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해외박물관

시안 진시황 병마용박물관

진시황 병마용박물관 전시공간은 3개의 갱과 청동전차와 병마용들이 전시되어 있는 전시장으로 되어 있다. 3곳의 병마용갱은 전체 면적 20,000 ㎡ 이상이며 8,000 구 이상의 인물을 표현한 병용(兵俑)과 수백점의 말과 전차, 10,000 점 이상의 청동제 무기 등이 출토되었다. 병마용갱 옆에 마련된 전시장에는 2호갱에서 출토된 청동제 말과 전차가 전시되어 있는데 이는 진시황이 사후세계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청동으로 제작하여 묻었던 것으로 보인다. 청동제 전차는 중국 고대 청동기의 걸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진시황 병마용박물관 입구 조형물>

OLYMPUS DIGITAL CAMERA<입구 매표소>

여산(驪山)이라 불리는 진시황릉은 그가 13세 일때 시작하여 37년 동안 수많은 인력과 자원을 동원하여 건설하였다. 무덤은 높이 76 m의 여산을 중심으로 당시 수도였던 함양을 본떠서 둘레 2.5 km 의 내성과 둘레 6.3 km의 외성으로 구성되었다. 1974년 여산 동쪽 1.2 km 정도 떨어진 곳에서 병마용갱이 발견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진시황릉 능역 모형>

1호갱은 병마용갱 중에서 가장 큰 규모로 동서 240 m, 남북 62 m 규모이다. 이곳에서는 병마용 2,000여 건, 전차 20여 량이 발굴되었다. 전체 규모로 볼 때 6,000여 건의 병마용과 전차 50여 량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OLYMPUS DIGITAL CAMERA<진시황 병마용갱 1호갱>

OLYMPUS DIGITAL CAMERA<1호갱 내부>

1호갱에서 북쪽으로 20 m 떨어진 곳에 위치한 2호갱은 1976년에 처음 발견되었다. 전체적으로 ‘L’자 모양을 하고 있는데, 동서로 124 m, 남북으로 98 m 정도 규모이다. 보병 위주로 구성된 1호갱과는 달리 궁수, 전차, 기병, 보병 등이 4개 대열로 배치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2호갱>

OLYMPUS DIGITAL CAMERA<2호갱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3호갱>

OLYMPUS DIGITAL CAMERA<3호갱 내부>

진시황 병마용박물관 1호갱 앞 마당 한쪽편에는 병마용갱에 대한 이해를 돕고 2호갱에서 출토된 2기의 청동제 전차를 전시하기 위한 전시장이 있다. 이곳에는 병마용갱에서 출토된 대표적인 형태의 병용(兵俑)들과 한대 초기 양식을 보여준 한경제(孝景皇帝, BC 188 ~ 144년) 양릉(阳陵)에서 출토된 도용(陶俑)을 같이 전시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진시황 병마용박물관 전시장>

OLYMPUS DIGITAL CAMERA<전시실 입구>

OLYMPUS DIGITAL CAMERA<고급군리용(高級軍吏俑, Armored High-ranking officer), 진시황릉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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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병용(騎兵俑, Cavalry Soldier), 진시황릉 출토>

OLYMPUS DIGITAL CAMERA<채회기병용(彩绘騎兵俑, painted pottery Cavalrymen), 한경제 양릉 출토>

OLYMPUS DIGITAL CAMERA<채회기병용(彩绘騎兵俑, painted pottery Cavalrymen), 한경제 양릉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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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갑어수용(鎧甲御手俑, Armored Charioteer), 진시황릉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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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갑무사용(鎧甲武士俑, Armored Soldier), 진시황릉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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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의식채회무사용(着衣式彩绘武士俑, Painted Pottery Warrior), 한경제 양릉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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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포무사용(战袍武士俑, Soldier in battle dress), 진시황릉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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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갑군리용(鎧甲軍吏俑, Armored High-ranking officer), 진시황릉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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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갱 출토 궤사용(跪射俑, Kneeling Arc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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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관용(宦官俑), 한경제 양릉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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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용(袖手俑), 진시황릉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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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회도소의식문리용(彩绘陶塑衣式文吏俑, Painted pottery civil official figurine with molded Suit), 한경제 양릉 출토>

