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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특별전, 대고려] 고려 청자

한국에서 도자기는 대체로 9세기 말에서 10세기 초에 시작되었다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통일신라때 중국 청자와 백자가 실생활에 사용될 정도로 수요가 많아지면서 국내생산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초기에는 수도 개경 부근에서 중국 월주요 청자의 영향을 받은 자기를 생산되었으며 11세기에는 전남 강진과 전북 부안이 청자의 중심 제작지가 되었으며, 완성도 높은 청자를 생산하게 되었다. 12세기 전반에 이르면 고려청자는 아름다운 비취색과 다양한 장식기법으로 세련된 모습을 갖추게 된다.

비색청자, 붉은 흙이 푸른 옥으로 탄생하다
청자는 중국 사람들이 귀하게 여긴 푸른 옥과 색이 비슷할 뿐만 아니라 표면의 매끄러운 촉감도 유사합니다. 이러한 촉감은 청자에 덧씌운 유약덕분인데, 이 유약이 그릇의 ‘색’을 표현하는 데도 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청자의 색은 유약층 아래의 흙이 우리 눈에 어떻게 보이는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청자의 색은 엷은 녹색부터 연한 푸른색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한데, 이 중 고려청자의 비색(翡色)은 어떤 색에 가까울까요?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청자 모란 동자무늬 완, 고려 12세기, 영국 피츠윌리엄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청자 꽃잎모양 접시, 고려 12세기, 개성부근 출토, 청자 접시, 고려 12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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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 버드나무 학 연꽃무늬 매병, 고려 13세기, 영국 피츠윌리엄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청자 발, 고려 11~12세기, 일본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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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 주자와 받침, 고려 12세기, 영국 피츠윌리엄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청자 병, 고려 12세기, 영국 피츠윌리엄박물관>

청자, 붉은색으로 물들다.
태토 위에 산화동 안료로 무늬를 그린 후 유약을 입혀 구우면, 이 무늬는 붉은색으로 나타납니다. 제대로 굽지 않으면 색이 사라지거나 붉은색으로 변하지 않기 때문에 능숙한 기술이 필요합니다. 그래서인지 동화 기법을 쓸 때는 상감 기법으로 장식한 청자에 포인트를 주듯이 살짝 붉은색을 추가한 경우가 많습니다. 백상감으로 표현한 넝쿨무늬 위에 붉은색으로 넝쿨 무늬를 덧그린 그릇은 고려 청자 제작 기술과 디자인의 정점을 보여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청자 철백화 동채 국화무늬 기름병, 고려 13세기, 일본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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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 동채 모란무늬 긴목병, 고려 13세기, 일본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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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 동채 긴목병, 고려 13세기, 영국 빅토리아윌리엄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청자 동채 모란 넝쿨무늬완, 고려 13세기, 영국박물관>

청자, 금색을 입히다.
청자를 장식하는 기법은 더 이상 없을 것 같았으나, 고려인의 창의성은 ‘금’을 입히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고려의 궁궐터인 개성 만월대에서는 화금자기(畫金磁器)가 발견되었습니다. 과학적으로 조사한 결과 상감청자의 유약 위에 붓으로 금분을 장식한 다음 낮은 온도에서 소성하는 방법으로 제작되었음이 밝혀졌습 니다. 흰색과 검은색 외에 금색을 더하여 더욱 장식적이고 화려한 청자가 되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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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 금채 넝쿨무늬 접시, 고려, 개인소장>

OLYMPUS DIGITAL CAMERA<청자 용 봉황 모란무늬 합과 받침대, 고려 13세기, 국보 220호, 개인소장>

OLYMPUS DIGITAL CAMERA<청자 금채 봉황무늬받침대, 고려 13세기, 영국 빅토리아윌리엄박물관>

백상감, 푸른 청자에 흰색을 더하다.
반투명한 유약 아래에서 얕게 음각한 앵무새나 연꽃 등이 은은하게 보이던 고려청자는 상감 기법이 등장하면서 일대 전환을 맞이하였습니다. 흰색이나 검은색으로 표현하고 싶은 부분의 흙을 파낸 다음 그 안에 백토와 자토(赭土)를 넣어 구우면, 푸른 바탕에 흰색과 검은색의 무늬가 서로 조화를 이루게 됩니다. 흰 날개를 펼치고 푸른 하늘을 나는 학(鶴)의 표현은 백상감 기법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청자 국화 넝쿨무늬 발, 고려 12세기, 영국 피츠윌리엄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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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 모란무늬 항아리, 고려 13세기, 일본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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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 물가풍경무늬 판, 고려 13세기, 일본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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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판, 고려,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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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 구름 학무늬 매병, 고려 12세기, 영국 피츠윌리엄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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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 모란무늬 항아리, 고려 13세기, 일본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1년
  4. 위키백과, 2021년

 

[중앙박물관특별전, 대고려] 고려의 금속공예

금속공예는 금속을 재료로 실용성과 아름다움을 지닌 작품을 만드는 미술의 한 분야이다.  금속은 처음에는 지배 계층의 전유물로 실용품보다는 권위를 상징하는 물품으로 제작되었다. 중국 당나라와 통일 신라에서는 청동그릇 등 실용적인 금속공예품이 많아으며 국제적인 교류를 통해 더욱 다양하고 세련된 기형과 문양이 갖추어졌다. 고려시대에는 화려한 은제 공예품이 많이 만들어지는 한편, 민간에서 모두 청동 그릇을 썼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금속공예가 전성기를 이루었다. 불교에서는 향로, 촛대, 화병 등 금속 공양구를 사용하였는데 아름다우면서도 사용에 편리한 공예기법을 완성시켰다.

