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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월출산 월남사지, 백제계 양식 석탑이 남아 있는 고려시대 절터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 마을에 남아 있는 월남사지 절터이다. 월남사는 기록에 따르면 고려시대 송광사 2대국사인 진각국사가 창건한 사찰로 알려져 있으며, 남아 있는 삼층석탑이나 사찰 형태 등으로 볼 때 그 이전부터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절터에는 백제석탑 양식을 계승한 월남사지삼층석탑(보물 298호), 진각국사비(보물 313호)가 남아 있었다. 최근 인근 민가에서 신라계 양식의 지붕돌이 발견되어 2기의 석탑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2010년에는 절터에 민가와 작은 사찰이 있었으나 죄근에 발굴.조사가 진행되고 있어 옛 절터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월남사는 정유재란 때 소실된 후 폐사되어 절터만 남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강진 월남사지. 발굴.조사가 진행되기 전 모습인데 마을 가운데 삼층석탑이 남아 있었다.

SANYO DIGITAL CAMERA강진 월남사지 삼층석탑(보물 298호). 화강석을 목재처럼 다듬어 짜맞추어 목탑처럼 만든 백제 석탑양식을 따르고 있는 독특한 형태의 고려시대 석탑이다.

SANYO DIGITAL CAMERA석탑 뒷편 불전이 있던 자리에는 최근까지 월남사라는 사찰이 있었다.

SANYO DIGITAL CAMERA월남사지 전각들이 들어서 있었던 석탑 왼쪽편 건물터.

SANYO DIGITAL CAMERA절터에는 발굴.조사가 진행되기 전까지 민가들이 들어서 있었고 건물터는 농경지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건물터 뒷편으로 보이는 월출산 봉우리.

SANYO DIGITAL CAMERA절터 한쪽편 마을에 자리잡고 있는 진각국사비(보물 313호)

월남사지,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
월남사지는 월출산 남쪽에 있던 큰 규모의 절로 처음 세워진 연대는 정확하지 않지만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고려 진각국사 혜심(1178~1234)이 처음 지었다고 전한다. 이후 어떤 과정을 거쳐 언제 절이 없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없다. 현재 절터에 남아 있는 유적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백제계 삼층석탑과 이규보가 쓴 진각국사비가 남아 있다. 월남사지는 정유재란을 겪으면서 불에 타 없어진 후 지금까지 복원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월남사는 진각국사가 주석한 사실에도 백제계 석탑이 남아 있는 사지로서는 가장 그 규모가 커 주목되고 있다. 이 석탑은 법당지의 전면으로 추정되는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최근에 현 석탑 좌측의 민가 장독대에서 석탑의 옥개석(지붕돌)이 발견되었는데 현지 주민들이 구전한 바로는 현 석탑의 주변에서 수습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시실을 볼 때 월남사지에는 원래 2기의 석탑이 있었던 것 같다. (안내문, 강진군청, 2010년)

<출처>

  1. 안내문, 강진군청, 201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

강진 월남사지 진각국사비(보물 313호)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 월남사지 절터에 남아 있는 진각국사비(보물 313호)이다. 고려중기에 활동한 진각국사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비석은 거북받침돌 위에 비몸을 올린 형태로 머릿돌은 없다. 거북받침돌은 구슬을 물고 있는 용의 얼굴에 네발을 단단히 짚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사실적이며 생동감 있는 표현이 돋보이다. 비문은 고려중기 문장가 이규보가 지은 것이라 전하는데 비몸에 새겨진 글씨는 마모되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통일신라나 고려초에 비해 비석제작 기술 수준이 떨어지는 편이나, 조각수법이나 세부 표현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진각국사 혜심(1178~1234)은 고려중기에 활동한 승려로 보조국사 지눌의 제자이다. 보조국사가 입적하자 송광사 2대 국사로 불교개혁을 이끌었다. 그의 사호 고려 고종은 진각국사라는 시호와 원소지탑이라는 부도이름을 내렸다. 이규모가 지은 비문은 『동국이상국집』 등에 그 글이 수록되어 있다고 한다.

SANYO DIGITAL CAMERA강진 월남사지 진각국사비(보물 313호). 송광사 2대 진각국사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으로 고려중기 문장기 이규보가 비문을 지었다.

SANYO DIGITAL CAMERA거북받침돌. 조각수법이 사실적이며 힘친 기상을 보여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여의주를 물고 있는 얼굴.

