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회화

[중앙박물관특별전, 실경산수화] 그림과 지도사이

조선시대에는 군사, 행정 등의 목적으로 회화식 지도가 많이 그려졌다. 그림에는 산과 물, 사람과 건물 등이 다양하게 표현되어 산수화를 연상시키면서도 도로와 건물, 지명과 방위 등 지도에 필요한 요소들이 반영되었다. 지도제작에는 주로 도화서 화원들이 참여했는데 기술적으로는 상당히 높은 수준을 보여주고 있으며, 화원의 개성이 지도 곳곳에 반영되어 그림으로서도 작품의 완성도가 높은 경우도 많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조선후기에는 화려한 도시의 모습을 그린 병풍이 유행하기도 했다.

OLYMPUS DIGITAL CAMERA<강릉 모선재>

OLYMPUS DIGITAL CAMERA<천연정>

OLYMPUS DIGITAL CAMERA<대관령>

OLYMPUS DIGITAL CAMERA<월정사>

OLYMPUS DIGITAL CAMERA<월정사 사고>

금강산과 관동의 명승(金剛山圖券), 작가미상, 조선 19세기, 종이에 엷은 색
금강산과 관동지역을 그린 두루마리의 일부분으로 강릉의 모선재(慕先齋)와 천연정(天淵亭), 대관령, 오대산 월정사와 사고를 그렸다. 이 그림은 김홍도가 1788년 정조의 명으로 그린 실경산수를 후대의 화가가 옮겨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김홍도는 서양화의 원근법을 활용해 현적 경관을 그려내었는데, <사고>와 같은 일부 장면은 회화식 지도의 부감법으로 지세를 알기 쉽게 표현했다. <모선재>는 김홍도의 원본에 없었던 장면이 추가된 것으로, 지리 정보를 지도에 가깝게 그려 넣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기성 전경(서쪽)>

OLYMPUS DIGITAL CAMERA<기성 전경(가운데)>

OLYMPUS DIGITAL CAMERA<기성 전경(동쪽)>

기성전경(箕城圖), 작가미상, 조선후기, 종이에 색
평양은 상나라 말기 성인 기자가 건너 왔다는 전설에 따라 기성(箕城)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다. 이 그림은 주요 건물의 명칭과 지명을 표기한 점에서 지도와 비슷하지만, 낮은 수평 시점으로 실경의 느낌을 잘 살렸다. 안개에 가려진 듯 지붕만 보이는 건물과 옅은 색으로 그린 아스라한 원경은 서정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날카로운 필선과 부분적으로만 짙게 채색한 수법에 18세기 이전의 고식 실경산수화의 영향이 남아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평양성 전경(서쪽)>

OLYMPUS DIGITAL CAMERA<평양성 전경(동쪽)>

평양성 전경(平壤城圖), 작가미상, 조선 19세기, 종이에 엷은 색
평양성과 대동강을 여덟 폭에 이어 그린 병풍으로 제1폭이 결실되었다. 평양은 내성과 외성으로 구ㄱ획되었으며 성벽을 따라 부벽루(浮碧樓)와 연광정(練光亭) 등 대동강 경치를 조망할 수 있는 누정이 이어져 있다. 이 병풍은 평양성의 시가지와 주위의 광활한 공간을 지도처럼 묘사했다. 19세기에는 태평성대를 구가하는 대도시를 그린 대화면 병풍이 널리 유행하였다. 배에 탄 사람들을 희색 점으로 표현하는 등 전형적 평양성도에 비해 생략이 두드러진다. 이는 원본을 여러 차례 베켜 형식적으로 변모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화성 전경>

OLYMPUS DIGITAL CAMERA<화성 전경 중 행궁 부근>

화성 전경, 작가미상, 조선 19세기, 종이에 색
화성은 1794 ~1796년에 정조의 명으로 건설되었으며 군사 요새이자 농업.상업 중심지로 계획된 도시였다. 이 그림은 제6폭의 서장대(西將臺)와 행궁(行宮)을 중심으로 성곽과 화성유수부 일대를 조망하였다. <<화성성역의궤>> 중 <화성전도> 도설의 구도를 차용하였고, 성바깥의 풍광에도 넓은 화면을 할애하였다. 성 밖의 물길과 넓은 논밭은 수리시설을 정비해 비옥한 농토로 거듭난 화성 일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성 안의 연못과 정자는 화성이 한성 못지 않은 문화적 도시임을 천명하는 듯하다. 우측 상단부터 지지현(遲遲峴) 고개를 남어 장안문을 지나 행궁으로 향하는 국왕의 행차가 이어지며, 곳곳에서 활쏘기와 군사훈련을 비롯한 행사들이 벌어지고 있다. 행궁 위쪽에 1801년 건립한 정조의 사당인 화령전이 그려져 있어 정조 사후에 제작된 그림임을 알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한양전경, 작가미상, 조선 19세기, 종이에 엷은 색>

북악산이 가운데 솟은 한양 시가지를 그린 것으로, 남산 자락에서 조망한 경관이다. 원각사 십층석탑과 창덕궁 인정전의 중층 건물은 단층집 사이로 두드러지게 표현되었다. 경봉국 터는 숲이 우거져 있어 1868년 경복궁 중건 이전의 그림으로 볼 수 있다. 오른쪽의 삼각산과 도봉산 연봉은 엷은 색으로 그려 공간감을 나타내었다. 북악산을 중앙에 우뚝하게 그리니 구도는 회화식 지도와 유사하다. 화가는 민가가 가득 들어선 한양의 도시경관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포착하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남한산성을 그린 지도, 작가 미상, 조선 19세기, 종이에 엷은 색>

경기도 광주에 자리한 남한산성의 전모를 그린 회화식 지도이다. 서울 방어의 주요 거점이었던 남한산성은 1597년 쌓기 시작해 1626년까지 대대적으로 수축되었다. 이 지도는 보는 방향에 따라 산세와 건물의 각도를 달리하여 그렸으며 방어시설과 도로를 상세하게 표시하였다. 산은 부드러운 윤곽선과 미점으로 산수화처럼 표현하였다. 동문 밖 초현(草峴)으로 넘어가는 길목에는 ‘검복평주막(黔福坪酒幕)’이라 표기되어 있어 당시 교통로와 상업 발달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서문과 수어장대가 위치한 서쪽 일부는 결실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칠보산(七寶山圖), 작가미상, 조선 19세기, 비단에 색>

OLYMPUS DIGITAL CAMERA<칠보산 (서쪽)>

OLYMPUS DIGITAL CAMERA<칠보산(가운데)>

함경도 명천군에 위치한 칠보산을 그렸다. 칠보산은 기기묘묘한 바위가 깎아 지른 듯한 암벽으로 이름 높았다. 이 그림의 산수 형상은 한시각이 그린 <<북관수창록>>의 <칠보산전도>와 유산하여 조선후기에 칠보산을 그리는 일정한 법식이 갖추어졌음을 알 수 있다. 화가가 실경에 상상을 더한 결과 천불봉은 석불을 닯은 수많은 바위가 쌓여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지명을 별지에 써서 붙이고 경물을 나열한 형식은 회화식 지도와 서로 통한다. 화면에 남은 들의 흔적으로 보아 원래 여덟 폭 병풍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금강산, 작가 미상, 조선 19세기 말 ~20세기 초, 비단에 엷은 색>

금강산과 해금강의 넓은 권역을 포착한 병풍 그림이다. 전도식 금강산 그림은 일반적으로 왼쪽에 내금강을, 오른쪽에 외금강을 그리는데 이 병풍은 가장 왼쪽에 외금강의 구룡폭을 그리고 오른쪽에 내금강 만폭동 계곡을 그려 놓았다. 삼일호와 총석정 등 해금강 권역의 명승을 내금강에 이어지듯 그린것도 실제 지리와 다른다. 지리정보에 착오가 있고 묘사 솜씨도 다소 서투르지만, 지도와 같이 금강산 전역을 담은 병풍이 민간에서도 유행하였음을 잘 보여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서울지도, 작가 미상, 조선 18세기 후반, 종이에 엷은 색>

조선의 수도 한성부 일대를 그린 회화식 지도이다. 한양성곽은 북쪽으로 북악산, 인왕산, 낙산을 휘감고 남쪽으로 목멱산을 두르고 있다. 북쪽으로는 북한산과 도봉산, 박석고개까지 지도에 등장한다. 한강 이남은 표현되지 않았다. 빈 터로 남은 경복궁, 종묘와 이어진 창덕궁 영역이 잘 묘사되어 있다. 1776년 건립된 사도세자의 사당 경모궁이 모이며 1785년 설치된 장용위가 기재되지 않아 정조 재위 초반의 상황을 보인다. 산수 표현에는 정선의 실경산수화 영향이 엿보이며 삼각산에서 북악산으로 이어지는 산세가 잘 드러나 있다. 행정구역을 표시한 실용지도인 동시에 왕조가 창성할 명당이라는 한양의 상징을 담은 그림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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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 밖 마장원을 그린 지도, 작가 미상, 조선 19세기 전반, 종이에 엷은 색>

나라의 말을 기르더너 마장(馬場)과 이를 관리하는 관청인 마장원(馬場院)을 묘사한 지도로, 살곶이 일대에 해당한다. 울타리 바깥의 산세는 꽃잎처럼 바깥쪽으로 눕혀 그렸는데, 동쪽으로는 용마봉과 아차산, 서쪽으로는 배봉산 자락의 구릉이 경계가 된다. 화면 아래쪽 근경에는 수목이 우거진 언덕에 마장원 건물과 화양정이 들어서 있고, 서쪽 구릉에 말의 건강을 기원했던 마조단(馬祖壇)이 그려져 있다. 울타리 안 갈포지(葛浦池)는 말이 목을 축이던 곳이다. 마장원은 1846년 익종의 능인 수릉을 천장산에서 용마봉으로 옮겨옴에 따라 폐지되었으므로 그 이전의 지도로 볼 수 있다. 김홍도 실경산수화의 영향을 받은 도화서 화원이 그린 것으로 추정되며, 건물 묘사의 사선 투시도법과 섬세한 선묘가 돋보인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하회와 안동의 명승, 이의성, 조선 1828년, 종이에 엷은 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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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폭 도산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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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폭 안동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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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폭 석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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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폭 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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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폭 망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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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폭 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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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폭 구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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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폭 지보>

경상도 안동 일대의 경치를 그린 실경산수화에 시와 발문을 더한 병풍이다. 제2폭부터 도산서원, 안동부치(安東府治), 석문정(石門亭), 수동(壽洞), 망천(輞川), 하회(河回), 구감(九潭), 지보(知保)의 순으로 실경이 표현되었다. 16세기 문인 유중영은 고향 안동의 산수를 그림으로 그리게 했고, 정유길과 이황이 시를 붙였지만 전란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그로부터 약 200년 후, 유중영의 후손 유철조가 강원도 고성 군수로 재임할 떄 정유길의 후손인 강원도 관찰사 정원용을 만나 옛 일을 떠올리며 그림과 시를 합친 병풍을 꾸미기로 하였다. 그림은 마침 강원도 흡곡 현령으로 와 있던 문인화가 이의성에게 부탁하였다. 이의성은 실경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그림을 그리기 위해 지도를 참고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부감법으로 내려다 본 시점과 다소 도식적인 경물 표현은 회화식 지도의 영향을 보여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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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지도 (서쪽, 사천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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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지도(가운데, 통영항 서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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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지도(가운데, 통영항 동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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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지도 (동쪽, 거제 견내량 부근)>