고려의 찬란한 기술과 디자인
고려의 수도 개경은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신도시로, 무엇이든 시도해 볼 수 있는 개방적인 공간이었습니다. 또한 예로부터 한반도에 다양한 문화를 전한 중국과 지리적으로도 가까웠습니다. 한 국가의 중심 도시가 되자, 당의 수도 장안이 그랬듯이 주변 국가의 물산이 개경으로 모여들었습니다 고려는 외국인에게 포용적이었습니다. 고려를 침입했던 요(遼)나라 포로 가운데 정교한 솜씨를 가진 사람을 개경으로 데려와 공예품을 제작하게 하였습니다. 이처럼 고려는 외부에서 전해진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여 고려만의 문화로 만들어 나갔습니다. 고려를 대표할 만한 공예품인 나전칠기나 청자는 중국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고려는 송나라에 나전으로 만든 벼룻집 등을 선물할 정도로 기술을 발전시켰습니다. 서긍이 극찬했던 것처럼 고려의 나전칠기는 높은 수준의 기술과 섬세함으로 종주국인 중국에서도 이름이 높았습니다. 도자기 또한 청자 제작에 집중하여 아름다운 비색을 탄생 시켰으며 흰색, 붉은색, 금색 등을 더해 다양한 청자를 만들었습니다. 고려의 공예품은 기술적으로도 뛰어났지만, 재료가 가진 색을 다채롭게 표현함으로써 시각적인 쾌감도 선사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금동대세지보살좌상, 고려 14세기, 금동, 보물 1047호, 호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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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으로 된 장신구,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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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으로된 장신구, 고려>

OLYMPUS DIGITAL CAMERA<금동 여지무늬 허리띠 장식, 고려, 금동, 개인소장>

금속공예 기법의 정점, 타출 기법
고려인의 뛰어난 기술력은 청자뿐 아니라 금속 공예에서도 발견됩니다. 타출 기법은 금속판의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정을 두드려 마치 부조(浮彫)처럼 무늬가 튀어나오도록 한 장식 기법입니다. 고려 금속공예품 중에는 은으로 표주박 모양 병이다. 장도집을 만든 후 무늬를 매우 도드라지게 표현하여, 장식성을 한껏 드러낸 것이 있습니다. 다시 표면에 금을 도금한 병이나 장도집은 고려 금속공예품의 화려함을 잘 보여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은제 금도금 칼집, 고려, 은에 금도금>

OLYMPUS DIGITAL CAMERA<은제 금도금 표주박 모양 병, 은제 금도금 고리, 고려, 은에 금도금>

표주박 모양 병은 중국의 오대(五代) 이후 북방지역에서 11세기에 유행하였고, 고려에서도 제작하였다. 이 병은 고려시대 표형병 중에서 무늬와 형태가 가장 아름다운 작품이다. 돋을새김한 위에 선각으로 세부를 표현하고 무늬 주변의 여백을 어자문(魚子文)으로 다시 눌러주어 입체감이 뛰어나다.

OLYMPUS DIGITAL CAMERA<은제 금도금 표주박모양병, 은제 금도금 고리, 고려, 은에 금도금>

OLYMPUS DIGITAL CAMERA<은제 금도금 표주박 모양 병과 고리, 고려, 개성부근 출토, 은에 금도금>

안동 태사묘 소장 허리띠
태사묘(太師廟)는 태조 왕건이 후백제의 견훤(867~936)을 물리칠 때 큰 공적을 세웠던 김선평(金宣平), 권행(權幸), 장정필(張貞弼) 등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세 인물은 공로를 인정받아 각각 개국공신과 태사(太師, 왕의 스승)란 칭호를 받았고, 이 지역은 ‘널리 동쪽을 편안하게 했다는 의미의 안동(安東)이란 지명을 갖게 되었다. 금동 재질의 <여지무늬 허리띠>는 태사의 유물로 전하며, 〈모란무늬 허리띠>와 동으로 된 <여지무늬 허리띠>는 공민왕이 하사했다고 전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여지무늬 허리띠 장식, 금동, 보물 451호, 안동 태사묘>

OLYMPUS DIGITAL CAMERA<여지무늬 허리띠 장식, 금동, 보물 451호, 안동 태사묘>

OLYMPUS DIGITAL CAMERA<모란무늬 허리띠, 금동, 보물 451호, 안동 태사묘>

OLYMPUS DIGITAL CAMERA<여지무늬 허리띠, 청동, 보물 451호, 안동 태사묘>

OLYMPUS DIGITAL CAMERA<’복녕궁방고’가 쓰인 은제 꽃 모양 접시, 고려, 개성부근 출토, 은>

OLYMPUS DIGITAL CAMERA<은제 꽃 새무늬 팔찌, 고려, 은, 은제 허리띠 장식, 고려, 은>

OLYMPUS DIGITAL CAMERA<은제 꽃 모양 잔, 고려, 은, 청자 풀꽃무늬 잔, 고려 12세기, 개성 부근>

은은 잘 펴지고 잘 늘어나면서도 금보다 단단하여 실용적이며, 향균과 방부(防腐)의 속성이 있다. 은입사(銀入絲)는 금속 표면에 홈을 파고 은실을 넣어 무늬를 표현하는 금속공예 기법이다. 동이나 철 등 다른 금속 바탕과 화려한 은색이 대비를 이루는 독특한 장식 효과를 낸다.

