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범종, 공양구

[시안(Xi'an) 비림박물관] 당 경운종(景雲鐘), 시안 종루에 걸려 있던 종

시안 비림박물관 마당에 있는 경운종(景雲鐘, Jingyun Bell)이다. 황실 도교 관청인 경룡관(景龍觀)에서 만들어 ‘경룡관종’으로 불렸으며, 당 예종 경운 2년(711)에 만들어져 경운종이라 부른다. 명나라 때 시안 종루가 세워지면서 1953년까지 종로에 걸려 시간을 알려주었다. 통일신라 성덕대왕 신종과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져 같은 역할을 했던 중국을 대표하는 종이다. 중국 국가1급문물에 지정된 중요한 문화재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시안 비림박물관 마당으로 옮겨져 있는 당 경운종.

종은 높이 2.47 m, 무게는 6 톤으로 위에 짐승모양 고리가 있으며 전체적으로 6각형을 이루고 있다. 몸체는 위, 중간 및 아래쪽의 세 부분으로 나뉘며 각 부분은 6 개의 사각형으로 나뉩니다. 아래 부분 가운데는 당 5대 황제 예종 이단(李旦) 쓴 글이 새겨져 있다. 글의 내용은 도교의 신비와 종에 예찬 등 이다. 다른 부분에는 봉황, 사자, 학, 소 등을 표현하고 있으며 322개의 상서로운 구름 등이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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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경운종. 전체적으로 6각형을 이루고 있다. 각면에는 글씨를 비롯하여 다양한 문양들이 조각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당 예종이 직접 글을 짓고 글을 쓴 부분. 글자가 지금까지도 또렷히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각 면에는 봉황, 학, 사자 등을 새겨 놓고 있으며, 주위에 상스러운 구름이 표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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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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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편. 봉황이 조각되어 있는데 중국의 전통적인 봉황문양과 약간 다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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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와 소가 새겨져 있다. 용, 호랑이 등을 표현한 전통적인 문양과는 달리 서역 불교 등의 영향을 받아 사자, 소 등이 표현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종을 매다는 고리. 음통이 있는 신라 범종과는 다른 중국종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운종이 걸려 있던 시안 종루. 1953년 비림박물관으로 옮겨지면서 지금은 복제품이 종루에 걸려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박물관에 걸려 있는 성덕대왕 신종(국보 29호). 경운종보다 60년 정도 늦은 771년에 만들어졌는데 경운종과 마찬가지로 성덕대왕을 칭송하는 글자가 비슷한 규모로 새겨져 있다.

경운종(景雲鐘, Jingyun Bell). 당 경운 2년(711), 당예종 이단 찬 및 서
This bell was cast in the 2nd year of Jingyun Period of the Tang Dynasty(711), hence its name. It weighs six tons, with beast button on its top. The rim of it is in the shape of hexagon. The body of the bell is divided into three sections, the upper, middle and the lower ones, each section is subdivided into six squares. The middle square in the lower section is engraved with inscriptions, which were composed and written by Emperor Riuzong (Li Dan) of Tang Dynasty. it tells us the mystery of the Taoism and some words of praise of the bell. The other sections are decorated with exquisite designs that include the representations of phoenix, lion, crane, and cow as well as auspicious clouds together with the 32 nipples that work both as decoration and rhythm adjustment. (안내문, 시안 비림박물관, 2019년)

<출처>

  1. 안내문, 시안 비림박물관, 2019년
  2. 위키백과, 2020년

 

 

합천 영암사지 쌍사자석등(보물 353호), 통일신라를 대표하는 석등

경남 합천군 가회면 둔내리 영암사지(사적 131호) 절터에 남아 있는 쌍사자석등(보물 353호)이다. 통일신라 때 만들어진 석등으로 금당터 앞 석축 위에 세워져 있다. 석등은 8각형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데 2마리의 사자가 불을 밝히는 화사석을 받치는 형상을 하고 있다. 2마리의 사자가 가슴을 맞대고 마주선 모습인데 갈기와 꼬리, 근유 등을 사실적을 표현하고 있다. 불을 밝히는 화사석은 4면에 창을 두고 4면에는 사천왕상을 새겨 놓고 있다. 보은 법주사 쌍사자 석등(국보 5호)와 비슷한 형태이며, 통일신라 석등을 대표하는 걸작이다.

