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Archives: May 7, 2019

[중앙박물관특별전, 철의 문화사] 전쟁무기의 발달

전쟁이 격렬했던 삼국시대에는 공격과 방어를 위한 다양한 철제 무기들이 개발되어 사용되었으며, 남북국시대 이후 전쟁이 줄어들면서 한반도에서는 전쟁무기의 발달 또한 정체되었다. 이후 화약의 발명에 따른 다양한 형태의 철제 화포가 개발되어 사용되었으며, 임진왜란 이후 조총이 등장하기는 했으나 동아시아에는 전쟁이 많지 않아 무기의 발전이 정체되었으며, 비약적을 발전한 서구에 비해 열세에 놓이게 되었다. 전시에서는 삼국시대 이래 한반도에서 사용되었던 다양한 철제 무기들을 살펴볼 수 있다.

전쟁 무기의 발달
삼국시대에 전쟁이 격렬해지면서 철제 갑옷과 같이 방어 무기가 발달하고 공격용 철제 무기의 기능도 향상되었습니다. 백제의 부소산성에서 출토된 여러 종류의 대형 무기는 당시 치열했던 전쟁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해 줍니다. 남북국시대 이후 전쟁이 드물어지면서 전쟁 무기의 발달은 정체되었습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서 조선은 왜군과 청나라군의 압도적인 무력에 고전했고 양란은 조선이 다시 전쟁 무기의 발달을 꾀하는 계기가 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평양성 탈환 그림 병풍, 조선 18세기 후반

1593년(선조 26) 1월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이 일본군에게 빼앗겼던 평양성을 탈환하기 위한 사흘간의 전투 경과를 그린 10폭 병풍입니다. 1폭에는 출전 준비를 하는 이여송이, 제2폭과 9폭은 칠성문, 보통문에서 벌어지는 전투장면이, 제10폭에는 이여송과 승전나팔을 부는 군사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평양성 전투에서는 화포와 조총이 사용되었으나 그림에서는 창과 검이 주력 무기로 그려져 있습니다. 16세기 최초의 근대 화약 전쟁으로 평가받는 평양성 전투의 면모는 제3폭의 칠성문을 화포로 공겨하는 장면과 제 7.9.10폭의 조총을 사용하는 일본군의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부소산성의 대형무기, 백제, 부여 부소산성
부소산성에서 출토된 백제의 무기는 대형이라는 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화살촉은 촉 머리가 두껍고 무겁게 제작되어 보통의 활이나 노(弩)에서는 발사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입니다. 대형 쇠낫, 양갈래창, 갈고리창 등은 성벽을 기어오르는 적병들을 방어하는 데 용이했을 것입니다. 부소산성의 대형 무기는 백제의 발달된 무기 체계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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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쇠화살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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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쇠화살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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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쇠갈고리,

OLYMPUS DIGITAL CAMERA 3.양갈래창,

OLYMPUS DIGITAL CAMERA4.쇠낫,

OLYMPUS DIGITAL CAMERA5.쇠도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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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투겁창

OLYMPUS DIGITAL CAMERA7. 세갈래 갈고리,

OLYMPUS DIGITAL CAMERA8.마름쇠

OLYMPUS DIGITAL CAMERA조선시대의 대표무기, 당파장, 조선

조선의 무예 24기 안에는 당파(钂鈀)라는 창으로 무예를 겨루는 기술이 있습니다. 당파창은 세 갈래로 갈라진 삼지창의 일종입니다. 조선 보병이 주로 사용하던 무기로 창날이 세 개나 되어 명중률이 높았고 양끝이 휘어져 있어 적을 걸어 넘어 뜨릴 수 있었습니다. 긴 당파창은 7자6치(약 2.3 m)가 되어 의장기를 꽂아 깃대로 쓰기도 하였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조선의 무기

OLYMPUS DIGITAL CAMERA1.칼, 부산 수안동,

OLYMPUS DIGITAL CAMERA2.칼,

OLYMPUS DIGITAL CAMERA3.칼,

OLYMPUS DIGITAL CAMERA4. 쇠도끼, 부산 수안동, 5.투겁창, 부산 수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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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당파창,

OLYMPUS DIGITAL CAMERA7.쇠화살촉, 부산 수안동,

OLYMPUS DIGITAL CAMERA7. 쇠화살촉, 부산 수안동

OLYMPUS DIGITAL CAMERA8.마름쇠

양란 당시의 병기와 전술

임진왜란 당시 왜군은 조총을 쏴 상대의 사기를 꺾고 근접전에서는 긴 칼로 조선군을 공격하였습니다. 조선군은 활을 쏘며 맞섰으나 왜군의 병기 체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왜란에 이어 병자호란에서도 조선군은 청나라 군의 압도적인 무력에 고전하였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1. 왜군의 창, 일본, 부산 수안동, 2. 왜군의 칼, 일본

OLYMPUS DIGITAL CAMERA3. 청나라군의 칼, 중국 청나라

OLYMPUS DIGITAL CAMERA4. 청나라군의 칼, 중국 청나라

대완구와 비격진천뢰
비격진천뢰는 무쇠를 주조해 만든 둥근 공 모양의 포탄으로, 하늘을 진동하는 소리를 낸다고 해서 비격진천뢰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비격진천뢰는 대와구로 발사하는데 정해 놓은 시간이 지나면 화약이 폭발하여 폭탄이 터지도록 설계되었습니다. 포탄이 터지면 비격진천뢰 안에 넣은 날카로운 철조각들이 사방으로 튀어 적에게 피해를 줍니다. 기록을 살펴보면 임진왜란 때 거북선과 함께 비격진천뢰가 왜군을 토벌하는 조선 최고의 무기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1. 대완구, 조선, 2. 비격진천뢰, 조선, 하동 고하리