청동과 은의 만남, 금색과 은색의 조화
청자만 다채로운 색으로 장식된 것은 아닙니다. 금과은, 청동과 은이 만나 금색과 은색의 조화를 보여줍니다. 고려시대 성행한 입사(入絲)는 청동에 은선을 넣어 장식하는 기법입니다. 금색과 은색이 대비되기 때문에 디자인적인 효과는 부분 금도금과 유사합니다. 색상의 대비를 보여주는 금속공예품에서 고려미술의 다채로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청동 은입사 봉황무늬 합, 고려 청동에 은입사, 국보 171호, 삼성미술관>

OLYMPUS DIGITAL CAMERA<표충사 청동 은입사 향완, 고려 1177년, 청동에 은입사, 국보 75호, 표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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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 은입사 물가풍경무늬 정병, 고려 12세기, 청동에 은입사, 국보 92호>

세계 최초 금속 활자
인류의 지혜를 직접 필사하던 것을 목판에 새기게 되면서 많은 책을 쉽게 찍어 낼 수 있었습니다. 지식과 사상이 날로 발전하고 다양한 시작이 필요해지자 움직이는 글자인 활자가 사용되었습니다. 나무에 새긴 목판으로 한 종류의 책만 찍어낼 수 있다면, 낱개 글자로 되어 있는 활자를 다양하게 조합하면 여러 종류의 책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고려 사람들은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했습니다. 금속을 녹여 활자를 만든다는 아이디어는 놀라운 창안이자 새로운 인쇄술이었습니다, 아마도 무수한 실험과 기술적 시도를 거쳐 이루어냈을 것입니다. 개경의 무덤에서 나왔다고 전하는 ‘復(복)’ 활자는 고려가 금속활자의 최초 발명국이란 점을 보여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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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금속활자 ‘복(㠅)’, 고려, 전 개성 출토, 청동>

고려시대 무덤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하는 이 금속활자는 남한에 남아 있는 거의 유일한 고려시대 활자이다. ‘㠅(산덮을 복)’은 잘 쓰지 않는 글자로 일반 사전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다. 활자의 높이가 일정하지 않으며 사면의 길이도 각각 다르다. 뒷면은 원형으로 오목하게 들어간 형태이다. 이런 형태는 조신시대 활자와 구분되는 고려 활자의 특징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고려시대 활자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고려시대 인쇄술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자, 고려가 금속활자의 발명국 임을 입증하는 실물로서 의의가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한글 금속활자, 조선 1461년 이전, 청동>

현재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조선 전기의 한글 금속활자이다. 강희안(1417~1464) 쓴 글씨를 글자본으로 1455년(세조 1) 을해년에 만든 한자 활자인 을해자(乙亥字)와 함께 쓰여서 을해자용 한글활자라고도 한다. 1461년에 <능엄경>을 한글로 풀이해 간행한 <능엄경언해> 인쇄에 사용하였다. 이 활자는 조선 후기 활자와 글자체나 모양이 달라서 조선시대 인쇄술의 변화를 밝히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고려의 발전된 인쇄술이 있었기에 조선 전기부터 활자를 이용한 다양한 서적 간행이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21년
  4. 위키백과, 2021년

 

 

 

[중앙박물관특별전, 대고려] 지식인의 문학과 예술

고려말 원나라 간섭기에 성리학은 원나라에서 왕을 모시면서 오랜 기간 머물렀던 관료이자 학자인 안향.백이정 등이 관련 서적을 국내에 소개하였다. 또한 충선왕과 함께 원나라에 간 이제현이 중국의 성리학자들과 학문적이 교류를 하면서 많은 학문적인 깊이를 더했다고 한다. 당시 초강대국이었던 원(元)을 중심으로 많은 교류가 있었기 때문 고려말에는 많은 학문적.기술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지식인의 문학과 예술
불교가 고려인들의 삶과 정신세계의 바탕이 되는 종교이자 사상이었다면, 유교는 고려 건국 초부터 국가 운영의 이념으로 채택되었습니다. 유교 체제를 기반으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제도와 과거제가 마련되어, 새로운 지식계층인 문사층(文士層)이 출현하게 되었습니다. 고려의 지식인은 유교적 교양을 갖추었으며 관료적 질서 속에서 고려 사회를 이끌어나갔습니다. 유학과 문학에 능력을 갖춘 새로운 지식인은 문장을 짓고 그것을 글로 써 서예라는 예술로 변모시켰습니다. 그들은 시와 서예, 회화에 능했을 뿐만 아니라 문방구, 공예품을 감상하는 고급 취향과 감식안을 지녔습니다. 예술품을 애호하고 완상하는 안목은 문인의 교양이 되었습니다. 유교적 관료제도 속에서 새롭게 등장한 지식인은 사상의 지평을 넓혀 다채로운 문화를 만들어냈고, 다양한 미적 기준과 취향을 마련하여 고려 미술을 새로운 차원으로 높였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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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향초상, 전 이불해, 조선 16세기 중엽, 비단에 채색, 국보 111호, 소수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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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 초상, 얼굴 부분>

