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 Archives: December 2017

울진 후포항, 울진대게로 유명한 큰 항구

경북 울진군 후포면에 있는 후포항이다. 울진군 남쪽에 자리한 항구로 울진과 영덕 해안에서 가장 큰 규모의 항구이다. 포항제철 원료공급을 위한 대체 항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1970년대에 대형 선박이 정박할 수 있도록 항구로 건설하였다. 많은 어선들이 정박해 있으며, 방파제 안쪽에도 제법 큰 배도 볼 수 있다. 어시장 규모도 큰 편이며, 울진대게로 유명한 곳으로 많은 횟집들이 항구 근처에 모여 있다. 후포항 남쪽 해안에는 해수욕장이 형성되어 있다.

SANYO DIGITAL CAMERA울진 후포항. 포항제철에 원료를 원할하게 공급하기 위해 건설된 항구로 큰 선박이 정박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후포항 방파제 안쪽에 정박해 있는 큰 상선.

SANYO DIGITAL CAMERA항구에 정박한 어선들. 비교적 큰 규모의 선박들이 정박해 있다.

SANYO DIGITAL CAMERA어선들이 잡은 수산물들을 경매하는 어시장.

SANYO DIGITAL CAMERA방금 잡은 생선들을 내린 것으로 보이는 큰 어선.

SANYO DIGITAL CAMERA배에서 내린 생선들 주위로 상인들이 모여있다.

SANYO DIGITAL CAMERA다시 조업을 나서는 것으로 보이는 어선.

SANYO DIGITAL CAMERA어시장 뒷편 관광객들을 위한 횟집촌.

SANYO DIGITAL CAMERA후포항 남쪽 해안. 넓은 백사장이 있는 후포해수욕장이다.

SANYO DIGITAL CAMERA후포항 남쪽으로는 보이는 영덕군 일대. 칠보산 자락과 주변 지역들이 보인다.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7년
  2. 대한민국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2017년

울진 죽변항, 많은 어선들이 정박해 있는 큰 어항

경북 울진군 죽변면에 있는 죽변항이다. 후포항과 함께 울진을 대표하는 큰 어항으로 울진군 소재지에서 8 km 정도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동해안에서 바깥으로 약간 돌출된 곳에 위치하여 방파제를 쌓기 용한 지형적 장점으로 큰 항구를 형성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비슷한 유형의 항구로 울진 후포항, 동해 묵호항, 강릉 주문진항 등이 있는데 일제강점기에 어업전진기지로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죽변항에는 정박하고 있는 어선의 수도 상당히 많고, 어선의 크기도 큰 편이다. 울진대게가 유명한 곳으로 보이지만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은 아니고, 어업전진기지로서의 역할이 더 큰 항구로 볼 수 있다. 울진 원자력발전소와 봉평리신라비(국보 242호)가 부근에 위치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울진 죽변항. 큰 어선들이 많이 정박해 있는 동해안을 대표하는 큰 어항중 한 곳이다.

SANYO DIGITAL CAMERA울진 죽변항과 주변 해안. 동해안으로 돌출된 지형이 방파제 역할을 하기때문에 배가 정박하기 좋은 지형조건을 갖추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죽변항 바깥쪽 파도를 막아주는 방파제.

SANYO DIGITAL CAMERA방파제 안쪽 큰 냉동창고. 주위에 큰 어선들이 있다.

SANYO DIGITAL CAMERA방파제 안쪽 내항에 정박해 있는 어선들.

SANYO DIGITAL CAMERA어선들이 잡은 수산물들을 하역하는 공판장.

<출처>

  1. 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소, 2017년
  2. 대한민국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2017년

울진 평해황씨 시조단

경북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에 있는 평해황씨시조단이다. 관동팔경 중 한곳인 울진 월송정 소나무숲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에는 평해황씨 시조인 황락의 제단비가 세워져 있으며, 주위에는 재실로 보여는 건물이 여러동 있다. 역사적인 사실이나 오래된 유적지는 아니고 평해황씨 문중에서 시조를 모시는 공간이다.

우리나라 황씨의 시조는 후한의 학사로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가 평해지역으로 흘러들어 신라에 귀화한 황락이라는 인물이다. 실제 문헌 등으로 확인된 내용은 아니지만 황씨의 시조로 여겨지고 있다. 제단비는 조선후기 숙종대에 조성되었으며, 시조단으로 문중에서 신성시 여겨지고 있어 출입을 할 수 없다. 실제 평해황씨 시조는 고려 때 금오위대장군을 역임한 황온인이라고 한다.

