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 Archives: October 2019

강진 영랑생가, 일제강점기 부호가 살았던 저택

전남 강진군 강진읍 남성리에 있는 영랑생가이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시인으로 활동하며 큰 자취를 남긴 영랑 김윤식이 태어나 살았던 곳이다. 생가는 안채, 사랑채, 문간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건물은 초가지붕을 얹었지만 기둥이나 벽면 등에서 솜씨좋은 목수가 건축에 참여 했음을 알 수 있다. 사랑채 마루에서 강진 읍내를 내려다 볼 수 있으며, 마당에는 커다란 은행나무와 목란 등이 심어져 있다. 일제강점기 호남지역 부호가 살았던 일종의 개량한옥을 전통한옥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강진 영랑생가.

SANYO DIGITAL CAMERA문간채 대문 사이로 보이는 안채. 전통한옥과는 달리 대문을 들어서면 안채가 먼저 나온다. 사랑채는 별도의 출입문을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모란꽃을 심은 정원 너머로 보이는 안채. 앞면 5칸 규모의 큰 집이다. 초가 지붕을 얹고 있지만 사용한 목재의 형태나 누마루 등에서 고급주택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사랑채도 초가지붕을 얹고 있는 건물이자만 개방적이고 상당히 고급스러워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사랑채가 있는 마당 한쪽편에 심어진 은행나무.

<출처>

  1.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강진 전라병영성(사적397호), 전라도 병마절도사 본영

전남 강진군 병영면 성동리에 있는 전라병영성(사적 397호)이다. 전라도와 제주도 53주 6진을 총괄하는 육군 지휘부인 병마절도사 본영이 있던 곳이다. 조선초 태종 때 왜구의 침입에 대응하기 위해 광주시의 광산현에 있던 병영을 이곳으로 옮기면서 처음 쌓았다. 성의 둘레는 1 km 정도이공 동.서.남.북에 옹성과 2곳의 치성을 두고 있는 평지성이다. 배후에는 수인산(해발 561 m)에 산성을 두고 있다.

1555년(명종 10) 을묘왜변 때 왜구에 함락되었으며, 임진왜란 직전에 다시 수축하였다. 1894년 동학혁명 때 농민군에 함락되었으며 이후 갑오개혁 때 제도개편으로 폐영되었다. 경상우병영 진주성이나 충청병영 청주 상당산성에 비해 규모가 작은 편이며 조선초 충청병영이 있었던 해미읍성과 비슷한 규모이다. 조선후기에 하멜이 머물렀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성벽 바깥쪽에 하멜기념관이 있다.

SANYO DIGITAL CAMERA강진 전라병영성 서쪽 성벽 . 조선초 왜구의 침입에 대비해 쌓은 여러 읍성 중 한곳으로 한반도 서남부 육군을 총괄하던 지휘부가 있던 곳이다. 해안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당시 왜구의 침입이 상당히 위협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실제 중종 때 일어난 을미왜변 때 왜구에 함락되기도 했다.

SANYO DIGITAL CAMERA서쪽 성벽 남쪽에 있는 치성

SANYO DIGITAL CAMERA병영성 남문. 출입문 앞에 방어를 위해 옹성을 쌓아두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동쪽편 남쪽 성벽.

SANYO DIGITAL CAMERA동쪽편 북쪽 성벽.

SANYO DIGITAL CAMERA병영성 동쪽에 있는 하멜기념관에서 본 모습. 우리나라에 표류되어 머물렀던 하멜이 이곳 전라병영성에서 취조를 받고 머물렀다고 한다.

강진 전라병영성
전라병영성은 조선 1417년(태종 17)에 초대 병마도절제사 마천목 장군이 축조하여 1895년(고종 32) 갑오개혁까지 조선왕조 500년간 전라도와 제주를 포함한 53주 6진을 총괄한 육군의 총지위부였다. 수많은 역사와 일화 속에 민족저항의 산 증거로 존속되어 왔으며, 1894년 동학농민전쟁으로 불타고 곧 이은 갑오개혁의 신제도로 폐영되었다. 전라병영성의 성곽 전체 길이는 1,060 m이며, 높이는 3.5 m, 전체면적 93,139 ㎡이다. 1997년 사적 지정 당시 성곽 내 육군지휘부 건물이나 유적은 소실되었으며, 성곽만 일부 남아 있는 상태였다. 강진군의 지속적인 복원 정비사업으로 성문과 성벽의 복원은 마무리되어 가고 있다. 현재 여장복원공사 및 성 내부 주요시설 복원을 위한 발굴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안내문, 강진군청)

<출처>

  1. 안내문, 강진군청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

영암 월출산 도갑사, 통일신라말 도선국사가 머물렀던 사찰

전남 영암군 군서면 월출산 자락에 있는 사찰인 도갑사이다. 통일신라 때 도선국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삼국시대 백제 때 유물 등이 출토되는 것으로 볼 때 삼국시대 이래 사찰이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조선초 세조 때 승려 신미와 수미가 크게 중건하여 966칸에 이르는 전각과 많은 부속암자를 거느린 큰 사찰로 번창하였다.

