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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노악산 남장사, 옛 상주목 읍치 가까운 곳에 위치한 큰 사찰

경북 상주시 남장동 노악산에 있는 남장사(南長寺)이다. 통일신라 때 우리나라에 범패(불교음악)을 처음 도입한 진감선사가 북장사와 함께 창건한 사찰이다. 고려 명종 때(1186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 중건하면서 남장사라 이름을 바꾸었다. 임진왜란 떄 불타 이후 인조 때 크게 중건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남장사에는 주불전인 극락보전을 비롯하여 영산전.보광전.금륜전 등 많은 불전과 요사채 등을 두고 있다. 사찰 전각들은 그 내력이 깊지 않으나 철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990호), 보광전 목각아미타여래설법성(보물 922호),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보물 1641호), 감로왕도(보물 1641호), 영산회 괘불도(보물 2007호) 등 많은 문화재들을 소장하고 있다. 인근 북장사에 비해 원래의 사찰규모는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지만 현존하는 전각들과 소장유물들이 많은 것으로 볼 때 상주목 읍치와 가까운 곳에 있어 조선후기 이후 상대적으로 번창했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상주 노악산 남장사. 통일신라 때 진감선사가 처음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며 고려초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일주문을 지나 남장사로 들어가는 길. 전망좋은 산중턱에 위치한 북장사와는 달리 울창한 숲을 자랑하는 계곡에 위치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남장사 출입문으로 사용되고 있는 범종루. 남장사에는 천왕문과 금강문을 두고 있지 않다.

OLYMPUS DIGITAL CAMERA남장사 석장승, 조선시대

장승은 마을 입구나 사찰 입구에 세워지는 것으로, 잡귀와 액운의 출입을 막고 사찰 내으 재산과 경계를 표시하는 민간 신앙물로, 마을에서는 수호신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 장승은 조선 순조 32년(1832)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남장사에는 사천왕상이 없다. 따라서 남장동을 지키기 위한 수호신으로 세워진 것 같다. (안내문, 상주박물관,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범종루를 지나면 주불전이 있는 공간이 나타난다. 남장사는 극락보전이 주불전이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전각들은 비로자나여래를 모신 보광전이 있는 뒷편 공간에 모여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주불전인 극락보전. 목조 아미타여래 삼존좌상(보물 1635년)을 모시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주불전 마당 한쪽편에 있는 요사채.

OLYMPUS DIGITAL CAMERA극락보전 뒷편에 있는 건물. 보광전과 마주보고 있는 큰 건물로 강당 건물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왼쪽편 요사채 건물. 계단을 통해 보광전이 있는 마당으로 들어갈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실질적인 주불전으로 보이는 보광전. 철조 비로자나불 좌상(보물 990호)와 목각 아미타여래설법상(보물 922호)를 모시고 있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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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장사 보광전 철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990호)과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보물 922호).

상주 남장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보물 990호
이 불상은 남장사 보광전의 목조 불단에 모셔져 있는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이다. 현재 불간 뒤 원광인 광배가 없고 불신만 남아 있다. 크기는 불상 높이 133 cm, 머리높이 34 cm, 어깨 폭 58 cm, 무릎 폭 102 cm이다. 나선형 머리카락의 머리 위에는 큼진한 실상투가 있고, 백호가 표시되어 있다. 얼굴은 눈.코.입 각 부분이 모두 잘 정제되어 있는데 눈은 반쯤 감은 형태이다. 특히 어깨에 닿을 듯한 긴 귀와 목에 돌려진 삼도가 원만하게 잘 조화되어 위엄있고 자비스러운 인상을 자아낸다. 이 불상은 고려시대에 조성된 철불의 다양한 양식을 보여주는 뛰어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안내문, 상주 남장사, 2019년)

