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이탈리아

[중앙박물관특별전, 에트루리아] 로마문화에 남은 에트루리아

에트루리아는 이탈리아반도에서 유력한 세력으로 성장했으며 북쪽으로 포강유역, 남쪽으로 라치오주까지 그 영토가 확장되었다. 로마에는 에트루리아인 왕조가 들어서기도 했으며 농촌에서 거대한 도시로 성장하였다. 에트루리아는 로마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 로마시대 도시에서 볼 수 있는 잘 포장된 도로, 광장, 수로시설, 대규모 사원 등은 에트루리아의 영향을 받은 부분이다. 또 에트루리아는 고대 그리스 문화를 수입하여 로마에 자리잡게 했으며 그리스 문자에서 온 에트루리아 문자를 통해 로마 문자가 만들어졌다. 기원전 4세기 이후 로마제국은 본격적으로 확장되면서 에트루리아는 로마의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야누스, 1세기, 대리석,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야누스(반대편)>

OLYMPUS DIGITAL CAMERA<야누스(옆면)>

야누스는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어 문을 지키는 수호신 역할을 하였습니다. 로마인들은 야누스머리를 조각한 기둥을 거리, 교차로, 문 앞, 국경 등에 도둑과 사고를 막고자 설치하였습니다. 한쪽은 노인의 얼굴을, 다른 한쪽은 청년의 얼굴로 표현한 것이 특징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에트루리아와 로마
에트루리아는 로마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에트루리아가 멸망한 이후에도 두 나라는 지속적으로 서로의 문화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로마에 끼친 에트루리아의 영향은 도시의 모습에서 잘 드러납니다. 옹기종기 집들만 모여 있던 기존의 마을이 포장된 도로, 광장, 수로시설 대규모 사원을 갖춘 도시 형태로 변모한 데에는 에트루리아의 영향이 가장 컸습니다. 에트루리아인들은 아르카익 시기부터 로마에 정착했습니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일곱명의 왕이 기원전 764년에서 509년까지 로마 제국을 통치했는데, 이들 중 마지막 세 명의 왕이 에트루리아와 관련된다고 합니다. 기원전 4세기 로마는 제국을 본격적으로 확장하기 시작했으며, 에트루리아를 정복해 나갔습니다. 기원전 396년 로마가 베이오을 최초로 함락한 이후, 에트루리아는 로마의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1. 유골단지,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대, 대리석, 토스카나 피렌테 빌라 코르시니,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대리석이나 설화석고로 만들어진 암포라 형태의 유골단지입니다. 이러한 유골단지는 로마의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대에 많이 제작되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2. 에트루리아 상징이 묘사된 유골함, 1세기, 대리석, 토스카나 피사 볼테라,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로마 시대에 만들어진 유골단지로 에트루리아와 로마의 연관성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측면의 x자 모양의 접이식 의자는 로마 행정관이 직무를 수행할 때 앉았던 것으로 이는 에트루리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의자 옆에는 두 점의 파스카스가 있는데, 이는 에트루리아 왕의 경호원들이 소지했던 무기였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죄수와 여사제가 묘사된 유골함, 기원전 2세기말 ~ 1세기 초, 설화석고, 토스카나 피사 볼테라,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1. 유골단지, 아우구스투스 황제시대, 대리석,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대(기원전 27년 ~ 기원후 14년)에는 화장이 가장 일반적인 장례방식이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원통 모양의 유골함이 많이 제작되었습니다. 몸통에는 꽃줄 장신인 페스툰(festoon)을 든 사랑의 신 에로테스(erotes)들이 새겨져 있고, 뚜껑에는 뱀을 입에 문 독수리가 손잡이 형태로 달려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2. 카피톨리노의 늑대가 묘사된 유골함,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대, 대리석,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몸통은 작은 사각형의 집이며, 뚜껑은 종려나뭇잎 무늬 장식이 달린 경사진 지붕으로 표현한 유골함입니다,. 글씨가 새겨진 판 아래에는 늑대가 쌍둥이에게 젖을 물리는 로마 시조 신화가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 밑은 꽃줄장식인 페스툰으로 장식하였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개선 행진이 묘사된 유골함, 기원전 2세기 말 ~ 1세기 초, 설화석고, 토스카나 피사 봁네라,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망자가 저승으로 가는 여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네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를 탄 망자 앞에 두 명의 호른 연주자와 파스케스를 든 두 명의 경호원, 관을 운구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행렬이 보입니다. 날개를 펼치고 횃불을 든 반트가 이 행렬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승리를 축하하는 개선 행진은 에트루리아와 로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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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쿠스, 2세기, 대리석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바쿠스는 그리스에서 디오니소스로 불리는 신입니다. 제우스의 아들로 태어나 영생을 얻었으며, 지상의 인간들에게 포도 농사를 가르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른손에는 포도송이를 들고, 바쿠스를 따라다니는 동물인 표범을 데리고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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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상, 로마제국, 대리석,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사냥꾼 모습의 젊은 남성을 표현한 조각입니다. 오른손에는 뿔을 들고 왼발로는 야생돼지의 머리를 밟고 있으며 개를 데리고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메르쿠리우스와 헤라쿨레스가 묘사된 장식판, 1세기, 대리석,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작은 제단에 제물을 바치은 헤르쿨레스(오른쪽)와 메르쿠리우스(왼쪽)의 모습이 새겨진 부조입니다. 두 인물 사이에는 ‘SACR’이라는 글자가 있습니다. 에트루리아의 알파벳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는 반면, 로마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유피테르 가면, 로마제국, 대리석,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유피테르 두상의 클리페우스(Clypeus)입니다. 클리페우스는 신이나 위대한 인물의 상반신, 특히 얼굴을 둥근 모양으로 양각한 것을 말합니다. 로마에서는 대리석이나 금속으로 만든 클리페우스를 많이 제작했으며, 벽에 걸어 건축 장식으로 활용하였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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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페디먼트 장식(유피테르)>

