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전통마을

영주 선비촌, 옛 선비들의 삶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

경북 영주시 순흥면 청구리 소수서원 뒷편에 있는 선비촌이다. 소수서원 뒷문 나와 죽계천을 건너면, 선비촌과 소수박물관을 볼 수 있다. 선비촌에는 영주지역에 남아있는 옛 선비들이 살았던 해우당 고택등 기와집 7동과 초가 5동 등 다양현 규모와 형태의 고택을 복원해 놓고 있다. 또한 옛 사람들의 살았던 모습을 보여주는 정자, 누각, 방앗간, 대장간 등을 재현해 놓고 있다. 소수서원과 함께 옛 선비들의 살았던 삶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소수서원 뒷문은 나와 죽계천 다리를 건너면 왼쪽에는 영주지역 고택들을 재현해 놓은 선비촌이 있고, 오른쪽에는 소수박물관이다.

SANYO DIGITAL CAMERA선비촌을 들어서면 큰 길에 십이지신상을 세워 놓았으며, 선비들이 살았던 다양한 규모와 형태의 가옥들을 볼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선비촌 입구에 볼 수 있는 열녀를 기르는 정려각인 열부각.

SANYO DIGITAL CAMERA영주 부석면에 있는 중류층 양반가옥인 김상진가옥 대문채. 선비촌 입구 부근에 있다.

SANYO DIGITAL CAMERA건물은 ‘ㄷ’자형을 본채를 중심으로 정면에 마루를 깔고 좌우측에 안채와 사랑채로 구성되어 있다. 중류층 양반이 살았던 크지 않은 아담한 규모의 고택으로 정갈하면서 절제된 분위기를 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영주의 대표적인 전통마을인 무섬마을에 있는 해우당 고택.

SANYO DIGITAL CAMERA해우당고택은 구한말 고위관리를 지낸 김낙풍이 지은 집이다. 안채와, 사랑채가 ‘ㅁ’자형을 평면구조를 하고 있다. 사랑채는 지반을 기둥을 높게 세우고 툇마루에 난간을 둘러 누마루처럼 꾸몄다. 마당 한쪽에는 작은 규모의 작은사랑채를 두고 있다. 사랑채에는 흥선대원군이 친필로 쓴 ‘해우당’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SANYO DIGITAL CAMERA영주시 이산면에 있는 우금촌 두암고택 사랑채이다. 두암고택은 주선중기 해미현감 등을 역임한 두암 김우익이 건립한 가옥으로 ‘ㅁ’자형 본채, 사랑채, 문간채, 사당 등으로 구성된 상당히 큰 규모의 저택이다.

SANYO DIGITAL CAMERA영주시 이산면 석포리에 있는 김구영가옥이다. 방들이 앞뒤로 붙어 있는 양통집으로 경북지방의 대표적인 서민주택이다. 초가지붕을 하고 있지만 중류계층 양반이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소수서원 강당인 강학당을 재현 놓은 건물.

SANYO DIGITAL CAMERA물레방앗간.

SANYO DIGITAL CAMERA마을 한쪽에 있는  정자인 승운정. 선비들이 경치좋은 곳에서 학문을 논하고 풍류를 즐겼던 공간이다.

<출처>

  1. 안내문, 영주시청, 2009년
  2. 대한민국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2018년

봉화 닭실마을, 영남 4대 길지로 손꼽히는 전통마을

경북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에 있는 닭실마을이다. 봉화읍에서 울진과 태백방향으로 약 1 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아늑한 마을로 이중환의 『택리지』에 안동 화회마을, 천전마을, 경주 양동마을과 함께 삼남지역 4대 길지로 언급되었던 곳이다. 조선 중종때 문신 권벌이 기묘사화로 파직을 당하면서 외가가 있던 이곳으로 입향하면서 안동권씨 집성촌이 되었다. 마을 앞으로는 2개의 시냇물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으며, 뒷편으로 산이 있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

도로가 남쪽편 철로쪽과 연결되어 있어서 청암정(명승 60호)와 권벌종택이 제일 안쪽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원래는 마을 앞을 지나 봉화읍으로 흘러가는 석천계곡을 통해서 마을로 들어왔기때문에 종가집이 마을 입구에 있었다. 마을의 규모는 크지 않은 편이며, 대부분의 가옥들은 기왓집 형태와 구조를 하고 있는 전형전인 반촌의 형태를 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봉화 닭실마을. 마을 뒤에는 산이 있고, 앞에는 개울이 흐르며 들판이 펼쳐져 있는 배산임수의 입지조건을 잘 갖추고있다.

