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중국

둔황 아단국가지질공원(敦煌雅丹国家地質公園)

둔황 도심에서 서북쪽으로 168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둔황아단국가지질공원(敦煌雅丹国家地質公園)이다. . 지표면이 바람과 비에 의해 침식되면서 단단한 암석만 남아 산, 성벽, 탑 등 다양한 형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사막 가운데 기암괴석들이 우뚝 솟아 있어 미국 서부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경관을 연출하고 있다. 중국 영화나 드라마 뿐 아니라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도 사막을 배경으로 한 장면에 자주 등장했던 곳이다. 마귀성이라도 부르며, 기암괴석 형상에 다양한 이름이 붙여졌으며 전설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국가 AAAA급 명승지로 지질학을 체험할 수 있는 지질공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둔황국가지질공원 전경>

공원은 만리장성 서쪽 끝 옥문관에서 25km 정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옥문관을 나서 사막길에 볼 수있었던 이채로운 풍경이은 많은 전설을 만들어 냈던 것으로 보인다. 옥문관에서 사막을 가로질러 물이 흘렀던 강을 따라서 도로가 개설되어 있는데 주변에 모습의 바위들을 볼 수 있다. 지금도 비가 오거나 눈이 많이 녹으면 물이 이 곳을 흐르는 것으로 보인다. 도로 곳곳에 강을 건너는 다리가 설치되어 있다.

SANYO DIGITAL CAMERA<옥문관에서 아단지질공원으로 가는 길>

SANYO DIGITAL CAMERA<가는 길에 볼 수 있는 바위산과 물이 흘렀던 강>

SANYO DIGITAL CAMERA<바위 절벽>

공원 입구에는 탐방객들을 위한 지질학박물관이 있어 공원 형이 형성된 역사를 설명해 주고 있다. 아름다운 기암괴석이 명소까지 갈려면 승합차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SANYO DIGITAL CAMERA<공원 입구>

SANYO DIGITAL CAMERA<공원 입구 박물관>

SANYO DIGITAL CAMERA<뒷편 바위산>

SANYO DIGITAL CAMERA<뒷편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기암괴석들>

SANYO DIGITAL CAMERA<공원에서 처음으로 볼 수 있는 사자바위>

SANYO DIGITAL CAMERA<바람침식에 의해 바위만 남은 산>

둔황 아단은 빙하기가 끝나고 둔황 남쪽 고지대에서 흘러내린 빙하가 녹은 물로 계곡이 형성된 후 오랜 세월에 걸쳐서 바람에 의한 침식과 폭우에 의한 침식이 반복되면서 바람 침식 계곡이 형서어되었다고 한다. 이를 보여주듯 계곡은 한쪽 방향을 향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오랜 침식에 의해 형성된 계곡>

SANYO DIGITAL CAMERA<다양한 형상의 바위들을 볼 수 있는 명소>

SANYO DIGITAL CAMERA<계곡을 형성하고 있는 기암괴석>

SANYO DIGITAL CAMERA<기암괴석>

SANYO DIGITAL CAMERA<거대한 바위산>

SANYO DIGITAL CAMERA<기암괴석>

SANYO DIGITAL CAMERA<북쪽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마른 사막>

<출처>

  1. 위키백과, 2020년
  2. 百度百科, 2020년

둔황 만리장성 양관(陽關)과 양관박물관

중국 둔황에 있는 한대(漢代) 만리장성 관문인 양관(陽關)이다. 한 무제 때 흉노를 공략하기 위해 하서사군(河西四郡)을 설치하면서 옥문관과 함께 세워졌다. 옛 실크로드 남도(南道)로 나가는 관문으로 당대(唐代) 인도를 방문했던 현장법사가 양관을 통해 중국으로 돌아왔다. 양관 일대는 소륵하(疏勒河, Shule River) 주변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크게 번창했는데 송대(宋代) 이후 실크로드와 함께 쇠퇴하였다. 당시 쌓았던 성벽은 남아 있지 않으며 언덕에 봉수대터만 볼 수 있다. 지금은 양관박물관이 세워져 실크로드 관련 유물을 전시하고 있으며 한대 만리장성 관문을 재현해 놓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재현해 놓은 옛 양관과 성벽>

만리장성 양관은 둔황 도심에서 남서쪽으로 75 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타클라마칸 사막 언저리에서 쿤룬산맥을 따라 인도 방면로 이어지는 실크로드 남도 관문이다. 한대(漢代) 이래 많은 왕조들이 서역을 장악하기 위해 군대를 이곳을 통해 파견했으며, 인도를 향해 순례를 떠났던 승려들이 관문을 지나갔다.

SANYO DIGITAL CAMERA<유일하게 남아 있는 양관 부근 봉수대>

양관박물관에는 엣 양관의 모습을 재현해 놓고 있다. 벽돌로 쌓은 명청대 성벽에 비해 성벽이 높지 않으며 내부도 넓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양관 성문, 성벽, 치성, 공성과 방어무기 등을 재현해 놓고 있다.  옥문관 주변 있는 한대 장성의 원래 모습을 볼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양관 성벽>

1973년 양관 일대에 대한 발굴.조사가 있었는데 수많은 성벽터, 건물터 등이 확인되었으며 석비, 청동제 무기, 동전, 도기 등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양관박물관에 출토된 유물들이 전시된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양관박물관 출입문이자 성문>

둔황지역은 주변 오아시스에서 자라는 갈대와 모래자갈을 섞어서 쌓았는데 비가 없는 사막지역에 있어 거의 원형에 가까운 모습을 남겨 놓고 있다. 진시황이 건설했던 옛 만리장성의 원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갈대와 자갈을 섞어 쌓은 성벽>

SANYO DIGITAL CAMERA<옥문관 부근에 남아 있는 엣 성벽>

SANYO DIGITAL CAMERA<양관 부근 오아시스에서 볼 수 있는 갈대>

SANYO DIGITAL CAMERA<성문과 모서리를 호위하는 치성>

SANYO DIGITAL CAMERA<성벽 안쪽에 재현해 놓은 병사들의 숙영지>

성벽 바깥에는 북방 유목민과 전쟁에서 많이 사용된 공성무기들을 전시해 놓고 있다. 실제 유목민들이  사용했는지 알 수 없지만 다양한 기록으로 전해져 오는 옛 중국 공성무기들을 살펴볼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운제(雲梯), 성벽을 오르는 사다리 수레>