상주 남장사 보광전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보물922호
이 목각탱은 조손후기에 새겨진 것으로 규격은 226 x 236 cm이다. 주존인 철조 비로자나불 뒷벽의 후불탱으로 모셔져 있는 이 목각탱은 아미타극락회상의 도상을 나무로 조각해 금본을 입힌 것이다. 불상의 뒷벽은 종이나 비단에 그린 탱화가 아닌 목각탱으로 장엄한 장식은 조선후기에 나타난 특이한 형식으로 보이며, 전국적으로 6점이 조사되어 있을 정도로 드문예에 속한다. 조성연대는 알 수 없으나 1928년 개금한 기록이 있으며, 전체 구성이나 조각수법 등이 대승사의 목각탱과 매우 유사하다. (안내문, 상주 남장사,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보광전 옆 요사채. 많은 사람들이 머물 수 있는 상당히 큰 규모의 요사채이다. 이곳을 찾는 신도들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맞은편 ‘ㄱ’형 민가 형태의 요사채.

OLYMPUS DIGITAL CAMERA보광전 뒷편 전륜각. 앞면 3칸 건물로 산신각과 같이 사용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그 옆으로는 역대 고승들의 영정을 모신 진영각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요사채 안쪽 마당. 여러동의 요사채 건물들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서 내려다 보이는 보광전. 앞면 3칸에 화려한 다포계 공포를 사용하고 있는 전형적인 조선후기 불전 건축 양식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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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장사 영산회괘불도 (보물 2007호)

상주 남장사 22-20070915남장사 감로왕도(보물 1641호)

남장사
노악산 중턱 산자락에 자리한 남장사는 신라 흥덕왕 7년(832) 진감국사가 창건한 사찰로 우리나라에서 범패(불교음악)를 최초로 만든 곳으로, 보광전 철조비로자나불(보물 990호)와 전단향나무로 조성해 봉안한 후불목각탱화(보물 922호) 등의 문화재들은 상주 불교문화의 대표성을 드러내 주는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또한 남장사 입구의 석장승은 정겨운 모습으로 방문객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으며 주변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사찰이다. (안내문, 상주박물관, 2019년)

<출처>

  1. 안내문, 상주 남장사, 2019년
  2. 안내문, 상주박물관, 2019년
  3.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


 

상주 천주산 북장사, 상주지방의 유력 사찰

경북 상주시 내서면 북장리 천주산 중턱에 있는 북장사(北長寺)이다, 통일신라 때 승려 진감선사가 833년 창건하였다 전한다. 창건 이래 여러 암자를 거느린 큰 사찰이었는데 임진왜란 때 완전히 소실되어 옛 흔적은 거의 남아 있지 았다. 조선후기 인조 때 중국에서 온 승려 10여명이 중건하였다고 한다. 이후 여러차례 화재와 중건을 거듭하였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 중 오랜 내력이 있는 건물은 거의 없는 편이다. 북장사 전각들이 자리잡고 있는 절터의 규모와 형태, 입지조건 등을 고려해 볼 때 상당히 큰 규모의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북장사에는 조선후기 숙종 때 그림으로 유명했던 승려 학능이 지휘해서 그린 영산회괘불탱(보물 1278호)가 전해오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상주 북장사. 통일신라 때 처음 창건한 사찰로 남장사아와 함께 상주지방을 대표하는 유력 사찰이다. 천주산 중턱에 축대를 쌓고 넓은 절터를 조성하였다.

OLYMPUS DIGITAL CAMERA북장사 삼층석탑. 상주 인평동 절터에  석재들이 흩어져 남아 있던 것으로 1998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 복원하였다.

