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전통마을

산청 남사마을

경남 산청군 단성면 남사리에 있는 남사마을이다. 농촌 전통 테마 마을로 지정되면서 ‘남사예담촌’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 전통마을로 지리산 중산리로 연결되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다. 양반들이 살았던 큰 고택에는 흙과 돌로 쌓고 그 위에 기와를 올려 놓은 높은 토담들이, 서민들이 살았던 가옥에는 나지막한 돌담들이 남아 있다. 마을에는 18세기에 지어진 이씨고가, 20세초에 지어진 최씨 고가를 비롯한 많은 기와집이 모여있으며 사양정사, 사효재, 영모재, 니사재 등 조상들을 모시는 재실들이 많이 남아 있다. 또한 고택 마당에는 부부 회화나무, 사효재 향나무, 하씨고가 감나무 등 수령 수백년이나 되는 오래된 고목들이 많이 남아 있다.

산청 남사마을 15-20220222<산청 남사마을>

산청 남사예담촌<남사마을 공간배치>

마을은 지리산 천왕봉을 오르는 중산리계곡으로 연결되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어 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로 자리잡고 있다. 마을 입구에는 여러 편의시설이 있고 마을에서 가장 큰 저택이 최씨고가와 사양정사가 마을 중앙에 자리잡고 있다.

산청 남사마을 05-20220222<최씨 고가 골목길>

최씨고가는 남사마을에 남아 있는 고택 중 가장 큰 규로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지어진 한옥이다. 건물은 안채, 외양간채, 사랑채가 ‘ㅁ’자형 평면을 하고 있다. 사랑채 양쪽에 중문을 두고 있으며 안채가 있는 마당은 외부와 분리되어 있어 유교적인 격식을 강조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남사마을 한옥을 대표하는 고택이라 할 수 있다.

산청 남사마을 06-20220222<최씨고가 대문>

산청 남사마을 07-20220222<최씨고가 사랑채>

최씨고가 앞쪽으로는 사양정사(泗陽精舍)가 자리잡고 있다. 사양정사는 1920년대 유학자 정제용의 후손들이 그를 추모하기 위해 지은 재실이다. 앞면 7칸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상당히 큰 규모의 재실 건물이다.

산청 남사마을 08-20220222<사양정사 골목길>

산청 남사마을 09-20220222<사양정사 대문채>

산청 남사마을 11-20220222<사양정사>

산청 남사마을 12-20220222<사양정사 뒷편 고택 마당>

사양정사 앞쪽에는 마을에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수령이 620년인 감나무를 볼 수 있다.

산청 남사마을 10-20220222<하씨고가 감나무>

하씨고가의 감나무, 수령 620년
고려말 원정공 하즙의 손자 하연이 어릴때 어머니에게 홍시를 드리기 위해 심은 것으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감나무이다. 토종 반시감으로 산청곶감의 원종이기도 하며, 현재에도 감이 열리고 있다. (안내문, 산청군청, 2022년)

마을 입구에서 마을을 휘감으면서 흐르는 남사천까지는 가운데 좁은 골목이 150m 정도로 이어지며 양쪽으로 크고 작은 고택들이 담장이 있는 골목길로 연결된다.

산청 남사마을 34-20220222<마을 입구 고택>

산청 남사마을 33-20220222<고택 대문과 담장>

산청 남사마을 16-20220222<마을입구 예담원>

산청 남사마을 17-20220222<마을 중앙 골목길>

산청 남사마을 18-20220222<마을 안쪽 골목길과 담장>

산청 남사마을 19-20220222<최근에 수리한 것으로 보이는 고택>

산청 남사마을 20-20220222<마을 뒷편으로 이어지는 골목길>

마을은 뒷편으로는 남사천이 마을을 휘감고 흐로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남사천을 공자가 살았던 중국 곡부(曲阜)의 사수(泗水)의 이름을 따서 사수천이라 부른다.

산청 남사마을 21-20220222<남사천>

남사천 건너에는 현대 국악에 큰 역할을 했던 박헌봉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기산국악당과 재실인 니사재가 있다.

산청 남사마을 26-20220222<남사천 너머 니사재와 기산국악당>

산청 남사마을 22-20220222<마을 뒷길>

마을 서쪽에는 영모당 이윤현을 기리는 재실인 사효재와 영모재가 있다. 사효재 앞에는 마을에서 이제개국공신교서(국보)를 소장하고 있었음을 알려주는 안내문과 기념비가 있다.

산청 남사마을 23-20220222<사효재 대문채>

산청 남사마을 24-20220222<사효재>

산청 남사마을 41-20220222
<사효재의 향나무, 수령 520년>

사효재는 1706년 피접중인 아버지를 해치려는 화적의 칼을 자신의 몸으로 막아낸 영모당 이윤현의 효심을 기리기 위해 지은 것이다. 향나무는 사효재를 짓기 전에 심겨져 있었으며 제례를 올릴 때 향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안내문, 산청군청, 2022년)

산청 남사마을 25-20220222<영모재>

산청 남사마을 27-20220222<영모당 효자비>

사효재 앞으로는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고택인 이씨고가 있다. 이 고택 앞에는 ‘부부 회회나무’로 잘 알려진 2그루의 고목이 아치를 이루고 있다. 드라마 ‘왕의 남자’ 촬영장소로 유명하다.