SANYO DIGITAL CAMERA<궁수들을 성벽높이 만큼 들어올려 불화살공격을 하는 수레>

SANYO DIGITAL CAMERA<투석기>

SANYO DIGITAL CAMERA<망루차처럼 보이는 공성무기>

SANYO DIGITAL CAMERA<적의 화살을 막는데 사용한 수레>

SANYO DIGITAL CAMERA<성문을 부수는데 사용한 공성무기>

SANYO DIGITAL CAMERA<앞에 칼이 있어 성문이나 밀집대형을 돌파할 때 사용하는 수레>

SANYO DIGITAL CAMERA<성벽을 오르는 병사를 공격하는 무기>

SANYO DIGITAL CAMERA<비슷한 용도의 무기>

<출처>

  1. 위키백과, 2020년
  2. 실크로드 문명기행, 정수일, 한겨레출판, 2006년
  3. 실크로드사전, 편저 정수일, 창비, 2013년
  4. 百度百科, 2020년

둔황 명사산(鳴沙山)과 월아천(月牙泉), 실크로드를 대표하는 풍경

중국과 서역을 연결하는 실크로드를 대표하는 장면으로 잘 알려진 둔황(敦煌) 명사산(鳴沙山)과 월아천(月牙泉)이다. 명사산은 감숙성 둔황시 남쪽에 자리잡고 있는 모래언덕으로 모래들이 바람에 날리는 소리가 울림소리처럼 들린다고 하여 명사산(鳴沙山)이라 부르며 그 아래 샘이 솟는 작은 오아시스인 월아천이 사막의 극적인 풍경을 잘 표현하고 있어 예로부터 둔황을 대표하는 명소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명사산과 월아천은 낙타를 타고 실크로드를 출발하는 장면으로 많이 등장하지만 실제로는 만리장성 서쪽 끝 관문인 옥문관(玉門關)과 양관(陽關)이 실크로드 출발점이었다.

SANYO DIGITAL CAMERA<둔황 명사산과 월아천>

실제 둔황 도심에서  남쪽으로 5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도심 공원에 가깝다. 명사산은 일몰 풍경이 아름다워 그 시간에 맞추어서 많은 관광객이 찾고 았다. 입구에서는 사막을 걷기 위해서는 덪신이 필요하다며 돈을 받고 대여해 주고 있으며, 명사산 사막을 즐기기 위한 낙타들이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명사산 출입문>

SANYO DIGITAL CAMERA<관광객을 기다리는 낙타들>

SANYO DIGITAL CAMERA<출입문을 들어서면 보이는 명사산 모래언덕>

명사산은 서쪽 막고굴에서 시작하여 동서 약 40km, 남북으로 약 20km에 이르는 모래언덕으로 최고 높이가 1,700m 정도이나 상대 높이 100 m 정도 크고 작은 모래언덕들이 연결되어 있다. 지형이 수시로 변하는 사막에서 오랜세월 현재와 비슷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명사산에서 보이는 해가 뜨는 일출이나 해가 지는 일몰 풍경이 아릅답다.

SANYO DIGITAL CAMERA<명사산 모래언덕>

명사산을 오르는 방법은 낙타를 타고 모래산을 천천히 올라가는 방법과 월아천 근처의 모래산에 설치해 놓고 있는 나무계단을 타고 올라가는 방법이 있다. 사막을 즐기고 체험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낙타를 타고 모래언덕을2~3시간 올라가서 일출이나 일몰을 감상하며, 일정이 바쁘거나 체력이 달리는 사람은 월아천 부근 모래언덕에 설치된 나무계단을 타고 올라가 그 아래의 월아천 풍경을 감상하게 된다.

SANYO DIGITAL CAMERA<낙타들이 기다리는 휴게소>

SANYO DIGITAL CAMERA<낙타를 타고 모래언덕을 오르는 관광객들>

SANYO DIGITAL CAMERA<낙타를 타고 실크로드를 떠나는 풍경을 만들고 있다.>

입구에서 명사산 월아천까지는 약 1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꼬마열차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명사산을 다양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꼬마열차에서 보이는 입구>

SANYO DIGITAL CAMERA<멀리 보이는 월아천 입구>

SANYO DIGITAL CAMERA<사막 가운데 있는 월아천 입구 휴게소>

SANYO DIGITAL CAMERA<휴게소를 지나면 보이는 월아천과 월아산장>

SANYO DIGITAL CAMERA<모래바람을 느낄 수 있는 월아천 맞은편 모래언덕>

월아천(月牙泉)은 길이 200m, 폭 30m의 작은 오아시스로 초생달처럼 생겼다. 월아천 옆에는 드라마 『선덕여왕』에 등장했던 월아산장이 있다. 월아산장은 오층목탑처럼 생긴 건물을 중심으로 여러동의 중국풍 유곽의 모습을 재현한 것으로 1997년에 만든 것이라 한다. 사막 주거양식과는  동떨어진 중국 강남지역 건축양식이지만,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로 이곳을 대표하는 장면으로 자리잡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월아산장 누각건물>

SANYO DIGITAL CAMERA<2층 누각>

SANYO DIGITAL CAMERA<객실 건물>

SANYO DIGITAL CAMERA<정원의 작은 정자>

SANYO DIGITAL CAMERA<누각에서 내려다 보이는 월아천>

월아천은 사막에 샘이 솟는 오아시스 특징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장소이다. 월아천의 존재는 기록만으로도 2천년이 넘는 곳이며 그 동안 물이 마르지 않았다고 한다. 현재는 둔황지역 관개농업의 발달로 지하수 수위가 내려가 오아시스가 마르고 있다고 한다. 명사산 입구에 큰 연못 두개를 만들어 다른 곳에서 물을 끌어 월아천의 수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SANYO DIGITAL CAMERA<월아천과 주위에 자라고 있는 식물들>

