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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영취산 흥국사, 전라좌수영과 함께 했던 호국사찰

전남 여수시 중흥동 영취산 자락에 있는 사찰인 흥국사이다. 고려중기 불교개혁을 이끈 지눌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호국의 염원을 담아 흥국사라 이름지어졌던 남해안 변방의 작은 사찰이었다. 고려말 왜구의 침입과 조선초 불교 탄압으로 폐허화 되었던 것을 조선중기 명종 때 법수화상이 중창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이끌고 참전하면서 전라좌수영의 지원을 받아 호국사찰로 자리매김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중기 인조 때 계측대사가 사찰을 크게 중창하면서 600여명의 승려가 상주하는 큰 사찰로 변모하였다. 대웅전(보물 396호)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불전과 요사채 등이 이 시기에 지어진 것들이다. 흥국사는 구한말까지 전라좌수영과 연계하여 승병체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전국의 승병들과 연계한 조직체제를 갖추고 있었으며 조선후기 산성 축성의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흥국사 홍교를 비롯하여, 선암사 홍교와 벌교 홍교에서도 당시 승려들의 토목기술 수준을 잘 살펴볼 수 있다. 승병들이 기거하면서 수행활동을 했던 곳으로 조선후기 불교문화와 사회적 위치를 잘 보여주는 사찰이라 할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여수 흥국사. 조선후기 전라좌수영과 연계하여 600여 명이 넘는 많은 승병들이 머물면서 수행했던 전형적인 호국사찰이다. 흥국사에는 대웅전(보물 396호), 홍교(보물 563호), 대웅전 목조석가여래삼존상(보물 1550호), 대웅전 후불탱화(보물 578호) 등 많은 문화재들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들어가는 길

흥국사는 여수시 입구 여천공단에 뒷편 영취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화학공장들이 자라잡고 있는 공단지역으로 주택이나 마을이 거의 없지만, 흥국사 계곡으로 들어서면 조용한 숲속길과 계곡이 어울져 있다. 이곳에는 원래 성벽과 성문인 공북루가 있었다고 하며, 승병들이 토목기술을 보여주는 현존하는 가장 큰 규모의 홍교(보물 563호)가 사찰 입구에 세워져 있다. 홍교를 지나면 흥국사 중창을 기념하여 세운 사적비가 세워져 있으며 작은 개울 돌다리를 천왕문이 있다. 천왕문 안쪽에는 신도들을 대상으로 법회를 열거나 신도들이 잠시 쉴 수 있는 강당 건물인 봉황루가 있는데 다른 사찰에 비해 그 규모가 상당히 큰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사찰 입구 계곡에서 볼 수 있는 홍교(보물 563호)이다. 아치형 돌다리인 홍교로 아치의 높이가 가장 가장 높고 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진왜란 이후인 인조 17년(1639) 흥국사를 중건할 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홍교에서 내려다 본 흥국사 계곡. 화학공장이 즐비한 공단에 위치하고 있지만, 계곡이 깊고 숲이 우거졌다. 계곡 옆에는 이곳에 식당들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구조물들이 남아 있다. 한때는 북적거리던 행락지였음을 알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홍교를 지나서 숲길을 걸어가면 볼 수 있는 흥국사 입구. 개울을 건너는 돌다리가 천왕문 앞에 놓여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흥국사 사적비. 조선중기 흥국사가 크게 중창된 이후 그 내력을 새겨놓은 비석이다.

흥국사 중수 사적비, 1703년(숙종 29년)
흥국사의 창건과 중수 등에 대해 기록한 사적비로서 비문은 당대의 명문장인 최창대가 지었으며, 비문을 쓴 이 역시 당대 명필이었다. 비문에는 창건자 지눌과 무의자 담당과의 관계, 송광사가 세워진 직후 흥국사가 창건되었다는 사실, 1560년(명종 15년) 법수화상에 의해 사찰 건물 1천여간이 증축되었다는 것, 1624년(인조2년) 계특의 대대적인 사찰 중건의 사실, 통일의 법당 개축사실 등 흥국사의 사적들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중수비 뒷면에는 정동호가 지은 발문을 문세욱이 썼는데, 흥국사의 창사와 중건과정에서 공로를 세운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다. 보조국사가 흥국사를 창건한 이래 조선에 들어와 임진왜란을 겪으며 온갖 고충을 극복하며, 약 470년 동안 중건한 승려들을 높이 평가한 내용이다. 바로 이어서 중건 과정에서 협조한 김덕항을 비롯한 약 140명의 명단이 적혀 있다. 중건과정에 도움을 준 지방관과 중앙정계의 인물, 관련 승려, 여성을 포함한 신도, 석동들의 명단까지 기록되어 있어서 당시 중수비의 건립 과정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안내문, 여수 흥국사, 2012년)

OLYMPUS DIGITAL CAMERA흥국사 입구에 세워져 있는 고승들의 부도.

