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전통마을

해남 연동리 마을, 윤선도 유적지

전남 해남군 해남읍에 있는 연동리마을이다. 조선후기 문신 윤선도가 살았던 고택 녹우당이 있는 마을로 해남의 대표적인 고산 윤선도 유적지이다. 조선중기 윤효정이 처음 터를 잡고 살았으며, 종택에 해당하는 녹우당과 마을 재실인 추원당, 윤효정 사당과 고산 사당 등이 남아 있다. 마을 입구에는 큰 연못과 유물전시관이 있으며, 안쪽에 마을 내력을 보여주는 수백년 수령을 자랑하는 큰 은행나무가 있고, 마을 뒷편에는 인공적으로 조성한 비자나무 숲이 있다.

연동리마을 해남 윤씨는 조선후기 장자 상속 전통이 자리잡은 대표적인 집안으로 큰 부를 축적하였다.  유물전시관에는 해남윤씨 집안에서 소장한 많은 문화재들을 볼 수 있는데, 윤두서 자화상(국보 240호), 고려시대 노비문서(보물 483호), 윤두서가 그린 그림 등 서화첩(보물481호), 종가 문적(보물 482호) 등이 있으며, 마을 뒷편 비자나무 숲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호남지방을 대표하는 대지주계층이 살았던 전통마을이지만 종택인 녹우당 외에는 큰 규모의 고택이 남아 있지는 않다.

SANYO DIGITAL CAMERA해남 연동리마을 입구. 이곳이 고산 윤선도 유적지임을 알려주는 표지석이 마을입구에 세워져 있다.

SANYO DIGITAL CAMERA마을입구에 있는 소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는 연못. 대지주계층이었던 해남윤씨 집안에서 농사를 위해 조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해남윤씨 고택인 녹우당(사적 167호). 연동리마을은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대지주계층이 살았던 마을이지만 녹우당 외 큰 고택은 남아 있지 않고 마을 규모 또한 크지 않은 편이다.

SANYO DIGITAL CAMERA녹우당 앞에 조성된 광장

SANYO DIGITAL CAMERA녹우당 사랑채. 윤선도가 효종으로부터 하사받은 수원에 있던 집을 옮겨왔다고 전해지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녹우당 안채

SANYO DIGITAL CAMERA녹우당 뒷편 대나무숲

SANYO DIGITAL CAMERA불천위 조상을 모시는 녹우당 내 사당.

SANYO DIGITAL CAMERA녹우당 옆 윤선도를 모시는 고산사당.

SANYO DIGITAL CAMERA고산사당 뒷편에는 입향조인 윤효정을 모시는 어초은사당이 있다.

SANYO DIGITAL CAMERA마을 뒷편 비자나무숲(천연기념물 241호). 마을 입향조인 윤효정이 처음 조성한 인공숲이라 한다.

해남 연동리의 비자나무숲, 천연기념물 241호,
해남윤씨의 중시조인 효정이 500년 전 심은 것이 자란 것이라고 하며 가장 큰 나무는 높이 20 m 내와, 가슴높이의 지름이 1 m 정도이다. 위쪽에 커다란 참식나무가 한 그루가 서 있고 아래쪽은 곰솔이 우거졌으며, 소나무가 군데군데 서 있다. 가장 큰 곰솔은 높이가 25 m, 지름이 1 m 정도이다. 숲 속에는 사스레피, 참식, 개비자, 모새, 자금우, 동백, 마삭덩굴, 남오미자, 송악 및 보리밥나무 등의 상록활엽수종과 더불어 맥문동, 소엽맥문동 및 춘란 등이 군데군데 자라고, 주변에는 참나무류 및 서어나무류 등의 낙엽활엽수로 싸여 있다. 비자나무숲 밑에 있는 곰솔숲 앞에는 해남윤씨의 선조를 모신 사당이 세워져 있다. 1972년 7월31일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안내문, 해남군청, 2010년)

SANYO DIGITAL CAMERA녹우당 뒷편 재실로 가는 길.