SANYO DIGITAL CAMERA<월아천 맞은편 모래언덕>

OLYMPUS DIGITAL CAMERA<인근에 인공적으로 조성해 놓은 연못>

월아천 뒷편 모래언덕은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명소로 언덕위에서 월아천과 월아산장 풍경을 감상할 수 있으며, 모래언덕에서 썰매를 타고 내려올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월아천 뒷편 모래언덕>

SANYO DIGITAL CAMERA<모래언덕을 오르는 나무계단>

SANYO DIGITAL CAMERA<모래썰매를 대여해 주는 곳>

SANYO DIGITAL CAMERA<모래썰매>

SANYO DIGITAL CAMERA<모래가 나무를 덮고 있는 이국적인 풍경>

OLYMPUS DIGITAL CAMERA<언덕에서 내려다 보이는 월아천과 월아산장>

<출처>

  1. 위키백과, 2020년
  2. 중국 국가급풍경명승구총람, 도서출판 황매희, 2011년

둔황 막고굴(莫高窟), 혜초 왕오천축국전이 발견된 석굴사원

중국 감숙성(甘肅省) 둔황(敦煌)에 있는 대표적인 천불동인 막고굴(莫高窟, Mogao Cave)이다. 명사산 동쪽 벼랑에 남북으로 약 1.6km 걸쳐 약 600 여개의 동굴이 남아 있으며 약 2,400여 개의 불상이 안치되어 있다. 오호십육국 때 처음 조성되기 시작되어으며 원대(元代)까지 약 1,000에 걸쳐 조성되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것은 5세기 북양 때 조성된 것이며 북위 때 조성된 굴에는 서역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북주(北周)와 수당(隋唐) 조성된 굴에서는 중국적인 모습을 많이 보인다. 명대(明代) 이후 중앙아시아의 교류가 줄여들면서 교역도시로서 둔황의 역할이 줄어들면서 막고굴도 쇠퇴하게 되었다. 19세기 말 장경동에서 많은 고문서들이 발견되면서 서구에 그 존재가 알려졌으며, 혜초의 『왕오천축국전』도 이곳에서 발견되었다.

SANYO DIGITAL CAMERA<둔황 막고굴>

들어가는 길

막고굴은 둔황 도심에서 동남쪽으로 약 20km 떨어진 명사산 절벽에 있는 석굴사원들을 말한다. 자동차로 사막길을 1시간 정도 달리면 사막에 있는 바위산이 보이는데 그 곳에 막고굴이 조성되어 있다. 막고굴이 있는 바위산을 흐르는 강 건너편에 주차장이 있으며 약 10여분 걸으면 막고굴에 도착한다.  매표소에서 입구에 들어가는 길에는 북송(서하)시대에 조성된 고승들이 사리탑을 볼 수 있고, 다리를 건너면 최근에 만든 중국풍의 목조 패루가 있으며 석굴을 파서 만든 세계문화유산인 막고굴을 볼 수 있게 된다

SANYO DIGITAL CAMERA<주차장에서 막고굴로 들어가는 길>

막고굴이 있는 바위산 앞에는 평소에 강물은 없지만, 비가 오거나 눈이 많이 녹았을 때만 물이 흐르는 강이 있다.  불교에서 바깥세상과 부처님의 세상을 분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오랜 세월 이 곳을 흐른 강물이 절벽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막고굴 바위산 앞을 흐르는 강>

SANYO DIGITAL CAMERA<주위 흩어져 있는 승탑들>

SANYO DIGITAL CAMERA<강을 건너는 다리>

SANYO DIGITAL CAMERA<막고굴 입구 패루>

 장경동이 있는 북쪽 석굴

막고굴은 사막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기는 하지만 오랜 세월 실크로드 중심지였던 둔황 도심에서 약 20 km 정도 거리에 있어 걸어서 반나절이면 도착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수백개의 석굴들이 오늘날 아파트처럼 좁은 거리에 몰려있어 한적한 곳에 수행하는 선종계열 사찰과는 약간 거리가 있는 듯 하다. 신라 혜초 스님이 쓴 ‘왕오천축국전’을 비롯하여 수 많은 언어로 쓰여진 고문서들이 발굴된 16굴은 막고굴 중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북쪽에는 석굴을 조성하는데 종사했던 이름없는 장인들이 거처했던 불상이나 벽화가 없는 석굴들이 있다.

SANYO DIGITAL CAMERA<막고굴 출입문>

막고굴 북쪽에는 『왕오천축국전』을 비롯한 수 많은 고문서들이 발굴된 ‘장경동(藏經洞)’이라 불리는 제16굴이 있다. 1900년 둔황 막고굴을 지키던 도사가 제16굴을 청소하다가 우연히 밀실에 숨겨둔 5만여점의 고문서를 발견하여 영국인에게 넘기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이후 여러차례 유물들이 서 유럽인들에게 넘겨졌다.

SANYO DIGITAL CAMERA<장경동이 있는 16호굴 부근 석굴들>

석굴의 크기는 일정하지 않으며, 제일 큰 것은 10층 높이 정도 되는 것도 있고, 작은 토굴도 있다. 석굴 내부는 밖에서 보는 것 보다는 훨씬 넓고 시원하다. 현재의 석굴 입구는 석굴 보호와 관람 편의성을 위해 최근에 만들어 졌다. 사다리를 타고 들어가거나 나무 계단을 이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북쪽편 석굴들>

석굴들 중 크고, 목조로 만든 출입문과 처마, 벽화가 남아 있는 석굴들은 위층에 있고 아래에는 작은 석굴들이 자리잡고 있다. 석굴들은 지역 유력자의 후원을 받았으며, 규모가 큰 석굴에는 이름난 승려가 기거하면서 수행하였고 한다.