산청 남사마을 29-20220222<부부 회화나무>

이씨고가는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고택으로 18세기에 지어졌다. 건물을 안채, 사랑채, 외양간채, 곳간채가 ‘ㅁ’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안채와 사랑채가 있는 공간은 담장으로 분리되어 있지만 전체적으로 공간을 넓게 사용하여 개방적인 분위기를 주고 있다. 조선후기 남부지방 상류층 저택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산청 남사마을 30-20220222<이씨고가 대문>

산청 남사마을 32-20220222<이씨고가 사랑채>

산청 남사마을 31-20220222<이씨고가 안채>

마을 입구 언덕에 있는 작은 정자에 오르면 한눈에 마을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산청 남사마을 35-20220222<마을입구 정자>

산청 남사마을 01-20220222<남사마을 전경>

산청 남사마을 02-20220222<최씨고가, 사양정사 등이 있는 마을 동쪽>

산청 남사마을 03-20220222<이씨고가, 사효재 등이 있는 마을 서쪽>

남사예담촌
지리산의 정기가 동으로 뻗은 곳에 예(禮)를 상징하는 니구산과 사수가 닿아 만든 반달 모양의 남사예담촌은 예부터 선비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숫룡의 머리를 한 마을 앞 당산과 암룡의 머리를 한 니구산이 서로의 머리와 꼬리를 무는 쌍룡교구(雙龍交媾)를 이루는 곳에 연꽃모양의 산이 둘러싸고 있어 말고 어진 기운이 마을을 수호하고 있다. 신의와 청령을 지키는 선비의 고장답게 단아한 기품과 예절을 품고 있는 전통한옥과 옛 토담, 효심으로 심은 수령 700년이 넘는 나무와 수많은 역사문화자원들이 한 폭의 동양화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 절세 풍광이다. 옛 것을 통해 겸손과 겸양의 지혜를 배워 감사의 마음을 알게 하는 남사예담촌은 2003년 농촌전통테마마을로 지정되어 한국인의 멋과 맛을 오감으로 체득할 수 있는 진정한 휴식처로 자리하고 있다. (안내문, 산청군청, 2022년)

<출처>

  1. 안내문, 산청군청,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대한민국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2022년

산청 남사마을 옛 담장

경남 산청군 단성면 남사리 마을에 있는 옛 담장(등록문화재)이다. 남사마을은 18~20세기에 지어진 한옥들이 많이 남아 있는 전통마을로 오래된 토담과 돌담이 많이 남아 있다. 양반들이 살았던 큰 고택에는 흙과 돌로 쌓고 그 위에 기와를 올려 놓은 높은 토담들이, 서민들이 살았던 가옥에는 나지막한 돌담들이 남아 있다. 전통마을에서 경제력과 신분에 따라 다양한 재료와 형식으로 쌓은 담장들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산청 남사마을 옛담장 01-20220222<산청 남사마을 옛담장>

산청 남사마을 옛담장 07-20220222<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고택인 이씨고가 앞 돌담길>

산청 남사마을 옛담장 06-20220222<이씨고가 앞 담장과 대문>

산청 남사마을 옛담장 11-20220222<최씨고가 앞 담장과 대문>

산청 남사마을 옛담장 10-20220222<최씨고가 골목길 담장>

산청 남사마을 옛담장 13-20220222<사양정사 앞 담장과 골목길>

산청 남사마을 옛담장 12-20220222<마을 중심부 골목길>

산청 남사마을 옛담장 05-20220222<마을 바깥쪽 담장>

산청 남사마을 옛담장 03-20220222<골목길 담장>

남사마을을 지리산 중산리로 연결되는 교통로에 있는 전통마을로 지금은 남사예담촌이라 부른다. 마을에는 20세초에 지어진 많은 기와집이 모여있다. 성주 이씨, 밀양 박씨, 진양 하씨가 주로 모여살고 있다.

산청 남사마을 옛담장 09-20220222<남사마을>

산청 남사마을 옛 담장
남사마을의 옛 담장은 마을 주민들이 남사천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강돌을 사용하여 쌓았다. 담장 하부에 길이 50 ~ 60cm 정도의 큰 막돌로 2~3층을 쌓은 다음 그 위에 돌과 진흙을 교대로 쌓아 올렸다. 담 높이는 2m 정도로 높은 편이다. 지리산 길목에 있는 남사마을은 18세기에서 20세기 초에 지은 전통 한옥 40여 채가 남아 있어 담장과 한옥이 어우러져 고풍스러운 풍경을 자랑한다. (안내문, 산청군청, 2022년)

<출처>

  1. 안내문, 산청군청,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대한민국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2022년

경주 교촌마을, 경주 최부자댁으로 잘 알려진 마을

경북 경주시 교동에 있는 전통마을인 교촌마을이다. 조선중기 이후 경주최씨가 향교가 있는 이곳에 터를 잡고 살면서 크게 번창하여 집성촌처럼 보이는 마을이다. 경주향교를 중심으로 경주 만석군으로 유명한 경주 최부자댁을 비롯하여 교동법주 고택, 요석궁 등 대지주들이 살았던 저택들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집을이 모여 있다.  이곳은 통일신라 최고 교육기관인 ‘국학’이 있던 곳이며 경주향교가 있어 교동 또는 교촌마을로 불린다. 신라 궁성인 반월성 서남쪽 아래에 있는 마을로 삼국시대 김유신이 살았던 집터인 재매정을 비롯하여 월정교, 문천교 등 많은 역사유적이 주변에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교촌마을>

경주최씨 집안은 관직에 진출하지 않고 농업경영으로 부를 축적한 대표적인 대지주였다. 조선시대에도 많은 사람들이 경주를 찾았으며, 최부자집을 비롯하여 교촌마을이나 향교 등에서 묵으면서 경주를 여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최씨 집안은 유력 인사들을 접대하는 것을 중요한 일로 여겼으며, 손님들을 접대하기 위해 집을 크게 지었던 것으로 보이다. 손님접대와 관련된 많은 일화들이 전해 내려오고 있으며, 집안의 전통주인 교동법주는 경주를 대표하는 문화유산 중 하나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최부자댁 위상을 보여주는 큰곳간>