SANYO DIGITAL CAMERA마을 재실인 추원당.

SANYO DIGITAL CAMERA녹우당 앞에 있는 옛 유물전시관.

해남 연동리마을 22-20140418

윤두서 자화상(국보 240호). 유물전시관에서 소장.전시하고 있는 해남윤씨 집안을 대표하는 유물이다.

해남 연동리마을 21-20190708 윤단학 노비허여문기 및 입안(보물 483호). 고려 공민왕 때 윤광전이 그의 아들 윤단학에게 노비를 상속한 문서이다. 송광사 노비첩과 함께 대표적인 고려시대 문서이다.

고산 윤선도 유적지, 전남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
이 곳은 조선조의 문신이요, 국문학상 대표적인 시조시인으로 일컫는 윤선도(1587~1671) 선생의 유적지이다. 선생의 자는 약이, 호는 고산 또는 해옹이다. 선생은 광해 4년(1612)에 진사되고, 4년후 성균관유생으로서 권신의 횡포를 지탄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벽지에 유배되었다. 광해 15년에 인조반정이 일자 석방되어 의금부도사에 취임하였으나 곧 사직하고 이곳 향리에서 학문에 정진하였다. 인조 6년(1628) 별시문과의 초시에 장원한 후 봉림과 인평을 모시는 왕자시부가 되고 한성서윤과 예조정랑을 역임하는 등 수차에 걸쳐 나라에 중용되었다. 병자호란 후에는 주로 완도의 보길도와 해남의 수정동 및 금쇄동에 은거하여 자연에 들어 원림을 경영하고 산중신곡과 어부사시사 등 불후의 명작을 이루어 조경문화 및 국문학의 발전에 큰 공을 남겼다. 그 사이 효 종의 부름으로 벼슬에도 나아갔으나 당쟁으로 다시 유배당하는 등 많은 파란을 겪다가 현종 12년에 85세로 졸하였는데 숙종 원년에 신원되어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시호를 충헌이라 하였다. 이곳 유적지에는 선생이 시문에 열중하던 해남윤씨 종가의 고택과 녹우당(사적 제167호), 그리고 그의 선조 어초은사당 외에 고산사당 및 추원당이 있고 유물전시관에는 윤공재 자화상(국보 제240호)을 비롯하여 해남윤씨가전고화첩(보물 제481호), 윤고산수적관계문서(보물 제 482호), 지정 14년 노비문서(보물 제482호) 등 소중한 유물이 있다. 뒷산 중로에 있는 비자나무숲(천연기념물 제241호)은 약 500년전 선생의 선조가 이루어 놓은 수림으로 알려져 있다. (안내문, 해남군청, 2010년)

<출처>

  1. 안내문, 해남군청, 201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9년

순천 낙안읍성 민속마을, 조선시대 읍치 모습이 잘 남아 있는 전통마을

전남 순천시 낙안면 동.서.남내리에 있는 낙안읍성 민속마을이다. 옛 낙안군 읍치였던 마을이 원형에 가깝게 남아 있는 곳으로 읍성과 함께 조선시대 읍치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유서깊은 전통마을이다. 읍성은 직사각형 형태로 둘레 1.4 km 정도이며, 동.서.남문을 두고 있다. 읍성내에는 중심부에 위치한 관아를 중심으로 동.서.남문과 연결되는 큰 도로가 있으며, 동.서를 연결하는 큰길 남쪽에 민가들이 있다.

