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공원

인천 인천대공원, 울창한 가로수길이 걷기 좋은 공원

인천시 남동구 장수동에 있는 인천대공원이다. 인천시를 대표하는 도시자연공원으로 관모산(해발 161 m)과 그 아래 저수지를 중심으로 전체면적 89만평의 넓은 녹지공간이 있다. 서울대공원 사례를 참고하여 조성한 것으로 보이는데 동물원이나 위락시설은 많지 않고 울창한 가로수길과 넓은 저수지, 나즈막한 뒷동산인 관모산이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이곳을 찾는 방문객은 많지 않아 보이며 조용한 산책을 즐기기에 좋은 공원이다.

인천 인천대공원 01-20191126인천대공원 정문. 처음에는 놀이공원으로 계획된 것으로 보이는데 방문객이 많지 않아 관람료 없이 산책을 즐길 수 있는 도시공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인천 인천대공원 21-20191126정문에서 공원 가운데 저수지까지 연결되는 큰 길.

인천 인천대공원 12-20191126큰 길 옆에 볼 수 있는 수석원.

인천 인천대공원 20-20191126인천대공원 상징 조형물

인천 인천대공원 19-20191126인천대공원 저수지. 뒷편으로 관모산과 소래산이 보인다.

인천 인천대공원 13-20191126저수지를 따라 울창한 가로수길이 이어진다.

인천 인천대공원 14-20191126저수지 너머로 보이는 관모산

인천 인천대공원 15-20191126저수지를 지나면 현대조각 작품들을 전시해 놓은 조각정원이 있다.

인천 인천대공원 16-20191126공원에 전시해 놓은 조각작품들.

인천 인천대공원 17-20191126조각정원을 지나면 볼 수 있는 넓은 잔듸광장

인천 인천대공원 18-20191126관모산 아래에 있는 눈썰매장

인천 인천대공원 02-20191126저수지 입구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산책로

인천 인천대공원 03-20191126관모산을 오르는 길에 볼 수 있는 숲길.

인천 인천대공원 04-20191126숲길 아래 휴식공간

인천 인천대공원 05-20191126관모산을 오르는 등산로

인천 인천대공원 06-20191126등산로는 숲이 울창하고 경사가 없어 걷기에 좋다.

인천 인천대공원 07-20191126관모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

인천 인천대공원 08-20191126관모산 정상 전망대

인천 인천대공원 11-20191126관모산에서 내려다 보이는 인천대공원

인천 인천대공원 09-20191126인천대공원 뒷편으로 지나가는 외곽순환도로

인천 인천대공원 10-20191126인천대공원 뒷편 소래산

<출처>

  1. 대한민국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2020년

상주 왕산역사공원

경북 상주시 서성동에 있는 왕산역사공원이다. 왕산은 옛 상주목 읍치였던 상주읍성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동산이다. 고려말 공민왕이 홍건적의 침입을 피해 이곳에 머물면서 왕산이라 불렀다. 조선시대에는 경상감영과 상주목 관아들이 왕산아래 자리잡고 있었으며 지금도 상주시 도심 중심부를 형성하고 있다. 역사공원으로 조성된 이곳에는 복룡동에서 옮겨온 석조여래좌상(보물 119호), 일제강점기 애국지사인 위암 장지연 기념비, 역대 상주목사 공덕비 등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상주시 도심 가운데 있는 작은 동산인 왕산역사공원. 통일신라 이래 상주지역의 중심지로 관아가 있었던 유서깊은 곳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왕산 입구. 복룡동에서 옮겨온 석조여래좌상(보물 119호)이 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왕산 아래에 모아 놓은 상주 목사 등을 역임한 인물들의 공덕비.

OLYMPUS DIGITAL CAMERA복룡동 석조여래좌상(보물 119호)

OLYMPUS DIGITAL CAMERA왕산에서 내려다 보이는 상주목 객사 뒷편 관아가 있던 자리

OLYMPUS DIGITAL CAMERA왕산 산책로

OLYMPUS DIGITAL CAMERA이곳에 관아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고목들.

OLYMPUS DIGITAL CAMERA왕산 정상부

OLYMPUS DIGITAL CAMERA장지연 선생 기념비.

OLYMPUS DIGITAL CAMERA왕산 아래에 있는 작은 정자.