OLYMPUS DIGITAL CAMERA포환 1. 조선,

OLYMPUS DIGITAL CAMERA포환, 2.조선, 인천 부평동,

OLYMPUS DIGITAL CAMERA포환, 3.조선, 용인 풍덕천리

OLYMPUS DIGITAL CAMERA이화문 화승총, 대한제국

OLYMPUS DIGITAL CAMERA은입사 총, 일본

  1.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17년
  2. 위키피디아, 2017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철의 문화사] 철갑옷과 투구

고대 한반도 철기문화를 대표하는 유물로 철갑옷과 투구를 들 수 있다. 삼국시대 여러 고분들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갑옷들이 출토되고 있는데 특히 가야의 판금갑옷, 찰갑옷, 투구 등에서는 세련된 디자인과 금속가공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전쟁의 모순
전쟁은 특정 집단이 정치.경제적인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전쟁이라는 외적인 갈등은 파괴의 상징이지만, 내적으로는 통합을 이끌어 냅니다. 그뿐만 아니라 전쟁은 철제 갑옷 같은 방어용 무기에 대항하기 위해 더 향상된 공격용 무기를 만들게 합니다. 강한 창을 막기 위해 더 강한 방패를 만들게 하고, 강한 방패를 뚫기 위해 더 강한 창을 만들게 하는 철의 모순이 발생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퉁거우 12호분 고구려 벽화무덤의 개마무사, 모사도, 고구려

벽화 중앙에는 갑옷 입은 무사가 긴 창을 비껴들고 갑옷으로 무장한 말 위에 올라 앞으로 내달리고 있습니다. 그 왼편에는 투구를 쓰고 비늘갑옷을 입은 무사가 말에서 내려 역시 비슷한 복장을 한 다른 무사의 목을 베는 참수 장면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벽화 속 전투 장면은 고대 철제 무기의 특징과 전투기술을 추정할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자료입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목가리개, 1. 신라, 포항 옥성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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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가리개,2. 삼국, 부산 복천동 11호분, 투구, 가야, 남원 월산리 M5호분

OLYMPUS DIGITAL CAMERA목가리개,  3. 삼국, 부산 복천동 12호분

OLYMPUS DIGITAL CAMERA팔가리개, 삼국, 부산 복천동 10호분

9월에 장수왕이 병력 3만을 거느리고 백제를 침략하여, 한성을 함락하고, 백제 부여경(개로왕)을 죽이고…… – 삼국사기 권18 고구려본기 제6 장수왕 -

OLYMPUS DIGITAL CAMERA찰갑, 고구려, 연천무등리,

OLYMPUS DIGITAL CAMERA찰갑, 가야, 남원 월산리 M5호분

OLYMPUS DIGITAL CAMERA갑옷, 삼국, 부산 복천동 4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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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구, 가야, 김해 두곡 43호분, 갑옷, 가야, 김해 두곡 43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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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구, 가야 김해 두곡 22호분, 갑옷, 가야, 김해 두곡 72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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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구, 삼국, 부산 복천동 93호분, 갑옷, 삼국, 부산 복천동 10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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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옷, 삼국, 부산 복천동 164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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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옷, 신라, 울산 중산리 1A-75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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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옷, 삼국, 부산 복천동 57호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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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구, 신라, 포항 옥성리, 갑옷, 신라, 경주 사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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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옷, 신라, 경주 구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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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구, 김해 양동리 78호분, 갑옷, 가야, 김해 양동리 78호분

미늘쇠
미늘쇠는 대형 덩이쇠의 가장자리에 날카로운 미늘이 대칭으로 붙어 있는 철기입니다. 일부 미늘쇠는 날카로운 날이 있는 위치에 고사리 모양이나 새모양 장식이 달려 있습니다. 장식이 달린 미늘쇠는 행렬에서 긴봉에 끼워 깃대처럼 사용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미늘쇠는 삼국시대 신라와 가야 권역에서만 나타나고 있어서 이 지역의 독특한 철기로 보고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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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야, 함안 도항리 10호분, 2. 가야, 함안 도항리 13호분

  1.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17년
  2. 위키피디아, 2017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철의 문화사]철, 권력을 낳다

철기 사용에 따른 생산력 증가는 고대국가 성립의 밑바탕이 되었다. 고대국가에서는 철은 권력의 기반에 되었으며 당시 지배층들은 권력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철을 무덤에 많이 묻었으며 여러 고고학적 발굴.조사과정에서 이런 사실들이 확인되고 있다. 무덤에 같이 묻히는 철기는 무기류를 비롯하여 생산이 필요한 농기구, 철기를 만들 수 있는 원료인 덩이쇠 등 다양한 형태를 하고 있다. 한반도에서 발견되는 껴묻거리들은 삼한시대 유적들에서부터 시작되어 삼국시대 고분 등 다양한 지역과 시기에서 확인되고 있다.

