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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청풍 망월산성, 삼국시대 남한강변에 쌓은 산성

충북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에 있는 망월산성이다. 망월산(해발 373 m) 정상부를 돌로 둘러 쌓은 테뫼식 산성으로 둘레는 495 m이다. 삼국시대 한강유역을 장악하기 위해 신라와 고구려가 치열한 접전을 벌이던 시기에 쌓은 산성 중 하나이다. 성벽은 대부분 옛 모습을 추정하여 복원한 것이지만 서남쪽에는 원래 쌓았던 석축의 원형이 잘 남아 있다. 성벽을 쌓은 양식이나 형태가 보은 삼년산성과 비슷하며, 신라가 쌓은 산성으로 보인다.

망월산성은 죽령 고갯길 아래에 위치한 단양과 중요 거점이었던 충주의 중간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원래는 남한강이 돌아 흐르는 지역이었으나, 지금은 청풍호가 망월산성을 감싸고 있다. 망월산의 높이는 그리 높지는 않지만, 남북으로 흐르는 남한강이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오고가는 배들과 주변지역을 감시하기 좋은 지형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삼국시대 고구려와 신라가 쌓은 여주 파사산성, 충주 장미산성, 단양 적성산성과 온달산성과 비슷한 성격의 산성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제천 청풍 망월산성. 남한강 내륙수운 주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는 삼국시대 산성이다. 남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망월산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청풍 문화재단지에서 망월산성으로 오르는 길.

OLYMPUS DIGITAL CAMERA산성 성문 아래에서 보이는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성문은 원래 모습은 아닌듯하고 출입이 편리하도록 계단을 쌓았다.

OLYMPUS DIGITAL CAMERA성벽은 중간 크기의 돌을 다듬어 촘촘히 쌓았다. 남서쪽에 남아 있는 성벽을 참조하여 복원한 것으로 보이는데 신라가 쌓은 대표적인 산성인 보은 삼년산성과 비슷한 양식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성벽은 폭이 상당히 넓은 편이며, 조선시대 산성과는 달리 여장을 두고 있지 않다.

OLYMPUS DIGITAL CAMERA성벽 위에는 방어를 위해 목책을 쌓아두는 전통적인 산성의 모습을 재현해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산성 안 망월산 정상부에 있는 작은 정자.

OLYMPUS DIGITAL CAMERA성벽의 높이는 높은 곳이 4 m 정도이며, 경사진 지형과 성벽이 더해져 공략하기 쉽지않은 요새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망월산 정상 정자에서 내려다 보이는 산성 내부. 약간의 평지가 있지만 공간은 넓지 않은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망월산성 정상에서 내려다 보이는 남한강(하류방향), 아래에는 충주댐 건설로 수몰된 청풍도호부 관아가 있는 곳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남한강 상류 방향. 아래쪽에 청풍문화재단지가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청풍문화재단지에서 보이는 망월산성.

OLYMPUS DIGITAL CAMERA남한강 북쪽에서 보이는 망월산성

청풍 망월산성,
이 산성은 옛 청풍소재지의 동남쪽에 위치한 망월산의 정상부를 둘러싼 작은 규모의 석축산성이다. 둘레는 500 m이며, 높이는 가장 높은 곳이 약 4 m이다. 청풍문화재 단지에 인접되어 있으며, 본래는 남한강이 돌아 흐르고 있었으나, 지금은 청풍호가 감싸고 있어 경관이 수려하다. 청풍은 삼국시대 사열이현이며, 신라 문무왕 13년(673)에 사열이산성을 늘려 쌓았다고 하였으나 이와 관련이 있는지 알 수 없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성황산과 <충청도읍지>의 태산이 군의 동쪽 3리에 있다고 하여 이 산성임을 짐작케 할 뿐이다. 최근에 성벽을 보수하고 있다. (안내문, 제천시청, 2011년)

<출처>

  1. 안내문, 제천시청, 2011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8년

제천 청풍 한벽루(보물 528호), 대표적인 조선시대 관아 누각

충북 제천시 청풍면 읍리 청풍문화재단지에 있는 한벽루(寒碧樓, 보물 528호)이다. 고려말 청풍현이 군으로 승격한 것을 기념하기 하여 관아 객사 옆에 처음 세워졌다. 현재의 건물은 조선후기 인조 때 다시 세운 것이다. 관아가 있던 지역이 충주댐 건설로 수몰되면서 남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으로 옮겨졌다. 관동팔경 유람길 마지막 행선지 중 한곳으로 죽령을 넘어 단양군을 지나 이 곳에 묵으면서 남한강 경치를 감상했던 것으로 보인다.