OLYMPUS DIGITAL CAMERA<소의식채회도공수기좌시녀용(塑衣式彩绘陶拱手跽坐侍女俑, Painted Maid with Molded Suits and in the Gesture of Salutation), 한경제 양릉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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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의식채회도시녀용(塑衣式彩绘陶侍女俑, Painted Maid with Molded Suits and in kneeling position), 한경제 양릉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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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희용(百戏俑, Acrobat), 한경제 양릉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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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자지물용(跪姿持物俑, Terracotta Kneeling figure), 진시황릉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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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의식부중용(着衣式負重俑, Pottery Figurine bearing loads), 한경제 양릉 출토>

2기의 채색된 청동제 전차는 1980년 2호갱 발굴.조사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두 전차는 목재로 만든 관에 있었는데 8년간의 복원을 통해 전차의 모습이 세상에 드러났다. 2기 전차와 말은 실제 크기의 2/1로 만들어졌으며 진시황이 탔던 전차를 상징하고 있다. 전차는 금.은으로 만들어진 부품들을 포함하여 대부분 청동으로 만들어졌다. 실제 사용했던 전차를 정밀하고 섬세하게 만들었기때문에 당시 중국 전차의 구조와 시스템을 알려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발견당시 모습>

1호 전차는 4마리의 말이 끌고 있는 것으로 햇빛을 가리는 양산이 있는 오픈카 형식의 전차이다. 진시황이 출행시 사용되었던 전차의 모습을 보여준다. 2호 전차는 가마모양을 하고 있는 것으로 진시황이 이동할 때 탔던 전차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기>에서 전해오는 자객들이 노렸던 전차의 모습을 실제로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OLYMPUS DIGITAL CAMERA<1호 동차마(二號銅車馬, The Chariot No. 2), 진시황릉 출토, 복제품>

OLYMPUS DIGITAL CAMERA<사람이 타는 전차>

OLYMPUS DIGITAL CAMERA<뒤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2호 동차마(二號銅車馬, The Chariot No. 2), 진시황릉 출토, 복제품>

OLYMPUS DIGITAL CAMERA<가마처럼 생긴 전차>

The Color-Painted Brornze Chariots and Horses In Qin Shihuang’s Tomb-yard
A huge pit of funerary chariots and horses which takes up an area of 3025 ㎡ was discovered 20 m to the west side of Oin shihuang’s Tomb in the summer, 1978. At the end of 1980, two big sets of color- painted chariots and horses were unearthed 7.8 m deep underground during a partial excavation. The two chariots were placed facing the west in a front and behind order in a box-like wood outer coffin and according to their order, they are coded as Chariot No I and Chariot No. II. Because the coffin was rotten and the upper part collapsed, the chariots and horses were damaged and many parts of the paintings scaled when they were unearthed. After eight years of restoration, however, the bright colors and grand postures of the chariots and horses were basically represented. The two sets of bronze chariots and horses were made in the size of 1/2 of the practically used chariots and horses and they are the symbol of Qin Shihuangs chariot-horse guard of honor, All the major parts and units of them are made of tin-bronze alloy with another 14 kg of units made of gold and silver, making up a total weight of 2302 kg. The making of the chariots and horses is precise, vivid and complicated, the decoration grand and the relation among the reins for different purposes clear. The craftsmanship is fine and delicate, making them the dear objects for the research on the ancient Chinese chariot system and manufactures. <안내문, 시안 진시황병마용박물관, 2019년)

2기의 전차에서는 청동방패(銅盾, bronze shield)를 비롯하여 화살통, 허리띠 등 청동으로 무기류, 전차부속, 생활용품 등 다양한 유물들이 같이 출토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청동방패(銅盾, bronze shield)>

