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범종, 공양구

여주 고달사지 쌍사자석등(보물), 2마리의 사자가 생동감있게 표현된 석등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에 전시중인 고달사지 쌍사자 석등(보물 282호)이다. 여주 고달사 절터에 있던 것을 경복궁으로 옮겼다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다시 옮겨졋다. 높이 2.4 m로 석등으로 불을 밝히는 화사석까지만 남아 있었는데, 고달사지 절터 발굴조사 과정에서 지붕돌이 발견되어 현재의 모습을 찾게 되었다. 안상이 새겨진 직사각형의 바닥돌 위에 2마리의 웅크린 사자가 석등을 받치고 있는 모습이다. 가운데와 윗받침돌에는 연꽃과 구름문양을 새겨 놓고 있다. 화사석은 4면이 창으로 뚫린 형태를 하고 있다. 아래받침돌로 만들어진 2마리의 사자상은 화강암에 새겨진 조각상으로도 상당히 화려하고 아름다운 석상이다. 통일신라의 예술성과 조각기술이 남아 있는 고려전기의 유물이다.

고달사지(高達寺址, 사적382호)는 여주시 남한강변에서 강원도 내륙지역으로 연결되는 교통로에 자리잡고 있다. 통일신라 때 창건되어 고려 광종 이후 크게 번창했다가 조선시대에 폐사되었다. 고달사에는 석조문화재들이 많이 남아 있는편인데 고달이라는 석공이 만들었다고 전한다. 현 남아있는 유물로는 국보로 지정된 고달사지 승탑(국보), 원종대사탑(보물), 원종대사탑비(보물), 석불대좌(보물) 등이 절터에 남아 있으며, 쌍사자석등(보물)는 중앙박물관에서 소장.전시하고 있다. 최근에 발굴작업이 완료되어 당시 절의 규모가 확인되고 있는데 상당히 규모가 컸던 사찰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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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고달사지 쌍사자석등(보물 282호). 중앙박물관 야외에 전시중이다. 고려초에 만들어진 석등으로 각부분의 비례에서 주는 조형미나 섬세한 표현의 조각수법 등이 돋보이는 걸작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기단부. 안상이 새겨진 사각형 바닥돌 위에 아래받침돌로 2마리의 사자를 올려 놓았다. 가운데 받침돌에는 구름무늬를 윗받침돌에는 연꽃무늬를 새겼다.

SANYO DIGITAL CAMERA생동감이 넘치면서 섬세한 조각수법이 돋보이는 쌍사사상.

SANYO DIGITAL CAMERA화사석과 지붕돌을 8각형이며, 화사석 4면에 창을 뚫었다.

SANYO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고달사지 쌍사자석등.

SANYO DIGITAL CAMERA여주 고달사지(사적 382호)

여주 고달사지 쌍사자석등, 보물 282호, 경기 여주 고달사터
두마리 사자가 불발기집을 받치고 있는 매우 특이한 형태의 석등이다. 통일신라시대에 이러한 형태의 석등이 등장하지만, 이 고달사 쌍사자 석등은 다른 쌍사자 석등과 달리 웅크린 사자가 불발기집을 받치고 있어 이채롭다. 이 석등은 고달사가 우리나라 3대 선원의 하나인 고달원으로 명성을 떨치던 고려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안내문, 국립중앙박물관, 2012년)
<출처>