SANYO DIGITAL CAMERA<다양한 규모의 석굴들>

SANYO DIGITAL CAMERA<벽화, 지붕, 출입문 등을 제대로 갖춘 큰 규모의 석굴>

SANYO DIGITAL CAMERA<비천상 벽화가 유명한 428호 굴>

SANYO DIGITAL CAMERA<다양한 규모와 형태의 석굴들>

SANYO DIGITAL CAMERA <296굴, 421호굴 주변>

SANYO DIGITAL CAMERA<벽화, 지붕, 출입문을 제대로 갖춘 큰 규모의 석굴>

SANYO DIGITAL CAMERA<273호굴 주변>

SANYO DIGITAL CAMERA<’오대산형상도’로 유명한 61호굴 주변>

SANYO DIGITAL CAMERA<아파트를 연상시키는 석굴들>

SANYO DIGITAL CAMERA<아래쪽 석굴들>

북대불전

막고굴을 높이 34.5m 의 제96호굴인 북대불전(北大佛殿)이다. 외부에 드러난 처마만으로도 약 10층 건물처럼 보이는 거대한 석굴이다. 내부에는 미륵불 입상이 모셔져 있으며, 외부는 7층 이상의 목탑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북대불전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오대십국 때 세워진 석굴이라고 한다. 당시 이지역을 지배한 서하(西夏) 유력자의 지원을 받아서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북대불전은 오랜 세월에 유지되어 왔으며, 미륵불상은 수차례에 걸쳐 보수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통일신라 때 미륵불상을 모신 장륙전과 같은 의미를 갖는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막고굴 96호굴>

SANYO DIGITAL CAMERA<96호굴 입구>

SANYO DIGITAL CAMERA<96호굴 앞에 세워진 비석>

SANYO DIGITAL CAMERA<94호굴>

SANYO DIGITAL CAMERA<94호굴 벽화>

SANYO DIGITAL CAMERA<96호굴 북쪽 석굴들>

막고굴에는 벽화와 불상들이 남아 있는 곳은 474개라고 한다. 막고굴에는 전체 4,500 ㎡에 이르는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방문객들은 극히 일부분만 볼 수 있다. 막고굴에는 석굴 내부에만 벽화를 그려놓은 것이 아니라 외부에도 벽화들을 남겨놓고 있다. 막고굴에 그려진 벽화는 르네상스 시대에 사용된 프레스코 기법으로 회반죽 위에 안료를 이용해서 벽화를 그렸다.

SANYO DIGITAL CAMERA<북대불전 주변에 남아 있는 벽화>

SANYO DIGITAL CAMERA<벽화>

막고굴 남쪽으로는 와불이 있는 158호굴을 비롯하여 남대불이 있는 130호굴 유명한 석굴들이 많다. 석굴들은 수당(隋唐)대에 만들어진 것이 많지만 서하(西夏) 때 벽화와 불상들이 조성되고 보수되었다고 한다. 현재 볼 수 있는 유물들은 후대에 만들어진 곳이 많고 청대(淸代)까지 보수가 이루어 진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북대불전 남쪽 석굴들>

SANYO DIGITAL CAMERA<다양한 형태 석굴들>

SANYO DIGITAL CAMERA<석굴을 오르는 계단>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둔황 막고굴 유물

국립중앙박물관에서도 중앙아시아 석굴사원에서 약탈한 문화재들을 다수 소장.전시하고 있다.  20세기초 일본 교토 니시혼간지의 주지승인 오타니 고즈이라는 사람이 대규모의 자본과 인력을 동원하여 3차에 걸쳐서 중앙아시아 원정을 떠났는데, 현지에서 약탈과 구매 등의 방법으로 무려 5천여점에 이르는 유물을 수집했으며 이를 오타니 컬렉션이라고 있다.

<여행하는 승려(行脚僧圖)>는 경전을 짊어지고 여행하는 승려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주인공은 노란 점과 붉은 선으로 장식된 검은색 천을 어깨에 걸치고, 챙이 넓은 모자를 썼다. 그림의 주인공에 대해서는 현장(玄裝), 보승불(寶勝佛), 티베트 불화에 보이는 18나한(羅漢) 가운데 한명이 달마다라(達磨多羅), 실크로드를 여행하며 공연하는 이야기꾼 등의 다양한 견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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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는 승려, 行脚僧圖, 둔황, 9~10세기, 중앙박물관>

둔황에서 발견된 번에는 2명의 보살이 그려져 있다. 위쪽의 보살은 가사를 걸친 채 왼쪽을 향하고 있고, 아래쪽의 보살은 군의를 입고 천의를 걸친 채 정면을 향해 서 있다. 붉은색 선으로 윤곽을 그리고 부분적으로 음영을 가해 입체감을 주었다. 보살 옆에는 보살의 이름을 써 넣은 방제가 있는데, 아래 보살의 경우 “나무불휴식보살(南無不休息菩薩)”이라는 글씨가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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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이 그려진 번, 菩薩幡, 둔황(敦煌), 10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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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 그림 드리개, 菩薩立像幡, 둔황, 10세기.>

승려를 표현한 부조 3점은 건축물의 벽면에 부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각각의 승려는 감실에 앉아 있다.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의 승려들은 명상에 잠긴 상태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머리를 두건같이 감싸며 몸을 완전히 가리는 두꺼운 옷을 입고 있으며, 그 옷은 승려마다 각기 다른 색을 띤다. 일부 상에는 금칠의 흔적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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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에 잠긴 승려, 僧像, 둔황, 10세기>

사막에 세워진 승탑들

입구 주차장에서 막고굴까지 가는 중 길가를 비롯하여 멀리 사막 한가운데까지 많은 승탑들을 볼 수 있다.  주로 서하(西夏) 때 승려들의 승탑이라 한다. 목조 건축물을 모방해서 만든 본 한국의 승탑과는 달리 인도 불교 사원의 모습과 비슷하다.

