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과학기술

여수 흥국사 홍교(보물 563호)

전남 여수시 중흥등 흥국사에 있는 홍교(보물 563호)이다. 영취산 흥국사 입구 계곡에 놓여진 아치형 돌다리인 홍교로 아치의 높이가 가장 가장 높고 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진왜란 이후인 인조 17년(1639) 흥국사를 중건할 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산중 사찰 입구 계곡에 홍교를 세운것은 바깥세상과는 공간을 분리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계곡 양쪽 바위에 기대어 잘 다듬은 화강석으로 홍예를 쌓고 그 위에 자연석으로 메꾸어 놓았다. 홍예의 한가운데에는 양쪽으로 용머리 모양을 조각해 놓았으며, 천장에도 물을 향하고 있는 용머리 조각이 있다.

여수 영취산 흥국사는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임진왜란 당시 전라좌수영과 연계하여 호남지역 승병의 중심지가 되었던 사찰이다. 이런 까닭에 흥국사에는 산성 등 수축에 참여해서 건축에 조예가 깊었던 승려가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흥국사 홍교는 승병으로 참여했던 승려들의 토목기술을 잘 보여주는 유적이다. 인근 지역에 있는 벌교 홍교(보물 304호), 선암사 홍교(보물 400호) 중 가장 먼저 지어졌다.

OLYMPUS DIGITAL CAMERA여수 흥국사 홍교(보물 563호). 잘 다듬은 화강석으로 아치형 홍예를 쌓고 자연석을 채워 다리를 만들었다. 현존하는 홍교 중 가장 큰 규모의 아치라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잘 다듬은 화강석으로 쌓은 홍예. 천정 가운데 물을 향하고 있는 용머리를 장식해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홍예와 계곡 사이에는 잘 다듬은 자연석으로 채워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다리 상판은 마차가 1대 지나갈 수 있는 너비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상류에서 본 흥국사 홍교

OLYMPUS DIGITAL CAMERA하류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흥국사 앞을 흐르는 계곡

흥국사 홍교, 보물 563호
건립 연대는 확실하지 않지만, 1639년(인조 17년) 주지인 계특대사가 불타 없어진 흥국사를 다시 지을 때 세운 것으로 보인다. 1981년 폭우로 일부 붕괴되었으나 이듬해 복구하였다. 계곡 양쪽을 뿌리 삼아 잘 다듬은 화강암 장대석 86개가 서로 맞물리며 무게를 지탱할 수 있도로 무지개 모양으로 절묘하게 짜 올렸다. 홍예(무지개)의 한복판에는 양쪽으로 마룻돌이 튀어나와 있는데 그 끝에 용머리를 장식하여 마치 용이 다리 밑을 굽어보고 있는 듯이 표현하였다. 다리를 건너 고통의 세계에서 부처의 나라로 가는 모든 중생을 보호한다는 종교적인 의미와 외형의 아름다움이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정월 대보름 달밤이면 이곳에서 한 해 동안의 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의식인 다리밟기를 했다고 전해 오는데, 1994년부터 이를 재현하고 있다. (안내문, 여수 흥국사, 2012년)

  1. 안내문,여수 흥국사, 2012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보성 벌교 홍교(보물 304호), 큰 규모의 조선시대 홍예교