OLYMPUS DIGITAL CAMERA<2. 페디먼트 장식(말 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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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페디먼트 장식(남성), 기원전 2세기 초, 테라코타, 리구리아 루니,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페디먼트 장식
건축 장식의 일부로서, 고대 도시 루니의 대신전 페디먼트를 장식했던 테라코타입니다. 루니는 에트루리아의 국경 지대에 있던 도시로, 대신전은 도시 건설 후 바로 세워졌습니다. (기원전 177년). 이 신전은 셀레나 루나 여신에게 바쳐진 신전입니다. 앞에 놓인 페디먼트 장식은 헤르쿨레스의 아들인 텔레포스의 이야기를 담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말을 탄 남성들과 방패를 들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전사가 표현되어 있습니다. 앉아 있는 남성 신상은 유피테르를 표현한 것으로 보이며 페디먼트의 중심부에 위치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체의 젊은 남성 한명과 수염을 기르고 망토를 두른 남성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루니 신전
루니는 기원전 177년 로마가 군서적 목적으로 건설한 식민도시였습니다. 도시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대신전은 달의 여신 루나를 위한 것으로 도시 조성 후 바로 세워질 정도로 중요한 건물이었습니다. 로마의 신전임에도 불구하고 테라코타로 페디먼트를 장식하는 등 에트루리아 신전의 모습을 띠고 있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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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피테르, 로마제국, 청동,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그리스에서는 제우스, 에트루리아에서는 티니아로 불리던 로마의 신 유피테르의 조각상입니다. 나체의 유피테르가 오른손으로 번개를 쥐고 있습니다. 들어올린 왼손에는 홀(笏)을 들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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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너스, 로마제국, 청동,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그리스의 아프로디테에 해당하는 비너스는 사랑과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여신입니다. 비너스는 로마의 시조라고 전해지는 아이네아스의 어머니로 로마의 조상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로마인에게 중요한 숭배의 대상이었습니다. 왼손에 쥔 물체는 현재 유실되었지만, 아마도 비너스의 상징인 황금사과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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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쿠리우스, 로마제국, 청동,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그리스 신화에서 헤르메스로 불리는 메르쿠리우스는 신들의 전령이자 여행자의 수호신입니다. 보통 날개달린 신발과 챙이 넓은 여행용 모자를 쓴 형태로 표현됩니다. 왼손에는 현재 유실되었지만, 메르쿠리우스의 또 다른 상징인 두 마리 뱀으로 둘러싸인 날개달린 지팡이 카우케우스(caduceus)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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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쿨레스, 로마제국, 청동>

그리스에서는 헤라클레스, 에트루리아에서는 헤르클로 알려진 로마의 헤르쿨레스는 초인간적인 힘을 가졌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에트루리아와 로마에서는 헤리쿨레스를 신으로 숭배했습니다. 여기서 헤르쿨레스는 오른손에는 곤봉을, 왼손에는 사과를 들고 있습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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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나, 로마제국, 청동,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그리스 신화에서는 티케로 불리던 로마의 신 포르투나입니다. 도시의 행운, 번영, 운명의 신으로서, 대개 이 조각상과 같이 배의 방향을 조종하는 조타기를 오른손에 들고 있습니다. 다만, 이 조각상에서는 유실되어 보이지 않습니다. 외니손에는 다산과 풍요의 상징인 과일을 가듣담은 뿔이 표현되어 있습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로마 문화에 남은 에트루리아
에트루리아는 많은 문화적 유산을 로마에 남겼습니다. 그 중에서도 종교적인 영역과 권력의 상징성은 매주 중요한 부분으로 여겨집니다. 서기 47년 로마 황제는 미래를 예언하는 에트루리아인들의 행위를 이탈리아 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규범으로 정의하고, 이를 로마에서 계속 이어나가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창자점 60가지를 재편하여 로마 종교에 편입시켰으며, 이는 4세기까지도 이어졌습니다. 로마의 권력과 종교를 상징하는 많은 포상 역시 에트루리아로부터 유래된 것입니다. 고위 관료용 인장, x자 모양 접이식 의자, 사법권을 상징하는 포상 등은 처음에는 로마 황제들만 사용하다가 나중에는 관할구역을 관리하는 총독 등도 사용하였습니다. 로마의 사제들의 상징인 구부러진 지팡이 역시 에트루리아의 종교 전통에서 도입된 것입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에트루리아에서 찾은 서구 문화의 숨결
우리는 지금껏 서구 문화의 뿌리는 그리스-로마로 배워왔습니다. 로마가 그리스 문화를 모방하여 제국의 팽창과 함께 그 문화를 널리 퍼트렸다고.. 그러나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 국가에 불과했던 로마가 주변 도시 국가를 제압하고 거대한 제국으로 성장하기까지 그 바탕에는 에트루리아의 영향이 컸습니다. 로마는 건축술, 문자, 종교관, 상징체계, 오락거리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에트루리아로부터 빚을 지고 있습니다. 돌을 주재료로 삼았던 그리스나 로마와 달리 에트루리아는 나무와 흙으로 모든 것을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에트루리아 문화는 따사로운 봄날에 피었다 지는 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하니만 에트루리아가 로마에 전수한 문화는 2천년이라는 세월을 뛰어 넘어 아직도 세계 곳곳에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말할 수 있습니다. 에트루리아 문화는 로마라는 이름 안에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고.(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에트루리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되다.
유네스코는 2005년, 에트루리아 유적인 체르베테리 네크로폴리스와 타르퀴니아 네크로폴리스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하였습니다. 에트루리아는 로마 이전, 이탈리아에 존재했던 유일한 도시문명으로, 이 유적은 그들의 삶과 죽음, 종교적 믿음을 담고 있습니다. 이탈리아에는 모두 49개의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이 있습니다. 이중 상당수가 에트루리아의 영향을 받은 로마의 유적입니다. 에트루리아는 로마라는 거대한 용광로 속에 녹아 3천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도 우리 앞에 당당히 그 모습을 나타내고 있습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2. 위키백과,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에트루리아] 무덤에서 발견된 황금보물

다른 고대 문명 지역과 마찬가지로 에트루리아 무덤 부장품 중에는 당시 사람들이 사용했던 황금을 비롯한 귀금속으로 만든 화려한 장신구들이 있다. 이들 물품은 무덤주인 높은 사회적 위치를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였다.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금으로 만든 장신구가 부장품으로 사용되었으며 그리스의 영향을 받은 동방화 시기 이후에는 더욱 화려하고 세련된 금장신구가 보급된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1. 브로치, 기원전 6세기, 금, 2. 피불라(Fibulae), 기원전 6세기 초, 금, 3.4. 피불라, 기원전 7세기 후반, 금, 5. 피불라, 기원전 7세기 중반, 금(누금), 토스카나 베툴로니아,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1.  브로치, 날개 달린 고르곤을 새긴 핀이 달린 브로치입니다. 주로 의복에 사용했으며, 피불라처럼 어깨나 가슴 부근에서 옷을 여미는데 사용했습니다. 초기에는 남성들만 사용하는 장신구였으나, 나중에는 여성을 묻은 매장지에서도 발견됩니다. 고인의 머리에 꽃힌 채 발견된 것으로 보아 머리꽃이로도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3.4. 피불라, 기원전 7세기 후반, 금,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의복 또는 장신구의 안전핀입니다. 에트루리아의 피불라는 주로 청동으로 만들어졌으며 유리, 호박 등 다른 재료들로 장식되기도 했습니다. 양식과 장식이 다양하여 부장품의 연대를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거머리 형태의 피불라는 여성들이 사용했으며, 용 모양의 피불라는 주로 남성들이 착용하였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1. 머리판, 기원전 7세기 중반, 금, 토스카나 피렌체 비센지오,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빌라노바 시대부터 널리 퍼졌던 전형적인 여성의 장신구입니다. 단순한 형태는 대부분 청동으로 만들어졌으나, 동방화 시기에는 대개 금이나 은으로 제작된 것들이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머리핀은 주로 한 쌍으로 발견되는데, 얼굴 양옆으로 땋은 두 갈래의 머리끝을 고정하는데 사용했습니다. 한 개씩 제작된 것은 하나로 굵게 땋은 머리를 고정할 떄 사용했던 것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3. 머리핀, 기원전 7세기 중반, 청동에 금, 토스카나 피렌체 비센지오,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화관, 기원전 4세기, 금, 토스카나 오르베텔로,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머리띠와 왕관은 헬레니즘 시기의 전형적인 머리 장신구입니다. 남성과 여성 모두가 생전에 사용하였으며 명예와 존경의 상징이었습니다. 장례식과 같은 행사에서 주로 살아 생전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 넣으둔 것으로 보입니다. 나뭇잎 무늬가 새겨진 직사각형의 얇은 판으로 제작되었으며, 가장 단순한 형태의 장식 중 하나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월계관, 기원전 2세기, 금, 토스카나 피사 리파르벨라, 체치나고고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1. 팔찌, 기원전 7세기 전반, 금,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2. 팔찌, 기원전 7세기 전반, 금, 토스카나 베툴로니아,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에트루리아 동방화 시기에 널리 퍼졌던 금세공품 중 하나입니다. 남부 에트루리아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비슷한 유형의 다른 유물이 베툴로니아와 마르실리아, 달베냐에서도 여러 점 발견되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1. 목걸이, 기원전 4세기, 금,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여성용 장신구로서 목걸이의 인기는 헬레니즘 시기까지 계속 이어졌습니다. 석류 모양의 구슬로 만들어진 목걸이처럼 소박한 형태가 있었는가 하면, 드리개 등 여러가지 장신구들이 달린 더욱 섬세한 목걸이들도 있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2. 반지, 기원전 4세기 후반, 금, 마노, 토스카나 포풀로니아,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반지는 금세공술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아르카익 시기부터 직인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가장 정교한 반지 중에는 다양한 기법을 사용하여, 실제 혹은 가상의 동물, 심지어 복잡한 장면을 묘사하여 세공한 경우도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3. 귀걸이, 기원전 3세기, 금, 토스카나 피사 볼테라, 피사-리보르노 관할 문화유산관리국>