SANYO DIGITAL CAMERA<인도 불교사원 모습을 하고 있는 승탑>

SANYO DIGITAL CAMERA<다른 형태의 승탑>

SANYO DIGITAL CAMERA<사막에 흩어져 있는 승탑들>

둔황 막고굴 앞쪽에는 사막의 모래바람으로부터 문화재를 보호하고 관람객의 편의를 위해서 많은 방풍림을 심어 녹지를 조성해 놓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방풍림을 심어 놓은 정원>

SANYO DIGITAL CAMERA<막고굴 앞 방풍림길>

SANYO DIGITAL CAMERA<막구굴 입구 휴게소>

<출처>

  1. 안내문, 둔황 막고굴유적지, 2010년
  2. 위키백과, 2020년
  3. 실크로드 문명기행, 정수일, 한겨례출판, 2006년
  4.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2년
  5. 百度百科, 2020년


 

중국 시안(西安, Xian), 역대 가장 많은 왕조가 수도로 삼았던 도시

시안(西安, Xian)은 중국 역사상 가장 많은 왕조가 도읍으로 삼았던 유서깊은 고장이다. 시안(西安)이라는 명칭은 서쪽에 있는 수도란 의미의 서경(西京)과 한(漢)의 수도 장안(長安)이 합쳐진 이름이다. 서주(西周)의 도읍 풍호(豊鎬)와 진(秦)의 함양(咸陽)이 인근에 있다. 중국을 통일한 진(秦)은 위수 이남에 아방궁을 세웠으며 한(漢)의 장안성을, 수.당이 현재 위치에 수도 장안을 건설하면서 국제도시로 크게 번성했다. 당 이후 크게 타격을 받고 침체하였다. 명나라 때 둘레 12 km 정도의 시안 성벽이 건설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36년 제2차 국공합작의 계기가 된 시안사건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오늘날 시안은 섬서성(陝西省) 성도이자 중국 서부의 중심도시로 과학연구, 고등교육, 국방 과학기술과 첨단기술 산업기지, 중국의 중요 우주비행, 항공공업센터, 기계제작센터와 방직공업의 중심이기도 하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자은사 대안탑에서 내려다 보이는 시안 도심>

OLYMPUS DIGITAL CAMERA<시안 성벽에서 내려다 보이는 도심>

시안은 황하(黃河) 중류 관중평원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남쪽으로 진령산맥이 둘러싸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고대 중국 5대강 중 하나인 위수(渭水)가 흐른다. 중국 6대유라시아대륙을 연결하는 실크로드의 출발점으로 교통이 발달되었고 동.서문화교류가 활발했다. 관중평원의 농업생산력, 산맥과 강으로 둘러싸인 지형적인 잇점, 서역 유목민과의 접점이라는 특징으로 고대 이래 중국의 정치, 문화의 중심지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History_of_Xi'an<시안과 주변 고대 도시들,  위키백과, 2020년>

풍호(豊鎬), 서주(西周)의 도읍 풍경(豊京)과 호경(鎬京)

주(周) 문왕(文王)은 중원으로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풍수(豊水) 서쪽에 도읍을 건설했는데 이를 풍경(豊京)이라 한다. 왕위를 계승한 무왕(武王)은 도시를 강 동쪽으로 확장하면서 도시를 건설했는데 이를 호경(鎬京)이라 하며 두곳을 합해서 풍호(豊鎬)라 부른다. 기원전 1046년 무왕(武王)은 상을 멸망시킨 후 서주(西周)를 건국하고 호경(鎬京)을 수도로 삼았다. 풍경에는 종묘와 정 등의 건축물을 배치하였으며, 호경에는 궁궐과 관청 건물 등이 세워졌다. 주례(周禮) 고공기(考工記))에 도시에 대한 내용이 있는데 조선의 수도 한양 건설에도 적용되는 등 후대에 큰 영향을 주었다.

OLYMPUS DIGITAL CAMERA<맹궤(孟簋), 서주, 시안시 장가파(張家坡) 출토>

함양(咸陽, 셴양), 전국시대 진(秦)과 통일제국의 수도

함양(咸陽, 셴양)은 기원전 350년 진효공(秦孝公)이 도읍를 동양(棟陽, 시안시 옌량阎良구)에서 함양으로 옮긴 이후 143 년 동안 진(秦)의 수도 역할을 했다. 셴양은 위수(渭水) 양안에 강둑을 따라 건설되었는데, 전통적인 도시 배치와는 달리 지형을 최대한 활용했다. 전국시대 다른 국가의 도읍과 함께 셴양은 대규모로 잘 계획된 도시로 건설되었다. 진시황은 황제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제2궁전, 제3궁전이 회랑으로 연결된 웅장한 궁궐로 바뀌고 화려한 아방궁을 다시 건설하였다. 함양궁과 아방궁 궁궐터에서 화려했던 옛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진(秦)의 궁궐이었던 함얌궁과 아방궁>

여산(驪山)이라 불렸던 진시황릉

여산(驪山)이라 불리는 웅장한 진시황릉으로도 후세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진시황릉은 그가 13세 일때 시작하여 37년 동안 수많은 인력과 자원을 동원하여 건설하였다. 무덤은 높이 76 m의 여산을 중심으로 당시 수도였던 함양을 본떠서 둘레 2.5 km 의 내성과 둘레 6.3 km의 외성으로 구성되었다. 1974년 여산 동쪽 1.2 km 정도 떨어진 곳에서 병마용갱이 발견되었다. 이후 병마용갱 주변 일부에서만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는데 엄청난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진시황릉은 후대 왕조의 왕릉 조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OLYMPUS DIGITAL CAMERA<1974년 우연히 발견된 병마용갱.>

장안(長安), 한(漢)의 수도 

서한(西漢) 제국이 수도로 장안에 정착하면서 고대 중국 역사상 첫번째 전성기를 누렸다. 실크로드(Silk Road)가 개척된 이후 동서 무역로의 출발지였던 장안(長安)은 동아시아 문명의 중심이자 세계적인 대도시가 되었으며 중국은 세계적인 강대국으로 부상하였다. 웅장한 궁궐, 잘 계획된 도로와 도시기반 시설,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읍성 등을 잘 갖추고 있다. 한(漢)나라 미앙궁(未央宮)이 있던 장안성은 수.당 때 형성된 현 시안시의 서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장락미앙(長樂未央) 와당, 한, 시안시 한(漢) 장안성 유적 출토>