통영지도, 작가미상, 조선 19세기, 종이에 엷은 색
경상도 통영을 중심으로 주변의 거제.고성.사천.남해 지역을 하늘에서 비스듬히 내려다 본 시점으로 포착한 회화식 지도이다. 통영은 삼도수군통제영이 있었던 곳으로, 경상.전라.충청의 수군을 지휘한 통제사의 관할이었다. 지형은 실경산수에 가깝게 표현되었고 성곽과 시설물도 꼼꼼하게 묘사되었다. 이순신을 모신 충렬사와 포구에 정박한 거북선은 이 지역의 역사 정보를 전달한다. 통영성 남문인 청남루 밖의 물화전(物貨廛), 미전(米廛) 등의 점포가 늘어서고 포구에 배가 들어찬 광경은 조선후기 상업과 도시의 발달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조선시대에는 지방 군영에 그림과 지도를 담당하는 화사군관을 두었다. 이 병풍은 군사.행정용 지도이면서 산수화의 역할을 겸한 작품으로 통영에 배속되었던 화사군관이 그렸으르 가능성이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그림과 지도 사이
여기, 지도인지 산수화인지 선뜻 구분하기 어려운 그림들이 있습니다. 도로와 건물, 지명과 방위를 나타낸 방식은 지도처럼 보입니다. 아름다운 산과 물,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한 폭의 산수화를 떠올리게 합니다. 조선시대 지도 제작에서 그림은 도화서 화원들의 몫이었습니다. 화원이 그린 ‘회화식 지도’는 지리정보를 충실히 담으면서도 보는 이로 하여금 그 속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을 불러 일으킵신다. 국토의 아름다움을 담아내려 한 점에서 회화식 지도는 경산수화와 통합니다. 지도와 실경산수화는 서로 뗄 수 없는 관계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닮은 골이 되었습니다. 조선후기에는 병풍 형식의 도시 그림도 유행하였습니다. 한양, 평양, 진주와 같은 유서깊은 도시는 물론, 신도시 화성의 전경도 지도처럼 펼쳐졌습니다. 부산과 남해, 함경도와 같은 변방의 강산도 아름답게 표현되었습니다. 국토에 대한 애정이 가득 담긴 회화식 지도를 통해 옛 사람들이 현실에서 찾아낸 이상향으로 떠나보시기 바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실경산수화] 실경을 뛰어 넘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그려진 실경산수화는 우리 산천을 재해석하고 성리학적인 자연관이 접목되어 새로운 화풍으로 발전하였다. 정선은 18세기에 유행한 남종화법을 가미하여 진경산수(眞景山水)라는 새로운 화풍을 개척하였다. 화가들은 실경을 뛰어 넘어 재해석하고 다앙한 실험으로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고자 했다. 그림의 소재는 실경산수와 마찬가지로 명승지, 별서(別墅), 야외 모임 등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중 금강산과 관동팔경, 서울 근교의 경관이 많이 그려졌다.

OLYMPUS DIGITAL CAMERA<삼각산 노적봉, 김득신, 조선 1800년, 비단에 엷은 색, 개인 소장>

노적봉은 삼각산 백운대 남쪽에 솟은 화강암 봉우리이다. 화원 김득신은 적막한 겨울밤의 노적봉을 간결하게 표현했다. 화면 오른쪽에 쓴 정조의 시는 노적봉을 중국 형산(衡山)의 석름봉(石廩峰)에 빗대어 태평성대를 비는 내용이다. 그림을 그린 경신년 칠월 그믐날롤 정조가 승하한 다음날로, 문인 이태영이 정조를 추모하는 마음에서 어제시(御製詩)를 옮겨 쓰고 시의 뜻을 김득신에게 그리게 했을 가능성이 크다. 실경과 꼭 닮지는 않았지만 추모의 마음을 실경산수화에 빗대어 표현한 작품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실경을 뛰어 넘다
화가는 실경을 뛰어 넘어 재해석과 다양한 실험으로 자신만의 생각이나 개성을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실경을 과장하거나 왜곡하여 감흥을 표출하기도 하고, 붓 대신 손가락으로 그리기도 했습니다. 감각적인 채색이나 서양의 투시법을 시도하기도 했지요. 추억을 소환해 내거나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그린 산수화는 실경과 닮지 않았더라도 화가의 마음을 진솔하게 드러냅니다. 그림 속 우리 강산이 이토록 아름다운 것은 자연을 바라보고 사유하며 끊임없이 실험했던 화가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화가들이 독창적인 조형언어로 표현한 실경산수화를 보며, 그들의 시선이 닿았던 마음속 풍경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한양 근교의 명승(京口八景圖), 심사정, 조선 1768년, 종이에 엷은 색, 국립중앙박물관>

서울 근교의 경치를 그렸지만 어느 곳을 그렸는지는 알기 어렵다. 심사정은 남종문인화풍으로 실경을 재해석하였다. 물기가 많은 푸른 먹과 담황색이 조화를 이룬 화면은 심사정 그림 특유의 시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림 옆면에는 강세황의 화평이 남아 있다. 실제 경치와 얼마나 닮게 그렸는지를 실경산수의 평가기준으로 내세웠던 강세황도 이 그림의 서정성을 높게 평가하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묘길상(妙吉祥圖), 허필, 조선 1759년, 종이에 먹, 국립중앙박물관>

허필이 35세에 금강산을 여행한 후 15년이 지난 시점에서 기억을 되살려 그린 묘길상이다. 기억이 흐릿한 탓도 있겠지만, 불상의 요소를 모두 생략하고 서 있는 수도승으로 왜곡하여 그린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원래 석등이 있던 자리에는 석탑과 그 위에 둥지를 튼 학을 그렸다. 이는 학을 자식으로 삼고 자연에 은거했던 북송의 임포(林逋, 967~1028년)를 떠올리게 한다. 화가 스스로를 은둔처사로 표현하기 위해 실경을 해체하고 재해석한 자전적 문인화로 볼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강세황(1713~1791년)은 조선후기들 대표하는 문인화가로 시(詩), 서(書), 화(畵)에 모두 능해 삼절(三絶)로 일컬어졌다. 75세에 사신단에 참여하여 북경을 다녀왔으며 76세 때 금강산을 유람하였다. 스스로 그림 제작과 화평(花評) 활동을 통해 당시 화단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한국적인 남종문인화풍의 정착에 크게 기여하였다. 진경산수의 발전, 풍속화와 인물화의 유행, 서양화법의 수용에도 많은 업적을 남겼다. <피금정도>, <송도기행첩>, <자화상> 등 다양한 분야의 작품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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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구성한 피금정, 강세황, 조선 1789년, 비단에 엷은 색, 국립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그림 중 피금정을 표현한 부분>

피금정은 강원도 금화군에 위치한 정자로, 한양에서 금강산으로 향하는 여정에 반드시 거치게 되는 곳이다. 강세황도 1788년 금강산 유람 때 이곳에 들렀고 이듬해 이 그림을 그렸다. 피금정은 화면 오른쪽 가장자리에 작게 묘사되었고, 중앙에는 수직으로 올라가는 산맥이 화면을 압도하고 있다. 왼쪽 아래에 묘사된 인물은 중국 복식을 하고 있는 등 전체적으로 조선의 실제 경치와 크게 다르다. 강세황은 피금정의 실경을 새롭게 해석하여 남종문인화풍의 관념산수에 가깝게 표현하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이인상(1710~1760년)은 조선후기 문인화가로 <설송도>, <송하관폭도> 들을 그렸다. 명문가 서얼 출신으로 시문과 학식에 뛰어나 문사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림은 곧은 지조와 성격이 반영되어 담백하면서도 투명한 색감, 깔끔한 멋과 분위기가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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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 추억속 구룡연, 이인상, 조선 1725년, 종이에 엷은 색, 국립중앙박물관>

필선으로만 그린 구룡연 그림이다. 이인상은 금강산 여행에 동행했던 임안세를 위해 유람한 지 15년이 지난 후 이 그림을 제작했다. 폭포를 가운데 두고 아래쪽에 소용돌이 치는 못과 바위를 그린 구도는 당시 유행한 구룡연 그림과 통한다. 그러나 이인상은 채색이나 간단한 선염조차 생략하고 메마른 붓으로 절벽과 폭포의 뼈대만 그렸다. 화가 스스로 ‘마음으로 이해한 것(心會)’을 그렸다고 밝히고 있듯, 마음의 풍경으로 재탄생한 독창적인 실경산수화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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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그린 옥순봉, 윤제홍, 조선 1833년, 종이에 먹, 삼성미술관>

손가락에 먹을 찍어 과감하게 그린 옥순봉이다. 윤제홍은 1823년 청풍 부사로 부임했을 때 단양의 명승지를 여러 차례 찾았다. 그는 선배 화가인 이인상의 옥순봉 그림을 참고하며 이 그림을 그렸다고 하는데, 이인상의 그림에는 실경과 다른 정자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윤제홍 역시 실경에 없는 요소를 추가했는데, 암벽 아래 위치한 정자와 먼산의 폭포는 온전히 상상의 산물이다. 더불어 그가 사용한 지두화(指頭畵) 기법은 과장과 생략을 반복하면서 새로운 조형언어의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먹으로 즐긴 산수(鶴山墨載帖), 윤제홍, 조선 1812년, 종이에 먹, 개인소장>

윤제홍은 푸른 종이에 개성의 박연폭포와 그 아래 범사정(泛槎亭)에 앉아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인물을 그렸다. 박연폭포는 금강산의 구룡폭포, 설악산의 대승폭포와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아름답기로 이름난 3대 명폭의 하나이다. 폭포 뒤편의 절벽을 제외하고 좌우에는 각이 진 바위를 지두화법으로 그려 실제 경관보다 과장하였다. 손가락과 손톱으로 그린 그림과 글씨에서 윤제홍의 개성을 확인할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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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석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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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금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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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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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연>

금강산과 강원도지역 명승 그림, 조정규, 조선 1860년, 종이에 먹, 동산방화랑
금강산과 관동팔경을 그린 8폭 그림이다. 구도와 표현에서 김홍도의 영향이 엿보이나 조정규만의 흥미로운 회화적 표현이 돋보인다. 외금강의 명소로는 <구룡연>을 선택하였고 해금강의 삼일포, 해금강, 총석정을 다양한 구도로 표현하였다. <삼일호>는 위에서 호수를 내려다보며 원형구도를 사용했고, <해금강>은 아래쪽의 인물들이 저 멀리 기묘한 바위와 파도의 소용돌이를 바라보고 있다. 마지막 폭으로 추정되는 <총석정>에는 ‘경신년(1860) 봄 임전 조정규가 그리다’라는 묵서가 적혀 있어 제작연도를 알 수 있다. 개성적이고 근대적인 감각이 돋보이는 조선 후기 실경산수화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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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미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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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덕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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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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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사>

