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금속공예

의성 탑리 출토 금동관

국립대구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금동관이다. 의성군 탑리 일대 조문국 무덤이라고 전해지는 고분군 중 지배계층 무덤에서 출토되었다. 띠모양의 테두리 위에 새의 깃털모양으로 만든 3개의 세움장식이 부착되어 있다.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은관의 깃털장식과 비슷하며 고구려 관장식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다. 금동관은 삼국시대 신라와 가야의 무덤에서 주로 출토되고 있다. 지방세력이 사용했던 금동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의성 탑리 출토 금동관 20231104_01
<금동관, 의성 탑리, 삼국시대>

의성 탑리 출토 금동관 20231104_02
<옆에서 본 모습>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은관에서 비슷한 형태의 세움장식을 볼 수 있다. 고구려의 영향을 받은 부분이라고 한다.

보물631호-01-20200212 <은관, 경북 경주 황남대총 남분, 보물>

경북 의성군 금성면 학미리, 탑리리, 학미리 일대에 있는 금성산 고분군이다. 탑리리 오층석탑(국보)가 있는 금성면 소재지에 있는 금성산 서쪽 능선과 그 아래에 200여 기의 고분들이 산재해 있다. 초기 삼국시대 지역 소국인 조문국 고분으로 조선후기 숙종 때 처음 발견되었으며, 1960년대 이후 발굴.조사를 통해 5~6세기에 조성된 무덤으로 확인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의성 탑리 금성산 고분군>

금동관, 의성 탑리, 삼국시대
이 금동관은 의성 탑리 일대 130여기의 고분 중 서쪽 정상부에 위치한 지배자급 무덤에서 출토되었다. 띠 모양의 테두리 위에 가장자리를 가늘게 자른 후 이를 꼬아서 새의 깃털모양으로 만든 세움 장식 3개를 부착한 금동관이다. 이는 황남대총분에서 출토된 은관의 깃털 장식과 동일하며, 고구려 관장식에서 보이는 특징과 유사하다. 세움장식의 상부에는 새의 눈을 연상 시키는 2개의 구멍이 나있다. (안내문, 국립대구박물관, 2023년)

<출처>

  1. 안내문, 국립대구박물관, 2023년

 

 

함안 말이산 45호분 출토 금동관

경남 함안군 함안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말이산 45호분 출토 금동관이다. 관에는 봉황으로 추정되는 새 두마리가 장식되어 있다. 장식이 많거나 화려하지는 않지만 금동관으로서의 형태는 잘 갖추고 있다. 고령 대가야 고분군에서 출토된 금동관들과 함께 아라가야에서도 금동관이 지배계층을 상징하는 의미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함안 말이산45호분 출토 금동관 20231006_01<금동관, 가야 5세기, 함안 말이산 45호분 무덤, 함안박물관>

함안 말이산45호분 출토 금동관 20231006_02<옆에서 본 모습>

금동관, 가야 5세기, 함안 말이산 45호분 무덤, 함안박물관
말이산 45호 무덤 주인의 금동관입니다. 새 두마리가 서로 마주 보는 모습입니다. 삼국시대 여러 금속공예품에 묘사된 봉황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새의 눈, 부리, 몸통, 날개, 다리 등의 모양을 얇은 동판에 표현하고 도금했습니다. 이 금동관은 무덤의 주인이 아라가야의 최고 권력자였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말이산고분군(사적)은 아라가야 지배층의 무덤으로 넓은 평지에 있는 함안군청 뒷편 낮은 야산에 자리하고 있다. 남북으로 길게 뻗은 2 km 능선과 그 주변에 봉분들이 분포하고 있는데 지배층 무덤으로 보이는 큰 봉분들은 정상부에, 그 아래에는 작은 무덤들이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서는 가야를 대표하는 유물인 수레바퀴모양 토기, 고구려벽화에 그려져 있는 말갑옷을 비롯하여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SANYO DIGITAL CAMERA<함안 말이산고분군(사적)>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3년
  2. “사적 함안 말이산 고분군”,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백자 유개항아리(국보)