OLYMPUS DIGITAL CAMERA흥국사 출입문인 천왕문.

OLYMPUS DIGITAL CAMERA천왕문을 들어서면 상당히 큰 규모의 강당 건물인 봉황루를 볼 수 있다. 앞면 5칸의 상당히 큰 규모의 건물로 조선중기 흥국사가 중건될 때 세워졌으며, 현재의 건물은 1925년에 고쳐졌다.

OLYMPUS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봉황루. 강당은 법회를 여는 공간이지만 좌수영 객사인 진남관처럼 승병들이 회의 등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대웅전 영역 사이 중문을 두고 있어 분리되어 있는 느낌을 주고 있다. 아마도 유생들이었던 지방 관료들이 이곳을 방문했을 때 머물수 있도록 고려한 것으로도 보인다.

대웅전 영역

주불전인 대웅전이 있는 공간은 전형적인 조선후기 사찰의 공간배치를 볼 수 있다. 석가삼존불을 모신 대웅전을 중심으로 양쪽에 요사채인 심검당과 적묵당이 배치되어 있다. 대웅전은 다포계 공포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전형적인 불전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양쪽 요사채는 승병들이 기거했던 사찰답게 상당히 큰 규모를 하고 있다. 반면에 사리를 모신 석탑은 두지 않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흥국사 대웅전 영역

OLYMPUS DIGITAL CAMERA대웅전 영역을 출입하는 중문인 법왕문. 강당이 있는 영역과 공간적으로 분리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주불전인 대웅전(보물 396호). 조선중기 인조 2년 흥국사가 중건될 때 새로 지어졌는데 동시대를 대표하는 불전 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화려하면서도 장엄한 분위기를 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웅전 내부. 석가삼존불(보물 1550호)를 모시고 있으며 뒷면는 영산회상을 표현한 후불탱화(보물 578호)가 있다. 불단 위에는 닫집을 두어 장엄함을 더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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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국사 대웅전 관음보살 벽화(보물 1862호), 한지에 그림을 그려 벽에 붙여 만든 첩부벽화이다. 17세기 불화의 특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응전 앞 석등. 거북이 등에 석등이 올려져 있는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다. 중생이 깨달음을 얻어 극락정토를 향해 타고 가는 배라는 의미를 표현하고 있다. 전라좌수영과 연계된 흥국사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유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승려들이 기거하는 요사채인 적묵당.  조선중기 흥국사가 중창될 때 처음 1624년에 세워 졌으며, 현재의 건물은 1895년에 중수되었다.  앞면 4칸 규모의 상당히 큰 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심검당, 1645년 중건될 때 세워졌으며, 현재의 건물은 1895년에 중수되었다. 일반적인 요사채는 보통 낮은 지붕에 한옥의 형태를 하고 있는데 반해 흥국사 요사채는 맞배지붕을 하고 있으며, 불전처럼 크고 웅장한 건물 형태를 하고 있다. 이는 많은 승려들을 수용할 수 있도록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범종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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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국사 동종(보물 1556호), 조선중기 사인비구에 버금가는 역량을 지녔던 김애립이 1665년에 조성한 종이다.

불전과 요사채 등

흥국사에는 조선중기 이후 크게 번창한 호국사찰로 그 특징을 보여주는 여러 불전들을 두고 있다. 옛 대웅전 건물의 부재들을 활용하여 지은 팔상전을 비롯하여, 수행하는 승려들을 상징하는 웅진전, 역대 고승들의 영정을 모셨던 불조전, 전란을 통해 죽은 승려들이나 신도들을 위한 지장보살을 모신 무사전과 남해안이라는 지역적 특성을 잘 보여주는 관음보살을 보신 원통전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웅전 옆에 위치한 무사전. 지장보살을 모신 불전으로 보통 지장전이라 부르는데 죽은이의 명복을 비는 공간이다. 다른 사찰에 비해 그 규모가 작은 것은 그 내력이 오래되었기 때문으로 승병들을 비롯하여 임진왜란 때 희생된 이들을 위해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무사전에 모셔진 목조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보물 1566호). 조선중기 인조 때 조각상들이 참여하여 조성한 작품으로 지장보살 삼존상과 시왕.권속들을 표현한 21점의 불상들과 발원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 대웅전 뒷편에 위치한 팔상전. 조선중기 인조 때 흥국사를 크게 중창할 때 옛 대웅전 건축자재를 사용하여 지었다고 한다. 현재의 건물은 최근에 크게 수리한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팔상전 옆 웅진전. 흥국사는 많은 승병들이 수행하면서 거처했던 사찰로 석가모니의 제자를 모신 웅진전을 중요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수 흥국사27-20190531흥국사 십육나한도(보물 1333호), 조선후기 십육나한도의 본보기가 되었던 작품이라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웅전 뒷편에 위치한 불조전. 역대 고승들의 영정을 모신 공간으로 보통 조사당이라 부르는 불전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불조선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적묵당 뒷편 백련사. 앞면 3칸, 옆면 3칸의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상당히 큰 규모의 요사채이다. 양쪽에 툇마루를 두고 있는데 이곳을 찾은 손님들을 위한 공간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백련사 뒷편에 위치한 선방이 해동선관. 양반들이 살았던 전통 한옥의 모습을 하고 있는 건물로 흥국사 주지 등 고위층 승려가 머무는 공간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흥국사 전경. 진달래가 유명한 영취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상당히 큰 규모의 사찰이다.