SANYO DIGITAL CAMERA마을 앞을 흐르는 하천. 가계천이라고 부르는데 마을을 지나 또다른 명승인 석천계곡을 만들면서 봉화읍으로 흘러간다. 개천 옆에 있는 길이 닭실마을로 들어가는 옛길이다.

SANYO DIGITAL CAMERA마을 종택으로 연결되는 큰 길.

SANYO DIGITAL CAMERA권벌종택 솟을대문. 조선중기 문신 권벌이 사화로 파직을 당한 후 터를 잡고 살았던 종택이다. 안채와 사랑채가 ‘ㅁ’자형 평면을 하고 있는 상당히 큰 규모의 가옥이다. 사랑채가 있는 마당을 출입하는 대문채는 솟을대문을 하고 있으며, 안채 뒷편에는 사당이 있다.

SANYO DIGITAL CAMERA종택 사랑채.

SANYO DIGITAL CAMERA종택 뒷편에 있는 사당.

SANYO DIGITAL CAMERA종택 마당 한쪽편에 위치한 청암정(명승 60호). 거북모양 바위에 세워진 정자와 작은 서재를 두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거북모양 바위위에 세워진 청암정.

SANYO DIGITAL CAMERA종택 옆에 있는 작은 규모의 한옥.

SANYO DIGITAL CAMERA그 옆으로 사랑채와 안채가 나란히 배치되어 있는 고택을 볼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뒷편에 있는 안채.

SANYO DIGITAL CAMERA마을 고택 중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집이 많지 않으나 규모나 형태 등을 볼 때 전형적인 양반들의 세거지였음을 알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멀리서 보이는 권벌 종택.

SANYO DIGITAL CAMERA마을 앞으로 반듯하게 닦아 놓은 길.

SANYO DIGITAL CAMERA마을 앞 농토. 넓지는 않으나 개천이 마을 앞을 흐르고 있어 수량이 풍부하여 농사짓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마을 가운데 있는 비교적 큰 규모의 한옥.

SANYO DIGITAL CAMERA큰 사랑채가 있는 고택 마당.

SANYO DIGITAL CAMERA마을 입구쪽으로는 70년대 양옥의 모습을 하고 있는 큰 주택들도 볼 수 있다.

내성 유곡 권충재 관계유적,
이 곳은 조선 중종 때 문신으로 예조판서를 지낸 충재 권벌(1478 ~ 1548년)의 유적지이다. 이 곳은 유곡으로 ‘닭실’인데 흔히 ‘달실’로 부른다. 그는 안동출신으로 중종 2년(1507)에 문과에 급제하고 관직에서 활동하던 중 중종 15년(1520)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파직된 후 이곳에 정착하여 후진을 양성하고 경학연구에 전념하였다. 그는 중종 28년(1548) 복직되었다가 을사사화로 인하여 다시 파직되었고, 명종 3년(1548) 유배지인 평안도 삭주에서 돌아갔다. 이곳에는 그가 지은 청암정과 큰아들인 청암 권동보가 충재의 뜻을 기리기 위하여 지은 석천정이 있는데 울창한 소나무숲과 아름다운 암석으로 경관이 매우 빼어나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이 지역을 경주의 양동, 안동의 내앞, 풍산의 하회와 함께 삼남지역의 4대 길지로 꼽고 있다. (안내문, 봉화군청, 2010년)

<출처>

  1. 안내문, 봉화군청, 2018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
  4. 한옥의 미, 서정호, 경인문화사, 2010년

