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 Archives: August 2019

나주 나주향교 대성전(보물 394호),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묘 건축물

전남 나주시 교동에 있는 나주향교 대성전(보물 394호)이다. 대상전은 공자를 비롯한 선현들의 제사를 지내는 제향공간 중심 건물로 문묘라고도 부른다. 나주향교는 전묘후학의 공간배치로 성균관 문묘처럼 앞쪽에 위치하고 있다. 건물은 앞면 5칸, 옆면 4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데 성균관 문묘와 비슷한 규모이다. 지붕을 받치는 공포는 주심포 양식을 사용하고 있으며, 바닥에는 마루를 깔았다. 서울 문묘, 강릉향교, 장수향교와 더불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묘 건축물이다.

SANYO DIGITAL CAMERA나주향교 대성전(보물 394호).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묘 건축물로 서울 성균관 문묘에 버금가는 큰 규모의 대성전이다.

SANYO DIGITAL CAMERA건물은 앞면 5칸, 옆면 5칸 규모이다. 팔작지붕을 사용하고 있으며 지붕을 받치는 공포는 주심포양식이다.

SANYO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모습

나주 나주향교 대성전 보물394호 01-20190828
건물 내부. 바닥에 전돌대신 마루가 깔려 있으며, 천장은 서까래가 드러나 보이는 연등천장이다.

SANYO DIGITAL CAMERA대성전 앞 월대.

나주향교 대성전, 보물 394호
대서어전은 향교의 중심건물로 공자를 중심으로 한 27위의 위패를 모신공간이다. 건물의 크기나 모양이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대성전 중에 으뜸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유교건축 연구에 있어서도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대성전 벽흙은 공자의 고향에서 가져온 것이라는 말과 임진왜란 이후 성균관을 다시 지을 때 나주향교 대성전을 참조하여 지었다는 말이 전해온다. 대성전은 조선시대 나주향교가 건립되면서 처음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1670년 소두산 목사에 의해 대성전 중수가 이루어졌고 고종 6년(1869)에 대성전을 비롯하여 대대적인 보수를 거쳤으며, 순조 33년 ~ 헌종 3년(1833 ~1837), 고종 32년(1906), 2008년에 대성전 도리이상 해체.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안내문, 나주시청, 2017년)

<출처>

  1. 안내문, 나주시청,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

김제 모악산 금산사(사적 496호), 통일신라 법상종 근본도량이었던 사찰

전북 김제시 금산면 모악산에 있는 큰 사찰인 금산사(사적 496호)이다. 금산사는 화엄종과 함께 통일신라 불교를 이끌어왔던 법상종의 근본도량이다. 삼국시대 백제 무왕 때 처음 창건되었으며, 통일신라 때 진표가 미륵존불을 모시는 장륙전을 세우는 등 사찰을 크게 중창하였다. 이후 후삼국시대 견훤이 이곳에 유배되기도 했다. 고려 문종 때 왕사인 혜덕이 다시 중창하였는데 금강계단(보물 25호), 오층석탑(보물 26호) 현존하는 석조유물들은 이 때 조성되었다. 이후 임진왜란 때 사찰 대부분이 소실되었는데 승려 수문을 중심으로 다시 중창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옛 장륙전의 모습이 남아 있는 미륵전(국보 62호)를 비롯하여 목조건축물들은 이때 다시 지어진 것들이다. 임진왜란 때 금산사 승려를 중심으로 참전하여 많은 공을 세웠기때문에 국가와 지역사회의 후원을 받아 크게 중창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금산사는 삼국시대 장륙전의 모습이 남아 있는 미륵전(국보 62호), 주불전으로 보이는 대적광전, 목탑이었던 대정전(보물 827호)을 비롯하여 나한전, 원통보전, 명부전 등 많은 불전들을 두고 있다. 또한 고려초에 조성된 석가모시 사리를 모신 금강계단(보물 26호), 오층석탑(보물 25호), 육각다층석탑(보물 27호), 노주(보물 22호), 석련대(보물 23호), 석등(보물 828호) 등 많은 석조유물들이 남아 있다. 통일신라 때에는 미륵존상을 모신 장륙전을 중심으로 공간이 배치되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고려시대 이후 수계의식 등 사찰 주요 의식을 집행하던 공간인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적광전이 주불전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김제 모악산 금산사 전경. 삼국시대 장륙전을 연상시키는 미륵전이 동쪽에 배치되어 있으며, 주불전에 해당하는 대적광전과 금강계단을 비롯한 주요 불전들이 북쪽에 배치되어 있다. 미륵전 앞에는 목탑에 해당하는 대장전이 있었으나 바깥쪽으로 옮겨졌다.

