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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특별전, 옛 중국인의 생활과 공예품] 의례 속 음악과 곡예

의례에 등장하는 악기를 연주하거나 곡예를 하는 부분은 의례나 연회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며 그 흔적은 우리나라의 궁중연회나 종묘제례악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중국 한대화상석이나 벽화 등에서는 악기를 연주하는 장면이나, 곡예를 하는 장면 등을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장례의식이나 사후세계에 대한 중국인의 의식을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불교가 전래된 남북조시대 이후에는 서역과 중국의 문화가 융합되면서 새로운 중국적인 문화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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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씨 등 13명이 세운 조상비, 수 개황2년(582). 중국 수나라 때 조성된 불비상이다. 중국의 비석 형식이 불교에 채용되는 형태로 6세기 남북조시대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당나리 비석 형식이 확립되는 수.당대까지 크게 유행했으며 불상과 비석의 성격을 같이 가지고 있는 형태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생(笙), 비파(琵琶), 피리(笛), 횡적(橫笛), 곡경비파(曲頸瑟琶)를 연주하는 장면. 불비상을 봉안하는 불교행사를 반영하고 있는 부분으로 우리나라 석탑 등에서도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오른쪽에 있는 조상비는 수대 582년에 진씨를 비롯한 불교 신도 13명이 건립한 것이다. 앞면 중간부분에는 생과 비파, 피리, 횡적, 곡경비파를 연주하는 키 작은 속인들과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무용수를, 그 아래에는 불보살상과 향을 올리는 공양자를 조각했다. 이 기악잡기 장면은 북위대부터 조상비를 완성한 후 공양자들과 승려가 재회(齋會)를 열면서 치뤘던 봉안 행사를 반영한다. 이러한 공연은 불교의례에 장엄함을 더할 뿐만 아니라, 참여한 사람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는 오락적인 측면도 지녔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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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양자행렬과 장대타기 곡예 장면, 두연화.관아이 등 조상비, 북위 529년, 보스톤미술관)

4월 4일, (장추사,長秋寺) 불상이 행상을 나갔는데 악을 물리치는 사자가 그 앞을 인도하였다. 한쪽에서는 칼을 삼키거나 불을 토하고 말을 몰았으며, 다른 쪽에서는 장대를 오르거나 줄을 타는 등 평소에 보기 어려운 기이한 묘기들을 벌였다. 불상이 멈춘 곳에서는 구경하는 사람들이 담을 여러 겹 둘러싸듯 많아서 서로 밟거나, 뛰어넘어 죽는 자가 항상 생겼다.
『낙양가람기』 권1 성내 창추사조

무릇 중부 인도에서는 이나라(마가다국)의 도성인 파련불읍이 제일 컸다. 매년 건묘월의 8일에는 항상 행상을 행했다. 사륜마차를 만들고 감실에는 모두 좌불이 있고 보살이 서서 시위하고 있었다. 행상일이 되면 경내의 도속이 모두 모여들어 기악을 부르고 연주하며 꽃과 향으로 공양을 올렸다. 그리고 바라문이 와서 불상을 초청하면 불상은 차례차례 성내로 들어와 하룻밤을 묵었다. 그날 밤에는 밤새 등을 켰고 기악으로 공양했다.
『고승법현전』, 마갈제국조

OLYMPUS DIGITAL CAMERA목이 구부러진 비파(곡경비파, 복원품)

