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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왕산역사공원

경북 상주시 서성동에 있는 왕산역사공원이다. 왕산은 옛 상주목 읍치였던 상주읍성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동산이다. 고려말 공민왕이 홍건적의 침입을 피해 이곳에 머물면서 왕산이라 불렀다. 조선시대에는 경상감영과 상주목 관아들이 왕산아래 자리잡고 있었으며 지금도 상주시 도심 중심부를 형성하고 있다. 역사공원으로 조성된 이곳에는 복룡동에서 옮겨온 석조여래좌상(보물 119호), 일제강점기 애국지사인 위암 장지연 기념비, 역대 상주목사 공덕비 등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상주시 도심 가운데 있는 작은 동산인 왕산역사공원. 통일신라 이래 상주지역의 중심지로 관아가 있었던 유서깊은 곳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왕산 입구. 복룡동에서 옮겨온 석조여래좌상(보물 119호)이 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왕산 아래에 모아 놓은 상주 목사 등을 역임한 인물들의 공덕비.

OLYMPUS DIGITAL CAMERA복룡동 석조여래좌상(보물 119호)

OLYMPUS DIGITAL CAMERA왕산에서 내려다 보이는 상주목 객사 뒷편 관아가 있던 자리

OLYMPUS DIGITAL CAMERA왕산 산책로

OLYMPUS DIGITAL CAMERA이곳에 관아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고목들.

OLYMPUS DIGITAL CAMERA왕산 정상부

OLYMPUS DIGITAL CAMERA장지연 선생 기념비.

OLYMPUS DIGITAL CAMERA왕산 아래에 있는 작은 정자.

OLYMPUS DIGITAL CAMERA왕산 아래 상주목 동헌이 있던 자리에는 상가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옛 사진에 보이는 왕산과 상주목 동헌

상주의 중심 왕산(王山)의 유래
왕산은 고도 상주의 중앙에 자리한 명산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31대 신문왕 7년(서기 687년)에 주위 1천배9보의 상주성을 쌓고 성의 4대문 중앙에 자리한 작은 산이 왕산이다. 고려 31대 공민왕 11년(1362) 홍건적 침략으로 고려왕실이 상주목 상주성을 임시거처행궁으로 사용하였다. 이때 작은 산이 고려왕실의 산이 되었다. 1700년대 제작된 상산지도에는 왕산을 배경으로 관아들이 있었으며 조선조 1392년부터 1592년까지 경상감영을 겸한 곳이 이 왕산 아래였다. 특히, 조선시대에 와서 상산삼악일 일컬어 오면서도 왕산을 영산으로 여겨왔으며 1617년 이준이 편찬한 상산지에 의하면 상주에서 인재가 많이 배출된 것이 왕산이였기 때문에 이 왕산을 일명 장원봉이라고도 불렀다. 일제강점기 때 왕산 이름을 앙산으로 하였다가 최근에 왕산으로 바로 잡았다. 창석 이준선생이 「왕산괴정」 시를 남겼고 1300년 역사를 간직한 산이 왕산이며 장원봉을 중심으로 왕산을 돌면서 소원을 빌면 한가지 소원은 들어 준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안내문, 상주시청, 2013년)

<출처>

  1. 안내문, 상주시청, 2013년

상주 임란북천전적지, 임진왜란 때 중앙 관군이 왜군과 첫 전투를 벌렸던 곳

경북 상주시 만산동에 있는 임란북천전적지이다. 임진왜란 때 조선 중앙 관군이 의병과 함께 왜군 주력부대와 최초로 전투를 벌렸던 곳이다. 당시 조성에서는 북방에서 전투경험이 많았던 이일을 경상도에 순변사로 파견하여 왜군과 맞서도록 하였다. 당시 상주목사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지방관리들은 왜군을 피해 숨어버렸는데 상주에서는 판관 권길, 종사관 윤섬 등이 의병장 김준신 등과 함께 이곳에서 왜군을 맞서 싸우다 800여 명이 전사하였다. 1990년 대 이곳에 순국한 이들을 모시는 사당인 충렬사가 세워 사적공원으로 조성하였다. 또한 옛 상주목 객사였던 상산관을 비롯하여 여러 관아 건물들을 이곳으로 옮겼다.

OLYMPUS DIGITAL CAMERA상주 임란북천 전적지. 상주 북천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당시 전투에서 순국했던 상주 판관 권길 등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이 세워졌다.

