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 Archives: March 2019

전라도 낙안군 관아

전남 순천시 낙안면.외서면과 보성군 벌교읍 등에 있었던 옛 지방 고을이었던 낙안군(樂安郡) 관아이다. 낙안군은 삼국시대 백제의 분차군이었으며, 그 후 여러차례 이름이 바뀌었다가 고려 초 낙안군으로 바뀌면서 구한말까지 존재해오다 1908년에 폐지되었다. 원래 읍치는 벌교읍 부근이었으나 고려말 왜구의 침략에 대응하기 위해 낙안읍성이 있는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낙안읍성에는 당시 쌓았던 읍성을 비롯하여 관아, 읍치에 거주했던 주민들이 살았던 오래된 가옥들이 원형에 가깝게 남아 있다. 낙안군 읍치는 조선시대 관아가 있었던 읍치의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어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으며 옛사람들이 살았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유적지로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지역의 관광 명소로 잘 알려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낙안군 읍치였던 낙안읍성. 읍치는 남해안에서는 꽤 넓은 평야였던 낙안들판 북쪽편에 자리잡고 있다. 동쪽으로는 순천과 연결되며, 북쪽으로는 승주, 구례를 거 남원과, 서쪽으로는 보성지역과 연결되는 교통로이다. 고려말, 조선초에 왜구의 침입이 많았던 지역으로 해안에서 비교적 안전한 거리에 떨어져 있는 곳에 읍성을 쌓아 대비했다.

OLYMPUS DIGITAL CAMERA관아 입구에 세워져 있는 임경업 장군 선정 비각, 인조 때 낙안군수를 역임한 임경업 장군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OLYMPUS DIGITAL CAMERA관아 중심 건물인 객사 입구에 세워져 있는 홍살문.

OLYMPUS DIGITAL CAMERA관아의 중심이 되는 객사. 조선시대 국왕을 상징하는 궐패를 모시며 이곳을 방문한 중앙관리가 머무는 숙소로 사용되는 곳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객사를 출입하는 객사문.

OLYMPUS DIGITAL CAMERA객사문은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양쪽에 손님들을 수행했던 인원들이 묵을 수 있는 문간방을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객사문 안쪽으로 보이는 낙안 객사.

OLYMPUS DIGITAL CAMERA낙악객사. 가운데 궐패를 모시는 앞면 3칸 규모의 정청을 두고 양쪽에 각 앞면 2칸씩 익랑을 두고 있는 전형적인 조선시대 객사 건물 형태를 하고 있다. 낙안읍성에서 볼 수 있는 관아 건물 중 유일하게 남아 있던 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국왕을 상징하는 궐패를 모시고 있는 가운데 정청 건물. ‘낙안지관’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동쪽편 익랑. 손님이 묵을 수 있는 온돌방 1칸과 손님과 연회를 할 수 있는 툇마루를 두고 있다. 문신들이 머무는 숙소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서쪽편 익랑. 무신들이 머무는 숙소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낙안객사.

OLYMPUS DIGITAL CAMERA뒷편 낙안읍성 성벽 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낙안객사.

낙안객사
객사는 손님을 접대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곳으로, 외국이나 조정에서 파견된 사신의 숙소였을 뿐만 아니라 임금을 상징하는 궐패를 모셔두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 때 고을의 관리와 선비들이 모여 망궐례를 올리는 장소이기도 하였다. 이 객사는 세종 32년(1450) 군수 이인이 건립한 후 인조9년(1631)과 철종 8년(1857)에 각각 수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현재는 객사 본전만 남아 있어 전체의 모습은 알 수 없으나 1900년대 초까지는 모두 보존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 객사본전은 1909년 이후 낙안초등학교 건물로 사용되어 안팎으로 변조된 부분이 많았으나 1982년에 다시 보수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건물은 정면 7칸, 측면 2칸으로 완벽한 좌우 대칭구조를 이루고 있다. 지붕은 본사의 경우 맞배지붕이고, 양쪽 날개집은 팔작지붕이다. (안내문, 순천시청, 2012년)

OLYMPUS DIGITAL CAMERA동헌 입구에 세워져 있는 문루인 낙민루. 남원 광한루 등과 함께 호남지방에서는 유명한 문루였으나 한국전쟁 때 불타버려 남아 있지 않았는데 최근에 옛모습을 복원하였다.