금강산과 강원도지역 명승 그림, 조정규, 조선 1860년, 종이에 먹, 동산방화랑
금강산과 관동팔경을 그린 8폭 그림이다. 구도와 표현에서 김홍도의 영향이 엿보이나 조정규만의 흥미로운 회화적 표현이 돋보인다. 팔폭 중 두 폭에는 내금강의 유명한 사찰인 장안사와 정양사의 광경이 그려져 있다. 비홍교를 건너는 스님의 모습을 그린 <장안사>는 올려다 본 시선으로 포착했다면 정양사는 헐성루와 약사전 너머로 보이는 내금강의 봉우리와 계곡을 표현했다. <수미탑>은 하늘을 뚫을 뜻 솟아오르는 수미탑을 아래쪽에서 선비들과 함께 올려다보도록 묘사하였다. 조선후기 실경산수를 계승하면서도 전통화법에서 벗어난 개성을 표출한 작품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조중묵(?~?)은 조선후기 화원으로 철종어진화사 등을 역임하였다. 헌종, 철종, 고종의 어진을 그렸으며 당시 초상화의 대가로 평가받았다. 그가 남간 산수화들은 남종화풍을 충실히 따라 깔끄하고 정돈된 맛을 풍기고 있으나 전반적으로 형식적인 면을 보인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표작으로 <산회청강도>, <함흥본궁도> 등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아버지를 기리는 인왕산 그림, 조중묵, 조선 1868년, 비단에 엷은색, 국립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인왕산 부분>

홍제원 일대에서 바라본 인왕산과 북한산을 대화면에 포착한 실경산수화이다. 한눈에 담기 어려운 넓은 공간을 수평적 파노라마로 표현하고 주요 지점에 지명을 표기하였다. 박경빈이 부친의 무덤을 인왕산 자락의 명당으로 이장한 후 무덤과 주변 경관을 그리게 한 것으로 선친의 묘소 위치를 후세에 전하려는 기록적인 성격이 강하다. 조중묵은 아버지의 무덤을 그리고자 한 주문자의 의도와 실제 경치를 적절하게 조화시켜 이처럼 특별한 목적의 병풍을 제작하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옥호정도, 작가미상, 조선 19세기, 종이에 엷은 색, 2016년 이춘녕 유족 기증>

OLYMPUS DIGITAL CAMERA<옥호정도 중 저택>

OLYMPUS DIGITAL CAMERA<옥호정도 중 후원>

오늘날의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자리했던 옥호정을 그렸다. 건물과 정원, 산의 형세를 그리고 각각의 경물에 명칭을 썼으며 화면의 네 가장자리에 방위를 표기하여 도면의 면모가 뚜렸하다. 산수 형세와 건물 묘사의 수준이 높아 도화서 화원이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산을 그린 준법(皴法)과 나무 표현, 산뜻한 채색은 김홍도 화풍의 영향이 엿보인다. 신선 세계를 상징하는 ‘옥호동천(玉壺洞天)’이라는 각자(角字)가 말해주듯, 화가는 세속에서 벗어난 아취(雅趣)있는 공간으로 옥호정을 표현하였다. 김조순은 1804년에 옥호정을 조성하기 시작했고 ‘을해벽(乙亥壁)’이라는 글씨를 1815년에 새겼으므로 10여년에 걸쳐 건물과 정원을 꾸민 것으로 추정된다. 김조순은 만년에 옥호정에 주로 기거하며 많은 문인들과 시회(詩會)’를 열었다. 옥호정은 장동김씨 가문의 도시 속 별천지였으며, 19세기 문예활동의 중요한 무대가 되기도 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옥호정도(玉壺亭圖), 한양 속 별천지
차곡차고 접은 두꺼운 종이를 펼치면 세로 150.3cm, 가로 193.0cm의 커다란 그림이 나타납니다. 서울 북악산 자락 넓은 터에 들어선 별장, 옥호정을 그린 그림입니다. 담장 밖 개울물은 세속의 소음을 씻어주고, 뒤뜰 바윗돌에 새긴 ‘옥호동천’ 네 글자는 신선 세계로 안내하는 문이 됩니다. 궁궐을 바로 가까이 둔 도시의 한복판에 고아한 원림(園林)이 홀로 다른 세양인양 펼쳐져 있습니다. 옥호정은 순조의 빙부였도 김조순이 여러 해에 걸쳐 꾸민 별서(別墅)였습니다. 정원에 심은 모란과 파초, 시렁을 타고 오른 포도나무에 이르기까지 김조순의 애정이 담긴 듯 느껴집니다. 백련봉에 올라 아침 해를 맞이하고 때로는 정자에 앉아 문인들과 시를 지었던 주인의 생활이 그림 속에서 떠오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2016년 이춘녕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의 유족에서 <옥호정도>를 기증받았습니다. 조선후기 경화세족(京華勢族)이 꿈꾸었던 도시 속 별천지를 처음으로 공개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실경산수화의 소재로는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명승과 함께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면서 살았던 별서(別墅), 그들의 모임을 그린 그림들이 많이 그려졌다. 그림에는 경치가 빼어난 곳에 있는 누각과 정자가 많이 등장하는데 그들의 삶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장소를 표현하고 있다.

<북새선은도>를 그린 한시각(1621~ ?)은 화원 가문출신으로 국가적 사업에 다수 참가하였다. 통신사로 일본을 다녀왔으며의 숙종 때 송시열의 초상화를 그렸다고 한다. 현존하는 초상화는 그의 작품을 모사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북새은선도>는 인물과 묘사가 명확하고 사실적인 표현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길주에서 과거 시험 장면>

OLYMPUS DIGITAL CAMERA<뒷편>

OLYMPUS DIGITAL CAMERA<함흥관에서 합격자 발표 장면>

OLYMPUS DIGITAL CAMERA<뒷편>

북새선은도(北塞宣恩圖), 한시각, 조선 1664), 비단에 색
현종 대의 화원인 한시각이 1664년 함경도에서 실시된 문무과 과거시험을 그린 기록화이다. 7미터에 달하는 두루마리는 ‘북새선은’이라는 제목 다음으로 길주(吉州)에서의 과거시험 장면과 함흥관에서 함격자를 발표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함경도는 산세가 험하고 기후와 풍토가 척박하여 사람이 살기 힘든 낙후된 지역으로 인식되어 왔다. 때문에 북쪽 변방에서 치러진 과거는 지역민을 위로하는 차원에서 행해져, 임금의 은혜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청록산수화법으로 길주와 함흥 지역의 관아와 산봉우리 등을 꼼꼼하게 채색하여 17세기 궁중기록화와 실경산수화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관아와 누정이 있는 그림
그림을 가만히 살펴보면 우리 땅에 들어선 관아와 누정(樓亭, 누각과 정자)이 보입니다. 관원들의 근무지인 관아는 공적인 업무를 보는 곳이자 왕을 향해 절을 올리는 망궐례(望闕禮)나 사신접대, 관료의 모임 등이 있었던 장소입니다. 반면 사방이 트인 누정은 업무에서 벗어나 주변의 좋은 경치를 감상하고 휴식을 취하거나 문예 활동을 하기에 좋은 곳이었습니다. 사뭇 다른 성격을 가진 관아와 누정에는 조선시대 선비 문화가 담겨 있습니다. 유교적 소양을 갖춘 선비들은 출세와 입신양명을 위해 공부하는 한편, 자연을 가까이 하고 사랑하며 그 가운데 자유롭고 유쾌한 마음을 길렀습니다. 과거 시험이 한창 치러지고 있는 함경북도 길주의 객사부터 한양의 청풍계(淸楓溪)에 위치한 장동김문의 누각까지 그림 속 장소를 천천히 둘러보시면서 빼어난 경치도 마음껏 감상해보시길 바랍니다. 손세기.손창근 기념실은 2018년 손창근 선생이 자신과 부친이 수집한 우리 문화재 300여점을 기증한 일을 기념하는 전시실입니다. 손세기.손창근 기증품을 포함한 이번 주제 전시는 1층 특별전시실에서 열리는 “우리 강산을 그리다: 화가의 시선, 조선시대 실경산수화”(2019.7.23 ~ 9.22)와 연결됩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화개현구장도(보물)>을 그린 이징(1581~ ?)은 왕실 출신의 화가이다. 산수화는 조선초기 안견파(安堅派)의 성향을 보여주고 있으며, 장식적인 취향이 짙은 이금산수화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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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개현구장도(花蓋縣舊莊圖), 그림 이징, 글씨 신익성, 조선 1643, 비단에 먹, 보물>

OLYMPUS DIGITAL CAMERA<그림 부분>

경상도 하동군 옆 화개현에 있는 정여창의 별장을 그린 그림이다. 정여창은 김종직의 문인으로, 지리산에 들어가 섬진 나루에 대나무와 매화를 심고 별장인 악양정(岳陽亭)을 지어 오경(五經)을 연구하였다. ‘화개현구장도’라는 제목 아래 별장이 그려졌으며 하단에는 그림으 제작 배경과 관련된 신익성의 글이 있다. 신익성은 선조의 사위로 글씨에 뛰어났고, 왕실 출신의 화원 이징과 가깝게 지냈다. 63세의 이징은 지리산에 있는 별장에 직접 가보지 않고 하동정씨 문중과 신익성의 말을 듣고 상상하여 그림을 그렸다. 실경산수화는 아니지만 조선 중기 산수화의 특징이 잘 나타난 별서유거도로, 당시 문인들이 바랐던 이상적인 은거지를 반영한 그림이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송도부 장원 급제자들의 모임(松都府壯元契會圖), 작자미상, 조선 1772년, 종이에 엷은 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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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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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담의 꽃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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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폭포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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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월대에서 옛일 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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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족사의 종소리 듣기>

1612년 송도에 근무했던 관원 네 명이 모두 장원 급제자였음을 기념하여 용두회(龍頭會)를 연 다음, 이를 기념하는 계회도병풍을 제작하였다. 160년이 지난 1772년, 송도 유수 홍이상의 7세손인 홍명한은 선조의 병풍이 파손되었음을 안타까워하며 6폭 병풍을 다시 제작하였다. 제1폭은 1612년 당시 송도 태평관에서 열린 용두회 장면이고, 제2폭에서 제5폭은 각각 <화담의 꽃놀이>, <박연폭포 감상>, <만월대에서 옛일을 회상>, <지족사의 종소리 듣기>이다. 사계절의 변화에 따른 송도의 명승명소를 그리며 각 폭에 서사정(逝斯亭), 범사정(泛槎亭), 만월대(滿月臺), 종고루(鐘鼓樓) 등의 누정을 표현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심사정(1707~1769년)은 조선중기 영의정을 지낸 심지원의 증손이다. 명문 사대부 출신이지만 과거나 관직에 오르지 못하고 일생 동안 그림을 그렸다. 어려서 정선에게 그림을 배웠으며 진경산수뿐 아니라 중국 절파화풍과 남종화풍을 받아들여 독자적인 화풍을 이루었다. 대표작으로 <강상야박도>, <파교심매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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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도(山水圖), 심사정, 조선 18세기, 종이에 엷은 색>