목 부분이 구부러진 비파로, 네 줄의 현이 있는 사현비파로 당비파로도 불린다. 이 비파는 6세기 무렵에 서아시아로부터 북주(557~581년)로 전래된 것으로 원래 특별히 연주법이 정해져 있지 않아 나무조각으로 자유로이 연주했으며 당나라 때부터 손가락이나 골무를 끼고 탔다고 전한다. 이에 반해 다섯줄의 현이 있는 오현비파는 중앙아시아의 구자국(쿠차)에서 중국에 전래된 비파로 ‘구자비파’라 불렸는데, 곧은 목의 형태여서 직경비파로도 불렸다. 직경비파는 우리나라에 삼국시대때 전래되어 향비파라 불리웠으며, 일본 쇼소인에 그 예가 남아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불교의례와 다양한 공연
옛 중국인들은 불교의 숭배 대상을 상(像)으로 만드는 것이 극락왕생을 위한 공덕을 쌓는다고 믿었다. 또한 이 공덕을 죽은 조상에게 양도하는 회향도 가능하다고 여겼다. 이런 목적으로 제작된 불교 조상(造像)들은 승려가 주도하는 의식인 재회를 거쳐 신성성을 갖추게 되었다. 북위 시기(385~534년)에는 재회나 행상, 곧 장식된 가마에 불상을 안치하고 거리를 행차하는 의식을 행할 때 다양한 부대 행사가 열렸다. 각종 악기를 연주하며, 이국적인 옷을 입은 이방인들이 장대타기, 줄타기 같은 곡예를 하고 눈을 속이는 마술 공연을 선보였다. 이런 의례와 함께 거행된 잡기(雜技) 행사는 인도에서 전래된 것으로, 당시 구경꾼들이 구름처럼 모일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OLYMPUS DIGITAL CAMERA 춤과 곡예를 그린 그림(乐舞杂技画像, Image of Dancer and Acrobats), 동한, 지난시 출토, 중국 산동성박물관. 춤과 곡예를 그린 화상석이다. 상당히 큰 규모의 잔치를 기록한 그림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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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과 곡예를 그린 그림(乐舞杂技画像, Image of Dancer and Acrobats), 동한, 텅저우시(滕州市)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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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사와 곡예를 그린 그림(伎乐杂技画像, Image of Musicians and Acrobats), 동한, 쟈상현(嘉祥县) 출토.

OLYMPUS DIGITAL CAMERA악기연주와 춤 장면, 당 746년, 산시성 시안 소사욱묘

OLYMPUS DIGITAL CAMERA악기를 연주하거나 춤추는 인물 도용, 송

한대부터 악기를 연주하는 도용을 의장용으로 매장하는 풍습이 있었다. 주악은 이러한 주악용이나 벽화나 화상전에 주악대를 그리는 방식으로 표현되었으며 고분 미술에서 중요한 요소였다. 한 조를 이루는 주악용은 4명의 연주자와 4명의 무용수로 구성되었다. 즉 모자를 쓴 2명의 남자, 큰 관모 머리를 한 2명의 여자, 상투머리를 하고 피리 부는 3명의 연주자, 박을 치는 1사람이 한 조를 이루고 있다. 모든 사람은 줄무늬 옷을 입고 여자들은 갈색 앞치마 위에 외투와 긴 치마를 입은 차림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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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을 든 인물 도용,북조

무덤 속 주악 장면
음악은 다양한 의례나 연회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중국의 무덤에서는 벽화나 화상석, 화상전, 도용 등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주악 장면이 나타난다. 한대 이래로 오랫동안 여러 무덤에서 주악 장면은 대개 죽은 사람의 초상 부근에 배치된 행렬도나 신하들의 배알도와 함께 등장하거나, 또는 주악용으로 표현된다. 이런 장면은 고인 생전의 연화와 행렬 의식, 또는 사후의 장례의식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5~6세기에 조성된 남조(420~589년)의 등현묘나 금가촌묘의 화상전에서는 무덤에서 벌인 나례(儺禮) 의식 또는 천상세계로 향하는 행렬과 함께 주악대가 등장하는데, 이는 장례의식에서의 주악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2. 안내문, 중국 산동성박물관, 2013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옛 중국인의 생활과 공예품] 한대화상석에 표현된 신화.고사와 의례

화상석(画像石)은 중국의 건축물이나 능묘의 석재에 그림을 새겨 넣은 것이다. 한무제때 장건이 서역과의 실크로드를 개척한 이후 불교를 비롯한 서역의 문화가 중국으로 급격하에 유입되던 후한(後漢)때 크게 유행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림의 내용은 신화나 상스러운 동물, 역사적인 사건이나 인물, 무덤의 주인이 살았던 모습, 농경을 비롯한 생산활동의 모습 등이 그려져 있다. 화상석에 그려진 그림들은 당시의 예술적인 경향과 수준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당시 사람들이 살았던 모습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016년 겨울 “옛 중국인의 생활과 공예품”이라는 제목의 특별전을 개최하였다. 전시에서는 옛 중국인들이 생활모습 등이 표현된 한대화상석 탁본을 중심으로 그림에서 표현된 예기, 무기, 생활용품 등을 전시했다.