OLYMPUS DIGITAL CAMERA <교육기관인 태학의 벽옹(碧擁)과 미앙궁 전전(前殿)>

한나라 황제 능역

한(漢) 황제 능역은 무덤이 봉분, 사당, 능역 주변의 성벽과 망루 등으로 구성되며, 황제를 호위했던 주요 관리들과 장군들, 가까운 친척들의 무덤도 같이 조성되었다. 서한시대 황릉 11곳중 9곳은 위수(渭水) 북쪽에 있으며 2곳은 장안 동쪽과 남쪽 교외에 위치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한나라 황제 능역들>

OLYMPUS DIGITAL CAMERA<셴양 싱핑시에 있는 곽거병 무덤>

OLYMPUS DIGITAL CAMERA<한무제 능역(漢茂陵) 곽거병 무덤 앞에 있는 마답흉노(馬踏匈奴) 석상>

수당(隋唐)시대 장안성 

수당(隋唐)시대는 중국 역사상 가장 번성했던 시기로 여겨진다. 수도 장안(長安, 현 시안시)은 동시대 셰계에서거 가장 크고 번성했던 대도시였다. 장안은 수(隋) 우문개가 공사를 맡어 건설된 대흥성(大興城)이 모태가 되었다. 도시는 남북 약 7 km, 동서 약 7 km의 규모로 중앙 주작대로를 중심로 양쪽에 시장과 54방씩을 두었었다. 후대 도시건설의 모범이 되었으며 신라의 경주, 발해 상경, 일본 교토가 장안을 모방하여 건설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수당시대 장안성>

당 대명궁(大明宮) 유적

대명궁(大明宮)은 당고종 때(662년) 처음 지어져 220년 동안 당나라 황궁으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당나라 초기에는 장안성 안에 있는 수나라 때 정궁으로 지은 태극궁을 사용했으나 습하고 벌레가 많아 이궁(離宮)으로 건설되었는데 당 고종 때 대대적을 수리하면서 정궁이 되었다. 대명궁은 궁궐배치의 기준이 되는 <주례고공기(周禮考工記)>의 원칙을 제대로 따르고 있다. ’3문3조(三門三朝)’의 원칙에 따라 황실가족의 생활공간인 내조(內朝), 집무공간인 중조(中朝), 신하들이 집무공간인 외조(外朝)가 담장으로 분리되어 독립된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당나라 말 황소의 난(875 ~ 884년) 이후 지방 병마절도사들의 반란으로 파괴된 후 황궁의 기능을 상실했다.

OLYMPUS DIGITAL CAMERA<당 대명궁 유적>

OLYMPUS DIGITAL CAMERA<대명궁 정전인 함원전 모형>

OLYMPUS DIGITAL CAMERA<대명궁 한림원터에서 출토된 벽돌들>

당나라 황릉(皇陵)

장안 북서쪽에는 18곳의 당왕조 황릉(皇陵)들이 있다. 황릉들은 위수(渭水) 북쪽 강둑을 따라 평지나 구릉에 배치되어 있다. 황릉은 대부분 산으로 큰 규모의 산으로 만들어지며 세계적으로 큰 규모를 하고 있다. 흉노의 공격이 예상되는 경로에 황릉을 배치한 한(漢)왕조 황릉의 사례를 따르고 있는 듯 하다.

OLYMPUS DIGITAL CAMERA <측천무후 순릉 앞에 있던 사자상(順陵石走獅, 복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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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의남장사녀도벽화(紅衣男裝仕女圖壁畵), 당. 시인시 정순황후(貞順皇后) 경릉(敬陵) 출토>

비림(碑林), 고대 중국의 비석을 모아 전시한 곳

비림(碑林)은 고대 중국의 비석을 모아 전시한 곳으로 송나라 때(1087년) 처음 조성되었다. 당나라 말 혼란기에 중요한 비석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문묘에 집중시켰으며 북송 때(1087년) 유교 주요 경전을 새긴 개성석경비(开成石经碑)을 보관하기 위한 건물을 세우면서 시작되었다. 비림에 있는 비석들을 시대 순서가 완전하고 각종 서법의 모범이 되었던 중요한 비석들을 두루 갖추고 있으며 동시에 고대 문헌들을 살펴볼 수 있는 도서관 성격을 갖는 곳이기도 하다.

OLYMPUS DIGITAL CAMERA<문묘(文廟)의 모습이 남아 있는 비림>

비림박물관에서 가장 잘 알려져 있으며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石臺孝經)이다. 당 현종이 효경에 주석을 달고 글과 글씨를 쓴 것으로 745년에 세워졌다. 비석은 4면으로 되어 있으며, 머리에는 용과 구름이 조각되어 있으며, 3층 석재 기단 위에 세워져 있다. 북송 철종 때(1087년)에 문묘였던 이곳에 옮겨왔다. 비림에 있는 많은 비석 중 비교적 이른 시기에 수집된 것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비림(碑林)”이라 적힌 현판이 있는 정자와 석대효경>

개성석경(開成石經)은 사회규범의 기본이 되었던 유가 경전을 돌로 새겨놓은 것이다. 당나라 문종 때(837) 전해오던 여러 유가 경전을 모아 돌에 새겨 여러 경전들의 착오를 바로잡는 표준이 되게 하였다. 북송 철종 때(1087) 여러곳에 흩어져 있던 석경들을 다시 모아 문묘(文廟)였던 이곳에 옮겨 놓았다. 당대에 <논어>을 비롯하여 12경이 새겨졌으며 청나라 강희제 때 <맹자>가 추가로 새겨 13경이 완성되었다. 비석이 처음 새겨진 연대가 당나라 문종 때여서 그 연호(開成)를 따라 개성석경이라 부른다.