OLYMPUS DIGITAL CAMERA낙민루 앞에 남아 있는 오래된 고목.

낙민루
낙민루는 조선 헌종 때 군수 민중헌이 중건하였다고 전해지며 1924년 일부분을 수리하였다고 한다. 남원의 광한루, 순천의 연자루와 더불어 호남의 명루로서 오랜 세월동안 희로애락을 나눈 누각이었으나 6.25전쟁 당시 불타 소실되었던 것을 1986년 기존이 초석 위에 17평 규모로 겹처마 팔작집의 누각형으로 복원하였다. (안내문, 순천시청, 2012년)

OLYMPUS DIGITAL CAMERA낙안군수가 집무를 보던 동헌을 출입하는 문. 양쪽에 행랑채를 두고 있는 형태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모습. 양쪽 행랑채는 창고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낙안군수가 집무를 보던 건물인 동헌. 앞면 5칸으로 양쪽에 넓은 대청마루를 두고 양쪽에 앞면 1칸씩 온돌방을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가운데 대청마루. 낙안군수가 송사를 다루는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군수가 손님을 접견하고 일상적인 업무를 보는 공간인 온돌방.

OLYMPUS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동헌

OLYMPUS DIGITAL CAMERA마당에 재현해 놓은 재판을 받는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곤장을 맞는 모습도 재현해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뒷편 읍성 성벽 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동헌

동헌(시무당)
이 건물은 조선왕조 때 지방관청으로 감사, 병사, 수사, 수령 등이 지방행정과 송사를 다루던 곳으로동쪽은 수령이 서쪽방은 관리들이 사용하던 곳이다. 좌측에 있는 건물은 내아로서 수령의 안채로 사용하던 건물로 내동헌이라고 한다. 당초 건립 연대나 퇴락한 연대는 기록에 없어 알 수 없으나 문헌을 참고하여 옛 터의 발굴 조사와 전문가의 고증을 거쳐 1990년 복원하였다. (안내문, 순천시청, 2012년)

OLYMPUS DIGITAL CAMERA동헌 옆에 있는 군수의 생활공간인 내아를 출입하는 문.

OLYMPUS DIGITAL CAMERA생활 공간인 내아. 옛모습을 복원해 놓았다.

OLYMPUS DIGITAL CAMERA내아 대청마루.

OLYMPUS DIGITAL CAMERA건물 앞 통로로 사용되었던 툇마루.

OLYMPUS DIGITAL CAMERA온돌방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내아 뒷마당.

OLYMPUS DIGITAL CAMERA읍치 마을 가운데 위치한 옥사.

OLYMPUS DIGITAL CAMERA옥사 건물.

  1. 안내문, 순천시청, 2012년
  2. 위키백과,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9년

보성 벌교읍 태백산맥 문학거리

전남 보성군 벌교읍 도심과 주변 일대는 작가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의 주요 무대로 대표적인 문학기행의 명소이다. <태백산맥>은 여순반란사건이 일어난 1948년부터 한국전쟁이 끝나는 1953년까지 벌교읍을 중심으로 해방후 이념대립 속에서 살아왔던 당시 사람들을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소설에서는 작은 소읍에서 다양한 출신의 인물들이 혼란기에 어떻게 반응하고, 대립하고 갈등을 겪었으며,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대립 상황에서 한쪽편을 선택할 수 없었던 상황들을 치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소설에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수구세력을 대표하는 지역토호들의 해방 정국에 대한 인식, 좌익운동에 빠져 들었던 지식인과 하층민들, 중도적입장에서 화해를 추구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다양한 시각에서 묘사를 하고 있다.