철, 권력을 낳다
2부에서는 한반도에 철기가 등장한 후 철이 본격적으로 이용되면서 나타난 모습을 살펴봅니다. 철기의 등장은 곧 생산력의 증가와 군사력의 신장으로 이어져 철을 소유하려는 지배자의 욕망은 더욱 커져 갔습니다. 철을 얼마나 소유했는지가 권력을 상징하는 지표가 되었고 철과 권력의관계는 고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계속되었습니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전쟁은 다시 철제 무기의 발달을 가져 왔습니다. 철이 만들어 낸 생산력 증가가 ‘성장’을 의미한다면, 권력을 지키기 위한 전쟁은 ‘파괴’를 의미합니다. 이렇게 철이 갖고 있는 양면적인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 보시기 바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큰 문제는 연설이나 다수결이 아닌 ‘철’과 ‘피’를 통해 결정된다. – 오토 폰 비스마르크 -

생산과 권력
철기의 사용은 생산력의 증가로 이어져 사회제도와 계급의 세분화를 가져 왔습니다. 이렇게 철기 사용과 생산력 증가는 사회를 고도화시켜 고대국가 성립의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고대국가에서 철은 지배층만이 소유할 수 있었습니다. 무덤에 많은 철기를 넣는 것은 권력자의 특권이었습니다. 고대부터 중세 근세에 이르기까지 철은 다양한 모습으로 변모하며 권력의 상징물로 자리매김해 갔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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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도끼, 재현품, 변한, 창원 다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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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도끼, 재현품, 변한, 창원 다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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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낫, 재현품, 변한, 창원 다호리

따비와 삽날
따비와 삽날은 농사짓는 데 사용한 대표적인 도구입니다. 따비는 농경문 청동기에 표현되어, 기록으로 남은 첫 번째 농기구로서 자리매김했습니다. 철로 만든 삽날은 나무로 만든 삽 머리에 끼워 사용합니다. 주로 땅을 파거나 뒤집는 기경구로서 크기가 점점 커지면서 가래와 같은 용도로 사용합니다. 삽날은 쇠스랑과 함꼐 농업 기술의 발전을 알려 주는 척도가 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1. 따비, 재현품, 변한, 창원 다호리, 2. 따비, 진한 , 대구 팔달동, 3. 삽날, 마한, 김포 운양동, 4. 삽날, 마한, 가평 대성리

여러 종류의 쇠도끼
도끼 모양을 한 철제 도구를 쇠도끼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현재 학계에서는 날이 양쪽에 있는가 한쪽에 있는가를 기준으로 도끼나 자귀, 괭이와 같은 쓰임을 추측하고 있ㅅ브니다. 실제 발견되는 고대의 쇠도끼는 훨씬 더 다양한 모양을 띱니다. 쇠도끼의 다양성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고대 사회가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1. 마한. 가평 대성리

OLYMPUS DIGITAL CAMERA2. 삼국, 충주산성,

OLYMPUS DIGITAL CAMERA3. 백제, 오산 수청동

OLYMPUS DIGITAL CAMERA4. 진한, 대구 팔달동, 5. 삼국, 부산 복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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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낫과 쇠낫 1. 쇠낫, 고구려, 홍련봉 2보루, 2.쇠낫, 마한, 가평 대성리, 3. 쇠낫, 진한, 대구 팔달동, 4. 돌낫, 청동기, 산청 소남리

쇠도끼의 생산력
실제로 돌도끼와 비교하여 쇠도끼는 얼마나 효율적일까요? 윌리엄 타운센드는 직경 20cm의 나무를 베는 실험을 여러 차례 반복하여, 각각 시간을 비교했습니다. 그 결과 돌도끼는 평균 12분, 쇠도끼는 평균 3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게다가 쇠도끼는 나무를 베어 낸 후 날을 세우기 위해 가는 횟수가 돌도끼보다 훨씬 적어 4배 이상의 효율성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1. 돌도끼, 청동기, 응기 송평동, 2. 돌도끼, 청동기

OLYMPUS DIGITAL CAMERA3. 주조로 만든 쇠도끼, 마한, 가평 대성리

상징성과 권력자
무덤의 크기와 그 안에 넣은 부장품은 무덤 주인의 정치.경제적 힘을 보여 줍니다. 우리나라 고대 무덤에 부장된 철기는 처음에 농기구 한 두 점만 들어가다가, 나중에는 칼과 같은 무기가 함꼐 들어가게 됩니다. 이후 철을 만들기 위한 소재를 화폐처럼 넣었습니다. 무덤에 무기를 부장하는 것은 사자가 생전에 용맹한 전사였음을 강조하기 위해서일 것이고, 철기 소재를 대량 부장하는 것은 소유에 대한 강한 집념의 상징일 것입니다. 철의 소유는 당시 권력자의 특권이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변진은 철을 생산하는데, 한.예.왜가 모두 와서 가져간다. 또 낙랑군과 대방군에도 공급한다. -삼국지 위지동이전 변진조 -

고조선의 철기
평안북도 위원군 용연동 유적에서 나온 철기는 연나라의 영향을 받았고, 한반도 여러 지역의 초기 철기 문화와 관계가 깊습니다. 그중 주물로 녹여 만든 농.공구는 고조선과 삼한의 철기 문화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시사점을 던져 줍니다. 최근 학계에서는 용연동 유적 철기를, 연나라 영향을 받은 랴오닝 지역의 독자적인 철기 고조선의 철기 등으로 다양하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용연동 유적의 철기, 초기 철기, 위원 용연동

OLYMPUS DIGITAL CAMERA용연동 유적의 철기, 초기 철기, 위원 용연동

마한의 철기
삼한 중 마한이 가장 먼저 연나라의 철기를 받아들였습니다. 마한의 철기는 대부분 주물로 녹여 만든 쇠도끼, 쇠낫과 같은 농.공구였습니다. 마한 사람들은 철기를 귀하게 여겨 지배자들의 무덤에도 넣었지만, 스스로 철기를 만들려고 시도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마한은 이후에도 한반도 북부지역에 있는 고조선과 낙랑군의 철기 문화에 영향을 받지만 독자적인 철기 문화로 발전시키지 못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1. 갈동 유적의 철기, 마한, 완주 갈동, 2. 신풍 유적의 철기, 마한, 완주 신풍

