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금속공예

순천 송광사 금동요령 (보물 176호)

송광사박물관에서 소장.전시하고 있는 금동요령(176호)이다. 요령은 불교 의식에서 소리를 내는 도구이다. 높이 20.6. cm, 지름 6.6 cm 크기로 몸은 4각형이고 각면이 팽창되어 둥근 형태를 하고 있다. 송광사에 전해 내려오는 것으로 그 형태와 조각수법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제작연대 등 내력에 대한 설명이 없는 것으로 볼 때 국내에서 제작된 것으로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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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 금동요령

요령은 불가에서 의식을 행할 때 사용하는 법구로, 손잡이 부분이 금강저의 모양이면 금강령이라고 한다. 소리를 통해 진언의 법력을 퍼트려 중생들의 모든 업장을 소멸케 하고, 의식 때에는 영혼을 부르는데 쓰기도 한다.  (안내문, 송광사박물관, 2018년)

<출처>

  1. 안내문, 송광사박물관, 2018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백제 금동대향로(국보287호), 능산리사지에 출토된 도교 신선사상이 표현된 향로

국립부여박물관에서 소장.전시하고 있는 백제 금동대향로(국보 287호)이다. 사비기 백제 왕릉들이 있는 능산리고분군(사적 14호)와 부여 나성(사적 58호) 사이에 있는 능산리사지(사적 434호)에서 출토된 것으로 삼국시대 백제를 대표하는 화려한 유물이다. 높이 61.8 cm, 무게 11.8 kg의 대형 향로로 중국 한나라대에 크게 유행한 박산향로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향로는 용이 머리를 들어 입으로 향로를 물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는 받침, 사실감 있게 묘사된 연잎으로 장식하고있는 향로 몸통, 중국 전설에 나오는 신선들이 살고 있다는 박산을 묘사한 몸체 뚜껑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뚜껑의 정상부에는 한마리의 봉황이 장식되어 있다. 향로에는 구멍이 뚫려 있는데 향로에서 피워 올린 연기가 박산 주위에서 안개처럼 퍼져나가는 모습을 연출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박산형태의 뚜껑에는 12명의 인물과 42마리의 동물, 바위, 나무 등이 정교하게 묘사되어 있다. 중국의 영향을 받은 박산향로의 일종이지만 그 제작수법이나 예술성이 매우 뛰어난 유물이다.

박산향로는 한무제 이후부터 출토되기 시작하는데, 이 시기는 신선사상, 음양오행설 등이 동중서에 의해서 반영되는 시기이다. 한대 왕실에서는 청동으로 만든 박산향로를 제사 등의 분향에 사용하거나 무덤에 부장하기도 했다. 이후에 불교에서도 박산향로가 수용되면서 남조를 통해서 백제에 전파된 것으로 추정된다. 불교에서 향로는 불단을 장식하는 기물로 불단 아래에 놓여 졌다. 향로의 형태는 백제금동향로와 유사하며 받침대로 용이 장식되고, 뚜껑에는 박산의 모습이 정교하게 장식되어 있다. 뚜겅에는 다양한 동물, 신선, 수렵하는 모습 등이 새겨져 있는데 한무제대에 유목문화를 받아들인 내용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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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금동대향로(국보 287호), 6~7세기,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1990년대에 출토되었다. 사실상 불교국가였던 사비기 백제에서 만든 것으로 도교적인 사상과 이상향이 잘 표현되어 있다. 제작기술이나 표현에 있어서 매우 뛰어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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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쪽에서 본 모습. 향로의 구성은 신선이 사는 박산을 표현한 뚜껑과 봉황모양 장식, 용모양을 하고 있는 받침, 연꽃잎을 형상화한 몸체로 이루어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향로 뚜껑 위에는 날개를 활짝 펴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봉황이 장식되어 있다. 향로에는 많은 조각상 들 중 가장 생동감있게 표현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향로 뚜껑에는 74개의 봉우리를 배경으로 12명의 인물과 42마리의 동물, 나무와 바위 등이 매우 상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정상부 봉황주위에는 악기를 연주하는 5명의 악사가 배치되어 있는데, 그 중 소를 부른 악사를 볼 수 있다. 그 아래에는 말을 타고 수렵을 하는 고구려 고분의 수렵도와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한무제대에 북방유목민의 영향을 받은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 외에 많은 인물과 동물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봉황장식 아래에 소를 불고 있는 모습. 백제금동대향로에는 다섯명의 악사가 소, 피리, 완함, 거문고, 북 등의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전체 구성상 악사들은 천상의 봉황 아래 위치하고 있어 음악으로 세상에 평화를 심어주려고 한 것처럼 보인다.

