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탑/승탑

예천 동본리 삼층석탑(보물)

경북 예천군 예천읍 동본리 절터에 남아 있는 삼층석탑(보물)이다. 발견 당시 기단이 땅에 파묻혀 있어 1층인지 2층인지 알 수 없지만 기단부에 사천왕상을 새겨놓고 있다.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으며, 몸돌 모서리에는 기둥모양을 새겼다. 지붕돌 추녀는 반듯하면서 경쾌한 느낌을 준다. 높이 4m의 크니 않은 규모이지만 전체적인 비율이나 조각수법이 세련되었다. 통일신라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절터에는 삼층석탑과 함께 석조여래입상(보물)이 같이 남아 있다.

예천 동본리삼층석탑(보물) 20221130_00<예천 동본리 삼층석탑(보물)>

기단부 가운데 돌은 4장으로 짜서 맞추었다. 모서리에는 기둥모양을, 가운데에는 사천왕상을 새겨놓고 있다.

예천 동본리삼층석탑(보물) 20221130_09<사천왕상이 새겨진 기단부>

예천 동본리삼층석탑(보물) 20221130_08<남쪽 사천왕상>

예천 동본리삼층석탑(보물) 20221130_01<동쪽 사천왕상>

예천 동본리삼층석탑(보물) 20221130_03<북쪽 사천왕상>

예천 동본리삼층석탑(보물) 20221130_10<탑신>

예천 동본리삼층석탑(보물) 20221130_07<남쪽에서 본 모습>

예천 동본리삼층석탑(보물) 20221130_02<동쪽>

예천 동본리삼층석탑(보물) 20221130_05<서쪽>

예천 동본리삼층석탑(보물) 20221130_21
<북쪽>

주택가에 있는 절터에는 석조여래입상(보물)과 삼층석탑(보물)이 남아 있다. 발굴조사 결과 건물터와 우물 등 유구와 기와, 청자접시 등이 발견되었다.

예천 동본리삼층석탑(보물) 20221130_06<절터>

예천 동본리 삼층석탑, 보물
동본리 삼층석탑은 예천읍을 중심으로 남북을 흐르는 한천의 둑 안쪽 주택가에 있다. 탑의 높이는 4m이며 기단의 폭은 1.6m이다. 기단의 네 면에 새겨진 사천왕은 조각 기법이 정형화되지 않아 독특하며, 탑의 몸돌이 줄어드는 비율과 지붕돌의 크기가 균형을 이루고 있어 아름답다. 지붕돌 밑면의 받침 수가 줄어드는 점이나 탑의 각 부분 아래에 있는 굄돌이 간략하다는 점에서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탑으로 보인다. 석탑의 뒤에는 보물인 동본리 석조여래입상이 함께 남아 있어 예전에는 이곳에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석탑 주변에 공동주택 부지를 조성하기 전 절터 등을 확인하고 실시한 2002년 발굴조사 결과, 문이 있던 자리 1곳과 건물이 있던 터 2곳, 고려 시대 우물 등의 유구와 기와, 청자접시 등 다양한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사찰의 이름 등 자세한 내력은 확인되지 않는다. (안내문, 예천군청, 2022년)

<출처>

  1. 안내문, 예천군청,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철원 도피안사 삼층석탑(보물)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관우리 도피안사(到彼岸寺)에 있는 삼층석탑(보물)이다.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려 놓은 삼층석탑을 높이는 4.1m이다. 통일신라말에 조성된  일종의 이형 석탑으로 불상대좌처럼 생긴 기단 위에 탑신을 올려 놓고 있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에 각각 하나의 돌을 사용하였다. 탑신 몸돌은 모서리에 기둥 모양의 조각 외 별다른 장식이 없다. 지붕돌 받침이 3단, 4단으로 되어 있는 등 정형화된 규칙에서 벗어난 과도적인 모습을 보인다. 불전에 모셔진 철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63호)과 함께 통일신라 말의 혼란상을 타파하고 호족세력의 힘을 과시하고자 하는 속성을 보여준다. 대적광전에 모셔진 철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에 기록된 내용을 볼 때 통일신라 말 도피안사를 창건할 때 같이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철원 도피안사 삼층석탑(보물) 01-20220726<철원 도피안사 삼층석탑(보물)>

일반적인 석탑과는 달리 8각형의 돌로 기단을 쌓았는데, 불상을 올려놓는 대좌나 승탑을 받치는 기단과 비슷한 형태이다. 아래층은 팔각형을 기본으로 낮게 만들어 위층 기단을 받치고 있다. 위층 기단은 가운데 기둥과 위,아래에 받침돌을 두고 있는 형태이다. 아래층 기단에는 안상을 새겼으며, 윗층 기단 받침돌에는 연꽃무늬를 새겼다.

철원 도피안사 삼층석탑(보물) 03-20220726<기단부>

탑신은 일반적인 석탑과  같은 양식을 사용하고 있다. 지붕돌 밑면 받침이 3단, 4단으로 일정치 않다.