기원전 5세기 경 북부 에트루리아에서 유행한 원통형 귀걸이입니다. 고리가 달린 단순한 형태에서 누금, 돋을새김, 드리개로 화려하게 장식된 형태로 기원전 3세기까지 사용되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4. 귀걸이, 기원전 5세기 전반, 금, 토스카나 피사 볼테라,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5. 귀걸이, 기원전 6세기 말, 금, 토스카나 피사 볼테라,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아르카익 시기의 에트루리아에서 가장 유행했던 장신구입니다.  중부 이탈리아 서부 전역에서 널리 유행했으며 여러 지역에서 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6. 귀걸이, 기원전 7세기 말 ~ 6세기 중반, 금, 토스카나 시에나 키우시,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에트루리아 무덤에서 발견된 황금보물
부장품은 에트루리아 귀족들의 생활방식을 알려주는 중요한 증거입니다. 에트루리아인들은 무덤 안에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물품을 진영하여, 죽음의 순간에도 사회적으로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였습니다. 이들에겐 사치란 단지 물건을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과시하는 하나의 수단이었습니다. 에트루리아의 귀족들은 화려한 의식용 연회, 값비싼 선물교환 등에 큰 의미를 두었습니다. 빌라노바 시기에도 이미 금장신구가 부장품으로 사용되었으며, 이후 동방화 시기에는 더욱 발전되고 세련된 형태의 귀한 금 장신구가 널리 보급된 것으로 보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19년
  2. 위키백과,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에트루리아] 사후세계

에트루리아인들은 죽은 자의 영혼이 가는 무덤 너머의 세계가 있다고 믿었다. 이는 고대 그리스신화의 하데스와 유사한 것이다. 이런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은 그리스를 비롯하여 지중해 지역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것으로 이집트인의 사후세계관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는 한반도의 삼국시대 이전 많은 부장품을 묻었던 한반도에서도 볼 수 있는 사후세계관이다. 무덤은 생전에 살았던 집의 구조를 모방한 것으로 넓은 방, 벽화, 무덤용 가구 등이 있다. 석관 위에는 죽은 사람의 석상이 있는데 연회의식에 참가한 모습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음식을 담는 그릇, 포도주 등 연회의식과 관련된 기물들이 많이 부장품으로 묻혔다.

OLYMPUS DIGITAL CAMERA<피네스키 무덤, 석관>

저승의 신과 사후 세계
에트루리아인들은 사후 세계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죽은 이를 위한 종교의식과 의례행위들, 그리고 무덤과 매장지에 쏟은 정성만 보아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지중해 지역의 다른 모든 고대 문명과 마찬가지로 사후 세계에서도 죽은 이의 영혼이 계속 존재한다고 믿었습니다. 저승은 지하의 신들, 영웅들의 영혼, 죽은 이의 그림자로 가득 차 있는 곳으로 여겨졌습니다. 출구가 없는 세계에서 괴물과도 같은 신령들의 존재는 인간이 가진 본연의 두려움, 죽음에 대한 비통함, 운명의 불가피함을 상징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피네스키 무덤, 석관과 부장품>

OLYMPUS DIGITAL CAMERA<피네스키무덤, 석관과 부장품>

OLYMPUS DIGITAL CAMERA<피네스키 무덤, 부장품>

OLYMPUS DIGITAL CAMERA<피네스키무덤, 부장품>

OLYMPUS DIGITAL CAMERA<피네스키무덤, 부장품>

OLYMPUS DIGITAL CAMERA<피네스키 무덤, 부장품>

피네스키 무덤
피네스키 무덤 내부를 일부 재현한 공간입니다. 피네스키 무덤은 1970년 볼테라의 포르토네 네크로폴리스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기원전 3세기부터 기원전 2세기의 에트루리아인의 삶을 담은 공간입니다. 무덤이 손상되지 않은 채 발견되어 에트루리아 무덤의 내부 구성과 장례 연회를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사후 세계의 연회
연회 의식은 에트루리아의 가장 중요한 행사 중 하나였습니다. 타르퀴니아의 무덤에서 발견된 벽화들, 항아리와 유골함 표면의 수많은 장식들, 무덤 내 부장품으로 묻힌 값비싼 도기, 청동, 귀중품 등을 보면 이러한 연회 의식이 얼마나 중요한 행사였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풍습과 관련하여 학자들 사이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견해는 연회는 장례식장에서 열린 실제 연회를 재현한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에트루리아인들은 저승으로 떠나기 전, 죽은 이를 기리기 위해 열린 연회에 그의 영혼이 참석한다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연회는 구체적이고 상징적인 의미를 가졌으며, 그릇에 담긴 실제 음식과 포도주는 죽은 이를 위해 무덤 안에 놓아 두었던 것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도제관(Sarcophagus), 기원전 2세기 말, 테라코타, 라치오 투스카니아,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기원전 3세기 후반부터 생산되기 시작한 에트루리아의 도제 관은 점차 돌로 만든 석관을 대체하였습니다. 뚜껑에는 일반적으로 망자의 모습을 표현하였는데, 연회 자리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의복을 입고 비스듬히 혹은 반듯하게 누워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도제 관에 묘사된 돌고래는 사후 세계를 향해 바다를 건너는 망자의 여정을 보여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석관, 기원전 4세기 말 ~ 3세기 초, 응회암, 라치오 투스카니아,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기원전 4세기 말에서 3세기 사이에 제작된 석관의 뚜껑으로, 귀족의 무덤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뚜껑에는 망자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는데, 연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비스듬한 자세로 오른손에는 ‘파레라’라 불리는 잔을 들고 있습니다. 석관은 현재 바티칸 미술관에 전시 중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장례 행렬
애트루리아인들에게 사후 세계로의 여정은 매우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하나의 무덤에는 영원히 끝나지 않는 여행을 위한 모든 것을 담아야 했기에, 죽은 이의 신분과 지상에서의 삶을 상징하는 귀중한 부장품을 함께 묻었습니다. 장례 풍습은 화장 또는 매장에 관계없이, 장소와 가족이 처한 상황에 따라 형태가 달라졌지만, 장례 의식만큼은 정해진 순서로 이루어졌습니다. 가장 먼저 장례 행렬이 이루어졌으며, 이어서 주검과의 대면, 놀이, 연회, 의례를 통한 추모 등이 이어졌습니다. 마지막에는 부장품들을 안치하고 죽은 이를 매장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에트루리의 신들 가운데 저승의 신으로는 반트(Vanth)와 카룬(Charun)을 중요하게 여겼다. 반트와 카룬을 비롯하여 저성의 신들의 무덤 벽화나 석관, 유골단지 등에 조각이나 그림의 형태로 많이 남아 있는데 죽은이를 저승으로 안내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유골함에 표현된 조각 등을 통해 에트루리아인들의 저승으로 여행을 어떻게 상상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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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벽화에 그려진 반트와 카룬>