백제금동대향로에 보이는 악기
백제금동대향로에는 다섯명의 악사가 앉아서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관악기는 소.피리, 현악기는 완함.거문고, 타악기는 북 등 모두 5개의 악기로 하나의 오케스트라를 구성하고 있는 듯하다. 다섯명의 악사는 사람과 모든 동식물 위에 배치되어 있어 당시 음악을 연주하는 악사들의 사회적 위치와 지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과 삼라만상의 모든 생명들에게 음악을 연주하며 무릉도원으로 이르게 하는 것처럼 보인다. 백제금동대향로에 표현된 악기는 고구려 벽화에서 보이는 악기와 같거나 비슷한 모습이다. (‘우리음악 우리악기’, 중앙박물관특별전, 2011년)

OLYMPUS DIGITAL CAMERA정상부에 북을 두드리는 악사와 거문고를 연주하는 악사를 볼 수 있다. 산에는 말을 타고 수렵하는 모습과 많은 동물들을 볼 수 있는데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볼 수 있는 수렵장면과 비슷한 느낌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북을 두드리는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거문고를 연주하는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정상부에 완함을 연주하는 악사가 있고 산 중간에는 신선으로 보이는 여러 인물들과 다양한 동물들이 표현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완함을 연주하는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정상부에는 피리를 연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피리를 부는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향을 피우는 몸체에는 8개의 꽃잎으로 이우러진 세겹의 연꽃이 표현되어 있다. 연꽃잎에는 2명의 인물과 27마리의 동물이 표현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몸체에 표현된 동물과 인물상.

OLYMPUS DIGITAL CAMERA향로 받침에는 용이 하늘을 향해 용틀임을 하는 모습을 역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백제금동대향로, 국보 287호, 부여 능산리절터
백제금동대향로는 백제의 멸망과 함께 땅속에 묻혔다가 1993년 능산리사지 발굴조사를 통해 세상에 그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이 향로는 높이 61.8cm, 무게 11.85kg의 대작으로 한마리의 용이 머리를 들어 입으로 향로 몸체의 하부를 물고 있는 받침과 양감 있는 사실적인 연잎으로 표현된 향로 몸통, 그리고 박산 형태의 중첩된 산악으로 묘사된 뚜껑의 세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뚜껑의 정상에는 날개를 활짝 핀 채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한 마리의 봉황이 장식되어 있다. 뚜껑에는 74개의 봉우리를 배경으로 12명의 인물과 42마리의 동물, 나무 및 바위 등이 빈틈없이 묘사되어 있으며, 정상부의 봉황 주위에 5마리의 새와 5명의 악사가 배치되어 있다. 봉황의 가슴과 산악 사이에는 각각 2개 및 10개의 구멍이 뚫려 있는데, 향로에서 피워올린 연기가 산간에 자욱한 안개처럼 퍼지거나 뚜껑과 연결된 관을 통해 봉황의 가슴에서 솟아 오르도록 고안된 것이다. 몸통은 8개의 꽃잎으로 이루어진 세겹의 연꽃으로 표현되었으며, 꽃잎 위에 2명의 인물과 27마리의 동물이 묘사되어 있다.받침은 하늘을 향해 용틀임하는 용을 역동적으로 표현하고, 다리와 몸통사이에 구름무늬, 연꽃무늬 등을 배치하여 전체가 하나의 원형 받침을 이루도록 하였다. 몸통과 받침은 용이 물고 있는 봉을 몸통에 낸 흠에 끼워 연결하였다. 이 향로는 당시 왕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능산리사지에서 출토된 점으로 미루어 왕실 의례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능산리 절이 백제의 운명과 함께 사라져 버리면서, 그 속에서 찬란한 자취를 뽐내던 향로도 누군가의 손에 의해 묻혀 버리고, 그와 더불어 백제 중흥의 꿈도 빛을 잃게 되었다. (부여박물관, 2012년)

SANYO DIGITAL CAMERA부여 능산리사지(사적 434호)는 백제 왕릉인 능산리고분군과 백제 나성 사이에서 확인된 사비기 백제의 대표적인 절터이다. 성왕의 아들이 위덕왕이 아버지의 명복을 빌기 위해 원찰로서 창건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절터에서는 백제 금동대향로(국보 287호)를 비롯하여 중국에서 수입한 청자류, 문서에 해당하는 목간들, 다양한 형태의 기와 등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부여 백제문화단지 내 재현해 놓은 능사 금당. 이 향로는 능산리 절의 금당 안 불단 아래에 놓여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금당 내부에 재현해 놓은 향로. 불상을 모시는 불단 아래에 놓여 있다.