전남 보성군 벌교읍 벌교리에 남아 있는 벌교 홍교(보물 304호)이다. 잘다듬은 석재로 아치모양으로 쌓은 홍예교이다 규모는 폭 4 m, 길이 80 m로 현재 남아 있는 홍예교 중 가장 큰 규모이다. 현재는 길이 약 27 m 정도로 높이 3 m의 홍예 3개가 남아 있으며, 나머지 부분은 최근 옛모습을 복원해 놓고 있다. 홍예 밑 천장에는 용머리를 조각한 돌이 돌출되어 있으며, 아래를 향하도록 되어 있다. 조선 후기 영조 때 (1729년) 선암사 승려들이 처음 만들었으며, 여러차례의 보수공사를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인근 조계산 선암사의 승선교(보물 400호)나 여수 흥국사 홍교(보물 563호)와 비슷한 형태이다. 조선후기 산성의 축조에 동원되었던 승병들의 건축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소설 『태백산맥』에는 주인공 김범우가 살던 마을 앞에 놓여진 다리로 묘사되고 있는데, 낙안벌을 지나 남해안으로 흐르는 벌교천을 건너는 다리이다. 아마도 동쪽 순천에서 서쪽 보성을 연결해주는 거의 유일한 육로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 다리가 세워지기 전에는 뗏목을 연결하여 만든 뗏목다리가 있었으며, 이 다리에서 ‘벌교’라는 지명이 유래했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보성 벌교 홍교(보물 304호). 순천과 보성을 연결하는 육상교통로에 세워진 큰 규모의 돌다리이다. 원래 이곳에 뗏목다리가 놓여 있어 이 지역을 벌교라고 불렀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원래 길이 80 m였는데 홍수로 일부가 유실되어 옛 다리중 3개의 홍예만 남아 있다. 홍예 가운데 돌출되어 있는 용머리 조각상을 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아치는 잘 다듬은 화강석 석재를 이용해서 쌓았는데 그 기술 수준이 높은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홍수로 유실된 것을 복원해 놓은 부분. 홍교 건너편으로 소설 『태백산맥』 주인공 김범우가 살았던 곳으로 소개된 마을이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다리 상판은 폭 4.5 m로 우마차가 충분이 지나갈 수 있는 규모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동쪽편에서 본 벌교 홍교. 홍수로 유실된 부분을 복원해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낙안들판을 지나 남해안으로 흘러드는 벌교천. 지금은 다리가 많이 있지만 옛날에는 이 돌다리가 벌교천을 건너는 유일한 다리였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다리 앞 도로변에 세워진 중수비. 벌교 홍교가 수차례의 수해로 무너진 것을 복구했음을 알 수 있다.

보성 벌교 홍교 중수비군
비는 어떤 일의 행적을 후세에 남기기 위해 세운 기념물이다. 보통 쇠나 돌에 글을 새겨 놓아 금석문이라고 한다. 금석문은 지역 역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홍교 앞 도로변에는 모두 5기의 비가 있다. 홍교가 낡고 헐어 다시 고친 내력과 참여자 등을 자세히 기록한 중수비와 단교명비이다. 이곳 홍교는 단교라고도 불렀는데, 큰 물이 나면 다리가 끊어지고 사람의 통해이 끊어진데서 유래되었다. 비문은 대부분 마모가 심하거나 훼손되어 내용 판독이 어려워 아쉬움이 남는다. 1737년, 1844년, 1899년에 건립한 3기의 중수비만이 연대가 밝혀질 뿐이다. 이 비군은 홍교의 역사와 지역의 연혁을 알 수 있는 자료로 가치가 있다. (안내문, 보성군청, 2012년)

벌교 홍교, 보물 304호, 전남 보성군 벌교읍 벌교리
홍교는 벌교천 위에 걸쳐진 돌로 만든 무지개 다리로 전체 길이 27 m, 높이 약 3 m, 폭 4.5 m 내외이다. 이 다리는 조선 영조 5년(1729)에 순천 선암사의 승려인 초안과 습성 두 선사가 만들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불교에서는 다리를 놓아 사람이 편안히 다닐 수 있게 하는 월천공덕을 중요한 보시(은혜를 널리 베품)로 꼽고 있다. 이 홍교는 영조 13년(1737)과, 다시 헌종 10년(1844)에 고친바 있다. 지금의 모습은 1981 ~1984년까지의 4년에 걸쳐 보수하여 원형을 찾은 것이다.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홍교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대표적인 돌다리이다. 홍교가 놓이기 이전에는 뗏목다리를 놓아 건너 다녔다고 하는데 벌교라는 이름이 여기에서 유래되었다. (안내문, 보성군청)