여수 흥국사26-20190531흥국사 노사나불괘불탱(보물 1331호), 18세기 화승 비현이 참여해 그린 그림으로 색채가 선명하고 아름다우며 장식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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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국사 수월관음도(보물 1332호), 18세기 최고 화승 의겸이 그린 그림으로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손꼽힌다.

  1. 안내문,여수 흥국사, 2012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9년

여수 흥국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시왕상(보물 1566호)

전남 여수시 중흥동 흥국사 무사전에 봉안되어 있는 목조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보물 1566호)이다. 조선중기 인조 때 조각상들이 참여하여 조성한 작품으로 지장보살 삼존상과 시왕.권속들을 표현한 21점의 불상들과 발원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장보살상은 동그란 얼굴에 살이 적당히 올랐으며, 신체에 표현된 옷주름은 신체의 굴곡과 양감을 잘 표현하고 있다. 시왕와 권속상의 각각의 특징과 역할을 생동감있게 묘사하고 있다. 17세기 불상 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으며, 발원문을 통해 조성주체와 연대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지장보살을 모신 명부전 또는 지장전은 죽은이의 명복을 비는 공간으로 오늘날 대부분 사찰에서는 이 불전을 두고 있기는 하지만 연대가 오래된 곳은 많지 않다. 이 불상은 조성 연대가 비교적 오래된 편이며 임진왜란 당시 승병으로 참전하면서 많은 희생자가 있었던 흥국사의 호국사찰로서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유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흥국사 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보물 1566호). 지장보살을 표현한 불상 중 그 연대가 비교적 오래되었으며 조각수법 또한 뛰어난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흥국사 무사전. 지장보살을 모신 불전으로 임진왜란 때 희생된 승병과 신도 등을 위한 공간으로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흥국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시왕상 일괄 및 복장유물, 보물 1566호
흥국사 무사전에 봉안되어 있는 지장보살삼존상을 비롯한 시왕.권속일괄은 1648년(인조26년) 수조각승 인균을 비롯한 12명의 조각승들이 참여하여 조성한 작품이다. 지장보살상은 동그란 얼굴에 살이 적당히 올랐으며, 부푼 눈두덩 사이로 짧게 치켜 올린 눈이 인상적이다. 단정한 신체에 표현된 옷주름은 강직한 직선과 부드러운 곡선을 잘 조화시켜 신체의 굴곡과 양감을 잘 살려내었다. 시왕과 권속상은 그들이 지니고 있는 개성적인 특징과 역할을 다양한 표현력과 연출력으로 생동감 있게 묘사하였다. 이 조각들은 17세기 불상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장보살삼존을 비롯한 권속들이 모두 존속하고, 조성주체와 조성연대를 알 수 있는 발원문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안내문, 여수 흥국사, 2012년)

  1. 안내문,여수 흥국사, 2012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여수 흥국사 목조석가여래삼존상(보물 1550호)

전남 여수시 중흥등 흥국사에 있는 목조석가여래삼존상(보물 1550호)이다. 사찰 주불전인 대웅전에 모셔진 삼존불상으로 석가여래를 주존으로, 제화갈라보살과 미륵보살을 협시보살로 두고 있다. 17세기에 조성된 목조불상으로 조각수법이 뛰어나고 양감이 잘 표현되어 있다. 조선후기 불상 중 드물게 보살상을 협시로 두고 있으며, 조각수법이나 양식 등에서도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불상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흥국사 대웅전에 모셔진 석가여래삼존상(보물 1550호), 조선후기 불상 중 드물게 협시보살을 두고 있다.

