 4월 10일에 세워졌다. 독특한 형태와 고려 고승의 부도라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안내문, 순천 송광사, 2018년)

<출처>

  1. 안내문, 순천 송광사, 2018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광양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 (국보 103호), 사실적 표현이 돋보이는 걸작

국립광주박물관 중앙 로비에 전시중인 광양 중흥산성 쌍사자석등(국보 103호)이다. 간결하면서도 사실적인 표현이 돋보이는 걸작으로 통일신라 후기에 유행했던 쌍사자 석등을 대표하는 걸작이다. 원래 광양시 옥룡면 중흥산성 절터에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반출하려던 것을 회수하여 경복궁 내에 옮겼다가 이후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쌍사자 석등은 2마리의 사자가 석등을 받치고 있는 형태로 통일신라의 독창적인 양식이다. 동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보은 법주사 쌍사자 석등(국보 5호), 합천 영암사지 쌍사자 석등(353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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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 중흥산성 쌍사자석등(국보 103호). 2마리의 사자가 불을 밝히는 화사석을 받치고 있는 석등이다. 통일신라 후기에 유행했던 쌍사자 석등을 대표하는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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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마리의 사자가 가슴을 맞대고 석등을 받치고 있는 형태로 사실적 표현과 조각수법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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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편에서 본 사자 석상. 사실적이며 힘이 넘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연꽃무늬가 새겨진 평이한 모습의 아래받침돌.

OLYMPUS DIGITAL CAMERA불을 밝히는 화사석은 팔각형으로 4곳에 창을 두고 있다. 특별한 장식이 없으나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조형미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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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쪽에서 본 모습.

쌍사자 석등, 국보 103호, 통일신라 9세기 후분, 전남 광양시 옥룡면 중흥산성 절터
석등은 부처의 자비심을 상징하는 빛을 밝히기 위해 불을 켜는 곳이다. 받침은 두 마리의 사자가 늠름하게 가슴을 맞대고 있는 모습이며, 화사석을 받치고 있다. 사자는 갈기가 달린 숫사자로 입과 갈기, 꼬리가 서로 다르게 표현되어 있다. 불을 켜는 곳에는 창을 댄 못 구멍이 남아 있고, 지붕돌에는 연꽃모양 장식을 얹었다. 이 석등은 통일신라 후기에 유행한 양식이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출처>

  1.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의 석등, 박경식, 학연문화사, 2013년

영주 부석사 당간지주(보물 255호)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부석사에 있는 당간지주(보물 255호)이다. 부석사를 오르는 은행나무길이 끝나는 지점에 세워져 있다. 깃발을 다는 장대를 지탱해 주는 높이 428 m의 돌기둥이 1 m 간격으로 세워져 있다. 기둥사에느는 연꽃장식이 있는 당간을 받치는 받침돌이 있다. 외형이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간결하면서 세련된 조형미를 보여주고 있다. 전체적인 외형이나 조각수법 등을 고려해 볼 때 통일신라 전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부석사는 통일신라 화엄십찰을 대표하는 사찰로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 부석사에는 주불전인 무량수전(국보18호)과 조사당(국보19호) 등 대표적인 불교건축물들이 남아 있다. 건물들은 경사진 언덕에 축대를 쌓아 조성한 것으로 경주 불국사와 함께 한국적인 사찰 건축의 모범이 되었던 곳이다. 예산 수덕사, 안동 봉정사 등 많은 사찰들이 부석사와 비슷한 가람배치를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영주 부석사 당간지주(보물 255호)

OLYMPUS DIGITAL CAMERA2개의 당간지주 사이에 있는 당간을 받쳤던 받침돌.

OLYMPUS DIGITAL CAMERA부석사 오르는 길에서 보이는 당간지주

SANYO DIGITAL CAMERA옆에서 본 모습.

SANYO DIGITAL CAMERA2009년 가을.

