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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박물관] 전남지역 불교문화

전남지역은 삼국시대 이래 불교 역사에 큰 흔적들을 남겨 놓고 있다. 통일신라 불교의 주류였던 화엄종을 대표하는 구례 화엄사를 비롯하여 수행을 중시하는선종 구산선문 중 사찰들이 지리산과 장흥 보림사, 곡성 태안사를 비롯하여 화순 쌍봉사, 구례 연곡사 등이 전남 지역에 자리잡았다. 고려시대에는 불교 개혁 수선결사를 이끌었던 송광사, 백련결사를 이끌었던 백련사가 있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이끌고 큰 역할을 했던 해남 대흥사, 여수 흥국사 등이 자리잡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광주 신룡동 오층석탑 사리갖춤, 고려, 광주 신룡동 오층석탑

광주 신룡동 옛 절터에는 고려 전기로 추정되는 오층석탑과 돌부처가 남아 있다. 1981년 오층석탑의 기단부 헤체.보수 중 1층 몸돌 위쪽의 사리 봉안장소에서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다. 직사각형의 금동사리함 속에 연꽃장식을 넣고, 그 위에 금동사리병을 놓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작은 나무탑은 통일신라시대 『무구정광다라니경』의 전통에 따라 상징적으로 안치한 것으로 보인다. 함꼐 출토된 대나무편은 다른 출토 예가 없어 아직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사리엄장구
사리는 범어의 ‘Sarira’를 한자로 옮겨 적은 것으로 부처의 진신사리를 말한다. 사리를 부처의 상징으로 여겨 여러 가지 장엄으로 꾸미고 탑속에 봉안한 것을 사리장엄구라 한다. 사라장엄구의 가장 안쪽에는 사리를 담는 사리병이 놓이는데, 사리병은 다시 귀금속으로 만든 여러 겹의 상자 속에 봉안된다. 사리장엄구에는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상과 사자를 비롯하여 극락정토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비천상, 보살과 스님 등이 표현되어 장엄의 극치를 이룬다. 통일신라시대에는 화려한 가마에 보장이나 영장이라고 부르는 장막을 씌운 사리장엄구가 유행하였다. 사리신앙이 유행하면서 부처의 말씀을 적은 『무구정광다라니경』과 같은 법사리와 탑을 만들어 공덕을 쌓는 신앙의 유행으로 소형 탑을 사리와 함께 봉안하기도 하였다. 또한 고승의 사리는 승사리라고 부른다.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화려한 사리장엄보다는 부처의 상징성을 강조하여 집모양 사리장엄구에 아미타삼존불상이 안치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함께 봉안된 불상의 몸 속에 경전이나 발원과 관련된 기록물을 넣는 복장도 유행하였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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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생사’ 종, 여수시 쌍봉동, 고려 108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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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종, 강진군 사당리,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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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정병,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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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정병, 곡성군 설옥리,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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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령, 고려, 청동

OLYMPUS DIGITAL CAMERA금강저, 광주 산정동 출토, 고려, 청동

OLYMPUS DIGITAL CAMERA향로, 고려,

불교의식구
범종은 사찰에서 시간으 ㄹ알리거나 의식을 행할 때 쓰이는 종이다. 범은 우주만물과 진리를 의미하는 것으로 범종의 소리른 불교의 진리를 의미한다. 금강령과 금강저는 밀교의식에서 사용되는 의식구이다. 금강령은 의식 때 여러 불.보살들을 기쁘게 해주고, 중생들을 성불의 길로 이끌어 주는 역할을 한다. 금강령은 손잡이 윗부분이 금강저 모양이며, 몸체는 종의 형태로 불법을 수호하는 범천.제석천, 사천왕, 불부종과 같은 호법신장상 등이 표현된다. 금강저는 원래 제석천이 아수라를 물리치는 무기이다. 불교에서는 금강과 같은 지혜로 번뇌를 없애기 위해 수행자가 금강저를 휴대한다. 발우는 승려의 그릇을 말한다. 스님들은 공양을 하기 전에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을 버리고 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꺠달음을 얻고자 합니다.”라는 오관계를 외운다. 공양을 위해 수고한 사람들의 정성을 생각하고 음식을 먹으며, 깨달음을 이루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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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양탑, 장흥군 연지리,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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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여래, 고려 12~13세기

이 불상은 서방의 극락정토에 계시는 아미타여래의 모습을 금동으로 만든 것이다. 두 손 모두 엄지와 중지를 가볍게 붙인 채 오른손은 가슴 앞에, 왼손은 가슴 아래 둔 손갖춤을 하여싿. 이는 모든 중생을 사후에 극락세계로 맞아들이는 아미타여래의 손갖춤 중 하품중생인이라 불리는 것이다. 죽음 뒤의 세계를 관장하는 아미타여래는 수많은 부처 가운데에서도 특히 인기가 많았기 때문에 이처럼 값비싼 재료인 동을 충분히 사용해야 하는 커다란 크기의 불상도 제작 가능하였다. (안내문, 광주박무관, 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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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 고려