건물은 앞면 4칸, 옆면 3칸의 주심포계 양식의 누각으로 사방이 개방되어 있으며, 건물 오른편에 앞면 3칸의 계단식 익랑을 두고 있다. 지금은 볼 수 없지만 추사 김정희가 쓴 현판이 걸려 있었고, 내부에는 우암 송시열과 김수증이 쓴 편액이 있었다고 한다. 밀양 영남루, 남원 광한루와 함께 계단식 익랑을 두고 있는 조선시대 관아 부속 건물로 쓰였던 누각을 대표하는 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제천 청풍 한벽루(보물 528호). 청풍도호부 관아 객사 옆에 세워졌던 대표적인 조선시대 관아 누각 건물이다. 관아에서 주최하는 각종 연회와 행사가 치러졌던 공간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누각은 앞면 4칸 규모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데, 사방이 뚫려 있는 개방적인 구조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누각으로 오르는 계단으로 지어진 익랑. 밀양 영남루, 남원 광한루에서 볼 수 있는 구조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익랑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누각 마루에서 본 익랑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누각내부. 넓은 대청마루만 있는 간결한 구조이다.  내부에는 송시열.김수증이 쓴 편액과 추사 김정희가 쓴 편액이 걸려 있었다. 관동팔경 유람을 떠났던 선비들이 이곳을 찾아 많은 글을 남겼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내부에 걸려있는 글이 적혀 있는 액자.

OLYMPUS DIGITAL CAMERA누각에서 내려다 보이는 남한강 풍경. 원래 위치는 아니지만 현재 위치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이 빼어나다.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청풍 한벽루.

OLYMPUS DIGITAL CAMERA청풍문화재단지 내 망월산성에서 내려다 본 청풍 한벽루와 관아 건물.

제천 청풍 한벽루, 보물 528호
이 건물은 고려 충숙왕 4년(1317)에 청풍현이 군으로 승격되자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관아의 부속건물이었다. 1972년 대홍수로 무너진 것을 1975년 원래의 양식대로 복원하였다. 이 루는 석축토단의 자연석 주초석 위에 기둥이 배가 부른 엔타시스 수법을 쓴 층 아래 기둥을 세우고 마루를 설치하였으며, 정면 4칸 측면 3칸으로 팔작지붕에 주심포계 양식이다. 누의 우측에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으로 된 계단식 익랑(대문간에 붙여 지은 방)을 달았다. (안내문, 제천시청, 2011년)

<출처>

  1. 안내문, 제천시청, 2011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8년

제천 청풍 응청각, 청풍도호부 관아 객사에 딸린 작은 정자

충북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 청풍문화재단지에 있는 작은 정자인 응청각(凝淸閣)이다. 청풍도호부 관아 객사 누각이었던 한벽루(보물 528호) 옆에 있던 것을 충주댐 건설로 수몰되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관아에서 주최하던 각종 연회에 이용되었던 한벽루와는 달리 응청각은 조선시대 중요 교통로에 있었던 청풍도호부를 방문하는 고위 인사들이 묵었던 숙소로 보인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이며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2층 누각 형태의 정자이다. 아래층은 흙벽으로 막혀 있으며, 창고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2층에는 마루와 온돌방이 있다. 응청각이라는 이름은 퇴계 이황선생이 단양군수로 있을때 지어준 이름이라 한다. 언제 처음 세워졌는지 알 수 없지만 현재의 건물은 19세기에 다시 지어진 것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제천 청풍 응청각. 2층 누각형태의 건물로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이다. 왼쪽 2칸은 온돌방, 오른쪽 1칸은 마루로 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아래층은 흙담으로 막아 놓고 있는데 온돌방에 불을 때는 온돌시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오른쪽에 내부로 들어가는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정자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정면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모습. ‘관수당(觀水堂)’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제천 청풍 응청각
이 건물은 용도는 알 수 없으나, 본래 한벽루의 좌측에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처음 세운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명종 초 이황이 단양군수로 있을 때 ‘응청각’이라 이름하였다고 한다. 인조 15년(1637)에 충청감사 정세규의 일기에 응청각에서 유숙한 기록이 있다. 고종 37년(1900)에 중수하였다. 본래 청풍면 읍리 203-1번지에 있었으나 충주댐 건설로 1983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복원하였다. 2층 누각으로 아래층은 토석축의 담으로 벽을 막고, 그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집이다. 건물 좌측에 목조계단을 만들어 2층으로 오르내리게 하였다. (안내문, 제천시청, 2011년)

<출처>

  1. 안내문, 제천시청, 2011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

제천 물태리 석조여래입상(보물 546호), 통일신라 양식이 남아 있는 고려초기 불상

충북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 청풍문화재단지에 있는 석조여래입상(보물 546호)이다. 청풍도호부 관아가 있던 읍리에 있었는데, 충주댐 건설로 수몰되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고려초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당시의 서민적 미륵불상과는 달리 통일신라 말의 세련면서도 힘이 있는 조각수법이 남아 있다. 반면에 비사실적인 손의 표현, 형식적의 주름 등 고려초의 쇠퇴한 불상 조각수법도 같이 보여주고 있다.