안향(安廟, 1243~1306)은 고려에 최초로 주자성리학을 전파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제현(1287-1367)과 같은 제자를 육성함으로써 고려 말 신진사대부 대두의 기초를 닦았던 인물이다. 고려시대 안향의 초상은 1318년 원나라 화가가 그려 문묘(文廟)에 봉안한 문묘본과, 이를 저본(底本)으로 하여 안향의 고향 흥주(興州, 지금 영주시 순흥읍 일대)에 이모한 흥주향교본(興川鄕校本)이 있었다. 이 작품은 1559년 이불해(李不害, 1529~ )가 흥주향교본을 모사한 모본으로 보인다. 화폭 상단에는 안향의 진영이라는 화제(畵題)와 함께 안향의 아들 안우기(1265~1329)가 쓴 찬문이 활달한 행서체로 옮겨져 있다. 대학자로서의 경륜과 인자한 덕성을 드러내면서도 단아한 체구와 당당한 자세를 더욱 강조하여, 이제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갈 신진사대부의 등장을 선언하고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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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 초상, 작가미상, 조선 18세기, 비단에 채색, 보물 1215호>

이색(李穡, 1328~1396)이 이 오사모(烏紗帽)와 당홍색 단령(團領)을 착용하고 서대(犀帶)를 한 반신상이다. 이색은 이제현(1287~1367)의 문인으로 1343년 원나라 국자감의 생원이 되어 성리학을 연구했다. 이 초상은 필선 위주로 얼굴을 표현하고 선염이 거의 없는 고식이다. 사모 높이가 평탄하고 좁고 긴 양각이 아래로 처져 있으며 단령의 깃이 좁은 여말선초의 상복(常服) 차림을 보여준다. 이사의 초상은 여러 차례 이모되었는데 여말선초의 초상화법과 양식을 보여주는 점에서 가치를 지닌다. 족자 장황의 뒷면 하단에는 다음과 같은 화기가 적혀있다.
“마전영당(마전은 지금의 경기도 연천군 안에 있던 고을이름)의 구본을 기묘년 3월에 다시 꾸민다. 옛 족자에 후학 허신이 쓴 찬문이 있다. 화백 최근배에게 부탁하여 이 본을 따라 정성것 3본을 그려 덕산 누산, 장단의 오이릉, 평산의 영귀사에 각각 봉안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육마도권(六馬圖卷), 작가미상, 오른쪽 반 금 12세기말 ~ 13세기초, 비단에 채색, 미국 메트로 폴리탄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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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마도권 중 가운데 부분>

OLYMPUS DIGITAL CAMERA<육마도권(六馬圖卷), 작가미상,왼쪽 반 원 14세기, 비단에 채색, 미국 메트로 폴리탄박물관>

당나라 떄 준마는 고상하고 용맹한 귀족의 정신과 세상의 물질적 번영으 상징하는 것으로 간주하여 말그림이 크게 발전하였다. 이떄의 말그림은 호건, 호괴의 엽기도(獵騎圖) 계열과 위언, 조패, 한간의 유기준마도(遺騎駿馬圖)계열로 크게 구분되는데, 모두 힘차고 사실적이었다. 이외에 충직한 신하와 이를 알아보는 안목이 있는 통치자를 표상하게 된 목마도(牧馬圖)가 있었다. 송나라 이공린(1049추정 ~ 1106)은 이를 백묘(白描) 위주의 다소 사의적인 양식으로 발전시키기도 하였다. 원대에는 다양한 말그림 전통이 부활하여 크게 유행하였는데, 이 그림은 이를 잘 보여준다. 화면 상단부에 실루엣으로 묘사된 언덕을 배경으로 매사냥을 나온 4명의 응사(鷹師)와 그들이 데려온 말이 버드나무 주위에 모여 있다. 화폭 끝부분에는 버드나무에 2마리 말이 매어있다. 오른편 그림은, 모두 인물과 말의 사실적인 세부 표현과 짙은 채색 음영법으로 보아, 북방 사실주의 전통에 익숙했던 하게 된 금나라 직업화가의 그림으로 여겨진다. 왼편에 그려진 3마리 말은 채색과 음영이 도식적이고 인물이 사의적인 안장도 없이 말에 올라탄 모습, 인물이 쓴 전립(戰笠)의 형태 등을 감안할 때 원대 14세기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그림은 조맹부(趙孟顯, 1254~1322)와 이제현李齊賢(1287~1367)과 같은 14세기 동아시아 서화가들에게 계승된 북방 사실주의 회화전통의 실체와 그 영향을 여실히 보여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고려시대 회화작품의 현재 거의 남아 있지 않으며 공민왕과 이제현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그림 몇점이 전해오고 있다. 원(元)과 교류가 많았던 당시 고려사회를 반영하여 당시 유행했던 사실주의인 화풍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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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도(獵騎圖), 전 공민왕, 고려 14세기(추정), 비단에 채색>