교초마을 최씨 종가인 최부자댁은 1700년 대에 건립되었다고 전해지는 가옥으로 99칸 규모의 대저택이었다. 저택은 사랑채, 안채, 문간채, 곳간,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남일대에서 손꼽히는 부호이지만 저택의 건물규모가 크거나 화려하게 꾸미지는 않고 있다. 일제강점기 황태자시절에 서봉총 발굴에 참여했던 스웨덴의 구스타브 국왕도 이 저택에서 머물렀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최부자댁 사랑채>

OLYMPUS DIGITAL CAMERA<안채>

OLYMPUS DIGITAL CAMERA<옛 절터 주춧돌을 재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주춧돌>

경주법주 고택은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18세기 교촌마을 경주최씨 7대 최언경이 향교 옆으로 이사오면서 지은 집이다. 종가인 경주 최부잣집 옆에 위치하고 있으며 작은댁이라 불린다. 이집은 최부자집에서 대로 빚어온 경주 교동법주를 계승하고 있다. 교동법주는 숙종 때 사옹원 참봉을 지낸 최국준이 처음 빚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현재는 최경이 2대째 기능보유자로 명맥을 잇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법주 명맥을 잇고 있는 작은댁>

OLYMPUS DIGITAL CAMERA<사랑채>

교촌마을에 있는 유명한 한정식 식당인 요석궁은 최부자댁 12대 최준의 동생인 최윤이 분가하면서 지은 집으로 ‘밭가운데 댁’으로 불린다. 식당으로 개조되어 사용되고 있기는 하지만 부엌이나 광을 온돌방으로 바꾼 것 외에는 원래의 모습을 대체로 유지하고 있다. 식구가 많지 않은 일반적인 고택과는 달리 꾸준히 사용하고 있어 고택의 화려했던 시절을 간접적으로 느껴볼 수 있는 공간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요석궁 사랑채>

OLYMPUS DIGITAL CAMERA<안채>

최부자댁에서 향교로 들어가는 길은 시골 골목길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오래된 고택, 1970년대에 지어진 시골집, 최근에 크게 수리한 한옥 등 다양한 형태의 집들을 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최부자댁에서 향교로 들어가는 길>

OLYMPUS DIGITAL CAMERA<솟을대문이 있는 집>

OLYMPUS DIGITAL CAMERA<전형적인 시골집>

OLYMPUS DIGITAL CAMERA<최근에 다시 지은 것으로 보이는 한옥, 교촌마을 체험공간인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향교 외삼문>

경주향교는 통일신라 신문왕 때(682) 최고 교육기관인 국학을 세웠던 곳이다. 현재의 향교는 조선 성종 때(1492)에 성균관을 본 떠서 다시 지었다. 이후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중건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성전이 있는 제향공간을 앞쪽에, 명륜당이 있는 강학공간을 뒤에 배치한 전묘후학의 배치를 보여주고 있다. 조선시대 향교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대성전, 명륜당, 동무.서무,신삼문이 문화재(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향교 제향공간>

OLYMPUS DIGITAL CAMERA<강학공간>

사마소(司馬所)는 교촌마을 동쪽 월정교 터에 있던 것을 1984년 마을 입구로 옮겼다. 사마소는 16세기 초 지방의 사마시 출신 젊은 유림들이 지역 여론을 주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대체로 관아 부근에 위치하여 지방관의 지방통치를 간섭하는 세력이 되었다. 조선중기 이후 서원이 지역여론을 장악하면서 타지역에서는 없어졌다. 경주를 찾는 손님들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사마소>

사마소 부근에 있는 재매정(財買井, 사적)은 김유신 장군이 살던 집터에 남아 있는 우물이다. 우물은 화강암을 벽돌처럼 쌓아 올려 만들었다. 교촌마을이 통일신라 귀족층 주거지였음을 잘 보여주는 유적지이다. 집터는 1993년에 재매정을 중심으로 주변 집터를 발굴,조사하였다.

OLYMPUS DIGITAL CAMERA<재매정(사적)>

OLYMPUS DIGITAL CAMERA<재매정 주변 집터>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011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경주 교촌마을 홈페이지, 2022년

경주 양동마을, 영남 4대 길지로 손꼽혔던 마을

경북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에 있는 양동마을이다. 안동 하회마을, 천전마을, 봉화 닭실마을과 함께 조선시대 영남 4대 길지로 손꼽혔던 곳으로 하화마을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마을은 경주 손씨와 여주 이씨가 조선 전기에 터를 잡은 전형적인 반촌(班村)이다. 조선 성종 때 손소가 혼인하여 처가가 있는 이 마을에 들어왔으며 회재 이언적의 아버지인 이번이 손소의 사위가 되고 후손들이 번창하면서 경주 손씨와 여주 이씨가 모여사는 대표적인 집성촌이 되었다. 마을에는 조선중기에 지어진 고택인 송첨종택, 무첨당(보물), 관가정(보물), 향단(보물)을 다양한 형태와 규모의 고택들이 들어서 있다.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언적을 모신 옥산서원(사적)과 이언적이 살았던 독락당(보물), 손중돈을 모신 동강서원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양동마을>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안쪽 두곡고택에서 본 마을 풍경>