철원 도피안사 삼층석탑(보물) 04-20220726<탑신부>

철원 도피안사 삼층석탑(보물) 05-20220726<정면에서 본 모습>

철원 도피안사 삼층석탑(보물) 11-20220726
<동쪽에서 본 모습>

철원 도피안사 삼층석탑(보물) 07-20220726<북쪽에서 본 모습>

철원 도피안사 삼층석탑(보물) 06-20220726<서쪽에서 본 모습>

도피안사는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을 모시기 위해 통일신라 말(865년)에 도선국사가 세웠다고 전해진다. 호족세력의 후원으로 세워진 사찰로 통일신라 사찰의 전통적인 모습에서 벗어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불전들은 여러 전란을 거치면서 없어졌지만, 철조비로자나불좌상과 삼층석탑은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현재의 사찰은 한국전쟁으로 소실된 것을 중수한 것이다.

철원 도피안사 삼층석탑(보물) 02-20220726<철원 도피안사>

철원 도피안사 삼층석탑, 보물,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관우리
도피안사 법당 앞에 세워져 있는 탑으로,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은 그 구조가 특이해서 보통 4각의 돌을 이용하는데 비해 여기서는 8각 모양의 돌로 높게 2단을 쌓았다. 아래층 기단을 괴기 위한 높직한 8각의 괴임돌이 놓여져 있는데, 이곳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위층 기단은 매우 높으나 각 면에 꾸밈이 없다. 다만, 기단의 맨 윗돌 아랫면에 다소 두툼한 느낌의 연꽃무늬를 조각하여 둘러 놓았다. 탑신과 닿는 곳에는 높은 3단의 받침을 두어 1층 몸돌을 괴도록 하였는데, 이러한 기단의 꾸밈새는 석탑의 기법이라기보다는 불상의 기단 기법으로 보이며, 덮개돌 윗면의 높은 괴임형식은 9세기 통일신라의 석탑에서 볼 수 있는 특이한 수법이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에 각각 하나의 돌을 사용하였다. 각 층의 몸돌은 모서리에 기둥 모양의 조각이 얕아서 다소 무거워 보이긴 하나, 네 귀퉁이가 한껏 위로 들려 있어 아름다운 모습이다. 기단의 꾸밈새에서 보이는 특이한 양식, 지붕돌 받침이 4단, 3단으로 일정치 않은 점 등이 통일신라에서 고려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모습임을 보여 준다. 탑을 만든 시기는 법당 안에 모셔진 불상에 기록된 내용을 통해, 통일신라 경문왕 5년(865) 절을 건립할 당시 불상과 함께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안내문, 철원군청, 2022년)

<출처>

  1. 안내문, 철원군청,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울진 불영사 삼층석탑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 불영사에 있는 삼층석탑이다. 2층 기단 위에 3층탑신을 올려 놓은 전형적인 삼층석탑이다. 기단과 탑신 몸돌에는 기둥모양을 새겨 놓은 것 외 특별한 장식이 없다. 높이 3.2m 정도의 작은 석탑으로 전체적인 비례가 안정적이다. 조각수법이 양식 등으로 볼 때 고려초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울진 불영사 삼층석탑 01-20220711<울진 불영사 삼층석탑>

울진 불영사 삼층석탑 02-20220711<옆에서 본 모습>

울진 불영사 삼층석탑 03-20220711
<뒤에서 본 모습>

불영사 삼층석탑
불영사 삼층석탑은 2층 기단을 구비한 평면 방형의 일반형 삼층석탑으로 높이는 3.21m이다. 기단부는 2층으로 구성되었으며, 상.하층 기단 면석에는 양 우주와 탱주 1주가 모각되어 있다. 그리고 상.하층 기단 갑석 하부에는 부연이 없다. 탑신부는3층으로 구성되었으며, 탑신석과 옥개석은 각각 별도의 돌로 만들었다. 탑신석의 각 면에는 양 우주가 모각되어 있다. 옥개석의 처마는 수병이고 받침은 모두 4단이다. 상륜부는 노반 없이 여러 부재가 놓여 있다. 이 석탑은 원래 황화실 옆 동쪽에 일부 무너져 있었는데 1977년 지금의 위치로 이전하여 현재의 모습을 이루고 있다. 이 석탑의 규모는 작으나 전체적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아 신라석탑의 전형양식을 잘 계승한 탑이며, 기단 갑석 하부에 부연이 없는 등으로 보아 제작 시기는 고려시대 초로 추정된다. (안내문, 울진 불영사, 2022년)

<출처>

  1. 안내문, 울진 불영사,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산청 덕산사 삼층석탑(보물)

경남 산청군 삼장면 대포리 내원사 경내에 있는 덕산사 삼층석탑(보물)이다. 통일신라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덕산사 대웅전 건물터 앞에 남아 있었다. 탑은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린 전형적인 통일신라 삼층석탑이. 기단과 탑신 몸돌에는 기둥모양을 새긴 것 외에 특별한 장식이 없으며 지붕돌은 밑면 받침을 4단씩 두었다.