OLYMPUS DIGITAL CAMERA석탑을 옮겨 놓은 사찰 마당에는 기우제를 올릴 때 괘불을 걸었던 당간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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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장사 영산회괘불탱(보물 1,278호). 조선후기 숙종 승려화가 학능의 지휘로 그린 상당히 큰 규모의 괘불이다. 높이 13.37 m의 거대한 괘불로 그 규모나 예술성에서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괘불 중 하나로 여겨진다. 기우제를 올릴 때 이 괘불을 걸고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북장사 영산회괘불탱, 보물 1278호, 상주시 내서면 북장리
이 괘불탱은 조선 숙종 14년 승려 학능과 탁휘의 지휘로 그렸다. 높이 1,337 cm, 폭 807 cm의 거대한 작품으로, 조성 필치가 주목되는 귀중한 괘불탱화이다. 고운 명주에 채색하여 중앙에 석존을 모시고 좌우에 불보살들의 입상을 배치하였으며,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하고, 전체의 색재가 생생하다. 가문이 계속될 때 북장사 괘불을 걸고 제를 올리면 반드시 비가 온다는 믿음이 구전되고 있으며, 괘불에 얽힌 전설로는 「옛날 당승이 자청하여 괘불을 그릴 때 3일간 사람의 출입을 금하게 하였으나 마지박날 의아심을 가진 승려가 문틈으로 보니 파랑새 한 마리가 입에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파랑새는 승려가 엿보는 것을 눈치채고 사라졌는데 불탱을 살펴보니 오른손 한곳이 미완성이었다」고 전한다. (안내문, 상주 북장상,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북장사 주불전인 극락보전.

OLYMPUS DIGITAL CAMERA명부전.

OLYMPUS DIGITAL CAMERA극락보전 뒷편 삼성각

OLYMPUS DIGITAL CAMERA승려들의 수행공간인 요사채.

OLYMPUS DIGITAL CAMERA삼층석탑이 있는 아랫쪽 마당에 있는 종무소 건물.

<출처>

  1. 안내문, 상주 북장사, 2019년
  2.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3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

상주 북장사 삼층석탑

경북 상주시 내서면 북장리 북장사 경내에 있는 삼층석탑이다. 상주 인평동에 있던 탑으로 절터에 석재들이 흩어져 남아 있던 것으로 1998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 복원하였다.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린 정형화된 통일신라 삼층석탑의 모습을 하고 있다. 남아 있던 부재들로 복원한 것이지만 전체적인 비례가 우수하여 안정감을 주고 있으며 조각수법도 세련된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상주 북장사 삼층석탑.

OLYMPUS DIGITAL CAMERA옆에서 본 모습.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렸는데 전체적인 비례나 조형미는 양호한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기단부. 몸돌 가운데와 모서리에 기둥모양을 새겨 놓았다.

OLYMPUS DIGITAL CAMERA지붕돌은 낙수면이 완만한 편이며 그 끝을 살짝 들어올려 경쾌한 느낌을 준다.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모습.

상주 북장사 삼층석탑
이 탑은 1991년 지정 당시 인평동 소재 우암산 정상 가까운 절터에 흩어져 있던 것으로 1998년 이곳으로 이건하면서 북장사 삼층석탑이란 이름으로 복원한 것이다.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려놓은 형식으로 탑신과 옥개는 각각 한 돌로 되어 있다. 탑신에는 우주가 모각되어 있고 옥개석에는 5단 받침에 2단 괴임을 모각해 두었으며 낙수면을 완만히 하고 추녀 끝을 얇게 했다. 이러한 탑의 조성형식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탑의 높이는 5.45 m이다. (안내문, 상주 북장사, 2019년)

<출처>

  1. 안내문, 상주 북장사, 201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상주 도남서원, 정몽주 등을 배향하기 위해 지역 유림들이 세운 서원

경북 상주시 도남동에 있는 도남서원이다. 조선중기 선조 때(1606년) 정경세를 중심으로 지방유림들이 당시 상주목사였던 류성룡의 품의를 받아 정몽주, 김굉필, 정여창, 이언적, 이황을 모시기 위해 처음 세워졌다. 이후 노수신, 유성룡, 정경세가 추가로 배향되었다. 조선후기 숙종 때 ‘도남서원’이란 현판을 하사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선현들을 모신 서원이지만 지방유림들이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교육 중심의 서원이다. 구한말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어 옛 건물들은 대부분 없어졌다가 최근에 다시 복원되었다.

경내에는 사당인 도정사, 강당인 일관당, 누각인 정허헌, 출입문인 입덕문이 경사진 언덕에 일렬로 배치되어 있으며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서재와 전사청, 고직사 등의 건물들이 있다. 옛모습을 그대로 복원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낙동강이 내려다 보이는 경치좋은 곳에 안동 도산서원과 비슷한 형태로 건물들을 배치해 놓았다.