부석사 당간지주, 보물 255호
절에 법회나 기도 등의 행사가 있을 때 절의 입구에는 당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달아두는 깃대를 당간이라 하며,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이 기둥의 높이는 428 cm이며, 마주보는 안쪽 측면과 바깥쪽 측면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고, 앞면과 뒷면에는 3줄의 세로줄이 새겨져 있다. 당간지주 윗부분 안쪽에는 깃대를 단단하게 고정시키기 위한 네모모양의 홈이 파여 있다. 기둥 사이에 놓인 정사각형의 받침돌 위에는 연꽃을 조각하고 중앙에는 직경 30 cm의 구멍을 뚫어 당간의 밑면을 받칠 수 있게 하였다. 대체로 가늘고 길면서도 안정감을 주며, 꾸밈을 두지 않아 소박한 느낌을 주는 지주이다. 간격하고 단아한 각 부분의 조각기법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 9세기 전후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부석사, 2017년)

<출처>

  1. 안내문, 영주 부석사,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8년

제천 장락동 칠층모전석탑(보물 459호), 전탑을 그대로 모방한 석탑

충북 제천시 장락동 절터에 남아 있는 칠층모전석탑(보물 459호)이다. 전탑을 모방하여 만든 모전석탑으로 벽돌처럼 생긴 점판암을 다듬어 쌓아서 다른 모적석탑과는 달리 전탑과 외형이 거의 흡사하다. 탑의 높이는 9.1 m로 상당히 높은 편이며, 감실이 있는 1층 기단 위에 7층 탑신을 올렸다. 탑신 지붕돌은 위.아래 모두 층단을 갖춘 전형적인 전탑의 형식을 하고 있으며 귀퉁이에는 풍경을 달았던 구멍이 있다. 석탑의 형태나 제작 수법 등으로 볼 때 통일신라 말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남한강 유역과 경북 북부지방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중국 산동지방 전탑을 모방한 전탑이나 모전석탑 중 하나이다.

이곳은 장락사(長樂寺)가 있던 절터이다. 장락사는 삼국시대에 처음 창건되어 조선중기까지 존속하다가 17세기경에 폐사되었다. 남한강 유역의 다른 절터와 마찬가지로 고려시대에 크게 번창했으며, 이 시기에 조성된 유물들이 가장 많이 출토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제천 장랑동 칠층모전석탑(보물 459호). 점판암을 벽돌처럼 다듬어 쌓은 모전석탑인데 외형이 전탑과 거의 똑같다. 전체적인 비례가 안정감을 주고 있으며 조각수법도 양호한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감실이 있는 1층 기단부. 자연석으로 쌓았는데 모퉁이에는 화강암으로 된 돌기둥을 세웠다.

OLYMPUS DIGITAL CAMERA탑신부. 벽돌로 쌓은 전탑과 같은 형태를 하고 있다. 지붕돌은 아래.위층단을 갖추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서쪽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북쪽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동쪽에서 본 모습.

제천 장락동 칠층모전석탑, 보물459호, 통일신라 말기, 높이 9.1 m
모전석탑이란 돌을 벽돌모양으로 깎아 쌓은 탑으로 흙벽돌을 쌓아 올린 전탑을 모방하였다하여 모전탑이라고 한다. 이 탑은 회흑색의 점판암으로 만든 모전탑으로 현재 높이가 9.1 m이며, 건립연대는 탑의 형식이나 돌 가공 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 말기로 추정된다. 기단은 단층 기단으로서 자연석으로 쌓았으며, 1층 몸돌 네 귀에 화강암으로 된 돌기둥을 세웠다. 2층 이상의 몸돌이나 지붕돌은 전부 점판암을 잘라서 쌓아 올렸으며, 특히 지붕돌은 전탑에서 보이는 형식과 같이 상하에서 층단을 이루었다. 전체가 7층에 이르는 높은 탑인데 각 층의 줄임 비율이 적항하여 장중한 기풍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전쟁 때의 심한 피해로 무너지기 직전에 있었는데, 1967년에 해체 복원하였다. 이때 7층 지붕돌 위에서 꽃모양이 새겨진 청동편이 발견되어 탑의 꼭대기를 이루는 상륜부는 청동으로 만들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제천시청, 2017년)

  1. 안내문, 제천시청,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

성주 법수사지 삼층석탑(보물 1565호), 가야산 고갯길 입구 절터에 남아 있는 석탑

경북 성주군 수류면 백운리 법수사(法手寺) 절터에 남아 있는 삼층석탑(보물 1656호)이다. 높이 6 m로 비교적 큰 규모로 석탑으로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린 전형적인 통일신라 삼층석탑이다. 아래층 기단에는 안상을 새겼으며, 위층 기단과 탑신 몸돌에는 기둥모양을 새겼다. 일반적인 통일신라 삼층석탑에 비해 1층 기단이 높게 만들었다. 해인사 부근 월광사지 삼층석탑과 비슷한 양식이다. 전체적으로 약간 불안정하게 보이며 전체적인 조형미는 약간 떨어지는 편이다.