마을은 태백산맥이 형산강을 만나서 끊어지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남쪽으로는 형산강이, 서쪽으로는 기계천이 흐르고 있으며 동해안에서는 상당히 넓은 안강평야가 펼쳐져 있다. 큰 하천의 중상류 지역에 산을 등지고, 하천이 흐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입지조건을 잘 갖추고 있다. 송소종택이나 무첨당(보물)같은 종가를 중심으로 양반가옥과 소작농 가옥들이 적절히 배치되어 있으며, 전망이 좋은 곳에 정자와 서당 등이 들어서 있다. 마을은 안계라는 작은 개천이 마을 가운데를 흐르고 있는데 마을 입구  주변을 하촌, 안쪽을 거림, 서쪽 2개의 골짜기를 물봉골, 안골이라 부른다. 마을입구 하촌 언덕에는 마을을 대표하는 대저택인 관가정(보물), 향단(보물)이 자리잡고 있으며, 안골에는 마을 경주손씨 종가인 송첨종택과 후손들의 저택들이, 물봉골에는 여주 이씨 종가인 무첨당을 중심으로 후손들의 저택들이,두림에는 경제적으로 성공한 후손들의 저택들이 자리잡고 있다.

경주 양동마을2
<경주 양동마을>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입구>

OLYMPUS DIGITAL CAMERA<마을입구에 위치한 초등학교>

OLYMPUS DIGITAL CAMERA<관가정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 마을 옆을 흐르는 기계천과 멀리 형산강이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산서당 부근에서 보이는 안강평야>

 하촌(下村), 마을 입구

양동마을 입구를 하촌(下村)이라 부르는데 작은 개천을 중심으로 서쪽 언덕에는 큰 저택을 중심으로 주택들이 들어서 있고, 동쪽 언덕에 강학당, 심수정, 안락정 등 마을 후학을 양성하기 위한 서당과 휴식공간 등이 주로 자리잡고 있다. 마을을 대표하는 대저택인 향단과 관가정이 마을 입구 전망좋은 언덕에 자리잡고 있으며 그 아래에 병자호란 당시 쌍령전투에 참전하여 전사한 손중로(1598~1636년)을 기리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향단과 관가정은 마을을 대표하는 인물인 손중돈과 이언적이 지은 조선중기 건축물이다. 맞은편 언덕에는 경제적으로 성공한 후손이 조선후기에 지은 이향정 고택이 있으며, 대저택 주위에는 분가한 후손들이 지은 크고 작은 집들이 모여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양동마을 하촌>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입구에 세워진 정충비각>

관가정(觀稼亭, 보물)은  형산강과 기계천이 흐르는 안강평야의 넓은 벌판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위에 자리잡고 있다. 조선중기 고위관료를 지낸 손중돈이 분가하면서 지은 집이다.  ‘ㅁ’자형 건물배치를 하면서도, 왼쪽으로 누마루가, 오른쪽으로는 살림집이 확장되었다. 뒷편에는 손소를 모신 사당이 있다. 대문과 담은 원래는 없었다. 관가정 앞 언덕에 있는 정자나무 아래에서 주변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고택 아래에서 보이는 모습>

대청마루는 사실상 누마루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삼면이 개방되어 정자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관가정은 ‘곡식이 자라는 모습을 본다’는 뜻으로 이 곳에 올라서면 형산강 주변의 넓은 벌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OLYMPUS DIGITAL CAMERA<양동마을 관가정 사랑채>

관가정은 비교적 이른 시기에 분가한 집이다. 관가정 주위에는 많은 집들이 모여 있는데 분가한 후손들이나 관가정 살림을 도와주던 사람들이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마을 다른 곳에 비해 주택의 규모가 작은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입구 언덕에 위치한 관가정과 주위 고택들>

OLYMPUS DIGITAL CAMERA<관가정 오르는 길에 있는 초가집들>

OLYMPUS DIGITAL CAMERA<언덕에 있는 작은 초가집>

OLYMPUS DIGITAL CAMERA<관가정 아래 평지에 있는 초가>

OLYMPUS DIGITAL CAMERA<관가정 바로 아래 있는 작은 초가>

OLYMPUS DIGITAL CAMERA<언덕에서 내려다 보이는 양동마을>

OLYMPUS DIGITAL CAMERA<관가정 아래 마을사람들의 휴식공간이 되었던 공터>

향단(香壇, 보물)은 마을 입구 낮은 구릉 위에 자리잡고 있는 대저택으로 조선중기에 지어졌다. 이 집은 이언적이 경상감사로 부임하면서 병환중인 노모를 봉양하기 위해 지은 집이다. 이언적은 관직생활을 했던 그를 대신하여 부모를 봉양했던 동생 이언괄에게 이 집을 물려주면서 여주 이씨 향단파의 종가가 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양동마을 향단(보물)>

향단 주위에는 분가한 후손들이 살아왔던 고택들을 볼 수 있다. 기와지붕을 하고 있는 비교적 규모가 있는 고택으로 아마도 여주이씨 향단판 후손들이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향단 아래에 있는 고택들>

OLYMPUS DIGITAL CAMERA<향단 아래 평지에 있는 마당이 넓은 고택>

향단 맞은편 언덕에는 양동마을 사람들의 후학양성을 위해 세웠던 서당들과 휴식공간 등이 주로 자리잡고 있다. 마을 입구 초등학교 부근에는 경주손씨 서당인 안락정이 있으며, 향단 맞은편에는 여주이씨 서당으로 사용되었던 심수정과 강학당이 자리잡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항단 맞은편, 입구에 관광안내소가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심수정과 강학당이 있는 언덕>