OLYMPUS DIGITAL CAMERA<청동화살(铜箭, Bronze arrow)>

OLYMPUS DIGITAL CAMERA<화살통(籠箙, arrow box)>

OLYMPUS DIGITAL CAMERA<허리띠(Belly-band)와  청동으로 만든 전차 부속품(活较 Hingings)>

OLYMPUS DIGITAL CAMERA<청동주전자(方壺, Square kettle)>

진시황병마용박물관(秦始皇兵马俑博物馆, First Emperor’s Terra-Cotta Army Exhibition Area)
The First Emperor’s Terra_Cotta Army exhibition area is made up of three pits containing the Terra-Cotta Army and an exhibition hall that features the Bronze Chariots and Horses. These three Terra-Cotta Pits cover a total area of 20,000 square meters and will contain nearly 8,000 facilities for disabled person life-sized pottery figures, hundreds of chariots and over 10,000 pieces of bronze weapons when fully excavated. Besides the pits, there are two sets of large painted Bronze Chariots and Horses displayed in the exhibition hall, which were intended for the First Emperor’s soul to go on his inspection of the country in the afterlife. They are known as the “Crown of the Bronze Works” because they are the biggest and most complex bronze chariots with complete driving systems ever excavated before in the archaeological history of China. (안내문, 시안 진시황병마용박물관, 2019년)

<출처>

  1. 안내문, 시안 병마용박물관, 2019년
  2. 위키백과, 2020년
  3. 百度百科, 2020년

[시안(Xi'an) 비림박물관] 전마장(拴馬桩), 말을 묶어 두는 기둥

시안 비림박물관 마당에 전시되어 있는 전마장((拴馬桩, Hitching post)이다. 섬서성 위수(渭水) 북쪽 지방에 있던 명청시대 전마장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전마장은 말을 묶어두는 기둥으로 관청 출입문 앞에 세워져 있던 것이다. 기둥 상단에는 동물이나 인물이 조각되어 있는데 민간 조각 예술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전마장(拴馬桩, Hitching post), 명청시대

OLYMPUS DIGITAL CAMERA전마장은 말을 묶어 두었던 돌기둥으로 관청 출입문 앞에 세워졌다. 상단부에 동물이나 인물상들을 조각해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비림박물관 야외에 전시되어 있는 석조유물들

The hitching posts are collected from Northern part of the Weihe River, Shaanxi province. In the Ming and Qing Dynasty, the hitching posts were used to the horses in front of the officials’ gate. They are auspiciously decorated with animals and human figures on the top, which animals and human figures on the top, which are excellent works of folk sculpture art.  (안내문, 시안 비림박물관, 2019년)

<출처>

  1. 안내문, 시안 비림박물관, 2019년

 

[시안(Xi'an) 비림박물관] 2실, 당대 유명 비석들.

시안 비림박물관 2실은 당나라의 유명한 비석들이 전시되어 있다. 당나라 때 기독교 일파가 중국에서 활동했음을 보여주는 “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秦景敎流行中國碑)”를 비롯하여 당나라를 대표하는 명필 구양순, 구양통, 저수량, 왕의지, 안진경, 이양빙, 서호 등이 글씨를 쓴 비석들이 있다. 비석에 새겨진 글씨들은 탁본으로 만들어져 후세 사람들의 글씨에 큰 영향을 끼쳤다. 또한 통일신라에 큰 영양을 미쳤던 당나라 비석 양식을 잘 살펴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비림박물관 2실, 당대 명필들의 글씨를 볼 수 있는 유명 비석들이 전시되어 있다. 많은 비석들이 예로부터 탁본첩으로 만들어져 서예교본이 되어 왔다.

시안 비림박물관을 대표하는 유물 중 하나인  ”대진경교유행중국비”이다.  머릿돌, 비몸, 거북받참돌로 구성된 전형적인 당대 비석의 형태를 따르고 있다. 대진(大秦)은 로마나 후대 비잔틴제국을 말한다. 경교(景敎, Nestorian)라 불리는 기독교 일파가 중국에 전파된 것은 635년이며 이후 150년간 중국 왕조의 보호를 받았다. 이 비석은 781년 장안 대진사(大秦寺)에 세워졌던 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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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진경교유행중국비, 당 781년, 석경정 찬 여수암 서