OLYMPUS DIGITAL CAMERA3. 남양리 유적의 철기, 마한, 장수 남양리

진한과 변한의 철기
진한과 변한은 마한보다 늦게 철기를 받아들이지만, 일찍부터 스스로 철기를 만들려고 시도하여 독자적인 형태의 철기 문화를 발전시켰습니다. 외날 따비, 철제 단검, 측면에 융기선이 있는 쇠도끼 등은 진한과 변한 권역에서 보이는 철기들의 특징입니다. 진한, 변한 권역의 철기 문화는 가야, 신라의 철기 문화로 이어져 우리나라 고유의 철기 문화를 이끌어가는 토대가 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1. 팔달동 유적의 철기, 진한, 대구 팔달동

OLYMPUS DIGITAL CAMERA1. 팔달동 유적의 철기, 진한, 대구 팔달동

OLYMPUS DIGITAL CAMERA1. 팔달동 유적의 철기, 진한, 대구 팔달동

OLYMPUS DIGITAL CAMERA2. 월성동 유적의 철기, 진한, 대구 월성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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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임당동 유적의 철기, 진한, 경산 임당동

OLYMPUS DIGITAL CAMERA 4. 다호리 유적의 철기, 변한, 창원 다호리

상징의 지속
살포는 농사에서 물꼬를 막고 트는 용도로 사용했다고 추정됩니다. 살포는 실제 사용된 도구라기보다는 당시 치수를 주관하던 통치자가 지녔던 상징적인 도구로 여겨집니다. 실제로 살포는 주로 고대의 수장층 무덤에서 출토되며, 조선시대에는 임금이 연로한 재상에게 하사하는 궤중 중의 하나였습니다. 살포가 갖는 권력의 상징성은 고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1. 궤장을 하사하는 연회와 기로회, 1623년,

OLYMPUS DIGITAL CAMERA2. 안석과 지팡이, 조선

OLYMPUS DIGITAL CAMERA3. 살포, 가야, 창원 가음정동, 4. 살포, 조선, 양주 회암리

철의 독점, 황남대총
고대국가가 조직적으로 철기를 생산하고 지배층이 철기를 독점한 사례를 신라 황남대총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황남대총에는무기부터 농.공구에 이르는 다양한 철기들이 대량으로 묻혀 있었습니다. 그 수량만 해도 3,200여 점에 이릅니다. 이 중 당시 철기 생산 소재이면서 화폐와 같은 가치를 가졌던 덩이쇠의 수량만 해도 상당합니다. 이 덩이쇠를 일렬로 늘어 놓으면 약 243 m, 여의도 63빌딩 정도의 높이와 맞먹을 정도라고 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1. 쇠거울, 신라, 경주 황남대총

OLYMPUS DIGITAL CAMERA2. 덩이쇠, 신라, 경주 황남대총

OLYMPUS DIGITAL CAMERA3. 쇠솥,신라, 경주 황남대총

덩이쇠
진한, 변한의 무덤에서 출토되는 덩이쇠는 단조 쇠도끼의 날 부분이 사라진 긴 철판으로 위아래 양쪽 끝부분이 넓게 펴지는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덩이쇠는 철기 제작을 위해 만들어진 중간 단계의 소재로 삼국시대 한반도 남부 지역에서 확인되며, 일본에서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덩이쇠가 많이 출토됩니다. 덩이쇠는 철기의 재료로서 유통을 위한 용도 외에도 지위를 과시하는 위신재나 화폐 등으로 다양하게 해석되고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1. 가야, 함안 도항리

OLYMPUS DIGITAL CAMERA2. 가야, 김해 대성동

OLYMPUS DIGITAL CAMERA3. 백제, 충주 탄금대토성

등울
등울은 돌방무덤 안에 등잔을 올려놓는 등잔받침입니다. 대구 비산동 돌방무덤에서 철로 만든 등울 두점이 나왔습니다. 하나는 등울을 버티는 살대 위에 평면 받침대가 놓여 있고, 다른 하나는 원통형 망 안에 등잔을 넣을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등울은 죽음의 공간 안에서도 불을 밝혀 삶을 지속하고자 하는 권력의 염원이 담겨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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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울, 삼국, 대구 비산동

고리자루 큰 칼
고리자루 큰 칼은 중국 한나라 때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이후 한반도 전역으로 확산됩니다. 이 칼은 값비싼 재료를 활용하여 금은 장식을 한 큰 칼로 만들어지기도 하고, 둥근 고리 안쪽에 용과 봉황 같은 동물 모양을 세공한 큰 칼로 발전합니다. 고리자루 큰 칼은 대부분 권력자의 무덤에서 나오므로 당시 권력자만이 소유할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1. 마한, 고창 남산리, 2. 가야, 고령 지산동

OLYMPUS DIGITAL CAMERA3. 신라, 경주 황남대총, 4. 백제, 논산 모촌리, 5. 뱀모양 칼, 삼국, 임실 금성리

OLYMPUS DIGITAL CAMERA금은입사 사인검, 조선

칼이 가진 상징성은 선사에서 고대, 중세, 근세로 이어집니다. 칼은 당시 유행에 따라 재질과 형태가 달라지지만, 강력함을 드러내는 칼의 속성은 권력의 상징으로 오랫동안 유지됩니다. 백제가 일본에 전해준 것으로 유명한 칠지도, 뱀처럼 구불구불한 사행검,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의미의 사인검, 용이 장식된 자루를 가진 조선시대 왕의 어도, 대한제국 왕실의 칼인 예도 등은 철로 된 칼이 권력의 상징으로 지속되었다는 것을 잘 보여 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1. 어도, 조선,