저승의 문지기 반트(Vanth)와 카룬(Charun)
반트와 카룬은 에트루리아의 신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저승의 신입니다. 반트는 날개가 달린 여성으로 표현되는데, 횃불과 함께 죽은 이의 운명을 담은 두루마리를 손에 들고 있습니다. 칼과 열쇠를 들고 팔에 뱀이 감겨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 속 카론에 해당하는 카룬은 수염을 기르고 매부리코에 뾰족한 귀가 특징입니다. 짧은 튜닉을 입은 남성으로 묘사되거나, 저승의 문지를 상징하는 망치를 들고 있기도 합니다. 일부 벽화에서는 카룬의 피부색이 그가 이끄는 죽은 이와 같은 푸르스름한 색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페르세포네의 납치가 묘사된 유골함, 기원전 2세기, 설화석고,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설화석고로 만든 유골함입니다. 유골함 뚜껑에는 유골함의 주인으로 추정되는 여성이 왼쪽으로 기대 누워 있습니다. 이런 자세는 연회 장면에 자주 등장하는 모습입니다. 유골함 정면에는 저승의 신 하데스가 페르세포네와 결혼하기 위해 그녀를 납치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유골함 측면에는 망자의 영혼을 이끄는 신, 반트와 카룬이 새겨져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바다 신령이 묘사된 유골함, 기원전 2세기 말, 설화석고, 토쇼카나 피사 볼테라,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볼테라 귀족 페르디난도 인코트리가 1742년 진행한 조사에서 발견된 유골함입니다. 세로로 홈이 새겨진 두 기둥 사이에 여성의 형상을 한 바다 괴수가 묘사되어 있습니다. 바다 괴수는 흩날리는 긴 머리에 왼손에는 칼을 들고 있습니다. 등 뒤에는 외눈이 달린 한쌍의 날개가 넓게 펼쳐져 있고, 허리 아래로는 꼬리가 달린 바다뱀의 몸통을 하고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그리핀과의 전투가 묘사된 유골함, 기원전 2세기, 응회암,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1858년 포르토네 네크로폴리스의 돌방무덤에서 발견된 유골함입니다. 석관 중앙에는 그리핀과 싸우는 두 명의 전사가 묘사되어 있습니다. 전사는 방패, 창, 검으로 무장하고 있습니다. 그리핀은 사자의 몸통에 독수리의 머리와 날개를 지닌 그리스 신화 속 괴수입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그리핀은 아폴론의 보물을 지키고 금광을 수호한다고 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망자를 인도하는 반트와 카룬이 묘사된 유골함, 기원전 2세기, 설화석고, 토스카나 피사 볼테라,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저승으로 향하는 여정을 묘사한 유골함입니다. 짧은 키톤을 입은 망자는 말을 타고 왼손에는 두루마리를 들고 있습니다. 반트는 오른손으로 말의 고삐를 끌고, 왼손으로 횃불을 들고 있습니다. 아래를 향하는 횃불은 저승으로의 진입을 의미합니다. 뒤쪽의 카룬은 오른손에 칼, 어깨에 망치를 걸머지고 망자의 마지막 여정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저승의 신
에트루리아의 조각이나 그림에서 저승의 신은 죽음의 불가피성을 상징합니다. 에트루리아의 묘비에는 종종 이러한 저승의 신들을 인간과 짐승의 본성을 함께 가진 존재로 묘사해 놓았습니다. 무덤 벽화나 석관, 유골단지에서 화병 장식에 이르기까지, 조각과 그림에 남아 있는 수많은 신령들은 저승으로 죽인 이를 안내하는 영혼 “호위대”의 존재를 잘 보여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사후 세계의 문으로 망자를 인도하는 반트가 묘사된 유골함, 기원전 2세기, 테라코타, 토스카나 시에나 키우시,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유골함의 뚜껑에는 망토로 온몸을 두른 망자가 누워 있습니다. 유골함 정면에는 저승으로의 여정을 시작하기 전 가족과 이별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오른쪽의 문은 저승을 상징합니다. 망자의 여정을 반트와 저승의 문을 지키는 개 케르베로스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사후 세계 문이 묘사된 유골함, 기원전 2세기, 설화석고, 토스카나 피사 볼테라,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석관 중앙에 네마리 말의 고삐를 쥔 여신이 두 마리의 돌고래가 헤엄치는 파도에서 나오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석관의 다른 쪽 측면에는 내세로 이어지는 문이 있습니다. 이러한 부조는 저승으로 이어지는 문턱을 넘는 망자의 여정을 묘사한 것입니다. 괴물들이 득실거리지만, 돌고래처럼 우호적인 동물도 있는 바다를 건너는 일과 같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바다 신령이 묘사된 유골함, 기원전 2세기 초, 설화석고, 토스카나, 피사, 볼테라,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마차를 타고 저승으로 가는 여정의 한 장면을 묘사한 유골함입니다. 왕관을 쓴 남성은 마차의 고삐를 잡은 채 여성의 어깨를 감싸고 있습니다. 말발굽 아래에는 상체는 인간이지만, 등에 날개를 달고 물고기 꼬리를 한 트리톤이 보입니다. 유골함의 오른쪽 끝에는 수염을 기른 저승의 신이 오른손에 막대기를, 왼손에는 뱀을 감고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여행하는 부부가 묘사된 유골함, 기원전 2세기 말, 설화석고, 토스카나 피사 볼테라,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마차를 탄 부부가 저승으로 떠나는 모습을 묘사한 유골함입니다. 마차 앞에는 말을 탄 사람이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고 있으며, 뒤로는 어른 한 명과 아이 한명이 행렬을 뒤따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장면은 볼테라 지역 유골함에서만 보이는 특징입니다. 뚜껑에는 화려한 의상을 입고 오른손에는 부채, 왼손에는 석류를 들고 비스듬히 누위 있는 여성을 묘사해 놓았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사후 세계로의 여행
볼테라에서 발견된 유골함은 매우 뛰어난 종교적 조각으로, 에트루리아인들이 죽음이라는 “미지의 여정”을 어떻게 상상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유골함은 죽음과 현세의 경계를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기념물로, 여기에는 죽은 이가 알 수 없는 종착지를 향해 길을 나서는 장면이 세세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죽은 이의 친구들과 가족은 작별인사를 하고, 죽은 이의 영혼은 반트와 카룬의 호위 하에 마차 혹은 말을 타거나 걸어서 마지막 여행을 시작합니다. 저승으로 이어지는 여러 개의 문은 산 자와 죽은 자의 세상 사에에 돌아갈 수 없는 지점을 상징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오두막모양 유골단지, 기원전 9세기말, 점토, 리치오 타르퀴니아.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오두막 모양의 유골단지는 빌라노바 시기 초기(기원전 9세기) 네크로폴리스에서 많이 발견됩니다. 이러한 모양의 유골단지는 에트루리아 사람들의 주거지를 복원하는데 매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초기 철기시대 에트루리아 사람들은 타원형 혹은 직사각형 형태의 오두막에서 살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유골단지(Cinerary Urn), 유골단지, 기원전 8세기 전반, 도기, 토스카나 피사 볼테라, 피사 리보르노 관할 문화유산관리국>

