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Archives: November 28, 2019

[광주박물관특별전, 전라천년] 부처의 가르침을 새롭게

지리산 일대와 전남 남해안 등 호남지방에는 유서깊은 사찰이 많이 남아 있다. 지방호족세력을 바탕을 불교개혁을 이끌었던 통일신라 선종 구산선문 사찰 중 남원 실상사(실상산문), 곡성 태안사(동리산문), 장흥 보림사(가지산문)이 호남지방에 자리잡고 있었다. 고려중기 무인집권기에 기존 불교에 대한 비판과 개혁운동이 일어났는데 보조국사 지눌이 순천 송광사에서 수선결사 운동을 이끌었으며, 원묘국사 요세가 강진 백련사에서 백련결사 운동을 이끌었다. 수선결사 이후 우리나라의 불교는 송광사를 중심으로 한 조계종이 주류세력을 형성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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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국사 지눌의 초상, 1780년, 비단에 채색, 순천 송광사

부처의 가르침을 새롭게
통일신라에 이어 고려에서도 불교는 나라를 다스리는 기본 이념이자 지배층의 신앙으로 굳건히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12세기 후반 고려의 지배층이 귀족에서 무인으로 바뀌면서 불교의 위상도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이때 통일신라시대 구산선문의 전통이 살아있는 전라도 땅에서 지눌과 요세는 기존 불교에 대한 비판과 개혁을 위한 불교결사운동을 일으켜 부처의 가르침을 새롭게 하였습니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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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국사 신발, 고려, 종려나무 껍질, 순천 송광사

OLYMPUS DIGITAL CAMERA권수정혜결사문, 보조국사 지눌, 1608년, 순천 송광사

OLYMPUS DIGITAL CAMERA계초심학인문, 1608년, 순천 송광사.

OLYMPUS DIGITAL CAMERA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 1488년, 불교천태중앙박물관, 보물 1222-2호,

보조국사 지눌이 당나라 종밀 『법집별행록』을 요약하고 자신의 의견을 덧붙인 것이다. 제자인 혜심이 간행한 초판본은 전하지 않고, 성종 17년(1486) 광주 무등산 규봉암에서 간행한 이 판본이 가장 이른 것이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수선사형지기, 1221~1226년, 순천 송광사, 보물 572호, 13세기 전반 수선사의 실태를 조사 기록한 것이다. 수선사의 가람 배치 등 사찰의 규모를 자세히 적고, 보조국사 지눌의 비명과 수선사중창기를 함께 실었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보조국사 지눌과 수선사
본래 개경에서 수행하던 보조국사 지눌(1158~1210)은, 1190년 팔공산에서 법회를 열고, 자신의 새로운 생각을 『정혜결사문』에 담아 널리 퍼뜨렸습니다. 이에 따르는 무리가 늘어나자 순천 송광산 길상사(지금의 송광사)로 옮겨와 수선사를 열었는데, 이때 나주를 비롯한 전라도 각지의 사람들이 시주하여 도움을 준 것이 수선사중창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눌의 새로운 생각은 그의 제작인 진각국사 혜심(1178~1234)이 더욱 발전시켜, 이후 고려의 새로운 지배층인 무인 세력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동문선(만덕산백련사원묘국사비명), 조선후기,

OLYMPUS DIGITAL CAMERA만덕사지, 조선후기 19세기, 19세기 강진으로 유배온 정약용이 『동문선』에 실린 고려시대 백련사 결사운동에 관한 고려 국사들의 기록을 인용하여 편찬한 대둔사(만덕사)의 역사에 관한 책이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원묘국사 요세와 백련사
원묘국사 요세(1163~1245)는 본래 지눌의 수선사에 참여하고 있었으나, 지눌의 수행 방식에 동의하지 못하여 스스로 강진 만덕산에서 백련사 결사운동을 일으켰습니다. 지눌은 선종과 교종의 일치를 지향하며 정혜쌍수의 실천적 수행을 강조하였는데, 요세는 법화사상에 관심을 가지고 참회를 중시하였습니다. 요세는 대중들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였고, 백련사도 전라도 지방 향리층의 지지를 받아 성장하였습니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진각국사비편, 고려,