OLYMPUS DIGITAL CAMERA<심수정 아래에 있는 고택>

심수정(心水亭)은 이언적의 동생 이언괄을 추모하기 위해 1560년 경에 처음 세워졌다고 한다. 현재의 건물은 화재로 소실된 것을 1917년에 현재의 모습을 중건한 것이다. 여주 이씨 문중에서 후학을 양성하기 위한 서당역할을 했던 건물이다. 대청마루와 누마루에서 내려다 보이는 마을 풍경이 웅장하며, 종가인 무첨당과 향단을 마주 보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하촌 큰 길에서 보이는 심수정>

OLYMPUS DIGITAL CAMERA<심수정>

OLYMPUS DIGITAL CAMERA<심수정 앞에서 내려다 보이는 마을>

OLYMPUS DIGITAL CAMERA<심수정 뒷편 강학당으로 들어가는 길>

강학당(講學堂)은 구한말에 마을 여주이씨 집안에서 후학을 가르치기 위해 세운 작은 서당이다. 앞쪽에 있던 서당건물이었던 심수정이 화재로 소실되었을 때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양반 집성촌에서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지었던 서당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강학당>

이향정(二香亭) 고택은 온양군수를 지낸 이범중이 살던 집으로 조선 숙종 때 지어졌다. 하촌 동쪽 언덕에 위치한 저택으로 전체적으로 ‘ㅁ’자형을 하고 있다. 건물은 안채, 사랑채, 아래채, 방앗간채로 구성되어 있는데 곡식을 보관했던 광을 많이 두고 있다. 조선후기 사회적, 경제적으로 성공한 후손이 살았던 대저택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하촌 큰길에서 보이는 이향정 고택>

OLYMPUS DIGITAL CAMERA<이향정 고택>

물봉골

물봉골은 향단이 있는 언덕 뒷편에 있는 작은 골짜기로 마을 여주이씨 종가인 무첨당(보물)을 중심으로 규모있는 고택들이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여주이씨 후손 중 비교적 성공한 후손들의 분가하면시 지은 것으로 보인다. 뒷편 안강 들판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는 영귀정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정자들과 최근에 이곳으로 이전해온 경산서당이 자리잡고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양동마을 물봉골>

OLYMPUS DIGITAL CAMERA<물봉골 언덕에 위치한 무첨당(보물)>

OLYMPUS DIGITAL CAMERA<하촌 큰길에서 물봉골로 들어가는 길>

OLYMPUS DIGITAL CAMERA<언덕에 보이는 무첨당 안채를 출입하는 협문과 안채 담장>

OLYMPUS DIGITAL CAMERA<무첨당 아래 광장>

무첨당(無忝堂, 보물)은 회재 이언적 종가의 별채이다. 앞면 6칸, 옆면 2칸에 누마루를 달아내어 ‘ㄱ’자형을 하고 있는 건물이다. 가운데 3칸은 넓은 대청마루를 두고 양쪽에 1칸씩 온돌방을 두고 있다. 조선중기에 지어진 건축물로 제사를 지내고 손님접대를 위해 사용되었던 상류층 주택의 별당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무첨당(보물)>

OLYMPUS DIGITAL CAMERA<무첨당 본채>

OLYMPUS DIGITAL CAMERA<사당>

대성헌(對聖軒)은 18세기 중엽 이언적의 후손이 분가하면서 지은 집으로 이언적이 살았던 종가인 무첨당 옆 높은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건물은 안채, 사랑채, 행랑채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체적으로 ㅁ’자형을 하고 있으며, 지형에 맞추어 전체적으로 남서향을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성헌>

OLYMPUS DIGITAL CAMERA<맞은편 언덕에 보이는 대성헌>

물봉골에는 남향을 하고 있는 언덕에 종가인 무첨당과 큰 저택인 대성헌이 자리잡고 있으며, 맞은편 언덕에는 분가한 후손들의 터를 잡고 살고 있다. 초가지붕을 하고 있는 집들도 많지만 집의 규모나 위치로 볼 때 분가한 후손들의 집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성헌 맞은편 언덕에 있는 초가>

OLYMPUS DIGITAL CAMERA<대성헌 앞 물봉골 언덕으로 오르는 길>

OLYMPUS DIGITAL CAMERA<’ㄱ’형을 하고 있는 한옥>

OLYMPUS DIGITAL CAMERA<언덕 높은 곳에 있는 큰 규모의 저택>

OLYMPUS DIGITAL CAMERA<작은 규모의 한옥>

경산서당(景山書堂)은 이언적의 손자 무첨담 이의윤을 배향할 목적으로 세워진 서당이다. 원래는 마을 안쪽 안계리에 있었는데 그곳에 저수지가 건설되면서 종가인 무첨당에서 가까운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조선후기 서원 설립을 준비하기 위해 세워진 서당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산서당>

OLYMPUS DIGITAL CAMERA<경산서당 앞 고택>

OLYMPUS DIGITAL CAMERA<경산서당 앞 마당>

영귀정(詠歸亭)이다. 여주이씨 고택들이 모여있는 물봉골 서쪽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회재 이언적이 학문에 전념하기 위해 세운 정자가 있던 곳에 후손들이 중건한 것이다. 건물은 앞면 3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데 왼쪽 2칸은 넓은 대청마루가, 오른쪽 1칸은 온돌방이 배치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영귀정>

OLYMPUS DIGITAL CAMERA<영귀정 너머로 보이는 안강 들판>

거림(居林)