정유재란, 한국전쟁 등 여러 차례의 전란과 화재 등으로 큰 손실을 입어 해탈문(국보 50호)를 제외하고는 오래된 전각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현재는 해탈문(국보 50호), 오층석탑(보물1433호), 석조여래좌상(보물 89호),목조문수.보현동자상(보물1134호), 도선국사.수미선사비(보물1395호) 등의 문화재가 남아 있다. 최근에 주불전인 대웅전을 비롯하여 여러 전각들 복원하여 큰 사찰로서 모습을 갖추어 가고 있다. 영산강 이남 명산인 월출산을 대표하는 사찰이자 통일신라 말과 고려초 큰 영향을 끼쳤던 도선국사가 머물렀던 유서깊은 사찰이다.

SANYO DIGITAL CAMERA월출산 도갑사. 통일신라 말 영암 출신 도선국사가 머물렀던 유서깊은 사찰이다. 조선초 크게 수미선사가 크게 중창하면서 지역을 대표하는 사찰로 자리잡았다. 고려 초에 조성된 오층석탑(보물 1433호)이 중심을 잡고 있는 것으로 볼 때 고려시대에서 규모가 있었던 사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

도갑사 입구에 세워진 일주문. 도갑사는 월출산 북서쪽 계곡에 자리잡고 있으며 영산강 하구 뱃길과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도갑사 들어가는 길. 수리중인 해탈문(국보 50호)가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해탈문 사이로 보이는 도갑사 경내. 해탈문은 도갑사에 남아 있는 유일한 옛 건물로 조선초인 1473년에 처음 지어졌다. 앞면 3칸, 옆문 2칸으로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가운데 1칸은 통로로 사용하고 있으며 양쪽에 금강역사와 문수.보현동자상을 모시고 있다. 사찰 출입문 규모가 크거나 웅장하지는 않지만 건축연대가 오래된 것으로 사찰 건축을 대표하는 건축물 중 하나이다.

영암 도갑사 32-20191027

해탈문에 모셔진 문수동자상(보물 1134호). 해탈문에는 금강역사와 함께 사자를 타고 있는 문수동자상과 코끼리를 타고 있는 보현동자상을 모시고 있다. 해탈문이 처음 지어진 1473년 경에 같이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영암 도갑사 33-20191027

코끼리를 타고 있는 보현동자상.

SANYO DIGITAL CAMERA

 

도갑사 경내에서 내려다 보이는 해탈문과 경내로 들어오는 길

SANYO DIGITAL CAMERA도갑사 오층석탑(보물 1433호). 구성이나 세부 조각수법에서 고려초기 석탑의 특징들이 반영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비례가 적절하며 안정된 느낌을 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주불전인 대웅보전. 최근에 크게 중건한 불전으로 앞면 5칸의 2층 건물로 상당히 큰 규모이다.

SANYO DIGITAL CAMERA미륵전. 고려시대에 조성된 석조여래좌상(보물 89호)가 모셔져 있다.

영암 도갑사 31-20060220

미륵전에 모셔전 석조여래좌상(보물 89호)

SANYO DIGITAL CAMERA천불전

SANYO DIGITAL CAMERA명부전.

SANYO DIGITAL CAMERA도선국사 영정이 모셔진 국사전

SANYO DIGITAL CAMERA국사전에 모셔진 도선국사 영정

SANYO DIGITAL CAMERA산신각.

SANYO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볼 수 있는 도갑사 경내. 오층석탑을 중심으로 전각들이 배치되어 있는데 공간이 상당히 넓은 편이다. 조선초 도갑사를 크게 중건할 때 966칸의 전각들이 있었던 대형 사찰이었음을 알 수있다.

SANYO DIGITAL CAMERA도선국사.수미선사비(보물 1395호). 조선중기에 조성한 비석으로 통일신라 때 활동한 도선국사와 조선시대 활동한 수미선사의 행적을 기록하였다.