OLYMPUS DIGITAL CAMERA왕산 아래 상주목 동헌이 있던 자리에는 상가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옛 사진에 보이는 왕산과 상주목 동헌

상주의 중심 왕산(王山)의 유래
왕산은 고도 상주의 중앙에 자리한 명산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31대 신문왕 7년(서기 687년)에 주위 1천배9보의 상주성을 쌓고 성의 4대문 중앙에 자리한 작은 산이 왕산이다. 고려 31대 공민왕 11년(1362) 홍건적 침략으로 고려왕실이 상주목 상주성을 임시거처행궁으로 사용하였다. 이때 작은 산이 고려왕실의 산이 되었다. 1700년대 제작된 상산지도에는 왕산을 배경으로 관아들이 있었으며 조선조 1392년부터 1592년까지 경상감영을 겸한 곳이 이 왕산 아래였다. 특히, 조선시대에 와서 상산삼악일 일컬어 오면서도 왕산을 영산으로 여겨왔으며 1617년 이준이 편찬한 상산지에 의하면 상주에서 인재가 많이 배출된 것이 왕산이였기 때문에 이 왕산을 일명 장원봉이라고도 불렀다. 일제강점기 때 왕산 이름을 앙산으로 하였다가 최근에 왕산으로 바로 잡았다. 창석 이준선생이 「왕산괴정」 시를 남겼고 1300년 역사를 간직한 산이 왕산이며 장원봉을 중심으로 왕산을 돌면서 소원을 빌면 한가지 소원은 들어 준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안내문, 상주시청, 2013년)

<출처>

  1. 안내문, 상주시청, 2013년

부여 백제문화단지, 사비기 백제의 궁궐과 사찰 등을 재현해 놓은 곳

충남 부여군 규암면에 위치한 테마파크인 백제문화단지이다. 약 100만평의 이르는 부지에 옛 사비성을 이루고 있었던 왕궁이 사비성, 능산리고분군의 절터에 있던 사찰을 재현한 능사, 사비성내에 있었던 귀족들의 저택, 일반서민들이 살았던 주택을 재현한 생활문화마을과 백제의 시조인 온조왕이 건설한 위례성 등을 재현해 놓고 있다. 이외에도 숙박시설인 롯데부여리조트, 교육장이자 전시실로 백제역사문화관과 한국전통문화학교 등이 들어서 있다.

이곳에 재현해 놓은 사비기 백제의 궁궐, 사찰, 주태과 마을 등은 옛모습을 그대로 재현했다고는 볼 수 없지만, 그 건축양식이나 건물배치 등에서 부여 관북리유적지나 능산리사지 등의 건물터 발굴결과와 각종문헌, 백제의 영향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 일본 사찰건축물의 양식을 참조해서 재현한 것으로 보인다. 학술적으로 심도있게 연구하여 복원한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어보지만, 나름 옛모습을 재현한 것에 큰 의의가 있어 보인다. 부여에 남아 있는 옛 백제의 유적지들, 부여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들들을 살펴본 후 이곳에서 원래 모습과의 차이점, 옛모습이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살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

OLYMPUS DIGITAL CAMERA백제문화단지 출입문. 사비기 왕궁 출입문을 재현해 놓고 있다.

백제문화단지
백제문화단지는 우리 민족문화의 근간을 이루고 있으면서 고대 일본문화의 원류가 되었던 백제역사를 새롭게 조명하고 문화의 우수성을 세계만방에 알리는 새로운 출발점입니다. 지난 1994년부터 20여년에 걸치 대역사에는 총 6,904억원의 사업비를 투자하여 330만 평방미터의 대지위에 사비궁과 능사, 생활문화마을과 위례성, 백제역사문화관과 한국 전통문화학교를 건립하고 민자사업으로 롯데부여리조트를 유치하였습니다. 명실상부하게 세계적인 역사테마파크로 거듭나고 있는 이곳에서 1,400년전 찬연했던 백제의 기상과 문화의 정수를 느끼시고 그 때의 정취에 흠뻑 젖어보시기 바랍니다. (백제문화단지, 2012년)