거림은 하촌을 지나서 안골로 들어가기까지 마을 안쪽을 말한다. 하촌과 마찬가지로 서쪽 언덕과 평지에 집들이 들어서 있고 동쪽에 정자와 사당 등이 들어서 있다. 양동마을 중 주민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서쪽 언덕은 이른 시기에 성공한 후손들이 분가하면서 집을 짓고 살고 있으며 아래쪽 평지에는 후대에 분가한 후손들이 살고 있다. 경주손씨와 여주이씨가 섞여서 살고 있는 지역으로 다양한 규모의 고택들을 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양동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는 길>

양동마을 안쪽 서쪽편 언덕에는 종가인 물봉골 무첨당에서 이른 시기에 분가한 후손들의 고택들이 자리잡고 있다. 이언적의 손자인 수졸당 이의잠의 고택과 양졸당 이의징을 기리는 정자를 비롯하여 큰 규모의 고택 등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많은 고택들이 있는 거림 서쪽편 언덕>

수졸당(守拙堂) 고택운 이언적의 손자인 수졸당 이의잠이 분가하면서 지은 집으로 종가인 무첨당 뒷편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17세기 초 광해군 때 처음 지어 졌으며 영조 때(18세기) 사랑채를 늘려 지었다. 대문채는 지붕을 사랑채보다 낮게 하여 격식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비교적 이른시기에 분가한 집으로 상류층 주택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수졸당 고택>

OLYMPUS DIGITAL CAMERA<무첨당 옆에 있는 상당히 큰 규모의 저택>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수졸당 고택 아래에 있는 양졸정>

OLYMPUS DIGITAL CAMERA<양졸정 아래 고택들>

거림 동쪽편 언덕은 서쪽을 향하고 있어 고택의 거의 없으며 수졸당의 기리기 위해 세운 정자와 영당이 자리잡고 있으며 아래쪽 평지에 조선후기에 사회적, 경제적으로 성공한 후손들이 분가하면서 지은 고택들이 있다. 18세기에 지은 대저택인 두곡고택이 대표적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두곡고택과 동호정으로 들어가는 길>

두곡고택(杜谷古宅)은 18세기 이언적 후손이 분가하면서 세운 집이다. 건물은 안채, 사랑채, 아래채가 튼 ‘ㅁ’자 평면을 하면서 주위에 부속건물들을 배치하였다. 마을 안쪽 언덕 높은 곳에 위치한 오래된 종가와는 달리 낮은 평지에 자리잡고 있는 큰 규모의 대저택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두곡고택>

OLYMPUS DIGITAL CAMERA<수졸당에서 내려다 보이는 두곡고택>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보이는 두곡고택과 동호정>

영당(影堂)은 수졸당 이의잠의 영정을 모신 곳으로 1636년에 처음 지어졌다고 한다. 건물은 앞면 3칸으로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앞쪽에는 제사를 위한 공간인 퇴간을 두고 있다. 전형적인 사당건물 형식을 잘 갖추고 있다. 영당 앞에는 재실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건물들이 있으며 뒷편에는 이의잠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정자가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영당>

OLYMPUS DIGITAL CAMERA<영당 앞 재실>

OLYMPUS DIGITAL CAMERA<동호정>

두곡고택 입구를 지나면 평지에 비교적 많은 고택들이 모여 있다. 두곡고택같은 대저택도 있으며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한옥, 조그만 초가집 등 다양한 형태의 집들을 둘러 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거림 안쪽>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는 길>

OLYMPUS DIGITAL CAMERA<문간채가 있는 집>

OLYMPUS DIGITAL CAMERA<평지에 있는 큰 규모의 고택>

OLYMPUS DIGITAL CAMERA<작은 규모의 한옥>

안골

안골은 조선중기 이전 양동마을이 시작되었던 곳으로 보인다. 경주손씨 입향조인 손소가 살았으며, 손중돈과 이언적이 태어난 종가집인 송첨종택을 중심으로 낙선당 고택 등 분가한 경주손씨 후손들이 주로 살고 있으며 안골 입구에는 조선후기에 경제적, 사회적으로 성공한 후손들이 분가하면서 지은 고택들이 자리잡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안골 입구>

안골 입구에는 분가한 후손들이 지은 고택들과 작은 초가집들이 모여 있다. 삼산고택을 비롯하여 근암고택, 상춘헌 고택, 사호당고택, 비슷한 규모의 고택이 있는데 모두 조선후기에 분가한 여주이씨 후손들의 저택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안골 입구>

안골 입구에 있는 삼산고택은 19세기 이후에 지은 것으로 보이는 큰 규모의 고택이다. ‘ㅁ’자형 건물배치를 하면서도 마당을 넓게 쓰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안골 입구에 있는 삼산고택>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삼산고택>

OLYMPUS DIGITAL CAMERA<근암고택 아래 안골로 들어가는 길>

근암고택(謹庵古宅)은 양동마을 안골 입구 경치좋은 언덕에 위치한 고택으로 조선후기 정조 때 지어졌다. 건물은 대문채, 안채, 사랑채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후기에 분가한 후손들이 터를 잡고 살았던 주택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근암고택 사랑채>

근암고택 옆에 있는 상춘헌(賞春軒) 고택은 마을에서 일반적인 건물 형태인 ‘ㅁ’자형 주택이다. 건물은 안채, 사랑채, 행랑채로 구성되어 있는데 ‘ㄷ’자인 안채와 사랑채가 하나의 건물이고 앞쪽에 ‘-’자형 행랑채가 연결되어 있다. 경사진 언덕에 꽃나무 등을 심어 정원을 적절히 조성해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상춘헌 고택>