‘눈 쌓인 들판을 배경으로 말달리는 두 명의 호인은 털로 감싸고 깃털을 ‘꽂은 고깔모자와 털옷을 입었으며, 동개 일습을 갖추고 수렵에 나서고 있다. 언덕의 가장자리에 무수한 점을 찍고 먹으로 옅게 선염하여 공간감을 나타냈으며, 마른 나뭇가지는 해조묘(蟹爪描)에 가깝게 표현 하였다. ‘고려공민왕’이라는 묵서가 있으며 〈출렵도(出獵圖)>와 함께 〈천산 대렵도天山大獵圖〉로 지칭되어 왔다. 원래 하나의 두루마리에서 분리된 편화 가운데 하나일 가능성이 크다. 필법이 생동감 넘치 면서도 섬세하여 고려 후기 감상화의 높은 수준을 엿볼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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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렵도(出獵圖), 전 공민왕, 고려 14세기(추정), 비단에 채색>

겨울 산기슭을 말달리는 호인을 그렸다. 평행한 사선을 중첩하여 산이 경사를 나타내었고, 위쪽은 휘게 남겨 눈을 표현하고 아래쪽은 석록과 석청으로 채색했다. 이는 고식 청록산수의 수법으로 작품의 연대를 고려시대로 추정하는 근거가 된다. 인물과 말의묘사와 진행방향, 배경을 묘사한 수법이 <엽기도>와 일치한다. 화풍과 내용이 유사한 <음산대렵도(陰山大獵圖)>는 원래 낭선군 이우(1637~1693)의 소장품이었으며, 낭선군 사후 여러 조각으로 흩어졌다고 한다. 이 기록에 따르면 <엽기도> 및 <출렵도>, <음산대렵도>가 원래 하나의 그림에서 분리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OLYMPUS DIGITAL CAMERA <근역서휘(槿域書彙) 중 이제현과 안양의 글, 고려 14세기, 종이에 먹>

OLYMPUS DIGITAL CAMERA<근역서휘(槿域書彙) 중 이색과 이집의 글, 고려 14세기, 종이에 먹>

근역서휘는 근대 서예가이자 수장가인 오세창(1864~1953)이 엮은 서첩이다. 안향과 이제현을 비롯하여 고려시대 유묵이 여러점 포함되어 있다. 특히 익재 이제현의 글은 송도팔경 중 박연폭포의 웅장함과 청량감을 노래한 시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동인지문오칠(東人之文五七) 권7~9, 고려 14세기, 종이에 인쇄, 보물 1089호, 삼성출판박물관>

고려 후기의 문신이었던 졸옹 최해(1288 ~ 1340)가 엮은 시선집으로, 권7 권9가 수록된 1책만 남아 있다. 신라 말 최치원부터 고려 충렬왕 때까지 명현의 저술을 엮어 ‘<동인지문(東人之文)>이라 하고, 시와 문장, 변려문을 엮은 것을 각각 <오칠(五七)>, <천백(千百)>, <사륙(四六)>이라 하였다고 한다. 고려 문인들이 즐겼던 시문의 경향을 파악할 수 있어서 한문학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기마도강도(騎馬渡江圖), 전 이제현, 고려 14세기 전반, 비단에 채색>

눈 덮힌 바위산을 배경으로 얼어붙은 강을 건너고 있는 말과 호복입은 사냥꾼을 그렸다. 오른쪽 상단에 ‘익재’라는 글씨와 ‘이재현인’이라는 인장이 찍혀 있어서 그의 작품으로 전한다. 이제현은 원나라의 만권당에서 당대 최고의 문사들과 시문서화를 교유하며 원대문화를 수용했고, 이는 고려말 조선초 문예발전의 밑거름이 되었다. 조맹부의 <추교음마도>에 필적하는 국제적 양식의 뛰어난 작품으로, 만권당을 매개로 절정에 달했던 원나라와 고려 간 문예 교류의 일면을 볼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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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청자 동자 모양 연적, 고려 12세기, 일본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OLYMPUS DIGITAL CAMERA2. 청자 사자장식 베개, 고려 12세기, 일본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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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청자 거북이 모양 연적, 고려 12세기, 일본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1년
  4. 위키백과, 2021년

 

[중앙박물관특별전, 대고려] 고려의 차문화

고려시대에는 차를 마시는 문화가 넓게 퍼져 있었다. 불교가 중시되었던 고려사회에서는 술을 마시는 음주보다는 차를 마시는 것을 왕실.귀족.승려 등 지배계층에서 선호했다. 당시 차(茶)는 국내에서 재배할 수 없었기때문에 대부분 중국에서 수입되었으며 많이 비용이 수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런 차를 마시는 문화를 배경으로 우수한 품질의 다구(茶具)들이 제작되었으며 고려청자로 만들어진 화려한 유물들이 오늘날까지 전해오고 있다. 고려의 차문화는 조상에 대한 제사를 중시하는 유교문화와 함께 조선시대에는 크게 쇠퇴하였다. 반면에 19세기 메이지유신때까지 불교국가 형태가 유지되었던 일본은 차문화가 크게 발달하여 오늘날 일본문화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자리잡고있다.