OLYMPUS DIGITAL CAMERA<개성석경을 모아 놓은 제1전시실>

OLYMPUS DIGITAL CAMERA<명필 구양순이 글씨를 쓴 황보탄비>

OLYMPUS DIGITAL CAMERA<명필 안진경이 쓴 다보탑감응비>

OLYMPUS DIGITAL CAMERA<사마방잔비(司馬芳殘碑), 서진>

OLYMPUS DIGITAL CAMERA<회소초서천자문(懷素草書千字文), 명 1470년, 회소 글씨>

당나라 장안의 불교 사찰

수당(隋唐)시대 수도 장안에는 수많은 사찰들이 있었다. 또한 많은 사상적으로 다른 다양한 종파가 당대(唐代)에 생겼으며 주요 종파의 근본도량을 장안 도심에 두고 있었다. 당대 불교 6개 종파와 근본도량으로 법상종(法相宗) 대자은사(大慈恩寺), 진언종(眞言宗, 밀종) 대흥선사(大興善寺), 율종(律宗) 정업사(淨業寺), 화엄종(華嚴宗) 천복사(薦福寺), 법성종(法性宗) 초당사(草堂寺), 정토종(淨土宗) 향적사(香積寺)가 있다. 의상, 혜초 등 한반도 불교 역사를 이끌었든 승려들이 젊은시절 유학했던 곳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장안불교육대조정(長安佛敎六大祖庭)>

OLYMPUS DIGITAL CAMERA<패엽경(貝葉經, 복제품), 현장법사가 인도에서 가져온 불경>

대자은사(大慈恩寺)와 대안탑(大雁塔)

대자은사(大慈恩寺)는 당고종이 어머니 문덕황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창건되었다. 현장법사가 인도에서 가져온 불경과 불상 등을 보관하기 위해 대안탑(大雁塔, Wild Goose Pagoda)을 세웠으며, 이곳에서 신라 승려 원측을 비롯하여 많은 제자들과 함께 많은 불경들을 한문으로 번역하였다. 현장의 제자 규기(窺基)가 법통을 이어받으면서 법상종(法相宗) 중심 사찰이 되었다. 당나라 장안에서  으뜸이 되었던 사찰로 대명궁에서 남쪽을 7 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자은사 입구 현장법사 동상>

OLYMPUS DIGITAL CAMERA<대자은사 대웅보전과 대안탑>

대안탑(大雁塔, Wild Goose Pagoda)은 당고종 때인 652년 현장법사가 실크로드를 통해 인도에서가져온 불경을 비롯한 유물을 보존하기 위해 세워졌다. 처음에는 5층으로 지어졌으나 측천무후(則天武后) 때 무너진것을 수리하면서 10층으로 증축하였으며, 명나라 때 지진으로 손상된 것을 수리하면서 현재와 같이 7층으로 바뀌었다. 1959년에 현재의 모습을 수리되었다. 오랜 세월 동안 장안(長安)의 랜드마크가 되었던 유서깊은 탑으로 통일신라 경주 황룡사 구층목탑, 일본 헤이안시대 교토 도지(東寺) 오층목탑과 함께 동시대를 대표하는 탑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자은사 대안탑>

천복사(荐福寺)와 소안탑(小雁塔), 당나라 장안 화엄종 중심 사찰

천복사(薦福寺, Jianfu Temple)는 당나라 장안 6대 종파 중 화엄종 근본도량이었다. 당나라 황실을 후원을 받았던 중요 사찰로 중요한 불교 의식들이 거행되었으며 국내외에서 많은 승려들이 불교연구를 위해 모여 들었다. 번경원에서는 많은 불교경전들이 이곳에서 번역되었으며 당나라 장안에서 불경을 번역했던 사찰 중 3번째로 손꼽혔던 중하한 사찰이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천복사 전경>

종루에는 금나라 때(1192년) 때 만든 높이 3.35 m의 철종이 있었다. 소안탑과 함께 새벽에 울리는 종소리를 안탑신종(雁塔晨鐘)이라 하여 관중팔경 중 하나로 손꼽이는 명승이었다. 지금은 복제품이 종루 앞에 세워져 많은 관람객들이 찾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 <종루 옆 마당에 있는 금나라 철종(복제품)>

소안탑(小雁塔, The small wild goose Pogoda)은 당나라 때 (707년) 처음 세워졌으며 천복사탑(薦福寺塔)이라 불렸는데 천복사가 화엄종 중심 사찰이었기 때문에 화엄탑(華嚴塔)으로도 불렸다. 벽돌로 쌓은 15층 전탑(塼塔)이었는데 여러차례 지진으로 손상되어 여러 차례 중수되었으며 1965년 옛방식으로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당나라 전탑(塼塔)의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으며 동시대를 대표하는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천복사 소안탑>

대흥선사(大興善寺), 당나라 밀종(密宗)의 중심 사찰

대흥선사(大興善寺)는 서진(西晉) 때(266년) 준선사(遵善寺)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으며 당나라 때 인도 승려 선무외(善無畏), 금강지(金剛智), 불공(不空)이 인도에서 밀교들 들여와 이곳에서 제자를 양성하며 많은 밀교경전을 번역하였다. 당나라 불교 6대 종파 중 밀종(密宗)의 총본산으로 여겨지며 많은 불경이 번역되어 대자은사, 천복사와 함께 당나라 장안의 삼대역경장(三大譯經場)으로 불렸다.

OLYMPUS DIGITAL CAMERA<대흥선사 전경>

OLYMPUS DIGITAL CAMERA<사찰 입구에 있는 밀교의 대표적인 상징인 금강저(金剛杵)>

당나라 도교(道敎)

당나라 황제들을 자신의 지위를 신성시하기 위해 도교의 신으로 받들어지는 자신들과 성씨가 같은 노자(老子) 이이(李耳)를 자신들의 조상으로 여겼으며, 후기에는 도교와 연금술을 크게 숭상했다. 대명궁 북쪽에 있는 황실정원 태액지(太液池)에는 작은 섬을 두어 신선이 사는 봉래산을 구현했으며 연못 북쪽에 황실 도교사원 등이 있었다. 비림박물관에 있는 당경운종은 황실 도교 관청인 경룡관(景龍觀)에서 만들어 ‘경룡관종’으로 불렸다.

