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Archives: December 21, 2017

영덕 인량마을 용암종택, 선산김씨 김익중 종택

경북 영덕군 창수면 인량마을에 있는 고택인 용암종택이다. 조선후기 영조 때 병조참의를 지낸 선산김씨 김익중이 짓고 살았던 집이다. 건물은 안채와 사랑채가 ‘ㅁ’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사랑채는 앞면 2칸으로 지붕을 높게하였으나 본채와 연결되어 있다. 대문간과 본채 사이에 부속건물들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인량마을은 집성촌인 다른 전통마을과는 달리 안동권씨, 재령이씨 등 여덟성씨가 모여 살았던 전통마을이다. 나즈막한 산자락이 삼면을 둘러싸고 있어 학이 나래를 펼친 형국이라고 한다. 큰 하천인 송천이 마을 앞을 흐르며 그 주위로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다. 충효당, 오봉종택을 비롯하여 비교적 큰 규모의 고택들이 남아 있으며 마을의 규모도 상당히 넓고 큰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영덕 인량마을 용암종택. 병조참의를 지낸 선산김씨 김익중의 종택이다. 마을 다른 종택에 비해 늦은 시기인 18세기에 지어졌다.

OLYMPUS DIGITAL CAMERA문간방이 있는 대문채.

OLYMPUS DIGITAL CAMERA마당에서 본 대문채. 작은 문간방 1칸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대문을 들어서면 보이는 모습.  안마당이 보이는 중문 앞에 담장을 세워 놓았다.

OLYMPUS DIGITAL CAMERA사랑채는 2칸 규모로 지붕을 높게 올린 것 외에는 본채와 연결되어 있다. 온돌방 옆에 작은 사랑방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왼쪽에서 본 모습. 중문 옆에도 툇마루가 있는 작은 사랑방이 있는데, 그 앞에 담장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여자들이 사용하는 공간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중문에서 보이는 안마당. 넓은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방과 부엌들이 배치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왼쪽에서 본 모습. 안채는 마당을 향해 문을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본채와 대문채 사이 넓은 마당. 부속건물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OLYMPUS DIGITAL CAMERA마당 한쪽편 초가지붕을 하고 있는 창고.

OLYMPUS DIGITAL CAMERA담장 바깥쪽에 있는 별채로 보이는 건물. 부엌이 있는 것으로 볼 때 분가하기 전 후손들이 임시로 사용하던 건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영덕 인량마을 전경. 넓은 영해평야의 생산력을 기반으로 여덟 성씨가 모여 살았던 전형적인 양반마을이다.

영덕 인량리 용암종택
이 건물은 통정대부 병조참의를 지낸 용암 김익중의 종택으로, 영조 4년(1728)에 건립하였다고 한다. 원래 대문간과 정침 사이 좌우로 부속건물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 이 건물만 남아 있다. 정면 5칸, 측면 5칸반의 ‘ㅁ’자형 건물이며, 사랑채의 지붕을 높게 팔작지붕으로 하여 다른 건물과는 달리 격을 높혔다. 안채 안방 위쪽으로 고방을 두고 고방 왼쪽으로 대청을 향해 곳간을 1칸 돌출시킨 것이 특색이다. (안내문, 영덕군청, 2017년)

<출처>

  1. 안내문, 영덕군청, 2017년
  2. 영덕군 군지, 2017년
  3.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7년
  4. 한국민족문화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7년

영덕 인량마을 처인당, 영양남씨 종택터에 남아 있는 건물

경북 영덕군 창수면 인량마을에 있는 고택인 처인당이다. 영양남씨 입향조가 살았던 곳으로 지금은 정자 건물만 남아 있다. 건물은 앞면 4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데 가운데 2칸 큰 대청마루를 두고 양쪽에 1칸씩 온돌방을 두었다. 마을의 다른 종택과 마찬가지로 집주인이 후학을 양성하면서 손님을 접견하는 공간으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인량마을은 집성촌인 다른 전통마을과는 달리 안동권씨, 재령이씨 등 여덟성씨가 모여 살았던 전통마을이다. 나즈막한 산자락이 삼면을 둘러싸고 있어 학이 나래를 펼친 형국이라고 한다. 큰 하천인 송천이 마을 앞을 흐르며 그 주위로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다. 충효당, 오봉종택을 비롯하여 비교적 큰 규모의 고택들이 남아 있으며 마을의 규모도 상당히 넓고 큰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영덕 인량마을 처인당. 마을 영양 남씨 입향조가 살았던 곳에 남아 있는 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건물은 앞면 4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데, 가운데 넓은 대청마루를 두고 있어 서원이나 향교의 강당건물과 비슷한 외형을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처인당’적힌 현판이 걸려 있는 대청마루. 서까래가 드러나 보이는 연등천장을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멀리서 보이는 처인당.