SANYO DIGITAL CAMERA금산산 들어가는 길. 금산사는 전주 남쪽에 위치한 모악산(764 m) 서쪽 계곡에 위치하고 있다. 전주와 김제 주변 넓은 평야지대의 농업생산력을 바탕으로 삼국시대 이래 큰 사찰을 유지해 왔던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금산사 앞을 흐르는 계곡

SANYO DIGITAL CAMERA사찰 경내를 들어가는 첫번째 출입문인 금강문.

SANYO DIGITAL CAMERA금산사 당간지주(보물 28호). 기단과 받침을 제대로 갖추고 있으며 조각수법과 조형미가 우수한 통일신라 전성기 작품이다. 금강문 안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원래 이곳이 사찰입구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당간지주 주변에 볼 수 있는 오래된 고목들.

SANYO DIGITAL CAMERA2번째 출입문인 천왕문.

SANYO DIGITAL CAMERA천왕문을 들어서면 최근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상당히 큰 규모의 강당 건물을 볼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삼국시대 장륙전의 모습이 남아 있는 미륵전(국보 62호). 정유재란 때 소실된 장류전을 복구한 것으로 조선시대 건축양식이 반영되어 있지만 그 규모나 형태에서 거대한 미륵삼존상을 모시는 옛 장륙전의 웅장함을 느끼게 해준다.

SANYO DIGITAL CAMERA미륵전 맞은 편에 위치한 대장전(보물 827호)과 석등(보물 828호). 원래 미륵전 앞 불경을 보관하던 목탑건물이었는데 정유재란 때 소실된 후 1층 건물로 다시 지어졌다. 일제강점기에 현위치로 옮기면서 불전으로 바뀌었다.

SANYO DIGITAL CAMERA금산사 중심영역에 해당하는 금강계단(보물 26호)과 오층석탑(보물 25호). 통도사에서 볼 수 있는 석가모니 사리를 모신 금강계단과 비슷한 형태이지만 그 앞에 다시 오층석탑을 두고 있다. 왼쪽편 주불전인 대적광전과 함께 사찰의 주요 의례를 행하던 공간이었다. 대적광전은 불상을 모시는 불전으로 바뀌고 오른쪽에 불상이 없는 적멸보궁이 새로 지어졌다. 금강계단과 석탑을 같이 두는 등 사찰 공간배치에 일관성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금산사 금강계단(보물 26호). 통도사 금강계단과 비슷한 형태로 넓은 2단의 기단 위에 석종형 탑이 올려져 있다. 기단 네면에 돌기둥이 남아 있으며, 사천왕상이 세워져 있다. 석종형 탑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고려시대 초기에 조성된 것 추정된다.