OLYMPUS DIGITAL CAMERA<2. 물미, 청동, 3. 도끼, 청동, 4. 창, 기원전 8세기 전반, 철, 토스카나 피사 볼테라, 피사-립르노 관할 문화유산관리국>

빌라노바 시대 우물 무덤에서 출토된 유골단지와 금속제 무기입니다. 이 무덤은 전사에게 바쳐진 것으로 금속제 무기는 사회적 역할과 힘을 상징합니다. 도끼와 창은 전사로서 그의 신분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볼테라 최초의 도시 공동체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보여주기도 합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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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관, 유골단지, 기원전 7세기, 테라코타, 토스카나 피사 볼테라,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2. 스키포스(Skyphos), 테라코타, 3. 팔찌, 청동, 4. 창, 기원전 7세기, 철, 토스카나 피사 볼테라,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19세기 말 볼테라 지역의 무덤에서 출토된 유골단지와 부장품입니다. 이 무덤은 초기 동방화 시기의 무덤으로, 망자의 유골을 올륨(ollum)이라 불리는 갈색 단지에 넣은 것이 특징입니다. 그릇을 뚜껑으로 사용해 봉인한 유골단지는 커다란 화병인 돌륨 안에 넣었는데, 돌륨은 다시 거대한 우물에 넣어 석판으로 고정해 덮어 두었습니다. 철제 창을 함께 부장한 것으로 보아 무덤 주인은 전사로 추정됩니다. 청동 팔찌와 연회를 암시하는 그릇을 볼 때 전사이면서도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았던 인물로 여겨집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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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골단지, 유골단지 뚜껑, 기원전 8세기 전반, 회반죽 혼합물, 청동, 라치오 타르퀴니아,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2. 조개나팔, 조개껍데기, 3. 면도칼, 청동, 4. 쌍잔, 회반죽 혼합물, 5. 키아토스(Kyathos), 기원전 8세기 전반, 청동, 라치오 타르퀴니아,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6. 향로, 기원전 8세기 전반, 청동, 라치오 타르퀴니아,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7. 접시, 기원전 8세기 전반, 회반죽 혼합물, 라치오 타르퀴니아,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8. 칼, 9. 칼집, 10. 창과 물미, 기원전 8세기 전반, 청동, 라치오 타르퀴니아,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청동 투구를 뚜껑으로 사용한 유골단지입니다. 유골단지 안에서는 망자의 유골 외에도 개인 용품이 같이 발견되었습니다. 무기, 화병, 작은 청동향로 등의 의례물품은 유골단지 주변에 정갈하게 놓여 있습니다. 유물의 성격으로 보아 망자는 전사로서 사회적 지위가 높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밖에도 나팔로 사용되었던 커다란 소라 껍데기가 한 쪽이 파손된 채로 발견되었습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에트루리아 네크로폴리스 현황>

죽은 자의 도시, 네크로폴리스
네크로폴리스(Necropolis)는 그리스어로 ‘죽은 자의 도시’라는 뜻으로, 시가지 외곽에 있는 고대 무덤군, 즉 고대의 공동묘지를 뜻합니다. 봉분을 뜻하는 투물루스(Tumulus), 즉 죽은자의 집은 그들이 생전에 살았던 집처럼 꾸몄습니다. 죽어서도 평온한 삶을 계속 누리길 바라는 마음으로 장신구, 무기, 식기 등을 넣었을 뿐만 아니라, 생전의 모습을 벽화로 남겼습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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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노푸스 단지와 의자, 기원전 7세기 말, 청동, 토스카나 피사, 포조 알라 살라,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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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자, 청동, 주사위, 뼈, 눈 모양 부장품, 기원전 7세기 말, 뼈, 토스카나 피사, 포조 알라 살라,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포조 알라 살라 출토품
키우시의 한 귀족 가문의 무덤에서 발견된 카노푸스 단지입니다. 망자의 유골은 얇은 청동판으로 만든 둥근 형태의 유골단지 안에 놓여 있었습니다. 유골단지는 청동 의자 위에, 그 앞에는 연회 의식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트라페자’라는 탁자가 놓여 있었습니다. 이밖에도 청동 그릇, 불을 지피는 도구, 도기, 주사위가 함께 발견되었습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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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노푸스 단지, 기원전 7세기 후반, 회반죽 혼합물, 움브리아 페루지아 카스랄리오네델라고,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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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노푸스 단지, 기원전 7세기 말, 테라코타, 토스카나 시에나 키우시,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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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노푸스단지, 기원전 7세기 말 ~ 6세기초, 테라코타, 토스카나 시에나 키우시,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인물 형상 카노푸스 단지
에트루리아의 유골단지는 단순한 반구형 뚜껑에 망자의 얼굴을 간략하게 묘사한 초기 형태에서 점차 뚜껑에 얼굴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카노푸스단지로 발전하였습니다. 인물 형상은 망자으 유골을 담는 단지임을 나타내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외형적인 모습에서 무덤 주인이 여성인지 남성인지 구분되었으며,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은 옥좌 위에 올린 모습으로 표현되었습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사후 세계를 위한 공간, 무덤
초기 빌라노바 시기의 가장 흔한 장례 방식은 화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의례가 단지 화장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무 더미 위에서 화장을 마친 유골은 바리뚜껑으로 덮은 쌍원뿔 유골단지에 담아 보관하였습니다. 망자가 사회적으로 중요한 지위였던 경우에는 단지의 뚜껑을 마치 인간의 형상과 같이 만들어 놓기도 했습니다. 전시들을 위해 단지 뚜껑을 투구로 교체했는가 하면, 이후에는 의인화된 모습을 제현한 여러 기념물을 제작하여 덮자고 했습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묘표석, 기원전 6세기 전반, 응회암, 움브리아 오르비에토,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에트루리아 묘표석은 주로 무덤 위나 무덤 방 입구 옆에 설치되었습니다. 묘표석의 형태는 매우 다양했는데, 망자의 성별, 연령, 사회적 지위에 따라 달랐습니다. 이 묘표석은 각자 반대 방향을 바라보는 두 여성의 상체가 놓여 있습니다. 이러한 유형은 키우시 지방에서 전형적으로 볼 수 있는 눈물 흘리는 조각상과 비슷합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묘표석, 기원전 6세기 후반, 대리석, 피사-리보르노 관할 문화유산관리국>

