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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가흥리 암각화,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새겨놓은 바위그림

경북 영주시 가흥동에 있는 암각화이다. 마애여래삼존상(보물 221호)이 새겨진 바위 아래에 새겨진 것으로 높이 1 ~ 1.5 m, 너비 4.5 m 정도이다. 바위에 도구로 쪼아 새긴 방법을 사용한 것으로 3 ~ 5개의 선을 연결하고 있는데 청동기시대에 새겨진 것으로 보인다. 고령 장기리 암각화(보물 605호)의 얼굴그림을 변형하여 표현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 의미는 알 수 없다. 암각화란 선사시대 바위나 동굴벽면에 기호나 물건, 동물 등을 새겨 놓은 것으로 풍요와 생산을 기원하는 주술행위의 결과로 보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영주 가흥리 암각화. 청동기시대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되며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제의 활동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고령 장기리 암각화처럼 큰 하천이 내려다 보이는 바위에 새겨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그림은 얼굴모양을 간략화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 내용은 알 수 없다.

OLYMPUS DIGITAL CAMERA암각화가 새겨진 큰 바위. 위쪽에 통일신라 때 조성한 것으로 보이는 마애여래삼존상이 있다. 지역에서 큰 의미를 갖는 장소였던 것으로 보인다.

영주 가흥리 암각화, 경북 영주시 가흥동
이 암각화는 내성천의 지류인 서천이 영주시 서편을 따라 남쪽으로 흐르다가 다시 서남쪽으로 굽어도는 지점에 있다. 가흥리 마애삼존불상과 같은 암반의 남쪽 수직 석벽에 새겨져 있으며 1989년에 발견되었다. 그림이 새겨진 암벽은 거친 화강암질로 높이 약 4 m, 폭이 5 m가 넘는 꽤 큰 규모이다. 암벽은 상하로 구분되는데, 암각화는 하단부에 있으며, 전체 암각화가 차지하는 규모는 높이 1.5 m, 길이 4.5 m 정도이다. 검포형의 암각화가 점차 도식화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며 청동기 시대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암벽에 신앙의 대상물을 새기고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던 제의 장소로서의 특징이 나타난다. (안내문, 영주시청, 2017년)

<출처>

  1. 안내문, 영주시청,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8년

영주 가흥동 마애여래삼존상 및 여래좌상(보물 221호)

경북 영주시 가흥동에 있는 마애여래삼존상 및 여래좌상(보물 221호)이다. 영주시 도심 서쪽을 남북으로 흐르는 서천이 내려다 보이는 바위에 새긴 마애삼존상과 작은 여래좌상이다. 삼존상는 큼직한 체구의 본존불을 중심으로 양쪽에 협시보살이 새겨져 있다. 본존상은 큼직한 코, 다문입, 둥글고 살찐 얼굴 등에서 강인함을 보여주고 있다. 보살상은 둥글고 원만한 얼굴을 하고 있는데 남성적인 느낌을 주고 있는데, 오른쪽 보살상은 보관을 쓰고 보병을 들고 있다. 삼국시대 삼존불상의 형식을 따르면서도 사실적이며 생동감이 넘치는 통일신라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옆에 있는 여래좌상도 크기는 작지만 생동감이 넘치며 조각수법도 양호한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영주 가흥동 마애여래삼존상 및 여래좌상(보물 221호). 영주 도심을 남북으로 흐르는 서천이 내려다 보이는 바위에 새겨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애여래삼존상(보물 221호). 삼국시대 삼존불상 양식을 따르면서도 사실적이며 생동감이 넘치는 통일신라 불상의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마애삼존여래좌상. 입체감있게 표현한 통일신라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2003년 새로 발견된 마애여래좌상.

OLYMPUS DIGITAL CAMERA불상이 새겨진 바위. 아래쪽에는 삼한시대에 새겨진 것으로 보이는 암각화가 있다. 예로부터 이 지역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졌던 곳으로 보인다.

영주 가흥동 마애여래삼존상 및 여래좌상, 보물 221호, 경북 영주시 가흥동
이 불상은 커다란 자연 화강암벽을 쪼아서 가운데 넓은 면에는 앉아 있는 형상의 본존을, 좌우에는 서 있는 형상의 협시보살을 조각하였다. 가운데 본존상은 상당히 큰 체구로 백발의 머리 위에 큼직한 상투 모양이 표현되어 있다. 얼굴을 팽팽한 뺨, 큼직하고 듬직한 코, 꽉 다문 입 등으로 장중하면서도 활력이 넘친다. 왼쪽 보살상은 가슴이 넓고, 왼팔은 어깨 위로 걸치고 오른팔을 배에 댄 표현 등에서 남성적인 느낌이 든다. 오른쪽 보살상은 비슷한 수법으로 표현되었지만, 보관에 보병이 묘산된 점이나 두 손을 모으고 있는 점은 다르다. 만들어진 시기는 7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 2003년에 새로이 발견된 여래좌상은 목에 삼도가 뚜렷하며 전체적으로 생동감을 느끼게 하는 우수한 작품이다. (안내문, 영주시청, 2017년)