영암사지는 합천군 황매산 남쪽 자락에 있는 통일신라 절터이다. 창건연대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으나 고려 때 적연선사가 입적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전망이 아주 좋은 황매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데, 축대를 쌓아 인공적으로 절터를 조성했는데 그 규모가 상당히 큰 편이다. 절터에는 쌍사자석등(보물 353호), 삼층석탑(보물 480호)와 거북받침돌(보물 489호) 2기가 남아 있으며, 금동여래입상을 비롯하여 다수의 유물과 건축부재 등이 출토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합천 영암사지 쌍사자석등(보물 353호). 두마리의 사자가 석등을 받치고 있는 형상의 석등으로 생동감있고 사실적인 표현이 돋보이는 걸작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석등을 8각을 기본 평면으로 하고 있다. 아래 받침돌에는 연꽃이 조각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가운데 받침돌에는 기둥형태 대신 2마리의 사자를 조각해 놓았다. 사자의 갈퀴, 꼬리, 몸통의 근육 등을 생동감있게 표현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불을 밝히는 화사석, 쌍사자에 비해 조각 수법이나 조형미가 떨어지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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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쪽에서 본 석등.

OLYMPUS DIGITAL CAMERA금당 앞에 별도의 석축을 쌓고 그 위에 석등이 올려져 있다. 석축 옆에는 석등 위해 만든 것으로 보이는 계단이 있다. 석등 아래에 삼층석탑이 놓여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반대편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황매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영암사지. 영주 부석사처럼 경사진 지형에 축대를 쌓고 건물터를 조성했다. 절터는 해가 뜨는 동쪽을 향하고 있다.

합천 영암사지 쌍사자석등, 보물 353호, 경남 합천군 가회면 둔내리
영암사터에 세워진 통일신라시대의 석등으로, 1933년경 일본인들이 마음대로 가져가려는 것을 마을 사람들이 막아 면사무소에 보관하였다가 1959년 원래의 자리로 옮겨 놓았다. 석등은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을 중심으로 하여, 아래로는 3단의 받침돌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을 얹었다. 사자를 배치한 가운데 받침돌을 제외한 각 부분이 모두 통일신라시대의 기본 형태인 8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래받침돌에는 연꽃이 조각되었고 그 위로 사자 두 마리가 가슴을 맞대고 서 있다. 사자의 뒷발은 아래받침돌을 딛고 있으며, 앞발은 들어서 윗받침돌을 받들었다. 머리는 위로 향하고 갈퀴와 꼬리, 근육 등이 사실적이다. 화사석은 4면에 창이 있고 다른 4면에는 사천왕상이 조각되어 있다. 지붕돌을 8각으로 얇고 평평하며, 여덟 곳의 귀퉁이마다 자그마한 꽃조각이 솟아 있다. 각 부분의 양식이나 조각으로 보아 통일신라 전성기에 비해 다소 형식화된 면을 보이고 있어 통일신라 후기인 9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지며, 보은 법주사 쌍사자 석등(국보 제 5호)과 견줄 수 있는 걸작이라 할 수 있다. (안내문, 합천군청, 2017년)

<출처>

  1. 안내문, 합천군청,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

양산 통도사 석등

경남 양산시 하북면 통도사 관음전 앞에 세워져 있는 석등이다. 석등은 네모난 받침돌 위에 팔각의 아래받침돌, 팔각기둥, 연꽃무늬로 장식한 윗받침돌을 두고, 그 위에 화사석을 두었다. 불을 밝히는 화사석은 사각형을 하고 있으며 창을 크게 만들었다. 조각수법이나 조형미는 많이 떨어지는 편이며, 화사석의 형태 등으로 볼 때 고려시대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통도사 경내에 있는 많은 석등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양산 통도사는 우리 나라 3대 사찰 중 하나로 손꼽히는 큰 절로, 신라 선덕여왕 때 (646년)에 자장율사가 세웠다. 불보(佛寶) 사찰로도 불리는 통도사는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시는 적멸보궁이 있는 대표적인 사찰이다. 또한 최초로 대장경을 봉안한 사찰로도 알려져 있다. 사찰내에는 석종형 탑인 금강계단과 대웅전(국보 290호)를 비롯하여 많은 불전들을 두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통도사 관음전 앞에 세워져 있는 석등. 크고 웅장하지만 투박한 고려시대 석등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투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받임돌. 가운데 기둥이 굵으며 사각형에 가까운 팔각형 형태를 하고 있다. 윗받침돌에는 연꽃무늬를 새겨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불을 밝히는 화사석은 4각형 평면을 하고 있으며, 창을 크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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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에서 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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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에서 본 모습.