명필 구양순(歐陽詢)의 아들 구양통이 글씨를 쓴 도인법사비(道因法師碑, Stele of Master Daoyin)이다. 도인법사는 장안 대자은사에서 현장을 도와 불경을 번역하는데 큰 역할을 했던 승려이다. 이 비석은 그의 제자들이 구양통에서 부탁하여 글씨를 쓰게 했다. 연개소문 아들 연남생의 묘지(泉男生墓誌)와 함께 구양통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도인법사비, 당 663년, 이엄 찬 구양통 서

당대 명필 구양순(歐陽詢)의 대표작인 황보탄비(皇甫誕碑, Stele of Huangfu Dan)이다. 수(隋)나라 때 정권쟁탈 과정에서 죽은 대신 황보탄을 위해 그의 아들 황보무일(皇甫無逸)이 재상 우지녕(于志寧, 588~641년)에게 글을, 구양순에게 글씨를 부탁하여 세운 비석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황보탄비, 당 627 ~ 649년, 우지녕 찬 구양순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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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유식기(後唯識記). 불교 이론 “유식론”에 대해 적은 비석이다. 크고 선명하며 반듯하게 쓴 글씨가 인상적이다.

당나라 선종을 대지선사를 기리는 대지선사비(大智禅师碑, Stele of Chan Master Dazhi)이다. 당 현종 때 활동했던 명필 사유칙(史惟則)의 글씨가 남아 있는 대표작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지선사비, 당 736년, 엄정지 찬 사유칙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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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선사비 비몸에 새겨진 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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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선사비 뒷면

어사대정사비(御史台精舍碑, stele of Vihara in Censorate)는 당나라 감찰기관인 어사대(御史台) 감옥 부근에 있던 불교 사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감옥에 갇힌 죄수들 교화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보인다. 당나라 명필 양승경이 글씨를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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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사대정사비(御史台精舍碑, stele of Vihara in Censorate), 당 723년, 최식 찬 양승경 서

OLYMPUS DIGITAL CAMERA어사대정사비 머릿돌. 섬세하면서 생동감있게 용과 구름을 새겨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비몸에 새겨진 글씨.

삼분기비(三墳記碑, Stele of Reinterring the Tombs of Three Elder Brothers)는 이계경이 그의 삼형제 무덤을 어떻게 개장했는지를 기록하고 있다. 천선영기비(拪先塋記碑, Stele of Reinterring Ancestral Grave)는 그의 선친 무덤을 개장하면서 그 내용을 기롯한 비석이다. 이 비석들은 당나라 명필 이양빙(李陽冰)의 글씨를 볼 수 있는 중요한 유물이다. 이양빙은 전서(篆書)를 잘 써서 진나라 이사와 함께 ‘이이(二李)’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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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분기비, 당 767년, 이계경찬 이양빙 서. 전서체의 대가로 손꼽혔던 이양빙의 글씨를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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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선영기비, 당 767년, 이계경 찬. 이양빙 서

명필 저수량(褚遂良)이 글씨를 쓴 동주삼장성교서비(同州三藏聖敎序碑, Stele of Preface of Consecrated Buddhism for the Buddhist Monk Xuanzang in Tongzhou)이다. 현장법사가 번역한 불경에 대한 당 태종(太宗)의 서문과 세자였던 이치(당 고종)가 쓴 불경 번역에 대한 경위 등이 포함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동주삼장성교서비, 당 663년, 저수랑 서

양수겸비(梁守謙碑, Stele of Liang Shouqian)는 군사적인 업적으로 직위와 토지를 받은 양수겸의 업적을 기록하고 있다. 비석 몸돌과 받침돌 옆면에 수준높은 문양을 조각해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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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수겸비(梁守謙碑, Stele of Liang Shouqian), 당 822년, 양승화 찬 및 서

OLYMPUS DIGITAL CAMERA거북받침돌

경동(經懂)은 받침돌과 머릿돌 사이에 부처의 이름이나 불경을 새겨놓은 석조기둥이다. 이 경동은 한자와 범어로 팔각형 기둥 각면에 5줄씩 중국어와 범어로 다라니경을 기록해 놓고 있다. 절반만 적혀 있지만 당시 불경 번역 사업 등 서역과의 문화교류를 살펴볼 수 있는 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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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한문타라니진언경동(梵漢合文陀羅尼真言經懂, Dharani Sutra Pillar in Sanskrit and Chinese), 석해각 서