OLYMPUS DIGITAL CAMERA<상춘헌에서 보이는 안골 풍경>

OLYMPUS DIGITAL CAMERA<상춘헌 고택 아래 초가집>

사호당(沙湖堂) 고택은 조선후기에 지어진 고택으로 구한말 건축양식이 반영되어 있다. 건물은 ‘ㄷ’자형 안채, ‘-’자형 행랑채가 ‘ㅁ’자형 평면을 이루고 안채 옆으로 ‘-’자형 사랑채가 연결되어 있다. ‘ㅁ’자형을 하고 있는 영남지방 한옥의 형식을 따르고 있지만 사랑채를 옆으로 달아내는 등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사호당 고택>

OLYMPUS DIGITAL CAMERA<사호당 고택 옆에 있는 비슷한 규모의 고택>

OLYMPUS DIGITAL CAMERA<고택 아래에 있는 작은 초가집>

OLYMPUS DIGITAL CAMERA<안골로 들어가는 길, 언덕에 나란히 자리잡고 있는 고택들이 보인다.>

안골을 경주손씨 종가인 송첨고택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집들이 모여있어 조선중기 이전 양동마을 규모을 짐작할 수 있게 해 준다.

OLYMPUS DIGITAL CAMERA<송첨종택 아래 광장>

송첨종택(松簷宗宅)은 조선중기에 경주손씨 마을 입향조인 손소가 지은 집으로 아들 손중돈과 외손자 이언적이 태어난 유서깊은 고택이다. 이 집터에서 세명의 현인이 태어났다고 해서 풍수적으로 관심을 끌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건물은 ‘-’자형 대문채가 있고 그 안에 안채, 사랑채, 행랑채가 ‘ㅁ’자형을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송첨종택>

OLYMPUS DIGITAL CAMERA<종택 아래 초가집>

낙선당(樂善堂) 고택은 손소의 셋째 아들인 손숙돈이 분가하면서 지은 집으로 조선중기 중종 때 처음 지어졌다. 사랑채가 대문채, 아래채와 함께 독립된 공간을 형성하고 있고, 오른쪽에 행랑채와 안채가 ‘ㅁ’자형 본채를 이루고 있다. 집주인이 천석꾼이었다고 하며 많은 곳간을 두고 있다. 마을에서도 가장 큰 규모의 저택에 속하지면 기난을 낮게 하고 건물들은 소박하게 지어졌다.

OLYMPUS DIGITAL CAMERA<낙선당 고택>

OLYMPUS DIGITAL CAMERA<낙선당 고택에서 보이는 안골마을>

창은정사는 안골에서도 제일 안쪽에 위치하고 있는 집으로 19세기에 지어졌다고 한다. 마을 고택 중에서는 비교적 늦은시기에 지어졌지만 상당히 큰 규모를 하고 있는 대저택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창은정사>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안쪽길>

OLYMPUS DIGITAL CAMERA<중턱에 있는 초가집>

OLYMPUS DIGITAL CAMERA<안채와 사랑채가 별도로 있는 큰 규모의 한옥>

OLYMPUS DIGITAL CAMERA<’ㄱ’자형 한옥>

OLYMPUS DIGITAL CAMERA<초가집>

OLYMPUS DIGITAL CAMERA<반대편 언덕에서 보이는 안골>

OLYMPUS DIGITAL CAMERA<물봉골로 넘어가는 길>

이 마을은 경주 손씨와 여주 이씨를 중심으로 형성된 씨족마을로, 500여 년이 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양민공 손소(1433-1484)가 혼인하여 처가가 있는 이곳에 들어온 것을 계기로 경주 손씨가 양동 마을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여주 이씨는 찬성공 이번(1463-1500)이 손소의 사위가 되면서 이 마을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조선 전기에는 이처럼 혼인한 신랑이 처가를 따라가서 사는 일이 많았다. 그동안 두 집안에서는 우재 손중돈(1463-1529)과 회재 이언적(1491-1553) 등 많은 유학자를 배출하였다. 마을 앞으로는 안강평야가 넓게 펼쳐져 있으며, 설창산 산줄기에 마을이 들어선 모양새가 독특하고 아름답다. 산에서 뻗어내린 네 줄기의 능선과 골짜기를 따라 150여 채의 옛집들이 굽이굽이 들어서 있는데, 이 중에서는 임진왜란 이전에 지어진 기와집이 네 채나 남아 있어 눈여겨 볼 만하다. 집들은 대개 ‘ㅁ’자 모양인데, 이는 조선 중기 영남 지방의 일반적인 가옥 형태이다. 다양한 가옥의 조화는 우리나라 전통 역사마을의 생활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마을주변의 산, 들판, 강 등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함께 ‘하늘의 별처럼 늘어서 있는 마을의 고택(星羅古宅)’은 진풍경이다. 양동마을은 전체가 중요민속문화재(1984), 세계문화유산(2010), 형산강팔경(2016)으로 선정되어 보전되고 있다. (안내문, 경주시청, 2012년)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012년/201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1년
  4. 위키백과, 2021년

경주 세심마을, 회재 이언적 후손들이 사는 마을

경북 안강읍 옥산리에 있는 전통마을인 세심마을이다. 자옥산(570m), 도덕산(702m), 어래산(571m) 사이에 형성된 좁은 골짜기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마을이다. 조선중기 문신 이언적이 살았던 독락당(보물)과 그를 모시는 옥산서원(사적)을 중심으로 작은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이언적은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후 본가인 양동마을을 떠나 독락당을 짓고 머물면서 살았는데, 옥산서원에 세워지고 그의 서자 이전인이 터를 잡고 살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마을 뒷편에는 통일신라 절터에 남아 있는 정혜사지 십삼층석탑(국보)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세심마을>

경주 독락당(보물)