돌방무덤이 눈에 띄도록 무덤 위에 설치한 묘표석입니다. 묘표석 아래에는 대리석으로 조각한 암양 머리를 장식해 놓았습니다. 이는 의식에 제물로 바쳐진 동물을 상징합니다. 에트루리아 북부 해안에서 유행한 이러한 묘표석은 당시 이곳으로 이주한 것으로 보이는 그리스 사람들로부터 대리석 가공 기술을 배워 제작한 것입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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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석, 기원전 6세기 후반, 사암, 토스카나 피렌체 안텔라,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피에솔로 지역의 특징이 잘 나타나는 일명 ‘피에솔로석’이라 불리는 비석입니다. 이 비석은 사각기둥 형태로 상부에 종려 나뭇잎 무늬가 장식되어 있습니다. 아래에는 의자에 기댄 두 명의 남성이 하인의 시중을 받으며 대화하는 모습과 두 명의 젊은이가 주사위놀이를 하고 있는 모습이 2단으로 나누어 표현되었습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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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포석, 기원전 6세기 초, 응회암, 라치오 불치,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사각기둥 형태의 묘표석으로, 앞면은 3단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상단에는 고삐를 쥐고 말 옆에서 걷는 남자, 가운데는 스핑크스, 하단에는 등에 새를 태운 황소가 묘사되어 있습니다. 옆면에는 실재의 동물과 상상 속 동물들이 함께 새겨져 있습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연회 장면과 사자가 묘사된 유골단지, 기원전 6세기 말, 돌, 토스카나 시에나 키우시,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웅크리고 있는 아켈로스가 석관을 떠받치고 있는 형상을 한 유골단지입니다. 뚜껑은 경사진 지붕형태로 용마루에는 두 마리의 사자가 웅크리고 있습니다. 석관의 앞면에는 조문객들과 함께 있는 망자의 모습이, 뒷면에는 장례 의례를 암시하는 전차 경주가 묘사되어 있습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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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화 켈레베, 기원전 4세기 말, 적화식 도기, 토스카나 피사 볼테라,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나체로 있는 두명의 여성이 양쪽에 장식되어 있습니다. 한 손은 엉덩이에 대고 있고 다른 손은 뿔 모양의 잔을 들고 있는데, 이러한 잔은 신에게 포도주를 바치는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기원전 4세기와 3세기 사이에 에트루리아 문화에 널리 퍼졌던 디오니소스 제사의 종교적 이미지와 관련된 것입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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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화 켈레베, 기원전 4세기 말, 적화식도기, 움브리아 페루지아 몬테루체,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볼테라 지역의 전형적인 켈레베로, 목 부분의 한 면에는 날개달린 여신의 머리가 그려져 있고 도기 몸통에는 마이나테스가 포도 넝쿨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반대편 목 부분에는 청년의 머리가 두마리 말의 상체 사이에 그려져 있고, 도기의 몸통에는 제단 앞에서 플루트를 연주하는 사티로스가 보입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유골단지로 사용된 켈레베
켈레베는 기둥 모양의 크라테르를 일컫습니다. 원래 크라테르는 연회 때 포도주와 물을 타는 데 사용된 그릇으로 그리스에서 먼저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에트루리아 사람들은 조상의 시신을 화장한 후 남은 유골을 담는 용도로 자주 사용하였습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2. 위키백과, 2022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에트루리아] 에트루리아인의 삶