OLYMPUS DIGITAL CAMERA무씨사당 화상석탑본, 동한, 진시황이 사수에서 솥(鼎)을 건지는 장면을 표현한 장면이다. 하늘로부터 받은 천자의 권위를 강조하기 것으로 한대 화상석에 자주 등장하는 그림이다.

“(진)시황이 재계를 마치고 사당에서 기도한 후 사수에서 주나라 정을 건지고자 하였다. 사람 천명을 강으로 보내 정을 구하고자 하였으나 얻지 못하였다. ” – 『사기』 진시황본기 -

오른쪽에 있는 무씨사(武氏社) 화상석 탑본은 전국을 통일한 진시황이 정통성을 증명하기 위해 사수에 빠진 정(鼎)을 건지려 했으나 얻지 못했던 고사를 묘사했다. 아래쪽에는 배를 탄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장대로 정을 밀어올리고 그 좌우에 줄지어 선 신하들이 줄을 당겨 정을 끌어올리는 장면이다. 그러나 정 안에서 용이 나와 줄을 끊으려 하고 있어 결국 진시황이 정을 건져내지 못했음을 암시한다. 이처럼 9정은 중국 고대 왕조의 천자에게 정통성과 천명의 상징으로서 ‘하늘의 뜻’을 의미하는 상서로운 물건이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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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수에서 주나라 솥을 건지는 장면(泗水捞鼎画像), 주공(周公)이 성왕을 돕는 장면(周公辅成王), 공자가 노자를 만나는 장면(公子见老子画像石)을 그린 화상석, 동한, 중국 산동성박물관, 사마천의 『사기(史期)』 「진시황본기」에는 주나라 솥을 찾지못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한대 화상석에는 솥(鼎)을 건져올리는 장면이 많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한대 화상석묘(大街画像石墓) 출토 유물, 중국 산동성박물관, 2005년 지난시 창칭현(长清县) 대가(大街)에서 동한대 화상석묘가 발굴되었다. 이곳에서 출토된 화성석에는 호한전쟁, 출행(出行), 수렵(狩猎), 고사(古事) 등의 내용이 그려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고기삶는 청동 솥, 청동도철문정, 상(商), 고대 중국에서 천자의 권위를 상징하는 예기인 솥(정, 鼎)이다. 『주례』에 따르면 천자는 12개 또는 9개의 솥을 사용했다고 한다. 예기는 고대 이래로 우리나라 조선시대까지도 『주례』에 따라 종묘제례 등에 사용하였다.

정은 양쪽으로 손잡이가 있고 몸체 아래로 다리가 있는 형태의 그릇으로, 중국 고대의 제사와 연회에서 육류를 담아 끓이는 데 사용하였다. 지배층의 신분과 권위를 상징하는 중요한 기물이여서, 주대(周代)에 천자는 12개 또는 9개의 정을, 제후는 7개, 대부는 5개, 원사는 3개 또는 1개의 정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전한다(『주례』, 『춘추공양전』), 그릇 앞뒤에는 상상 속의 무서운 괴수의 모야을 본뜬 도철무늬를 장식했다. 솥의 테두리 안 쪽에는 ‘子’자 형태의 글자를 새겼는데, 이는 이 솥을 소유했던 제후나 유력자를 지칭하는 것일 것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OLYMPUS DIGITAL CAMERA곡식을 담는 청동 그릇(簋), 청동궤, 서주. 궤(簋)는 음식을 담는 그릇으로 손잡이가 두개 붙은 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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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 술그릇(尊), 청동 도철문 준, 서주. 준(尊)술을 담는 그릇으로 술잔 또는 술통으로 사용되는 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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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 술잔(고, 觚), 청동고, 상. 술을 담거나 술을 마시던 잔으로 입이 나팔모양으로 생겼다.