  1. 안내문, 보성군청, 2012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제천 의림지와 제림(명승 20호), 삼한시대에 쌓은 오래된 수리시설

충북 제천시 모산동에 있는 의림지와 제림(명승 20호)이다. 의림지(義林池)는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와 함께 삼한시대에 축조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수리시설로 『삼국사기』를 비롯하여 각종 문헌에 그 기록이 남아 있는 유서깊은 유적지이기도 하다. 충청도를 호서(湖西)지방이라 부르는 것도 의림 서쪽에 있다는 뜻이며, 제천의 옛 이름인 (奈堤, 큰제방)도 큰 제방있는 고장이라는 뜻이다. 조선 세종 때 크게 수리되었으며, 일제강점기에 제방을 다시 쌓으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춘 것으로 보인다.

제림(堤林)은 의림지 제방 위에 조성된 숲을 말하며, 소나무와 버드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어 예로부터 명승지로 알려졌으며, 옛 그림에도 그 모습이 남아 있다. 주변에는 영호정, 경호루같은 누각과 바위들이 있어 역사적 의미를 같은 의림지와 함께 빼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OLYMPUS DIGITAL CAMERA제천 의림지(명승 20호). 삼한시대에 쌓은 가장 오래된 수리시설 중 한곳으로 예로부터 지역의 명승지로 손꼽히던 곳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제천 의림지 제방이 시작되는 지점. 제방 위에는 소나무와 버드나무를 중심으로 다양한 나무들을 심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의림지와 함께 제방 위에 조성된 숲도 명승으로 지정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의림지 제방위에 조성된 숲.

OLYMPUS DIGITAL CAMERA의림지의 오랜 역사를 보여주는 제방 위 울창한 소나무 숲.

OLYMPUS DIGITAL CAMERA영호정(暎湖亭)은 의림지 남쪽 제방위에 있는 정자로 조선후기 순조 때 처음 세워졌으며 현재의 건물은 1954년에 새로 지어졌다.

OLYMPUS DIGITAL CAMERA의림지 제방 아래로 보이는 제천시.

OLYMPUS DIGITAL CAMERA제방을 따라 이어지는 숲길

OLYMPUS DIGITAL CAMERA제방 중간에 세워진 의림지 표지석.

OLYMPUS DIGITAL CAMERA의림지에서도 경치가 빼어난 작은 섬처럼 돌출된 곳.

OLYMPUS DIGITAL CAMERA이곳에는 의림치 경치를 감상하면서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 조성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이곳에서 보이는 의림지 풍경.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 있는 정자인 경호루(鏡湖樓), 1948년에 지어진 정자로 영호정과 더불어 의림지를 찾는 대표적인 휴식처가 되고 있으며 아름드리 노송사이에 서있는 정자 누각은 한폭의 그림과도 같다.

OLYMPUS DIGITAL CAMERA의림지 서남쪽편 협곡을 막고 있는 수문.

OLYMPUS DIGITAL CAMERA수문에서 내려다 보이는 계곡.

OLYMPUS DIGITAL CAMERA수문 안쪽으로는 뒷편 용두산에서 흘러내려오는 하천이 보인다. 이 하천을 막아 저수지를 조성하고 있는데, 예로부터 둑을 쌓기에 용이했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수문 부근에서 보이는 의림지 풍경.

