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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특별전, 옛 중국인의 생활과 공예품] 여인들의 생활

중국은 당나라 때 서역의 영향을 받아 화려하면서도 다양한 금속제 그릇과 생활용품 등이 수입되거나 직접 만들어 사용하였다. 지금도 남아 있는 당나라 유물들 중에는 수준높은 공예품들이 있으며, 이는 한반도에도 전해져 삼국과 통일신라 무덤에서는 당시 수입되거나 만들어진 유리나 금속공예품들이 출토되고 있어 당시의 문화교류를 보여주고 있다. 이때 전해전 공예품의 형태는 중국 문화와 융합되어 도자기 등으로 만들어졌다.

OLYMPUS DIGITAL CAMERA당나라 궁정 여인들의 생활모습을 그린 그림.

OLYMPUS DIGITAL CAMERA꽃무늬 금도금 은합, 당

OLYMPUS DIGITAL CAMERA원앙무늬 은합, 당

OLYMPUS DIGITAL CAMERA손잡이 달린 은잔, 당

OLYMPUS DIGITAL CAMERA사자.꽃무늬 금도금 은접시,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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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넝쿨.동물무늬 은병, 당. 고려시대 청자나 은으로 만든 정병에서 볼 수 있는 형태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넝쿨.새무늬가 새겨진 굽다리 은잔, 당

당대에는 실크로드를 통해 접하게 된 서아시아 문화의 영향으로 다양한 형태와 기법의 금은제 그릇들이 제작되었다. 몸체 가운데가 홀쭉하고 아래에 각이 지고 위는 벌어진 형태에 원형의 손잡이가 달린 잔은 소그드지역의 은잔을 본뜬 것이다. 당대에 소그드 상인들이 활발한 상업활동을 하면서 서아시아의 다양한 그릇들이 당으로 수입되었다. 당나라 사람들 사이에서 이국풍이 선풍을 일으키면서 서아시아풍의 그릇도 제작, 사용하였다. 은이나 은에 금도금을 한 손잡이잔, 굽다리잔, 꽃모양 접시 등은 서아시아 그릇에서 영향을 받아 제작된 것들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OLYMPUS DIGITAL CAMERA여인이 거울을 보며 화장하는 모습, 고개지, 여사잠도, 동진, 영국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9개의 소합을 담은 화장렴, 전한, 마왕퇴 1호묘

OLYMPUS DIGITAL CAMERA금.은으로 장식한 화장품 칠그릇, 동한. 큰 합 속에 다양한 내용물이 들어있는 작은 그릇들이 보관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화장품 그릇을 담았던 용기 뚜껑. 몸체에 동물과 인물 등 다양한 무늬를 얇은 금박과 은박을 붙여서 장식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화장품 그릇을 담았던 용기.

OLYMPUS DIGITAL CAMERA길게 생긴 화장품 그릇. 동물무늬 등으로 장식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작은 크기의 그릇

OLYMPUS DIGITAL CAMERA작은 크기의 그릇

OLYMPUS DIGITAL CAMERA작은 크기의 화장품 그릇.

한대의 화장품그릇 중 고급품은 대개 칠기 위에 채색을 칠하고 금은으로 화려하고 정교하게 장식을 하였다. 칠기는 삼베와 같은 직물을 심으로 하여 그 위에 여러 번 칠하여 만든 건칠 기법으로 제작되어 가볍고 단단하다. 칠기의 표면에는 광물성 적색 안료인 진사로 유려한 구름무늬를 그렸고 광물성 황색 안료인 석황으로 강조하는 부분을 칠했다. 그리고 몸체에는 상중하 3단으로 은띠를 붙이고 동물과 인물, 마름모 모양의 무늬는 얇은 금박과 은박으로 붙여서, 까만 칠을 바탕으로 무늬가 하얗고 노랗게 반짝이도록 하였다. 장식 무늬는 동물을 사냥하는 수렵문인데, 다양한 동물과 사수, 선인이 등장해서 흥미롭다. 코끼리, 낙타, 호랑이, 사슴, 승냥이 등이 활보하고 말을 타고 활시위를 겨누는 사수, 그리고 긴 머리를 날리며 걷는 선인을 묘사했다. 이처럼 고대인이 상상했던 선계의 모습으로 무늬를 장식한 예는 한대의 칠기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OLYMPUS DIGITAL CAMERA은으로 장식한 화장품 칠그릇, 동한