OLYMPUS DIGITAL CAMERA진각국사비편, 고려,

1250년 강진 월남사에 세워졌던 지눌의 제자 진각국사 혜심의 비편이다. 1235년 이규보가 지은 비문 내용은 『동국이상국집』에 실려 있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동국이상국집(진각국사혜심비명), 이규보, 조선

조선 전기 전라도의 불교
조선은 성리학을 통치이념으로 삼아 불교를 억압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조선전기의 불교는 여전히 왕실과 민중의 정서적 의지처로 종교 본연의 역할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전라도 송광사에서는 대규모 불서 간행 사업이 이어져 불교 사상에 대한 학술적 연구의 맥도 끊이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0

OLYMPUS DIGITAL CAMERA인천안목, 1529년, 순천 송광사

OLYMPUS DIGITAL CAMERA인천안목 목판, 1529년, 순천 송광사, 보물 1911호

송광사에서는 1529~1531년 사이에 4종류의 목판을 제작하여 책을 출판하였는데, 이 판본은 그 가운데 가장 이른 것이다. 『인천안목』은 중국 송나라의 선종 승려 지소가 저술한 것으로, ‘인간과 천상의 일체가 중생의 안목이 된다’는 의미이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종경촬요, 1529년, 순천 송광사

OLYMPUS DIGITAL CAMERA종경촬요 목판, 1529년, 순천 송광사, 보물 1912호

『종경촬요』는 대승불교의 여러 경론과 중국, 인도 성현과 선사의 저서 등을 모은 책인 『종경록』의 요약본이다. 13세기 이전에 이미 고려에 들어와 있었으나 당시의 판본은 남아있지 않고, 송광사 은적암에서 다시 찍은 이 판본이 현재 전하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계초심학인문(언해), 조선, 순천 송광사

OLYMPUS DIGITAL CAMERA계초심학인문(언해) 목판, 1577년, 순천 송광사, 보물 1910호

보조국사 지눌이 불교수행의 초보자들이 경계해야 하는 내용을 담아 서술한 책으로, 조선시대에 이르러 언해본(한글본) 등 다양한 판본이 유행하였다. 송광사에서 간행한 언해본은 전라도 지방 언어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어 조선 전기 국어사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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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명양수륙잡문, 조선, 순천 송광사

OLYMPUS DIGITAL CAMERA천지명양수륙잡문 목판, 1531년, 순천 송광사, 보물 1914호

『천지명양수륙잡문』은 여러 불교의식과 관련된 내용을 수록한 책이다. 목판은 1531년 5월 송광사에서 간행한 것이지만 이 책은 조선후기에 다시 찍은 것이다. 이 목판을 제작한 이들은 『종경촬요』와 『천지명양수륙잡문』의 제작에도 참여한 사람들이었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전라도에서 새 세상을 꿈꾼 사람들
천년 전라도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전라도에는 왕조의 수도가 자리한 적이 없었습니다. 대신에 이 땅에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개혁적이며 진보적인 ‘사람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보조국사 지눌과 원묘국사 요세가 타락한 정치계와 결탁한 기존 불교의 개혁을 외치며 순천과 강진에서 활동하였습니다. 『예기』에 등장하는 ‘대동’사상에 주목하여 새로운 신분 질서의 정립을 꿈꾸는 전주의 유학자도 있었습니다. 19세기 말, 정읍의 녹두장군은 ‘사람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출처>

  1.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

 

 

[광주박물관특별전, 전라천년] ‘전라도’ 이전의 전라도를 일군 사람들

후백제 견훤이 전주에 도읍을 정하기 전까지 호남지방을 수도로 삼은 국가는 없었지만, 삼한 중 마한이 이 지방에 터를 잡고 살았으며, 위만에 쫓겨난 고조선 준왕의 세력이 내려왔으며 삼국시대 백제 무왕이 익산에 별궁을 세우는 등 호남지방에 큰 관심을 가졌었다. 후삼국시대 견훤이 호남지방에 자리를 잡고 삼국이 세력을 다투면서 지역이 결집하고 정체성이 강화된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금동제사리외호, 백제 익산미륵사지 서탑, 보물 1991호