OLYMPUS DIGITAL CAMERA상주 도남서원. 서원으로 구한말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던 것을 최근에 복원하였다. 상주지방을 대표하는 서원으로 낙동강변 경치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도남서원 출입문인 입덕문

OLYMPUS DIGITAL CAMERA낙동강 경치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세워진 상당히 큰 규모의 누각인 정허루.

OLYMPUS DIGITAL CAMERA정허루에서 강당으로 오르는 계단

OLYMPUS DIGITAL CAMERA강당 건물인 일관당.

OLYMPUS DIGITAL CAMERA아래쪽에 있는 원래 강당인 일관당이었다는 건물. 지금은은 고직사 건물처럼 사용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도남서원 현판, 조선시대

창건 당시 정경세는 원호의 제정 등 제반사항을 유성룡에게 품의하여 정했는데, 그 바탕에는 상주를 영남유학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하려는 큰 뜻이 있었다. 서원 명칭인 ‘도남’은 정자가 제자 양시를 고향으로 보낼 때 ‘내 도가 남쪽으로 가는구나’라고 한 말에서 유래한다. (안내문, 상주박물관,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동재인 손학재

OLYMPUS DIGITAL CAMERA서재인 민구재. 그 옆에 장판각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사당인 도정사.

OLYMPUS DIGITAL CAMERA제사를 준비하는 전사청

OLYMPUS DIGITAL CAMERA도남서원 앞 표지석. 그 뒤로 낙동강과 상주보가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도남서원 상량문, 조선시대

정경세가 지은 도남서원 상량문이다. 영남에서 일어나 전해진 도학의 정맥이 이 서원을 통해 천년이나 이어질 것을 기원하는 내용이다. 정경세는 원우의 제도와 위치, 원호의 제정, 각종 예식문의 찬솔 등 제반사항을 앞에서 지휘했다. 이로써 정경세는 사후 2년 뒤인 1635년에 사후 2년 뒤인 1639년에 자신도 추배되었으며, 당시 봉안문은 전식이 지었다. (안내문, 상주박물관,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도남강학계안과 조선팔도 서원록(도남서원이 적혀 있다.)

도남서원
1606년에 창건되어 1676년에 사액서원이 되었으며, 1871년(고종 8)에 국령으로 훼철되었으나 향토 유림에서 복원하여 지금의 모습에 이른다. “도남”이란 명칭은 송나라 정자가 제자 양씨를 고향으로 보낼 때 “우리의 도가 장차 남방에서 행해지리라”한 말에서 비롯된 것으로 조선의 유학 전통은 바로 영남에 있다는 자부심에서 명명한 것이다. 서원에는 정몽주, 김굉필, 정여창, 이언적, 이황, 노수신, 류성룡, 정경세, 이준 선생을 모시고 해마다 춘추향사를 지내고 있다. 낙동강가에 자리잡은 서원에서 바라보는 경관과 정취는 매우 수려하다. (안내문, 상주박물관, 2019년)

<출처>

  1. 안내문, 상주시청, 2019년
  2. 안내문, 상주박물관,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9년

 

상주 옥동서원 (사적 532호), 조선초 황희 정승을 모신 서원

경북 상주시 모동면 수봉리에 있는 옥동서원(사적 532호)이다. 이 서원은 고려말.조선초에 활동한 황희 선생을(1363 ~ 1452년)를 모시기 위해 세워졌다. 조선 중종 때(1518년) 황희의 영정을 모신 영당을 세우면 시작되었다. 조선후기 숙종 때 현재의 위치에 사당을 옮기고 강당을 지으면서 서원의 모습을 갖추었으며 정조 때(1787년)에 ‘옥동서원(玉洞書院)’ 현판을 하사받으면서 사액서원이 되었다. 조선후기에 전식, 황효헌 황뉴 등이 추가로 배향되었다. 구한말 서원철폐령 때 황희를 모신 서원 중 유일하게 훼철되지 않은 중요한 서원이다.