법수사는 통일신라 애장왕 때(802년)에 창건된 사찰로 성주에서 해인사로 넘어가는 서성재 고갯길 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해발 500 m 정도의 가야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는 산지 사찰로 전망이 좋은 곳에 축대를 쌓아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많은 전각들이 있는 큰 사찰이었으나 임진왜란 이후 폐사되었다. 주위에 형성된 마을 규모로 당시 사찰 규모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절터에는 삼층석탑과 큰 금당터가 남아 있는데 빼어난 전망을 자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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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 법수사지 삼층석탑(보물 1656호). 높이 6 m의 비교적 큰 규모의 삼층석탑이 가야산을 배경으로 세워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기단부. 아래층 기단에는 각 면에 안상이 3개씩 새겨져 있으며, 위층 기단에는 기둥모양을 새겼다. 아래층 기단을 높게 만들었다.

OLYMPUS DIGITAL CAMERA탑신부. 몸돌에는 기둥모양을 새져놓고 있다. 지붕돌은 얇게 만들어졌으며 모서리를 치켜올려 경쾌한 느낌을 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석탑 앞에 놓여진 석물. 연꽃모양을 조각해 놓은 것으로 석등받침돌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설명이 없다. 석탑과 너무 가까이 있어 원래 위치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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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편에서 본 삼층석탑.

OLYMPUS DIGITAL CAMERA절터는 가야산 중턱에 축대를 쌓아 조성한 것으로 보이는데 석탑이 있는 주불전 영역에서 내려다 보는 경치가 빼어나다. 사찰을 조성할 때 해가 떠는 동쪽을 향해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영주 부석사, 구례 화엄사, 합천 영암사지 등에서 볼 수 있는 공간배치로 화엄종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삼층석탑 옆쪽에 남아 있는 큰 규모의 금당터.

OLYMPUS DIGITAL CAMERA금당터에 모아 놓은 절터에 남아 있던 석재들.

OLYMPUS DIGITAL CAMERA절터 입구에서 본 모습. 경남 합천군과 경북 성주군을 경계짓는 가야산 줄기가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남쪽편에서 본 모습. 주위에 큰 마을이 형성되어 있어 법수사의 옛 규모를 짐작할 수 있게 해 준다.

법수사지삼층석탑, 보물 1656호, 경북 성주군 수류면 백운리
이 탑은 신라 애장왕 3년(802)에 창건된 사찰인 법수사에 조성된 높이 6 m의 3층석탑이다. 대가람으로 전해지는 법수사(法手寺)는 임진왜란 이후 폐사되고 석탑과 금당터의 거대한 석축, 당간지주만 남아 있다. 『삼국유사』에 신라 경순왕의 제자인 김황(나주김씨의 비조)이 승려가 되어 법명을 범공이라 하고 법수사에 머물면서 해인사에 드나들며 산승으로 일생을 마쳤다는 기록이 전하고 있다. 또한 9개의 금당과 8개의 종각에 1,000여 칸이 넘는 건물이 있었다고 하였으니 대가람이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석탑은 이중의 기단과 3층의 탑신으로 구성되어 있고, 상륜부는 파손되었다. 아래층 기단의 네 면에는 3구씩의 안상을 조각하였고, 위층 기단은 각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탑신은 몸돌의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을 새겼다. 옥개석은 밑면의 받침이 5단이며, 네 귀퉁이가 위로 들려 있다. 꼭대기에는 작고 네모진 받침 위로 엎은 그릇모양의 장식만이 남아 있다. 이 탑은 전형적인 신라 석탑에 비해 아래층 기단이 높은 것이 특징으로, 이러한 양식상의 변화를 볼 때 신라 말기에 조성된 작품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성주군성, 2017년)

<출처>

  1. 안내문, 성주군청,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