다점(茶店), 차가 있는 공간
<수많은 사람이 오고 가는 사찰 앞, 마음을 잠시 내려두고, 차를 음미하면서 쉬어가는 건 어떠신가요.. 고려는 차를 마시고 즐기던 차의 나라였습니다. 왕실이 주관하는 의례와 행사에서는 차를 올리는 다례(茶禮)가 이루어졌고, 사찰에서는 수양의 하나로 차를 마셨습니다. 수도 개경에는 누구나 드나들며 차를 즐길 수 있는 다점(茶店_이 즐비했습니다. 고려 중기의 문인 임춘은 봄날 다점의 평상에 누워 낮잠을 자다 깨어난 기분을 시로 읊었습니다.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던 고려의 카페에서 차향을 맡으며, 여유를 즐겨보세요.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 고려시대 유물로 차를 준비하는 공간을 재현하고 있다.>

차를 갈다
고려시대 사람은 차를 끓여 마시기 위해 찻잎을 갈 때 주로 맷돌을 사용하였다. 이규보는 지인에게 찻잎 가는 맷돌을 선물로 받은 뒤 그 느낌을 시로 남기기도 하였다. 청자 사발과 방망이도 찻잎을 빻을 때 사용하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맷돌, 고려>

차를 담다
차를 담아 마셨던 완(碗)은 고려시대 사람들이 좋아하는 다구 중 하나였다. 고려 초기에 마신 차로는 다유와 다탕이 있었다. 다유는 잎차를 곱게 갈아 만든 차를 끓인 물에 넣고 휘젓거나 차 사발에 우려 거품을 일으켜 마시는 차로 흰색 거품이 잘 생긴다. 청자완이 다유를 마실때 쓰는 다완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차의 맛과 그릇이 주는 멋을 조화롭게 구사하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청자 잔과 뚜껑, 고려 충남 태안 대섬 인양, 청자 연판무늬 잔과 뚜껑, 고려, 충남 태안 다도 근해 인양>

OLYMPUS DIGITAL CAMERA<청주 연판무늬 완, 청자 완, 청자 구름 학무늬 완, 고려>

거품을 내다
청자 숟가락은 차를 덜어낼 때 사용하였고 은제 숟가락은 차를 우리는 과정에서 거품을 내는 용도로 쓰였다. 맷돌에 곱게 갈아서 만든 차를 탈때 은제 숟가락 손잡이 뒷쪽에 고리가 달려 있어 오늘날 우유거품처럼 다유를 휘저어 차 거품이 일어나게 만들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청자 항아리, 청자발과 방망이, 청자 철재 완, 은 숟가락, 청자 용무늬 숟가락, 고려>

OLYMPUS DIGITAL CAMERA<차를 마시는 공간을 재현한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청자 참외모양 병, 청자 받침대, 귀때발, 청자 국화무늬 잔과 받침, 청자 모란 넝쿨무늬 표주박모양 주자,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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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 모란 넝쿨무늬 타호, 청자 국화무늬 꽃 모양 잔과 잔받침, 청자 참외모양 주자, 청자 잔과 받침,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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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 의자,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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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 모란 넝쿨무늬 난간기둥,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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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 구름 학 모란무늬 장구, 고려 12세기>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1년
  3. 위키백과, 2021년

 

 

[중앙박물관특별전, 대고려] 지장보살과 시왕

지장보살은(地藏菩薩)은 사후세계라 할 수 있는 육도(六道)에서 중생을 구원한다는 보살이다. 육도란 지옥, 아귀, 축생, 수라, 하늘, 인간세상의 여섯가지 세상을 말한다. 지장보살은 지옥문을 지키고 있으면서 그곳으로 들어가는 중생을 구제한다고 하여 지장보살에 대한 신앙은 일찍부터 성행했다. 지장보살을 모신 지장전이나 명부전은 석가모니를 모신 대웅전과 함께 오늘날 사찰에서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불전이다.

신과 함께 지옥에서 구원으로
불교에서 보는 사후세계는 삶과 죽음이 단절되지 않고 이번 생이 다음 생과 연결됩니다. 사람이 죽으면 살아있을 때의 행위에 따라 지옥의 시왕(十王), 즉 열 명의 왕에게 차례로 심판과 형벌을 받게 됩니다. 죄를 지었다고 해도 뾰족한 칼날에 몸이 찔리고, 펄펄 끓는 가마솥에 떨어지는 고통을 영원히 받을 수는 없습니다. 지옥에 빠진 중생을 교화하고 구제하겠다는 서원(誓願)을 세운 지장보살을 통해, 고통에서 벗어나 극락 정토에 왕생하게 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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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보살도, 둔황 천불동, 오대 10세기, 비단에 채색, 영국박물관>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한다는 지장보살이 왼손에 화염보주를, 오른손에 석장을 들고 앉아있다. 문양 없는 녹황색의 가사와 대조적으로 두광과 신광은 화려하게 꾸몄다. 화면을 2단으로 구획하여 아래에는 꽃을 든 공양자를 그렸다. 지장보살은 일반적으로 머리를 삭발한 승려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이 작품처럼 두건을 쓴 지장보살은 둔황.투루판 등 중앙아시아 지역 불화와 중국 사천의 석굴, 고려불화에서 나타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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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보살도, 송 963년, 둔황 천불동, 비단에 채색, 영국박물관>