<출처>

  1. 국립부여박물관
  2. 문화재청
  3. 두산백과
  4. 위키백과
  5. 한국민족문화대백과
  6.  ”우리음악 우리악기”, 중앙박물관 특별전, 2011년

부여 왕흥사지 사리장엄구(보물 1767호), 가장 오래된 사리장엄구

충남 부여군 규암면 신리 왕흥사지(사적 427호) 절터 목탑지 심초석 사리공에서 발견된 사리장엄구이다. 바깥쪽에 청동으로 만든 원통형 사리합을 두고 그 안에 은제 사리합, 금제 사리병이 있다. 동, 은, 금으로 만든 용기에 사리를 모시는 백제 사리장엄구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유물이다. 원통형으로 만들어진 사리합 바깥에는 6행 29자의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사찰의 건립시기와 배경, 사리장엄구의 제작시기 등을 알려주고 있다. 현재까지 확인된 사리장엄구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백제 사리엄장구를 확인하는 양식적 기준이 되기도 한다.

왕흥사는 백제 사비성 왕궁이 있었던 부소산성과 백마강을 경계로 마주보고 있는 지역에 자리잡고 있다. 왕궁에서 나룻배를 타고 백마강을 건너면 바로 찾아갈 수 있는 중요한 위치에 자리잡고 있어 누가 보아도 왕실과 관련된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왕흥사는 목탑, 금당, 강당이 일렬로 배치된 형태로 전형적인 1탑 1금당의 가람배치를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부여 왕흥사지 목탑지에서 출토된 사리장엄구(보물 1767호). 동, 은, 금으로 만들어진 백제 사리장엄구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1. 청동제 사리합, 바닥이 납작한 원통형 몸체를 하고 있다. 뚜껑 중앙에 연봉형 손잡이가 있다. 바깥쪽에는 사찰 건립 시기와 배경, 사리장엄구 조성시기 등을 알려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청동제 사리합에 새겨진 글자.

OLYMPUS DIGITAL CAMERA2. 은제 사리 외병. 은제 사리병은 긴 목 아래에 둥금 몸체와 낮은 굽을 가진 형태를 하고 있다. 뚜껑에는 연봉모야으이 손잡이가 있으며, 그 주위에 연잎을 새겼다.

OLYMPUS DIGITAL CAMERA3. 금제 사리 내병. 호리병 모양을 하고 있으며 가장자리에는 선이 한줄 새겨져 있으며, 뚜껑에는 손잡이가 있다.

부여 왕흥사지 사리장엄구, 보물 1767호, 577년 백제
목탑지 심초석의 사리공에 사리구를 넣고, 주칠로 연꽃넝쿨무늬를 그려 장식한 화강암제 뚜껑을 덮었습니다. 석제 장치 안에 청동합을 넣고, 다시 그 안에 은제 병, 그 안에 사리를 넣는 금제 병을 두었습니다. 석제 장치는 외함으로, 청동합은 내함으로 볼 수 있습니다. 청동합 몸체에 5자 6행 29자가 음각되었습니다. “정유년(577년) 2월 15일, 백제왕 창(昌)이 죽은 왕자를 위해 사찰(혹은 찰주)를 세웠다. 본래 사리가 두 매였는데, 묻을 떄에 신이하게 셋이 되었다.”로 해석됩니다. (”세계유산 백제”, 중앙박물관, 2016년)

<출처>

  1.  문화재청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5.  ”세계유산 백제”, 중앙박물관, 2016.11.29~

 

익산 왕궁리오층석탑 사리장엄구(국보 123호)

전북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 오층석탑에서 출토된 사리장엄구(국보 123호)이다. 1966년 석탑 수리과정에서 출토된 것으로 유리로 만든 사리병, 내함, 외함, 금동불상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출토된 불상의 연대에 따라 통일신라말 또는 고려초에 석탑과 함께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었으나, 인근 미륵사지에서 백제 때 조성한 사리구가 발견되면서 백제가 처음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리를 보관했던 유리병은 연꽃모양의 대좌 위에 올려져 있는데 완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사리병을 보관했던 내함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는데 사비기 백제 때 애용되었던 문양이라 한다. 또한 사리 내함에는 금강경이 새겨진 은제도금경판이 같이 출토되었다.