영주 무섬마을, 물위에 떠 있는 섬처럼 생긴 아름다운 전통마을

경북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에 있는 전통마을인 무섬마을이다. 조선후기 반남박씨 박수가 터를 잡고 마을을 개척했으며, 그의 증손사위 선성김씨 김대가 들어와 살면서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이 마을을 휘감고 돌아나가서 마치 섬처럼 보인다고 하여 ‘무섬마을’이라고 부른다. 선비들을 많이 배출한 전형적인 양반마을로 구한말에는 주민 500여 명이 살았을 정도로 번성했지만 지금은 작은 시골마을로 남아 있다.

마을에는 반남박씨 종택인 만죽재와 선성김씨 종택인 무송헌, 가장 큰 규모의 저택인 해우당을 비롯하여 격식을 갖춘 ‘ㅁ’자형 가옥, 경북 북부지방에서 주로 볼 수 있는 까치구멍집, 서민들이 살았던 작은 규모의 초가집 등 다양한 형태의 가옥들이 남아 있다. 가옥들은 대부분 마을 뒷산을 등지면서 내성천을 향해 서남향을 하고 있다. 또한 마을의 형상이 물위에 떠있는 배와 같다고 하여 마을에는 우물을 두고 있지 않다고 한다. 마을을 들어오는 다리인 수도교가 생긴 1979년 이전에는 좁은 외나무다리를 이용해서 마을을 들어갈 수 있었는데, 이 외나무다리가 마을을 대표하는 경관을 만들어 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건너는 다리인 수도교 앞에서 보이는 무섬마을. 내성천이 마을을 휘감으며 흐르고 있다. 내성천이 있는 서남쪽을 향해 배산임수의 지형을 잘 갖추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무섬마을 모형. 마을에는 농토가 없으며 마을 앞 내성천을 건너는 외나무다리가 유일한 통로였다.

OLYMPUS DIGITAL CAMERA1979년에 세워진 수도교.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북쪽에는 작은 정자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산실이었던 아도서숙이 있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수도교를 건너면 첫번째로 볼 수 있는 고택인 김성규가옥이다. 독립운동가 김성규가 살았던 집으로 시인 조지훈의 처가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에 분가하면서 지어진 집으로 홍수 피해을 입어 폐가가 되었다가 최근에 복원되었다. 지금은 식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입구에 있는 해우당고택. 마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저택으로 구한말 고위관리를 지낸 김낙풍이 지은 집이다. 사랑채에는 흥선대원군이 친필로 쓴 ‘해우당’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해우당고택 뒷편 골목길 안쪽에 있는 큰규모의 고택인 주실고택.

OLYMPUS DIGITAL CAMERA주실고택 맞은편에 있는 최근에 수리하여 지은 것으로 보이는 집.

OLYMPUS DIGITAL CAMERA주실고택 뒷편으로 들어가는 골목길.

OLYMPUS DIGITAL CAMERA해우당고택에서 마을로 들어가면 볼 수 있는 고택.

OLYMPUS DIGITAL CAMERA수춘재라 불리는 비교적 큰 규모의 고택. 다른 가옥과는 달리 사랑채가 맞배지붕을 하고 있으며 툇마루를 넓게 만들어 누마루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사랑채 기둥이 원기둥 모양을 하고 있으며, 종택 가까이 있는 것으로 볼 때 고위직을 지낸 인물이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수춘재 옆에 있는 섬계고택. 섬계는 무섬마을을 대표한는 인물로 손꼽히는 박제익의 호이다. 지금은 선성김씨 김동근가옥으로 되어 있는데 그와 관련된 집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섬계고택 안쪽에 있는 만죽재고택이다. 반남 박씨 입향조인 박수가 17세기에 마을로 이사오면서 처음 자리잡은 종택을 마을 중심부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웅장하지는 않지만 종택답게 간결하면서도 격식을 갖추고 있는 고택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종택 뒷편에는 섬계 박제익이 후학을 양성하고 학문을 교류하던 섬계초당이 있다. 그 앞쪽에는 선성김씨 종택에 있는 사당이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섬계고택과 만죽재고택 뒷편에 있는 집들.

