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회화

이색 초상 (보물 1215호)

고려말 성리학자 목은 이색(李穡)의 초상화(보물 1215호)이다. 관복차림과 평상복차림의 그림이 있었는데 현재는 관복차림 초상화만 전해내려오고 있다. 현재 4본 5점의 초상화가 전해오는 모두 원본을 보고 옮겨 그린 것이다. 목은영당본은 경기도 연천군 마전영당에 있던 것을 옮겨 그렸는데 작은 소본(小本)과 큰 그림인 대본(大本)이 있다. 소본은 1624년에 그린 것으로 반신상이 남아 있으며 대본은 1711년에 다시 옮겨 그려 임강서원에 모셨던 그림이다. 조선후기에 옮겨 그린 모사본이지만 당대 뛰어난 화가의 수준높은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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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 초상, 목은영당본 소본, 작가미상, 조선 18세기, 비단에 채색, 보물 1215호>

이색(李穡, 1328~1396)이 이 오사모(烏紗帽)와 당홍색 단령(團領)을 착용하고 서대(犀帶)를 한 반신상이다. 이색은 이제현(1287~1367)의 문인으로 1343년 원나라 국자감의 생원이 되어 성리학을 연구했다. 이 초상은 필선 위주로 얼굴을 표현하고 선염이 거의 없는 고식이다. 사모 높이가 평탄하고 좁고 긴 양각이 아래로 처져 있으며 단령의 깃이 좁은 여말선초의 상복(常服) 차림을 보여준다. 이사의 초상은 여러 차례 이모되었는데 여말선초의 초상화법과 양식을 보여주는 점에서 가치를 지닌다. 족자 장황의 뒷면 하단에는 다음과 같은 화기가 적혀있다.
“마전영당(마전은 지금의 경기도 연천군 안에 있던 고을이름)의 구본을 기묘년 3월에 다시 꾸민다. 옛 족자에 후학 허신이 쓴 찬문이 있다. 화백 최근배에게 부탁하여 이 본을 따라 정성것 3본을 그려 덕산 누산, 장단의 오이릉, 평산의 영귀사에 각각 봉안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보물1215호 02-20210321
<이색초상, 목은영당본 대본>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1년
  4. 위키백과, 2021년

 

안양 초상(국보 111호), 고려시대 초상화

경북 영주시 소수서원에서 소장하고 있는 안향 초상(국보 111호)이다. 안향(安珦)은 고려후기 문신으로 원나라에서 유학한 후 우리나라에 성리학을 소개한 인물이다. 초상화에 적혀 있는 찬문에 따르면 고려 충숙왕 때(1318) 문묘에 그의 초상화를 모실때 1본을 더 그려 흥주향교에 봉안했다고 한다. 이후 풍기군수 주세붕이 백운동서운을 세운 후 그의 초상화를 옮겨 모셨다. 이후 15559년 화원 이불해가 원본 보고 옮겨 그려 오늘에 이르고 있다.

화면은 윗쪽에 찬문등을 간략하게 써놓고 아랫부분에 상반신 초상이 그려져 있다. 그림은 단순하면서도 장중하게 그려 학자로서 풍보를 잘 표현하고 있다. 성리학을 처음 소개한 안향의 초상화라는 점과 고려시대 초상화 화풍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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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향초상, 전 이불해, 조선 16세기 중엽, 비단에 채색, 국보 111호, 소수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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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부분>

안향(安廟, 1243~1306)은 고려에 최초로 주자성리학을 전파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제현(1287-1367)과 같은 제자를 육성함으로써 고려 말 신진사대부 대두의 기초를 닦았던 인물이다. 고려시대 안향의 초상은 1318년 원나라 화가가 그려 문묘(文廟)에 봉안한 문묘본과, 이를 저본(底本)으로 하여 안향의 고향 흥주(興州, 지금 영주시 순흥읍 일대)에 이모한 흥주향교본(興川鄕校本)이 있었다. 이 작품은 1559년 이불해(李不害, 1529~ )가 흥주향교본을 모사한 모본으로 보인다. 화폭 상단에는 안향의 진영이라는 화제(畵題)와 함께 안향의 아들 안우기(1265~1329)가 쓴 찬문이 활달한 행서체로 옮겨져 있다. 대학자로서의 경륜과 인자한 덕성을 드러내면서도 단아한 체구와 당당한 자세를 더욱 강조하여, 이제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갈 신진사대부의 등장을 선언하고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1년
  4. 위키백과, 2021년