에트루리아인이 그리스, 페니키아와 교류를 통해 발전했던 기원전 8~6세기를 동방화시기라고 한다. 이 전사적 성격의 귀족들이 막강한 세력으로 성장했다. 신흥귀족들을 지중해 무역로를 통해 많은 부를 얻었으며  점차 도시국가로 발전하였다. 에트루리아인은 수공업이 발달하여 세련된 물건들을 만들었는데 특히 금속세공이 뛰어났다. 그리스 도기로부터 영향을 받은 에트루리아 도기들은 명성이 높았으며 부케로는 금속제품이 갖는 특징을 잘 표현하여 에트루리아를 대표하는 상품으로 손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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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상(Koutrophos Maffei), 기원전 3세기 전반, 대리석, 토스카나 피사 볼테라,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그리스 양식의 추모용 조각상으로 키톤을 입고 아이를 안은 어머니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무덤의 주인을 추모하기 위해 세웠던 추모비입니다. 여인의 오른팔에 그녀의 이름인 ‘라르티아 벨키네이’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러한 그리스문화양식은 에트루리아가 그리스 세계와 접촉하면서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이 조각상은 볼테라에서 발견된 후, 처음으로 외부에 전시되는 것입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에트루리아인의 삶
에트루리아인들은 문화와 기술 외에도 사회 조직면에서 의미있는 유산을 남겼습니다. 초기 빌노바 시기를 지나 그리스, 페니키아와의 교류를 거쳐 왕의 시대로 발전하는 시기를 동방화 시기(기원전 8~6세기)라고 합니다. 이 시기에 귀족들은 막강한 세력으로 성장했고, 근동에서 건너온 화려한 사치품과 문화에 심취했습니다. 에트루리아의 신흥 귀족들은 수로를 따라 이루어진 무역로를 지배하여 많은 부를 얻었으며, 복잡하고 화려하게 장식한 벽돌지붕 건물에 거주했습니다. 또한 자신들을 위한 거대한 무덤을 짓기도 했습니다. 기원전 6세기부터 에트루리아의 도시들은 자치권을 지닌 도시국가로 성장해 갔고, 이를 통해 점차 복잡한 도시로 발전했습니다. 이들은 거대한 성지를 중심으로 방어벽을 구축하고, 자신들만의 자치적인 사회질서를 도입했습니다. 또한 종교행사를 자주 열었습니다. 에트루리아인의 삶은 축제, 무용, 음악 문화, 교양으로 가득 찼습니다. 무역, 항해, 전쟁에 적극적이면서도, 문화적 삶을 중요하게 여긴 것은 고대 지중해 문명의 중요한 특징이기도 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에트루리아 알파벳
에트루리아가 그리스나 로마와 구별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그들만의 독자적인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에트루리아어는 고대 유럽어의 모체가 된 인도-유럽 어족이 확산되기 이전에, 선사시대 지중해 전체로 퍼진 언어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오늘날 많은 에트루리아 금석문이 번역되었는데, 주로 기증 명문 또는 장례 헌정 글, 종교적인 글, 법적인 글 등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이들이 언어를 기록하기 위해 사용한 알파벳은 에우베이(Eubei)의 고대 그리스 언어로부터 유래한 것으로서, 기원전 7세기에는 일탈리아 남부로 전해졌습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부케로(Bucchero)는 에트루리아에서 생산된 도기이다. 에트루리아를 대표하는 상품으로 여겨졌던 부케로는 도기를 굽는 독특한 방식으로 광택이 나는 검은 표면이 특징이다. 부케로의 특징 중 하나는 용기의 두께가 매우 얇아 금속용기와 비슷한 느낌을 주고 있는데 새로운 기형의 도기들이 제작되는데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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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탐노스(Stamnoid Olia), 기원전 7세기 말, 부케로, 토스카나, 시에나, 라폴라노 테르메,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북부 에트루리아 부케로의 형태를 띤 스탐노스입니다. 이러한 도기는 연회장에서 포도주를 마시는데 쓰이는 크라테르처럼 사용되지만, 때로는 유골단지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이 도기는 홈이 세로로 길게 난 손잡이에 넓은 몸통을 지니고 있으며, 어깨 부분에 종려나뭇잎 무늬를, 그 밑으로 물결무늬를 새겨 놓았습니다. 세 마리의 고양이 머리가 뚜껑의 손잡이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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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히드리아(Hyudria), 기원전 6세기 중반, 부케로, 토스카나 시에나 라폴라노 테르메,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히드리아는 물을 운반하는데 사용되는 대표적인 용기입니다. 정교함이 엿보이는 이 유물은 스핑크스, 날개달린 말, 고양이 등 가상과 실재의 다양한 동물들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종려나뭇잎 무늬가 몸통에 있고, 사람 머리 모양으로 가장자리를 장식했습니다. 뚜껑에는 어린 수탉 모양의 손잡이가 달려 있습니다. 기원전 6세기 북부 에트루리아의 전형적인 부케로입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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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암포라, 기원전 6세기 전반, 부케로, 토스카나 시에나 라폴라노 테르메,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부케로’는 진정한 에트루리아의 도기로 정의될 정도로 에트루리아 장인들이 제작한 가장 고유하고 독특한 작품입니다. 이러한 도기는 산소 공급을 줄이는 가마 제작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습니다. 이 암포라에는 앉아 있는 여성을 향해 이동하는 수레와 행렬 장면이 묘사되어 있습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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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크라테르, 기원전 4세기 말, 흑색도기, 토스카나 피사 볼테라,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기원전 4세기 말 ~ 기원전 1세기 전반 이탈리아에 널리 퍼졌던 특정 형태의 도기입니다. 그리스 아티카에서 제작하여 지중해에 수출했던 도기의 모조품입니다. 검은색으로 도색한 도기들은 주로 연회용으로 제작되었고, 검은색 도료가 두껍게 칠해져 있습니다. 볼테라는 가장 고급스럽고 세련된 제품을 제작하던 주요 생산지 가운데 하나였습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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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파테라(Patera), 기원전 3세기 중반 ~ 2세기 초, 흑색도기, 토스카나 피사 볼테라,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중심에 돌기가 있는 얕은 컵으로, 손잡이와 굽이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주로 술을 마실 때나, 신에게 술을 올릴 때 사용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무덤벽화나 유골함 뚜껑에 새겨진 연회장면 등에 많이 등장합니다.그리스에서는 피알레(Phiale)라 불렀습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에트루리아의 생산품
에크루리아인들은 탁월한 기술로 세련되고 아름다운 물건들을 만들어냈습니다. 특히 금속 세공에 뛰어나서 다방면에 걸쳐 정교한 청동제품을 제작했습니다. 그리스 도기로부터 영향을 받은 에트루리아 도기들은 기원전 7세기 말부터 널리 알려졌으며, 큰 명성을 얻었습니다. 부케로라 불리는 에트루리아 도기는 일종의 국가 도기로 윤이 나는 검정색으로 도색하여 금속제품이 갖는 특징을 잘 재현하였습니다. 부케로는 포도주와 함께 에트루리아의 주요한 무역 품목이 되었습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에트루리아 무덤에서는 에트루리아 귀족들이 화려했던 삶을 보여주는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 그 중 부집게, 부삽 같은 난로 도구는 연회의식에서 사용되었던 도구들이다. 연회는 축제 기념일, 결혼, 장례 등 중요한 행사이다.

OLYMPUS DIGITAL CAMERA<1. 꼬챙이, 2. 부집게, 3. 부삽, 기원전 7세기, 청동, 토스카나 베툴로니아,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부집게, 부삽, 불꼬챙이 등 난로 도구는 동방화 시기의 에트루리아 무덤에서 종종 발견됩니다. 이 난로 도구는 연회 의식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에트루리아 귀족들의 호화로운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연회 의식은 그리스 세계와 접촉하면서 에트루리아로 유입된 것 입니다.

OLYMPUS DIGITAL CAMERA<4. 장작받침대, 기원전 7세기, 철, 옴브리아 오르비에토,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네 다리와 꼬리 등 동물의 모습을 장식한 장작받침대입니다. 이러한 장작 받침대는 동방화시기에 만들어진 에트루리아 무덤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도구는 불을 피우는 데 사용되는 꼬챙이, 집게발, 부집게, 부삽 등과 함께 발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5. 키아토스, 기원전 4세기 말 ~ 3세기 중반, 청동, 토스카나 포폴로니아,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6. 채, 기원전 4세기 말 ~ 3세기 중반, 청동, 토스카나 포폴로니아,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7. 손잡이 달린 용기, 기원전 4세기 말 ~ 3세기 중반, 청동, 토스카나 포폴로니아,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8. 뚜껑있는 그릇, 청동, 라치오,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9. 솥, 기원전 6세기 후반, 청동, 움브리아, 오르비에토,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청동으로 만든 냄비, 채, 키아토스(국자 겸 잔)는 헬레니즘 시대의 무덤에서 다른 유물들과 함께 발견되는 경우가 많스빈다. 아마도 연회 의식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연회 의식은 에트루리아 귀족들이 동맹을 맺고 가족 간 우애를 다지며, 축제, 기념일, 결혼, 장례식과 같은 인생의 중요한 행사를 치르는 장이었습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1. 함(Pyx), 기원전 7세기 중반, 청동, 토스카나 피사 볼테라,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2. 컵, 기원전 7세기 전반, 청동, 토스카나 피사 볼테라,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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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아스코스(Askos), 기원전 7세기 전반, 청동, 토스카나 피사 볼테라,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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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칼, 5. 쇠창, 기원전 7세기 전반, 철.청동, 토스카나 피사,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네크로폴리스 카살리아 돌방무덤의 출토품입니다. 이 무덤은 처음에 도굴꾼에 의해 발견됐지만, 나중에 정식 발굴되었습니다. 무덤 안에는 청동으로 만든 여러 가지 연회용품들이 놓여져 있었습니다. 출토품으로 보아 귀족 가문의 무덤으로 추정됩니다. 그 중에서도 작은 드리개가 달린 항아리, 굽이 달린 컵, 얇은 사슬과 드리개들을 장식한 뚜껑달린 용기가 눈에 띕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6. 전차모형, 임파스토기법, 토스카나 피렌체 비센지오, 피렌체 국립고고학박물관>