소설 <태백산맥>이 베스트셀러로서 많은 독자들이 사랑을 받게 되고 소설의 주무대였던 벌교읍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2000년대 이후 태백산맥 문학관을 중심으로 이곳을 찾는 독자들을 위한 관광지가 조성되었다. 벌교읍에는 경전선이 놓이면서 조성된 일본인 거리를 중심으로 소설에 등장하는 장소가 많이 남아 있다. 대표적인 곳으로 일제강점기 대지주계층의 저택으로 일본식 건축양식이 반영된 독특한 형태의 한옥인 현부자집, 호텔급 여관이었던 남도여관, 전통 지주계층 가옥인 ‘김범우의 집’ 등이 있다. 그 중 남도여관으로 소개된 옛 보성여관은 문학기행을 위해 찾는 쉼터역할을 하고 있으며, 현부자집에는 태백산맥 문학관이 세워져 있다. 반면에 지주계층 저택으로 ‘김범우의 집’으로 소개된 고택은 낡은 한옥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소설 <태백산맥> 의 무대였던 벌교읍 여행을 할 때 첫번째로 방문할 장소로 적합한 태백산맥 문학관. 작가가 소설을 집필하게 된 경위와 주요 장소에 대한 배경을 살펴보기에 좋은 장소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문학관 앞에서 볼 수 있는 소설의 주요 무대.

OLYMPUS DIGITAL CAMERA문학관 내부에 전시된 작가가 소설을 집필하기 위해 그려 놓은 벌교읍과 주변 약도.

OLYMPUS DIGITAL CAMERA소설 첫장면에 등장하는 ‘소화의 집’.

OLYMPUS DIGITAL CAMERA‘소화의 집’과 함께 있는 ‘현부자네’로 소개된 고택. 중도 들판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지어진 큰 저택으로 일제강점기 신흥 대지주계층이 살았던 개량한옥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고택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고택 앞 마당에서 내려다 보이는 중도 들판. 일제강점기에 ‘중도’라는 일본인이 간척사업으로 조성된 들판으로 표현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벌교천을 건너는 경전선 철교. 소설에서는 등장인물 중 염상구가 건달들과 담력대결을 벌렸더너 장소로 표현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철교 아래로 흐르는 벌교천. 이곳까지 고깃배들이 들어오는 것으로 보이며, 벌교 꼬막이 이곳을 통해 벌교읍으로 들어왔던 것으로 보인다. 건너편 둑방길은 소설에서 ‘중도둑방’으로 표현된 곳으로 일제강점기 이곳에 제방을 쌓고 간척사업을 통해 들판이 조성된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소설에 등장하는 하층민 출신 인물들 중 상당수는 간척사업 노동자로 벌교읍에 이주한 것으로 표현된다.

OLYMPUS DIGITAL CAMERA벌교역. 일제강점기 벌교읍에 경전선 철도가 지나가면서 지역 교통중심지가 관아가 있던 낙안읍성에서 이곳 벌교읍으로 바뀌었다.

OLYMPUS DIGITAL CAMERA벌교역 앞 큰 길.

OLYMPUS DIGITAL CAMERA태백산맥 거리로 조성된 벌교읍 중심가 도로.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상가지역으로 조성한 곳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거리에는 옛 일본식 가옥의 흔적들을 볼 수 있다. 지방 소읍 거리로 전통적인 일본식 건물이 아니라 한옥과 일본식 가옥의 양식이 혼합된 형태의 건물들이다.

OLYMPUS DIGITAL CAMERA 옛 솥공장터, 염상구가 솥공강 사장 딸과 결혼하여 사장이 된 곳으로 묘사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소설 속 정하섭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술도가로 묘사되고 있는 국일식당 건물.

OLYMPUS DIGITAL CAMERA국일식당 맞은 편 보성여관. 벌교읍에 남아 있는 건물 중 원형을 그대로 잘 유지되고 있는 건물이다. 소설 속 토벌대가 머물었던 남도여관으로 소개된 장소이다.