OLYMPUS DIGITAL CAMERA2. 예도, 대한제국, 3. 곤봉, 조선

  1.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17년
  2. 위키피디아, 2017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철의 문화사] 아시아의 철문화

철기문화는 기원전 2,000년 경 무렵 근동에서 시작되어 코카서스지역을 거쳐 인도와 중국을 거치면서 동아시아 여러 지역으로 확산된다. 중국에서는 춘추전국시대부터 철기를 만들기 시작했으며 한나라 때 최고 수순에 이른다. 중국은 철을 녹여 주철을 대량으로 만들고, 거푸집을 이용해 다양한 도구를 만들었는데 기술적으로 서양보다 앞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는 중국의 발달된 청동기 제작기술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서아시아, 철문화의 등장
인류가 철을 최초로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서기전 2,000년 무렵 서아시아 아나톨리아 지역의 히타이트 왕국이었다고 전해집니다. 히타이트인들은 철 생산기술을 오랫동안 비밀스럽게 관리했는데, 히타이트의 멸망과 함께 철 생산기술이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의 캅카스 지역을 거쳐 동쪽으로 확산됩니다. 서아시아의 철 문화는 인도와 중국을 거치며 동아시아 여러 지역으로 확산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1. 철심이 있는 청동검, 우라르투,

OLYMPUS DIGITAL CAMERA1. 철심이 있는 청동검, 우라르투, 2. 청동자루가 달린 쇠칼, 우라르투,

OLYMPUS DIGITAL CAMERA3. 쇠칼, 아시리아

페르시아아 큰 칼과 다마스쿠스 검
이 페르시아 큰 칼은 이란에서 구입한 것으로 정확한 출처나 시기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칼날 부분에 보이는 물결무늬는 마치 다마스쿠스 검의 날을 연상시킵니다. 다마스쿠스 검은 인도의 우츠 강철(Woots steel)로 만들어졌는데 페르시아 지역에서 더욱 발전하여 최고의 품질을 갖추게 됩니다. 다마스쿠스 검날의 강도를 높이는 과정에서 형성된 물결무늬는 “마치 바람 부는 연못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물결과도 같다”고 묘사되기도 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1. 큰 칼, 이란

OLYMPUS DIGITAL CAMERA2. 손칼, 이란

OLYMPUS DIGITAL CAMERA2. 손칼, 이란

OLYMPUS DIGITAL CAMERA2. 손칼, 이란

동아시아 철문화의 진화
서아시아의 철 문화는 동아시아로 넘어 오면서 기술이 한층 진보하게 됩니다. 서기전 5세기 무렵 중국은 이미 발달된 청동 주조 기술을 바탕으로 주조 철기를 대량으로 생산합니다. 그리고 주조로 만든 철기를 더 강하고 유연하게 하는 방법도 고안해 냅니다. 중국에서 한층 발전된 철 문화는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 전역에 영향을 줍니다. 한편 서기전 10세기 무렵 인도에 도달한 철문화는 바닷길을 통해 중국 남방, 동남아시아 일대로 확산되며 독창적으로 발전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중국의 주조철기
중국에서 본격적으로 무기와 농기구를 철로 만들기 시작한 것은 춘추전국시대부터이며, 한나라 때가 되면 철을 다루는 기술이 최고 수준에 이릅니다. 중국 철기의 가장 큰 특징은 철을 녹여 주철(무쇠)를 대량으로 만들고, 거푸집을 이용해 다양한 도구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중국은 주조한 철기를 더 강하고 유연하게 바꾸는 방법도 고안해 냈는데, 서양보다 1,000년 정도 앞선 것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1~3. 쇠도끼, 중국 전국.한

OLYMPUS DIGITAL CAMERA4. 쇠손칼, 중국 전국시대

OLYMPUS DIGITAL CAMERA5. 등잔, 중국 한

OLYMPUS DIGITAL CAMERA6. 쇠솥, 중국 한

한반도에는 중국의 철기 제작기술이 전파되어 삼한시대에 철기가 도입되었으며 기원전 1세기 경에는 농기구 등에 철기를 보편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한반도 철기문화의 시작은 기원전 7세기 부터 기원전 2세기까지 학자에 따라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일본의 철기제작 기술은 비교적 그 시기가 늦으며 수입에 의존하여 고대 한반도 서남해안을 거치는 해상무역로는 일본의 철기문화에 큰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삼한에서 발견된 연나라 철기
전국 칠웅 중 중국 동북부 지역에 위치한 연나라는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시아 철문화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삼한 최초의 철기 역시 쇠도끼, 쇠낫, 쇠손칼과 같은 연나라의 농.공구입니다. 마한 권역인 완주 갈동 유적과 진한 권역인 경산 임당 유적에서도 주조로 만든 전형적인 연나라의 농.공구가 확인되었습니다. 이 철기들은 한반도 남부지역에 철문화가 유입된 시점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1. 쇠손칼, 마한, 완주 신풍