SANYO DIGITAL CAMERA땅을 짚고 일어서려는 듯한 힘이 넘치는 표현이 돋보이는 발.

SANYO DIGITAL CAMERA뒷면에서 본 거북받침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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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몸(앞면). 글자가 마모되어 거의 알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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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몸 뒷면에는 약간의 글씨가 남아 있으나 거의 알아보기 힘들다.

월남사지 진국국사비, 보물 313호,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
비는 어떤 일의 자취를 후세에 오래도록 남기기 위해 나무.돌.쇠붙이 따위에 글을 새겨 놓은 것이다. 이 비석은 월남사를 창건한 진각국사(1178~1234)를 추모하기 위하여 고려 고종 37년(1250)에 세워진 것이다. 비문은 이규보(1168~1241)가 지었고, 글씨는 서예가로 이름난 탁연이 왕명을 받아 썼다. 진국국사의 속세의 성은 최씨이고 법명은 혜심으로 화순 사람이다. 보조국사 지눌의 문하에서 선학을 닦았고, 송광사 16국사 중 제2조인 고승이다. 비는 거북받침돌 위에 몸돌을 올린 형태이다. 거북은 입에 구슬을 물었는데, 그 모습이 강렬하고 사실적이다. 목과 머리조각의 세부표현 또한 전체적인 균형과 어우러져 한층 돋보인다. 현재 비의 전면은 떨어져 나가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없으나, 후면은 상당한 부분이 남아 있어 많은 내용을 전하고 있다. (안내문, 강진군청, 2010년)

<출처>

  1. 안내문, 강진군청, 201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

강진 월출산 무위사, 수륙재로 유명했던 사찰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출산 자락에 있는 사찰인 무위사(無爲寺)이다. 조선전기 불교건축을 대표하는 주불전인 극락보전(국보 13호)으로 유명한 사찰이다.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통일신라말 선각대사가 중창하였으면 보림사와 함께 지역을 대표하는 선종사찰이었다. 조선초 태종이 전국 사찰을 군현중심으로 재편할 때 천태종 17자복사 중 하나가 되면서 지역을 대표하는 사찰로 자리잡았다. 조선시대에는 죽은이의 영혼을 위로하는 수룍재가 유명한 사찰이었다고 한다. 한때는 건물이 58동에 이르는 큰 사찰이었으나 쇠락하여 최근까지 극락보전, 명부전과 요사채만 있는 작은 사찰이었다가 최근에 불전 등을 중창하면서 옛 모습을 일부 찾아가고 있다.

주불전인 극락보전은 조선전기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간결하면서 단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내부에는 아미타여래삼존벽화(국보 313호), 백의관음도(보물1214호), 사면벽화(보물1315호) 등 불교미술사에 큰 의미를 가지는 불화들로 장식하고 있다. 사찰 경내에는 무위사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선각대사를 기리는 탑비(보물 507호)와 고려초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삼층석탑이 남아 있다.

SANYO DIGITAL CAMERA강진 월출산 무위사. 지역을 대표하는 큰 사찰이었는데 쇠락하여 주불전을 제외하고는 비어있는 공간이 많다.

SANYO DIGITAL CAMERA무위사 출입문인 천왕문. 월출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기는 하지만 산중사찰이라기 보다는 교통요지에 세워진 평지사찰에 가까운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천왕문을 들어서면 원래 많은 전각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지금은 주불전인 극락보전까지 공간이 비어 있어 넓은 느낌을 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무위사 극락보전 앞 공간. 비교적 공간을 넓게 쓰고 있으며, 원래 상당히 많은 전각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무위사 주불전인 극락보전(국보 13호). 조선전기를 대표하는 불교건축물로 극락세계를 상징하는 아미타여래를 모신 불전이다.