OLYMPUS DIGITAL CAMERA 2층 건물로 당시에는 상당히 크고 고급스럽게 지어졌던 호텔급으로 여관이다.

보성 태백산맥 문학거리 42-20180324보성여관 내부. 지금은 거리 탐방을 안내하는 쉼터 역할을 하고 있다.

보성 태백산맥 문학거리 40-20180324여관 안마당

보성 태백산맥 문학거리 41-20180324다다미가 깔려 있는 2층 넓은 방.

OLYMPUS DIGITAL CAMERA보성여관 옆에 있는 벌교초등학교. 한국전쟁 당시 인민재판을 가진 장소로 표현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초등학교 앞 거리에 세워진 태백산맥 문학거리 표지석

OLYMPUS DIGITAL CAMERA초등학교에서 보이는 벌교읍 거리.

OLYMPUS DIGITAL CAMERA 벌교읍 안쪽에 위치한 벌교 금융조합건물. 소설 속에 금융조합장이 지역 토호 중 한명으로 등장한다.

OLYMPUS DIGITAL CAMERA맞은편 벌교읍 사무소.

OLYMPUS DIGITAL CAMERA읍사무소 부근 낡은 주택

OLYMPUS DIGITAL CAMERA벌교읍 안쪽 주택가. 자애병원이 부근에 있었다.

OLYMPUS DIGITAL CAMERA벌교읍에서 낙안으로 연결되는 길. 김범우의 집으로 소개된 벌교 홍교가 이곳에 있으며, 홍교가 여러번 중수되면서 세웠던 비석들을 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 벌교천을 건너는 오래된 돌다리인 홍교(보물 304호)가 마을 앞에 있다. 예전에는 바닷물이 이곳까지 들어와 세곡을 나르는 선박이 정박했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홍교에서 내려다 보이는 벌교천(낙안 방향).

OLYMPUS DIGITAL CAMERA홍교에서 내려다 보이는 벌교읍.

OLYMPUS DIGITAL CAMERA소설 속 김범우의 집이 있는 봉림리 마을. 벌교 홍교를 중심으로 세곡선이 드나들던 교통의 요지로 전통 지주계층들이 살았던 마을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입구에 있는 비교적 큰 규모의 낡은 고택.

OLYMPUS DIGITAL CAMERA김범우의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길.

OLYMPUS DIGITAL CAMERA김범우의 집으로 묘사된 고택 대문.

OLYMPUS DIGITAL CAMERA고택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앞을 지나는 큰 길. 순천에서 낙안읍성으로 연결되는 교통로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이 길에서 벌교읍을 연결하는 다리인 소화교. 이곳에 처음 지어진 현대식 다리로 소화다리라 불린다. 여순사건과 한국전쟁 때 총살형이 이루어졌던 곳으로 표현된 곳이다.

  1. 안내문, 보성군청, 2012년

보성 벌교읍 봉림리 마을

전남 보성군 벌교읍에 있는 봉림리 마을이다. 벌교천 주변 들판이 내려다 보이는 양지마을에 위치하고 있으며 벌교읍 소재지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마을 앞 벌교천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선박출입이 가능했던 곳으로 세곡선이 정박했으며 양곡창고가 있었다고 한다. 마을에는 소설 『태백산맥』의 주인공 김범우의 집으로 표현된 고택을 비롯하여 낡은 고택들이 여러채 남아 있는 것으로 볼 때 부유한 지주계층들이 살았던 마을로 보인다. 마을 앞에는 조선후기에 세워진 벌교 홍교가 있는 것으로 볼 때 순천과 낙안, 보성을 연결하는 주요 교통로였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소설 『태백산맥』 김범우의 집으로 소개된 고택이 있는 마을이다. 벌교천과 주변 들판이 내려다 보이는 양지바른 언덕에 크고 작은 주택들이 모여 있다. 양반/지주계층이 살았던 마을의 입지조건을 잘 갖추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벌교천을 건너는 오래된 돌다리인 홍교(보물 304호)가 마을 앞에 있다. 예전에는 바닷물이 이곳까지 들어와 세곡을 나르는 선박이 정박했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순천에서 낙안으로 연결되는 교통로가 마을 앞을 지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앞에서 보이는 벌교 홍교. 그너머에 벌교읍 시가지가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입구에 있는 낡은 고택. 안채, 사랑채 문간채를 제대로 갖추고 있는 양반가옥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고택 사랑채와 사랑마당.