OLYMPUS DIGITAL CAMERA2. 쇠낫, 마한, 완주 갈동

OLYMPUS DIGITAL CAMERA3. 쇠도끼, 진한, 경산 임당동

OLYMPUS DIGITAL CAMERA4. 한나라의 큰 칼, 중국 한나라,

강철의 시대
인류는 철의 강함에 익숙해지기 시작하면서 강철을 선호하게 됩니다. 강철을 많이 가진 나라가 강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강철을 ‘더 빨리’, ‘더 많이’, ‘더 강하게’ 만드는 기술을 가지려고 노력했습니다. 수력 풀무를 만들고 석탄을 가공하여 코크스를 만들어 제철용 연료로 사양하는 등 부단한 노력으로 강철의 대량 생산 시대가 열렸습니다. 유럽은 산업혁명으로 강철의 대량 생산기술을 크게 발전시킴으로써, 경제.군사 측면에서 세계의 우위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일본도와 다마하가네
다마하가네(玉鋼)는 일본도를 만드는 특별한 강철입니다. 이 강철은 일본의 전통적인 철 생산 기술인 ‘다타라’공정으로만 만들어집니다. 산소 등의 불순물을 함유하고 있어 유연하고 쉽게 늘어납니다. 일본도의 유연함은 이러한 성질에서 비롯합니다. 전시 중인 다마하가네는 다타라 전통 기술 전수자인 무라게가 만든 것으로 그 중에서도 가장 품질이 좋은 것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1. 다마하가네,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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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일본도(와키자시), 17~18세기, 일본

히에 유적의 쇠도끼
일본 후쿠오카 현 히에유적에서 발굴된 이 도끼는 쇠도끼를 강철화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히에유적의 쇠도끼를 도까날에서 자루 방향으로 잘라 단면을 관찰한 결과 2,000년이 지났음에도 도끼날 부분에 회백색으로 빛나는 주철이 남아 있었고, 주철의 가장자리를 강철이 감싸고 있었습니다. 주철로 만든 쇠도끼의 표면을 열처리하여 강철로 코팅한 것과 같은 효과를 낸 것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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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쇠도끼, 야요이 시대, 후쿠오카현 히에 유적

OLYMPUS DIGITAL CAMERA4. 쇠도끼(재현품), 야요이 시대, 후쿠오카현 히에 유적, 5. 쇠도끼, 마한, 완주 신풍

신풍 유적의 쇠도끼
완주 신풍 유적에서 나온 쇠도끼의 날 부분은 히에 유적의 쇠도끼 날 부분과 상당히 유사합니다. 도끼날이 날카롭게 서 있어 의례용도가 아니라 실제 사용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고, 날 표면이 살짝 벗겨진 흔적도 있습니다. 신풍 유적 쇠도끼를 잘라 내어 단면을 관찰할 수 없지만, 히에 유적의 쇠도끼처럼 날 부분을 강철화하여 사용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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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로 된 고리자루 큰 칼, 백제, 오산 수청동

오산 수청동 무덤에서 출토된 고리자루 큰 칼은 4세기 백제의 제강 기술을 잘 보여 줍니다. 금속학적으로 분석한 결과, 철광석에서 추출한 주철을 다시 녹여 강철로 만드는 제강 공정을 거쳤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칼의 공정을 이해하면 강철을 체계적으로 다루는 삼국시대 장인의 모습을 그려 볼 수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작은 대장간의 도구
작은 대장간에서 덩이쇠로 철기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도구를 사용합니다. 덩이쇠를 불에 달궈 두드리는 과정을 반복하는 작업에서 집게와 모루, 망치는 필수품이었습니다. 숫돌 역시 강철의 날을 세우는 도구로서 중요하게 사용됩니다. 대장간 도구는 만드는 물건에 따라 크기와 형태가 달라집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숫돌, 백제, 부여 능산리

OLYMPUS DIGITAL CAMERA쇠망치, 백제, 부여 신리, 쇠망치, 마한, 가평 대성리

OLYMPUS DIGITAL CAMERA쇠집게, 마한, 가평 대성리

OLYMPUS DIGITAL CAMERA공이, 백제, 부여 능산리, 쇠화살촉과 쇠조각, 마한, 가평 대성리

OLYMPUS DIGITAL CAMERA모루, 백제, 부여 능산리

큰 대장간의 도구
큰 대장간에서는 불순물이 많이 포함된 덩어리 철에 열을 가한 후 반복적으로 두드려 불순물을 제거하여 질 좋은 강철을 만듭니다. 반복하여 두드려줌으로써 강철 소재의 조직을 더욱 치밀하게 만듭니다. 덩어리 철을 망치로 두드려 덩이쇠를 만들기 위해서는 걸맞은 큰 도구들이 필요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쇠망치, 고구려, 연천 원당리

OLYMPUS DIGITAL CAMERA모루, 백제, 부여 나성

OLYMPUS DIGITAL CAMERA판상형 철기, 백제, 부여 능산리, 쇠집게, 백제, 화성 발안리

OLYMPUS DIGITAL CAMERA숫돌, 백제, 완주 상운리

OLYMPUS DIGITAL CAMERA송풍관, 백제, 서천 지산리

OLYMPUS DIGITAL CAMERA단조박편과 입상재, 조선, 경주 문산리

단조박편은 강철을 달궈 두드리는 과정에서 강철 표면이 벗겨지면서 떨어져 나온 얇은 조각입니다. 달궈진 강철 표면 일부가 녹아 방울처럼 대장간의 바닥으로 떨어지며 굳은 것을 입상재라고 합니다. 대장간에서는 모루를 중심으로 단조박편이 층을 이루면서 쌓입니다. 그리고 입상재는 강철을 달구던 단야로서의 위치를 알려 줍니다. 단조박편과 입상재를 활용하여 대장간의 구조를 복원할 수 있으며 대장장이의 움직임이나 습관 등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1.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17년
  2. 위키피디아, 2017년

 

 

[중앙박물관특별전, 철의 문화사] 철, 인류와 만나다.