OLYMPUS DIGITAL CAMERA만죽재고택 앞에 있는 6칸 규모의 작은 까치구멍집.

OLYMPUS DIGITAL CAMERA만죽재고택 앞쪽에 있는 무송헌종택이다. 선성김씨 입향조인 김대가 터를 잡고 살았던 곳이다. 세종 때 천문학자로 큰 업적을 남긴 무송헌 김담(1416~1464년)의 종손(?)이어서 무송헌종택이라 부른다. 고택 뒷편에는 김담을 비롯한 불천위 조상을 모시는 사당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무송헌종택을 들어가는 골목길.

OLYMPUS DIGITAL CAMERA골목길 왼쪽에 있는 오헌고택. 큰 규모의 저택으로 병조참판을 역임한 박제연의 후손이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골목길 오른쪽에 있는 농당고택.

OLYMPUS DIGITAL CAMERA만죽재고택에서 안쪽으로 들어가면 볼 수 있는 김덕진가옥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김덕진가옥 옆에 있는 김위진가옥. 비슷한 규모의 큰 저택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김위진 가옥 옆쪽에 있는 작은 규모의 초가집. 안방과 사랑방이 한건물에 있는데 담장으로 공간을 분리하고 있다. 분가한 후손이 살았던 집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앞쪽에 있는 까치구멍집인 김규진가옥.

OLYMPUS DIGITAL CAMERA앞쪽에 있는 큰 규모의 고택. ‘오당’이라 걸린 현판이 걸려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중심부 앞쪽에 있는 김정규가옥이다.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로 마을에 있는 6칸 까치구멍집에 비해 규모가 확장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남쪽편으로 제방길. 아래에 무섬마을의 역사를 보여주는 전시관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남쪽편 제방에서 보이는 마을 풍경.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앞에 있는 제방길. 내성천과 함께 한적한 시골마을 경치를 더해주는 아름다운 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제방길에서 내려다 보이는 외나무다리이다. 내성천이 마을을 휘감고 돌아 마치 섬같은 지형을 하고 있는 무섬마을과 외부를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였던 다리이다. 다리는 길이 약 150 m, 폭 20 ~25 cm, 높이 60 cm로 한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다리이다. 옛스런 고택들이 모여있는 무섬마을을 운치있게 만들어주는 아름다운 다리로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풍경을 자랑하는 곳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다리 중간에 비껴다리를 만들어 마주 오던 사람이 비껴갈 수 있게 만들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외나무다리에서 보이는 마을 풍경.

영주 무섬마을, 경북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
이 마을은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과 서천이 마을 동쪽 500 m 지점에서 합류하여 마을 전체를 태극 모양으로 한바퀴 휘감아 돌고 있어, 마을이 마치 물위에 떠 있는 섬과 같다고 하여 ‘무섬’이라 불리고 있다. 마을 입향조인 박수(반남박씨)선생께서 1666년(현종 7) 강건너 ‘머름’에서 이곳에 들어와 마을을 개척하여 터전을 이루었다. 그 후 박수 선생의 손자의 사위인 김대(선성김씨)선생께서 영주에 있는 삼판서 고택에서 이 마을로 들어와 함께 살게 되어 지금까지 반남박씨와 선성김씨 두 성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마을은 자연 지리적 조건을 최대한 활용하여 뒤로는 산을 배경으로 하고 앞으로는 강을 향하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형태이다. 예로부터 많은 선비들을 배출한 부촌으로 한때는 마을 소유의 토지가 30리 밖에까지 이르렀으나 정작 마을에는 농지가 없어 강을 건너 가서 농사를 지었다. 일제강점기에는 3.1만세운동 이후 각처에서 활동하던 애국지사들이 일본 경찰의 탄압과 감시를 피해 이곳으로 본거지를 옮기고 동네 주민들과 함께 아도서숙을 건립하여 애국계몽운동과 독립운동을 펼치기도 하였다. 마을에는 해우당 고택과 만죽재 고택 등을 비롯하여 규모가 크고 격식을 갖춘 입구자형(‘ㅁ’)가옥, 까치구멍집, 겹집, 남부 지방 민가 등 다양한 형태의 구조와 양식을 갖춘 집들이 많이 있어 전통 주거 민속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안내문, 영주시청, 2017년)