광지삼장화상비(廣智三藏和尚碑, Stele of Buddhist Monk Guangzhi Tripitaka)는 당 밀종 고승으로 장안 대흥선사에 머물며 불경 번역 등을 했던 서역인 불공화상(不空和尙)의 비석이다. 당나라 명필 서호(徐浩)가 쓴 비석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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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지삼장화상비, 당 781, 엄영 찬 서호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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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지삼장화상비 뒷면

당나라 명필 안진경(顏眞卿, 709 ~ 785년)의 대표작이자 후대 서예의 교본처럼 사용되었던 작품인 다보탑감응비(多寶塔感應碑, Stele of Abundant Trearsure Pagoda)이다. 장안(長安) 천복사(薦福寺)에 건립된 비석으로 안진경이 44세 때 쓴 글씨이다. 안진경 특유의 서풍이 보이기 전 글씨로, 단정한 자형에 정밀하고 변화가 큰 필획을 보여주고 있다. <다보탑비>로 잘 알려져 있으며, 북송 때 비림이 조성되면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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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보탑감응비, 당 752년, 잠훈 찬 안진경 서 서호 제액

명필 안진경이 쓴 대표작인 안씨가묘비(颜氏家庙碑, Stele of Yan’s Family Temple)이다. 머릿돌에 적힌 비이름은 전서의 대가였던 이양빙이 쓴 글씨로 비석의 품위를 높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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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씨가묘비(颜氏家庙碑, Stele of Yan’s Family Temple), 당 780년, 안진경 찬 및 서 이양빙 전액

OLYMPUS DIGITAL CAMERA안씨가묘비 머릿돌. 전서체의 대가 이양빙의 고풍스러운 글씨를 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외부에 전시해 놓은 비석들

제2 실
이곳에는 당나라의 유명한 비석이 위주로 진열되어 있다. 그중 《대진경교유행중국비》는 당나라의 중외 문화 교류를 연구함에 있어서 보귀한 자료이다. 구양순이 쓴 《황포탄비》, 구양통이 쓴 《도 인법사비》, 저수량이 쓴 《동주삼장성교서비》, 회인집 왕의지가 쓴 《삼장성교서비》, 안진경이 쓴 《다보탑비》, 《안가묘비》, 유공권 이 쓴 《현비탑비》 등은 모두 서법을 배우는 우수한 체본이다. 그외 많은 비석의 측면에는 조각이 정교하고 구조가 아름다운 무늬 장식 이 있는데 또한 고대 도안 장식 예술의 보귀한 자료이다. (안내문, 시안 비림박물관, 2019년)

<출처>

  1. 안내문, 시안 비림박물관, 2019년
  2. 위키백과, 2020년
  3. 미술대사전, 한국사전연구사, 1998년

 

[시안(Xi'an) 비림박물관] 대진경교유행중국비, 당대 중국에 전파된 기독교를 기록한 비석

당대(唐代)에 중국에 기독교가 전파되었음을 보여주는 비석인 “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秦景敎流行中國碑, The Nestorian Stele)”이다. 대진(大秦)은 로마나 후대 비잔틴제국을 말한다. 경교(景敎, Nestorian)라 불리는 기독교 일파가 중국에 전파된 것은 635년이며 이후 150년간 중국 왕조의 보호를 받았다. 이 비석은 781년 장안 대진사(大秦寺)에 세워졌던 비석이다. 비석에는 네스토리안 교리와 의례, 시리아어로 적힌 선교사 이름 등이 있어 당시 문화교류를 살펴보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당말 회창폐불때 경교도 탄압을 받아 대진사는 파괴되었으며 비석도 땅에 묻힌 것으로 보인다. 명나라 때(1623년)에 발굴되었으며 1907년 비림박물관으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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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안 비림박물관을 대표하는 유물 중 하나인  ”대진경교유행중국비”, 머릿돌, 비몸, 거북받참돌로 구성된 전형적인 당대 비석의 형태를 따르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머릿돌에는 “大秦景敎流行中國碑” 글자과 십자가가 새겨져 외형상 용과 구름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독교적인 내용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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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가 새겨진 비몸.