SANYO DIGITAL CAMERA 금산사 오층석탑(보물 25호). 통일신라 석탑의 기본 양식을 잘 따르고 있는 고려시대 작품으로 추정된다. 금강계단과 오층석탑이 같이 있는 특이한 형태의 공간배치를 보여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금산사 주불전에 해당하는 대적광전. 금강계단과 함께 사찰 중요 의식을 행하는 공간으로 원래는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삼신불을 모시는 공간이었는데, 정유재란 때 화재로 소실된 것을 복구하면서 극락전, 약사전에 모셨던 불상들을 같이 모시게 되었다. 원래는 보물47호로 지정된 불전이었으나 1986년 화재로 소실되면서 1990년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SANYO DIGITAL CAMERA대적광전 앞에 있는 육각다층석탑(보물 27호). 원래 금산사 봉천원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왔다. 고려초 사찰을 크게 중수할 때 조성한 것으로 흑색 점판암을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SANYO DIGITAL CAMERA석련대(보물 23호). 불상을 올려놓는 받침으로 그 형태가 특이하고 매우 큰 편이다. 원래 위치가 어디인지는 알 수 없다.

SANYO DIGITAL CAMERA노주(보물 22호). 불상을 얹는 대좌처럼 보이지만 꼭대기 꽃봉우리 조각이 있어 그 용도를 알 수 없는 석조유물이다. 다른 석조유물과 마찬가지로 고려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SANYO DIGITAL CAMERA대적광전 뒷편에 있는 나한전. 임진왜란 때 참전하면서 큰 역할을 했던 승려들의 위상을 보여주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역대 고승들의 영정을 모신 조사전.

진표율사
진표율사는 금산사를 미륵신앙 대가람으로 일으킨 중창 조사이다. 통일신라 경덕왕 때 완산주 만경현에서 아버지 정진나마와 어머니 길보랑 사이에서 태어났다. 율사는 12세에 우연히 아버지의 사냥길을 따라 갔다가 연못에 놀고 있는 개구리를 잡아 화살촉에 꿰어두고 돌아온 일이 있었다. 이듬해에 우연히 그곳을 다시 지나다가 전 해에 잡다둔 개구리들이 가엾게 울고 있는 소리를 듣고 자신으 지난 행동을 마음 속 깊이 뉘우쳤다. 이에 출가하여 금사사의 순제법사를 은사로 득도하였다. 율사의 나이 23세가 되어서는, 1년 동안 간절히 공부하면 무수보살의 현신계를 받을 수 있다는 은사의 가르침에 따라 변산의 부사방에 들어가 몸을 바위에 던지는 망신참법으로 수행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각을 이루지 못하자, 율사는 내생을 기약하며 벼랑에 투신하였더니 푸른 옷을 입은 동자가 나타나 율사를 구하였다. 그 후 다시 7일간 용맹정진하여 지장보살의 현전 수기로 계율을 받았다. 그러나 율사는 미륵보살에 뜻이 있었으므로 변산의 영산사로 자리를 옮겨 수행한 끝에 미륵보살로부터 점찰경 두권과 증과의 괘쪽을 받았다. 이후 율사는 금산사로 자리를 옮겨 금당(미륵전)을 짓고 그 안에 미륵장육상을 봉안하는 등 금산사를 미륵도량으로 크게 중창하였다. 해마다 단을 만들고 널리 설교하니 단을 베푼 좌석의 정결하고 엄숙한 품이 말세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현세에 용화세계를 건설하고자 전생에 지은 악업을 지극한 마음으로 참회하고 열가지 선업을 닦도록 한 것이나, 미륵으로부터 전해 받은 점찰경을 바탕으로 점찰법회를 봉행한 것 등은 모두 율사로부터 시작된 것이며, 이로 말미암아 불법의 교화가 삼한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금산사를 중창한 후, 율사는 속리산 법주사, 금강산 발연사 등으로 자리를 옮겨 미륵신앙의 대중화에 노력하였으며, 삼국통일 이후 이반된 민심을 위로하는 일에도 크게 애쓰셨다. 이에 경덕왕은 진표율사를 경주에 초청하여 보살계 계단을 열게하고, 율사의 미륵신앙 대중화 운동을 크게 지원하였다. 이에 율사의 미륵신앙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여기에 간략히 기록하여 둔다. (안내문, 김제 금산사, 2009년)

SANYO DIGITAL CAMERA명부전. 경내 서쪽편에 위치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관음보살을 모신 공간인 원통전.