철기시대는 철을 사용하여 도구나 무기를 만들어 사용하는 시대를 말하며 기원전 12세기 경 그리스와 중동에서 처음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철은 단단함, 높은 용해온도, 풍부한 철광자원을 바탕으로 이전의 청동기를 대체하면서 오늘날까지도 가장 많이 사용되는 금속이다. 철은 기원전 2000년 경 아나톨리아와 코카서스에서 제철 기술과 제련기술이 개발되면서 시작되었고 고대 히타이트인들은 철기를 바탕으로 강력한 세력으로 부상하였으며, 아시리아인들도 철기를 받아들임으로써 중동의 패자가 되었다.

2017년 가을 중앙박물관에서는 철기시대 시작부터 오늘날까지 인류의 역사에 큰 전환기가 되어왔던 철의 문화사를 다시 살펴보는 “쇠.철.강, 철의 문화사”라는 특별전시회를 개최하였다. 전시는 철의 특징과 세계 각국의 역사에서 보여주는 철의 역할과 위상을 보여주는 유물과 관련 내용을 재미있으면서 체계적으로 구성하여 보여 주었다.

 

OLYMPUS DIGITAL CAMERA2017년 중앙박물관에서 열렸던 특별전 “쇠.철.강, 철의 문화사”. 인류 역사에서 큰 변화를 이끌었던 철과 관련되어 독특하면서 재미있는 구성이 특징이다.

전시를 열며
철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가 가장 널리 사용한 금속입니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한 철은 농기구로 만들어져 농업생산량을 획기적으로 증가시켰고, 무기로 만들어져 많은 목숨을 앗아가고, 각종 도구로 활용되며 생활수준을 향상시키는 등 문명의 이기로서 다양한 면모를 드러냈습니다. 철기 제작 기술은 서기전 2,000년 무렵 터키 아나톨리아 고원에서 시작되어 세계 각지로 퍼져 나갔습니다. 철이 가진 특별한 능력은 인류사를 선사에서 고대로 바꾸었고, 역사의 전환기마다 기술혁신을 이끌어 내는 매개가 되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인류사에서 철이 지닌 역할과 가치에 주목하고, 철 문화를 중심으로 우리 역사를 재조명하고자 합니다. 오늘날 금속 생산량의 90%를 차지할 정도로 현대 생활의 근간을 이루는 철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보며, 문명의 미래를 그려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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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장식 쇠손칼, 낙랑, 평양 석암리

황금과 흑금
오금으로 불린 황금, 백금, 청금, 적금, 흑금 중 빛깔이 검은 금속, 흑금이 바로 철입니다. 황금은 시간이 오래되어도 변하지 않는 성질을 갖고 있고, 흑금은 시간이 지나면 산화하여 제 모습을 잃어 버립니다. 황금과 흑금은 상반된 특징으로 서로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사람들은 두 금속의 조합을 선호하였습니다. 황금으로 장식한 철검은 실용과 장식을 모두 충족시킵니다. 석암리 9호분에서 나온 금장식 철검의 현재 모습은 당시 사람들이 가장 선호한 두 금속, 금과 철의 특징을 잘 보여 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1. 철, 인류와 만나다.
1부에서는 광물 자원으로써 철의 물리적인 특성을 알아보고, 인류가 철의 성질을 이해하고 도구로 만들어 간 과정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인류가 처음 철을 사용한 것은 우주에서 떨어진 운철을 이용하면서부터였고, 서기전 2,000년 무렵 철광석에서 철을 추출하며 철기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인류는 철의 강함에 익숙해지면서 강철을 선호하게 되었고, 강철의 생산과 이용은 문명 발달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더 강하게, 더 많이, 더 빨리 전개된 강철의 시대를 만나 보겠습니다. 더불어 철을 둘러싸고 벌어진 역사적 사건들을 살펴보고, 세계 곳곳에서 철기 사용이 어떤 양상으로 전개되었는지 철 문화의 다양한 모습을 소개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어느 고대인이 말하기를, 키프로스섬에서 나오는 철은 작은 조각으로 잘라 땅에 심고 물을 잘 주면 크게 자라난다고 한다. – 프렌시스 베이컨 -

대자연과 철 그리고 사람

자기장과 오로라
철은 지구 중심에 액체 상태로 존재하며, 끊임없이 대류 현상을 일으킵니다. 지구 안에서 철이 위아래로 순환하면서 지구 자체가 커다란 자석이 되어 자기장을 만듭니다. 철이 만든 자기장은 태양으로부터 불어오는 강력한 태양품을 막아 주는 보호막 역할을 합니다. 자기장 덕문에 지구는 사람이 살 수 있는 공간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태양풍 중 일부는 자기장에 이끌려 대기권으로 진입하여 빛을 내는데, 이 현상이 바로 오로라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운철, 미국.아르헨티나

OLYMPUS DIGITAL CAMERA운철, 아르헨티나

OLYMPUS DIGITAL CAMERA운철, 러시아

운철은 무엇일까요?
일반적으로 우주에서 날아오는 유성을 운석이라고 합니다. 운석 중 철로 만 이루어진 것은 철질운석이나 운철이라고 합니다. 운철은 인류가 사용한 최초의 철입니다. 현대 과학을 통해 히타이트와 이집트왕국, 중국 서주의 최초의 칼도 운철로 만들어졌다 게 밝혀졌습니다. 스스로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려고 항상 산소와 결합해 쉽게 녹이 스는 지구의 철과 달리 운철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원래 철이 가진 색을 유지한다고 해요. 여기 전시된 아르헨티나의 운철은 길이가 48 cm, 무게는 약 160 kg에 이른답니다. 하늘의 별을 보며 미래를 예측했던 과거 사람들은 하늘에서떨어진 이 큰 철 덩어리를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운철, 아르헨티나