OLYMPUS DIGITAL CAMERA사당을 중심으로 앞 마당에는 기념관, 제실, 비석을 모신 비각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상주전투에서 순국한 권길 등의 위패를 모신 사당

OLYMPUS DIGITAL CAMERA비각에는  종사관 윤섬, 박호, 이경류와 의병장 김준신, 김일을 기리는 「충신의사단비」 복제본과 권길의 충절을 새겨 둔 「판관권길사의비」가 있다.

이 비각에는 임진왜란(1592년) 떄 이곳 북천전투에서 왜군과 싸우다 순국한 3충신(종사관 윤섬, 박호, 이경류)과 2의사(의병장 김준신, 김일)의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한 「충신의사단비」 복제본과 상주목판관으로 봉직 중 순국한 권길의 충절을 새겨 둔 「판관권길사의비」가 보호되고 있다. 「충신의사단비」 는 1793년(정조 17)에 사액 받아 충이단에 비를 세웠는데 임란북천전적지를 조성하면서 충의단에 있는 비와 똑같이 복제한 것이며, 「판관권길사의비」는 창석 이준 선생이 찬하여 1698년(숙종 24)에 건립된 충렬사에 세웠는데 충렬사가 훼철되면서 자산 아래로 1991년에 임란북천전적지를 조성하면서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안내문, 상주시청, 2013년)

OLYMPUS DIGITAL CAMERA마당에 있는 재실

OLYMPUS DIGITAL CAMERA전적지 앞을 흐르는 북천과 상주읍치.

OLYMPUS DIGITAL CAMERA상주전투와 관련된 기록 등을 전시하고 있는 기념관

OLYMPUS DIGITAL CAMERA 윤섬 교지, 윤섬(1561~1592년)은 조선중기 문신으로 순변사 이일의 종사관으로 파견되어 상주전투에서 싸우다 전사하였다. 교리로서 비교적 직위가 높은 문신이었지만 종사관으로 전투에 직접 참전하여 순국하였다.

OLYMPUS DIGITAL CAMERA조정 임란일기. 조정(1555 ~ 1636년)은 조선중기 문신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참전했으며 당시 기록을 적은 많은 「남행록」 등 많은 저작물을 남겼다.

OLYMPUS DIGITAL CAMERA남행록과 문견록

OLYMPUS DIGITAL CAMERA이전의 형제급난도. 정경세와 함께 의병을 일으킨 이준(1560 ~ 1635년)이 전투에서 병으로 죽게 되었을 때 형 이전(1558 ~ 1648년)이 동생을 업고 빠져나와 생명을 건지게 한 일화를 그린 그림이다.

상주전투
왜군들의 침략 사실을 접한 조선 조성에서는 4월 17일, 이일을 순변사로 임명하고, 성응길, 조경을 각각 좌우방어사로 삼아 영남으로 급파하였다. 이에 이일이 군사를 모아 명령을 받은지 3일 만에 출정하였고, 경상감사 김수도 열읍에 공문을 보내 수령들로 하여금 각자 소속군사를 이끌고 정해진 지역에서 대기하도록 하였다. 고을 수령들은 각기 군졸들을 이끌고 대구 냇가에 순변사가 당도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수일이 지나도 순변사가 오지 않고 왜군의 북상 소문이 들리자 동요하기 시작했다. 더구나 비가 내리는데다 군량미마저 끊기자 싸워보지도 못하고 모두 흩어져 버렸다. 이일은 문경을 거쳐 4월 23일에 상주에 도착하였는데, 그곳에서 상주목사 김해가 이미 적을 피해 산속으로 도주하였고, 판관 권길 만이 고을을 지키고 있었다. 이에 이일이 판관을 시켜 관아의 창고를 열고 곡식을 풀어 백성들을 모으고, 흩어진 군졸과 무기를 수습하게 하여 수백 명의 군사를 모집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대부분 조련을 받아보지 못한 농민들이었기 때문에 급히 상주 북방 북천에 진을 치고 대오를 편성하여 서울에서 내려온 장졸 등과 함께 훈련을 시켰다. 그러던 중 고니시가 이끄는 왜군들의 공격을 받게 되었다. 이에 이일 휘하의 장졸들은 산을 의지하고 분전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크게 패하여 종사관 윤섬, 이경류, 박호 등 중앙군과 판관 권길, 사근도찰방 김종무, 호장 박걸, 의병장 김준신, 김일 등 900여 명이 순국하였다. 이일은 단신으로 탈주, 중앙에 패보를 전한 다음 물러나서 조령을 지키려 하였으나 도순변사 신립이 충주에 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으로 달려갔다. (안내문, 상주시청, 2013년)

OLYMPUS DIGITAL CAMERA임란북천전적지로 옮겨온 옛 상주목 객사건물이 상산관.