산청 덕산사 삼층석탑 (보물) 01-20220222<산청 덕산사 삼층석탑(보물)>

산청 덕산사 삼층석탑 (보물) 02-20220222<기단부>

산청 덕산사 삼층석탑 (보물) 03-20220222<1층 몸돌과 지붕돌>

산청 덕산사 삼층석탑 (보물) 04-20220222<2층, 3층 탑신부>

산청 덕산사 삼층석탑 (보물) 12-20220222
<북쪽면>

산청 덕산사 삼층석탑 (보물) 11-20220222
<남쪽면>

산청 덕산사 삼층석탑 (보물) 06-20220222<뒤쪽에서 본 모습>

덕산사 통일신라 말 무염국사가 창건한 사찰로 임진왜란 이후 폐사되어 절터만 남아 있었다. 1959년 중건하면서 인근 대원사와 비슷한 이름인 내원사로 불리웠닥 출토 유물 등으로 미루어 덕산사 절터였음이 확인되어 원래의 이름을 되찾았다.

산청 덕산사 삼층석탑 (보물) 05-20220222<덕산사 경내>

산청 내원사 삼층석탑, 보물, 경남 산청군 삼장면 대포리
2층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세운 신라시대 탑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신라 무열왕 때인 657년때 처음 세워졌으나, 1950년대에 도굴꾼들에 의해 파괴되었다. 1961년에 내원사에서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맨 위의 지붕돌이 많이 부셔 졌으며, 상륜부는 남아 있지 않다. 3층으로 된 지붕돌은 평평한 느낌이지만 모서리를 올려 경쾌함을 더하려 하였다. 4개의 주름 지붕돌과 전체적으로 길쭉해진 모습은 통일신라의 늦은 시기인 것임을 짐작케 한다. 그러나 여러장의 돌을 짜 맞춘 기단은 이른 시기의 전통을 잇고 있는 것으로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변화를 살릴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안내문, 산청 덕산사, 2022년)

<출처>

  1. 안내문, 산청 덕산사,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4. 위키백과, 2022년

 

산청 대원사 다층석탑(보물)

경남 산청군 삼장면 유평리 대원사 사리전 앞에 있는 다층석탑(보물)이다. 탑은 2층 기단 위에 8층의 탑신을 올려 놓은 다층석탑이다. 2층 기단에는 4면에 사천왕상을 새겨놓고 있으며 모서리 기둥모양 대신 사람형상이 탑신을 받치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8층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에 장식이 별로 없고 단순한 형태를 하고 있으며 머리장식은 일부만 남아 있다. 삼국시대 자장율사가 사리를 모시기 위해 처음 세웠다고 전해지며 현재의 탑은 조선후기 정조 때(1784년)에 다시 세웠다.

산청 대원사 다층석탑(보물) 01-20220222<산청 대원사 다층석탑(보물)>

이 석탑의 특정적인 부분은 2층 기단 모서리에 기둥 대신 사람형상이 새겨져 있다. 이는 사람이 사리를 모신 탑신을 받치고 있는 형상이다. 조각 수법이나 형식은 비교적 소박한 편이다.

산청 대원사 다층석탑(보물) 05-20220222<기단부>

산청 대원사 다층석탑(보물) 04-20220222<기단부>

산청 대원사 다층석탑(보물) 06-20220222<탑신부>

산청 대원사 다층석탑(보물) 07-20220222<머리장식>

석탑 앞 배례석에 석탑이 조선후기 정조 때(1784년) 다시 세웠음을 알려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산청 대원사 다층석탑(보물) 03-20220222<배례석>

대원사(大源寺)는 신라 전흥왕 때 연기조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사찰이다. 그 뒤 폐사되었던 것으로 조선후기 숙종 때 다시 중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산청 대원사 다층석탑(보물) 02-20220222<산청 대원사 삼층석탑>

산청 대원사 다층석탑, 보물
산청 대원사 다층석탑은 신라 선덕여왕 15년(645)에 자장율사가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기 위해 세운 높이 5.5m의 탑이다. 임진왜란 때 파괴되었던 것을 조선 정조 8년(1748)에 다시 세웠다. 1989년에 해체하여 복원하는 과정에서 58과의 사리와 사리를 넣은 보관함이 발견되었다. 탑은 두개의 바닥돌 위에 여덟개의 지붕돌을 올린 구조이며, 꼭대기의 머리 장식은 일부만 남아 있다. 위층 바닥돌의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 대신 사람의 모습을 한 조각상이 새겨져 있으며, 네 면에는 사천왕상이 새겨져 있다. 대원사 다층석탑은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석탑으로 조각은 소박한 편이나, 전체적으로 비율이 뛰어나고 탑의 각 부재가 완전하게 남아 있어 조선시대 석탑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안내문, 산청 대원사, 2022년)

<출처>

  1. 안내문, 산청 대원사,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4. 위키백과, 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