서울 용산구 삼성박물관 리움에서 소장하고 있는 “백자 유개항아리 (白磁 有蓋壺, 국보)”이다. 백자 항아리로 큰 항아리와 작은 항아리가 있다. 큰 항아리는 높이 34.0cm이고 작은 항아리는 높이 9.5cm이다. 아가리가 밖으로 벌어지며 어깨부분에서 급격히 벌어졌다가 서서히 좁아진 형태를 하고 있다. 엷은 청색의 유이 내외면에 고르게 씌워졌다. 항아리의 형태에서 주는 조형미와 색감 등에서 백자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보여주는 걸작이다. 15세기 경기도 광주 지역 가마에서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백자 유개항아리(보물) 20230526_01
<백자 개호 중 큰항아리, 조선 15세기, 개인 소장, 국보>

백자 유개항아리(보물) 20230526_03
<옆에서 본 모습>

백자 유개항아리(보물) 20230526_04
<뒤에서 본 모습>

백자 유개항아리(보물) 20230526_05
<반대편 옆에서 본 모습>

백자_유개항아리<큰 항아리와 작은 항아리>

<출처>

  1. “국보 백자 유개항아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2. “백자 유개항아리”,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3년

전 덕산 청동방울 일괄(국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전 덕산 청동방울 일괄(국보)’이다. 충남 예산군 덕산면 남연군묘 근처에서 출토된 청동방울이다. 출토된 청동방울은 8각형 별모양 팔주령 1쌍과 아령모양 쌍두령 1쌍, 포탄모 간두령 1쌍, x자 형태로 둥글게 말려있는 조합식쌍두령 1점이 있다. 중국에서 들어온 청동기 문화가 소멸해가던 기원전 3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유물로 추정되고 있다. 청둥기시대 후반 제사장들이 주술적 용도로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전 덕산청동방울(국보) 20220824_01<덕산 출토로 전해지는 청동 방울, 초기 철기시대, 청동, 국립중앙박물관, 국보>

팔주령 1쌍은 모서리 끝에 작은 방울이 8개 달려 있다. 각 방울에는 구멍이 4개씩 있다. 몸체 가운데에는 커다란 ‘+’자 문양이 있는데 태양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전 덕산청동방울(국보) 20220824_02<팔주령1>

전 덕산청동방울(국보) 20220824_03<팔주령2>

쌍두령 1쌍은 형태가 아령과 비슷하다. 가운데는 볼록하고 방울이 연결된 양끝은 가늘다. 방울에는 구멍이 4개씩 있고 안에는 청동구슬이 들어 있다.

전 덕산청동방울(국보) 20220824_05<쌍두령 1쌍>

간두령 1쌍은 포탄 형태를 하고 있는데 모습은 같고 크기만 다르다. 몸체와 자루 2부분으로 되어 있고 사이에 갓모양의 테두리를 두르고 있다.

전 덕산청동방울(국보) 20220824_06<간두령 1쌍>

조합식 쌍두령은 한쪽 끝에 방울이 달려 있는 몸체 2개를 각각 x자형으로 교차하여 서로 부친 것이다.

전 덕산청동방울(국보) 20220824_04<조합식 쌍두령>

덕산 출토로 전해지는 청동 방울, 초기 철기시대, 청동, 국립중앙박물관, 국보
무른 구리에 주석을 섞으면 단단한 청동이 된다. 인류 최초의 인공 합금인 청동은 계급사회의 출현을 증언한다. 이 청동 방울들은 당시 최고 권력자인 제사장이 의례에 사용한 도구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2. ‘국보 덕산 청동방울 일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국보)

충북 청주시 상당군 남문로에 있는 용두사지 철당간(국보)이다. 이 당간은 밑받침돌과 당간지주, 철당간이 온전히 남아 있어 오래된 사찰에서 볼 수 있는 당간지주의 옛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기둥은 원통모양의 철동 20개가 서로 맞물리도록 쌓아 당간을 이루게 했으며 당간지주 윗부분에는 고정장치를 두어 당간를 잡아매고 있다. 철통은 원래 30개였는다고 한다. 3번째 철통에는 이 철당간을 세우게 된 내력을 글로 적어놓고 있다.