OLYMPUS DIGITAL CAMERA고택 문간채. 골목길에 대문을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안으로 들어가는 골목길. ‘김범우의 집’이라 적힌 안내표지판을 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김범우의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길.

OLYMPUS DIGITAL CAMERA김범우의 집 대문.

OLYMPUS DIGITAL CAMERA김범우의 집 사랑채 마당.

보성 벌교읍 봉림리마을 13-20121005안채.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뒷편 언덕 골목길.

  1. 두산백과, 2019년
  2. 안내문, 보성군청, 2012년

보성 벌교읍 태백산맥 문학관

전남 보성군 벌교읍 회정리에 있는 태백산맥문학관이다. 1990년대를 대표하는 소설 <태백산맥>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소설 첫장면에 등장하는 소화의 집과 현부자집이 있는 곳으로 중도벌판과 순천만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문학관에는 작품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작성했던 취재메모를 비롯한 각종 자료, 육필 원고 등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 자료들을 통해 소설 <태백산맥>의 탄생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이곳에서 소설의 전체적인 흐름을 한번 살펴보고 소설의 주요 무대가 되었던 벌교읍내 태백산맥거리에 있는 주요 명소들을 걸어서 한번 살펴보면 좋은 문학기행의 추억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조정래 태백산맥 문학관. 벌교읍과 지리산을 무대로 이야기가 펼쳐졌던 소설 『태백산맥』을 기념하기 위해 소설의 첫장면에 등장하는 ‘소화의 집’ 옆에 세워졌다.

OLYMPUS DIGITAL CAMERA기념관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소설 『태백산맥』 모형, 소설은 전체 10권에 해당하는 방대한 분량으로 1950년 한국전쟁을 전후로 이 지역에서 펼쳐졌던 빨치산 활동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벌교읍내 약도 <태백산맥의 길, 통일의 길>

OLYMPUS DIGITAL CAMERA

벌교읍 주변 지역 약도.

OLYMPUS DIGITAL CAMERA취재메모

OLYMPUS DIGITAL CAMERA취재수첩들

취재수첩들, 소설의 뼈대를 이루는 것이며 핵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조그만 수첩의 한 장에 적힌 것이 소설로 원고지 100장도 될 수 있고, 200장도 될 수 있다. 특히 빨치산에 대한 자료는 그 어디에도 없으므로 이 작은 수첩 하나는 수십 권의 역사책이 당할 수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안내문, 태백산맥 문학관, 2012년)

OLYMPUS DIGITAL CAMERA지리산 약도

소설 무대가 지리산으로 넓어지면서 지리산에 대한 취재도 필수적이었다. 지리산은 워낙 거대하고 깊은 산이라서 한두 번 행보로서는 그 실체를 알기가 불가능하다. 평생 약초를 캐며 지리산에 산 사람도 지리산 아흔 아홉 번 골짜기를 다 모른다고 할 정도니까, 그래서 열 번 넘게 지리산을 오르며 이런 약도를 그려야 했다.  (안내문, 태백산맥 문학관, 2012년)

OLYMPUS DIGITAL CAMERA빨치산 노래 모음

중학교 학제가 5년제였을 때 광주 서중학교 3학년으로서 전교의 비밀조직 총책을 했던 박현채 선생은 천재적인 기억력의 소유자였다. 빨치산 최연소 문화부 중책까지 했던 그분은 수많은 증언을 해 주었다. 그분의 탁월한 기억력은 그 당시의 노래 수십곡도 되살려 냈다. 왼쪽 것은 박현채 선생의 육필, 오른쪽 것은 그분이 부르는 것을 다른 사람이 받아 적은 것이다.  (안내문, 태백산맥 문학관, 2012년)

OLYMPUS DIGITAL CAMERA토벌대의 빨치산분포도. 토벌대에서 작성한 빨치산 지도자 이현상의 행로를 중심으로 작성된 것이다.