<출처>

  1. 안내문, 영주시청,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달성 묘골마을, 박팽년 후손들이 모셔사는 집성촌

대구 달성군 하빈면 묘리에 위치한 전통마을인 묘골마을이다. 사육신 중 유일하게 후손이 살아남은 박팽년 후손들이 터를 잡고 살고 있는 순천박씨 집성촌이다. 박팽년의 2남 박휘순의 처가이 있던 곳으로 그의 부인이 친정인 이 곳에서 아들을 낳고 숨어살다가 성종대에 사면을 받고 외가의 재산을 물려 받아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달성지역에서도 경제력이 상당히 풍부했으며, 지역에서도 영향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장을 지낸 박준규씨가 이 마을을 대표하는 인사로 볼 수 있으며, 삼성그룹 창업자 부인도 마을 출신이라고 한다.

묘골마을은 박팽년이 후손이 복권되면서 양반가문으로 크게 번성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마을에는 사당인 육신사를 중심으로 큰 규모의 한옥들이 모여서 마을을 이루고 있다. 오래된 한옥은 많지 않으며, 대부분 최근에 크게 수리한 것이다. 육신사 옆에는 조선중기에 종가 별당으로 지어진 태고정(보물 554호)이 있으며, 그 아래에 18세기에 지어진 고택인 도곡재가 있다.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사육신을 모신 낙빈서원이 있으며 그 아래 운치있게 잘 지어진 삼가헌고택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달성 묘골마을. 사육신 박팽년 후손들인 순천박씨가 모여사는 집성촌이다. 경제력이 풍부했던 마을로 오래된 고택이 많이 남아 있지는 않지만 현재 살고 있는 한옥들의 규모가 큰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입구에 있는 사육신 기념관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입구에 세워진 삼충각. 사육신 박팽년과 그의 아들, 손자까지 3대가 국왕으로부터 정려를 받은 것을 기리기 위해 1835년에 세워졌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입구에 있는 큰 규모의 저택인 충효당. 조선후기 인조 때 금산군수를 지낸 후손이 별당으로 지은 건물이다. 살림집으로 지어진 건물이 아니었으나 지금은 주택으로 사용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입구에 있는 큰 규모의 한옥. 최근에 크게 수리하여 고택의 멋을 느낄 수는 없지만 개량된 한옥의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원래 큰 가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에는 대부분 규모가 큰 한옥들이 들어서 있다. 마을을 이루고 있는 박팽년 후손들의 크게 번창했음을 알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한옥 대문 안쪽으로 보이는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골목길 안쪽에 보이는 오래된 고택

OLYMPUS DIGITAL CAMERA마을에 있는 한옥 중 비교적 오래된 고택한 도곡재 솟을대문.

OLYMPUS DIGITAL CAMERA도곡재는 18세기에 주택으로 지어졌다가 19세기에 후학을 양성하는 재실로 바뀌었다. 안쪽에 살림집인 안채가, 바깥쪽에 사랑채가 있는 마당을 넓게 쓰는 남부지방 양반가옥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도곡대 뒷편에 있는 큰 규모의 고택.

OLYMPUS DIGITAL CAMERA고택 앞쪽에 있는 사랑채. 2동의 건물이 나란히 있는 상당히 큰 규모의 사랑채이다.

OLYMPUS DIGITAL CAMERA‘ㄱ’자형 안채.

OLYMPUS DIGITAL CAMERA묘골마을 골목길.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안쪽에 있는 옛 종가 별당으로 지어진 고택인 태고정(보물 554호).

OLYMPUS DIGITAL CAMERA태고정은 조선중기에 지어진 한옥으로 조선전기 한옥의 양식이 남아 있는 중요한 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태고정 옆에 있는 육신사. 사육신과 박팽년의 아버지를 모시는 사당으로 1970년대에 지어졌다.