<출처>

  1. 안내문, 영주시청,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8년

영주 무섬마을, 물위에 떠 있는 섬처럼 생긴 아름다운 전통마을

경북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에 있는 전통마을인 무섬마을이다. 조선후기 반남박씨 박수가 터를 잡고 마을을 개척했으며, 그의 증손사위 선성김씨 김대가 들어와 살면서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이 마을을 휘감고 돌아나가서 마치 섬처럼 보인다고 하여 ‘무섬마을’이라고 부른다. 선비들을 많이 배출한 전형적인 양반마을로 구한말에는 주민 500여 명이 살았을 정도로 번성했지만 지금은 작은 시골마을로 남아 있다.

마을에는 반남박씨 종택인 만죽재와 선성김씨 종택인 무송헌, 가장 큰 규모의 저택인 해우당을 비롯하여 격식을 갖춘 ‘ㅁ’자형 가옥, 경북 북부지방에서 주로 볼 수 있는 까치구멍집, 서민들이 살았던 작은 규모의 초가집 등 다양한 형태의 가옥들이 남아 있다. 가옥들은 대부분 마을 뒷산을 등지면서 내성천을 향해 서남향을 하고 있다. 또한 마을의 형상이 물위에 떠있는 배와 같다고 하여 마을에는 우물을 두고 있지 않다고 한다. 마을을 들어오는 다리인 수도교가 생긴 1979년 이전에는 좁은 외나무다리를 이용해서 마을을 들어갈 수 있었는데, 이 외나무다리가 마을을 대표하는 경관을 만들어 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건너는 다리인 수도교 앞에서 보이는 무섬마을. 내성천이 마을을 휘감으며 흐르고 있다. 내성천이 있는 서남쪽을 향해 배산임수의 지형을 잘 갖추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무섬마을 모형. 마을에는 농토가 없으며 마을 앞 내성천을 건너는 외나무다리가 유일한 통로였다.

OLYMPUS DIGITAL CAMERA1979년에 세워진 수도교.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북쪽에는 작은 정자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산실이었던 아도서숙이 있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수도교를 건너면 첫번째로 볼 수 있는 고택인 김성규가옥이다. 독립운동가 김성규가 살았던 집으로 시인 조지훈의 처가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에 분가하면서 지어진 집으로 홍수 피해을 입어 폐가가 되었다가 최근에 복원되었다. 지금은 식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입구에 있는 해우당고택. 마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저택으로 구한말 고위관리를 지낸 김낙풍이 지은 집이다. 사랑채에는 흥선대원군이 친필로 쓴 ‘해우당’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해우당고택 뒷편 골목길 안쪽에 있는 큰규모의 고택인 주실고택.

OLYMPUS DIGITAL CAMERA주실고택 맞은편에 있는 최근에 수리하여 지은 것으로 보이는 집.

OLYMPUS DIGITAL CAMERA주실고택 뒷편으로 들어가는 골목길.

OLYMPUS DIGITAL CAMERA해우당고택에서 마을로 들어가면 볼 수 있는 고택.

OLYMPUS DIGITAL CAMERA수춘재라 불리는 비교적 큰 규모의 고택. 다른 가옥과는 달리 사랑채가 맞배지붕을 하고 있으며 툇마루를 넓게 만들어 누마루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사랑채 기둥이 원기둥 모양을 하고 있으며, 종택 가까이 있는 것으로 볼 때 고위직을 지낸 인물이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수춘재 옆에 있는 섬계고택. 섬계는 무섬마을을 대표한는 인물로 손꼽히는 박제익의 호이다. 지금은 선성김씨 김동근가옥으로 되어 있는데 그와 관련된 집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섬계고택 안쪽에 있는 만죽재고택이다. 반남 박씨 입향조인 박수가 17세기에 마을로 이사오면서 처음 자리잡은 종택을 마을 중심부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웅장하지는 않지만 종택답게 간결하면서도 격식을 갖추고 있는 고택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종택 뒷편에는 섬계 박제익이 후학을 양성하고 학문을 교류하던 섬계초당이 있다. 그 앞쪽에는 선성김씨 종택에 있는 사당이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섬계고택과 만죽재고택 뒷편에 있는 집들.

OLYMPUS DIGITAL CAMERA만죽재고택 앞에 있는 6칸 규모의 작은 까치구멍집.

OLYMPUS DIGITAL CAMERA만죽재고택 앞쪽에 있는 무송헌종택이다. 선성김씨 입향조인 김대가 터를 잡고 살았던 곳이다. 세종 때 천문학자로 큰 업적을 남긴 무송헌 김담(1416~1464년)의 종손(?)이어서 무송헌종택이라 부른다. 고택 뒷편에는 김담을 비롯한 불천위 조상을 모시는 사당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무송헌종택을 들어가는 골목길.