OLYMPUS DIGITAL CAMERA상주목 관아 동헌 문루였던 태평관.

상주 임란북천 전적지, 경부 상주시 만산동
이곳 북천변 자산 기슭은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시 왜군에 대항하여 우리 관군과 의병들이 격전한 전적지이다. 이 전투에서 순변사 이일이 인솔한 관군과 상주지방에서 창의한 의병들이 왜군의 기습을 받아서 종사관 윤섬, 이경류, 박호 등과 상주판관 권길, 사근도 찰방 김종무, 호장 박걸, 의병장 김준신, 김일 등 수 많은 군사들이 순절하고 패전하였으나 임란사상 중앙 관군과 의병들이 뜻을 모아 왜군에 대항한 첫 전투라는데 큰 뜻을 지니고 있다. 1990년부터 사당, 전시관, 사적비 등을 세우고 원래 있었던 박걸 단소 및 권길 사의비를 이건하여 사적공원으로 조성하였다. (안내문, 상주시청, 2013년)

<출처>

  1. 안내문, 상주시청, 2013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경상도 상주목 관아, 경상감영이 있었던 큰 고장

상주(尙州)는 경북 서북부에 있는 고장으로 영남과 중부지방을 연결하는 주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다. 낙강강 본류가 상주시 동쪽을 흐르고 있으며 북.서쪽을 백두대간이 막고 있다. 삼한시대 사벌국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고려 성종 (982년) 때 전국 12목 중 상주목이 설치되었다. 조선초 전국 8도체제가 확립되면서 경상도 감영이 이곳에 설치되면서 경상감사가 상주목사를 겸하기도 하였다. 경상도의 어원이 상주에 유래할 정도로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중요한 고장이었다.

읍치였던 상주읍성에는 고을 규모에 걸맞게 많은 관아 건물들이 있었다. 주산인 왕산 앞에는 상주목사가 근무했던 동헌과 내아, 그리고 관리들이 근무하던 이향청 등 크고 작은 관청 건물이 있었고, 동쪽편에 국왕을 상징하는 궐패를 모신 객사인 상산관 등이 자리잡고 있었다. 일제강점기 읍성이 허물어지고 도시화가 진전되면서 일부 건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없어졌다. 현존하는 옛 관아 건물들인 상산관, 태평루, 침천청 등은 임란북천전적지로 옮겨졌으며 향청만이 옛 관아터에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옛 상주목 관아 객사 건물인 상산관. 관아 객사 건물 중 가장 큰 규모의 중 하나이다. 가운데 궐패를 모신 정청을 두고 앞면 7칸 규모 동익헌과 앞면 5칸 규모 서익헌을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궐패를 모신 정청

OLYMPUS DIGITAL CAMERA정청 내부에 재현해 놓은 망궐례 모습. 상주목사가 국왕에 예를 올리는 장면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동헌 출입문 문루로 사용되었던 태평루

OLYMPUS DIGITAL CAMERA태평루 현판.

OLYMPUS DIGITAL CAMERA북천전적지 태평루 앞에 있는 공덕비

태평루
이 누각은 조선시대 1808년(순조 8)에 상주목사 정동교가 건립했다. 건축양식은 조선시대 성행한 다포식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당시는 왕산을 중심으로 쌓은 상주읍성 관아문의 내삼문 밖에 있었고 동헌의 문루로 사용되었다. 그후 1920년 상주향교 동편에 있는 동산으로 옮겨 남산중학교 교사로 사용하다가 임란북천전적지를 조성하면서 1992년 현재 위치에 옮겨왔다. (안내문, 상주박물관,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옛 상주목 관아터에 남아 있는 부속건물인 향청. 지역 유력인사들과 함께 현안을 논의할 수 있는 장소로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북천전적지로 옮겨 놓은 정자인 침천정. 상주읍성 남문 밖에 있던 관아에서 설치한 작은 정자이다. 손님을 접대하기 위해 지은 것이라기 보다는 지역 유력인사들이 교류할 수 있는 장소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읍치내 향청과 비슷한 성격의 건물이라 할 수 있다.