성안에는 약 90 가구의 민가들이 있는데 대부분 초가집이다. 그 중 아전 등 향리계층들이 살았던 집들은 규모가 큰 편이며, 관아에서 일했던 서민들이 살았던 집들은 대부분 3칸 규모의 작은 초가집들이다. 그 중 19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보존가치가 높은 집들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나머지 집들도 대부분 원형에 가깝게 수리하여 주민들이 생활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낙안읍성 서남쪽 언덕에서 내려다 보이는 마을. 조선시대 낙안군 읍치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낙안읍성 배치도. 읍치는 동.서를 가로지르는 큰 길을 기준으로 북쪽에 관아와 부속건물 등이, 남쪽에 읍치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살았던 가옥들이 배치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현재 낙안읍성 정문으로 사용되고 있는 동문으로 들어가는 길.

OLYMPUS DIGITAL CAMERA낙안읍성 동문 옆 성벽 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읍치. 객사 앞 마을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수령이 400년이 넘은 은행나무가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성벽 안쪽에 있는 비교적 큰 규모의 민가. 관아에서 근무했던 아전 등 향리계층이 살았던 집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성벽 바깥쪽에 있는 서민계층이 살았던 앞면 2칸 규모의 작은 초가집.

OLYMPUS DIGITAL CAMERA동문을 들어서면 서문으로 연결되는 큰 길을 볼 수 있다. 민가들은 주로 큰 길 왼쪽에 위치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성문 안쪽에 볼 수 있는 상점. 일제강점기 이후 상점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옛 시골마을 상점 모습을 하고 있는 초가집.

OLYMPUS DIGITAL CAMERA낙안읍성 관아 중심건물인 객사. 낙안군이 폐지되면서 초등학교 건물로 사용되었다가 지금은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낙안군 관아 건물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곳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객사 옆 낙안군수가 근무했던 동헌. 낙안읍성이 유적지로 바뀌면서 옛 모습을 추정하여 복원하였다.

OLYMPUS DIGITAL CAMERA관아 앞에 남아 있는 고목

OLYMPUS DIGITAL CAMERA관아 앞에서 남문으로 연결되는 큰 길. 주위에 읍치에서 터를 잡고 살았던 민가들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관아 앞에 조성해 놓은 장터. 낙안읍성을 찾은 관광객들이 쉴 수 있도록 조성해 놓은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서문으로 연결되는 큰 길.

OLYMPUS DIGITAL CAMERA 큰 길 옆에 있는 문화재로 지정된 전통가옥인 마루방집. 마당이 비교적 넓은 집으로 안쪽에 ‘-’자형 안채가 자리잡고 있다. 비교적 큰 규모의 가옥으로 관아에 근무했던 아전 또는 향리가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낙안읍성 서문 바로 안쪽 큰 길에 전통가옥인 대나무 서까래집. 부엌 1칸, 방 2칸의 서민들이 살았던 작은 ‘-’자형 초가집이다. 관아에 소속되어 일했던 사람이 살았던 가옥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낙안읍성 서문. 성벽 안쪽과 바깥쪽에 민가들이 들어서 있다. 작은 규모의 서민들이 살았던 초가집들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서문 안쪽으로 보이는 마을.

OLYMPUS DIGITAL CAMERA서문 바깥쪽에 있는 전통가옥인 서문성벽집. 건물은 ‘-’자형 안채와 헛간채, 가게로 사용되었던 작은 별채가 있다. 안채는 19세기 지어진 건물로 전형적인 읍성내 가옥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낙안읍성 서문 입구에서 있으면서 상점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성벽 바깥쪽에 있는 작은 초가집.

OLYMPUS DIGITAL CAMERA남쪽 성벽 안쪽에 있는 민가들.

OLYMPUS DIGITAL CAMERA성벽 안쪽에 있는 민가들 중 비교적 큰 가옥. 초가지붕을 하고 있지만 건물의 규모나 건축자재, 넓은 마당 등으로 볼 때 향리계층이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서민 계층이 살았든 작은 초가집.

OLYMPUS DIGITAL CAMERA향리 계층이 살았던 큰 규모의 초가집.

OLYMPUS DIGITAL CAMERA상당히 큰 규모의 초가집.