도롱이를 입고 소에 탄 인물로 보아 비 갠 후의 산수임을 알 수 있다. 중경(中景) 너머 성곽 안쪽으로 수목(樹木)에 가려진 가옥과 복층의 누각이 그려졌고 다층탑은 진한 먹으로 강조되었다. 한양 도성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화풍상 한양의 여덟 경치를 그린 <경구팔경도>와 유사하여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심사정은 18세기 활동한 사대부 화가로, 남종화풍을 변형하여 자신만의 화법을 형성하였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소나무와 계곡으로 둘러싸인 누정(松鷄樓亭圖), 이인상, 조선 1741년 이후, 종이에 엷은 색>

능호관 이인상은 명문가의 서얼 출신으로 고위직에 오르지는 못했으나 이름난 선비들과 폭넓게 교유하며 서화를 제작했다. 그의 벗 이윤영의 서재인 담화재(澹華齋)에서 자주 모임을 가졌는데, 이 그림 좌측에 “담화재에서 그렸다”고 적혀 있다. 소나무에 둘러싸인 누정에서 한 명의 인물이 흐르는 계곡을 내려다보고 있다. 다섯 그루의 소나무는 뿌리를 드러내거나 몸통이 휘어져 있으며 그 가지들은 한데 얽혀 있다. 이인상의 필력과 개성이 잘 담겨있는 부채그림이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장동팔경 중 창의문(彰義門)과 백운동(白雲洞), 정선, 조선 1749년대 이후, 종이에 엷은 색>

장동팔경은 서울 인왕산과 북악산 일대에 이르는 마을, 장동(현 효자동과 청운동 일대)의 여덟 군데 뛰어난 경치를 일컫는다. 장동은 조선시대 권문세가들이 살던 곳이있다. 정선 역시 이 지역에 거주하며 사대부들의 저택이나 이들이 즐겨 찾던 명승지를 팔경(八景)의 소재로 삼았다. 창의문은 한양 사소문 중 하나로 백악산과 인왕산 사이에 있으며, 인조반정 때 창의군이 이 문으로 들어와 반정에 성공하였다. 청풍계의 북쪽에 있는 백운동은 인왕산 동편 북쪽 끝자락에 위치한 마을로, 계곡이 깊고 바위 절벽이 아름다워 도성의 명승지로 이름이 높았다. 필치와 색채 사용이 매우 능숙하며 경관의 핵심과 운치를 잘 전달하고 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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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의 ‘장동팔경첩’ 중 ‘청풍계’>

OLYMPUS DIGITAL CAMERA<대은암과 청풍계(大隱巖, 淸楓鷄), 정황, 조선 18세기 후반, 비단에 엷은 색,>

정황은 정선의 손자로 호는 손암이며 정선의 화풍을 본받았다. 대은암은 백악산 남쪽 기슭, 육상궁 북쪽에 있는 큰 바위이다. ‘대은을 닮은 듯한 바위라는 뜻으로 남곤의 친구 박은이 바위에 붙여준 이름이다. 매일 밤늦게 퇴근하는 남곤이 알아봐주지 않아 이렇게 이름지었다고 한다. 청풍계는 인왕산에서 발원하여 동쪽 기슭으로 흘러내리는 계곡으로 김상용이 이곳에 터전을 마련한 후 안동김씨가 크게 세력을 펴고 살았던 곳이다. <대은암>과 <청풍계>는 <장동팔경첩>에 수록된 정선의 그림과 비교할 때 구도 및 화법이 상당이 유사하여 정선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용만승유첩(龍彎勝遊帖), 작가 미상, 조선 1723년, 비단에 색>

1723년 4월, 청나라 사신을 맞이하는 원접사(遠接使)가 된 조태억이 사신들이 입국하기 전 평안북도 의주 일대를 유람하고 이를 기념하여 제작한 서화첩이다. ‘용만’은 의주의 별칭으로, 압록강 하류에 위치한다. 중국과 조선의 국경에 자리잡고 있어 예로부터 군사적,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다. 이 서화첩은 유람한 관료들이 명단과 <통군정아회도(統軍亭雅會圖)>, <압록강유람도(鴨綠江流覽圖)>, <관기치마도(官妓馳馬圖)>로 구성되어 있다. 화면 상단에 통군정, 구룡정을 배치하여 정자에서 전체를 조망하는 시점으로 그려졌다. 의주의 경물과 건축의 명칭이 적혀 있어 당시 지형과 건물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관원들이 국가적 행사를 수행하는 도중에 승경지를 유람하고 그 모임을 그린점에서 한시각의 <북관수창록(1664년)>과 비교할 만하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죽서루도, 엄치우, 조선 19세기, 종이에 색>

삼척 죽서루를 측면에서 바라보고 그린 그림이다. 죽서루는 관동팔경의 하나로, 종종 문학과 그림의 대상이 되어 강세황, 김홍도 등도 이를 주제로 한 그림을 남겼다. 대부분의 화가들은 오십천 건너편에서 죽서루를 부감하거나 그보다 가까이에서 마주본 시선으로 그린 반면 엄치욱은 옆면에서 바라본 죽서루를 표현했다. 누각의 아래쪽으로 관아의 부속 건물 및 가옥들을 표현하고 절벽 아래로 배 한적을 배치하였다. 마치 북송대 문인 소식의 적벽부(赤壁賦)를 연상시켜 실경보다는 이상향을 담은 그림처럼 보인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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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상루도(百祥樓圖), 조익, 조선 17세기, 종이에 색>

평안남도 안주(安州)의 관아 건물의 하나인 백상루를 그린 것이다. 백상루는 고려시대에 건립된 누각이며, 관서팔경이 하나였다. 정(丁)자 형의 당당한 건물 형태에 청천강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위치에 서 있어서 지역을 대표하는 명승으로 ‘관서제일루(關西第一樓)’라 불렸다. 화면 중앙에 백상루를 부각시켜 건축적 특징과 그 위용을 압도적으로 표현했다. 진하게 채색한 백상루 뒤쪽으로 청천강이 흐르고 건너편의 마을과 원산(遠山)은 담채로 따뜻하게 그렸다. 화면 상단에는 고려 충숙왕의 시와 함께 문인화가 조익이 1644년에 충청도 신창(新昌)에서 그렸다는 내용의 글이 있다. 조익이 퇴거한 후에 기억을 되살려 그린 그림으로, 관아의 누각을 대형 화면에 단독으로 묘사한 매우 특별한 작품이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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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장각도(奎章閣圖), 전 김홍도, 조선 1776년, 비단에 색>

정조는 즉위한 해인 1776년 선왕인 영조의 글을 봉안하기 위해 창덕궁 후원에 규장각을 창건하였다. 이곳은 당대의 뛰어난 젊은 관료들이 연구에 전념한 공간으로, 중추적인 학술 기관이 되었다. 화면 중앙에 규장각이 실제보다 크게 그려졌고 사방에 부속 건물들을 에워싸듯 묘사되었다. 대각선 방향에서 일정한 각도로 시점을 이동하는 평행원근법(平行遠近法)으로 궁궐과 담장을 표현했으며 건축물과 수목(樹木)은 정밀하게 채색하였다. 규장각 뒤편으로 북악산을 그려 왕실의 전통과 권위를 강조했다. 왕실의 건축물을 대형 화면에 단독으로 묘사한 매우 특별한 작품이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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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흥본궁도(咸興本宮圖), 조중묵, 조선 19세기, 비단에 색>

함흥본궁은 태조 이성계가 즉위 이전에 살았던 집터에 지은 궁궐로, 현재 함경북도 함흥시 사포구역 소나무동에 위치한다. 태조가 양위한 뒤 머물렀던 곳으로 함흥차사의 일화가 깃들어 있다. 조중묵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점과 평행투시도법(平行透視圖法)을 사용하여 함흥본궁의 전체 모습을 그렸다. 태조와 4대 선조의 신위를 모신 오조성전(五祖聖殿)이 중앙에 위치하며 그 주변으로 태조가 직접 심은 소나무들이 그려졌다. 정전 앞 누각인 풍패루(豊沛樓), 이안청(移安廳) 등 전각을 비롯한 경내 주요 유적에 이름이 적혀 있다. 그림 상단에는 함경도 관찰사 조병식이 1889년에 쓴 발문이 있는데, 말라버린 소나무에서 새싹이 새로 돋아나게 된 일을 기록하였다. 그는 새로 돋아난 소나무처럼 한말의 쇠락해가는 조선이 부흥하길 기원했던 것이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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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폭 함흥 낙민루(樂民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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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폭 함흥 귀경대(龜景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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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폭 함흥 천불산(千佛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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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폭 함흥 일우암(一遇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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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폭 안변 국암(國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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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폭 안변 석왕사(釋王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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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폭 감산 괘궁정(掛弓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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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폭 명천 칠보산(七寶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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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폭 경성 무계호(無溪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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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폭 경원 두만강(豆滿江)>

함경도의 명승 열곳(關北十勝圖), 조중묵, 조선 1890년, 비단에 색
함경도의 명승 열 곳을 그리고 시를 더하여 열두 폭으로 만든 병풍이다. 1890년 함경도관찰사로 부임한 한장석이 조중묵에게 그림을 주문하고 시를 지었고, 그 시의 글씨는 아들 한광수가 썼다. 숙종 때 남구만이 함경도의 명승을 그림과 시로 엮은 <북관십경도기(北關十景圖記)>를 남긴 이래 회화식 지도 형식의 함경도 실경산수화가 유행하였다. 조중묵은 넓은 공간을 지도처럼 부감하면서도 산수는 남종문인화풍으로 그려 함경도를 신비롭고 이상적인 공간으로 표현하였다. 조중묵은 헌종 ~ 고종 때의 화원으로, 1888년 함경도 감영에 화사군관(畵師軍官)으로 파견되어 <함흥본궁도>를 그리기도 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실경산수화] 실경을 재단하다

여행에서 직접 보고 그린 밑그림과 기억 등을 바탕으로 화가는 실경산수화는 그린다. 실제 보았던 풍경을 표현하기 위해 화가는 적절한 시점을 선택하여그림을 그린다. 심원(深遠)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을, 평원(平遠)은 앞쪽에서 뒤쪽까지 꿰어보는 시점, 고원(高遠)은 아래에서 올려다 본 시점을 말한다. 조선시대 금강산과 관동팔경 기행은 많은 사람들의 소망이었다. 화가들은 자신이 눈으로 보았던 풍경을 남기고자 했으며, 많은 사람들은 그림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꼈을 것이다. 정신세계를 표현한 전통적인 산수화와는 달리 실제 풍경을 있는 그대로 아름답게 표현하고자 했던 욕구가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필운대에서 불꽃놀이(弼雲臺賞春圖), 정선, 조선 1740 ~ 50년대, 비단에 엷은색, 개인소장>