침천정
이 정자는 조선시대 1577년(선조 10)에 상주목사 정곤수가 상주읍성 남문 밖에 건립하고 연당이라 이름지어 선비들의 휴식처나 글 짓는 곳으로 사용하던 관정이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12년(광해군 4)에 상주목사 한술이 중건하고 1614년(광해군 4) 상주목사 강복성이 천향정으로 개칭하였으며, 1693년(숙종 19)에 목사 이항이 연지를 홍백연당으로 고치고 이향정이라고 하였다. 그후 일제시대인 1914년 도시정비계획에 따라 상주읍성이 헐릴 때 지방의 뜻있는 유지 여러 명이 정자를 사서 현 위치로 옮기고 군수 심환진이 침천정이란 이름으로 고쳐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안내문, 상주시청, 2013년)

OLYMPUS DIGITAL CAMERA옛 상주목 동헌 뒷편에 있는 왕산공원에 있는 송덕비들.

OLYMPUS DIGITAL CAMERA상주성도. 

상주읍성을 중심으로 읍내 반경 5리 이내의 관아 등 공공시설을 그린 지도이다. 동헌건물이 청유당(1827년), 서산서원(1713~1870년)이 그려져 있어 제작시기는 1827년에서 1870년 사이인 것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상주박물관,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그림에서 볼 수 있는 옛 상주목 관아 건물 배치도.

OLYMPUS DIGITAL CAMERA동쪽편 객사와 주변 부속 건물 옛사진

OLYMPUS DIGITAL CAMERA객사가 있던 자리에는 상주경찰서를 비롯하여 여러 공공기관들이 자리잡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동헌과 왕산공원 모습을 볼 수 있는 옛 사진. 일제강점기에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동헌과 태평루가 있던 자리에는 상가들이 들어서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초가지붕을 하고 있던 상가들이 있던 남문으로 연결되는 거리.

OLYMPUS DIGITAL CAMERA임란북천전적지에서 내려다 보이는 상주읍치

<출처>

  1. 안내문, 상주시청, 2013년
  2. 안내문, 상주박물관, 2019년
  3.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

상주 향청, 옛 상주목 관아 부속 건물

경북 상주시 인봉동 옛 상주목 관아가 있던 자리에 남아 있는 향청이다. 향청은 지방 유력인사였던 양반들이 상주목사 업무를 자문하면서 지역사회에서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모였던 곳이다. 상주 향청은 조선중기 선조 때 한순이 처음 세웠으며 이후 여러 차례 중건을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간물은 앞 5칸, 옆면 칸으로 가운데 넓은 대청마루를, 양쪽에 1칸씩 온돌방을 두고 있는 서원이나 향교의 강당 형태를 하고 있다. 오랜 세월동안 여러 차례 중수를 거치면서 옛 모습이 많이 훼손되었지만 지방 관아 건물 충 향청은 많이 남아 있지 않아 사회.문화적인 측면에서 가치가 있는 곳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옛 상주목 관아가 있던 자리에 남아 있는 상주 향청. 상산관을 비롯하여 여러 건물들은 인근 임란북천전적지로 옮겨졌지만 향청만 옛 자리에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 이후 상주군 관사 등으로 사용되면서 건물자체는 많이 훼손되었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건물은 앞면 5칸, 옆면 2칸 규모로 여러 사람이 모여 회의를 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향청 대청마루

OLYMPUS DIGITAL CAMERA양쪽에 앞면 1칸씩 온돌방을 두고 있다.

상주향청, 경북 상주시 인봉동
향청의 명칭은 향사당, 이아, 풍헌당 등으로 불려 왔으며 그 기능으로 향촌의 양반들이 지방행정이 보조역할을 하고 향촌의 미풍순화를 하며 자신들의 사회적, 정치적 지위를 유지하였던 곳이다. 상산지에는 1500년대 말에 보은현감 한순이 처음 세웠으나 임진왜란 떄 소실되었고, 광해군 2년(1610)에 손자인 한정이 다시 세웠다고 그 뒤 여러 차례 중수가 거듭되면서 일제강점기에는 일본군이 주둔한 이래 상주 관아로써 사용되다가 이후 1995년까지는 상주시의 관사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이곳은 지방 양반들이 향촌사회의 발전을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는 점과 향청 자체가 남아 있는 경우가 드물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안내문, 상주시청, 2013년)

<출처>

  1. 안내문, 상주시청, 2013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

상주 상산관, 옛 상주목 관아 객사 건물

경북 상주시 만산동 임란북천전적지에 있는 상산관이다. 조선시대 상주목 관아 중심이 되는 건물로 국왕을 상징하는 궐패를 모시며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들이 머무는 객사건물이다. 문헌에 따르면 고려시대에 처음 지어졌다고 하며 여러 차례 화재로 소실되고 중건하기를 거듭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원래 관아가 있던 상주 도심 상주경찰서 자리에 있었다.