OLYMPUS DIGITAL CAMERA화장품 그릇

OLYMPUS DIGITAL CAMERA나무빗

OLYMPUS DIGITAL CAMERA발이 굵은 나무빗, 발이 가는 나무빗

OLYMPUS DIGITAL CAMERA구리거울. 고대 사회에서 제사장의 권위를 보여주는 예기였던 거울이 전국시대를 지나면서 화장용구로 바뀌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글씨를 새긴 한나라의 거울이다. 거울의 꼭지를 둘러싸며 다음과 같은 내용의 26자를 새겼다. 구리로 거울을 만들어 옷차림을 밝게 비추고 용모를 단정히 한다는 내용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OLYMPUS DIGITAL CAMERA쇠가위, 쇠족집게,

여인들의 생활: 화장용구
여인들의 화장 문화는 선진(先秦)시대부터 발달하였다. 한대에는 서역에서 전해진 호분(胡粉)과 연지를 포함한 다양한 화장법이 유행하였다. 화려하고 섬세한 화장용구들이 지금까지 전해진다. 여러 개의 작은 화장용품을 넣은 그릇을 화장렴이라 하며, 보통 칠기에 색을 칠하고 금속으로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내부는 상하층으로 나누어 아래에는 화장 재료와 족집게, 빗, 작은 가위 등을 담았고 위에는 거울을 얹었다. 큰 화장렴에는 다양한 도구와 재료를 구분해 담을 수 있는 여러 개의 작은 합을 오밀조밀하게 갖추어 넣었다. 한대 마왕퇴 1호묘에서는 작은 합이 각각 5개, 9개 들어 있는 화장렴이 출토되었다. 9자렴에는 타원형의 작은 합 2개에 백색 화장분이, 원형의 작은 합 4개에는 연지와 분첩, 화장분과 가발이 담겨 있다. 말굽형 소합 1개에는 발이 가는 빗과 굵은 빗이, 장방형 소합 2개에는 화장용 기름과 바르는 도구가 담겨져 있었다. 이러한 화장도구는 이미 한나라 때 화장 문화가 상당히 발달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OLYMPUS DIGITAL CAMERA2016년 겨울 열렸던 “옛 중국인의 생활과 공예품” 특별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대 중국사회를 보여주는 유물들을 모아 기획한 작은 전시회였다.

OLYMPUS DIGITAL CAMERA유물이 전시된 전시공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옛 중국인의 생활과 공예품] 당나라 호풍의 유행

고대 이래 중국인의 복식은 품이 넓은 상의와 치마로 구성된 형태였다. 전국시대 이래로 말이 끄는 전차의 역할이 줄어들고 말을 타고 싸우는 기마풍습이 정착되면서 말을 타기 편리한 북방 유목민들의 복식이 널리 사용되었다. 전시에만 사용되는 호복이라 불렸던 복식은 남북조시대를 거치면서 일상생활은 물론 공식행사에 입는 조복에도 사용되었다. 이런 복식은 당나라를 거쳐 한반도로 전해지면서 통일신라 이래 전통복식으로 자리잡으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남북조시대 이후 무덤에 부장품으로 묻힌 인형인 도용에서 당시 사람들이 입었던 복식을 간접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문관과 무사 도용, 북조

죽은 자를 받들어 모시기 위하여 무덤에 부장되는 문관과 무사 복장의 도용이다. 북조의 허베이성 징현 봉씨묘의 도용과 같은 형식으로 모두 호복 차림이다. 호복은 전국시대에 말 위에서 활을 쏘는 궁술과 함께 기마에 편한 복장이 북방 유목문화로부터 유입된 것으로, 바지와 길이가 짧은 상의를 의미한다. 북조에서는 이러한 고습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유행하여 평상복과 조복으로 입을 만큼 정착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OLYMPUS DIGITAL CAMERA호복입은 인물 도용,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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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복입은 관리 도용, 당