OLYMPUS DIGITAL CAMERA육신사에서 내려다 보이는 마을 풍경

OLYMPUS DIGITAL CAMERA태고정 아래에 있는 육신사 재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낙빈서원. 원래 사육신을 모셨던 서원으로 구한말 훼철되었다가 지금은 강당만 복원되어 재실로 사용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낙빈서원 아래에 있는 삼가헌고택. 조선후기 영조 때 (1769년) 삼가헌 박성수가 이곳에 사랑채를 짓고 자신의 호인 ‘삼가헌’을 현판으로 걸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삼가헌 고택 별당 건물이 하엽정. 정자 앞 연못에 심어진 연꽃이 유명하다.
<출처>

  1. 안내문, 달성군청, 2011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

성주 한개마을, 17세기 이후 크게 번창한 성주이씨 집성촌

경북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에 있는 전통마을인 한개마을이다. 조선초 진주목사를 지낸 이우가 처음 들어온 이래 후손들이 모여사는 성산이씨 집성촌이다. 조선중기에 성산이씨 씨족마을로 자리잡았으며 영조 때인 17세기 이후 과거합격자를 많이 배출하면서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나즈막한 동산인 영취산이 마을을 감싸주고 있으며, 마을 앞으로 큰 하천이 흐르고 있는 배산임수의 입지조건을 잘 갖추고 있으며, 하천 주변의 넓은 들판이 있어 농업생산력을 기반으로 마을이 번창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마을에는 문화재로 지정된 한주종택, 교리댁 등을 비롯하여 많은 고택들과 제사를 모시기 위한 재실 등이 남아 있다. 마을 서쪽편 높은 곳에 응와종택, 한주종택, 교리댁 등 큰 규모의 저택들이 자리잡고 있으며, 극와고택 같은 분가한 후손들이 살았던 작은 규모의 집들은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다. 고택들을 작은 골목길 안쪽에 대문을 두고 사랑채가 바깥쪽에, 안채를 두며 담장과 중문으로 공간을 분리하고 있다. 마을 외곽에는 제사준비와 후학양성을 위해 지어진 재실과 서당들이 자리잡고 있다. 17세기 이후 번창했던 까닭에 큰 업적을 남긴 조상을 모시는 서원은 세워지지 않았다.

OLYMPUS DIGITAL CAMERA성주 한개마을 입구. 조선후기 양반계층들이 모여 살았던 집성촌으로 뒷편 높은 곳에 종가집을 비롯하여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높은 큰 규모의 저택들이 있고, 아래쪽에는 분가한 후손들이나 서민들이 살았던 작은 집들이 자리잡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입향조가 살았던 곳에 지은 응와종택을 비롯하여 큰 규모의 고택들이 있는 마을 서쪽편으로 올라가는 길. 뒷산이 마을을 포근히 감싸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안쪽 서쪽편은 마을의 중심이 되는 공간으로 응와종택, 한주종택, 교리댁 등 규모가 상당히 큰 고택들이 자리잡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외곽에는 후학을 양성하고 제사를 준비하기 위해 지은 재실 건물들이 경치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뒷편에서 내려다 보이는 한개마을 풍경.

OLYMPUS DIGITAL CAMERA아래쪽에는 분가한 후손들이나 서민들이 살았던 작은 집들이 모여 있다. 원래 초가집이었던 것으로 70년대를 거치면서 지금과 같은 모습을 바뀐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뒷편 서쪽에 위치한 고택인 교리댁. 조선후기 영조 때 처음 지어졌으며 19세기에 사랑채 등을 다시 고쳐 지으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교리댁 뒷편에 있는 응와종택. 마을 입향조인 이우가 처음 살았던 곳으로 조선후기 후손인 이이신이 매입하였으며, 그의 아들이자 사도사자 호위무관이었던 이석문이 세자를 추모하여 북쪽으로 문을 내고 살았다고 하여 북비고택으로도 불렸다.

