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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백운암, 구한말에 창건된 작은 암자.

충북 충주시 엄정면 괴동리 백운산에 있는 작은 암자인 백운암이다. 구한말인 1886년 무당이었던 진령군 파평윤씨가 창건한 사찰이었다. 윤씨는 명성황후가 임오군란으로 충청도로 피난왔을 때 곧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예언했다가 임오군란 이후 진령군이라는 벼슬을 받았다. 원래는 요사채과 불당이 한 건물에 있는 작은 암자였는데 최근에 요사채와 삼성각을 세우면서 사찰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대웅전에는 통일신라 말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철조여래좌상(보물 1527호)를 모시고 있는데 원래 다른 곳에 있던 것을 옮겨온 것이라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충주시 엄정면 괴동리에 있는 작은 암자인 백운암. 고려시대 큰 사찰이었던 억정사지 인근에 위치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주불인 대웅보전. 원래는 불전과 요사채를 겸했던 건물이지만 지금은 불전으로 사용하고 있다. 통일신라말에 조성된 것으로 주청되는 철조여래좌상(보물 1527호)를 모시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충주 백운암 철조여래좌상(보물 1527호). 석굴암 본존불 양식을 따르고 있는 철조불상으로 통일신라말 또는 고려초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인근 지역에서 옮겨온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요사채.

OLYMPUS DIGITAL CAMERA삼성각.

<출처>

  1. 안내문, 충주시청, 2011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

충주 백운암 철조여래좌상(보물 1527호)

충북 충주시 엄정면 괴동리에는 작은 암자인 백운암에 있는 철조여래좌상(보물 1527호)이다. 높이 87 cm 정도의 크지 않은 철조불상으로 석굴암 본존불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불상은 8세기 통일신라 불상의 양식을 따르고 있기는 하지만 양감이 풍부하지 하지 않는등 후대인 통일신라 말이나 고려초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원래 이곳에 있던 불상은 아니고 인근 사찰에서 옮겨왔다고 하는데 고려시대 큰 사찰이었던 억정사에 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충주 백운암 철조여래좌상(보물 1527호). 석굴암 본존불 양식을 따르고 있는 통일신라 철조불상이다. 최근에 보존처리하여 철조불상 본래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충주 백운암 철조여래좌상 보물1527호 04-20191208
보존처리하기 전 모습. 일반적인 불상처럼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불상이 있는 충주 백운암. 구한말 무당의 신분으로 진령군이라는 작호를 받은 여자 윤씨가 창건한 사찰로 전해진다.

충주 백운암 철조여래좌상, 보물 1527호, 충북 충주시 엄정면 괴동리
백운암 철조여래좌상은 통일신라 8세기 석굴암 본존상 이래로 유행한 편단우견의 항마촉지인 여래좌상이다. 얼굴은 몸 전체에 비해 작은 편이나 이목구비의 표현이 뚜렷하고 근엄한 표정이 잘 표현되어 있다. 목에는 삼도가 보이고 어깨가 넓으며 가슴이 융기되었고, 결가부좌한 다리의 폭이 넓어서 당당한 자세를 보인다. 전체적으로 양감있게 표현되었고 대의 자락에서 부분적으로 번파식 옷주름을 볼 수 있어 이 불상이 통일신라 8세기 양식을 반영하고 있는 상임을 알 수 있으나 양감이 8세기 불상만큼 풍부한 것은 아니며 항마촉지인의 수인도 전형적인 형식이 아니어서 시대가내려가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조성 시기는 통일신라 말엣 고려 초기로 추정된다. 이 철조여래좌상은 통일신라 불상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어 충주지역의 철불 중에서도 연대가 가장 앞설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상호가 원만하며 조각양식도 좋은 편으로, 통일신라시대 이래 철불 연구에 매우 중요한 상이다. (안내문, 충주시청, 2019년)

<출처>

  1. 안내문, 충주시청, 2011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