술잔 고는 술을 담아 놓았던 용기이면서 술을 마시던 잔이기도 하다. 나팔모양의 고는 오래된 예기 중 하나로 얼리터우(二里頭) 문화에서 도제(陶製)가 사용되었고 상대에 청동제의 고가 유행하였다. 상말기 무덤에서 많이 출토되는데, 작(爵)과 짝을 이뤄 신분이 높을 수록 많이 매장되었다. 이 술잔의 아래와 가운데에는 상상 속의 무서운 괴수 모양을 본뜬 도철 무늬를, 위에는 파초무늬를 장식했고, 바닥 안쪽에는 명문을 새겼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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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 술그릇(호, 壺), 청동호, 상

신화.고사와 의례
9개의 정(鼎, 세발솥)은 육류를 삶거나 끓이는 데 쓰였다. 신화에 따르면 하(夏, 약 기원전 2000~1600년)의 우왕(禹王)은 중국 전체를 나눈 9개의 주, 곧 구주(九州)의 제후들이 바친 구리로 9개의 거대한 정을 만들었다. 이후 9정은 천자(天子)가 가지는 권력의 상징으로서 패권을 노리는 자에게 야망의 대상이 되었다. 기원전 255년 진(秦)의 소왕(昭王 )은 주(周, 기원전 1046~256)를 치고 수도 낙양에서 9정을 손에 넣었다. 그러나 진의 수도 함양으로 9정을 옮기다가 하나를 사수(泗水)에 빠뜨렸다고 전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OLYMPUS DIGITAL CAMERA고대 중국에서 사용되었던 수레. 수레는 기원전 10세기 이전부터 일반적으로 사용되었으며 기원전 13세기에 만들어진 수레가 발굴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 청동 수레굴대 끝, 한.

OLYMPUS DIGITAL CAMERA 청동 수레굴대 끝, 한,

OLYMPUS DIGITAL CAMERA청동 수레굴대 끝, 한,

OLYMPUS DIGITAL CAMERA청동 일산살 끝 꾸미개, 한

OLYMPUS DIGITAL CAMERA청동 일산살 끝 꾸미개, 한

중국 고대의 수레
중국에 현전하는 최고의 수레는 기원전 13세기로 추정되는 허난성(河南省) 안양의 거마갱(車馬坑) 유적에서 발굴되었다. 기원전 1600년경 은나라가 70대의 전차와 6,000명의 군사로 하나라를 멸망시켰다는 기록에서 보듯이 수레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수레는 신분 고하를 불문하고 일상생활에서 널리 쓰였다. 기원전 221년에 중국 역사상 최초의 통일왕조를 세운 진시황은 중앙집권 정택을 추진하면서 문자, 도량형, 화폐 등과 함께 수레의 크기도 통일시켰다. 아울러 전국적인 도로망을 정비한 후, 수레를 타고 전국을 순행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OLYMPUS DIGITAL CAMERA무씨사당 화상석탑본, 대나의례.신인의 출행.수렵, 동한. 역귀를 쫓기 위해 무기를 들고 곰으로 분장한 모습이 있는 대나의례(大儺儀禮) 장면을 포함하여  4가지 장면이 표현되어 있다.