‘전라도’ 이전의 전라도를 일군 사람들
전라도에는 후기 구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청동기.초기철기 시대에 들어서면 삼한 중 마한의 세력이 이 지역까지 미쳤고, 같은 시기 고조선의 준왕이 내려와 새로운 문명을 전해주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백제의 무왕이 전라도 경영에 관심을 가지면서 또 한번 새로운 문명이 유입되어 이 지역 문화는 더욱 다채로워졌습니다. 오랜 세월 왕조의 수도가 번창한 적이 없는 곳이었지만, 10세기 초 견훤의 후백제 건국은 이 지역에도 하나로 결집될 수 있는 문화적 공동체가 존재하였음을 보여줍니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인골, 기원전 1세기경, 광주 신창동

가장 오래된 전라도 사람
천년전, 이 땅이 ‘전라도’라 불리기 훨씬 이전부터 사람들은 이곳에서 ‘전라도’를 일구어 왔습니다. 전라도 각지의 발굴 현장에서 종종 발견되는 인골들이 바로 그들일 것입니다. 신석기시대의 유적인 여수 안도패총에서 출토된 부부의 인골, 기원전 1세기 광주 신창동 유적지에서 출토된 여성의 인골 등은 지금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전라도 사람입니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한국식 동검, 청동기.초기철기시대, 익산 평장리

OLYMPUS DIGITAL CAMERA전한경, 청동기.초기철기시대, 익산 평장리,

익산 평장리의 널무덤에서 한국식동검 2점과 청동꺾창 1점 청동투겁창 1점과 함께 발견되었다. 거울은 초엽문과 반리문이 중심이 된 ‘운문지사엽사리문경’으로 전국말에서 한나라 초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 시기에 고조선의 준왕이 위만에 쫓겨 남쪽으로 내려왔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0

OLYMPUS DIGITAL CAMERA청동꺾창, 청동기.초기철기시대, 익산 평장리

OLYMPUS DIGITAL CAMERA한국식 투겁창, 청동기.초기철기시대, 익산 평장리

OLYMPUS DIGITAL CAMERA중국식 동검, 청동기.초기철기시대, 완주 상림리

OLYMPUS DIGITAL CAMERA옹관, 3세기 후반 ~ 6세기 전반, 전남 영암

OLYMPUS DIGITAL CAMERA금제사리봉영기, 백제, 익산 미륵사지 서탑, 보물 1991호

익산 미륵사지 서탑에서 발견된 사리갖춤 가운데, 기해년(639)에 백제 왕실의 후원으로 미륵사를 창건한 내용이 기록된 금제사리봉영기이다. 백제 무왕의 세력이 전북 익산까지 남하하였음을 증명해 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금제판, 백제, 익산 미륵사지 서탑, 보물 1991호

OLYMPUS DIGITAL CAMERA금제구슬, 유리구슬, 금제 꽃모양구슬, 백제, 익산 미륵사지 서탑

OLYMPUS DIGITAL CAMERA청동합, 백제 익산미륵사지 서탑, 보물 1991호

OLYMPUS DIGITAL CAMERA은제관꾸미개, 백제 익산미륵사지 서탑, 보물 1991호

OLYMPUS DIGITAL CAMERA금제사리내호, 백제 익산미륵사지 서탑, 보물 1991호

OLYMPUS DIGITAL CAMERA금제사리함, 백제, 익산 왕궁리 석탑, 국보 123호

백제 무왕(재위 600~ 640)의 궁궐터로 알려진 왕궁리 유적의 오층석탑에서 발견된 금제사리함이다. 이외에 녹색의 유리사리병과 금강경의 내용을 19장의 금판에 새긴 은제도금금강경판이 함께 발견되었다. (안내문,광주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소조상편, 백제, 익산 왕궁리