육도(六道, 윤회하여 태어나게 되는 여섯가지 세계)를 떠도는 중생을 구제하는 지장보살과 옆에서 그를 모시는 두 보살을 표현하였다. 전생의 업에 따라 윤회하는 육도는 천신.인간.아수라.동물.아귀.지옥을 의미한다. 지장보살 옆에 붉은 띠로 공간을 구획하고 각각의 세계를 작은 형상으로 표현하여 육도를 상징적으로 나타냈다. 지장보살의 왼쪽에는 천상도.축생도.지옥도를 각각 상징하는 보살, 소와 말, 갈퀴를 든 귄을 그렸다. 오른쪽에는 인간, 4개의 팔을 가진 아수라, 화염에 둘러싸인 아귀를 그려 인간도.아수라도.아귀도를 표현했다. 화면 하단에는 향과 꽃을 공양하는 남녀 공양자와 함께 명문이 남아 있다. 명문을 통해 북송 963년 강청노라는 둔황지역 사람이 가족과 친척이 평안하고 자신이 병에서 낫기를 바라며 제작했음을 알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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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장머리 장식, 고려, 금동, 호림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지옥의 모습을 설명한 경전, 불설예수시왕생칠경, 고려, 종이에 인쇄, 호림박물관>

이 두루마리는 합천 해인사에 소장된 <불설예수 시왕생칠경佛說預修十王生七經, 이하 시왕경)> 목판의 인쇄본이다. <시왕경>은 사십구재나 예수재(預修齋) 등의 천도 의식에 널리 사용된 경전으로, 지장시왕 신앙의 근거가 된다. 해인사에는 3종류의 <시왕경) 변상도 목판이 남아 있는데, 이 가운데 두 종류를 재구성하였다. 또한 시왕 중 제 6대왕과 제 7대왕은 서로 다른 판본을 섞어서 만든 것으로 보여 총 3가지의 판본을 사용하였음을 알수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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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시왕도, 고려 14세기, 비단에 채색, 보물 1048호, 호림박물관>

지장보살과 함께 범천과 제석천, 도명존자와 무독귀왕, 사천왕, 지장보살과 시왕을 한 폭에 그린 지장 사왕도이다. 죽은 자의 영혼을 이끄는 사자(使者)와 시왕을 도와 심판을 내리는 판관도 등장한다. 화면 상단에는 연화대좌에 왼발을 내리고 앉아 있는 지장보살을 크게 그렸고, 하단에는 권속을 배치하였다. 지장보살의 다양한 권속은 좌우로 나뉘어 서로 마주하는 구조로 배치되었다. 연화대좌 앞에는 사자를 그렸는데, 구체적인 등장 배경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둔황 출토 <환혼기(還魂記)> 에서 사자를 문수보살의 화신이라 언급한 내용이 있어 관련성을 추측해볼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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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보살도, 고려 14세기, 비단에 채색,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지옥 중생의 구제를 서원한 지장보실은 오른손으로는 석장을 왼손에는 암흑의 세상을 비추는 투명한 보주를 들고 있다. 왼쪽을 향해 가던 지장보살이 빠르게 움직이다 멈춰 선 때문인지 가슴의 영락 장식이 가렵게 흔들린다. 투명하고 부드러운 질감을 표현해내는 세련된 필선과 금니 문양이 아름답다. 붉은 군의에는 물방울 형태의 화문이 피어나고 모란과 잎이 어울린 끝단 분양은 자연스럽게 조합되었다. 가사에는 연화당초원분을 주문양으로 파도문을 시문했다. 구름 속에 날아오르는 봉황무늬에서도 율동감 있는 포치가 돋보인다. 훌륭한 성취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고려불화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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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보살삼존도, 고려 14세기, 비단에 채색, 보물 1287호, 개인소장>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좌우에 무독귀왕과 도명존자가 함께 있는 삼존도 형식의 지장보살도이다. 머리를 깎은 승려 모습의 지장보살은 바위에 컬터앉아 오른손으로 투명한 보주를 들고 있다. 지장보살이 입은 천의에는 연화당초무늬를 비롯한 다양한 문양이 금니로 화려하게 표현 되었다. 바위 앞에는 정면을 향하여 경전이 담긴 상자를 양손으로 받쳐 든 무독귀왕이 있고, 승려의 모습으로 나타난 도명존자는 고리가 여섯 개 달린 석장을 틀고 바위 뒤에서 지장보살을 바라보고 있다. 화면 밑에는 털이 흰 사자가 엎드려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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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불.지장보살도, 고려 14세기, 비단에 채색,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아미타불과 지장보살을 나란히 그린 그림이다. 고려후기에는 정토신앙의 영향으로 아미타불과 지장보살이 결합하여 아미타불.관음보살.지장보살로 이루어진 아미타삼존도가 많이 그려졌고, 한 화면에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을 나란히 그린 경우도 있다. 그러나 서로 위계가 다른 아미타불과 지장보살을 같은 크리로 배치한 구성은 매우 특이하며, 현재 알려진 유일한 예다. 아미타불을 믿으면 누구나 서방정토에 갈 수 있고 지장보살을 믿으면 지옥에 떨어지지 않는 다는 점에서, 두 불보살은 모두 사후세계와 관련이 있다. 이 그림은 죽은 후에도 고통과 형벌을 받지않고 행복하기를 바랐던 고려시대 사람의 소망과 사후세계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고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시왕(十王)은 사후세계에서 인간들의 죄를 심판하는 열명의 심판관을 말한다. 진광왕(秦廣王), 초강왕(初江王), 송제왕(宋帝王), 오관왕(五官王), 염라왕(閻羅王), 변성왕(變成王), 태산왕(泰山王), 평등왕(平等王), 도시왕(都市王), 전륜왕(轉輪王)이 있는데 그 중 염라왕이 제일 잘 알려져 있다. 불교에 사람은 죽은후 49일까지 7일 단위로 시왕에게 심판을 받게되며 그중 죄업이 많은자는 3명의 시왕에게 다시 심판을 받는데 100일 후 평등왕, 1년 후 도시왕, 3년후 전륜왕에게 심판을 받는다고 한다. 중국 도교와 전통 민속신앙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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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왕도(十王圖), 남송, 비단에 채색,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불교의 사후세계관에 의하면 사람은 죽은 후 지옥 에서 시왕 즉 열 명의 왕에게 차례로 심판과 형벌을 받게 되는데, 이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 시왕도이다. 송~원대 닝보(學波) 지역에서 그려진 시왕도의 일반적인 구성으로 상단에는 관리들의 보좌를 받으며 왕이 심판하는 장면을 그렸고, 하단에는 죄인이 심판대로 끌려와 벌을 받는 모습을 그렸다. 이 그림이 포함된 시왕도 일괄에는 붉은 글씨의 ‘대송명주차교서 김처사가화(大宋明州車橋西金處處士家畵)’라는 명문이 남아 있다. 이를 통해 김처사라는 재가신자가 이끄는 일종의 불화 공방이 있었고, 공방 단위의 불화 제작이 이루어졌음을 추정해볼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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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왕도(제5 염라왕), 고려후기 또는 남송, 비단에 채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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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왕도(제8 평등왕), 고려후기 또는 남송, 비단에 채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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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왕도(제10 오도전륜왕), 고려후기 또는 남송, 비단에 채색>