SANYO DIGITAL CAMERA통도사 불이문을 들어서면 보이는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석등이 세워져 있는 관음전. 중로전 영역에 있는 3곳의 불전 가운데 앞쪽에 위치하고 있다. 중로전에서 석등이 이곳에만 세워져 있다.

석등
석등은 등불을 밝히는 석조물이다. 불교에서 등불을 밝히는 것은 공양 중에서도 으뜸이 되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제작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 석등은 네모난 받침돌 위에 팔각의 하대석을 올렸다. 그 위에 팔각의 기둥을 두었는데, 중앙에는 3줄의 띠 매듭으로 장식하고 있다. 윗받침돌에는 연꽃무늬를 장식하였고, 등불을 밝혀두는 화사석의 각 면에는 네모난 창을 크게 뚫어 불빛이 나오도록 하였다. 지붕돌에는 귀퉁이마다 꽃장식을 달고 꼭대기에는 보주를 놓아 머리 장식을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통일신라 시대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부등형의 팔각인 점, 화사석이 세로로 긴 사각형인 점 등으로 보아 고려 시대에 만든 것으로 짐작된다. (안내문, 양산 통도사, 2017년)

<출처>

  1. 양산 통도사
  2. 문화재청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백제 금동대향로(국보287호), 능산리사지에 출토된 도교 신선사상이 표현된 향로

국립부여박물관에서 소장.전시하고 있는 백제 금동대향로(국보 287호)이다. 사비기 백제 왕릉들이 있는 능산리고분군(사적 14호)와 부여 나성(사적 58호) 사이에 있는 능산리사지(사적 434호)에서 출토된 것으로 삼국시대 백제를 대표하는 화려한 유물이다. 높이 61.8 cm, 무게 11.8 kg의 대형 향로로 중국 한나라대에 크게 유행한 박산향로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향로는 용이 머리를 들어 입으로 향로를 물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는 받침, 사실감 있게 묘사된 연잎으로 장식하고있는 향로 몸통, 중국 전설에 나오는 신선들이 살고 있다는 박산을 묘사한 몸체 뚜껑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뚜껑의 정상부에는 한마리의 봉황이 장식되어 있다. 향로에는 구멍이 뚫려 있는데 향로에서 피워 올린 연기가 박산 주위에서 안개처럼 퍼져나가는 모습을 연출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박산형태의 뚜껑에는 12명의 인물과 42마리의 동물, 바위, 나무 등이 정교하게 묘사되어 있다. 중국의 영향을 받은 박산향로의 일종이지만 그 제작수법이나 예술성이 매우 뛰어난 유물이다.

박산향로는 한무제 이후부터 출토되기 시작하는데, 이 시기는 신선사상, 음양오행설 등이 동중서에 의해서 반영되는 시기이다. 한대 왕실에서는 청동으로 만든 박산향로를 제사 등의 분향에 사용하거나 무덤에 부장하기도 했다. 이후에 불교에서도 박산향로가 수용되면서 남조를 통해서 백제에 전파된 것으로 추정된다. 불교에서 향로는 불단을 장식하는 기물로 불단 아래에 놓여 졌다. 향로의 형태는 백제금동향로와 유사하며 받침대로 용이 장식되고, 뚜껑에는 박산의 모습이 정교하게 장식되어 있다. 뚜겅에는 다양한 동물, 신선, 수렵하는 모습 등이 새겨져 있는데 한무제대에 유목문화를 받아들인 내용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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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금동대향로(국보 287호), 6~7세기,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1990년대에 출토되었다. 사실상 불교국가였던 사비기 백제에서 만든 것으로 도교적인 사상과 이상향이 잘 표현되어 있다. 제작기술이나 표현에 있어서 매우 뛰어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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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쪽에서 본 모습. 향로의 구성은 신선이 사는 박산을 표현한 뚜껑과 봉황모양 장식, 용모양을 하고 있는 받침, 연꽃잎을 형상화한 몸체로 이루어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향로 뚜껑 위에는 날개를 활짝 펴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봉황이 장식되어 있다. 향로에는 많은 조각상 들 중 가장 생동감있게 표현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향로 뚜껑에는 74개의 봉우리를 배경으로 12명의 인물과 42마리의 동물, 나무와 바위 등이 매우 상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정상부 봉황주위에는 악기를 연주하는 5명의 악사가 배치되어 있는데, 그 중 소를 부른 악사를 볼 수 있다. 그 아래에는 말을 타고 수렵을 하는 고구려 고분의 수렵도와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한무제대에 북방유목민의 영향을 받은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 외에 많은 인물과 동물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봉황장식 아래에 소를 불고 있는 모습. 백제금동대향로에는 다섯명의 악사가 소, 피리, 완함, 거문고, 북 등의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전체 구성상 악사들은 천상의 봉황 아래 위치하고 있어 음악으로 세상에 평화를 심어주려고 한 것처럼 보인다.