석탑이 있는 곳은 마한시대 도읍지로 알려져 있으며, 백제 무왕이 왕궁을 조성했던 장소이다. 왕궁리는 서동요로 잘 알려진 무왕이 궁궐로 조성했으나, 의자왕대에 이르러 사찰로 변모했다가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시대까지 존속했다. 최근 발굴.조사 결과 석탑 기단부 아래에 목탑으로 추정되는 건물 기초가 발견되었다. 또한 석탑 주변으로 절터 배치를 알 수 있게하는 많은 유물들과, 바깥쪽을 둘러싸고 있는 성곽 등이 발견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익산 왕궁리 오층석탑에서 출토된 사리장엄구(국보 123호).

OLYMPUS DIGITAL CAMERA사리병을 보관하는 외함. 정육면체 형태를 하고 있으며 연꽃무늬와 구슬무늬가 새겨져 있다. 내함에 사용된 문양이 미륵사지 석탑에서 출토된 사리구 외호와 비슷한 문양을 하고 있어 백제 때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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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사지 석탑 사리구 외호. 비슷한 형식의 문양을 사용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사리를 모셨던 녹색 유리병. 연꽃대좌 위에 올려져 있으며, 연꽃 봉우리 모양의 뚜껑이 있다.

국보123호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장엄구 06-20090220내함에서 출토된 은제도금금강경판.

국보123호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장엄구 07-20090220
오층석탑에서 같이 출토된 금동여래입상. 불상의 양식 등을 고려하여 석탑과 사리장엄구가 조성된 시기를 추정했다.

SANYO DIGITAL CAMERA익산 왕궁리 오층석탑(국보 289호)이다. 고려초에 세워진 백제계 오층석탑으로 추정된다. 높이 9 m의 거대한 석탑으로 1층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려 놓고 있다.

익산 왕궁리오층석탑 사리장엄구, 국보 123호, 7세기 전반, 익산 왕궁리,
왕궁리 오층석탑의 1층 옥개석 동쪽 사리공에 금동 주칠 사리 외함이 안치되어 있었습니다. 외함 안에는 금제 사리 내함이, 그 안에는 연화대좌 위에 놓인 유리 사리병이 들어 있었습니다. 함께 출토된 불상의 연대에 따라 9세기 말 ~ 10세기 초로 알려졌으나, 미륵사지 사리구가 발견되면서 백제 때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왕궁리 금제 사리 내함과 미륵사지 금동제 사리 외호의 세잎무늬는 기본적으로 동일한 의장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짧은 선이 채워진 연꽃무늬는 사비도읍기 백제의 국왕과 귀족들이 애용한 문양입니다. 또한 모두 사리를 담은 용기는 유리병을 사용하였습니다.  (”세계유산 백제”, 중앙박물관, 2016년)

<출처>

  1.  문화재청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5.  ”세계유산 백제”, 중앙박물관, 2016.11.29~

 

 

익산 미륵사지석탑 사리구

익산 미륵사지 석탑에서 출토된 사리구이다. 2009년 석탑 해체.수리 과정에서 심주 중앙 사리공에서 출토되었다. 사리호는 금동제 외호, 금제 내호, 유리병으로 구성되어 있다. 리를 보관하는 사리호, 금제사리봉영기, 청동합과 내부공양품, 진단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외호는 부여 왕흥사지에서 출토된 사리호와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으며, 금제 내호는 뚜껑과 항아리가 붙은 일체형이다. 사리병은 가장 오래된 유리병이지만 파손된 상태로 발견되었다.

사리봉영기에는 미륵사지 석탑 창건 내력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는데 무왕의 왕후가 선화공주가 아니라 백제 귀족이었던 사택(沙澤)씨 출신이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사리공에서는 사리호 외에 다양한 사리공양구가 출토되었으며, 심주 아래에는 나쁜 기운을 제압하는 의미를 갖는 진단구가 출토되었다. 아직 문화재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백제의 뛰어난 금속공예 기술 수준을 보여주는 걸작 중 하나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미륵사지 석탑 해체.수리 과정에서 출토된 사리를 보관했던 용기. 아직 문화재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백제의 뛰어난 금속공예 수준을 보여주는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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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제 사리 외호

OLYMPUS DIGITAL CAMERA금동제 사리 외호에서 출토된 유리구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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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제 사리 내호.

OLYMPUS DIGITAL CAMERA금동제 사리 내호 출토품.