  • 제1단(아래쪽), 힘 센 장사들이 맨손으로 나무를 뽑고 맹수를 때려잡는 수렵 의례 장면
  • 제2단, 매년 섣달에 궁정에서 역귀를 쫓아내기 위해 치르던 대나(大儺) 의식 장면
  • 제3단, 바람주머니를 부는 풍백(風伯)과 북을 치며 벼락을 내리는 뇌공(雷公), 항아리를 기울여 비를 내리는 우사(雨師) 등의 행렬, 그리고 망치와 정으로 벼락을 맞는 죄인의 장면
  • 제4단, 신인이 용차를 타고 떠나는 장면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대나의례(大儺儀禮) 이야기
한대(漢代) 궁정에서는 매년 섣달에 귀신이 두려워하는 나신(儺神, 역귀를 쫓는 신)으로 분장하여 악귀를 쫓아내는 대나의례를 행했다. 왼쪽에 있는 무씨사 화상석 탑본을 보면 제2단 오른쪽 끝에서 두 번째에 있는 인물이 대나의례에서 나신의 역하를 하던 방상씨(方相氏)이다. 『주례』, 『후한서』에 의하면 방상씨는 눈이 넷인 곰 가면을 쓰고 검은 옷과 붉은 치마를 입으며, 꺾창과 방패를 휘두르고 적환(赤丸, 붉은 콩)과 오곡을 뿌리면서 역귀를 몰아내었다고 전한다. 탑본에서도 방상씨는 곰처럼 꾸미고 손발에는 칼과 꺾창(戈), 방패와 활을 들고, 머리에는 쇠뇌를 맨 위협적인 모습이다. 그 뒤를 따르는 인물들이 적환과 오곡을 병과 그릇에 담아 뿌리고 무기를 휘두르며 악귀를 쫓아내고 있다. 오른쪽 끝에는 곰으로 분장한 인물이 악귀를 삼키고 있다. 대나의례에 등장하는 다양한 무기는 무서운 질병과 재난을 떨쳐버리려는 벽사의 상징이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OLYMPUS DIGITAL CAMERA청동 꺾창, 청동 과(戈), 전국시대. 고대 전투에서 말이 끄는 전차에서 사용하기에 적합한 무기로 한반도에서도 출토되고 있다. 전투에서 전차가 사라지면서 꺾창도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양손에 들고 전차와 서로 비켜 지나가면서 싸울 때 사용하는 전투용 무기로 ‘과’라고도 부른다. 뾰족하게 생긴 보통 창으로 상대방을 찌르는 것보다는 꺾창을 사용하는 편이 공격력면에서 훨씬 뛰어났기 때문이다. 긴 막대에 연결한 꺾창은 전차에 탄 병사가 주로 사용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OLYMPUS DIGITAL CAMERA청동칼, 청동검, 춘추전국

OLYMPUS DIGITAL CAMERA청동 쇠뇌 발사장치(부장용), 청동 활 끝 부속, 철 화살촉, 한. 석궁으로도 불리는 발사장치가 있는 쇠뇌이다. 긴 사거리와 사용의 편리성, 강력한 파괴력 등으로 유목민들을 상대할 때 유용했던 무기이다. 화살 장전에 시간이 걸리기때문에 동양에서는 점차 그 효용성이 떨어져 많이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쇠뇌는 방아쇠를 사용하여 화살을 발사하는 활이다. 전국시대에 최대 사정거리가 약 810 m나 되었다고 할 만큼 보통의 활보다 화살을 더 멀리 보낼 수 있었다. 또한 화살의 속도가 빨라 목표물을 뚫는 힘이 훨씬 강력했고, 현을 당길 떄만 힘을 사용하기 떄문에 사수는 현을 당겨 화살을 활 위에 얹은 후 적을 조준하는데 집중할 수가 있었다. 쇠뇌가 크게 효과를 발휘하게 된 것은 기동력이 뛰어난 북방이나 서방의 유목 민족의 기병과 싸울 때였다. 기병들이 가진 활의 사정거리 밖에서 기병들을 먼저 제압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OLYMPUS DIGITAL CAMERA청동 쇠뇌 발사장치, 한. 방아쇠가 있는 석궁 발사장치로 고대 전투에서는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던 무기이다.

쇠뇌의 발사장치(機)이다. 아(牙)는 당긴 현을 걸기 위한 돌기 부분이고, 아보다 더 높이 솟아 있는 망산(望山)은 조준기 역할을 한다. 현도(顯刀)는 오늘날의 총의 방아쇠에 해당된다. 우(牛)는 현이 걸려 있는 아가 밑으로 처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부품으로 현도가 이 우를 받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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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회를 묘사한 전돌, 한, 한고조 유방과 초패왕 항우가 중원의 패권을 다투었던 시기의 유명한 장면인 홍문연을 묘사한 것으로 보이는 그림이다.