OLYMPUS DIGITAL CAMERA아랫부분에 시리아어로 역대 선교사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秦景敎流行中國碑, The Nestorian Stele)
The Stele was entitled “Stele to the Propagation in China of the Luminous Religion of Daqin”. The Nestorian branch of Christianity arrived in China in 635 (the 9th year of Zhenguan Reign, Tang Dynasty.) This Stele records the dissemination of the doctrine and ceremonies of Nestorianism during the 150 years afterward and also the missionaries names written in Syrian language. This stele provides the valuable material for studying the cultural exchange between China and foreign country. It originally erected in Daqin Temple of Chang’an in the Tang Dynasty and later unearthed from the west of Xi’an City in the Tianqi Reign of Ming Dynasty (1625). It was moved to Xi’an Forest of Stele in the 33th year of Guangxu Reign of Qing Dynasty (1907). (안내문, 시안 비림박물관, 2019년)

<출처>

  1. 안내문, 시안 비림박물관, 2019년
  2. 위키백과, 2020년

 

 

[시안(Xi'an) 비림박물관] 개성석경(開成石經), 유가 13경전을 새겨놓은 비석

시안 비림박물관 제1전시실을 구성하고 있는 개성석경(開成石經, Kaicheng Stone Classics)이다. 동아시아 사회규범의 기본이 되었던 유가 경전을 돌로 새겨놓은 것이다. 당나라 문종 때(837) 전해오던 여러 유가 경전을 모아 돌에 새겨 여러 경전들의 착오를 바로잡는 표준이 되게 하였다. 한대(漢代) 이래 7차례에 걸쳐 유가 경전이 돌에 새겨졌는데 그 중 보존 상태가 좋고 오래되었다. 북송 철종 때(1087) 여러곳에 흩어져 있던 석경들을 다시 모아 문묘(文廟)였던 이곳에 옮겨 놓았다. 이후 역대왕조에서 수집된 많은 고대 비석들이 이곳에 모아져 도서관 역할을 해왔다. 당대에 <논어>을 비롯하여 12경이 새겨졌으며 청나라 강희제 때 <맹자>가 추가로 새겨 13경이 완성되었다. 비석이 처음 새겨진 연대가 당나라 문종 때여서 그 연호(開成)를 따라 개성석경이라 부른다.

OLYMPUS DIGITAL CAMERA비림박물관 제1전시실. 당대에 새겨진 유가 경전들을 모아 놓았고 있다.

시경(詩經, The book of Odes)은 중국 최초의 시가집이다. 공자가 주왕조 정치형태와 민중의 수용태도를 가리치기 위해 편집한 것을 알려져 있다. 각국의 민요인 풍(風), 연회에 부르는 노래인 아(雅), 제사 지낼떄 부는 노래 송(頌)으로 구성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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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은 16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서(尙書, The book of History)>는 <서경(書經)>으로 볼리는 유가 5경 중 하나로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서이다. 요순시대 이래 중국 역사를 공자가 편찬했다고 전한다.

OLYMPUS DIGITAL CAMERA <상서>는 10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상서>에 새겨진 글자

공자외 제자들의 언행을 기록한 유가에서 가장 중요시 되는 경전인 <논어(論語, Analects of Confucius)>이다. 한대(漢代)에도 여러 본이 전해져 오고 있었으며 지금 전해지는 논어는 전한말 장우((張禹)가 편찬한 교정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개경석경 <논어>는 7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논어>에 새겨진 글.