흥국사 목조석가여래삼존상, 보물 1550호
흥국사 대웅전 주존불인 석가여래좌상을 중심으로 제화갈라보살입상, 미륵보살입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좌우 보살상의 보관 뒷면에 새겨진 글을 통해 1628~1644년(숭정 연간)에 조성된 사실을 알 수 있다. 당시 전라도 지역 불상의 양식적 특징과 개성을 보여주고 있는 목불로서, 조각 수법도 매우 뛰어나서 몸체의 양감 표현과 옷자락의 자연스러움이 잘 표현되어 있다. 손과 발의 표정 또한 잘 살아 있고, 특히 제화갈라보살입상과 미륵보살입상의 옷주름의 표현은 몸체의 귢여과 변화를 절묘하게 조화시키고 있으며, 장신구의 자연스러운 곡선 표현도 유려하다. 17세기 전반의 불상으로 이와 같은 크기의 보살상을 동반한 삼존불이 드물다는 점과 도상과 양식 면에서 대표적인 불상으로 평가되고 있다. (안내문, (안내문, 여수 흥국사, 2012년)

  1. 안내문,여수 흥국사, 2012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여수 흥국사 대웅전 후불탱(보물 578호)

전남 여수시 중흥등 흥국사 대웅전에 모셔진 후불탱이다. 석가모니가 영취산에서 설법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영산회상도로 대웅전 석가삼존불의배경으로 걸려 있다. 그림은 비단바탕에 채색하여 그려졌는데 가로 4.2 m, 세로 5.07 m 이다. 채색은 붉은색과 녹색으로 이루어 졌으며, 꽃무늬나 옷주름 등에 금색을 사용하고 있다. 조선후기 17세기 후반을 대표하는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흥국사 대웅전 석가삼존불 뒷편에 걸려 있는 후불탱(보물 578호).

흥국사 대웅전 후불탱, 보물 578호
대웅전 불상 뒤에 있는 불화로서,석가모니가 영취산에서 여러 대중들에게 설법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석가영산회상도이다. 그림 한가운데 있는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있으며, 양쪽 양옆으로 여섯 명의 보살들과 그 아래에 사천왕이 있다. 석가여래의 바로 옆과 뒤편으로는 10대 제자를 비롯하여 여러 불자들이 조화롭게 늘어서 있다. 채색은 주로 붉은색과 녹청을 사용하였으며 꽃무늬와 옷주름선 등에 금색을 사용하여 품격을 높이고 있다. 이 불화는 1693년(숙종 19년)에 왕의 만수무강과 나라의 평안 등을 기원하여 의천과 천신 두 승려 화가가 그린 것으로, 17세기 후반의 걸작으로 평가된다. (안내문, 여수 흥국사, 2012년)

 

  1. 안내문,여수 흥국사, 2012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여수 흥국사 대웅전(보물 396호)

전남 여수시 중흥동 흥국사에 있는 불전인 대웅전(보물 396호)이다. 이 사찰의 주불전으로 석가삼존불을 모시고 있다. 조선중기 인조 2년 흥국사가 중건될 때 새로 지어졌는데 동시대를 대표하는 불전 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앞면 3칸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화려한 다포계 공포를 사용하고 있다. 내부는 우물천장을 하고 있으며 불상을 모신 자리에는 닫집을 만들어 놓았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화려하면서도 장엄한 분위기를 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여수 흥국사 대웅전(보물 396호). 앞면 3칸 규모로 크지는 않지만 화려하면서도 장엄한 느낌을 주고 있는 조선중기 이후 불전 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웅전 현판. 공포는 기둥 사이에 3구의 공포를 배치하여, 겹처마와 함께 화려하게 보이도록 하고 있다. 기둥에는 용머리를 장식해 놓았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웅전 문살.

OLYMPUS DIGITAL CAMERA대웅전 뒷면.

OLYMPUS DIGITAL CAMERA내부에는 석가삼존불(보물 1550호)를 모시고 있으며 뒷면는 영산회상을 표현한 후불탱화(보물 578호)가 있다. 불단 위에는 닫집을 두어 장엄함을 더해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웅전을 오르는 계단.

OLYMPUS DIGITAL CAMERA대웅전 앞 석등.

흥국사 대웅전, 보물 396호
1624년(인조 2년) 계특대사가 절을 다시 세울 때 지은 건물로 석가 삼존불을 모시고 있는 절의 중심 법당이다. 내부 중앙 불단에는 석가모니불을 본존으로 하여 좌우에 협시보살을 모셨고, 불단 뒷벽에는 흙벽에 바른 한지 위에 백의관음반가상을 그려 모셨다. 외부의 기단과 갑석에는 게와 거북이를 새겼다. 법당 앞에 거북이 등에 올라 있는 형상의 석등은 법당이 중생이 깨달음을 얻어 극락정토를 향해 타고 가는 배(반야용선)라는 의미를 표현하고 있다. 조선 중.후기의 대표적인 대웅전 건물의 하나로서, 내부 공간의 확장 기법을 선구적으로 도입했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전체적으로 장중하고 호방한 느낌을 주면서도 조각, 단청 등 세세한 부분에서는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는 점도 눈길을 끈다. (안내문, 여수 흥국사, 2012년)

  1. 안내문,여수 흥국사, 2012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