OLYMPUS DIGITAL CAMERA향리 계층이 살았던 가옥의 형태를 잘 보여주고 있는 초가집. 목재기둥을 사용하고 있으며, 바깥쪽에 툇마루을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서민계층이 살았던 작은 초가집. 기둥이 많지 않고 흙벽이 지붕을 받치고 있는 형태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원래 낙안읍성 정문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이는 남문

OLYMPUS DIGITAL CAMERA남쪽 성벽 바깥쪽에 있는 민가들.

OLYMPUS DIGITAL CAMERA남문 안쪽에 있는 전통가옥인  주막집. 성벽 안쪽 좁은 공간을 활용하여 지은 집으로 방2개, 점포, 부엌으로 구성된 ‘田’자형 평면을 하고 있다. 읍성을 드나드는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기 위해 지은 작은 점포로 18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 남문에서 관아로 들어가는 큰 길.

OLYMPUS DIGITAL CAMERA남문에서 동문으로 연결되는 큰 길과 주변 민가들,

OLYMPUS DIGITAL CAMERA동문과 남문 사이에 있는 골목길과 민가들

OLYMPUS DIGITAL CAMERA남쪽 성벽 안쪽에 있는 연못. 비상시 식수로 사용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읍성내 큰 길 옆에 볼 수 있는 옛 하수도

OLYMPUS DIGITAL CAMERA하수도 물길이 읍성 바깥으로 연결되는 작은 수문.

  1. 안내문, 순천시청, 2012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보성 벌교읍 봉림리 마을

전남 보성군 벌교읍에 있는 봉림리 마을이다. 벌교천 주변 들판이 내려다 보이는 양지마을에 위치하고 있으며 벌교읍 소재지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마을 앞 벌교천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선박출입이 가능했던 곳으로 세곡선이 정박했으며 양곡창고가 있었다고 한다. 마을에는 소설 『태백산맥』의 주인공 김범우의 집으로 표현된 고택을 비롯하여 낡은 고택들이 여러채 남아 있는 것으로 볼 때 부유한 지주계층들이 살았던 마을로 보인다. 마을 앞에는 조선후기에 세워진 벌교 홍교가 있는 것으로 볼 때 순천과 낙안, 보성을 연결하는 주요 교통로였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소설 『태백산맥』 김범우의 집으로 소개된 고택이 있는 마을이다. 벌교천과 주변 들판이 내려다 보이는 양지바른 언덕에 크고 작은 주택들이 모여 있다. 양반/지주계층이 살았던 마을의 입지조건을 잘 갖추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벌교천을 건너는 오래된 돌다리인 홍교(보물 304호)가 마을 앞에 있다. 예전에는 바닷물이 이곳까지 들어와 세곡을 나르는 선박이 정박했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순천에서 낙안으로 연결되는 교통로가 마을 앞을 지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앞에서 보이는 벌교 홍교. 그너머에 벌교읍 시가지가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입구에 있는 낡은 고택. 안채, 사랑채 문간채를 제대로 갖추고 있는 양반가옥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고택 사랑채와 사랑마당.

OLYMPUS DIGITAL CAMERA고택 문간채. 골목길에 대문을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안으로 들어가는 골목길. ‘김범우의 집’이라 적힌 안내표지판을 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김범우의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길.

OLYMPUS DIGITAL CAMERA김범우의 집 대문.

OLYMPUS DIGITAL CAMERA김범우의 집 사랑채 마당.

보성 벌교읍 봉림리마을 13-20121005안채.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뒷편 언덕 골목길.