효경(孝經, The book of Filial piety)은 유교 13경 중 하나로 효의 원칙과 규범을 수록하고 있다. 효경은 2종류의 책이 전해오면서 논란이 많았으며, 당 현종은 역대 효경을 연구하게 하여 주석을 달아 태학에 세웠는데 이를 <석대효경>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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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경>은 1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 Guliang’s commentary on Spring and Autumn Annals)>은 춘추(春秋) 주석을 단 것으로 곡량자가 저작했다는 설이 있지만 한대(漢代)에 전해오던 내용을 현재의 형태로 정리한 것으로 보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춘추곡량전>은 16석으로 구성된 방대한 규모의 경전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춘추곡량전>에 새겨진 내용.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 Gongyang’s Commentary on Spring and Autumn Annals)>은 <한서>에 저자가 공양자로 기록되어 있어 춘추공양전이라 부른다. <사기>에 동중서가 공양전을 전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어 한대 초기에 내용이 정리되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춘추공양전>은 17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춘추공양전>에 새겨진 글자.

<이아(爾雅, Erya)>는 유가 경전을 집성한 당나라 개성석경에 포함되었다. 문자의 뜻을 고증하고 설명하는 사전적인 성격을 갖는 책이다. 책을 지은 저자에 대해서 알려진바는 없으나 한(漢) 초기에 유학자들이 서주(西周)시기 고서들을 해석하기 위해 정리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청대 고증학의 기본이 되는 책으로 존중받았다. 

OLYMPUS DIGITAL CAMERA<이아(爾雅)>,  5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이아(爾雅)> 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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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爾雅)>  양쪽에 2개의 석경.

경조부학신이석경기(京兆府學新移石經記, Memoralilia of Jingzhao Fuxue Moving the Stone classics)은 송(宋) 철종 5년(1090) 여러곳에 흩어져 있던 개성석경을 당나라 태학(太學)으로 석대효경에 있던 이곳으로 옮기면서 그 내력을 기록해 놓은 비석이다. 이곳이 비림(碑林)으로 자리잡은 내력을 기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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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조부학신이석경기(京兆府學新移石經記) 비석

당석경보자(唐石徑補字, Inlay of the Stone Classics of Tang Dynasty) 명나라 때 재지진으로 훼손된 개성석경을 전해오는 여러 탁본을 참조하여 1588년 다시 새긴 것이다. <주역>, <상서>, <시경> 등이 포함되어 있으며 총 16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 당석경보자(唐石徑補字) 중 하나.

구경자양(九經字樣, Typeface of the Nine Classics)은 당대에 편찬된 것으로 개성석경 이전에 유교 경전에 있는 글자를 해석하기 위한 일종의 자전(字典) 역할을 했던 석경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구경자양>

오경문자(五經文字, Test of the Five classics)는 당나라 장참이 775년에 편찬한 자전이다. 원래 태학(太學) 벽에 써 놓았던 것을 당 문종 때 개성석경을 새기면서 비석에 새겨놓았다.

OLYMPUS DIGITAL CAMERA<오경문자>

제1실
본 전시실에는 당나라 개성 2년(837)에 완성된 <개성석경>을 모아 전시하고 있다. <개성석경>은 12종류의 유가경전, 즉 <주역>, <상서>, <시경>, <주례>, <의례>, <예기>, <춘추좌씨전>, <춘추공양전>, <춘추곡량전>, <효경>, <논어>, <이아> 등으로 모두 114개의 돌판, 228면, 65만자나 된다. 역사에서는 이를 가리켜 <개성석경>이라고 부른다. 청나라 강희3년(1664)에 <맹자>가 추가로 새겨져 드디어 13경이 되었다. <개성석경>은 고대의 7차례에 걸쳐 새긴 유가 경전의 각석들 중에 보존상태가 가장 좋고 가장 오래된 경전으로, 북송 원우 2년(1087)에 처음으로 비림에 옮겨져 서안 비림 발전사의 초석이 되었다. 당나라 때 새긴 석경들은 주로 학자들에게 제공되어 경전의 모범이 되었고, 아울러 다른 곳에 전해진 경전들의 착오를 바로잡는데 표준이 되었다. 13경은 중국 봉건시대에 지식인이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을 얻기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 되었고, 중화문화와 민족정신의 원천이 되었다. (안내문, 시안 비림박물관, 2019년)

<출처>

  1. 안내문, 시안 비림박물관, 2019년
  2. 위키백과, 2020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2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