삼국시대 이래 영남지방의 관문인 죽령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었던 청풍지역의 번성했던 과거를 잘 보여주는 유물이다. 고려시대에는 주요 교통로나 경관이 좋았던 지역에 큰 사찰들이 있었는데, 청풍 지역에는 큰 사찰이 남아 있지 않다. 이 불상의 존재로 볼 때는 이곳에서 어느 정도 규모의 사찰이 고려시대에 존재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제천 물태리 석조여래입상(보물 546호). 고려초기에 조성된 불상으로 청풍지역 대광사라는 사찰입구에 있던 것을 현재의 위치로 옮겨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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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은 높이 3.3 m의 비교적 큰 규모로 통일신라 말의 세련된 조각수법이 남아 있지만, 비사실적인 손의 표현 등 고려초 불상의 특징도 가지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얼굴과 상체부분. 얼굴은 사각형에 후덕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옷은 어꺠를 감싸고 있는데 신체 윤곽이 거의 드러나 있지 않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좌위에 올려진 두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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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청풍문화재단지 내 보호각에 모셔진 불상.

청풍 석조여래입상, 보물 546호,
이 불상은 높이가 341 cm이고, 전체적인 조각 양식으로 볼 때 통일신라 말기(10세기경)의 작품으로 보인다. 불상의 얼굴 모양은 풍만하고 자비로운 상으로 두툼한 양볼에 인중이 뚜렷하고 두 귀는 양어깨까지 드리워졌다. 목에는 삼도가 새겨져 있으며, 왼손은 땅을 가리키고 있다. 옷은 통견의(양어깨를 덮은 법의)를 걸치고 안에 속내의를 받쳐입고 있으며, 배에서 매듭을 지어 V자형으로 겹겹이 대좌에까지 내려왔다. 충주댐 건설로 수몰지인 청풍면 읍리에서 1983년 이곳으로 옮겨 복원하였다. (안내문, 제천시청, 2011년)

<출처>

  1. 안내문, 제천시청, 2011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

제천 수산 지곡리고가, 선비계층이 살았던 작은 규모의 한옥

충북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 청풍문화재 단지에 있는 수산 지곡리 고가이다. 충주댐 건설로 수몰된 수산면 지곡리 마을에 있던 가옥을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자존심이 높았던 선비계층 가옥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가옥은 안채, 곡간채, 행랑채로 구성되어 었다. 안채는 ‘ㄱ’자형으로 지어진 팔작기와집이며, 문간채와 곡간채는 초가를 얹은 ‘-’자형 건물로 간소하게 지었다. 남녀구별을 강조해서 안마당은 출입문과 담장으로 곡간채가 있는 바깥마당과 공간을 분리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제천 수산 지곡리 고가. 충주댐 건설로 수몰된 남한강 근처 마을에 있던 선비계층이 살았던 크지 않은 규모의 고택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문간채. 초가지붕을 하고 있는 ‘-’자형 건물로 대문과 창고로 구성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문간채 내부. 마당을 바깥에서 볼 수 없도록 벽으로 막아 놓았으며 ‘ㄱ’자로 꺾어서 출입하도록 되어 있다. 양반가옥에서 주로 볼 수 있는 형태이다. 안마당으로 출입할 수 있는 작은 출입문을 별도로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곡간채가 있는 바깥마당. 곡간채는 ‘-’자형 초가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사랑채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안채 건너방 앞에도 작은 툇마루를 두고 있어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바깥마당에 있는 화장실로 보이는 작은 건물.

OLYMPUS DIGITAL CAMERA안채가 있는 안마당과 곡간채가 있는 바깥마등은 판자로 만든 담장으로 공간을 분리하고 있으며, 작은 출입문을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가족들이 생활공간인 안채. 1칸짜리 작은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온돌방이 배치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안마당 앞 문간채는 광으로 사용하고 있다. 소를 키우던 외양간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뒷마당에서 본 안채. ‘ㄱ’자형 건물로 부엌을 크게 사용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부엌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안주인이 생활하는 안방.

OLYMPUS DIGITAL CAMERA안채 뒷마당쪽으로 툇마루를 두어 여자들이 생활하면서 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뒷마당 장독대.

OLYMPUS DIGITAL CAMERA대청마루 뒷편에도 출입문과 툇마루를 두고 있다. 여자들이 사용하는 뒷마당이 꽤 넓은 편이다.

수산 지곡리 고가
이 집은 본래 수산면 지곡리 웃말에 있던 민가주택이다. 충주댐의 건설로 1985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복원한 것이다. 집의 구조는 안채와 사랑채, 행랑채로 이루어져 있다. 안채는 ‘ㄱ’자형의 팔작 기와집이며, 사랑채와의 사이를 담장으로 경계를 이루고 사랑채로 연결하는 판문을 달아 출입하도록 꾸며져 있다. 사랑채와 행랑채는 ‘-’자형의 초가로 되어 있다. 행랑채는 대문간 우측으로 와양간, 방앗간을 이루고 다락을 꾸미고 있다. 이 집의 행랑채의 구조 및 부엌의 배치 등은 지곡리 마을의 특징 있는 일반형이라고 할 수 있다. (안내문, 제천시청, 2011년)

<출처>

  1. 안내문, 제천시청, 2011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