  1. 두산백과, 2019년
  2. 안내문, 보성군청, 2012년

영주 선비촌, 옛 선비들의 삶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

경북 영주시 순흥면 청구리 소수서원 뒷편에 있는 선비촌이다. 소수서원 뒷문 나와 죽계천을 건너면, 선비촌과 소수박물관을 볼 수 있다. 선비촌에는 영주지역에 남아있는 옛 선비들이 살았던 해우당 고택등 기와집 7동과 초가 5동 등 다양현 규모와 형태의 고택을 복원해 놓고 있다. 또한 옛 사람들의 살았던 모습을 보여주는 정자, 누각, 방앗간, 대장간 등을 재현해 놓고 있다. 소수서원과 함께 옛 선비들의 살았던 삶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소수서원 뒷문은 나와 죽계천 다리를 건너면 왼쪽에는 영주지역 고택들을 재현해 놓은 선비촌이 있고, 오른쪽에는 소수박물관이다.

SANYO DIGITAL CAMERA선비촌을 들어서면 큰 길에 십이지신상을 세워 놓았으며, 선비들이 살았던 다양한 규모와 형태의 가옥들을 볼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선비촌 입구에 볼 수 있는 열녀를 기르는 정려각인 열부각.

SANYO DIGITAL CAMERA영주 부석면에 있는 중류층 양반가옥인 김상진가옥 대문채. 선비촌 입구 부근에 있다.

SANYO DIGITAL CAMERA건물은 ‘ㄷ’자형을 본채를 중심으로 정면에 마루를 깔고 좌우측에 안채와 사랑채로 구성되어 있다. 중류층 양반이 살았던 크지 않은 아담한 규모의 고택으로 정갈하면서 절제된 분위기를 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영주의 대표적인 전통마을인 무섬마을에 있는 해우당 고택.

SANYO DIGITAL CAMERA해우당고택은 구한말 고위관리를 지낸 김낙풍이 지은 집이다. 안채와, 사랑채가 ‘ㅁ’자형을 평면구조를 하고 있다. 사랑채는 지반을 기둥을 높게 세우고 툇마루에 난간을 둘러 누마루처럼 꾸몄다. 마당 한쪽에는 작은 규모의 작은사랑채를 두고 있다. 사랑채에는 흥선대원군이 친필로 쓴 ‘해우당’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SANYO DIGITAL CAMERA영주시 이산면에 있는 우금촌 두암고택 사랑채이다. 두암고택은 주선중기 해미현감 등을 역임한 두암 김우익이 건립한 가옥으로 ‘ㅁ’자형 본채, 사랑채, 문간채, 사당 등으로 구성된 상당히 큰 규모의 저택이다.

SANYO DIGITAL CAMERA영주시 이산면 석포리에 있는 김구영가옥이다. 방들이 앞뒤로 붙어 있는 양통집으로 경북지방의 대표적인 서민주택이다. 초가지붕을 하고 있지만 중류계층 양반이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소수서원 강당인 강학당을 재현 놓은 건물.

SANYO DIGITAL CAMERA물레방앗간.

SANYO DIGITAL CAMERA마을 한쪽에 있는  정자인 승운정. 선비들이 경치좋은 곳에서 학문을 논하고 풍류를 즐겼던 공간이다.

<출처>

  1. 안내문, 영주시청, 2009년
  2. 대한민국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2018년

봉화 닭실마을, 영남 4대 길지로 손꼽히는 전통마을

경북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에 있는 닭실마을이다. 봉화읍에서 울진과 태백방향으로 약 1 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아늑한 마을로 이중환의 『택리지』에 안동 화회마을, 천전마을, 경주 양동마을과 함께 삼남지역 4대 길지로 언급되었던 곳이다. 조선 중종때 문신 권벌이 기묘사화로 파직을 당하면서 외가가 있던 이곳으로 입향하면서 안동권씨 집성촌이 되었다. 마을 앞으로는 2개의 시냇물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으며, 뒷편으로 산이 있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

도로가 남쪽편 철로쪽과 연결되어 있어서 청암정(명승 60호)와 권벌종택이 제일 안쪽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원래는 마을 앞을 지나 봉화읍으로 흘러가는 석천계곡을 통해서 마을로 들어왔기때문에 종가집이 마을 입구에 있었다. 마을의 규모는 크지 않은 편이며, 대부분의 가옥들은 기왓집 형태와 구조를 하고 있는 전형전인 반촌의 형태를 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봉화 닭실마을. 마을 뒤에는 산이 있고, 앞에는 개울이 흐르며 들판이 펼쳐져 있는 배산임수의 입지조건을 잘 갖추고있다.

