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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남원향교, 남원도호부 중등교육기관

전북 남원시 향교동에 있는 조선시대 남원도호부 중등교육인 남원향교이다. 남원향교는 조선초 태종 때(1410년)에 처음 창건되었으며, 세종 때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정유재란 남원전투 때 소실되었다가 복원하였으며 여러 차례 중수를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성전을 비롯하여 동.서무, 강당인 명륜당과 동.서재, 문루인 진강루와 고직사 등을 두고 있다.

남원향교는 고을규모에 걸맞게 건물의 규모가 상당히 큰 편이며 오랫동안 교육기능을 담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전북에 있는 향교 중  가장 많은 서적을 소장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남원은 지리산과 접하고 있으며 영남지방을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로 위치하고 있어 이곳을 찾은 방문객들이 많았던 것으로 보이며 방문객들을 위해 강당을 비롯하여 강학공간의 규모를 크게 했던 것으로 보인다. 동해안명승지에 위치한 강릉향교과 비슷한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남원 출입문인 진강루. 앞면 3칸, 옆면 3칸 비교적 큰 규모의 2층 문루이다.

SANYO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모습. 주위 풍경을 감상하면서 쉴 수 있는 휴식공간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강당과는 통로가 연결되어 있다.

SANYO DIGITAL CAMERA강당인 명륜당. 앞면 5칸의 상당히 큰 규모의 건물이다. 가운데 3칸은 넓은 대청마루로, 양쪽에 1칸씩 온돌방을 두고 있다. 경사진 지형에 2층 건물처럼 지어졌다.

SANYO DIGITAL CAMERA강당과 문루를 연결하는 통로

SANYO DIGITAL CAMERA출입문에서 강학공간 마당으로 들어가는 길

SANYO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강당.

SANYO DIGITAL CAMERA유생들이 거처하는 기숙사인 동재. 앞면 5칸의 큰 건물로 교육기능을 중시했음을 알 수 있다. 건물 앞에 비석이 세워져 있다.

SANYO DIGITAL CAMERA동재 툇마루.

SANYO DIGITAL CAMERA맞은편 서재. 앞면 4칸 규모이다.

SANYO DIGITAL CAMERA강학공간 안쪽에 있는 고직사.

SANYO DIGITAL CAMERA강당 뒷편 대성전 출입문.

SANYO DIGITAL CAMERA남원향교 대성전

남원향교 대성전, 전남 남원시 향교동
이곳 대성전은 공자를 모신 사당이다. 조선왕조는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아 나라에서 각 지방에 향교를 세우고 그 안에 대성전을 두어 유학을 장려하였다. 남원향교는 조선 태종 때 성안 서쪽 골짜기에 처음 세웠다가 얼마 후 요천 건너편으로 옮겼는데, 요천이 범람할 때마다 유생들이 향교에 다니기가 어려워 세종 25년(1443)에 지금의 자리로 다시 이사했다고 전한다. 그후 정유재란 때 향교 건물이 모두 불타버렸으나, 선조 32년(1599)에 지방의 유지 유인옥이 대성전을 다시 지었다. 대성전 안에는 공자를 중심으로 여러 성현과 유학자를 모셨으며, 매년 봄가을에 이곳에서 <석전대제>라는 큰 제사를 지낸다. (안내문, 남원시청, 2010년)

SANYO DIGITAL CAMERA대성전 앞 서무.

SANYO DIGITAL CAMERA맞은편 동무.

<출처>

  1. 안내문, 남원시청, 201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

남원 창주서원, 조선중기 문신 노진을 모신 서원

전북 남원시 도통동에 있는 창주서원(滄州書院)이다. 조선중기 명종 때 활동한 문신이자 유학자 노진을 모신 서원이다. 선조 12년(1579)에 고령서원으로 처음 세워졌으며 선조 33(1600)에 ‘창주’라는 현판을 하사받은 사액서원이 되었다. 구한말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었다가 1959년 현재 위치에 새로 지어졌다. 사당, 강당, 동.서재 등을 갖추고 있으나 교육중심의 공간이라기 보다는 조상들을 모시기 위한 제향 중심의 서원이다.

노진(1518~1578년)은 유학자 정여창을 배출한 함양 개평마을 출신으로 조선중기 명종 때 활동한 관리이자 학자이다. 관리로서 형조참의, 도승지, 충청도 관찰사 등 여러 관직을 고루 역임하였으며, 유학자 기대승, 김인후 등과 교류하는 등 학자로서도 명망이 높았던 것으로 보이다. 남원 창주서원과 함양 당주서원에 모셔졌다.

SANYO DIGITAL CAMERA남원 창주서원. 조선중기 문신 노신을 모신 곳으로 구한말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진 것을 후손들이 복원한 서원이다.

SANYO DIGITAL CAMERA창주서원 출입문. 솟을삼문을 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강학공간 중심공간인 강당.

SANYO DIGITAL CAMERA동재

SANYO DIGITAL CAMERA서재

SANYO DIGITAL CAMERA사당 출입문

SANYO DIGITAL CAMERA사당인 명덕사.

창주서원, 전북 남원시 도통동
본 서원은 조선중기의 문신 노진 선생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을 지내는 곳으로 조선 선조12년(1579)에 남원시 금지면 고룡서원으로 창건, 선조 33년 (1600)에 창주서원으로 사액되어 300여년간 천향하여 왔으나 고종8년(1871)에 조령으로 훼철되어 사림과 자손들의 회한이 애절하던 중 1964년에 현위치에 복설하였다. 선생은 중종 13년(1518) 경남 함양군 개평에서 태어나 선조 11년(1578) 61세로 졸하였다. 선생의 자는 자응, 호는 옥계, 시호는 문효이고 관향은 풍천이다. 관직은 충청, 경상도 관찰사, 전주부윤, 대사간, 대사헌, 이조판서 겸 동지경연 춘추관사, 예문관제학을 역임하였으며 1577년에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선생이 돌아가신 후 세칭 학문은 도학연원이 백세표준이 되고 덕행에 효제와 청빈은 역대의 으뜸이라 선비들의 칭송이 자자하였다. 창주서원 경내에는 명덕사, 도남당, 동재, 서재, 진덕문이 있고 저서로는 옥계문집 11권 6책이 현존해 있으며 유적으로는 남원에 별묘, 경남 함양의 묘소에 신도비, 사액당주서원 터에 유허지비, 지곡에 효자정려문, 상림역사인물 공원에 흉상, 지곡연지원에 어제시비 등이 있다. (안내문, 남원시청, 2010년)

<출처>

  1. 안내문, 남원시청, 201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