OLYMPUS DIGITAL CAMERA골목길 왼쪽에 있는 오헌고택. 큰 규모의 저택으로 병조참판을 역임한 박제연의 후손이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골목길 오른쪽에 있는 농당고택.

OLYMPUS DIGITAL CAMERA만죽재고택에서 안쪽으로 들어가면 볼 수 있는 김덕진가옥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김덕진가옥 옆에 있는 김위진가옥. 비슷한 규모의 큰 저택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김위진 가옥 옆쪽에 있는 작은 규모의 초가집. 안방과 사랑방이 한건물에 있는데 담장으로 공간을 분리하고 있다. 분가한 후손이 살았던 집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앞쪽에 있는 까치구멍집인 김규진가옥.

OLYMPUS DIGITAL CAMERA앞쪽에 있는 큰 규모의 고택. ‘오당’이라 걸린 현판이 걸려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중심부 앞쪽에 있는 김정규가옥이다.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로 마을에 있는 6칸 까치구멍집에 비해 규모가 확장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남쪽편으로 제방길. 아래에 무섬마을의 역사를 보여주는 전시관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남쪽편 제방에서 보이는 마을 풍경.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앞에 있는 제방길. 내성천과 함께 한적한 시골마을 경치를 더해주는 아름다운 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제방길에서 내려다 보이는 외나무다리이다. 내성천이 마을을 휘감고 돌아 마치 섬같은 지형을 하고 있는 무섬마을과 외부를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였던 다리이다. 다리는 길이 약 150 m, 폭 20 ~25 cm, 높이 60 cm로 한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다리이다. 옛스런 고택들이 모여있는 무섬마을을 운치있게 만들어주는 아름다운 다리로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풍경을 자랑하는 곳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다리 중간에 비껴다리를 만들어 마주 오던 사람이 비껴갈 수 있게 만들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외나무다리에서 보이는 마을 풍경.

영주 무섬마을, 경북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
이 마을은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과 서천이 마을 동쪽 500 m 지점에서 합류하여 마을 전체를 태극 모양으로 한바퀴 휘감아 돌고 있어, 마을이 마치 물위에 떠 있는 섬과 같다고 하여 ‘무섬’이라 불리고 있다. 마을 입향조인 박수(반남박씨)선생께서 1666년(현종 7) 강건너 ‘머름’에서 이곳에 들어와 마을을 개척하여 터전을 이루었다. 그 후 박수 선생의 손자의 사위인 김대(선성김씨)선생께서 영주에 있는 삼판서 고택에서 이 마을로 들어와 함께 살게 되어 지금까지 반남박씨와 선성김씨 두 성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마을은 자연 지리적 조건을 최대한 활용하여 뒤로는 산을 배경으로 하고 앞으로는 강을 향하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형태이다. 예로부터 많은 선비들을 배출한 부촌으로 한때는 마을 소유의 토지가 30리 밖에까지 이르렀으나 정작 마을에는 농지가 없어 강을 건너 가서 농사를 지었다. 일제강점기에는 3.1만세운동 이후 각처에서 활동하던 애국지사들이 일본 경찰의 탄압과 감시를 피해 이곳으로 본거지를 옮기고 동네 주민들과 함께 아도서숙을 건립하여 애국계몽운동과 독립운동을 펼치기도 하였다. 마을에는 해우당 고택과 만죽재 고택 등을 비롯하여 규모가 크고 격식을 갖춘 입구자형(‘ㅁ’)가옥, 까치구멍집, 겹집, 남부 지방 민가 등 다양한 형태의 구조와 양식을 갖춘 집들이 많이 있어 전통 주거 민속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안내문, 영주시청, 2017년)

<출처>

  1. 안내문, 영주시청,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영주 무섬마을 김덕진가옥.

경북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 무섬마을에 있는 김덕진가옥이다. 반남박씨 종택인 만죽재고택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다. 단일 건물 형태의 ‘ㅁ’자형 본채와 작은 방앗간채로 구성되어 있다. 본채는 중문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사랑채, 오른쪽에는 마구간이 배치되어 있다. 18세기에 지은 비교적 오래된 고택으로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편이다.

영주 무섬마을은 17세기 중엽이후 반남박씨와 선성김씨가 터를 잡고 살고 있는 집성촌이다. 마을은 삼면이 내성천에 접해 있어 ‘물 위에 떠 있는 섬’이라는 의미로 무섬마을이라 불린다. 마을에는 해우당고택을 비롯하여 규모가 큰 저택을 비롯하여 까치구멍집, 겹집 등 다양한 형태의 한옥들이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18세기에 지어진 비교적 오래된 고택으로 ‘ㅁ’자형 본채와 작은 방아간채로 구성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본채는 안채와 사랑채가 단일 건물로 지어진 ‘ㅁ’자형 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사랑채 마루. 건물을 높게 지었으며 툇마루 앞에 난간을 설치하여 누마루처럼 지었다.

<출처>

  1. 안내문, 영주시청,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