OLYMPUS DIGITAL CAMERA운석, 북아프리카

철과 신화
인류는 철을 다루는 능력을 초월적이고 경이로운 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동서양을 막롤하고 고대 신화속에는 대장자아이 신이 등장합니다. 멀리 그리스신화의 헤파이스토스나 로마신화의 불카누스, 가깝게는 고구려 고분벽화에 남아 있는 대장장이 신이 대표적입니다. 철을 만드는 것을 신성시하는 모습은 일본의 전통 제철 기술인 ‘다타라’ 속에 아직 남아 있습니다. 다타라 제철을 계승하는 사람들은 지금도 철을 다루기 전에 가카야코 여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좋은 철이 만들어지길 기원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가나야코 여신상, 19세기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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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야코 여신 그림, 17세기 일본

다타라 제철 가나야코 여신
일본의 전통적인 제철 기술인 다타라 제철을 계승하는 사람들은 지금도 철을 다루기 전에 가나야코 여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좋은 철이 만들어지길 기원합니다. 그런데 그림에서 작업하는 사람이 남자들뿐입니다. 가나야코 여신은 질투가 심해서 제철 작업 중에 여성이 출입하면 좋은 철을 만들어주지 않는다고 하여, 작업 중에는 여성의 출입을 금하였다고 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우마차 뒷바퀴, 조선

수레바퀴와 철 문화
철로 된 수레바퀴의 사용은 증기기관을 사용하는 산업혁명 이전까지 오랜 시간 역사를 움직이는 강력한 수단이자 동력이었습니다. 히타이트인들은 최초로 철을 생산했을 뿐만 아니라, 강력한 전차를 발달시켜 전정에 나가 위력을 과시했습니다. 히타이트인들의 ‘철로 된 전처’는바퀴 테와 차축 정도를 철로 만들었 것으로 추정됩니다. 수레바퀴의 발명은 철 문화를 세계 각지로 확산시키는 원동력이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철광석, 가야, 밀양 사촌리

OLYMPUS DIGITAL CAMERA철광석, 고려, 충조 노계마을

철을 만드는 원료 철광석(Iron Ore)
철 생산은 철광산에서 캐어 낸 철광석, 그리고 철광석이 풍화되면서 쌓인 토철이나 사철을 원료로 이용합니다. 우리나라 고대 철 생산 유적에서 출토되는 철광석은 대부분 흑색이나 갈색을 띠는 자철광으로 순수한 것은 72.4%의 철분을 함유하고 있어 강한 자성을 지닙니다. 울산 달천 광산은 우리나라 최초의 철광석을 채굴했던 곳으로 발굴 결과 서기전부터 철광석을 채굴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공이, 백제, 진천 구산리

OLYMPUS DIGITAL CAMERA송풍관, 백제, 진천 석장리,

OLYMPUS DIGITAL CAMERA송풍관, 백제, 진천 삼룡리

OLYMPUS DIGITAL CAMERA거푸집, 신라, 용강동

주철을 녹인 쇳물을 흘려 부어 주조 철기를 만드는 틀입니다. 주로 고운 모래가 섞인 점토로 모양을 만들어 구운 토제 거푸집이 확인됩니다. 중국에서는 한번 제작하여 여러번 철기를 찍어 낼 수 있는 석제.철제 거푸집도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고대 유적에서 쇠도끼의 거푸집, 중세.근세 유적에서 솥의 거푸집이 주로 출토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주철 덩어리, 일본.실험제작

제련 공정으로 얻어진 덩어리 철은 괴련철고 주철괴가 있습니다. 괴련철은 낮은 온도에서 지속적으로 환원하여 여러 종류의 철이 뭉치면서 형성된 것이며, 주철괴는 높은 온도에서 지속적으로 환원하여 철광석 내 불순물과 철이 완전히 분리되어 노 밖으로 배출된 것입니다. 주철괴는 녹아서 흘러나오다가 굳어진 것이므로 조업 환경에 따라 그 모양이 다릅니다. 주철로만 이루어진 주철괴는 탄소량을 낮춰 주는 것만으로 강철로 바꿀 수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산업혁명과 철

지금과 같은 현대 문명은 18세기 영국의 산업혁명을 토대로 하고 있습니다. 산업혁명은 농업 중심의 사회에서 기계화된 공업 사회로 일대 변화를 초래했고, 세계 질서를 뒤흔들었습니다. 산업혁명은 바로 강철을 싸게 많이 만들 수 있었던 기술력이 바탕이 된 것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최초의 철교, 아이언 브리지

윌리엄 웨스트우드가 그린 영국의 아이언 브리지입니다. 이 다리는 1779년에 완공한 세계 최초의 철교로 높이는 12.2 m, 아치의 너비는 30.6 m입니다. 토마스 파놀스가 설계하고, 에이브러햄 다비3세가 완공하였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최초의 증기기관, 트레비식 트레인

1804년 영국에서 R.트레비식이 철제 레일 위를 달리는 증기기관차 실험에 성공하였습니다. 이 그림은 1809년 영국 런던 블룸즈버리 유스턴 광장에서 시운전하는 트레비식 증기기관차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최초 대형 철제 구조물, 크리스탈 팰리스

1851년 제1회 세계만국박람회가 열린 영국 하이드파크의 크리스털팰리스의 삽화입니다. 크리스털팰리스는 J.팩스턴이 설계한 최초의 대형 철제 구조물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철로 만든 최초의 전함, 네메시스호

1841년 네메시스호와 청나라 목제 전합과의 해전을 그린 삽화입니다. 이 전쟁은 이후 아편전쟁으로 불렸고, 동양과 서양의 관계를 뒤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839년에 건조된 네메시스호는 세계 최초로 철로 만든 전합이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1.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17년
  2. 위키피디아, 201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