백제금동대향로에 보이는 악기
백제금동대향로에는 다섯명의 악사가 앉아서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관악기는 소.피리, 현악기는 완함.거문고, 타악기는 북 등 모두 5개의 악기로 하나의 오케스트라를 구성하고 있는 듯하다. 다섯명의 악사는 사람과 모든 동식물 위에 배치되어 있어 당시 음악을 연주하는 악사들의 사회적 위치와 지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과 삼라만상의 모든 생명들에게 음악을 연주하며 무릉도원으로 이르게 하는 것처럼 보인다. 백제금동대향로에 표현된 악기는 고구려 벽화에서 보이는 악기와 같거나 비슷한 모습이다. (‘우리음악 우리악기’, 중앙박물관특별전, 2011년)

OLYMPUS DIGITAL CAMERA정상부에 북을 두드리는 악사와 거문고를 연주하는 악사를 볼 수 있다. 산에는 말을 타고 수렵하는 모습과 많은 동물들을 볼 수 있는데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볼 수 있는 수렵장면과 비슷한 느낌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북을 두드리는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거문고를 연주하는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정상부에 완함을 연주하는 악사가 있고 산 중간에는 신선으로 보이는 여러 인물들과 다양한 동물들이 표현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완함을 연주하는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정상부에는 피리를 연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피리를 부는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향을 피우는 몸체에는 8개의 꽃잎으로 이우러진 세겹의 연꽃이 표현되어 있다. 연꽃잎에는 2명의 인물과 27마리의 동물이 표현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몸체에 표현된 동물과 인물상.

OLYMPUS DIGITAL CAMERA향로 받침에는 용이 하늘을 향해 용틀임을 하는 모습을 역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백제금동대향로, 국보 287호, 부여 능산리절터
백제금동대향로는 백제의 멸망과 함께 땅속에 묻혔다가 1993년 능산리사지 발굴조사를 통해 세상에 그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이 향로는 높이 61.8cm, 무게 11.85kg의 대작으로 한마리의 용이 머리를 들어 입으로 향로 몸체의 하부를 물고 있는 받침과 양감 있는 사실적인 연잎으로 표현된 향로 몸통, 그리고 박산 형태의 중첩된 산악으로 묘사된 뚜껑의 세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뚜껑의 정상에는 날개를 활짝 핀 채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한 마리의 봉황이 장식되어 있다. 뚜껑에는 74개의 봉우리를 배경으로 12명의 인물과 42마리의 동물, 나무 및 바위 등이 빈틈없이 묘사되어 있으며, 정상부의 봉황 주위에 5마리의 새와 5명의 악사가 배치되어 있다. 봉황의 가슴과 산악 사이에는 각각 2개 및 10개의 구멍이 뚫려 있는데, 향로에서 피워올린 연기가 산간에 자욱한 안개처럼 퍼지거나 뚜껑과 연결된 관을 통해 봉황의 가슴에서 솟아 오르도록 고안된 것이다. 몸통은 8개의 꽃잎으로 이루어진 세겹의 연꽃으로 표현되었으며, 꽃잎 위에 2명의 인물과 27마리의 동물이 묘사되어 있다.받침은 하늘을 향해 용틀임하는 용을 역동적으로 표현하고, 다리와 몸통사이에 구름무늬, 연꽃무늬 등을 배치하여 전체가 하나의 원형 받침을 이루도록 하였다. 몸통과 받침은 용이 물고 있는 봉을 몸통에 낸 흠에 끼워 연결하였다. 이 향로는 당시 왕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능산리사지에서 출토된 점으로 미루어 왕실 의례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능산리 절이 백제의 운명과 함께 사라져 버리면서, 그 속에서 찬란한 자취를 뽐내던 향로도 누군가의 손에 의해 묻혀 버리고, 그와 더불어 백제 중흥의 꿈도 빛을 잃게 되었다. (부여박물관, 2012년)