SANYO DIGITAL CAMERA울진 평해황씨 시조단. 조선후기 숙종 때 황씨 시조 황락를 기리는 제단이 세워진 곳이다. 문중 시조를 모시는 곳으로 성역화되어 공원처럼 잘 가꾸어져 있다.

SANYO DIGITAL CAMERA이곳은 관동팔경 중 한곳인 월송정을 들어가는 길에 위치하고 있다. 주변이 울창한 송림을 자랑하고 있다. 앞쪽에 평해중학교 등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조선시대 수군만호가 주둔했던 월송진 관아가 있던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시조단 출입문.

SANYO DIGITAL CAMERA연못과 울창한 소나무숲 등으로 깨끗하게 정원이 꾸며져 있다.

SANYO DIGITAL CAMERA재실로 보이는 건물.

SANYO DIGITAL CAMERA관리인이 머무는 건물.

<출처>

  1.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소, 2017년
  2. 위키백과, 2017년

울진 평해 월송정, 관동팔경 유람 중 8번째

경북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에 있는 정자인 월송정(越松亭)이다. 조선시대 사람들이 선망했던 관동팔경 중 한곳이다. 삼국시대 신라 화랑들이 와서 놀았다고 전해지며, 고려말에 처음 정자를 지었으며, 오랜 세월 중건을 거듭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1980년대 옛모습대로 복원한 것이다. 건물은 앞면 5칸, 옆면 3칸으로 4면이 개방되어 있는 2층 누각이다.

관동팔경 유람은 금강산 주변 통천 총석정에서 시장되어 관동팔경은 울진 망양정을 거쳐 이곳 월송정에서 끝이 난다. 겸재 정선이 그린 ‘평해 월송정’을 비롯하여 당시 사람들이 그린 그림에서 보여주는 월송은 지금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옛 그림에는 양쪽에 성벽이 이어어 이곳에 있는 월송진성 성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관동팔경 유람을 떠났던 사람들이 이곳 관아에서 하룻밤 묵을 곳을 추천받았을 것으로 보이며, 이런 연유로 관동팔경으로 손꼽혔던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관동팔경 중 마지막 8번째에 위치한 월송정이다. 현재의 건물은 1980년대에 복원한 것으로 원래 모습과는 다른 전형적인 2층 누각 형태를 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월송정으로 들어가는 길. 주변이 울창한 소나무로 숲을 이루고 있다. 동해안에는 소나무숲이 많기는 하지만 이곳 월송정 주변에는 특히 많아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해안이 내려다 보이는 나즈막한 언덕에 정자가 세워져 있다.

SANYO DIGITAL CAMERA월송정 내부

SANYO DIGITAL CAMERA월송정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 해안이 울창한 소나무숲을 이루고 있으며 그 너머로 동해바다가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바깥쪽에서 본 월송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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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지역 명승지 그림, 19세기, 비단에 색. 월송정이 성문 문루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관동팔경의 제일경인 월송정은 고려시대 이래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즐겨 찾았던 유람지로서 고려시대부터 있었던 정자이다. 중도에 퇴락한 것을 조선 연산군 때에 강원도 관찰사 박원종이 중건하였지만 다시 황폐해져서 1933년에 이고을 사람 황만영.전자문 등이 재차 중건하였고, 일제 말기에 이 곳에 주둔한 일본군에 의해 철거되어 터만 남아 있었다. 그후  1969년에 재일교포로 구성된 금강회의 후원으로 2층 콘크리이트 건물이 세워졌으나 원래의 모습과 너무 달라 해체하였고, 1980년에 현재와 같이 다시 세웠다. 이 정자는 사선이라고 불린 신라시대 영광.술락.남석.안상 등 네화랑이 유람했다는 설화가 남아 있는 유서깊은 곳으로 만그루의 소나무가 십리가 넘는 흰 모래와 어울려 절경을 이루었다고 한다. 월송이라는 이름은 사선이 달밤에 송림에서 놀았던 데서 유래되었다고도 하고, 월국에서 솔씨를 가져다 심었기 때문이라는 향전도 있다. (안내문, 울진군청, 2010년)