SANYO DIGITAL CAMERA마을 앞을 흐르는 하천. 가계천이라고 부르는데 마을을 지나 또다른 명승인 석천계곡을 만들면서 봉화읍으로 흘러간다. 개천 옆에 있는 길이 닭실마을로 들어가는 옛길이다.

SANYO DIGITAL CAMERA마을 종택으로 연결되는 큰 길.

SANYO DIGITAL CAMERA권벌종택 솟을대문. 조선중기 문신 권벌이 사화로 파직을 당한 후 터를 잡고 살았던 종택이다. 안채와 사랑채가 ‘ㅁ’자형 평면을 하고 있는 상당히 큰 규모의 가옥이다. 사랑채가 있는 마당을 출입하는 대문채는 솟을대문을 하고 있으며, 안채 뒷편에는 사당이 있다.

SANYO DIGITAL CAMERA종택 사랑채.

SANYO DIGITAL CAMERA종택 뒷편에 있는 사당.

SANYO DIGITAL CAMERA종택 마당 한쪽편에 위치한 청암정(명승 60호). 거북모양 바위에 세워진 정자와 작은 서재를 두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거북모양 바위위에 세워진 청암정.

SANYO DIGITAL CAMERA종택 옆에 있는 작은 규모의 한옥.

SANYO DIGITAL CAMERA그 옆으로 사랑채와 안채가 나란히 배치되어 있는 고택을 볼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뒷편에 있는 안채.

SANYO DIGITAL CAMERA마을 고택 중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집이 많지 않으나 규모나 형태 등을 볼 때 전형적인 양반들의 세거지였음을 알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멀리서 보이는 권벌 종택.

SANYO DIGITAL CAMERA마을 앞으로 반듯하게 닦아 놓은 길.

SANYO DIGITAL CAMERA마을 앞 농토. 넓지는 않으나 개천이 마을 앞을 흐르고 있어 수량이 풍부하여 농사짓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마을 가운데 있는 비교적 큰 규모의 한옥.

SANYO DIGITAL CAMERA큰 사랑채가 있는 고택 마당.

SANYO DIGITAL CAMERA마을 입구쪽으로는 70년대 양옥의 모습을 하고 있는 큰 주택들도 볼 수 있다.

내성 유곡 권충재 관계유적,
이 곳은 조선 중종 때 문신으로 예조판서를 지낸 충재 권벌(1478 ~ 1548년)의 유적지이다. 이 곳은 유곡으로 ‘닭실’인데 흔히 ‘달실’로 부른다. 그는 안동출신으로 중종 2년(1507)에 문과에 급제하고 관직에서 활동하던 중 중종 15년(1520)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파직된 후 이곳에 정착하여 후진을 양성하고 경학연구에 전념하였다. 그는 중종 28년(1548) 복직되었다가 을사사화로 인하여 다시 파직되었고, 명종 3년(1548) 유배지인 평안도 삭주에서 돌아갔다. 이곳에는 그가 지은 청암정과 큰아들인 청암 권동보가 충재의 뜻을 기리기 위하여 지은 석천정이 있는데 울창한 소나무숲과 아름다운 암석으로 경관이 매우 빼어나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이 지역을 경주의 양동, 안동의 내앞, 풍산의 하회와 함께 삼남지역의 4대 길지로 꼽고 있다. (안내문, 봉화군청, 2010년)

<출처>

  1. 안내문, 봉화군청, 2018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
  4. 한옥의 미, 서정호, 경인문화사, 201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