 

 

지장보살삼존도(보물 1287호)

지장보살을 그린 고려시대 불화인 지장보살삼존도(地藏菩薩三尊圖, 보물 1287호)이다. 승려의 모습을 한 지장보살을 가운데 두고 왼쪽에 승려 모습의 도명존자를, 오른쪽에 왕의 모습을 한 무독귀왕을 그린 삼존도 형식이다. 아래에는 사자가 입을 벌린채 엎드려 있다. 고려 전통불화의 기법을 잘 따르고 있는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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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보살삼존도, 고려 14세기, 비단에 채색, 보물 1287호, 개인소장>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좌우에 무독귀왕과 도명존자가 함께 있는 삼존도 형식의 지장보살도이다. 머리를 깎은 승려 모습의 지장보살은 바위에 컬터앉아 오른손으로 투명한 보주를 들고 있다. 지장보살이 입은 천의에는 연화당초무늬를 비롯한 다양한 문양이 금니로 화려하게 표현 되었다. 바위 앞에는 정면을 향하여 경전이 담긴 상자를 양손으로 받쳐 든 무독귀왕이 있고, 승려의 모습으로 나타난 도명존자는 고리가 여섯 개 달린 석장을 틀고 바위 뒤에서 지장보살을 바라보고 있다. 화면 밑에는 털이 흰 사자가 엎드려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지장시왕도(보물 1048호), 지장보살을 그린 고려 불화

서울 호림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지장시왕도 (地藏十王圖, 보물 1048호)이다. 지장보살과 사후세계 심판관인 시왕(十王)을 그린 고려시대 불화이다. 화면 중앙에 지장보살을 크게 그리고 아래쪽에 시왕, 사천왕 등을 배치하였다. 현재 남아 있는 많지 않은 고려 불화 중 하나로 14세기경에 그려졌다. 고려시대 지장보살과 시왕에 대한 신앙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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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시왕도, 고려 14세기, 비단에 채색, 보물 1048호, 호림박물관>

지장보살과 함께 범천과 제석천, 도명존자와 무독귀왕, 사천왕, 지장보살과 시왕을 한 폭에 그린 지장 사왕도이다. 죽은 자의 영혼을 이끄는 사자(使者)와 시왕을 도와 심판을 내리는 판관도 등장한다. 화면 상단에는 연화대좌에 왼발을 내리고 앉아 있는 지장보살을 크게 그렸고, 하단에는 권속을 배치하였다. 지장보살의 다양한 권속은 좌우로 나뉘어 서로 마주하는 구조로 배치되었다. 연화대좌 앞에는 사자를 그렸는데, 구체적인 등장 배경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둔황 출토 <환혼기(還魂記)> 에서 사자를 문수보살의 화신이라 언급한 내용이 있어 관련성을 추측해볼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아미타여래도(보물 1238호)

고려시대 불화인 아미타여래도(阿彌陀如來圖, 보물 1238호)이다. 극락에서 수행자를 맞이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붉은색 가사와 녹색 장삼을 입고 있은 아미타여래가 정면을 향하고 있는데 아미타여래만 그림에서 표현되어 있다. 그림에 대한 기록은 없으나 비슷한 시기에 그려진 아미타여래 불화와 비슷하여 고려후기 14세기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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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여래도, 고려 14세기, 비단에 채색, 보물1238호>

현존하는 고려 불화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아미타계열의 불화이지만, 독존형 여래도는 총 6점만이 알려져 있다. 자세 면에서 대부분 측면을 향해 왕생자를 맞이하는 내영(來迎)의 상징성을 암시한다. 이에 비해 오른 손을 내리면서도 이처럼 정면을 향한 자세로 표현한 형식은 매우 드문 사례이다. 오른 손에는 금니로 법륜 무늬가 있으며, 가슴에는 반대로 된 ‘만(卍)’자형 무늬가 있다. 녹청의 내의에는 구름과 봉황무늬가, 군청의 치마끝단은 꽃무늬로 장식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