필운대는 현재 배화여고가 들어선 인왕산 남쪽 기슭으로, 조선시대에늘 한양 최고의 봄나들이 명소였다. 이 그림은 사직동 방면에서 인왕산을 오르며 필운대를 바라본 장면을 그린 것이다. 오른쪽 멀리 푸른색으로 그린 뾰족한 산은 관악산이고, 그 앞의 누각은 숭례문이다. 정선은 가까운 곳에 있는 마을은 안개로 가려 여백을 주는 동시에 멀리 있는 관악산을 화면 안으로 끌어와 근경과 원경의 풍경을 모두 아우르는 시점을 선택하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실경을 재단하다
여행에서 돌아온 화가는 밑그림(초본)과 기억을 바탕으로 실경산수화를 그립니다. 화가는 거대한 산수를 2차원 평면에 옮기기 위해서 화면의 구도를 고민합니다. 화가는 높은 봉우리를 아래에서 올려다보거나 넓은 평야를 저 멀리까지 바라보는 시점을 선택하게 됩니다. 심지어 새처럼 공중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으로 풍경을 표현할 수 도 있습니다. 또한 그림의 크기와 부채, 두루마리, 병풍 등 다양한 화면에 맞추어 경치를 마름질합니다. 금강산은 가장 인기있는 명승지이자 실경산수화의 소재로, 화가들은 산과 계곡, 바다가 어우러진 실경을 제각기 재단하여 여러 장면으로 그렸습니다. 실경산수화를 그리는 과정은 풍경 사진을 찍는 것과 닮았습니다. 셔터를 누르는 짧은 순간에 구도와 초점, 꾸밈효과를 고민하는 것처럼, 자신만의 시선으로 풍경을 담고 싶은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정선(1676~1759년)은 당시 인기였던 금강산, 관동팔경 등의 명승과 서울 주변 명소들, 지방관으로 근무했던 지역의 경치 등을 많이 그렸다. 초기에는 실경산수화에 가까운 그림을 그렸으며 점차 자연에서 받은 느낌을 재구성하여 독창적인 진경산수화로 발전시켰다.

OLYMPUS DIGITAL CAMERA<임진강에서의 뱃돌이(羽化登仙.熊淵繫續圖), 정선, 조선 1742년, 비단에 엷은색>

OLYMPUS DIGITAL CAMERA <임진강에서의 뱃돌이(羽化登仙.熊淵繫續圖), 정선, 조선 1742년, 비단에 엷은색>

1742년 10월 보름날 밤, 경기도 관찰사 홍경보는 임진강에 배를 띄워 유람했다. 유람에 동행했던 사람은 당대 최고의 시인 연천 현감 신유한과 양천 현령 정선이었다. 이 뱃놀이는 660년전, 북송의 소식이 <후적벽부>를 남겼던 고사를 재현한 문화행사였다. 정선은 우화정(羽化亭)에서 배를 띄우는 광경(오른쪽)과 웅연에서 닻을 내리는 장면을 그리면서 북종화와 남종화의 기법을 혼합하여 실경을 문인화풍으로 표현하였다. 중국 고전의 장소를 조선 강변으로 옮겨와 재구성한 운치 있는 그림이다. 원래 이 작품은 <연강임술첩(涎江壬戌帖)>이라는 제목의 화첩으로 제작되었는데 현재는 화면이 분리되어 액자 형태로 감상할 수 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정양사의 부채그림(正陽寺圖), 정선, 조선 18세기, 종이에 엷은 멱, 국립중앙박물관>

정양사는 내금강의 대표 사찰 중 하나이다. 정양사의 누각인 헐성루(歇惺樓)는 금강산을 한 눈에 바라다볼 수 있는 전망대로 유명했다. 정선은 금강내산의 총도식 구도를 기본으로 하면서 정양사를 화면 앞으로 바싹 당겨, 감상자가 마치 헐성루나 그 앞에 선비들이 서 있는 천일대(天日臺)에서 금강산을 바라보는 것처럼 표현했다. 금강산의 바위 봉우리들은 부채 끝선을 따라 둥글게 둘러졌다. 선면(扇面)은 위쪽으로 넓게 확장되는 형태로 사람의 시야 범위와도 유사하여 실경의 현장감을 잘 살릴 수 있는 특징이 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해인사의 부채그림(海印寺圖), 정선, 조선 18세기, 종이에 엷은 색, 국립중앙박물관>

정선은 금강산과 한양 그림으로 잘 알려졌지만 영남 지역의 경치도 화폭에 담았다. 그는 1721년부터 1726년까지 하양(河陽, 지금의 경북 경산시)현감을 지냈는데, 합천 해인사를 담은 이 부채 그림은 그 무렵에 그린 것이다. 정선은 해인사 주변의 가야산 풍경까지 화면에 담아내기 위해 부감시를 취하였다. 그 결과 사찰 입구의 홍하문(紅霞門)부터 가장 안쪽에 자리한 장경판전까지 해인사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부채의 반원형 화면을 이용해 단풍이 붉게 묽든 가을 산사의 정취를 한껏 담았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김윤겸(1711~1775년)은 정선과 함께 18세기에 활동했던 화가로 김상헌의 손자인 김창업의 서자이다. 김응환 등과 함께 정선파를 형성했으나 자신의 화풍을 갖춘 화가로 평가받고 있다. 금강산, 한양 근교, 단양, 영남지방 등 명승을 여행하면서 그림을 그렸다. 실경을 대담하게 생략하면서 입체감을 가미시킨 표현 등이 특징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진주담의 부채 그림, 김윤겸, 조선 1756년, 종이에 엷은 색, 국립중앙박물관>

금강산 만폭동에 위치한 진주담에 쏟아지는 물줄기와 소용돌이치는 물의 형세를 간결한 필선으로 리듬감 있게 묘사하였다. 정선의 선면화는 부감시로 넓은 공간을 재구성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김윤겸은 한눈에 들어오는 실제 풍광을 그대로 그린 듯 현실적인 시점을 채택하였다. 너럭바위에 앉아 진주담을 바라보는 인물은 화가 자신의 시점을 은유한 것이다. 진주담을 그린 현존하는 실경산수화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주목된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하룡유담, 김윤겸>

OLYMPUS DIGITAL CAMERA<극락암도, 김윤겸>

영남지역 명승 그림(嶺南紀行畵帖), 김윤겸, 종이에 엷은색, 동아대석당박물관, 보물
영남 지방은 한양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조선시대 탐승객의 발길이 드물었다. 이 화첩에 그려진 부산과 경상도 일대는 실경산수화의 대상으로는 거의 주목되지 않았던 장소이다. 김윤겸은 1765년경 경상도 진주목에 속한 소촌역 찰방(察訪)을 지낼 때 영암 일대를 탐방한 것으로 추정된다. 화첩 마지막 면의 좌우에는 지리산 계곡인 함양의 하룡유담과 절벽 위 암자인 극락암이 각각 펼쳐진다. <극락암도>는 왼편에 거대한 절벽과 작은 암자를 대비시켜 간결하게 묘사했고, 오른편 나머지 공간은 겹겹이 멀어져가는 산봉우리로 채웠다. 옅은 푸른색으로 채색된 끝없는 덕유산 자락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지리산 전경, 김윤겸, 조선 18세기, 종이에 엷은 색, 국립중앙박물관>

금대암(金臺庵)에서 바라본 지리산의 모습이다. 금대암은 경상남도 함양에 위치한 사찰로, 천왕봉에서 이어지는 지리산 북쪽 자락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화가는 자연스러운 부감시로 지리산의 능선과 칠선계곡의 물길을 굽이굽이 묘사하였다. 넘실대듯 이어진 부드러운 봉우리는 토산의 특징이며, 계곡을 따라 숨은 듯 작게 묘사한 마을은 지리산의 거대한 규모를 강조한다. 지리산은 명성에 비해 조선시대 실경산수화에서 널리 다루어지지 않았다. 이 그림은 김윤겸이 진주의 소촌역 찰방을 지낼 때 영남의 곳곳을 사생한 그림 중 하나이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단양의 사인암과 운암(舍人巖, 雲巖), 김윤겸, 조선 1763년, 종이에 엷은 색, 국립중앙박물관>

김윤겸은 서울의 백악산 뿐 아니라 충청북도 단양의 사인암, 운암, 석문과 제천의 후선각(候仙閣)을 사인암과 운암은 그 형태가 기이한 암석으로, 근방에 흐르는 남조천과 어루저지며 아름다운 풍치를 더한다. 김윤겸은 단순하고 각진 모양으로 바위의 형태를 잡고 먹과 청색의 담채로 음영을 넣었다. 나뭇잎은 짧은 선이나 점으로 간략하게 처리하였다. <사인암도>에는 너럭바위에서 물을 바라보는 인물과 차를 끓이는 시동을 그려 명승지에서의 풍류를 더하였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극락암, 김희성>

김희성의 그림모음, 김희성 등, 조선 18세기, 종이에 엷은 색, 개인소장
김희성의 그림과 그가 수집한 그림들을 모아 만든 화첩이다. 그 가운데 <용음뢰>, <화암>, <극락암>은 경상남도 함양군 안음(安陰, 안의면)의 명승을 그린 그림이다. 김희성은 산과 바위에 음영을 가해 입체감을 나타냈고 전체적으로 녹청색을 옅게 칠해 여름철의 분위기를 잘 살렸다. 백운산의 높은 바위 위에 극락암이 있고 그 뒤편으로 바위 봉우리들이 그려졌다. 산 중턱의 길을 따라 승려와 짐꾼이 이동하고 있다. 김희성의 <극락암도>는 여운을 강조한 김윤겸의 그림과 달리 설명적인 느낌이 강하다. 화첩 왼쪽 가장자리에 적힌 화평을 통해김희성의 그림을 감상한 강세황이 안음의 명승에 가보고 싶어했음을 알 수 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 강세황의 평, 안음에 이러한 절경이 있지만 직접 가보지 못해 안타깝다.-

OLYMPUS DIGITAL CAMERA<묘길상, 김윤겸>

OLYMPUS DIGITAL CAMERA<장안사도, 김윤겸>

내금강의 명승그림(蓬萊圖券), 김윤겸, 조선 1768년, 종이에 엷은 색, 국립중앙박물관
내금강의 명승 여덟 폭이 포함된 화첩이다. 김윤겸은 장안사에서 출발해 묘길상(妙吉祥)에 이르는 내금강의 명승지를 그렸고, 불게 채색된 단풍은 가을의 정취를 전해준다. <장안사도>는 정선의 그림을 충실히 계승하여, 당시에는 이미 사라진 만천교도 그려 넣었다. 김윤겸은 전형적인 구도를 따르면서도 장안사의 뒤쪽 건물을 지붕만 보이도록 겹쳐 그리는 등 전통적인 부감시보다는 수평시를 사용하였다. <묘길상도>는 만폭동 벼랑에 새겨진 고려의 마애불을 그린 것이다. 경물을 추상적으로 단순화하고 엷은 채색으로 서정성을 불어 넣은 수법에 김윤겸의 개성이 잘 나타난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김응환(1742~1789년)은 조선후기 도화서 화원을 다수 배출한 개성 김씨 집안의 핵심적 인물로 <금강산화첩>, <금강전도> 등을 그렸다. 정조의 명으로 김홍도, 강세ㅐ황과 함께 금강산과 관동팔경을 여행하며 실경을 그렸다. 남종화법과 진경산수에 모두 능했으며 정선의 화풍을 계승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내원통암>