원래 10점이었을 것이나 현재 9점만이 여러 곳에 분산되어 전하며, 그중 3점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각 시왕도에는 심판과 형벌의 장면이 그려져 있다. 염라왕의 그림에서는 옥졸이 죄인의 머리채를 잡고 생전에 살생한 죄업을 보여주며, 평등왕 앞에는 큰 저울이 있어 죄의 무게를 저울에 달듯 정확하게 심판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마지막 왕인 오도전륜왕(五道轉輪王)은 다섯 길 윤회의 수레바퀴를 돌린다’는 이름의 의미처럼 죽은 사람들을 승려, 남자, 여자, 축생 등 윤회의 길로 다시 보내고 있다. 이 시왕도는 제작지가 분명하지 않은데, 중국 남송대 닝보(波) 지역에서 제작된 시왕도의 일반적인 구성을 따르고 있으며, 고려불화와 유사한 부분도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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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사문천도(昆沙門天圖), 당 또는 오대, 9세기 둔황 천불동, 비단에 채색, 영국박물관>

비사문천과 권속(眷屬)이 자줏빛 구름을 타고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 위를 지나는 모습을 그렸다. 비사문천은 북방을 지키는 사천왕으로, 이 작품은 사천왕에서 독립된 비사문천 신앙을 보여준다. 비사문천은 오른손으로 창을 들고, 왼손에서 자줏빛 구름을 피어내 보탑(寶塔)을 받들고 있다. 비사문천 옆에는 여동생 혹은 아내로 나타나는 길상천(吉祥天)이 꽃이 담긴 금색 쟁반을 들고 있다. 맞은편에는 비사문천의 아들과 야차(夜叉)가 금으로 만든 잔 항아리, 화영보주(火炎寶珠), 창과 할 등을 들고 비사문천을 따르고 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두루말이 형식의 시왕도, 오대 10세기, 둔황 천불동, 종이에 채색, 영국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두루마리 형식의 시왕도>

OLYMPUS DIGITAL CAMERA<두루마리 형식 시왕도>

두루마리 형식의 시왕도로, 5개의 심판 장면과 지옥의 영혼을 구제하는 지장보살 장면만 남아 있다. 심판 장면은 탁자에 앉아 죄를 심판하는 왕과 그를 보좌하는 판관과 시녀, 포박당해 심판받는 영혼으로 구성된다. 목에 칼을 차고 가는 영혼 주변에 두루마리 문서와 작은 불상을 들고 가는 남녀도 보인다. 지옥의 열 번째 왕인 전륜대왕(轉輪大王)의 심판이 끝나면, 소의 머리를 한 옥졸이 지키고 있는 지옥이 나타난다. 지옥 맞은편에는 보주(寶珠)와 석장(錫杖)을 든 지장보살이 영혼을 구제하는 모습을 표현했다. 유사한 구성의 또 다른 둔황 출토 시왕도가 영국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어, 시왕도 형식이 이미 정형화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21년
  4. 위키백과, 202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