SANYO DIGITAL CAMERA삼성각.

SANYO DIGITAL CAMERA미륵전 뒷편에 위치한 승려들의 수행공간인 요 사채들.

금산사
금산사는 백제 법왕 원년(599)에 창건되어 신라 혜공왕 2년 진표율사가 금당에 미륵장육상을 모시고 도량을 중창하여 법상종을 열어 미륵신앙의 근본도량으로 삼았다. 후백제 견훤이 아들 신검에 의하여 유폐되었다고 전해오고 있으며 고려 문종 33년(1079) 혜덕왕사가 대사구, 봉천원, 광교원 등을 설치하여 전성기를 이루었다.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당시에는 처영뇌묵 대사 등 일천여 승병들의 훈련장이 되기도 하였다. 그 후 정유재란 시 80여 동의 전각과 산내 암자가 왜군의 손에 전소되는 비운을 겪기도 하였다. 선조 34년(1601) 수문대사가 10여명의 도반들과 함께 35년 간에 걸쳐 복원불사를 추진하여 대사구 지역만 일부 재건하였다. 이조 말엽에는 환성지안대사가 수많은 스님들이 운집한 가운데 화엄 산림법회를 성대하게 개최하였으며 용명 스님의 순교 등 수 많은 고승 대덕 스님들이 주석하던 절이다. 한국 불교의 정화와 중흥을 위해 진력하던 월주 화상이 1961년 주지로 부임한 후 도영.도법 등 도제들과 사부대중의 원력을 모아 대적광전, 미륵전, 대장전, 하서전, 방등계단, 삼성각, 적멸보궁 등을 중건 중수하고 보네루, 일주문, 상서전, 서래선원, 범종각, 종무소, 향적당, 보현당, 설법전, 만월당, 성보박물관, 적묵당, 나한전, 조사전 등을 새로 건립하여 대사구를 완전 복원하고 확장하였다. 1986년 원인 모를 화재로 대적광전이 소실되었으나 월주화상의 원력으로 도제들과 사부대중의 협력을 받아 복원하였고 전주시내에 전북불교 회관을 건립하여 전북지역의 포교를 맡고 있는 호남 제일의 수도와 교화의 중심 도량으로 그 면모를 갖추어 미륵십선운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안내문, 김제 금산사, 2009년)

<출처>

  1. 안내문, 김제 금산사, 200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
  4. 위키백과, 2019년

김제 금산사 당간지주(보물 28호)

전북 김제시 금산면 금산사 입구에 세워져 있는 당간지주(보물 28호)이다. 높이 3.5 m의 지주가 남북으로 마주보고 있다. 기단은 단층이며, 기단 위 당간을 세우는 받침에는 기둥과 둥근 형태의 무늬를 새겨 놓고 있다. 지주의 안쪽에는 조각이 없는 반면 바깥쪽에는 세로띠를 돋을새김으로 장식해 놓고 있으며,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한 구멍을 3곳 뚫었는데 통일신라 전성기 양식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 한다. 기단부와 당간받침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작품으로 장식은 거의 없지만 전체적으로 조각수법과 조형미가 뛰어나다. 통일신라 전성기 8세기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금산사 입구에 세워져 있는 당간지주(보물 28호). 통일신라 전성기 때 조성된 것으로 조각수법이나 조형미가 뛰어나다.

SANYO DIGITAL CAMERA당간지주 기단과 받침. 기단은 1층이며 받침에는 기둥고 둥근 꽃무늬를 새겨놓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모습. 세로로 기둥모양을 돋을새김해 놓았다. 다른 당간지주에 비해 조각수법이 양호한 편이다.