OLYMPUS DIGITAL CAMERA<명운담>

OLYMPUS DIGITAL CAMERA<마하연>

OLYMPUS DIGITAL CAMERA<옹천>

OLYMPUS DIGITAL CAMERA<해산정>

금강산 유람 기념 그림(東遊帖), 작가 미상, 조선 1825 ~ 1838년경, 종이에 색, 성균관대학교박물관
이풍익이 1825년 8월에 금강산을 유람하고 지은 28점의 시문에 금강산 실경산수화를 엮어 만든 시화첩이다. 각 장면은 <해동명산도첩> 등 김홍도의 금강산 그림과 흡사하다. 19세기에는 김홍도를 모사한 그림으로 금강산 유람을 기념하는 서화첩을 꾸미는 일이 크게 유행하였다. 이 화첩에서 화가는 구도와 필법 등 김홍도의 화풍을 충실하게 모방하였다. 필치가 다소 섬약한 대신 채색을 적극적으로 구사하여 장식적인 인상을 준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금강산 전도, 김응환, 조선 1772년, 종이에 엷은 색, 개인 소장>

김응환이 김홍도를 위해 정선의 <금강전도>를 모방하여 그린 그림이다. 금강산의 전모를 부감시로 종합한 구도와 토산은 미점(米點)으로, 암산은 수직준(垂直皴)으로 구분하여 표현한 수법은 정선의 화풍과 유사하다. 그러나 봉우리 사이의 옅은 안개와 부드러운 담채 효과는 김응환의 새로운 해석에 따른 것이다. 여유있는 공간 구성과 부드러운 필선은 정선과 구별되는 김응환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단발령(斷髮嶺>

OLYMPUS DIGITAL CAMERA<장안사(長安寺)>

OLYMPUS DIGITAL CAMERA<명경대(明鏡臺)>

OLYMPUS DIGITAL CAMERA<문탑(門塔)>

OLYMPUS DIGITAL CAMERA<증명탑(證明塔)>

OLYMPUS DIGITAL CAMERA<영원암(靈源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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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불암(三佛庵)>

OLYMPUS DIGITAL CAMERA<백화암부도(白華庵浮圖)>

OLYMPUS DIGITAL CAMERA<헐성루(歇惺樓)>

OLYMPUS DIGITAL CAMERA<금강문(金剛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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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통암(圓通庵)>

OLYMPUS DIGITAL CAMERA<수미탑(須彌塔)>

OLYMPUS DIGITAL CAMERA<분설담(噴雪潭)>

OLYMPUS DIGITAL CAMERA<보덕암(寶德庵)>

OLYMPUS DIGITAL CAMERA<마하연(摩訶衍)>

OLYMPUS DIGITAL CAMERA<묘길상(妙吉祥)>

OLYMPUS DIGITAL CAMERA<비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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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경대(萬景臺)>

OLYMPUS DIGITAL CAMERA<중내원(中內院)>

OLYMPUS DIGITAL CAMERA<유점사(楡岾寺)>

OLYMPUS DIGITAL CAMERA<하발연(下鉢淵)>

OLYMPUS DIGITAL CAMERA<신계사(神溪寺)>

OLYMPUS DIGITAL CAMERA<비봉폭(飛鳳瀑)>

OLYMPUS DIGITAL CAMERA<옥류동(玉流洞)>

OLYMPUS DIGITAL CAMERA<구룡연(九龍淵)>

OLYMPUS DIGITAL CAMERA<만물초(萬物草)>

OLYMPUS DIGITAL CAMERA<옹천(甕遷)>

OLYMPUS DIGITAL CAMERA<백정봉(百鼎峰)>

OLYMPUS DIGITAL CAMERA<대호정(帶湖亭)>

OLYMPUS DIGITAL CAMERA<현종암(懸鐘巖)>

OLYMPUS DIGITAL CAMERA<총석정(叢石亭)>

OLYMPUS DIGITAL CAMERA<낙산사(洛山寺)>

OLYMPUS DIGITAL CAMERA<경포대(鏡浦臺)>

OLYMPUS DIGITAL CAMERA<망양정(望洋亭)>

금강산과 강원지역 명승그림(海嶽全圖帖), 김응환, 조선 1788 ~1789년, 비단에 엷은 색, 개인 소장
김응환이 1788년에 정조의 명으로 김홍도와 함께 금강산을 유람한 경험을 바탕으로 제작한 화첩이다. 총 60면의 그림 가운데 다른 화가의 금강산 그림에는 없는 용곡담(龍谷潭), 자운담(慈雲潭), 무봉폭(舞鳳瀑), 백정봉(栢鼎峰)이 포함되어 있다. 화면을 꽉 채운 구도에 경물을 대담하게 단순화시켰다. 화면 전반의 능숙한 농담 조절과 감각적인 채색에 김응환의 개성이 드러난다. 김응환은 ‘산수에 정통’하지만 ‘정밀한 그림에 맞지 않다.’는 평을 들었는데, 거침없는 필치의 이 화첩의 특징과 상통한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김하종(1793~?)은 화원집안 출신으로 벼슬은 첨사를 지었다. 인물화에 뛰어나 순조와 철종 어진 제작에 참여하였다. <해산첩(海山帖)>은 그의 대표작으로 금강산과 설악산 등 영동지방의 빼어잔 경치를 담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영원동(靈源洞)>

OLYMPUS DIGITAL CAMERA<구구동(九九洞)>

OLYMPUS DIGITAL CAMERA<마하연(摩訶衍)>

OLYMPUS DIGITAL CAMERA<총석(叢石)>

OLYMPUS DIGITAL CAMERA<계조굴(繼祖窟)>

OLYMPUS DIGITAL CAMERA<설악경천벽>

강원지역 명승 그림(海山圖帖), 김하종, 조선 1816년, 비단에 엷은 색, 국립중앙박물관
금강산과 관동, 설악산의 명승을 포괄하는 25면의 산수화로 구성된 화첩이다. 규장각의 관료 이광문은 춘천 부사가 되자 금강산 유람을 계획하며 24세의 화원 김하종을 데리고 가 실경산수를 그리게 하였다. 김하종은 대대로 화원을 배출한 개성김씨의 후손으로, 작은 할아버지는 정조의 명으로 금강산을 그렸던 김응환이다. 김하종은 장소가에 어울리는 시점과 구도를 고민하여 화면마다 각기 다른 시선으로 실경을 그렸다. 먼 곳을 옅게 채색하는 대기원근법으로 원근감을 나타냈고, 수묵에 청록색을 더함으로써 화면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화첩에 포함된 설악산 그림은 19세기 유일한 설악산 실경산수화로서 그 의미가 크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김홍도 필 병진년 화첩 (金弘道 筆 丙辰年 畵帖, 보물)은 김홍도가 그린 산수화와 풍속화 등을 모은 화첩이다. 총 20면으로 구성된 이 화첩은 종이에 먹을 그린 후 엷게 색칠하였다. 그 중 사인암을 그린 그림은 김홍도가 51세 때 그린 것으로 그의 화풍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영랑호(永郞湖)>

OLYMPUS DIGITAL CAMERA<도담삼봉(島潭三峯)>

OLYMPUS DIGITAL CAMERA<사인암(舍人巖)>

OLYMPUS DIGITAL CAMERA<옥순봉(玉荀峯)>

충청지역 명승 그림(玉荀峯, 舍人巖, 島潭三峯,永郞湖圖), 김홍도, 조선 1796년, 종이에 엷은 색, 개인 소장, 보물
김홍도가 그린 <병진년화첩>에는 실경산수화 네 점이 포함되어 있다. 옥순봉과 사인암, 도담삼봉은 단양팔경에 해당한다. 김홍도는 1791 ~ 1795년에 연풍 현감으로 재직하면서 인근의 단양 실경을 사생하였다. <옥순봉도>는 배를 타고 가까이 다가가서 올려다본 절벽의 웅장함을 강조했다. <도담상봉도>는 원경의 봉우리를 매우 옅게 채색한 대기원근법이 돋보인다. 사선으로 공가느이 후퇴를 강조하고 화면에 동적인 이미지를 부여한 수법은 서양화의 선원근법을 응용한 것이다. 김홍도는 경물 사이를 여백으로 남기고 능수능란하게 먹과 담채를 선염하여 화면에 시적 감흥을 불어넣었다. 사실성과 서정성을 함께 성취한 김홍도 만년의 걸작이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구룡폭(九龍瀑圖), 엄치욱, 조선 19세기 전반, 종이에 엷은 색, 국립중앙박물관>

구룡폭은 외금강에 위치한 폭포로, 많은 화가들이 그린 소재였다. 엄치욱의 그림은 마치 스냅사진처럼 폭포 상단부터 중단까지만 화면에 담았다. 각지고 날카로운 윤곽선과 물기 있는 먹을 아래로 내려 긋는 기법을 구사하며 화강암 절벽 면을 강조하였다. 엄치욱은 조선 말기의 화가로, 현존하는 작품들은 대부분김홍도 화풍을 충실히 따랐다. <구룡폭도>는 김홍도의 작품에 비해 암벽의 양감이나 세부 묘사에 대한 관심이 덜하지만 과감한 필치의 반복과 검은 묵면이 두드러진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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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옥정(漱玉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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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담(落花潭)>

수옥정과 낙화담(漱玉亭.落花潭圖), 이인문, 조선 18세기 후반 ~ 19세기 전반, 비단에 엷은 색, 국립중앙박물관
충북 괴산의 수옥 폭포와 경남 합천 홍류동(紅流洞) 계곡의 명소인 낙화담을 그렸다. 이 두 곳은 유람과 기행문학의 성행에 따라 18세기 이후 새롭게 찾아낸 명승이다. 화가는 실경을 사행하여 사실적인 화면을 구성하였지만 남중화풍으로 그렸기 때문에 이 그림은 다소 이상화된 산수화처럼 느껴진다. 이인문은 정조 떄의 화원으로 김홍도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산수화에 높은 평가를 받았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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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우렵(西城羽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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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품국(閒亭品菊)>

수원 화성에서의 사냥과 국화감상(西城羽獵.閒亭品菊圖), 김홍도, 조선 1796년, 비단에 엷은 색, 서울대박물관
수원 화성 건설을 기념하여 화성의 가을 경치를 그린 <추팔경도(秋八景圖)>의 일부로 알려진 그림이다. <서성우렵도>는 서장대와 화서문 밖 들판에서 벌어진 사냥이 주제이다. 경물을 부감시로 나타내고 대기원근법으로 멀리 광대한 공간감을 보여준다. <한정품국도>는 행궁 후원의 정자인 미로한정(未老閒亭)에서 국화를 감상하는 사람들을 묘사하였다. 화면의 아래위는 여백으로 남겨 막힘없는 공간감을 연출하였다. 공적인 목적으로 제작되었지만 서정이 넘치며, 구도와 필치에서 김홍도의 원숙한 기량을 느낄 수 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19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실경산수화] 경치를 스케치하다.

