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탑/승탑

춘천 칠층석탑(보물)

강원도 춘천시 소양로 도심에 남아 있는 칠층석탑(보물)이다. 2층 기단 위에 7층의 탑신이 올려져 있는 고려시대 칠층석탑이다. 어떤 사찰에 있었는지 알려진 바는 없으나 근처에서 ‘충원사(忠圓寺)’라 적힌 그릇이 발견되어 충원사에 속했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2000년에 시행된 보수공사 이전에는 기단부가 땅에 묻혀 있어 불안정해 보였으나, 기단부가 드러나 있는 현재의 모습은 상당히 안정되어 보이며 비례도 적절한 편이다.

춘천 칠층석탑(보물) 20230809_06
<춘천 칠층석탑(보물)>

춘천_칠층석탑
<2000년 이전, 기단부가 땅에 묻혀 있는 모습>

위층 기단인 1층 몸돌에 비해 넓게 만들어 상당히 땅에 묻혀 있을 때와는 달리 상당히 안정된 모습을 보여준다.

춘천 칠층석탑(보물) 20230809_02<기단부>

춘천 칠층석탑(보물) 20230809_03<탑신 1층 몸돌과 지붕돌>

춘천 칠층석탑(보물) 20230809_04<2~7층 탑신>

춘천 칠층석탑(보물) 20230809_01
<남쪽에서 본 모습>

춘천 칠층석탑(보물) 20230809_09
<동쪽에서 본 모습>

춘천 칠층석탑(보물) 20230809_08
<북쪽에서 본 모습>

춘천 칠층석탑(보물) 20230809_07
<서쪽에서 본 모습>

춘천 칠층석탑(보물)
춘천 칠층석탑은 석탑에 장식된 연꽃무늬와 조각 수법 등으로 미루어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탑으로 추정된다. 탑이 속했던 사찰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봉의산 서쪽 기슭에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는 충원사라는 절에 속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이 탑의 높이가 6.2m이며, 두 개의 기단 위에 7층의 탑신이 놓여 있다. 1층부터 4층까지 아래층 지붕돌과 위층 몸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었는데, 이는 고려시대부터 강원도에서 많이 나타나는 석탑 양식이다. 지붕돌받침은 1층부터 3층까지는 여섯 단이고, 4층부터 7층까지는 다섯 단으로 일정하지 않다. 탑의 받침대 역할을 하는 위층 기단이 탑 몸돌에 비하여 제법 넓어 안정감이 있으며, 그 위에는 연꽃무늬를 새긴 널판 같은 돌을 놓아 1층 몸돌을 괴게 했다. 탑의 모양은 위로 올라가면서 조금씩 줄어드는데, 기단이 넓은 것에 비하면 몸돌은 작지만 높이가 7층이나 되어 비례의 불균형을 보완하고 안정감을 준다. 이 탑은 원래 기단부가 땅속에 묻혀 있었는데, 2000년 5월에 해체.복원하는 과정에서 땅 위로 올라왔다. 2018년 12월에는 문화재 발굴조사를 반영하여 원래 위치에서 서북쪽으로 약 30m 떨어진 현재의 자리로 옮겨 왔다. (안내문, 춘천시청, 2023년)

<출처>

  1. 안내문, 춘천시청, 2023년
  2. ‘보물 춘천 칠층석탑’,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세종 비암사 삼층석탑

세종시 전의면 다방리 비암사에 있는 삼층석탑이다. 1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려놓은 고려시대 석탑이다. 몸돌 모서리에 기둥을 새긴 것 외에는 특별한 장식이 없는 등 정형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곳에 통일신라 때 백제유민을 위해 조성한 것으로 보이는 3점의 불비상이 발견되었다. 자세한 설명이 없어 발견 당시 비상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궁금하기도 한 곳이다.

세종 비암사 삼층석탑 20230406_01<비암사 삼층석탑>

세종 비암사 삼층석탑 20230406_06<기단부>

세종 비암사 삼층석탑 20230406_07<탑신부>

세종 비암사 삼층석탑 20230406_05<남쪽에서 본 모습>

세종 비암사 삼층석탑 20230406_02<동쪽에서 본 모습>

세종 비암사 삼층석탑 20230406_03<북쪽에서 본 모습>

세종 비암사 삼층석탑 20230406_04<서쪽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계유’가 새겨진 아미타불, 국보, 통일신라, 연기 비암사>

OLYMPUS DIGITAL CAMERA
<미륵보살반가사유비상, 보물, 통일신라(7세기), 연기 비암사>

OLYMPUS DIGITAL CAMERA
<’기축’이 새겨진 아마타불과 보살, 보물, 통일신라(689년), 연기 비암사>

비암사는 통일신라 때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고 알려졌으나 1960년 이곳에서 발견된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국보)에 쓰여진 내용으로 삼국통일 후 백제 유민들을 위해 창건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조선시대 이후에도 지역을 대표하는 사찰로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다.