원령포(圓領袍)에 복두를 쓴 인물 도용이다. 둥근 깃의 옷은 남북조시대 이래로 중국의 복식에 도입된 선비족의 의복 형식이다. 원령포는 수대에 관리들이 왕의 행차 수행 때 입는 융의가 되었다.원령포는 당대가 되면 그 편리성 때문에 천자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상복으로 입었으며 조복으로도 착용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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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인 도용,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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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인 도용,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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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인 도용,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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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옷입은 무사 도용, 당, 허난성 뤄양 출토

OLYMPUS DIGITAL CAMERA둥근 깃의 원령포를 입고 말타고 사냥하는 장면, 장훤, 곽국부인 유춘도, 랴오닝성박물관

짧은 상의와 바지의 도입과 확산
중국인은 전통적으로 품이 넓은 상의와 치마로 이루어진 의복을 입었다. 전국시대에 유목민족의 기마풍습이 들어오면서 말 타기에 편한 옷, 즉 소매가 좁고 길이가 짧은 상의 ‘습褶’과 바지 ‘고袴’를 한족이 입기 시작했다. 이처럼 ‘고습’으로 대표되는 중국 북방과 서방 이민족의 복식을 ‘호복胡服’이라고 한다. 호복은 활동하기에 편하여 한족 사회에서 점차 공식 복장으로서 자리 잡았다. 전한대에는 근신(近信)과 무사가 고습을 입었고, 진대(264~419년)에는 천자를 비롯해 문무백관이 비상사태 때 입는 계엄복이 되었다. 이후 남조에서는 관리가 사냥나갈 때, 왕의 행차 수행 때 입는 융복으로 고습을 착용했다. 한편 북조에서는 고습이 더욱 성행하여 일상복은 물론 조복으로도 입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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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복의 여인, 당, 신장 투루판 이스타나고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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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를 든 남장 여인 도용, 당

손에 매를 들고 사냥하고 있는 인물이다. 북방민족의 옷인 호복을 입고 복두를 쓴 남장 여성이다. 매사냥은 당대 여성들의 대표적인 야외 오락이었다. 옷깃을 양쪽으로 열어젖힌 번령포를 입었고 허리에는 여러 물품을 드리운 첩섭대를 둘렀는데 이는 돌궐의 복제에서 유래된 것이다. 외래문화에 개방적이었던 당대에는 호풍이 이국 양식의 대명사로 여겨져 여성을 포함하여 민간에서 매우 유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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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탄 여인 도용, 당, 허난성 뤄양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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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탄 여인 도용, 7~8세기, 당, 신장 투루판 출토

투루판 무덤에서 출토된 점토제 기마여인상이다. 말 위의 여인은 당대의 전형적인 여인상을 보여주는데, 양 볼이 도톰한 얼굴에 이국품의 화장법으로 단장한 모습이다. 이마에는 꽃무늬를 장식하는 화전을 붙였고 눈썹을 반달 모양으로 가늘고도 길게 까맣게 그렸다. 광대뼈 바깥 쪽에 초승달 모양으로 사홍을 그려 넣었고 입술에는 당대에 유행했더너 자단색, 즉 자홍색으로 ‘앵두같이 작은 입’으로 붉은 연지를 발랐다. 『구당서』 여복지에는 당 초기에 궁정부인이 가리개를 드리운 모자를 쓰고 말을 타는 풍습이 크게 유행하였음을 전하고 있다. 이 기마인물용은 머리부분에 긁힌 자국이 많은 것으로 보아 원래는 모자를 쓰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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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 도용, 당

당나라 여인들의 호풍(胡風)
‘호胡’는 중국의 북방과 서방의 이민족을 말하며, ‘호풍’은 이러한 이민족이 풍습을 가리킨다. 호풍은 특히 당대에 크게 유행하였다. 왕실부터 민간에까지 호무(胡舞)를 즐기게 되면서, 당대 여인들 사이에서는 호녀(胡女)가 아름답다고 생각했고 호풍의 복장과 화장을 즐겨 모방했다. 또한 이민족의 풍속에 영향을 받아 여인들이 남장하는 것도 유행이었다. 궁에서 시작된 여인들의 남장이 점차 서민 여인들에게까지 유행하였다. 또한 당대 여인들은 화려하게 화장한 얼굴을 더 이상 감추지 않고 노출한 채 호모(胡帽)를 쓰고 남자처럼 차려입은 복장으로 말 타기를 즐겼다.