OLYMPUS DIGITAL CAMERA백제문화단지에 재현해 놓은 궁궐. 중앙에는 정전에 해당하는 천정전이 있고, 서쪽에 무관과 관련된 업무를 보던 서궁, 동쪽에 문관과 관련된 업무를 보던 동궁이 배치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궁궐 정전에 해당하는 천정전이다. 앞면 7칸의 2층 건물로 후대 궁궐건물과는 달리 판문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봉정사 극락전이나 일본 나라의 동대사 금당건물에서도 볼 수 있는 건축양식으로 이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궁궐 동쪽편에 재현해 놓은 능사. 능산리고분군에 남아 있는 절터에서 확인된 건물터를 기준으로 1탑1금당식 백제 사찰을 재현해 놓았다. 상상적인 요소가 많이 더해진 궁궐과는 달리 실제 사찰의 규모와 형태, 건물배치 등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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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층목탑. 정림사지 오층석탑이나 목탑터의 규모 등을 고려해 볼 때 오층목탑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3칸으로 앞.뒤에 출입문을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불상을 모시는 금당. 앞면 5칸, 옆면 3칸의 건물로 일본에 남아 있는 백제 건축양식을 참조하여 만든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금당 뒷편에 위치한 강당처럼 보이는 건물. 앞면 8칸의 상당히 큰 건물로 자효당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일반사찰의 강당과는 달리 성왕을 위한 사당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능사 뒤편에는 백제고분을 재현해 놓은 고분공원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백제 사비궁 뒷편 언덕에는 궁궐과 생활문화마을 등이 한눈에 들어오는 제향루라는 정자가 세워져 있다. 궁궐 뒷편에 작은 동산을 두고 정자를 세워놓은 모습은 중국 자금성과 그 뒷편의 중산공원을 연상시키는 건물배치라 할 수 있다. 실제 백제 궁궐이 있었던 관북리유적지 뒷편에는 이와 같은 모습은 아니지만, 작은 동산이 부소산성이 자리잡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조선시대 정자의 형태를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정자에서 내려다 보이는 백제 궁궐.

OLYMPUS DIGITAL CAMERA정자 서쪽편에는 백제인의 생활모습을 보여주는 마을이 조성되어 있다. 귀족집단이었던 사택지적의 집을 재현한 귀족주택과 계백장군의 집을 재현한 군관주택, 크고 작은 다양한 계층이 거주하였던 주택, 토기와 기와를 굽던 가마 등을 재현해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사비기 백제 귀족층의 대저택을 재현해 놓은 사택지적의 집. 궁궐과 비슷한 공간 배치로 중앙에 관청건물과 비슷한 형태의 큰 건물 2동이 배치되어 있으며, 양쪽에 생활공간이 배치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당시 귀족들의 살았던 주택을 재현한 군관주택, 동쪽에 사랑채를, 서쪽에 안채를 배치히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골목길.

OLYMPUS DIGITAL CAMERA상류계층이 살았던 저택.

OLYMPUS DIGITAL CAMERA저택에 딸린 부속건물.

OLYMPUS DIGITAL CAMERA하류계층이 살았던 초가집.

OLYMPUS DIGITAL CAMERA백제 토기를 굽던 가마를 재현해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뒷편에는 작은 규모로 백제의 첫번째 수도인 위례성을 재현해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위례성 성문.

<출처>

  1. 백제문화단지
  2. 국립부여박물관
  3. 문화재청

부여 백제문화단지, 군관주택

충남 부여군 규암면 합정리 백제문화단지에 재현해 놓은 계백장군댁이다. 이 저택은 사비성에 있던 고위군관의 주택을 재현하였다. 삼국시대 백제의 주택에 대한 자료는 부여 관북리유적의 건물터 등을 발굴.조사하기는 했지만 문헌자료나 출토유물 등이 거의 없어 사실상 당시 모습을 상상하여 재현했다고 볼 수 있다.

저택의 공간배치는 조선시대 양반들 대저택과 마찬가지로 집주인이 손님을 맞고 일상 생활을 영위하는 영역과 여자들을 중심으로 가족들이 생활하는 공간으로 분리되어 있다. 건물들은 지붕에 기와를 얹어놓은 한옥 형태를 하고 있지만 온돌이 보편화되어 있았던 당시 상황을 고려하여 마루나 온돌방, 출입문 등이 후대의 한옥과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건물 내부는 침실에는 침대를, 거실에는 테이블과 의자를 놓고 생활을 했던 것으로 추정해서 당시 주택을 재현해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부여 백제문화단지에 재현해 놓은 군관주택이다. 당시 귀족들의 살았던 주택을 재현한 것은 동쪽에 사랑채를, 서쪽에 안채를 배치히 놓고 있다.