독락당(獨樂堂, 보물)은 이언적이 옥산천 계곡 경치 좋은 곳에 지은 별장 성격의 한옥이다. 현존하는 고택 중 비교적 른 시기인 1516년(중종11)에 지어졌다. 이언적은 인근 양동마을 출신으로 벼슬을 물러난 후 낙향하여 이곳에 머물렀다. 이후 그의 손자들이 이곳에 살림집인 경청재를 지었으며 가까운 곳에 이언적을 모시는 옥산서원(사적)이 세워지면서 자연스럽게 이언적 후손들이 사는 생활 터전이 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독락당(보물)>

OLYMPUS DIGITAL CAMERA<계곡에서 보이는 독락당과 담장>

독락당 뒷편에는 계정은 계곡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ㄱ’자형 건물이다. 마당쪽으로 온돌방을 두고 있으며, 계곡을 향하는 방향으로 벽이 없는 넓은 마루를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계정>

OLYMPUS DIGITAL CAMERA<옥산천 계곡에서 본 계정>

독락당은 옥산천 계곡 경치가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후손들이 지은 살림집인 경청재가 있고 대문 옆으로 독락당으로 연결되는 길이 있다. 옥산천은 수량이 비교적 풍부하면서도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독락당 아래 옥산천 계곡>

독락당은 이언적 후손들이 대를 이어 살고 있는 살림집으로 안채와 사랑채가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독락당 살림집은 1601년(선조34) 회재  이언적의 손자들이 옥산서원과 독락당을 유지하기 위해 지은 집으로 경청재(敬淸齋)라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후손들이 살고 있는 독락당 살림집>

후손들이 살고 있는 마을

세심마을은 이언적의 후손들이 살았던 마으로 규모는 크지 않은 편이며 크고 오래된 고택은 거의 없는 편이다. 마을 한가운데에는 후학들을 양성하기 위한 강학당인 귀후재(歸厚齋)가 자리잡고 있다.  마을 입구에는 이전인을 기리는 <잠계 이전인기적비>가 세워져 있으며, 마을에서 옥산천 상류 방향으로 700m 떨어진 곳에 이전인을 기리는 장산서원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세심마을 입구>

OLYMPUS DIGITAL CAMERA <잠계 이전인기적비>

OLYMPUS DIGITAL CAMERA<후손들이 살고 있는 마을>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입구에 있는 비교적 오래된 주택>

OLYMPUS DIGITAL CAMERA<후학들을 양성하기 위해 지은 귀후재>

OLYMPUS DIGITAL CAMERA<귀후재>

OLYMPUS DIGITAL CAMERA<수리 이전 모습>

귀후재(歸厚齋)는 옥산에 대대로 살던 여강 이씨의 대표적인 강학당(講學堂)으로 조선 현종 3년(1662)에 이상규가 창건하였다. 이곳에서는 문중 자제들을 주로 교육하였으며 건립연대는 인근 양동마을의 대표적인 서당인 강학당(1867년 경 건립)과 안락정(1776년 경 건립)보다 앞선다. 정면 4칸, 측면 1칸으로 구성된 일자형 건물이며, 본채 이외에 정면 1칸, 측면 1칸 규모의 대문채가 남아 있다. 한국전쟁 이후까지도 강학 기능이 유지 되었다고 한다. (안내문, 경주시청,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안쪽 광장>

OLYMPUS DIGITAL CAMERA<관강객을 위한 농촌체험공간>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세심마을>

OLYMPUS DIGITAL CAMERA<독락당을 지나 옥산천 상류 방향으로 연결되는 길>

정혜사지 십삼층석탑

정혜사지 십삼층석탑(국보)은 1층 기단 위에 13층의 탑신을 쌓아 올린 높이 5.9m의 석탑이다. 불국사 다보탑처럼 정형화된 석탑의 양식에서 벗어난 이형석탑으로 볼 수 있다. 통일신라부터 이곳에 사찰이 있었으며, 주변에는 주춧돌과 기왓장들이 흩어져 있었다. 계곡의 물이 풍부하고 경치가 좋아서 통일신라때 부터 사찰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정혜사지 절터와 십삼층석탑(국보)>

옥산서원

옥산서원(玉山書院, 사적)은 회재 이언적(李彦迪, 1491 ~ 1553년)을 기리기 위해 1592년(선조5)에 경주부윤 이제민이 처음 세웠으며 1573년 국왕으로부터 ‘옥산(玉山)’이라는 이름이 내려져 사액서원이 되었다. 강당건물인 구인당(求仁堂)을 중심으로 한 강학공간이 앞쪽에, 위패를 모신 체인묘(體仁廟)를 중심으로 제향공간이 뒷쪽에 위치한 전학후묘의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서원 입구에 위치한 청분각에는 이언적의 <수필고본>(보물), 김부식의 <삼국사기> 완본 9권(국보) 등 많은 서적들을 소장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옥산서원 입구>

OLYMPUS DIGITAL CAMERA<옥산서원 들어가는 길>

OLYMPUS DIGITAL CAMERA<옥산서원 입구>

OLYMPUS DIGITAL CAMERA<서원 앞 마당>

OLYMPUS DIGITAL CAMERA<옥산서원 강당>

세심대(洗心臺)는 서원 앞을 흐르는 개천 가운데 있는 넓은 너럭바위 일대를 말한다. 독락당에서 흘러내려온 개천은 세심대에서 작은 폭포와 용소(龍沼)를 만들어 빼어난 경치를 만들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세심대>

OLYMPUS DIGITAL CAMERA<옥산서원을 감싸고 있는 울창한 숲, 세심대에서 본 모습>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01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소, 2021년
  4. 위키백과, 202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