OLYMPUS DIGITAL CAMERA영덕 인량마을 전경. 넓은 영해평야의 생산력을 기반으로 여덟 성씨가 모여 살았던 전형적인 양반마을이다.

<출처>

  1. 안내문, 영덕군청, 2017년
  2. 영덕군 군지, 2017년
  3.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7년
  4. 한국민족문화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7년

영덕 인량마을 삼벽당, 마을 영천이씨의 종택

경북 영덕군 창수면 인량마을에 있는 고택인 삼벽당이다. 조선중기 관찰사를 역임한 이중량의 종택으로 충효당종택, 오봉종택과 함께 마을을 대표하는 고택이다. 이중량은 예천출신으로 영해부사를 역임하면서 선정을 베풀었다고 하며, 후손들이 이곳에서 터를 잡고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건물은 본채와 사랑채가 ‘ㅁ’자형을 이루고 있는데 지붕을 높게 하여 웅장한 느낌을 주고 있다. 사랑채 뒷편에는 사당이 있다. 조선중기에 처음 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후대에 여러차례 수리한 것으로 보인다.

인량마을은 집성촌인 다른 전통마을과는 달리 안동권씨, 재령이씨 등 여덟성씨가 모여 살았던 전통마을이다. 나즈막한 산자락이 삼면을 둘러싸고 있어 학이 나래를 펼친 형국이라고 한다. 큰 하천인 송천이 마을 앞을 흐르며 그 주위로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다. 충효당, 오봉종택을 비롯하여 비교적 큰 규모의 고택들이 남아 있으며 마을의 규모도 상당히 넓고 큰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영덕 인량마을 삼벽당. 마을 영천 이씨의 종택으로 조선중기에 처음 지어졌다고 한다. 후대 크게 수리한 것으로 보이며 지붕을 높게 지어 크고 웅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사랑채는 앞면 3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데 왼쪽에 넓은 사랑마루를 두고 있는데, 난간이 있는 누마루 형태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사랑채.

OLYMPUS DIGITAL CAMERA중문 왼쪽 날개채에는 다른 고택과는 달리 작은 사랑방을 바깥 방향으로 두고 있지 않다.

OLYMPUS DIGITAL CAMERA안채도 기단을 높게 쌓고 건물을 올렸다. 대문을 들어서면 고개를 들어 대청마루를 올려 보게 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사랑채 뒷편에 있는 사당.

OLYMPUS DIGITAL CAMERA오른쪽에는 분가한 후손이 살았던 것으로 보이는 작은 고택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영덕 인량마을 전경. 넓은 영해평야의 생산력을 기반으로 여덟 성씨가 모여 살았던 전형적인 양반마을이다.

영덕 삼벽당
삼벽당은 조선중기의 문신인 하연공파 이중량(1504~1582년)의 종택이다. 이중량은 농암 이현보(1467~1555년)의 넷째 아들로 1528년에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그 후 식년시에서 병과로 급제하여 내외의 여러 관직을 거쳐 선조 3년(1570) 강원도 관찰사에 임명되었다. 건물의 평면은 ‘ㅁ’자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침의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5칸반으로 구성되어 있고, 중문칸 좌측 사랑채에 정면2칸, 측면 2칸의 사랑마루가 설치되어 있다. 삼벽당은 조선 중기에 건립한 것으로 전하여 오고 있으며, 주요 구조부의 치목수법이 정교하며, 특히 대청 배면에 설치된 판문의 중간설주의 흔적은 옛 치목수법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안내문, 영덕군청, 2017년)

<출처>

  1. 안내문, 영덕군청, 2017년
  2. 영덕군 군지, 2017년
  3.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7년
  4. 한국민족문화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7년

영덕 인량마을 만괴헌, 신부자집으로 불렸던 부호의 큰저택

경북 영덕군 창수면 인량마을에 있는 고택인 만괴헌이다. 충효당종택과 함께 마을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19세 지역 부호였던 신재수가 이곳에 있던 집을 사들여 크게 확장하였다. 신재수는 영해향교에 건물 중수에 크게 기여하는 등 부호로서 지역에서 큰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이며, 마을에서는 신부자집으로 불렸다고 한다. 다른 종택처럼 고택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만괴정이란 정자를 별도로 두고 있다.