OLYMPUS DIGITAL CAMERA응와종택 사랑채. 정자같은 누마루를 갖추고 있는 크고 화려한 건물로 19세기 유행한 건축양식들이 잘 반영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응와종택 뒷편에 있는 월곡댁. 마을 제일 안쪽 높은 곳에 위치한 고택으로 20세기에 지어졌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중간쯤에 있는 마을로 들어가는 골목길. 기와를 얹은 담장 사이로 형성된 넓은 골목길이 시골길 같지 않고 화려하면서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골몰길에 있는 대문 안으로 보이는 고택들.

OLYMPUS DIGITAL CAMERA골목길에는 두동의 한옥 대문채가 마주보고 있어 도시 골목길같은 분위기를 주공 ㅣㅆ다.

OLYMPUS DIGITAL CAMERA서쪽편에 있는 고택인 하회댁이다. 정확한 건립연대나 내력은 알 수 없으나 17세기에 창건된 건물로 추정하고 있다. 가옥의 배치는 ‘ㄷ’자형 평면의 안채를 중심으로, 전면에 ‘-’자형 평면의 중문채가 튼 ‘ㅁ’자형의 배치를 이루면서 안채 우측으로 독립된 사랑채가 자리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하회댁 뒷편에 있는 고택인 도동댁. 응화고택에서 분가한 후손이 19세기에 지은 고택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안쪽으로 이어지는 골목길. 큰 규모의 저택인 한주종택으로 골목길이 이어진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한주종택. 조선후기 영조 때 처음 지어졌으며 여러차레 중건을 거치면서 일제강점기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이승희를 비롯하여 여러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유서깊은 저택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한주종택 사랑채.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중간 도동댁 앞 골목길.

OLYMPUS DIGITAL CAMERA분가한 후손이 살았던 작은 규모의 고택인 극와고택. 구한말인 1852년에 처음 건립된 고택으로 안채와 사랑채가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극와고택에서 마을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골목길.

OLYMPUS DIGITAL CAMERA골목길 중간쯤에 수리중인 고택을 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중간쯤에 있는 공동우물.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아래쪽 큰길.

성주 한개마을, 경북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600여 년의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한개마을은 많은 인재를 배출한 격조 높은 선비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민속마을이다. 마을의 지형은 주산인 영취산(해발 331.7 m)에서 남쪽으로 이어진 청룡등과 백호등이 마을을 포근히 감싸주며, 마을 앞으로 이천과 백천이 서쪽에서 합류하여 동남으로 흘러가는 전형적인 배산임수형으로 전국 최고의 길지를 이루고 있다. 마을의 이름인 한개는 순후 우리말로서 ‘한’은 크고 넓다(大)는 뜻이고 ‘개’는 큰 물이 드나드는 곳(浦)을 나타낸 방언으로, 백천에 제방을 쌓기 이전에 큰물이 졌다가 빠져나가면서 생겨난 큰 개울로 인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마을은 조선 세종 때에 진주목사를 역임한 이우가 처음 입향하여 개척하였으며, 현재는 그 후손들이 모여 살고 있는 성산이씨 집성촌이다. 17세기 이후 과거합격자가 많이 나왔으며, 충절과 지조, 높은 학문, 독립운동 등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많은 인물들을 배출하였다. 현재 마을에는 경상북도 지정문화재 9채와 조상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6채의 재실을 포함한 75채의 집들이 있으며, 대부분 18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에 걸쳐 건립된 전통가옥이다. 또한 각 집을 둘러싸고 있는 적당한 곡선의 토석담장으로 된 옛 골목길은 주변 환경과 잘 어우러져 마을의 운치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마을의 집들은 배치 및 평면이 지역적인 특성을 담고 있으며, 지붕.대청.부엌.툇마루 등이 거의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전통의 가재도구와 의복, 생활용품 등 옛 생활의 흔적을 담은 유산들도 비교적 잘 유지되고 있어 전통 민속문화를 담고 있는 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높다. (안내문, 성주군청, 2017년)

<출처>

  1. 안내문, 성주군청,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