  1. 문화재청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개성 현화사지 석등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에 전시되어 있는 현화사지 석등이다. 높이 4.2 m로 석등의 규모가 상당히 크고, 특이한 외형을 하고 있다. 불을 밝히는 화사석은 창문을 두고 있는 일반적인 석등과는 달리 4개의 큰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돌을 얹어 개방적인 느낌을 준다. 전체적으로 조형미나 세부적인 조각수법은 많이 떨어지는 편이며, 투박한 느낌을 준다.현화사는 개성에 있었던 사찰인데, 석등의 규모로 볼 때 상당히 큰 사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석등은 불상을 모신 불전, 사리를 모신 탑의 앞에 불을 밝히기 위한 석조물로 서양 기독교 등 각종 종교에서 다양한 촛불을 밝히는 것과 같은 기원을 두고 있는 보이는 대표적인 공양물이다. 불교에서는 불을 밝히는 것으로 공양 중에서 으뜸으로 여겼기때문에 불전, 탑 외에도 승려의 사리를 모신 승탑 앞에도 석등을 세워 놓기도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개성 현화사 석등. 높이 4.2 m의 상당히 큰 규모의 석등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아래받침돌은 안상이 새겨진 4각형 위에 둥근 형태로 연꽃무늬로 새겨 놓고 있다. 가운데받침돌은 둥근 3개의 북을 쌓아 놓은 모양을 하고 있으며 연꽃 등을 새겨 놓았다. 윗받침돌도 연꽃무늬를 새겨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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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사석은 4개의 돌기둥 위에 지붕돌을 올려 놓은 형태이며, 그 위에 머리장식이 올려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석등앞에 놓여진 배례석

OLYMPUS DIGITAL CAMERA앞쪽에서 본 석등

현화사 석등, 개성 현화사터, 고려 1020년
고려 현종 10년(1020) 개성 현화사에 세운 석등이다. 규모가 큰 이 석등으로 미루어 국가 대찰로 창건된 현화사의 명성을 짐작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석등의 불발기집은 팔각으로 된 것이 많은데, 이 석등은 불빛창도 따로 없이 사방으로 시원하게 트여 있다. 석등 앞에 있는 배례석은 공양 가운에 으뜸으로 치는 ‘등공양’을 할 때 예를 갖추기 위해 만든 것이다. (안내문, 국립중앙박물관, 2012년)

<출처>

  1. 문화재청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나주 서성문 안 석등(보물), 정형화된 석등의 형태를 잘 보여주고 있는 유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에 전시되어 있는 석등(보물)이다. 이 석등은 원래 나주읍 서문 안에 있던 것을 1929년에 경복궁 정원으로 옮겨 놓았던 것으로 “나주 서성문 안 석등”이라 부른다. 사각형 바닥돌 위에 세워졌으며, 아래받침돌과 윗받침돌은 8각형으로 연꽃무늬를 새겼다. 직선적인 형태의 가운데받침돌은 8각형으로 각면에 테를 둘렀으며, 중간에 글씨를 새겼다. 화개석과 지붕돌, 상륜부는 없어졌던 것을 복원한 것이다. 석등 받침에 고려 선종 10년(1093)에 이 석등을 세웠음을 기록해 놓고 있다. 구조와 조각수법이 우수한 편으로 삼국시대 이래 정형화된 석등의 형태를 잘 갖추고 있다.

석등은 불상을 모신 불전, 사리를 모신 탑의 앞에 불을 밝히기 위한 석조물로 서양 기독교 등 각종 종교에서 다양한 촛불을 밝히는 것과 같은 기원을 두고 있는 보이는 대표적인 공양물이다. 불교에서는 불을 밝히는 것으로 공양 중에서 으뜸으로 여겼기때문에 불전, 탑 외에도 승려의 사리를 모신 승탑 앞에도 석등을 세워 놓기도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국립중앙박물관 야외에 전시되어 있는 나주 서성문 안 석등(보물).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석등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네모난 모양의 바닥돌. 옆면에 안상을 새겨 놓았다. 아래받침돌에도 연꽃무늬와 안상을 새겼다.

OLYMPUS DIGITAL CAMERA가운데 받침돌은 8각형으로 길게 기둥처럼 만들었다. 각면마다 테를 둘러서 공간을 만들어 글자를 적어 놓고 있다. 윗받침돌에는 연꽃무늬를 조각했다.