OLYMPUS DIGITAL CAMERA흙으로 만든 손, 흙으로 만든 악귀 머리, 백제, 익산 제석사지,

OLYMPUS DIGITAL CAMERA흙으로 만든 천부상 머리, 백제, 익산 제석사지, 백제 무왕 때 세워진 것으로 알려진 왕궁리 제석사 터에서 발견된 소조천부상의 머리 부분이다. 절반정도 파손되었던 것을 복원하였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마한의 진왕, 고조선의 준왕 그리고 백제의 무왕
넓은 물길이 바다로 이어지고, 낮은 언덕과 평야가 펼쳐져 농사 짓기에 적합한 전라도에는, 다양한 문명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들어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한반도의 북쪽 지역을 근거지로 하였던 고조선의 준왕이 위만에 쫓겨 남쪽으로 내려와 정착한 곳도 전라도 땅이었습니다. 또한 영산강 주변의 넓은 평야 지대에서는 진왕을 중심으로 하는 마한이 세력을 유지하였습니다. 그들은 한반도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옹관고분이라는 독특한 매장 문화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백제의 초기 정치 권력은 한강 유역과 충청도 지역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소백산맥을 넘어 신라 영역까지의 확장을 노렸던 무왕은 전라도로 눈을 돌려 익산에 별도를 경영하였습니다. (앤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봉림사지 출토 기와와 청자편, 9세기말 ~ 10세기초

봉림사지에서는 전주 동고산성 등 후백제 유적지로 알려진 곳과 유사한 기와편이 출토되었고, 10세기 초 선해무리굽청자완과 중국식해무리굽완이 확인되었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진안 도통리 출토 청자편, 9세기말 ~ 10세기초,

진안 도통리 가마는 봉림사지에서 출토된 자기면과 유사한 자기의 생산이 확인되어 후백제 시기에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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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해룡산성 기와, 9세기말 ~ 10세기초

OLYMPUS DIGITAL CAMERA익산 미륵사지 「금마저」명 기와, 9세기말 ~ 10세기 초, 후백제는 ‘금마저’와 같은 백제의 옛 지명을 사용하여 백제 계층의식을 나타내었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전주 동고산성 「전주성」명 기와, 9세기말 ~ 10세기초. 900년 견훤이 후백제의 새로운 도읍으로 삼은 전주 동고산성에서 발견된 기와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전주 동고산성 기와, 9세기말 ~ 10세기초

OLYMPUS DIGITAL CAMERA나주 자미산성 기와, 9세기말 ~ 10세기초

OLYMPUS DIGITAL CAMERA나주 자미산성 기와, 9세기말 ~ 10세기초

OLYMPUS DIGITAL CAMERA광주 무진고성 기와, 9세기말 ~ 10세기초

OLYMPUS DIGITAL CAMERA부처, 9세기말 ~ 10세기 초, 익산 왕궁리 석탑, 국보 123호

OLYMPUS DIGITAL CAMERA봉림사지 삼존불 중 협시보살상, 10세기, 석재. 봉림사지 석조삼존불의 좌.우협시보살이다. 왕궁리 오층석탑에서 발견된 금동불입상과 유사한 양식적 특징을 보이거나, 6세기 후반 보살상에서 자주 볼 수 있는 x자 천의를 걸치는 등 복고적 요소가 눈에 띄어 ‘의자왕의 숙분을 풀겠다’고 천명한 후백제 정권의 제작이라 판단된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후백제의 견훤
7세기 중반 이후 전라도는 통일신라의 지배 하에 놓이게 됩니다. 그러나통일신라의 세력이 완전히 기운 9세기 말, 반란 세력을 일으킨 견훤은 광주에서 스스로 후백제의 왕을 칭하고 이어 효공왕 4년(900)에는 전주에 도읍을 정하였습니다. 이처럼 견훤은 매우 짧은 기간에 백제의 옛 영토 대부분을 회복하고 후백제를 건국하였습니다. 이는 오랜 세월 다른 지역에서 발생한 권력의 지배를 받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었던 전라도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 이었을 것입니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출처>

  1.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