<출처>

  1. 안내문, 울진군청, 2010년
  2.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17년

영양 서석지, 조선시대 민간에서 조성한 대표적인 정원

경북 영양군 입암면 연당리에 있는 서석지(瑞石池)이다. 조선중기 광해군 때 정영방이 지은 연못과 정자로 담양 소쇄원과 함께 우리나를 대표하는 민간에서 조성한 정원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연못은 직사각형 형태로 북쪽에 돌출한 사우단을 두고 있다. 연못에는 바닥에 있는 크고 작은 돌들이 섬처럼 솟아 있어 서석지(瑞石池)라 부른다. 북쪽 돌출한 단에는 소나무, 대나무, 매화, 국화를 심어 사우단(四友壇)이라 이름지었다.

연못 북쪽에는 앞면 3칸의 작은 서재인 주일재를, 서쪽에는 큰 정자 건물인 경정((敬亭)을 배치하였으며, 뒷편에는 방과 부엌 등이 있는 살림집을 두었다. 정자가 있는 공간과 살림집은 담장으로 분리하고 있다. 연못과 건물들의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방을 여럿 두고 있어 주택으로 사용할 수 있지만 그 형태로 볼 때 주인이 정자에 머물면서 학문을 연구하고 후학을 양성하면서, 손님이 묵을 수 있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지식인 계층들이 선망했던 관동팔경 유람길에 위치하고 있어 손님이 많았던 시대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영양 서석지. 담양 소쇄원과 함께 민간에서 조성한 정원을 대표하는 곳이다.

SANYO DIGITAL CAMERA소쇄원 연못. 바닥에 있는 암석이 섬처럼 솟아 있는데, 수면 높이에 따라 다양한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연못 북쪽에는 돌출된 단을 쌓아 매.난.국.죽을 심어 사우단이라 부른다. 그 뒷편에 서재인 주일재가 있다. 서석지를 조성할 때 제일 먼저 자리를 잡았던 건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서쪽편에 위치한 앞면 4칸 규모의 큰 정자인 경정. 가운데 대청마루를 두고 양쪽에 온돌방을 배치하였다. 툇마루 앞쪽에 난간을 설치하는 등 조선후기나 구한말 건축양식이 반영되어 있다.

SANYO DIGITAL CAMERA경정 대청마루 내부.

SANYO DIGITAL CAMERA경정 뒷편에는 살림집 형태의 ‘-’자형 건물이 3동 배치되어 있으며, 연못이 있는 공간과는 담장으로 분리되어 있다. 안채 성격의 공간으로도 보이지만 손님이 묵을 수 있도록 온돌방을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 (?)

SANYO DIGITAL CAMERA뒷편에 있는 방과 부엌이 있는 살림집.

SANYO DIGITAL CAMERA남쪽편에 있는 건물. 손님이 묵을 수 있도록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서석지 전경. 마당 한쪽에 수령이 수백년된 은행나무가 있어 공자가 후학을 양성하던 행단을 연상시킨다.

SANYO DIGITAL CAMERA서석지 바깥쪽 마당에도 다양한 수목을 심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영양 서석지
이곳은 조선 광해군 5년(1613)에 정영방 선생이 만든 조선시대 민가의 대표적인 연못이다. 선생은 동래정씨로 호는 석문이고 자는 경보이다. 선생은 정경세 선생에게 배웠고 성라학과 시에 능하였으며, 진사에 합격한 뒤에는 이곳에서 학문 연구로 일생을 마쳤다. 자양산 남쪽 기슭에 자리잡은 이곳에는 연못으 ㄹ중심으로 북쪽에 주일재, 서쪽에 경정, 뒤쪽에 수직사가 있다. 연못 북쪽에는 네모난 단을 만들어 매화, 국화, 소나무, 대나무를 심고 사우단이라 하였다. 연못 동북쪽에서 물이 들어오는 곳을 읍청거라 하고 서남쪽으로 물이 나가는 곳을 토예거라 하였다. 읍청거 쪽에 울툴불통 솟아난 60여개의 서석들은 떄로 물속에 잠기기도 하고 드러나기도 하여 오묘한 정취를 느끼게 해 준다. (안내문, 영양군청, 2014년)

<출처>

  1. 안내문, 영양군청, 201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7년
  3. 한국민족문화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