OLYMPUS DIGITAL CAMERA석등 화사석과 지붕돌은 석등을 경복궁으로 옮길 때 새로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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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쪽에서 본 석등

나주 서성문 안 석등, 보물 364호, 고려 1093년
이 석등 기단부는 긴 팔각기둥과 위.아래에 연꽃을 장식한 대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가운데 긴 팔각 기둥들은 간주석이라고 하는데, 여기에 새겨진 글을 통해 고려 선종 10년에 만들어진 석등임을 알 수 있다. 불발기집(화사석)은 원래 파손되에 없었으나, 1929년 나주에서 경복궁으로 옮기면서 새로 만들었으며, 맨 꼭대기 장식도 새로 만든 것이다. (안내문, 국립중앙박물관, 2012년)

<출처>

  1. 문화재청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장흥 보림사 석등(국보), 정형화된 통일신라 석등

전남 장흥군 유치면 보림사 경내에 있는 석등(국보)이다. 대적광전 앞 마당에 세워진 2개의 삼층석탑 가운데 세워져 있다. 석등은 높이 3.12m로 8각형 평면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받침돌은 사각형의 바닥돌 위에 연꽃무늬가 새겨진 아래받침돌을 놓고 그 위에 기둥을 세우고, 다시 윗받침돌을 올려놓고 있다. 불을 밝히는 화사석은 8각형을 하고 있는데, 4면에 창을 뚫었다. 2기의 삼층석탑과 마찬가지로 통일신라 전성기가 끝난 시점에서 정형화된 석등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장흥 보림사(寶林寺)는 통일신라말 보조선사 체징(體澄)이 창건하였다. 통일신라말 선종을 이끈 구산선문(九山禪門) 중에서도 가장 먼저 열었던 가지산파(迦智山派)의 중심사찰이었다. 한국전쟁으로 건물이 소실되기 전까지는 20여 동의 전각을 갖춘 큰 사찰이었다. 사찰내에는 삼층석탑과 석등(국보44호), 철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 동승탑(보물), 서승탑(보물), 보조선사탑(보물) 등의 문화재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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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 보림사 석등(국보). 정형화된 통일신라 석등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전체적인 비례에서 주는 안정감이나 조형미가 양호하며, 세부 조각수법 또한 뛰어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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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등 받침돌. 사각형의 바닥돌 위에 팔각형의 받침돌을 올려 놓았다. 아래, 위 받침돌에는 연꽃무늬를 섬세하게 조각해 놓고 있으며, 아래받침돌의 옆면에는 안상을 새겼다.

OLYMPUS DIGITAL CAMERA불을 밝히은 화사석, 4면에 창을 만들었으며, 그 위에 넓직한 지붕돌을 올려 놓고 있다. 지붕돌 위에 여러가지 장식을 올려놓았는데 원형이 손상되지 않고 잘 보존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주불전인 대적광전에서 본 석등.

OLYMPUS DIGITAL CAMERA장흥 보림사 남.북삼층석탑 및 석등(국보44호)

장흥 보림사 남.북 삼층석탑 및 석등, 국보44호, 전남 장흥군 유치면 장흥사
이 탑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것으로 불교의 상징적인 예배의 대상이다. 두 탑은 비슷한 규모와 구조를 하고 있다. 이 탑은 1932년에 사리장치를 훔치려다 넘어뜨렸던 것을 복원할 때 1층 탑신부 사리구멍에서 사리와 함께 조성 내용이 기록된 탑지가 나와 신라 경문왕 10년(870)에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높이는 남 탑이 5.4m, 북탑이 5.9m이다. 석등은 부처님의 빛이 사방을 비춘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있다. 석등은 지대석을 제외한 기단, 몸체돌, 지붕돌 모두 8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석등은 각 부의 비례가 알맞아 조화도 빼어날 뿐 아니라, 손상없이 완전하게 보존되어 있다. 높이는 3.12m이다. 탑과 석등은 통일신라시대 전형적인 양식을 갖추고 있고, 또한 모두 완전하게 남아 있어 석탑, 석등의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안내문, 문화재청, 2017년)

<출처>

  1. 문화재청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화성 용주사 동종(국보), 신라 종 양식을 따르는 고려초기 범종