건물은 가운데 궐패를 모시는 정청을 두고 양쪽에 숙소인 동익헌.서익헌이 있다. 정청은 앞면 3칸, 동익헌은 앞면 7칸, 서익헌은 앞면 4칸 규모이다. 정정 건물을 높게 하고 양쪽에 익랑형태로 건물을 두고 있는 전형적인 객사 건물로 상당히 큰 규모이다. 내부에는 원본은 아니지만 조선후기 현종 때(1666현) 상산관을 중건하면서 지은 상량문을 비롯하여 고려 떄 안축이 지은 객관기, 이규보와 조준이 지은 글이 적힌 현판이 걸려 있어 오랜 세월 영남지방을 대표하는 객사 건물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상주 상산관. 전형적인 객사 건물로 현존하는 일반 객사 건물 중 남부지방에서는 가장 큰 규모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국왕을 상징하는 궐패를 모신 가운데 정청. “상산관”이라 적힌 큰 현판이 걸려 있다. 앞면 3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정청 내부. 상주목사가 궐패를 향해 예를 올리는 망궐례를 재현해 놓고 있다.

망궐례
이곳 상산관은 조선시대 상주목의 개사로 궁중에서 신하가 임금에게 하례를 행하듯 이곳 전청에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셔두고 대궐을 향하여 임금의 만수무강을 빌고 절하던 의식을 행하던 곳으로 배례의식은 목사가 부임할 때와 나라에 즐거운 일이 있을 때, 그리고 매월 초하루 보름에 정기적으로 행하여져 왔다. (안내문, 상주시청, 2013년)

OLYMPUS DIGITAL CAMERA동익헌. 앞며 7칸의 상당히 큰 규모의 건물이다. 동익헌은 상주를 방문한 문신들이 머무는 공간으로 서익헌에 비해 크게 지었다.

OLYMPUS DIGITAL CAMERA동익헌 대청마루. 앞면 4칸 옆면 3칸의 상당히 넓은 공간으로 손님을 접대하는 연회 등을 여는 공간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청마루 천장. 서까래가 드러나 있는 연등천장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옆에서 본 동익헌. 대청마루가 상당히 넓고 웅장하다.

OLYMPUS DIGITAL CAMERA서익헌은 동익헌에 비해 작은 앞면 4칸 규모이다. 뒷편에 3칸 온돌방을 두고 있으며, 왼쪽끝 1칸은 마루로 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서익헌 대청마루.

OLYMPUS DIGITAL CAMERA상주객사 상량문, 1666년 전임 군수인 조정융이 옛터에 복원하는 상산관을 기념하기 위해 지은 상량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객관기, 1343년(고려 충혜왕 4)에 상주목사로 부임한 근재 안축 선생이 상산관을 보고 지은 기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고려 고종때 문장가 이규보(1168 ~ 1241년)가 지은 “상산관의 높은 추녀 아래서”라는 글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조선초 문신 조준(1346 ~ 1405년)이 지은 “상주객사의 판상운 따라..”라는 글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동쪽에서 본 상산관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모습

상주 상산관, 경북 상주시 경상대로
객사는 지방 관아의 중심 건물로서 고을 수령이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궁궐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시고 망궐례를 행하였으며,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들이 머물렀던 시설이다. 이 건물은 1328년(충숙왕 15) 목사 김영후가 중수했다는 「상산지」 기록으로 보아 이보다 앞서 창건된 것으로 여겨지는 객사이다. 1526년(중종 21) 소실된 것을 목사 윤탕이 중건하였으나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1606년(선조 39) 재건하고, 1666(현종 7)에 다시 중건하였다. 근대에는 현 상주경찰서 자리에 있었으나 1940년 상주여자중학교로 옮겨와서 교실로 사용하다가 1991년 지금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안내문, 상주시청, 2013년)

<출처>

  1. 안내문, 상주시청, 2013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