SANYO DIGITAL CAMERA그 옆에 세워져 있는 수미왕사비. 수미는 조선 세조 때 활동했던 승려로 도갑사를 크게 중건하였다. 이 비석은 조선중기 인조 때 세워진 것으로 고려시대 탑비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도갑사 경내에 남아 있는 석조. 조선후기에 조성한 것으로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도갑사 뒷편에 있는 승탑들.

월출산 도갑사, 전남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도갑사는 통일신라말 도선국사(826~898)가 헌강왕 6년(880)에 창건했다고 전해져오고 있으며, 1999년 대웅전 뒤편 건물지 발굴조사에서 백제시대 기와편이 출토되어 통일신라시대 이전에 이미 사찰이 있었음을 추정하고 있다. 도갑사가 크게 번창한 때는 조선시대 초기이다. 이곳 영암 출신의 수미왕사가 1457년부터 1464년까지 대대적으로 중창했는데, 당시 건물 규모가 966칸에 달하는 대가람을 이루었고 소속된 암자가 12곳, 도갑사에 머무르켜 수행하는 승려가 780명에 이를 정도로 번창해 오다가 1597년 정유재란으로 많은 문화재가 소실되는 피해를 입었으나 전란이후 다시 부흥하기 시작하여 17세기 후반까지 계속되었다. 그 뒤 영조 52년(1776)과 헌종 원년(1835)에도 일부 중창이 있었다. 근래에 도갑사는 한국전쟁과 화재 등으로 많은 가람이 소실되었으나 1995년부터 1999년까지 실시한 네 차례 발굴조사에서 옛 가람배치를 확인하고 복원불사를 추진하고 있다. 현재 경내에는 도갑사 해탈문(국보 제50호) 등 국가지정 문화재 5점과 도갑서 석조 등 전라남도 지정문화재 5점이 있다. 또한 전체가 전라남도 기념물 제3호인 월출산은 빼어난 산세와 절묘한 기암절벽, 아름다운 풍광으로 호남의 소금강으로 불리운다. 통일신라때는 “월나악”, 고려시대에는 “월생산”으로 불리다가 조선시대에 월출산이라 이름하여 오늘에 이른다. 구정봉 정상 바로 아래에는 국보 제144호인 마애여래좌상과 보물 제1283호인 용암사지 3층석탑이 있고, 용추폭포.구절폭포.금릉경포대 등이 장관을 이룬다. (안내문, 영암 도갑사)

<출처>

  1. 안내문, 영암 도갑사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

영암 도갑사 도선국사.수미선사비(보물 1395호)

전남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월출산 도갑사 경내에 있는 도선국사.수미선사비(보물 1395호)이다. 조선중기에 조성한 비석으로 통일신라 때 활동한 도선국사와 조선시대 활동한 수미선사의 행적을 기록하였다. 조선시대에 조성한 비석이지만 거북받침돌, 비몸, 머릿돌로 구성된 전통적인 당나라 비석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거북받침돌은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의 얼굴과 거북의 몸통을 생동감있게 표현하고 있다. 글자가 적혀있는 비몸은 대리석으로 만들었으며 양쪽에 용과 구름을 생동감 있게 조각하고 있다. 비문은 앞면에 2개, 뒷면에 1개가 각각 독립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글을 지은 사람과 비석에 새긴 사람이 각각 다르다고 한다.

SANYO DIGITAL CAMERA
월출산 도갑사 경내에 있는 도선국사.수미선사비(보물 1395호). 조선중기에 조성된 것으로 통일신라 때 승려 도선국사와 조선시대에 활동한 수미선사의 행적을 같이 기록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
생동적이며 섬세한 조각수법을 보여주는 거북받침돌.

SANYO DIGITAL CAMERA
비문을 새긴 비몸과 머릿돌. 비봄은 대리석으로 조성했는데 옆쪽에 용과 구름을 생동감있게 조각해 놓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
비문 앞면.

SANYO DIGITAL CAMERA
비문 뒷면

SANYO DIGITAL CAMERA
머릿돌. 뒷부분에 2마리의 용이 엉켜있는 모습을 생동감있게 조각해 놓고 있다. 그 아래에 전서로 「월출산도갑사도선국사수미대선사비명」이라 적혀 있다.