경기도 화성시 송산동 용주사(龍珠寺) 경내에 있는 동종(국보)이다. 상원사 동종, 성덕대왕 신종과 함께 우리나라 3대 범종이다. 신라종 양식을 따르고 있는 고려초기에 만들어진 동종이다. 고리역할을 하는 용뉴는 용이 힘차게 종을 들어 올리는 모습을 하고 있으며, 종의 몸체에는 비천상과 삼존상을 두고 있는데 성덕대왕 신종과 비슷하다. 통일신라 때 조성된 것이라 새긴 글이 있으나, 형태나 문양 등으로 볼 때 고려 초기의 것으로 추정하고 았다. 높이 1.44m 이며 외형에서 보이는 조형미나 겉면에 새겨진 문양의 예술성이 뛰어나고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화성 용주사는 사도세자의 현륭원을 지키는 원찰로 사실상 정조가 창건한 사찰이다. 여주 신륵사, 서울 봉은사와 함께 왕릉을 지키는 대표적인 원찰이다. 원래 사찰이 있던 곳으로 보이지만, 사찰 건물들은 정조 때 지은 거들이다. 특히 이 곳에서 부모의 은혜를 강조한 『부모은중경』 목판이 제작,보관하고 있어 정조의 효심을 느낄 수 있다. 수원화성에서 현릉원으로 가는 능행길에 위치하고 있어 정조가 현릉원을 행차했을 때 잠시 들렀던 곳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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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용주사 동종(국보 120호)>

신라종 양식을 따르는 고려초에 만들어진 범종이다. 겉면에 통일신라 문성왕 때 조성되었다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이는 후대에 새겨진 것으로 제작수법 등으로 볼 때 고려 초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화성 용주사 동종, 국보 120호, 경기도 화성시 송산동
신라 종 양식을 보이는 고려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거대한 범종으로, 높이1.44m, 입지름 0.87m, 무게 1.5톤이다. 종 맨 위에는 소리의 울림을 도와 주는 용통이 있고, 고리 역할을 하는 용뉴는 용이 여의주를 물고 두 발로 힘차게 몸을 들어 올리는 형상을 하고 있다. 어깨는 구슬무늬로 테두리를 하고 있는데, 아래 위 서로 어긋나게 반원을 그리고 그 안에 꽃과 구슬무늬을 새긴 넓은 띠를 두르고 있다. 이 띠는 사각형 모양의 유곽과 한 면이 붙어 있다. 4곳의 유곽 안에는 9개의 돌출된 연꽃 모양의 유두가 있는데, 남아 있는 것은 1곳 뿐이다. 종의 몸체 앞뒤에는 비천상을, 좌우에는 삼존상(三尊像)을 두었고, 4곳에는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를 두었다. 비천상과 삼존상은 모두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나는 모습으로 옷자락이 가볍게 날리고 있다. 종 입구 부분의 넓은 띠는 구슬무늬로 테두리를 하고 어깨띠와는 다르게 덩굴무늬를 두고 있어 이 종의 특징이 되고 있다. 종 몸체에 통일신라 문성왕 16년(854)에 조성된 것이라는 후대에 새긴 글이 있으나, 종의 형태와 문양이 그 시대와 일치되지 않아 학계에서는 고려 전기의 종으로 추정하고 있다. 용통에 약간 금이 가고 유두가 부서진 것 외에는 보존 상태가 좋으며, 조각한 수법이 뛰어나 고려 종의 걸작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SANYO DIGITAL CAMERA종을 걸어두는고리인 용뉴와 음통인 용통. 꿈틀거리는 용이 종을 들어올리는 형상을 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종의 몸체에 앞.뒤에 새겨진 삼존상.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몸체 좌.우에 새겨진 비천상.

SANYO DIGITAL CAMERA종을 때리는 부분인 당좌. 아래에는 구슬무늬로 띠를 두르고 덩굴무늬로 장식한 넓은 띠로 장식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동종을 보관하는  범종각. 주불전인 대웅보전 서쪽편에 있다.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4. 고궁박물관
5.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