철당간이 있는 이곳은 고려시대 용두사라는 사찰이 있던 곳이다. 금속활자를 만들었던 흥덕사나 많은 금속공예 유물들이 출토된 사뇌사 절터가 인근에 있어 이 지역은 예로부터 금속공예가 발달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말 전쟁 등으로 폐허가 되면서 이곳에 관아가 자리잡은 것으로 보인다. 청주 도심 중심지로 청주목 관아와 충청병영이 근처에 위치하고 있다. 있었다. 절터는 그 흔적은 찾아볼 수 없고 철당간만이 절터임을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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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용두사지 철당간(국보)>

당간은 사찰입구 또는 불전 앞에 괘불이나 깃발을 거는 곳을 말한다. 많은 사찰 입구에는 철당간을 세웠던 당간지주가 남이 있지만 철당간은 이곳 청주를 비롯하여 계룡산 갑사, 안성 칠장사에만 남아 있다. 이곳에서는 당간지주에 철당간이 고정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철당간과 당간지주>

OLYMPUS DIGITAL CAMERA<철당간을 받치고 있는 바닥돌>

OLYMPUS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당간지주>

철당간은 원래 30개의 철통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현재도 20개의 철통이 남아 있다. 철동은 아래위가 서로 맞물리도록 쌓아 당간을 이루게 했다.

OLYMPUS DIGITAL CAMERA<철당간>

OLYMPUS DIGITAL CAMERA<철당간(아래쪽)>

밑에서 세 번째의 철통에 <용두사철당기>가 새겨져 있다. 내용은  “962년 청주 호족 김예종이 병에 걸리자 철당간을 바쳐 절을 장엄할 것을 맹세하며 사촌형 희임 등과 함께 철통 20단을 주조하여 높이 60척의 철당을 세운다.”라 적혀 있다.  ‘준풍3년’이라는 광종의 독자적인 연호와 함께 청주호족과 관련된 내용이 있어 고려초기 지방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OLYMPUS DIGITAL CAMERA<글자가 새겨진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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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면>

용주사지 철당간이 있는 이곳은 지금도 청주지역의 행정과 상업의 중심지로 오가는 사람들로 번화한 지역이다. 청주지역에서는 돛대와 같은 의미를 갖고 있어 홍수를 예방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설화가 있어서 도심에 있지만 오늘날까지 훼손되지 않고 보존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용주사지 철당간이 있는 청주 도심>

OLYMPUS DIGITAL CAMERA<반대편에서 본 모습>

용두사지 철당간, 국보, 충북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
당간은 사찰 앞에 세워 사찰을 알리는 깃발을 달았던 것이다. 신라와 고려시대에 사찰의 건립과 함께 많은 수의 당간이 세워졌으나, 현재는 대부분 당간을 받치고 있던 지주만이 남아 있다. 철당간이 서 있는 곳은 고려시대 청주의 대표적인 사찰이었던 용두사가 있던 자리이다. 이 당간은 화강석으로 지주를 세우고 그 사이에 둥근 철통 30여개를 연결하여 세운 것인데, 현재는 20개만이 남아 있다. 이 중 밑에서 세 번째의 철통에 <용두사철당기>가 새겨져 있다. 명문이 새겨진 철당간으로는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유일한 것이다. 철당기에는 당간을 세우게 된 내력과 건립연대, 그리고 건립에 관여한 사람들의 관직명이 적혀 있다. 당시 지방경영과 관련된 사실을 알 수 있다. 철당기의 끝에는 ‘준풍 3년’(962년)에 주성하였다고 하여, 고려 광종 때 사용했던 독자 연호를 실물로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안내문, 청주시청, 2012년)

<출처>

  1. 안내문, 청주시청, 201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