건물은 ‘ㅁ’자형 구조를 하고 있으며 앞면 7칸, 옆면 7칸의 상당히 큰 규모의 한옥이다. 중문 왼쪽에 앞면 3칸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사랑채를 두고 있는데, 지붕을 높게 하여 격을 높이고 독립된 건물처럼 보이게 하고 있다. 안채는 대청마루가 3칸 규모로 상당히 큰 편이며, 마루 천장을 상당히 높게 만들었다.

인량마을은 집성촌인 다른 전통마을과는 달리 안동권씨, 재령이씨 등 여덟성씨가 모여 살았던 전통마을이다. 나즈막한 산자락이 삼면을 둘러싸고 있어 학이 나래를 펼친 형국이라고 한다. 큰 하천인 송천이 마을 앞을 흐르며 그 주위로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다. 충효당, 오봉종택을 비롯하여 비교적 큰 규모의 고택들이 남아 있으며 마을의 규모도 상당히 넓고 큰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인량마을 뒷편 전망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고택인 만괴헌.

OLYMPUS DIGITAL CAMERA사랑채는 앞면 3칸 규모로 독립된 건물 형태를 하고 있으며, 사람채에서 영해평야 들판을 내려다 볼 수 있어 정자의 기능도 함께 할 수 있도록 지어졌다.

OLYMPUS DIGITAL CAMERA안채를 출입하는 중문. 중문 앞에 낮은 담을 쌓아 방문하는 사람들이 안채 내부를 잘 볼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반면에 안채 마루에 앉아 있으면 드나드는 사람들이 잘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 중문 옆 날개채에는 외양간과 작은 사랑역할을 하는 온돌방을 두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본채 옆면. 부엌 출입문과 안방 출입문이 있다.  집안 여자들이 생활하는 공간을 뒤마당에 장독대가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만괴헌 안채. 3칸규모 큰 대청마루가 있는데, 안주인이 앉아 드나드는 사람들을 지켜보던 곳이다. 천장을 일반 한옥보다 높게 만들어 넓어 보이면서, 개방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마루 좌.우측에 있는 방에는 별도 천장이 만들어져 있다.

SANYO DIGITAL CAMERA대청마루 옆 안방.

SANYO DIGITAL CAMERA왼쪽편 날개채. 온돌방과 부엌 등이 있다.

SANYO DIGITAL CAMERA바깥쪽에서 본 모습. 마당을 출입하는 문을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만괴헌에서 20~30 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정자인 만괴정. 부호였던 만괴헌 주인이 마을의 다른 종택처럼 별도의 정자를 지었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아래쪽에서 보이는 만괴헌 전경.

OLYMPUS DIGITAL CAMERA영덕 인량마을 전경. 넓은 영해평야의 생산력을 기반으로 여덟 성씨가 모여 살았던 전형적인 양반마을이다.

영덕 만괴헌
이 건물은 19세기에 개축한 건물로 보이며, 영해지역에서 많은 공로를 세운 만괴헌 신재수의 호를 따서 당호로 사용하게 되었다. 정침은 정면 7칸, 측면 7칸의 규모가 큰 편으로, 전면 왼쪽으로 사랑공간을 둔 ‘ㅁ’자형 건물이다. 조선후기의 가옥 변천사를 잘 보여주는 주거용 건축물로서, 안방 뒷부분 도장방과 상방 앞쪽의 퇴간 구성은 이 지방 ‘ㅁ’자형 주택의 전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 (안내문, 영덕군청, 2017년)

<출처>

  1. 안내문, 영덕군청, 2017년
  2. 영덕군 군지, 2017년
  3.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7년
  4. 한국민족문화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