SANYO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모습

당간지주, 보물 28호
당간지주는 사찰을 상징하는 깃발이나 괘불을 세울 때 버팀목으로 사용하는 석조물이다. 이 지주는 높이가 3.5 m이며 양 지주가 남북으로 상대하여 있다. 기단석과 간대를 완벽하게 구비하고 있는 국내 유일의 당간지주이다. 양 지주의 각면에 장식된 조각기법이 현저하게 두드러지며 한국 당간지주 가운데 가장 완벽한 형식을 갖추고 있다. 석력대, 석종, 석탑, 석등은 통일신라시대에서 고려시대에 걸쳐 만들어진 유물들인데 이 당간지누는 통일신라시대 전성기인 8세기 후반에 건립된 것으로 보고 있다. (안내문, 김제 금산사, 2009년)

<출처>

  1. 안내문, 김제 금산사, 200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

김제 금산사 대장전(보물 827호), 미륵전 앞 목탑으로 세워졌던 건물

전북 김제시 금산면 금산사 불전인 대장전(보물 827호)이다. 원래 미륵전 앞에 세워져 있던 목탑으로 불경을 보관하던 장소였다. 정유재란 때 소실된 것을 인조 때(1635)에 현재의 모습으로 중건하였으며, 1922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불경을 보관하는 기능은 없어지고 지금은 석가모니와 제자를 모시늘 불전으로 사용하고 있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로 목탑 건물로는 그 규모가 크지 않은 편이다. 지붕에 목탑이었을 때 사용하였던 부재가 올려져 있으며, 단층으로 변형되었지만 옛 목탑의 건축양식이 일부 남아 있다.

SANYO DIGITAL CAMERA금산사 대장전(보물 827호). 원래 미륵전 앞에 있던 목탑으로 불경을 보관하던 장소였다. 정유재란 때 목탑이 소실된 후 단층건물로 다시 지어졌다.

SANYO DIGITAL CAMERA대장전 현판. ‘대장전’이란 불전 이름에서 불경을 보관하던 장소였음을 알 수 있다.

김제 금산사 대장전 보물827호 01-20190821
대장전 내부.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내부에 기둥이 있는 등 목탑 건축 양식이 일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대장전에 모셔진 불상. 석가보니와 제자들을 모시고 있는데 일반적인 불전과는 다른 형태이다.

김제 금산사 대장전 보물827호 02-20190821

건물 지붕을 장식하고 있는 옛 목탑의 건축부재.

SANYO DIGITAL CAMERA금산사 경내 미륵전과 마주보고 있는 위치에 있는 대장전, 원래 목탑처럼 미륵전 바로 앞에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대장전, 보물 827호
대장전은 미륵전을 장엄하는 정중 목조탑으로 미륵전과 함께 일찍이 건립되었다. 정유재란에 소실된 후 1635년 조서너 인조 13년에 재건되었으며 1922년 미륵전 앞에서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 현재 지붕위에 남아 있는 복발과 보수 등은 조선 인조 이전의 목탑 잔영이며 법당안에는 석가모니불과 상수제자인 가섭존자와 아난존자를 봉안하고 있다. 건물은 비교적 단조롭고 소규모이지만 정중 목탑의 변형물로 주목되며 석가모니불의 후불광배의 조각이 뛰어나게 아름답다. (안내문, 김제 금산사, 2009년)

<출처>

  1. 안내문, 김제 금산사, 200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

김제 금산사 미륵전(국보 62호), 삼국시대 장륙전 모습이 남아 있는 거대 불전

전북 김제시 금산면 금산사 경내에 있는 미륵전(국보62호)이다. 미륵삼존상을 모시고 있는 불전으로 삼국시대  목탑과 함께 주불전으로 지어졌던 장륙전의 모습이 잘 남아 있다. 삼국시대 지어졌던 건물은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으며 이후 인조 때(1635)에 중수하였다. 건물은 외형상 3층 건물을 하고 있으며, 내부는 통층으로 되어 있다. 1층과 2층은 앞면 5칸, 옆면 4칸이며, 3층은 앞면 3칸, 옆면 2칸이다.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다포계 공포를 사용하는 등 조선시대 불전 건축양식이 잘 반영되어 있기도 하다. 옛 장륙전의 웅장한 모습이 잘 남아 있는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장륙전 모습이 남아 있는 불전으로는 화엄사 각황전(국보 67호), 법주사 대웅보전(보물 915호), 무량사 극락전(보물 356호) 등이 있다. 금산사는 삼국시대 진표(? ~ 752)가 법상종 근본도량으로 창건한 사찰로 법주사와 함께 미륵신앙을 대표하는 사찰로 손꼽힌다.