상황의 객관적 인식과 판단을 위해서 취재는 다각도로 균형있게 이루어져야 한다. 당시 지리산 토벌대의 핵심세력 중 하나였던 서남지구전투 경찰대의 자료는 일정 시기의 빨치산들이 세력과 그 실태를 종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로다. 왜냐하면 빨치산 출신들 수백 명을 만나본다 해도 소단위 부대의 독립행동에다가, 주로 밤에만 활동하기 때문에 그들도 빨치산 전체상을 알기란 불가능한 것이다.  (안내문, 태백산맥 문학관, 2012년)

OLYMPUS DIGITAL CAMERA태백산맥 육필원고 첫장

OLYMPUS DIGITAL CAMERA

육필원고. 16,500매에 해당하는 방대한 분량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원형상 -백두대간의 염원, 이종상.

OLYMPUS DIGITAL CAMERA소설 첫장면에 등장하는 현부자집. 소설을 대표하는 명소이다.

  1. 안내문, 태백산맥 문학관, 2012년

보성 벌교읍 현부자네, 소설 『태백산맥』에 등장하는 일제강점기 개량한옥

전남 보성군 벌교읍 회정리에 있는 한옥인 「현부자네」이다. 조정래 소설 <태백산맥>에 첫장면에 등장하는 회정리 현부자집으로 잘 알려진 집이다. 외관상 기와를 얹은 전통 한옥처럼 보이지민, 일제강점기에 유행했던 일종의 개량한옥이다. 주로 농촌 지역 신흥 대지주 계층이 살았던 저택의 형태로 전국적으로 많이 지어졌던 주택형태이지만 지금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소설 <태백산맥> 첫장면에 정하섭이 새끼무당 소화의 집을 찾아가면서 자세히 묘사되어 있는 저택이다. 저자는 벌교읍과는 약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넓은 중도벌판이 내려다 보이는 이집을 지역 토호를 대표하는 현부자 집의 이미지와 맞아 떨어져 집의 구조와 위치 등 특징을 자세히 묘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은 편으로 안채와 문간채, 마당의 별채와 뒷편 제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통 한옥의 건물 배치와는 약간 다르며 지역의 지주 계층이 살았던 초가가옥의 건물배치와 비슷하다. 건물은 전통 한옥과 일본식 가옥의 특징을 조합한 일종의 개량 한옥이다. 문간채에는 솟을대문 느낌을 주는 누마루를 설치해 놓았으며, 광이나 외양간 대신 달리 문간방을 두고 있다. 내부에는 크고 작은 나무가 심어진 정원이 조성되어 있고, 정면에는 안채가, 왼쪽에는 별채가 있다. 안채 대청마루는 한옥의 형태를 하고 있는데 반해, 천장은 일본식으로 하고 있으며, 방과 마루를 구분하는 문과 벽면이 일본식으로 되었다. 일제강점기 대지주계층이 살았던 개량한옥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벌교읍 외곽에 위치한 현부자네. 들판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지어진 큰 저택으로 일제강점기 신흥 대지주계층이 살았던 개량한옥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저택 앞에 조성된 큰 연못. 네모난 형태를 하고 있는 전통한옥의 연못과는 달리 둥근 형태를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솟을대문 형태를 하고 있는 문간채. 대문 위에 정자 모양을 하고 있는 누마루를 두고 대저택의 솟을대문과 같은 효과를 내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마당에서 본 문간채. 외양간이나 광을 두고 있는 전통한옥과는 달리 양쪽에 2칸씩 문간방을 두고 있다. 마당 가운데에 작은 동산을 꾸며 놓고 있는데 전통한옥의 마당에서는 볼 수 없는 형태이다. 일본 정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안채는 축대를 쌓아 마당보다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가운데 특이한 형태의 중문을 두고 있다. 외관상 앞면 5칸 규모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전통 한옥처럼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모습. 옆면 3칸이며, 넓은 툇마루를 통로로 사용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통로로 사용되고 있는 툇마루.