SANYO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극락보전. 주심포양식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건축양식이 잘 나타나 있다.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22-20190712
주불전에 모셔진 아미타여래삼존좌상(보물 1312호)와 아미타여래삼존삼존벽화(국보 313호), 불전내부를 장식하고 있는 내사면벽화(보물 1315호)와 함께 화려하면서도 장엄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24-20190712
극락보전 내부를 장식하고 있는 내사면벽화(보물 1315호) 중 서쪽 벽면에 그려진 벽화. 극락보전 안쪽에는 삼존불화를 비롯하여 총 29점의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무위사 극락전 내벽사면벽화, 보물 1315호
1974년 극락보전을 보수하면서 벽면의 벽화들을 원형대로 뜯어내어 보존한 것이며 아미타내영도, 석가여래설법도, 휙휙 그려낸 너울과 옷자락이 멋있는 해수관음좌상도, 보살좌상도, 오불도, 하늘을 날며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의 비천선인도 등 29점이 보물로 지정보존되고 있다. 이중 아미타내영도는 흙벽에 채색된 것으로 사람이 죽을때나 수행이 성숙해지면 아미타불이 마중와서 서방극락으로 인도해 간다는 내용을 도상화한 것으로 아미타불과 8보살 8비구가 구름 위에서 좌우로 길게 늘어서서 왕생자를 맞이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이 그림은 과감할 정도로 밝고 엷은 적색과 녹색 등 고려불화의 양식이 짙게 나타나 있는 반면, 화면에 나한이 등장하는 등 세부묘사에서 조선초의 새로운 양식이 표현되어 있다. 현재 극락전 좌우 벽면에 그려진 아미타내영도와 설법도 등 2점은 모사본이며 원본은 전시관 내에 보존되어 있다. (안내문, 강진 무위사, 2010년)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21-20190712
백의관음도(보물 1314호). 아미타여래삼존벽화 뒷쪽에 그려진 벽화로 고려불화의 영향이 남아 있는 대표적인 조선초기 불화로 손꼽힌다.

SANYO DIGITAL CAMERA극락보전 오른쪽에 위치한 명부전. 죽은이의 영혼을 위로하는 공간으로 수륙재로 유명했던 무위사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까지 무위사에는 불전으로 극락보전과 명부전만 있었다고 한다. 현재의 건물로 새로 지은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극락보전 왼쪽편에 위치하는 나한전.

SANYO DIGITAL CAMERA나한전 윗쪽 언덕에 위치한 천불전.

SANYO DIGITAL CAMERA토속신과 관련된 산신각

SANYO DIGITAL CAMERA극락전 앞 마당 한쪽편에 세워져 있는 삼층석탑. 고려초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며 정형화된 삼층석탑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강진 무위사 선각대사탑비(보물 507호). 통일신라말 당나라 비석의 영향을 받은 전형적인 탑비의 형식을 하고 있다. 조각수법이 사실적이면서 섬세한 동시대를 대표하는 걸작 중 하나이다. 고려초 문장가 최언위가 비문을 지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SANYO DIGITAL CAMERA무위사 유물전시공간. 극락보전을 해체.수리하면서 불전 내부에 있는 벽화 등을 소장.전시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명부전 아래에 있는 요사채들.

SANYO DIGITAL CAMERA사찰 앞쪽에 있는 최근에 새로 지은 것으로 보이는 큰 규모의 요사채.

SANYO DIGITAL CAMERA무위사 뒷편 동백나무숲.

SANYO DIGITAL CAMERA무위사 뒷편으로 보이는 월출산. 기암괴석들의 솟아오른 듯한 빼어난 절경을 보여주고 있다.

무위사(無爲寺)
『무위사사적』에 의하면, 무위사는 원효스님에 의해 창건되고 도선국사에 의해 중창되었다고 한다. 무위사의 역사는 선각대사 형미스님이 중창한 10세기 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무위사는 고려 초에는 선종사찰로 유명하였으나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수륙사로서 유명하였다. 죽은 영혼을 달래주는 수륙재를 행하였던 사찰이었던 만큼, 중심 건물은 극락세계를 관장하는 아미타여래를 모신 극락보전(국보 13호)이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극락보전으로, 우리나라 조선시대 불교 건축물 중에서도 초기 형태에 속한다. 눈여겨 볼 것은 맞배지붕과 주심포양식으로 지어진 극락보전은 단아하면서도 소박한 건축이다. 특히 극락보전 측면의 기둥과 보가 만나 이루는 공간분할의 절제된 아름다움도 놓쳐서는 안 될 감상 포인트이다. 또한 단정하고 검소한 극락보전의 겉모습과 달리 서방 정토 극락세계를 묘사한 화려한 건물 내부는 물로, 조선 초기 불교 미술의 극치를 보여주는 불상과 불화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이다. (안내문, 강진 무위사, 2018년)

<출처>

  1. 안내문, 강진 무위사, 201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