OLYMPUS DIGITAL CAMERA의림지 서쪽편에는 비교적 넓은 광장이 의림지를 바라보면서 조성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의림지 북쪽에서 바라본 풍경. 가운데 작은 섬이 조성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의림지 동쪽편.  2007년에 세워진 우륵정이란 정자가 있다. 근처에 우륵과 관련된 전설이 있는 우륵샘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우륵정에서 보이는 의림지 풍경

제천 의림지와 제림, 명승 20호
제천 의림지(義林池)는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저수지로 호반의 둘레는 1.8 km이고 수심은 8 m이다. 제방을 따라 소나무, 버드나무가 숲을 이루어 제림(堤林)이라 불린다. 물과 숲이 주변의 영호정 및 경호루 등과 함께 어루러져 매우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하고 있다. 호서(湖西)라는 충청도의 다른 이름은 의림지를 기준으로 한 것이며, 내제(奈堤, 큰제방)라는 제천의 옛 이름도 의림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의림지가 언제 만들어졌는지 명확하지 않으나 신라 진흥왕 때 우륵이 쌓았다늕 설과 조선시대 현감인 박의림이 쌓았다는 설이 전해져 왔으며, 지명분석에 근거한 삼한시대 축조설이 일반적으로 수용되고 있다. 세종실록에 의림제라고 하고 정인지에 의해 두차례 수리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항일운동기간인 1914~1918년까지 대대적으로 수축하였으며, 1972년의 장마에 둑이 무너진 것을 이듬해 복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설로는 거북바위를 돌려 놓아 부자집이 몰락하였다는 이야기와 탁발승을 홀대하여 부자집이 몰락하고 그 자리에 저수지가 생겨났다는 이야기가 전하여 온다. 그리고 의림지에 있는 큰 이무기가 가끔 나와사 사람이나 가축을 해치는 일이 있었는데 어씨 오형제가 이무기를 잡은 다음부터는 사람들이 안심하고 놀 수 있게 되었다는 어장사참사가가 전해지고 있다. (안내문, 제천시청, 2017년)

<출처>

  1. 안내문, 제천시청,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창녕 석빙고(보물 310호), 창녕현 관아에서 설치했던 얼음창고

경남 창녕군 창녕읍 송현리에 있는 석빙고(보물 310호)이다. 창녕현 관아에서 만들어 운영했던 얼음 창고이다. 얼음은 국왕에 진상할 물품을 운송할 사용하기 위한 것으로 석빙고는 주로 안동, 현풍, 청도, 영산 등 낙동강 내륙수운에 위치한 고을에 남아 있다. 내부는 직사각형 평면이며 물이 빠지는 배수로, 공기가 드나드는 환풍구 등을 두고 있다. 석빙고 앞에는 조선후기 영조 때 창녕현감이 세웠다는 기록이 있는 비석이 세워져 있어 다른 지역 석빙고와 마찬가지로 조선후기 영조 때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창녕 석빙고

SANYO DIGITAL CAMERA석빙고 내부를 출입하는 출입문. 큰 장대석을 쌓아 출입문을 만들었ㄷ.

SANYO DIGITAL CAMERA석빙고 내부로 들어가는 통로

SANYO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석빙고. 내부가 긴 직사각형 평면임을 알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석빙고 앞에 세워진 비석. 조선후기 영조 때 창녕현감이 세웠다는 기록이 새겨져 있다.

창녕 석빙고, 보물 310호, 경남 창녕군 창녕읍 송현리
석빙고는 자연의 순리에 따라 겨울에 채집해 두었던 얼음을 봄.여름.가을까지 녹지 않게 효과적으로 보관하는 지금의 냉장고 역할을 하는 인공적 구조물이다. 외견상 고분과 같은 형태를 띠는데, 빙실이라는 공간이 주변 지반과 비교하여 절반은 지하에 있고, 바깥 면은 보온을 위하여 흙으로 두껍게 덮여 있기 때문이다. 주로 강이나 개울 주번에 만들어지는데, 이 석빙고 역시 서쪽으로 흐르는 개울과 직각이 되도록 남북으로 길게 위치하고 있으며, 입구를 남쪽으로 내어 얼음을 쉽게 옮길 수 있도록 하였다. 입구 안의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밑바닥은 경사졌고, 북쪽 구석에는 물이 빠지도록 배수구멍을 두었으며, 바닥은 네모나고 평평하다. 내부는 잘 다듬어진 돌을 쌓아 양옆에서 틀어올린 4개의 무지개모양띠를 중간 중간에 두었다. 각 띠 사이는 긴 돌을 가로로 걸쳐 놓아 천장을 마무리하였다. 또한 천장의 곳곳에는 요철을 가진 환기구멍을 두어 바깥공기가 드나드는 것을 조절하여 냉기가 오래 가게끔 만들었다. 창녕 석빙고는 입구에 서 있는 비석의 기록을 통해 조선 영조 18년(1742)에 당시 이곳의 현감이었던 신서에 의해 조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각 부분의 양식 또한 조선 후기 모습이 잘 담겨져 있어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안내문, 창녕군청, 2014년)