OLYMPUS DIGITAL CAMERA<당대명궁 후원 태액지.>

OLYMPUS DIGITAL CAMERA<당 경운종(景雲鐘)>

OLYMPUS DIGITAL CAMERA<노군상(老君像), 시안 비림박물관>

실크로드를 통한 서역과의 교류

실크로드의 출발점이자 동서양 문화교류의 중심지였던 장안(長安)에는 당시 서역과의 교류를 보여주는 유적들과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 중국산 비단, 차, 종이 등이 서역으로 나갈때 이에 비례하여 다량의 교역품들이 장안으로 들어왔다. 수당(隋唐)시대 문화는 문화의 융합과 무역으로 크게 번성할 수 있었다. 이슬람사원인 대청진사(西安大淸眞寺)와 주변 회족거리에서 서역과 교류했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비림박물관 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秦景敎流行中國碑, The Nestorian Stele)는 당나라 때 기독교가 전래되어 활동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삼채재악낙타용(三彩載樂酪駝俑), 당, 시안시 출토, 섬서역사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秦景敎流行中國碑, The Nestorian Stele)>

대청진사(西安大淸眞寺, The Great Mosque of Xi’an)

시안 중심부 종루(鐘樓)와 고루(鼓樓)를 지나 회족거리에 들어서면 중국에서  회교사원인 대청진사(西安大清真寺)를 볼 수 있다. 당현종 때(742년) 처음 세워졌으며, 송,원,명,청대에 여러차례 중수를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명나라 초에 중건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데  중국적인 모습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이슬람사원(Mosque)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청진사 선례루>

OLYMPUS DIGITAL CAMERA<예배대전>

 시안 성벽(西安 城墻)

시안 성벽(西安 城墻)은 도심을 둘러싸고 있는 도성(都城)이다. 수(隋) 때 현재의 위치에 도성을 처음 쌓았으며 당나라 말 대부분 파괴되었다. 현재의 성곽은 명(明) 때 주원장 둘째 아들이 진왕으로 봉해지면서 다시 쌓았는 당나라 황성 터의 성을 연장하여 다시 쌓았으며 그 후 여러차례 수리과정을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구운벽돌로 성벽을 쌓은 것으로 명.청대 중국 도성(都城)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명.청대 중국 도성의 형식을 잘 보여주는 시안 성벽>

전체 둘레 13.74 km로 남북으로 2.6 km, 동서로 3.5 km 정도의 직사각형을 하고 있다. 성벽은 높이이 12 m 정도이며, 상부 너비 12 ~ 14 m이다. 성벽 바깥에는 땅을 파서 만든 호성하(护城河,해자), 성벽 위에는 갑루, 전루, 성루 등의 누각과 여인장, 타구 등의 방어시설을 두고 있다. 동.서.남.북 4개의 성문인 장락문, 안정문, 영녕문, 안원문을 비롯하여 18곳의 성문을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남문에 해당하는 영녕문>

OLYMPUS DIGITAL CAMERA<갑루와 옹성>

OLYMPUS DIGITAL CAMERA<영녕문에서 동쪽 건국문으로 이어지는 해자>

OLYMPUS DIGITAL CAMERA<치성과 적루>

OLYMPUS DIGITAL CAMERA<마차 2대가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넓은 성벽 상부>

시안 종루(钟楼)는 명나라 때(1384년)에 처음 세워졌다. 건물은 높이 40 m 정도 이며, 성문 형식의 벽돌로 지은 정사각형 기단 위에 3층 목조건축물이 세워져 있다. 남문인 영녕문 안쪽으로 600 m 정도 떨어진 도심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서쪽으로 260 m 정도 떨어진 곳에 고루가 있다. 현재 중국에 남아 있는 종루 중에서 가장 큰 규모이다. 당나라 때 만들어진 경운종(景雲鐘, Jingyun Bell) 등이 걸려 있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시안 종루>

시안 도심 회족거리라 불리는 옛 시장 입구에 위치하고 있는 고루(鼓樓)이다. 건물은 성문 형식의 기단 위에 3층 누각을 올려 놓은 형태로 명나라 초기인 1380년에 처음 세워졌다. 저녁에 북을 쳐서 하루가 끝났음을 알려주는 곳으로 시안 시민들이 북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높은 건물로 세워 졌다.

OLYMPUS DIGITAL CAMERA<시안 고루>

섬서역사박물관(陕西历史博物馆)

섬서역사박물관은 1,100년 동안 고대 중국 왕조의 수도였던 역사적 배경으로 많은 문화유산들을 소장하고 있다. 박물관은 170만 여점에 이르는 많은 유물들을 소장하고 있으며 그중 시대와 문화를 대표하는 유물 3,000여 점이 전시되고 있다. 제1전시실은 선사시대 이래 주(周), 전국시대, 중국을 통일한 진나라 유물들을, 제2전시실은 동.서양 교류를 통해 통일된 중국문화를 정립한 한(漢), 남.북조시대 유물들을, 제3전시실은 남.북조 혼란기를 마감하고 화려하면서 국제적인 성격을 보여주는 수.당대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섬서역사박물관 정문>

OLYMPUS DIGITAL CAMERA<본관 로비에 특별전시 중인 서한류금동마(西漢鎏金銅馬), 한, 싱핑(兴平)시 무릉(茂陵) 출토>

OLYMPUS DIGITAL CAMERA<리방준(盠方尊), 서주, 바오지(宝鸡)시 출토 >

OLYMPUS DIGITAL CAMERA<금괴수(金怪獸), 전국 ~ 서한, 선무(神木)시 출토>

OLYMPUS DIGITAL CAMERA<석가불조상(釋迦佛造像), 북위, 수집>

OLYMPUS DIGITAL CAMERA<류금철심동룡(鎏金鐵芯銅龍), 당, 시안시 출토>

OLYMPUS DIGITAL CAMERA<삼채삼화마(三彩三花馬), 당, 셴양시 출토>

<출처>

  1. 안내문, 섬서역사박물관, 2019년
  2. 위키백과, 2020년
  3. 百度百科, 202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