OLYMPUS DIGITAL CAMERA금제 사리봉영기, 639년, 익산 미륵사지. 2009년 발견된 것으로 미륵사지 석탑 창건 내력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무왕의 왕후가 선화공주가 아니라 백제 귀족이었던 사택(沙澤)씨 출신이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사리봉영기는 금판의 앞뒷면에 도자(刀子)를 이용하여 음각하고, 각 획을 따라 주사(朱唦)를 입혀 글자가 더욱 선명하게 보이도록 했습니다. 전체 193자로 앞쪽에는 99자, 뒤쪽에는 94자를 새겼습니다. 좌평(佐平) 사택덕적(沙澤德積)의 딸인 백제 왕후가 재물을 희사하여 가람을 창건하고 기해년(639)에 사리를 봉안하여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미륵사의 창건 목적과 시주(施主), 석탑의 건립 연대 등을 정확히 밝힌 것입니다. 미륵사 서탑 창건의 주체가 『삼국유사』에 나오는 선화공주가 아니라 백제 귀족의 딸임이 밝혀져 서동왕자와 선화공주 설화의 진위 여부에 대한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삼원식(三院式)인 미륵사의 창건에 선화공주를 포함한 서로 다른 발원자가 있었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지만, 여전히 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세계유산 백제”, 중앙박물관, 2016.11.29~)

OLYMPUS DIGITAL CAMERA3.금제족집게,

OLYMPUS DIGITAL CAMERA 4. 금귀걸이와 금덩이,

OLYMPUS DIGITAL CAMERA5.금판

사리공에서는 모두 18개의 금판이 확인되었는데 그 가운데 3개의 금판에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 중 하나에는 “중부의 덕솔 지애가 금 1량을 시주하였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사리봉영기와 달리 아마도 사리를 봉안할 당시 급하게 쓴 글씨로 추정됩니다. 글자의 내용은 백제의 행적구역(中部)와 관등(德率, 16품의 관등 중4품), 도량형 등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1량의 무게는 13.2 g입니다.  (“세계유산 백제”, 중앙박물관, 2016.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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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공 바닥에 깔았던 유리판. 사리공 바닥의 너비에 정확히 맞도록 처음부터 주문 제작된 특수 유리판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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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구슬

OLYMPUS DIGITAL CAMERA3. 소조 나발, 4. 은제 손톱장식

OLYMPUS DIGITAL CAMERA5. 은제 관 꾸미개,

OLYMPUS DIGITAL CAMERA6. 은덩어리, 7. 은제 허리띠 꾸미개

OLYMPUS DIGITAL CAMERA8. 도자(복제품)

진단구
미륵사지 석탑 사리용기가 안치된 심주로 가는 통로의 바닥석 아래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사찰 건물의 기단 등에 나쁜 기운이 근접하지 못하도록 진압하기 위하여 기단 하부 축조시에 각종 물건을 공양하는 진단구의 역할을 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특히 소조 나발과 은제 손톱장식은 중국 남조 장간사 탑 사리 공양 중에 탑 아래에 매납했다는 불조발(佛爪髮), 즉 부처의 손톱과 머리카락 봉안 의례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세계유산 백제”, 중앙박물관, 2016.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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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청동합

OLYMPUS DIGITAL CAMERA2. ‘상부달솔목근’ 글자를 새긴 청동합

OLYMPUS DIGITAL CAMERA3. 금구슬, 4. 금판, 5. 금못, 6. 곱은옥, 7. 호박구슬, 8. 마노구슬, 9. 유리구슬, 10. 진주구슬

미륵사지 사리구
미륵사지 석탑의 해체 복원 작업 도중 탑의 심초석 사리공에서 사리호를 포함한 사리장엄구가 출토되었습니다.사리호는 외호와 내호, 사리병의 삼중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연꽃무늬와 넝쿨무늬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금동제 외호는 왕흥사의 은제 사리병과 닮아 백제 사리기의 전통을 잇고 있습니다. 금제 내호는 외호와 유사하지만 크가가 작고, 뚜껑과 항아리가 붙은 일체형입니다. 내호 안에 있던 사리병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유리로로 만든 사리기이지만, 발견 당시 뚜껑을 제외하고는 형태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파손되어 있었습니다. 사리공 안에서는 구슬, 장신구, 청동합과 같은 다양한 사리공양구가 함께 발견되었습니다.  (“세계유산 백제”, 중앙박물관, 2016.11.29~)

SANYO DIGITAL CAMERA익산 미륵사지(사적 150호).

『삼국유사』에 따르면 백제 무왕때 이곳에 있던 연못을 메우고 미륵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당시 신라 황룡사에 버금가는 최대 규모의 사찰로 3탑, 3금당식의 독특한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앞쪽에 목탑을 중심으로 그 양쪽에 석탑이 세워져 있고, 뒷편에도 3개의 금당터가 남아 있다. 금당 뒷편에는 강당이 있고, 그 뒷편으론 3개의 승방이 자리하고 있다.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 조선시대까지 조금씩 축소되어오다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출처>

  1.  문화재청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5.  ”세계유산 백제”, 중앙박물관, 2016.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