SANYO DIGITAL CAMERA금산사 미륵전(국보 62호). 삼국시대에 주불전으로 많이 지어졌던 미륵삼존상을 모신 장륙전의 모습이 잘 남아 있는 대표적인 불전이다.

SANYO DIGITAL CAMERA정면에서 본 모습. 건물 1층과 2층은 앞면 5칸, 3층은 앞면 3칸 규모이며, 조선시대 건축에서 주로 볼 수 있는 팔작지붕에 다포계 양식을 사용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건물 1층에는 ’대자보전; 2층에는 ;용화지회’, 3층에는 ‘미륵전’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SANYO DIGITAL CAMERA건물 모퉁이 귀공포. 건물 모서리에는 활주를 세워 지붕을 받치고 있다.

김제 금산사 미륵전 국보62호 11-20190819건물 내부는 통층으로 되어 있다. 제일 높은 기둥은 하나의 통나무가 아닌 여러개의 나무를 이어서 사용하고 있다.

김제 금산사 미륵전 국보62호 12-20190819

미륵전에 모셔진 삼존상. 미륵전에 모셔져 있는 원래의 삼존불상은 정유재란 때 불타버렸으며, 현재의 불상은 인조 때 새로 조성된 소조상이다. 그 중 본존불은 1934년에 다시 중수하였다.

SANYO DIGITAL CAMERA금산사 방등계단에서 내려다 보이는 미륵전.

SANYO DIGITAL CAMERA남쪽에서 본 모습.

SANYO DIGITAL CAMERA금산사 경내 모습. 석가모니 사리를 모신 방등계단이 중심축에 있으며, 미륵전은 경내 동쪽편에 위치하고 있다.

미륵전, 국보 62호
미륵전은 진표율사가 미륵장륙상을 봉안하기 위하여 766년, 신라 혜공왕 2년에 처음 건립한 법당이다. 법당내에는 미륵불 등 삼존상이 조성되어 있다. 미륵전은 정유재란에 전소되었으나 인조 13년, 1635년에 수문대사가 한국 유일의 삼층법당으로 재건한 것이다. 법당 외부 1층과 2층은 정면 5칸, 측면 4칸이고, 3층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다포형식이며, 법당 내부는 층이 따로 구분되어 있지 않은 통층이다. 건물 중앙의 제일 높은 기둥이 하나가 아니라 몇개의 기둥을 연결하여 만든 것이다. 이러한 기둥양식은 목조탑 양식에서 변안된 양식이다. 오랜 세월을 지내는 동안 목재가 썪고 건물이 낡아 1988년부터 1993년까지 5년간 문화재관리국의 주관으로 건물을 전면 보수하였으며 이후 다시 번와공사를 하였다. 법당 내부 지하에는 연대미상의 철제연와대가 있는데, 이로 미루어 법당 내부에는 원래 철불이 모셔져 있지 않았을까 추정하고 있다. 항간에는 연화대가 솥으로 알려져 있으며 솥을 만지는 사람은 속세의 업장을 소멸하고 소원을 성취한다고 전해오고 있다. 미륵전의 터는 원래 용이 살고 있던 연못이었으나 어떤 고승의 가름침에 따라 솥으로 연못을 메워 용을 쫓고 미륵전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안내문, 김제 금산사, 2009년)

<출처>

  1. 안내문, 김제 금산사, 200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