<출처>

  1. 안내문, 창녕군청, 2014년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8년
  3.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달성 현풍 석빙고(보물 673호), 조선시대 얼음을 보관하던 창고

대구 달성군 현풍면 상리에 위치한 현풍 석빙고(보물 673호)이다. 현풍현 관아에서 운영하던 것으로 동쪽 비슬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현풍천 옆에 있다. 현풍 사직단이 있는 작는 구릉 아래 남북 방향으로 만들었는데, 출입구는 바람이 통하지 않는 언덕 아래쪽을 향하고 있다. 길이 9 m, 너비 5 m, 높이 6 m의 크지 않은 규모이다. 보수작업 때 발견된 비석에 영조 때 만들어졌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다른 지역의 석빙고들과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석빙고는 조선시대 얼음을 보관하는 창고로 현재 남아 있는 것으로 경주 석빙고, 청도 석빙고, 창녕석빙고, 안동 석빙고, 영산 석빙고가 있으며, 낙동강과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서울에는 동빙고동.서빙고동이란 지명만 남아 있다. 겨울동안 큰 강에 얼었던 얼음을 창고에 보관하여 여름에 사용했다. 안동 석빙고의 경우 특산품인 빙어를 진상하기 위해 유지했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현풍 석빙고(보물 673호). 무덤 봉분처럼 생긴 얼음창고로 위에는 환풍구를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하천에서 볼 수 있는 큰 돌을 쌓아 창고를 만들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석빙고 출입문. 바람이 잘 통하지 않는 언덕방향으로 출입문을 내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앞쪽에서 본 석빙고. 윗부분에 2개의 환기구를 두고 있다.

현풍 석빙고, 보물673호, 달성군 현풍면 상리 632
석빙고는 글자 그대로 얼음을 보관하는 창고로 알려져 있지만, 안동 석빙고처럼 특산물을 진항하기 위하여 만든 것도 있다. 따라서 석빙고는 신도를 유지할 필요가 있는 생산물의 보관기능도 가졌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 석빙고는 북으로 뻗은 능선의 아래쪽을 이용하여 장축을 남-북으로 두고 만들었는데, 출입구가 능선쪽인 남쪽에 마련되어 있고, 전면으로는 하천이 흐르고 있다. 입구에는 바깥 공기와의 차단을 위하여 옹벽을 만들었으며, 내부는 무지개꼴의 홍예구조로 천정을 하여 요철을 이루면서 환풍구를 두 군데에 배치하였다. 바닥에는 배수로를 설치하고 돌을 깔았다. 내.왜부의 이러한 구조는 우리 선조들의 온.습도 유지에 대한 과학적 사상을 보여주고 있는 점에서 중요하다. 얼음 창고의 크기는 길이 9 m, 너비 5 m, 높이 6 m이다. 1981년 보수작업 때에 숭정기원후이경술이라고 쓰여진 비가 발견되어 1730년에 만들어진 것임을 알게 되었다. (안내문,달성군청, 2011년)

<출처>

  1. 안내문, 달성군청, 2011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