군관주택(계백장군댁)
백제말기의 대표적 무관인 계백장군의 집을 재현한 곳이다. 서기 660년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침공해오자 계백은 자신은 처자를 베고, 비장한 결의를 다졌다. 황산벌에서 신라군 5만명을 맞이하여 다섯번의 전투에서 네 차례나 승리를 거두었으나, 결국 중과부적으로 패하고 계백은 전사하였다. 그러나 그의 충절과 기상은 후대에까지 널리 전해지고 있다. (백제문화단지, 2012년)

OLYMPUS DIGITAL CAMERA행랑채는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긴 건물로 중간에 출입문을 두고 있다. 작은 방들은 집주인을 모시는 식솔들이 거처하는 공간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사랑채에 해당하는 공간에는 2동의 큰 건물이 앞.뒤로 배치되어 있다. 앞쪽에 있는 선인재라고 이름붙여진 이 건물은 손님을 맞는 공간으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온돌방과 마루가 없어서 조선시대 사당과 비슷한 건물형태를 보이고 있다. 건물내부에 테이블과 의자를 두고 손님을 맞이했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안채와 사랑채를 연결하는 출입문.

OLYMPUS DIGITAL CAMERA안채는 조선시대 한옥과 마찬가지로 가족이 생활하는 공간으로 만들어 졌다. 여러개의 방으로 되어 있는 2동의 건물과 창고가 일렬로 배치되어 있고 양쪽에 여러 부속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침대가 놓여져 있는 침실.

OLYMPUS DIGITAL CAMERA가운데에는 의자와 테이블이 있는 거실이 배치되어 있다. 온돌이 보편화된 후대 한옥과는 달리 대청마루가 없다.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 있는 건물. 부엌과 방들로 구성되어 있는 앞면 4칸 규모의 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부엌.

OLYMPUS DIGITAL CAMERA서재와 같은 집무실 성격의 거실.

OLYMPUS DIGITAL CAMERA건물 뒷편에 놓여 있는 창고. 곡식등을 저장했던 것으로 보이며, 가야의 고상가옥처럼 지면에서 약간 높게 만들어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옆쪽에 있는 작은 부속건물.

OLYMPUS DIGITAL CAMERA창고로 쓰였던 것으로 보이는 건물.

<출처>

  1. 백제문화단지

부여 백제문화단지, 백제 왕궁

충남 부여군 규암면 합정리 백제문화단지에 재현해 놓은 사비기 백제 왕궁이다. 재현해 놓은 백제왕궁은 정전에 해당하는 중궁과 동궁,서궁으로 구성되어 있다. 건물 배치 등은 부소산성 아래 관북리 유적(사적 428호) 발굴.조사 결과 확인된 건물터와 후대 궁궐 건물 배치를 참조한 것으로 보인다. 건축물의 양식은 백제기술의 영향을 많이 받은 일본 나라의 동대사 금당 건물의 양식이 많이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부여 관북리유적(사적428호)은 백제 왕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여러 차례의 발굴조사과정을 통해 대형 전각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터, 연못, 우물터, 기와로 만든 배수관 등이 확인되었다. 연못터에서는 백제시대의 기와 및 토기편, 목간, 짚신, 금동제귀걸이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또한 백제의 토목기술을 보여주는 진흙을 다져 포장한 도로와 왕실에 필요한 철기, 금속제품을 만들던 공방과 창고 등의 건물터도 발견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부여 백제문화단지에 재현해 놓은 백제 왕궁. 정전에 해당하는 중궁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문(文)에 관한 집무를 보던 동궁이, 서쪽에 군사와 관련된 집무를 보던 서궁이 배치되어 있다. 당시 절터나 후대 궁궐에서 볼 수 있는 회랑으로 둘러싸여 있는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부여 백제문화단지에 재현해 놓은 옛 사비성의 정문이다. 삼국시대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치미가 눈에 띄는 앞면 5칸의 2층 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정문을 들어서면 정전에 해당하는 중궁 출입문이 보인다. 출입문은 앞면 5칸의 2층 건물이며, 양쪽에 회랑건물로 연결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동쪽편 동궁 출입문과 회랑.