세종 비암사 삼층석탑 20230406_08<세종 비암사>

비암사 삼층석탑
탑은 석가모니의 사리나 유품을 보관하기 위해 만든 조형 기념물이다. 이 탑은 1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형태로, 1932년 복원 공사를 하면서 없어진 기단부를 보완하고 뒤집혀 있던 석재들을 바로 잡았다. 전체적으로 탑신의 1층 몸돌에 비해 2층 이상에 있는 몸돌이 크게 줄어들었다. 지붕돌이 몸돌에 비해 두해 보이고 밑면의 받침이 4단인 점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세운 것으로 보인다. 1960년 3층 석탑 꼭대기에서 3점의 비상이 발견되어 국립청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3점의 비상은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 기축명아미타불비상, 미륵보살반가사유비상으로 각각 국보와 보물로 지정되었다.  (안내문, 세종 비암사, 2023년)

<출처>

  1. 안내문, 세종 비암사, 2023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당진 안국사지 석탑(보물)

충남 당진시 정미면 안국사지 절터에 있는 석탑(보물)이다. 탑은 그 형태가 온전히 남아 있지않고 투박한 모습을 보여주는 고려시대 석탑이다. 기단부는 통일신라 석탑에 비해 간단하며 탑신 몸돌은 1층만 남아 있고 2층부터는 지붕돌만 있다. 탑신 몸돌에는 1면에는 출입문을, 다른 3면에는 여래좌상을 새겨놓고 있다. 조각수법이나 전체적인 세부적인 조각수법이나 전체적인 조형미는 떨어지는 편으로 고려중기 석탑의 시대적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당진 안국사지 삼층석탑(보물)20230316_01<당진 안국사지 석탑(보물)>

당진 안국사지 삼층석탑(보물)20230316_03<기단부>

당진 안국사지 삼층석탑(보물)20230316_04<여래좌상이 새겨진 1층 몸돌(서쪽)>

당진 안국사지 삼층석탑(보물)20230316_06<1층 몸돌(남쪽)>

당진 안국사지 삼층석탑(보물)20230316_07<1층몸돌(서쪽)>

당진 안국사지 삼층석탑(보물)20230316_08<문짝이 새겨진 1층 몸돌(북쪽)>

당진 안국사지 삼층석탑(보물)20230316_05<지붕돌>

당진 안국사지 삼층석탑(보물)20230316_09<석탑 옆에 있는 다른 석탑의 몸돌>

당진 안국사지 삼층석탑(보물)20230316_21
<서쪽에서 본 모습>

당진 안국사지 삼층석탑(보물)20230316_22
<북쪽에서 본 모습>

당진 안국사지 삼층석탑(보물)20230316_23
<동쪽에서 본 모습>

당진 안국사지 삼층석탑(보물)20230316_02<아래쪽에서 본 모습>

당진 안국사지 삼층석탑(보물)20230316_10<위쪽에서 본 모습>

안국사는 안국산에 위치한 절터이다. 2003년 출토된 기와에서 요나라 연호가 적혀 있어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절터에는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 삼층석탑(보물), 맹향암각 등이 남아 있다. 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안국산에 안국사가 있다.’는 기록만 있을 뿐 사찰에 내력에 대해서 알려진 내용은 없다.

당진 안국사지 삼층석탑(보물)20230316_11<당진 안국사지>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 및 석탑, 보물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의 조성시기는 2003년 발굴조사시 출토된 태평(요나라 성종 연호) 명문기와로 보아 고려 현종 12~21년(1021~1030년)으로 추정된다. 중앙의 본존불은 얼굴과 몸이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고 머리에 네모난 갓 모양의 보개를 쓰고 있다. 두 팔과 두 손이 신체에 조각되어 있고, 좌우에 있는 협시보살도 본존불과 같은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불상 하단의 석탑은 원래 5층일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는 1층에 1매의 몸돌만 남아 있고 그위에 4매의 지붕틀이 겹쳐져 있으며 받침부의 구조는 매우 간략하다. 1층 몸톨의 네 모서리에 기둥 형태가 표현되어 있고 3면에는 여래좌상, 1면에는 문고리형이 조각되어 있어 4면에 불상을 조각하는 기본 형식에서 벗어난 특이한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은 형태의 불상과 석탑은 고려시대 충청도 지방에서 많이 나타난 양식으로 혼란기 백성들이 마을 공동으로 세운 것으로 거칠고 섬세하지는 않지만 종교적인 구원사상을 넘어 힘든 현실세계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노력한 지역공동체의 모습이 엿보인다. (안내문, 당진시청, 2023년)

<출처>

  1. 안내문, 당진시청, 2023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3.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3년
  4. 홈페이지, 당진시청, 2023년

서산 보원사지 석조(보물)

충남 서산시 운산면 보원사지(사적) 절터에 남아 있는 석조(보물)이다. 석조는 물을 담는 그릇으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교회, 사원, 사찰 입구에 놓여 있다. 석조에 담긴 물로 손을 씻어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이 석조는 화강석 내부를 파서 만든 직사각형 모양으로 통일신라 석조 양식을 하고 있다. 내부에는 조각 등으로 장식한 흔적이 없으며 작은 배수구마나 있다. 조각수법이 간결하고 소박하면서도 웅장한 면을 보여주고 있다. 약 4톤 정도의 물을 저장할 수 있다.