조선시대 화가들은 후원자의 유람길에 동행하거나 지인의 지방관 부임에 동행하는 등의 방법으로 여행을 나섰다. 경치는 현장에서 간략하게 초본을 그렸는데 경치의 특색, 화가의 눈에 처음 보이는 인상 등 핵심적인 부분을 스케치하였다. 전시에서는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강세황, 김홍도, 정수영이 그린 풍경 스케치를 전시하고 했는데 실제 경치를 대하는 화가의 접근 방식 등을 살펴볼 수 있는데 스케치 자체로도 뛰어난 작품을 만들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극락암(極樂庵), 용추(龍湫), 실상사(實相寺), 문현(文縣)>,

OLYMPUS DIGITAL CAMERA<기행문>

OLYMPUS DIGITAL CAMERA<우금암( 禹金庵)>

부안여행스케치, 강세황, 조선 1770 ~ 1771년, 종이에 먹, 로스엔젤레스카우티미술관
전라북도 변산의 명승을 간략하게 그린 두루마리 그림이다. 강세황은 차남 강완이 부안 현감으로 부임하자 이를 계기로 변산 일대를 유람했다. 여행 경로를 따라 우금암, 문현, 상사, 용추, 극락암을 그렸고 그림 중간에 기행문을 썼다. 강세황은 용추 폭포에 이르기 위해 가파른 비탈길을 엄금엉금 기어올랐다고 적었는데, 그림에서도 경사가 심한 좁은 길로 표현하였다. 경물을 세밀하게 묘사하지 않고 현장에서 느낀 전체적인 인상을 거칠고 단순하게 표현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금강산 유람 서화첩, 강세황, 조선 1788년경, 종이에 엷은 색, 국립중앙박물관>

강세황은 장남 강인이 강원도 회양 부사로 근무하던 1788년에 회양과 금강산을 유람하였다. 이 여정에 정조의 어명으로 금강산 실경을 그리러 온 김홍도, 깅응환 등이 동행하였다. 화첩에 수록된 일곱점의 그림 중 앞부분에 수록된 <백산>, <회양관아>, <학소대>, <의관령>은 강셍황이 김홍도 일행을 기다리며 회양에서 직접 본 경치를 그린 것이다. 특히 학소대는 강세황이 몇 번씩 올라, 그 곳에서 본 경치를 사실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장소이다. 강세황은 평담한 필치와 무기 있는 먹으로 실제 경치를 담담하게 그려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해동명산도(海東名山圖)>는 김홍도와 김응환은 정조의 명을 받고 금강산과 강원도 일대의 명승지를 먹으로 간략하게 그린 그림이다. 총 32면의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방명, 명승지, 번호가 적혀 있어 그린 위치와 순서를 알려주고 있다.  마지막 <피금정>에 ‘六十’이 적혀 있어 60면 이상으로 추정된다. 금강산과 관동팔경을 포함하여 금강산에서 평해 월송정까지 명소 대부분을 국왕을 위해 세밀하게 사실적으로 그렸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10. 경포대(鏡浦臺), 강원지역 명승 스케치, 김홍도, 조선 1788년 이후, 종이에 먹, 국립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11. 호해정(湖海亭)>

OLYMPUS DIGITAL CAMERA<12. 삼척 능파대(凌波臺)>

OLYMPUS DIGITAL CAMERA<15. 울진 망양정(望洋亭)>

OLYMPUS DIGITAL CAMERA<16. 문암(門巖)>

OLYMPUS DIGITAL CAMERA<18. 평해 월송정(越松亭)>

OLYMPUS DIGITAL CAMERA<19. 양양 낙산사(洛山寺)>

OLYMPUS DIGITAL CAMERA<24. 계조굴(繼祖堀)>

OLYMPUS DIGITAL CAMERA<17. 현종암(懸鐘巖)>

OLYMPUS DIGITAL CAMERA<28. 영랑호(永郞湖)>

OLYMPUS DIGITAL CAMERA<31. 해산정(海山亭)>

OLYMPUS DIGITAL CAMERA<32. 해금강전면(海金剛前面)>

OLYMPUS DIGITAL CAMERA<치폭(馳瀑)>

OLYMPUS DIGITAL CAMERA<36. 만물초(萬物草)>

OLYMPUS DIGITAL CAMERA<37. 옹천(甕遷)>

OLYMPUS DIGITAL CAMERA<38. 총석정(叢石亭)>

OLYMPUS DIGITAL CAMERA<43. 삼불암(三佛巖)>

OLYMPUS DIGITAL CAMERA<44. 백화암부도(百華庵浮屠)>

OLYMPUS DIGITAL CAMERA<60. 피금정(披襟亭)>

1788년 9월경, 도화서 화원이었던 김홍도와 김응환은 정조의 명으로 금강산과 강원도 일대의 명승을 그려오기 위해 길을 떠났다. 이 화첩은 여정 중에 그렸거나 그 직후 수정과 선별을 거친 초본을 모은 것으로 추정된다. 붓과 먹을 사용해서 윤곽선 위주로 간략히 그렸으면서도 경물의 특징을 정확하게 포착하였다. 다양한 구도와 수준 높은 필법을 통해 김홍도가 정조에게 진상한 금강산 실경사수의 면모를 짐작해볼 수 있는 초본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한임강유도권(漢臨江遊圖捲)>은 문인화가였던 정수영이 한강과 임진강 일대를 여행하면서 보았던 풍경을 간략하게 초안으로 그린 그림이다. 여행현장에서 즉석으로 자유분방하게 그린 그림으로 사실적인 묘사보다는 자신이 보았던 경치의 느낌을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재간정(在澗亭),  한강과 임진강 유람 스케치, 정수영, 조선 1796 ~ 1797년, 종이에 엷은 색, 국립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여주읍치(驪州邑治)>

OLYMPUS DIGITAL CAMERA<신륵사(神勒寺), 동대(東臺)>

OLYMPUS DIGITAL CAMERA<신륵사, 동대, 동적석(東積石)>

OLYMPUS DIGITAL CAMERA<휴류암(鵂鶹巖)>

“이 바위를 지날 때 홀연히 현과 피리 소리가 들려 그 소리를 찾아 배를 댔다. 고기 잡는 노인이 물가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앉아 손으로는 해금을 타고 입으로는 풀피리를 불고 있었다. 이야기를 하며 술을 주고 드디어 함께 배를 타고 대탄에 있는 이상사 집으로 향하였다. 이 여행은 병진년(1796년) 여름, 동감인 이윤일, 임학이와 함께 물길을 거슬러 올라 청심루에서 노닐었을 때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수청탄(水靑灘) 헌적별업(軒適別業, 여춘영의 별장)>

OLYMPUS DIGITAL CAMERA<수청탄(水靑灘)>

OLYMPUS DIGITAL CAMERA<흥원창(興元倉)>

OLYMPUS DIGITAL CAMERA<신륵사(神勒寺)>

OLYMPUS DIGITAL CAMERA <신륵사(神勒寺)>

OLYMPUS DIGITAL CAMERA<여주읍내(驪州邑內)>, 청심루(淸心樓),두멍암>

OLYMPUS DIGITAL CAMERA<용문산(龍門山)>, 추읍산(趨揖山)>

OLYMPUS DIGITAL CAMERA<고산서원(孤山書院)>

OLYMPUS DIGITAL CAMERA<미호(美湖), 꽃마을(花塢)>

OLYMPUS DIGITAL CAMERA<삼각(三角), 도봉(道峰)>

OLYMPUS DIGITAL CAMERA<수락산(水落山)>

OLYMPUS DIGITAL CAMERA<용당우(龍堂隅)>

OLYMPUS DIGITAL CAMERA<심씨정자(沁氏亭子)>

OLYMPUS DIGITAL CAMERA<우미천(牛尾川)>

한강과 임진강 유람 스케치, 정수영, 조선 1796 ~ 1797년, 종이에 엷은 색, 국립중앙박물관
한강과 임진강을 따라 배로 유람하며 바라본 경치를 사생한 그림이다. 문인화가였던 정수영은 종이를 이어 붙인 긴 두루마리를 가지고 다니며 마음에 드는 경치가 나타날 때마다 사생했던 것으로 보인다.. 화가는 잘 알려진 명승대신 자신의 시선이 머문 장소를 그렸다. 화면 곳곳에 써 넣은 글에서 정수영이 각 장면을 선택한 이유가 드러난다. 서툰 듯 즉흥적인 붓질과 옅은 채색은 여행의 현장감을 생생히 전달해 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금강산 사생 초본을 바탕으로 제작한 화첩, 정수영, 조선 1799년, 종이에 엷은 색, 국립중앙박물관>

현장에서 스케치를 바탕으로 그린 금강산 실경산수화이다. 1797년 가을, 정수영은 한강 유람에도 동행했던 여춘영과 함께 금강산을 여행하고 초본을 그려왔다. 그 후 6개월에 걸쳐 금강산과 해금강의 경치를 그리고 기행문을 더하여 1799년에 이 서화첩을 완성했다. 펼쳐진 면에는 외금강에 위치한 구룡폭포를 ‘가까이서 본 경치’와 ‘마주 본 경치’가 각각 그려져 있다. 왼쪽 면의 ‘마주 본 경치’는 폭포 동쪽 반석에 앉아서 관찰한 것으로, ‘가까이서 본 경치’보다 조금 더 떨어진 위치에서 포착했기에 폭포 위쪽의 암석 등도 표현되었다. 구룡폭포를 여러 각도에서 바라본 정수영의 남다른 관찰력과 개성을 보여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화가, 그곳에서 스케치하다.
이름난 경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쉽지 않았습니다. 도화서 화원은 업무에 매여 여러 날 자리를 비우기 어려웠습니다. 비용과 시간에 대한 부담은 문인화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들은 후원자의 유람길에 동행하거나 자신 또는 지인의 지방관 부임을 기회 삼아 여행을 떠났습니다. 화가는 길 위에서 마주친 우리 강산을 종이에 담았습니다. 현장에서 간략하게 그리는 초본에는 경치를 보는 화가의 즉각적인 반응이 담겨 있습니다. 풍경의 요점을 빠르게 잡아내 그리고, 틀린 부분은 수정하거나 먹으로 나타낼 수 없는 색채의 이름을 적었습니다. 또 장소의 이름과 함께 현장에서 겪은 일과 떠오른 감정을 화면에 써 놓기도 했습니다. 실경산수화의 초본은 화가의 시선을 생생히 증언하는 또 하나의 완결된 작품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2. 홈페이지, 국립중앙박물관,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실경산수화] 우리 강산을 그리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019년 여름 옛사람들이 경험한 경치를 간직하고자 그린 그림들을 살펴보는 특별전 <우리 강산을 그리다. 화가의 시선, 조선시대 실경산수화>가 개최되었다. 실경산수화(實景山水畵)는 고려와 조선시대에 우리나라 자연경관과 명승지를 그린 산수화이다. 주로 아름다운 경치와 지리적 특징 등을 표현하기 위해 그린 그림이다. 고려 때 그린 그림들은 북송(北宋) 화단에서도 높이 평가받았다고 한다. 이런 전통은 조선에도 이어져 새왕조의 기상과 위용을 높이고 사대부들 취향에 맞추어 더욱 성행하였다. 명승을 그린 그림은 선물 등으로 제작된 <금강전도>가 주를 이루었으며 한양 주변의 명소와 지방관들이 부임지 주변 경치를 그린 그림들이 많이 그려졌다. 현재 남아 있는 작품은 많지 않으며 조선중기 조세걸이 그린 <곡운구곡도첩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는 조선후기 시대적 배경과 화풍에 의해 완성된 진경산수화 발달의 토대가 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단발령에서 바라본 금강산, 정선, 조선 1711년, 비단에 엷은 색, 국립중앙박물관, 보물>