서원은 문루인 회보문, 강당인 온휘당, 사당인 경덕사가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서재가 없는 등 부속시설들이 많지 않다. 후학을 양성하는 강학기능이 약화되고 선현을 모시는 제사기능이 중시된 17~18세기 서원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OLYMPUS DIGITAL CAMERA상주 옥동서원(사적 532호). 조선초 명재상 황희를 모신 서원으로 구한말 서원철폐령에 훼손되지 않은 중요 서원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회보문’이러 적힌 현판이 걸려 있는 문루.  앞면 5칸의 2층건물이다. 1층은 출입문으로, 2층은 가운데 넓은 대청마루를 두고 양쪽에 온돌방을 두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문루 바깥쪽 난간이 있는 마루.

OLYMPUS DIGITAL CAMERA옆족에서 본 모습. 옆면 3칸으로 앞쪽에 난간이 있는 툇마루를 두고 있다. 1층은 난방시설로 사용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강당에서 본 문루. 강당 앞 마당을 축대를 쌓아 조성하여 문루 2층과 같은 높이를 만들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옥동서원’이란 현판이 걸려 있는 강당. 강당은 앞면 5칸의 전형적인 서원 강당 건물 형태를 하고 있다. 가운데 3칸은 넓은 대청마루를, 양쪽에 1칸씩 온돌방을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옥동서원’이라 적힌 현판. 조선후기 정조때 국왕이 현판을 하사한 사액서원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강당 대청마루. ‘온휘당’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오른쪽 온돌방에는 탁장재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맞은편 방에는 ‘착로재(斲露齋)’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탁장재 온돌 아궁이. 온돌방 바깥쪽에는 난간이 있는 툇마루를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강당. 양쪽 온돌방에는 아궁이 위로 서적들을 보관하는 책장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강당 옆 관리사를 출입하는 작은 협문.

OLYMPUS DIGITAL CAMERA강당 뒷편 마당에는 제사를 준비하는 공간인 전사청 건물이 있다. 제사를 올리는 기능을 중시했던 18~19세기 서원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경덕사 삼문.

OLYMPUS DIGITAL CAMERA사당인 경덕사. 앞면 3칸의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전형적인 사당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황희초상, 조선시대

조선 세종 때의 재상인 황희의 초상화이다. 옥동서원 소장 자료에 따르면 황희 생전인 62세(1424) 때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비단에 채색된 형태이며, 초상화의 표현이나 묘사 등을 고려했을 때 전체적으로 고식을 따르고 있다. 황희.전식.황효헌.황뉴를 모신 사액서원이자 미훼철 서원인 옥동서원(사적 532호)에는 이 밖에 황희 초상 모사본 3본이 전해져 내려온다.

OLYMPUS DIGITAL CAMERA옥동서원 앞 들판.

상주 옥동서원, 사적 532호, 경부 상주시 모동면 수봉리
이 서원은 방촌 황희(1363 ~ 1452년) 선생의 영정을 봉안하여 존현하고, 교학하던 사학기관으로 1518년(중종 13) 백화서원이 효시가 되었다. 당초 신덕리(현재 서원의 북쪽)에 백옥영당으로 자리했으나, 1715년(숙종 41)에 이곳 백옥봉 산자락 남동쪽으로 옮겨 사당인 경덕사를 이건하고, 1716년 강당인 온휘당을 지었으며, 이후 1789년(정조13)에 옥동서원으로 사액받아 개칭하였다. 배향선현으로는 세종조의 명재상이요, 청백리인 방촌 황희 선생을 비롯하여 사서 전식, 축옹 황효헌, 반간 황뉴 등의 명현을 배향하였다.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시에도 훼철되지 않은 전국 47개 서원 중의 하나로 역사적, 건축사적 가치를 높이 인정받아 2015년.11.10자로 지방문화재 기념물에서 국가지정 문화재 사적(제532호)으로 승격되었다. (안내문, 상주시청, 2019년)

<출처>

  1. 안내문, 상주시청, 201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