화상전(畵像塼)에 나타난 연회 장면
두 남자가 마주 앉아 술잔을 기울이는 장면이 5단에 걸쳐 반복되어 있는 화상전이다. 이 장면을 통해 고대인들이 연회에서 술을 즐기던 모습과 더불어 당시 사용하던 기물을 살펴볼 수 있다. 가운데 앉아 있는 두 사람은 소매가 넓은 상의와 통 넓은 바지를 입었는데 뒤쪽에는 칼이 한 자루씩 놓여 있다. 왼쪽 사람은 무사의 무관(武冠)을 썼고 오른쪽 사람은 문관의 진현관(進賢冠)을 썼다. 배경에는 왼쪽부터 손잡이가 달린 청동 술병(鐎尊)과 귀달린 잔(耳杯), 술단지(樽), 술을 푸는 국자(勺), 상위에 음식을 담은 넓으 접시와 꼬치 같은 안주가 보인다. 두 문무관이 칼을 지닌 채 술자리를 갖는 묘한 회합의 장면은 진말기 항우와 유방이 함양 쟁탈을 둘러싸고 홍문에서 칼춤을 보며 연회를 벌인 홍문연(鴻門宴) 고사를 연상시킨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OLYMPUS DIGITAL CAMERA청동 술그릇(초준, 鐎尊), 한. 연회 중 술을 데우면서 먹을 수 있는 술그릇이다.

배가 부르고 목이 가는 병의 형태에 잔 모양의 뚜껑을 얹은 술그릇이다. 이러한 형태의 청동기에 ‘초준’이라는 명문이 있는 예가 있다. 다리가 있는 형태와 음식을 데우는 그릇인 초두(鐎斗)의 ‘초’가 이름에 들어가 있어, 아마도 술을 넣고 숯불로 데펴서 따뜻하게 마시는 ‘준(樽)’의 한 종류로 생각된다. 목 주변에는 “홍가鸿嘉”라는 글자를 새겼다. 언급된 홍가 원년은 기원전 20년에 해당된다. (안내문, 2016년)

OLYMPUS DIGITAL CAMERA칠기 국자(작, 勺), 서한, 귀달린 칠기 잔(耳杯), 동한

OLYMPUS DIGITAL CAMERA청동 술단지(준, 樽), 한,

술을 담아두고 술잔에 덜어 먹는 데 사용한 단지이다. 이 술단지에서 국자를 이용하여 작은 술잔에 술을 담는 장면은 한대 화상전과 화상석에 종종 등장한다. 이 술단지는 몸통이 솥 모양인 것과 원통 모양의 두 종류가 있고, 한대에는 금 또는 청동으로 만들었다. 또 이 술단지 중에 ‘온주준溫酒樽’이라는 명문이 새겨진 것도 있어, 술단지에 술을 넣고 단지 아래에 숯을 놓아 술을 데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옛 중국인의 생활과 공예품
중국 화상석이나 회화에서 우리는 오늘날과는 다른 모양의 그릇에 술이나 음식을 담아서 제사를 지내고 연회를 여는 옛 사람들의 모습을 본다. 그리고 엄숙한 종교 또는 장례 의식을 치루면서 악기를 연주하고 곡예를 하는 장면도 발견한다. 또한 도용에서는 이채로운 옷을 갖춰 입고 한껏 멋을 부리고 있는 사람을 본다. 모두 오래전 중국 사람들의 생생한 삶의 모습이다. 이번 전시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옛 중국의 청동그릇, 화상전, 도용, 화장용구를 역사적 사건과 신화, 의례, 풍습과의 연관성 속에서 살펴본다. 중국의 옛 문화재에 대한 단순한 감상을 넘어 당시의 사회와 문화상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2. 안내문, 중국 산동성박물관, 2013년
  3. 미술대사전(용어편), 한국사전연구사, 199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