OLYMPUS DIGITAL CAMERA가운데 퇴청마루. 지붕은 일본식 가옥 형태를 하고 있으며, 가운데 칸막이로 공간을 분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오른쪽 방과 마루. 마루 앞 문짝은 한옥 문살을 사용하고 있지만 일본식 미닫이문 형태를 하고 있다. 마루 내부에도 미닫이문으로 공간을 분리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왼쪽편 방.

OLYMPUS DIGITAL CAMERA마당 한쪽편에 있는 별채. 온돌방 1칸과 넓은 광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건물 뒷편에 있는 제각.

OLYMPUS DIGITAL CAMERA제각은 앞면 3칸의 ‘-’자형 건물로 가운데 대청마루, 양쪽에 온돌방으로 되어 있다. 사당이라기 보다는 제사를 준비하는 재실과 비슷한 용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현부자네 집
중도 들녁이 질펀하게 내려다 보이는 제석산 자락에 우뚝 세워진 이 집과 제각은 본래 박씨 문중의 소유이다. 이 집의 대문과 안채를 보면 한옥을 기본 틀로 삼았으되 곳곳에 일본식을 가미한 색다른 양식의 건물로, 한 시대를 반영하고 있는 꽤 흥미로운 건물이라 할 수 있다. 소설에서는 현부자네 집으로 묘사되었다. 『그 자리는 더 이를데 없는 명당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는데, 풍수를 전혀 모르는 눈으로 보더라도 그 땅은 참으로 희한하게 생긴 터였다….” (태백산맥 1권 14쪽)』 소설 『태백산맥』이 문을 여는 첫 장면에서 처음 등장하는 집이다. 조직의 밀명을 받은 정하섭이 활동 거점을 마련하기 위해 새끼무당 소화의 집을 찾아가고, 이곳을 은신처로 사용하게 되면서 현부자와 이 집에 대한 자세한 묘사가 펼쳐지게 된다. 소화와 정하섭의 애틋한 사랑의 보금자리이기도 하다. (안내문, 보성군청, 2012년)

OLYMPUS DIGITAL CAMERA건물 앞 한쪽편에 있는 「소화의 집」. 앞면 3칸의 작은 살림집으로 지금은 기와지붕을 하고 있는데, 원래는 초가집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소화의 집
「조그만 하고 예쁜 기와집. 방 셋에 부엌 하나인 집의 구조… 부엌과 붙은 방은 안방이었고, 그 옆방은 신을 모시는 신당이었다. 부엌에서 꺾여 붙인 것은 헛간방이었다.」 소설 태백산맥에 나오는 무당 소화네 집의 모습이다. 당시의 무당집은 실제로 제각으로 들어서는 울 안의 앞터에 있었다. 집 둘레로는 낮춤한 토담이 둘러져 있었고, 뒤로는 풍성한 대나무 숲이 집을 보듬듯 하고 있었다. 뒤란으로 도는 길목의 장독대 옆에는 감나무도 한 그루 서 있는, 소설에서 그려진 소화의 모습처럼 아담한 그런 집이었다. 1988년 무렵 태풍에 집이 쓰러졌고, 토담의 일부와 장독대의 흔적들이 남아 있었지만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밭으로 변했다. 그 후 주차장으로 사용하게 되면서부터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을 2008년 보성군에서 복원하였다. 소설 태백산맥은 이 집의 신당에서 정참봉의 손자 정하섭과 무당 월녀의 딸 소화가 애틋한 사랑을 시작하는 것으로 길고도 아픈 이야기를 시작한다. (안내문, 보성군청, 2012년)

OLYMPUS DIGITAL CAMERA「현부자네」 앞 마당에서 내려다 보이는 넓은 중도들판.

  1. 안내문, 보성군청, 201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