이 불상은 항마촉지인을 맺은 여래의 모습을 철로 만든 것이다. 항마촉지인이란 무릎 위의 오른손으로 땅을 가리키는 손갖춤으로, 석가모니가 오랜 수행 끝에 꺠달음을 얻으려 하였을 때 이를 방해하려는 악마들을 물리치고, 깨달음의 정당성을 증명하기 위하여 땅을 눌러 지신을 불러낸 순간을 상징한다. 우리나라에 처음 불교가 전래된 삼국시대에는 금동불상을 많이 만들었으나, 통일신라 말기에 이르러 동의 수급이 어려워지면서 이와같은 철불의 제작이 늘어났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고려시대 불교문화
통일신라 말 전남지역에는 훌륭한 고승이 많았다. 태안사 적인대사 혜철(785~861), 쌍봉사 철감선사 도윤(798~868), 보림사 보조선사 체징(804~880), 도갑사 선각국사 도선(827~898), 무위사 선각대사 형미(864~917), 태안사 광자대사 윤다 (864~945), 옥룡사 동진대사 경보(869~948) 등이 활동하였다. 이들은 우리 고장의 불교문화 발전에 기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고려의 건국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이들 외에도 중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수도 개성에서 활동한 전남 출신의 승려들이 많이 있었다. 가장 유명한 이로 화엄사를 근거지로 활동한 대각국가 의천(1055~1101)과 그의 제자 정인왕사를 들 수 있다. 고려 후기에 이르면 불교계의 모순과 타락을 비판한 결사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나게 되는데, 전남지역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지금의 순천 송광사를 중심으로 조직된 보조국사 지눌(1158~1210)의 수선결사, 그리고 강진 백련사 원묘국사 요세(1163~1245)의 백련결사 등, 당시 가장 큰 규모의 결사가 전남 지역을 중심으로 조직되었다. 송광사와 백련사의 결사 운동은 지방의 향리층과 백성들의 지원을 받았고, 이후 두 사찰은 불교 개혁의 중심지 역할을 담당하며 여러 대에 걸쳐 국사를 배출하여 고려의 불교문화를 선도하였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발원문, 복제품, 순천 대곡동 석탑, 조선 1468년

OLYMPUS DIGITAL CAMERA보림사 삼층석탑의 내력을 새긴 돌(북탑), 장흥 보림사 삼층석탑, 통일신라 870년*1478년 중수)

OLYMPUS DIGITAL CAMERA보림사 삼층석탑의 내력을 새긴 돌(남탑), 장흥 보림사 삼층석탑, 통일신라 870년(1684년 중수)

OLYMPUS DIGITAL CAMERA뚜껑있는 그릇, 보림사 삼층석탑 사리구, 장흥 보림사 삼층석탑, 통일신라 9세기 후반

OLYMPUS DIGITAL CAMERA사리단지, 보림사 삼층석탑 사리구, 장흥 보림사 삼층석탑, 통일신라 9세기 후반, 납석

OLYMPUS DIGITAL CAMERA명문이 새겨진 기와, 화순 쌍봉사 출토, 조선 17361795년 입수

OLYMPUS DIGITAL CAMERA수막새, 화순 쌍봉사 출토, 조선 18세기

OLYMPUS DIGITAL CAMERA명문이 새겨진 기와, 화순 쌍봉사 출토, 조선 1727년

OLYMPUS DIGITAL CAMERA수막새, 영암 천황사 출토, 조선

OLYMPUS DIGITAL CAMERA수막새, 영암 천황사 출토, 조선

OLYMPUS DIGITAL CAMERA석조여래좌상, 석조보살좌상, 석조나한좌상, 담양 서봉사터, 조선

OLYMPUS DIGITAL CAMERA나한상

OLYMPUS DIGITAL CAMERA나한상

나한은 산스크리트어로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존재를 뜻하는 ‘Arhat’을 한자로 옮긴 ‘아라한’의 줄임말로, ‘웅진’이라 번역하기도 한다. 석가모니의 십대제자, 십육나한, 오백나한 등으로 표현한 나한상은 나한전이나 응진전에 모신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나한 신앙은 통일신라시대에 성행하였고, 고려시대에는 국가의 태평과 백성의 편안암을 비는 나한재가 자주 열렸다. 조선시대에는 나한의 신통력에 기대어 죽은 자의 명복과 극락왕생을 빌기도 하였다. 전시된 상은 조선시대 교종의 수사찰인 담양 서봉사 터에서 나온 것이다. 여래와 보살의 상을 포함한 나한상들은 모두 흰색을 띠는 무른 돌에 새겼다. 나한은 얼굴에 미소를 머금거나 눈을 반쯤 감아 명상에 잠겨 있는 승려의 모습이다. 옷은 대부분 굵은 선으로 단순하게 표현하였는데 일부 붉은 선이 남아 있어 채색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조선시대 불교문화
조선은 성리학에 바탕을 든 유교국가로 불교가 상대적으로 위칙되었다. 태종 1407년 불교 정비작업으로 광주 전남의 사찰 중에 7개 종파, 17개 사찰이 왕실의 명복과 고을의 안녕을 비는 자복사로 지정되었다. 세종 1424년 불교의 통합에 따라 전라도의 선종은 구례 화엄사를 수사찰로 하고, 교종은 창평의 서봉사를 수사찰로 지정하였다. 세조는 영암 출신인 수미왕사로 하여금 도갑사를 중창케 하고 약사여래상을 안치하였다. 1457년에는 화순 쌍봉사를 원당으로 삼고 5결의 토지를 지금하고 조세를 면제하기도 하였다. 1550년에는 인종의 비인 공의왕대비가 인종의 명복을 빌기 위해 이자실로 하여금 『관세음보살삼십이응탱』을 그리게 하여 도갑사에 봉안하였다. 임진왜란(1592) 때에는 전라좌수영이 있던 여수의 흥국사를 비롯하여 내륙 경략의 거점인 순천의 송광사와 구례 화엄사 등을 중심으로 의승병이 일어나 왜군을 물리친다. 특히 흥국사의 의승 수군은 임진왜란이 끝난 후에도 상설군으로 편제되어 훗날 병자호란 등에 나아가 활약하였다. 선산대사 휴정(1520~1604)의 의발을 보관한 대흥사는 13명의 대종사를 배출하며 불교사상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출처>

  1.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