OLYMPUS DIGITAL CAMERA서쪽편 서궁 출입문과 회랑

OLYMPUS DIGITAL CAMERA왕궁 정전에 해당하는 천정전. 앞면 7칸의 2층 건물이다. 조선시대 궁궐과는 달리 가운데 3칸은 판문으로, 양쪽에 창살이 있는 창문이 있다. 봉정사 극락전과 일본 나라 동대사 금당에서 볼 수 있는 건축양식이다. 지붕에는 치마로 장식하여 웅장함을 더해주고 있다.

사비궁 중궁(Central Palace), 백제 사비시기의 중궁을 재현해 놓은 곳이다. 정전인 천정전은 국가의 큰 정사를 하늘에 고하여 결정했다는 천정대에서 이름을 따왔다. 이 곳 중궁의 정전은 왕의 즉위 의레, 신년 행사 등 각종 국가 의식이 거행되고, 외국사신을 맞이하는 왕궁 내의 가장 중요한 건물이었다. (백제문화단지, 2012년)

OLYMPUS DIGITAL CAMERA지붕을 받치는 공포는 고려시대 이후에 볼수 있는 주심포, 다포계, 익공계와는 다른 형태를 하고 있는데, 주심포 계열과 비슷하게 만들었다. 일본 나라 동대사 금당 건축양식을 참조한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천정전 내부로 들어가는 출입문. 일본 나라의 동대사 금당이 비슷한 형태의 출입문을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나무 창살이 있는 창문.

OLYMPUS DIGITAL CAMERA백제 건축의 영향을 받은 것을 알려진 일본 나라 동대사 금당. 삼국시대 금당의 모습을 유추해 볼 수 있는 건축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회랑으로 둘러져 있는 정전 앞 마당. 경복궁 정전 영역과 비슷하며 삼국시대 사찰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공간배치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회랑내부.

OLYMPUS DIGITAL CAMERA군사와 관련된 업무를 보는 편전에 해당하는 공간인 서궁 앞쪽에 인덕전, 뒷편에 무덕전이 자리잡고 있다.

 

정전이 있는 중궁 서쪽편에는 무반에 관련된 업무를 보던 서궁이 자리잡고 있다. 서궁(West Palace)은 정전과 외전으로 구성되었다. 정전인 무덕전은 서궁에서 가장 중심적인 건물로 왕이 평소 집무를 보는 공간이다. 주로 무관에 관한 집무공간으로서 무는 서쪽을 의미한다. 외전인 인덕전으로 태평성대에 나타나는 영물인 기린의 덕을 의미한다. (백제문화단지, 2012년)

OLYMPUS DIGITAL CAMERA서궁 외전에 해당하는 인덕전, 앞면 5칸의 단층 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인덕전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는 일정적인 업무공간인 무덕전이 자리잡고 있다. 앞면 7칸의 큰 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서궁은 독립된 공간으로 회랑으로 둘러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동쪽편에는 문반과 관련된 업무를 보는 공간인 동궁이 자리잡고 있다. 왕궁에서 일상적인 업무를 보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동궁(East Palace)은 정전과 외전으로 구성되었다. 정전인 문사전은 동궁에서 가장 중심적인 건물로 왕이 평소 집무를 보는 공간이다. 주로 문관에 관한 집무공간으로서 문사전의 문은 동쪽을 의미한다. 외전은 연영전으로 신하들의 집무공간이며 천하의 인재를 맞이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백제문화단지, 2012년)

OLYMPUS DIGITAL CAMERA동궁 외전에 해당하는 연영전.

OLYMPUS DIGITAL CAMERA연영전 내부. 신하들과 일상적인 회의를 하는 공간을 재현해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 있는 문사전은 동궁에서 가장 중심적인 건물로 왕이 평소 집무를 보는 공간이다. 동중, 중궁과 마찬가지로 앞면 7칸의 단층 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내부에는 닫집이 있은 어좌가 놓여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동궁 회랑.

OLYMPUS DIGITAL CAMERA동궁 뒷편 회랑. 생활공간과 연결되는 출입문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왕궁 뒷편 언덕에 세워진 정자.

OLYMPUS DIGITAL CAMERA부여 관북리 유적(사적 428호) 대형건물터. 왕궁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터이다.

<출처>

  1. 문화재청
  2. 부여박물관
  3. 백제문화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