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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누암리고분군(사적 463호), 신라 지방세력의 무덤

충북 충주시 가금면에 있는 누암리 고분군(사적 463호)이다. 충북지방 최고 위계의 고분군으로 6~7세기를 중심연대로 하고 있다.  진흥왕이 남한강 유역을 장악한 이주하여 ‘국원소경’을 경영하였던 신라계 지배층의 대규모 집단무덤이다. 우륵과 관련된 탄금대 유래에서 알 수 있듯이 신라에 귀화한 가야인을 비롯하여 신분이 높은 귀족 등을 집단으로 이주시켰던 것으로 보인다.

누암리 일대에는 230여기의 고분들이 확인되었는데 대부분 굴식돌방무덤이다. 무덤들은 대부분 일제강점기에 도굴된 것으로 보이며 1980년대 이후 발굴.조사 결과 짧은굽다리접시, 바리, 합 등 후기신라양식의 토기와 쇠손칼, 덩이쇠 등 철기루를 비롯하여 장신구 등이 출토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충주 누암리 고분군(사적 463호). 탑평리 칠층석탑(국보 6호)가 있는 절터에서 1.7 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진흥왕이 한강유역을 장악후 이곳에 ‘중원소경’을 설치하고 유력세력을 이주시켰음을 보여주는 유적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아래쪽에 있는 무덤은 그 규모가 상당히 크고 출토유물 등으로 볼 때 진골신분이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아래쪽에 비교적 큰 규모의 무덤들이 배치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 있는 무덤들은 그 규모가 비교적 작은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 있는 약간 큰 규모의 무덤.

OLYMPUS DIGITAL CAMERA안쪽에 있는 무덤들.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서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아래쪽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유적지 입구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충주 누암리유적 출토유물,

OLYMPUS DIGITAL CAMERA누암리 유적 출토유물

충주 누암리 고분군, 사적 463호, 충북 충주시 가금면 누암리
이곳은 무지(무덤) 고개의 남쪽 기슭 능머리 일대에 있는 수많은 석실 봉토분으로 이 일대의 대부분이 도굴된 상태에서 최근에 발굴조사된 후 복원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 곳이다. 그동안 고려장터라고 전해오던 곳으로, 일제시기에도 도굴, 파괴되어 훼손이 많이 이루어졌다. 일반적으로 석실 내부에 시신을 놓을 시상대를 설치하고, 위로 오르면서 원형의 궁륭모양으로 점점 좁혀지는 수법의 특징이 있다. 낮은 곳에 있는 가장 큰 무덤의 주인공은 고분의 규모나 출토유물로 보아 진골신분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충주는 고구려 때는 국원성으로 불렸고, 6세기 중엽에는 신라 진흥왕이 한강유역으로 진출한 후 이곳에 소경을 설치하여 ‘중원소경’이라 하였으니, 왕경에 다음가는 부도로서의 역할을 하였던 6세기 중엽 이후에 조성된 고분군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충주시청, 2011년)

<출처>

  1. 안내문, 충주시청, 2011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

 

충주 탄금대(명승 42호), 우륵이 가야금을 연주하던 곳이라 여겨진 곳

충북 충주시 칠금동 일대에 있는 탄금대(명승 42호)이다. 삼국시대 가야출신 우륵이 가야금을 연주하던 곳이라 하여 탄금대라 불려왔다. 임진왜란 때 신립장군이 이끄는 조선군이 고니시가 이끄는 왜군을 맞아 큰 패배를 당했던 곳이다. 대문산으로 불렸던 해발 100 m 작은 야산이지만 충주의 주산으로 여겨졌던 곳이다. 충주댐을 지나온 남한강이 속리산에서 흘러 내려온 큰 하천인 달천과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하류방향으로는 중앙탑으로 불렸단 탑평리 칠층석탑, 장미산성, 고구려비, 누암리고분군 등 삼국시대 한강유역 차지하기 위한 싸움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탄금대의 주인공 우륵 또한 진흥왕이 충주지역을 점령한 후 이주시킨 신라 귀족 집단의 일원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OLYMPUS DIGITAL CAMERA충주 탄금대(명승 42호). 삼국시대 가야출신 우륵이 가야금을 연주했던 곳으로 여겨진다. 남한강과 달천이 합류하는 지점으로 빼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OLYMPUS DIGITAL CAMERA타금대 숲길. 충주시민들을 위한 공원으로 바뀐 지금은 다양한 수목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탄금대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세워진 정자.

OLYMPUS DIGITAL CAMERA정자에서 내려다 보이는 탄금대.

OLYMPUS DIGITAL CAMERA탄금대 앞을 흐른 남한강. 하류 방향으로 근처에 조정지댐이 있어 남한강 수량이 꽤 많은 것처럼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남한강 상류방향.

OLYMPUS DIGITAL CAMERA남한강 하류방향.  이 곳에서 달천과 남한강이 만난다.  탄금대 앞으로 용섬이라는 작은 섬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전형적인 도시공원의 모습을 하고 있는 공간.

OLYMPUS DIGITAL CAMERA도시공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조각상

OLYMPUS DIGITAL CAMERA탄금대 충혼탑

OLYMPUS DIGITAL CAMERA팔천고혼위령탑. 임진왜란 때 탄금대전투에서 왜군에 맞서 싸우다 전사한 8천여명의 병사들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탑이다.

충주 탄금대, 명승 42호
탄금대는 해발 108 m 정도의 야트막한 산에 위치하며 남한강과 달천이 합류하는 지점(합수머리)에 자리하고 있다. ‘탄금대’라는 명칭은 악성 우륵선생이 가야금을 연주한데서 유래하였다. 우륵선생은 원래 가야국 사람이었는데 신라 진흥왕이 가야지역을 차지한 후 사민정책에 따라 충주로 이주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조선시대 선조 25년(1592) 4월 임진왜란시 신립장군은 탄금대에서 8천여명의 병사들과 배수진을 치고 고니시 유키나가 군대에 맞서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한 옛 전쟁터이기도 하다. 탄금대는 남한강과 달천이 합쳐지는 지점에 위치하여 경관이 아름다워 2008년 명승 42호로 지정되었다. 탄금정 인근에 고대 토성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충혼탑과 팔천고혼위령탑 등의 현충시설이 있다. (안내문, 충주시청)

<출처>

  1. 안내문, 충주시청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