단발령망금강산(斷髮嶺望金剛山)
단발령에서 금강산의 장관을 바라보는 정선 일행이 보입니다. 36세 대 처음 금강산을 여행한 정선은 기대감과 설렘을 갖고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단발령으로 올라갔습니다. 금강산은 중국인들까지 ‘고려국에 나서 금강산을 한번 보았으면’ 할 정도로 유명한 산이었습니다. 정선은 화면을 대담하게 사선으로 나누어 앞쪽에 단발령을 자세히 그리고 멀리 금강산을 표현했습니다. 중요한 부분을 과장하고 중간은 구름과 안개로 덮어 생략하여 금강산을 바라본 첫 느낌을 강렬하게 담아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담무갈보살 예배도(보물)>는 1307년 작가 노영이 흑칠한 나무바탕 위에 금니로 그린 불화이다.고려 태조가 금강산 배재(절고개)에서 다무갈보살에게 예경하였다는 이야기를 그린 그림이다.  세부표현에서 북송대 화풍을 반영하고 있으며 현존하는 작품이 없는 고려시대 산수화풍을 알 수 있게 해 주는 중요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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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이 그려진 담무갈보살도(曇無竭菩薩圖), 노영, 고려 1307년, 흑칠한 목판에 금니, 중앙박물관, 보물>

금강산의 뾰족한 봉우리가 배경으로 그려진 고려시대의 불화이다. 담무갈보살이 팔대보살을 거느리고 서 있고, 그 아래 절벽에 고려 태조가 예배를 올리고 있다. 이는 태조가 금강산을 오르던 중 금강산에 머무는 담무갈보살이 광채를 내며 모습을 드러내자 태조가 땅에 이마를 대고 절하여 정양사를 중창했다는 <동국여지승람> 내용과 관련이 있다. 내리그은 선으로 표현한 금강산의 봉우리는 실경산수화의 전통이 고려시대로부터 이어져 왔음을 보여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신증동국여지승람, 조선 1530년 간행, 1611년 인쇄, 종이에 목판인쇄, 국립중앙박물관>

조선시대 지리지인 <동국여지승람>(1481년)의 증보판으로, 조선 전기의 사회상을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자료이다. 55권 중 47권은 강원도 회양도호부로 시작하는데, ‘산천(山川)’조에 금강산이 기록되었다. 금강산의 거리, 방향 등 지리정보와 함께 금강산을 탄탄한 여러 시문이 수록되었다. 금강산을 유람하고 시문을 짓는 전통이 고려부터 조선까지 계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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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포대와 총석정, 작가 미상, 조선 16세기 중반, 비단에 엷은 색,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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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포대와 총석정, 작가 미상, 조선 16세기 중반, 비단에 엷은 색, 국립중앙박물관>

1557년 금강산과 강원도 지역을 유람한 후 제작한 경포대와 총석정 그림이다. 현존하는 강원도 지역 실경산수화 가운데 가장 연대가 올라가는 작품으로 최근 기증을 받아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경포대도>는 화면 하단의 죽도, 강문교에서 상단의 경포대와 오대산을 올려다보는 구도로 그렸는데, 이는 18세기 이후 제작된 경포대도의 구도와 상반된다. <총석정도>에서는 돌기둥 아랫부분은 희게, 윗부분은 검게 칠해 상승감을 고조시키고 돌기둥 사이로 물결을 그려 경물 간의 깊이감을 표현하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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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에 있는 김한명의 은거지, 전충효, 조선 17세기 후반, 비단에 엷은 색, 개인 소장>

전라남도 화순에 있던 석정 김한명(1661~1718년)의 저택과 주변 경관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부감시(俯瞰視)로 그린 반면 저택 뒤쪽의 산은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시점으로 그려, 한 화면에 여러 시점이 섞여 있다. 풍수사상에 따라 산세와 물길의 흐름을 표현했으며 넓은 지역을 담기 위해 회화식 지도의 전통적인 형식을 사용하였다. 직업화가였던 전충효가 김한명 또는 광산김씨의 주문을 받아 제작한 것으로, 화면 상단에는 김씨 가문이 대대로 살았던 광주읍성이 강조되었다. 선비의 거처를 지도식으로 표현한 실경산수화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죽서루, 강원지역 명승 열 곳, 작가 미상, 조선 1746 ~ 1748년경, 비단에 색, 서울대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강원도 관찰사 김상성(1703~1755)이 지역의 명승을 돌아보고 제작한 시화첩이다. 시중대(侍中臺), 총석정, 삼일포, 낙산사, 경포대, 죽서루 등 강원도 지방의 명승 열 곳을 그린 그림과 이를 감상한 문인들의 시가 함께 수록되어 있다 화가는 정면에서 본 시점과 하늘에서 내려다 본 시점 등을 다양하게 조합하여 각 장소를 묘사하였다. 이는 실제 장소의 지리정보와 경관의 특징을 뚜렷이 보여주려는 의도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칠보전도, 함경도의 명승을 그린 시화첩, 한시각(1621~ 1691 이후), 조선 1664년, 비단에 색, 국립중앙박물관>

함경도의 문무과 별시에 시험관으로 파견되었던 문곡 김수항(1629 ~ 1689년)이 칠보산과 주변 명승지를 유람하고 엮은 시화첩이다. 화원 한시각은 이들의 유람에 동행하여 여섯 점의 그림을 제작했다. 그 중 <칠보산전도>는 화면 하단 중앙에서부터 V자형으로 점점 넓게 펼쳐지는 구도로 그려졌고 상단에는 동해 바다가 묘사되었다. 이는 넓은 범위의 경치를 표현하기 위해 화가가 고민한 결과이다. 함경도의 명승을 그린 실경산수화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의 그림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풍악도첩(楓嶽圖牒)>은 현존하는 정선의 작품 중 가장 이른 시기에 그려진 그림이다. 초기작으로 원숙기 작품에 비해 미숙한 부분도 있지만 화가 초창기 활력과 열의가 가득찬 작품으로 전선의 진경산수화가 형성된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금강내총도, 금강산 여행 기념 그림, 정선, 조선 1711년, 비단에 엷은 색, 국립중앙박물관,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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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여행 기념 그림, 정선, 조선 1711년, 비단에 엷은 색, 국립중앙박물관, 보물>

정선이 36세 때 금강산을 처음 여행하고 그린 실경산수화이다. 정선은 금화현감으로 부임한 이병언, 김창흡 등과 함께 금강산 일대를 유람하고 열세 폭의 그림과 발문을 남겼다. 초기 작품답게 필치가 조심스럽고, 뾰족하게 표현한 봉우리는 정선 특유의 힘찬 수직준(垂直皴)을 예고한다. 금강산의 기세를 부감시로 그린 <금강내산총도>와 비교적 좁은 지역과 경물을 묘사한 그림들로 구성되어 있다. 산봉우리와 암성 등에 명칭을 표기하고 길을 뚜렷하게 그린것은 지도식 표현이다. 정선은 때로는 현장에서 본 실경을 변형하고 과장하여 그림을 그렸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곡운구곡도>는 화가 조세걸이 그린 실경산수화이다. 이 그림은 관념적인 산수화와는 달리화천면 사내면 용담천 아홉굽이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그린 그림으로 실체 경치를 재현하고자 했다. 산, 바위, 나무, 계곡 등이 비교적 정확하게 묘사되었으며 실경의 명칭, 위치, 자연의 특징 등을 명기하였다. 대표적인 실경산수화 작품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농수정, 김수증의 유거지 주변 아홉 굽이, 조세걸, 조선 1682년, 종이에 엷은 색, 국립중앙박물관>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에 있던 곡운 김수증의 은거지를 그린 그림이다. ‘구곡(九曲)’은 중국 남송의 성리학자 주희가 은거한 무이구곡에서 유래했다. 화첩은 김수증의 생활공간인 농수정을 비롯하여 방화계, 청옥협, 백운담, 와룡담, 첩석대 등 주변지역 열 곳을 그린 그림과 발문으로 구성되었다. 김수증은 화가 조세걸을 현장에 데리고 다니며 마치 초상화를 그리듯이 닮게 그리도록 지시했고 화가는 주문에 맞게 각 장소의 풍광을 충실하게 옮겨 그렸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실재하는 산수를 그리다
화가들은 자연에서 찾아낸 미(美)의 원형을 산수화에 담았습니다. 특히 실경산수화는 우리땅에 실재하는 경관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린 그림입니다. 한국의 실경산수화는 고려시대부터 시작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관료들의 모임을 그린 계회도(契會圖), 은거한 선비의 거처를 거린 유거도(幽居圖)와 별서도(別墅圖) 같은 기록적인 실경산수화를 그렸습니다. 각 그림에는 조선 문인 관료들의 사상과 한국만의 독특한 풍수 개념, 지리 정보를 나타내는 지도식 표현 등이 어우러졌습니다. 선비들의 유람문화는 실경산수화 제작에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선비들은 빼어난 경치를 만나면 글로 그 감흥을 노래했고, 이러한 시문학을 통해 명승지가 알려졌습니다. 명승지로 발걸음을 옮긴 많은 사람 중에는 화가도 있었습니다. 화가들은 직접 현장을 유람한 뒤 풍경에서 받은 인상을 우리식으로 표현했습니다. 이로써 조선 산천의 정수를 전하는 실경산수화가 무르익어 갔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특별전 포스터에 소개된 그림은  <해산도첩> 중 <환선구지방총석정>와 <혈성루망전면금강도>이다. <해산도첩>은 금강산과 관동지역, 설악의 명승을 담은 서화첩이다.  조선후기 화원 가문 출신 김하종이 그린 작품으로 19세기 후반 실경산수화풍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손꼽힌다. 사실적인 표현이 특징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혈성루망전면금강도>

OLYMPUS DIGITAL CAMERA<환선구지방총석정>

전시를 열며
실경산수화는 우리 땅, 우리 강산을 그린 그림입니다. 옛 사람들은 경치가 좋은 곳에 이름을 붙이고 시와 그림을 남겨 지극한 아름다뭉과 추억을 오랫동안 간직하고자 했습니다. 2019년 여름, 중앙박물관은 특별전 ‘우리 강산을 그리다: 화가의 시선, 조선시대 실경산수화’를 개최합니다. 화가가 직접 보고 경험한 실제 경치가 어떻게 그림으로 옮겨졌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그림의 본질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는 일입니다. 붓과 종이를 챙겨 길을 떠난 화가는 남다른 시선으로 거대한 산수를 바라보고 이를 새롭게 해석하여 화폭에 담았습니다. 조선의 화가들이 표현한 우리 땅 곳곳의 아름다움은 여전히 우리에게 깊은 영감과 감동을 줍니다. 그림 속 화가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그들이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이 귓가에 들려올 것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