“말을 타는 궁녀들은 모두 호모를 썼고, 남자의 의복과 장화를 신었으며 존비내외 모두과 일관되었다.” 『구당서』 여복지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당나라의 호풍과 문화 융합
당대 조정은 고조(재위 618~626년)가 무덕령(武德令, 621년), 태종이 의복령(衣服令, 630년)을 내려 호복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황제에서 서민에 이르기까지 고습(짧은 상의와 바지) 착용이 널리 확산되었다. 당대 사람들은 유목 민족이 즐겨 입던 옷깃을 양쪽으로 열어젖힌 번령포(翻領袍)에 비지를 입고서 한식 모자인 복두를 즐겨 썼다. 당 조정은 이민족에 대한 개방정책으로 이민족이 고유의 문화 특성을 유지하면서 중국에서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왔다. 또한 개방적인 성향의 당나라 사람들은 ‘호풍’과 같은 이민족의 문화를 편견없이 포용하고 즐겼다. 그 결과 당은 특유의 국제적인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

“음악은 호곡(胡曲)을 존중하고 귀인의 식사는 호식(胡食)으로 올리며, 남녀 할 것 없이 다투어 호복을 입었다.” 『구당서』 여복지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호풍의 다양한 예

OLYMPUS DIGITAL CAMERA동위 550년, 여여공주묘 출토 도용, 팔을 끼지 않은 채 걸치는 덧옷인 피풍(被風)을 입고 합환모(合歡帽)를 쓴 인물

OLYMPUS DIGITAL CAMERA당, 이스타나 무덤 출토 토제용, 차양이 있는 모자에 베일을 드리운 유모(㡏帽)를 쓰고 승마를 즐기는 여인들

OLYMPUS DIGITAL CAMERA당, 위동묘 선각화, 옷깃을 양쪽으로 열어젖힌 번령포와 줄무늬 바지를 입은 여인

OLYMPUS DIGITAL CAMERA당, 영태공주묘 벽화, 좁은 소매의 상의인 유(褕)와 긴치마 장군(長裙)을 입고 소매가 짧은 덧옷인 반비(半臂)와 그 위에 짧은 숄 피백을 두른 여인

OLYMPUS DIGITAL CAMERA당, 위욱묘 선각화, 둥근 깃의 원령포에 한식 모자인 복두를 쓰고 홀을 든 관리

OLYMPUS DIGITAL CAMERA털모자인 혼탈모(渾脫帽), 옷길을 양쪽으로 열어젖힌 번령포와 바지, 여러 물품을 매달았던 허리
당, 위옥묘 선각화, 일본 덴리산코칸 소장 도용, 띠인 첩섭대, 신화 화(靴)를 착용하고 손에 매를 든 남장여인

OLYMPUS DIGITAL CAMERA첩섭대, 요, 내몽고 적봉

OLYMPUS DIGITAL CAMERA당나라에서 유행한 이국풍 화장법

OLYMPUS DIGITAL CAMERA당나라에서 유행한 이국풍 화장법

  1. 백분(白粉): 호녀처럼 얼굴을 하얗게 분으로 단장. 특히 이마, 콧등, 턱 부위에 흰색을 더 칠하는 삼백법(三白法)이 유행
  2. 미대(眉黛): 광물인 석대나 나대 가루를 물에 풀어 까만 눈썹을 그림
  3. 화전(花鈿): 이마에 꽃 또는 원형, 깃털같은 장식을 붙임
  4. 액황(額黃): 머리털 언저리를 황색으로 칠함
  5. 홍분(紅粉): 뺨에 붉은 칠을 함
  6. 면엽(面靨): 보조개에 연지로 작은 점을 찍음
  7. 사홍(斜紅): 관자놀이 부분에 초생달 모양으로 붉게 칠함
여자는 이민족 부인이 되어 이민족 화장을 배우고, 기생은 호나라 음악을 들여와 서역 음악에 힘쓰네. 이민족 음악과 기마와 화장 풍속은 오십년 동안 끊임없이 중원에 전해졌네. 원진(779~831년), <법곡(法曲)>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