두세 마리의 말이 끄는 이륜전차는 주로 전장에서 사용되는 빠른 이동수단입니다. 전차 모형이 무덤에서 발견된다는 것은 망자가 전사였음을 강조한 것입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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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재갈, 기원전 7세기, 청동, 토스카나 베툴로니아,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재갈과 같은 말갖춤은 동방화시기 에트루리아 귀족의 무덤에서 흔히 발견됩니다. 베툴로니아 지역은 말갖춤 생산의 중심지였습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귀족사회의 발전
에트루리아 귀족사회에서는 여성이 주도적 역할을 했습니다. 귀족 여성들은 남성과 함께 연회에 참석 하는 등 사회 내에서의 지위가 매우 높았으며, 모계 조상의 이름을 따라 아이들의 이름을 짓기도 했습니다. 에트루리아 사회에서 연회는 귀족들이 자신들을 과시하는 매우 중요한 행사였습니다. 이들은 왼쪽으로 반쯤 기대어 먹고 마셨는데, 이는 기원전 7세기 그리스와 근동지역에서 유래한 모습이기도 합니다. 에트루리아의 연회는 놀이, 춤, 의례 외에도 서로 동맹을 맺고 우애를 다지는 기회이자 축제, 기념일, 결혼, 장례 등과 같이 중요한 행사를 치르는 인생의 장이었습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2. 위키백과, 2022년

 

[ 중앙박물관특별전, 에트루리아] 전사들의 사회

에트루리아인들은 그리스, 로마와 마찬가지로 사회적으로 군사적인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에트루리아인들은 여름철에 대외 원정에 나서 이웃 지역을 공격하여 토지, 상품, 노예와 같은 자원들을 획득하고자 했다. 8세기 그리스 등 지중해 세력과의 교류 및 경쟁을 통해 신흥귀족들이 생겨났다. 이들은 전사계급의 특징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들의 무덤에서는 갑옷, 방패, 투구 등 무기류들이 껴묻거리로 발굴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전차, 기원전 7세기 전반, 청동 철, 토스카나 포풀로니아,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반대편에서 본 모습>

동방화 시기의 무덤에서 발견된 전차입니다. 일반적으로 전차는 최고위 군 통솔자가 사용하였다는 점에서 무덤의 주인은 에트루리아의 왕 또는 최고위 귀족으로 추정됩니다. 전차는 주인의 사회적 신분을 보여주듯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습니다. 청동과 철로 상감 세공하고, 현실 또는 상상 속 동물이나 전투장면을 묘사한 프리즈로 장식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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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투구, 기원전 4~2세기, 청동, 토스카나 피사 볼테라,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반구형 원뿔모양의 청동 투구 꼭대기에는 손잡이가 달려 있고, 거의 보이지 않는 목 보호대가 부착되어 있습니다. 한 번에 주조된 투구에 뺨과 턱을 보호하기 위한 보호대를 탈부착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일명 ‘몬테포르티노 투구’라 부릅니다. 당시 로마군에서 사용하던 다른 유형의 투구를 대체하여 기원전 4세기부터 에트루리아-이탈리아의 전통 양식으로 활용했으며, 기원전 1세기까지 사용했습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2. 투구, 기원전 7세기, 청동,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동방화 시기 에트루리아의 귀족무덤에서 흔히 발견되는 투구입니다. 무덤 안에는 투구와 함께 다양한 금속제 무기가 함께 놓여 있었습니다. 이는 초기 에트루리아의 귀족들이 전사였음을 보여줍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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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투구 기원전 8세기 전반, 청동,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타르퀴니아귀족의 우물모양 무덤에서 발견된 투구입니다. 사람의 얼굴을 장식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중부 유럽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이러한 중부 유럽의 영향은 기원전 9세기 말에서 8세기 초 타르퀴니아 지역에서 발견되는 여러 청동유물에서도 확인됩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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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투구, 기원전 7세기 전반, 청동, 토스카나 베툴로니아,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동방화 시기 베툴로니아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투구로 원형 무덤에서 발견됐습니다. 한 가문의 사람이 죽으면 하나 혹은 그 이상의 구덩이에 매장하였는데, 무덤 주변으로 둥그렇게 돌을 둘러 해당 공간이 무덤임을 표시하였습니다. 투구와 함께 무기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망자는 전사였던 것으로 추정됩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5. 허리띠고리, 기원전 7세기 후반, 청동, 토스카나 시에나 키우시,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주로 북부 에트루리아의 동방화 시기에 남자들의 무덤에서 자주 발견된 허리띠 장식입니다. 흔히 보이는 단순한 직사각형 형태의 허리띠 장식과는 다르게 금속판의 일부를 끌이나 톱으로 도려내어 동물의 형상을 투조로 세공한 점이 눈에 띕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1. 방패, 기원전 8세기말 ~ 7세기초, 청동, 토스카나 피사 카살레 마리티모, 체치나시립고고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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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정강이 보호대, 기원전 7세기, 청동, 토스카나 베툴로니아,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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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정강이 보호대, 기원전 7세기, 토스카나 베툴로니아,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청동으로 만들어진 정강이 보호대로 다리 하부를 보호하기 위한 도구입니다. 정강이 보호대는 동방화 시기의 에트루리아 무덤에서 갑옷, 투구, 방패 등 다른 무기와 함께 발견됩니다. 무덤에서 발견되는 무기류는 망자가 전사였음을 보여줍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4. 칼과 칼집, 기원전 9~8세기, 청동, 토스카나 베툴로니아,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빌라노바 시대의 에트루리아 지역 무덤에서 발견된 칼과 칼집입니다. 이탈리아계 칼과 화려하게 장식된 칼집은 망자가 전사였음을 보여주며, 그의 높은 사회적 지위를 드러냅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5. 창, 기원전 9~8세기, 청동,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6. 창, 기원전 9~8세기, 청동,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창은 빌라노바 시기 에트루리아 무덤에서 다른 무기류와 함께 발견됩니다. 창과 같은 무기류는 망자가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았을 뿐만 아니라 전사였음을 보여줍니다. 창은 나무 자루를 연결하여 사용하였습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전사들의 사회
기원전 8세기 말, 그리스와 동부 지중해 지역과의 문화 교류로 에트루리아의 신흥 귀족이 탄생했습니다. 신흥 귀족들은 전사 계급의 특징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전투 출전을 위한 갑옷, 둥근 방패, 투구, 칼, 도끼, 창, 정강이 보호대 등 무기류의 부장품들은 이들이 그리스의 군사 문화와 연결되었음을 잘 보여줍니다. 에트루리아의 귀족들은 말과 빠른 이륜차를 사용했으며, 방대한 영토에 웅장한 주택을 지어 존재감을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광물과 농업자원이 풍부했던 이들의 영지에서는 무덤도 여러 개 발견되는데, 망자와 자손과의 연속성을 증명하기 위해 눈에 띄는 거대한 봉분을 만들기도 했습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2. 위키백과, 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