서산 보원사지 석조(보물) 20230316_02<서산 보원사지 석조(보물), 2023년>

SANYO DIGITAL CAMERA<서산 보원사지 석조(보물), 2009년>

서산 보원사지 석조(보물) 20230316_01<옆에서 본 모습>

서산 보원사지 석조(보물) 20230316_04<반대쪽에서 본 모습>

서산 보원사지 석조(보물) 20230316_03<석조 내부>

SANYO DIGITAL CAMERA<작은 배수구>

보원사는 화엄십찰 중 하나로 충남 서해안 일대에서 상당히 유서깊고 큰 사찰이었으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폐사되었다. ’백제의 미소’로 유명한 마애여래삼존상(국보)에서 보원사 절터에서 멀지 않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중국 북조와 백제를 연결되는 주요 교통로이자 불교문화 전파 경로에 있던 유서깊은 큰 사찰이었으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폐사되었다. 절터에는 석조(보물), 당간지주(보물), 오층석탑(보물), 법인국사탑(보물) 등 문화재들이 남아 있다.

서산 보원사지 석조(보물) 20230316_05<서산 보원사지 절터(사적)와 석조(보물)>

보원사지 석조, 보물,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화강석의 돌을 파서 만든 것으로 절에서 물을 담아 쓰던 용기이다. 안쪽과 윗쪽만 정교하게 다듬고 바깥쪽은 거칠게 다듬은 것으로 보아 땅에 묻어두고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무런 장식을 하지 않아 간결하고 소박해 보이지만 거대한 크기로 인해 웅장한 느낌을 주고 있다. 내부에도 아무런 장식이 없으며, 밑바닥은 평평하고 한쪽에 물을 내보내는 구멍이 있을 뿐이다. 현재 남아 있는 것 중에서 가장 큰 석조이다. 통일신라시대의 일반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989년(고려 경종 3년)에 제작된 보원사 법인국사 보승탑을 비릇한 다른 석조물들과 관련시켜 볼 때 고려 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안내문, 서산시청, 2023년)

<출처>

  1. 안내문, 서산시청, 2023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서산 보원사지 당간지주(보물)

충남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보원사지 절터에 남아 있는 당간지주(보물)이다. 이 당간지주는 절터 동쪽 개울 건너에 위치하고 있다. 2개의 기둥이 70cm 정도 간격을 두고 새겨져 있다. 기둥 안쪽에는 장식이 없고, 바깥쪽에 넓은 띠를 새겼다. 기둥 윗부분은 둥글께 깎았아 부드러운 느낌을 주고 있다. 위부분 꼭대기에는 네모난 홈을 팠으며 아랫부분에도 홈을 파서 당간을 고정시킬 수 있게 하고 있다.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이지만 보존상태가 아주 양호하고, 웅장한 멋을 지니고 있다.

서산 보원사지 당간지주(보물) 20230316_01<서산 보원사지 당간지주(보물), 2023년>

SANYO DIGITAL CAMERA<서산 보원사지 당간지주(보물), 2009년>

서산 보원사지 당간지주(보물) 20230316_02<새로 보강한 기단부>

서산 보원사지 당간지주(보물) 20230316_15<당간을 세우는 홈>

서산 보원사지 당간지주(보물) 20230316_05
<옆에서 본 모습>

서산 보원사지 당간지주(보물) 20230316_07
<옆에서 본 모습>

서산 보원사지 당간지주(보물) 20230316_08
<안쪽에서 본 모습>

서산 보원사지 당간지주(보물) 20230316_03<서산 보원사지 절터(사적)>

보원사지 당간지주, 보물, 높이 4.2m
당간(幢竿)을 지탱하기 위해 세운 석조물이다. 당간은 절 앞에 세워 부처나 보살의 위엄과 공덕을 표시하고, 사악한 것을 내쫓는 의미를 가진 당(幢)이라는 깃발ㅇ르 다는 깃대이다. 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원래의 위치에 놓여 있다. 마주보고 있는 두 지주는 안쪽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으며, 바깥쪽에는 양측 가장자리를 따라 돌대(突帶)가 돋을 새김되어 있다. 기단부가 없어진 것을 화강암으로 새로 보강하였는데, 주위에 흩어져 있는 여러가지 석재들로 보아 원래는 직사각형의 기단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안내문, 서산시청, 2023년)

<출처>

  1. 안내문, 서산시청, 2023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