SANYO DIGITAL CAMERA부여 능산리사지(사적 434호)는 백제 왕릉인 능산리고분군과 백제 나성 사이에서 확인된 사비기 백제의 대표적인 절터이다. 성왕의 아들이 위덕왕이 아버지의 명복을 빌기 위해 원찰로서 창건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절터에서는 백제 금동대향로(국보 287호)를 비롯하여 중국에서 수입한 청자류, 문서에 해당하는 목간들, 다양한 형태의 기와 등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부여 백제문화단지 내 재현해 놓은 능사 금당. 이 향로는 능산리 절의 금당 안 불단 아래에 놓여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금당 내부에 재현해 놓은 향로. 불상을 모시는 불단 아래에 놓여 있다.

<출처>

  1. 국립부여박물관
  2. 문화재청
  3. 두산백과
  4. 위키백과
  5. 한국민족문화대백과
  6.  ”우리음악 우리악기”, 중앙박물관 특별전, 2011년

공주 갑사 동종(보물 478호), 조선중기를 대표하는 범종

충남 공주시 계룡산 갑사에 남아 있는 동종(보물 478호)이다. 높이 131 cm, 입지름 91 cm 규모의 범종이다. 꼭대기에는 소리가 울려퍼지는 음통이 없으며, 종을 매다는 용뉴에는 2마리의 용을 생동감있게 표현하고 있다. 종의 어깨에는 꽃무늬를, 그 아래에는 연꽃무늬와 글자를 새겼다. 몸통에는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를 4곳 두었으며, 그 사이에는 지장보살이 표현되어 있다. 조선중기 선조 때 만들어졌다는 기록이 몸통에 새겨져 있다. 통일신라 이래 전통적인 범종 양식을 계승하고 있으면서도 음통이 없는 등 조선시대 범종의 특징도 같이 가지고 있다. 제작연대가 확실하며 지금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그 형태나 기능에 손상이 없이 잘 보존되어 있다.

갑사(甲寺)는 공주 계룡산에 있는 사찰로 통일신라 의상대사와 관련된 화엄십찰에 속하는 유서깊은 사찰이다. 현재의 갑사는 원래 위치에서 약간 옮겨진 것으로 보이며 임진왜란 때 이곳 출신 영규대사가 의병장으로 큰 역할을 하면서 국가로부터 인정받아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된 것으로 보인다. 사찰내에는 삼신불괘불탱(국보289호), 철당간(보물256호), 승탑(보물257호), 동종(보물478호) 등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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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갑사 동종(보물 478호). 높이 131 cm 규모의 범종으로 통일신라 이래로 유지되어 온 한국종의 양식을 잘 유지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종을 매다는 용뉴에는 2마리의 용이 생동감있게 표현되어 있다. 통일신라 범종과는 달리 음이 울려퍼지는 음통을 두지 않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종의 윗부분에는 물결모양으로 꽃무늬를 둘렀으며 그 아래 두줄의 띠에는 연꽃무늬와 범어 글자를 새겼다. 그 아래에는 9개의 연뢰가 있는 4각형의 연곽을 두었다. 한국종의 전통적인 양식을 보여주는 요소이다.

SANYO DIGITAL CAMERA아래에는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가 4곳 있으며, 신라 범종과는 달리 그 사이에 비천상 대신 지장보살이 표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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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방향에서 본 모습.

SANYO DIGITAL CAMERA갑사 동종이 있는 종각.

SANYO DIGITAL CAMERA공주 계룡산 갑사. 통일신라 화엄십찰 중 한 곳으로 계룡산을 대표하는 사찰이다.

공주 갑사 동종, 보물 478호, 충남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이 종은 1584년(선조 17)에 만든 종이다. 신라 이래의 전통적인 범종 양식을 대체로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소리가 울려 나가는 용통이 없는 등 조선시대의 특징도 아울러 가지고 있다. 용뉴에 새겨진 사실적인 용의 모습, 어깨부분에 붙여 놓은 9개의 유곽, 연꽃 형상의 당좌 등은 신라 이래 한국 범종의 전통적인 요소이다. 당좌 사이에는 비천상 대신 지장보살이 조각되어 있다. 종의 몸체에 만든 시기를 표시한 명문이 있어 우리나라 종의 변천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되며, “갑사사(甲士寺)”라는 표기가 있어 절의 이름이 지금과 달랐던 것도 알 수 있다. (안내문, 문화재청, 2010년)

<출처>

  1. 문화재청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