도갑사 도선수미비, 보물 1395호
이 석비는 1653년에 건립된 것으로 우선 규모 면에서 다른 비석과 차별성을 지니고 있다. 아울러 각부의 양식에서 귀부는 다른 예와는 달리 귀갑문 대신 평행 사선문으로 이를 표현하고 있다. 비신 역시 조성재료가 대리석이라는 점 외에도 양 측면에 조각된 운룡문은 매우 힘찬 기상과 율동감을 지니고 이어 당대 최고 수준의 작품이다. 뿐만 아니라 석비의 건립기간이 18년임을 알려주고 있어 이 방면 기술사 연구에 좋은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다. 나아가 대부분의 석비가 1명을 대상으로 하고 있음에 비해 도선과 수미선사를 표방하고 있어 이 역시 독특한 예라 생각된다. 한편 건립연대가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비문이 각가 독립된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고, 찬지는 물론 쓴 사람과 각자한 사람이 모두 다른 것은 비문의 내용을 볼 때 석비를 다시 세우기로 계획하고 3년의 모금활동과 건립기간 18년을 포함한 21년간에 걸친 건립과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된다. 아울러 2번째 비문에는 앞선 비문의 내용이 소개되어 있으며, 석재의 채취로부터 이동과정이 기록되어 있으며, 3번째 비문에서는 음기를 청탁받은 사실이 기록된 점으로 보아 석비의 건립과정에서 3개의 비문에 대한 준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상과 같은 관점으로 볼 때 이 석비는 규모의 거대함과 더불어 건립에 소요되는 기간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 하겠다. 아울러 미술사적으로 볼 때도 조선후기 조각사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사료일 뿐만 아니라, 주인공인 도선과 수미선사 등 2인이라는 점과 글씨 역시 서예사 연구에 좋은 자료라 판단된다. (안내문, 영암도갑사)

<출처>

  1. 안내문, 영암 도갑사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0

영암 도갑사 해탈문(국보 50호)

전남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에 있는 도갑사 출입문인 해탈문(국보 50호)이다. 도갑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로 조선초 성종 때인 1473년에 처음 지어졌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문 2칸으로 맞배지붕을 사용하고 하고 있다. 조선초기 목조건축물로 주심포식과 다포식 공포형식이 섞여 있다. 가운데 1칸은 통로로 사용하고 있으며 양쪽에 금강역사와 문수.보현동자상을 모시고 있다. 사찰 출입문 규모가 크거나 웅장하지는 않지만 건축연대가 오래된 것으로 사찰 건축을 대표하는 건축물 중 하나이다.

영암 도갑사 해탈문 국보50호 06-20191025
도갑사 해탈문(국보 50호). 잘 다듬은 화강석으로 기단을 쌓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렸다. 규모가 크거나 웅장하지는 않지만 사찰건축을 대표하는 건축물 중 하나이다.

SANYO DIGITAL CAMERA해탈문 들어가는 길

SANYO DIGITAL CAMERA해탈문 입구 돌계단. 궁궐 건축물을 연상시키는 형태의 돌계단이다.

SANYO DIGITAL CAMERA해탈문 가운데 통로와 그 사이로 보이는 사찰 전경. 해탈문을 들어서면 오층석탑과 주불전인 대웅전이 웅장하게 세워져 있다.

SANYO DIGITAL CAMERA금강역사와 문수.보현보살을 모시는 공간. 다른 사찰 출입문과는 달리 공간이 분리되어 있다.

영암 도갑사 해탈문 국보50호 07-20191025
건물 지붕을 받치는 목조 구조물. 주심포 양식과 다포계 양식이 섞여 있는데 전체적으로 주심포양식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도갑사 경내에서 내려다 보이는 해탈문

도갑사 해탈문, 국보 50호
해탈문은 속세를 벗어나 정토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다. 이 문을 지나면 속세의 번뇌에서 벗어나 근심없는 부처님의 품안에 들어선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도갑사는 신라시대의 승려인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되고, 고려 말에 크게 중흥되었다고 전한다. 이 해탈문은 1960년 해체하여 수리할 때 발견된 상량문에 따르면 조선 성종4년(1473)에 다시 세운 것이다. 석조 기단 위에 중앙 칸은 통로가 되고, 좌우 한 칸씩에 사천왕상을 안치하게 되어 있으나 현재는 금강역사와 문수.보현동자상이 봉안되어 있다. 기둥은 약하게 배흘림을 한 둥근 기둥이 사용되었고, 전체적인 건축양식은 경북 영주 부석사 조사당과 유사하다. 특이한 점은 기둥 위의 구조가 주심포식과 다포식 양식이 섞인 형태로 우리나라에서 유례가 드문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안내문, 영암 도갑사)

<출처>

  1. 안내문, 영암 도갑사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