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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박물관] 사벌국과 신라

사벌국(沙伐國)은 초기 역사시대 경북 상주지역에 있었던 작은 소국이다.  『삼국사기』 에 따르면 신라 첨해이사금 대(249년)에 토벌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법흥왕 때 상주를 설치하고 군주를 파견하면서 신라에 속하게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상주에는 병성동, 지천동, 함창읍 신흥리, 사벌면 화달리 등 여러곳에 고분군이 있는데 그 중 4세기 대 조성된 고분도 확인되고 있어 신라가 진출하기 이전 지방세력이 존재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출토유물로는 각종 토기류, 말갖춤 등이 있는데 지역적인 특색을 보이다 점차 신라의 영향을 받은 형태로 바뀐다.

사벌국의 성립과 강성
원삼국시대 상주지역에는 사벌국이 자리잡고 있었다고 하나 자세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사벌국 고성이 병풍산 아래에 있다”는 기록이나 삼국사기 첨해이사금 3년(249)조에 신라가 사벌국을 정복했다는 기록 등을 통해 단편적으로나마 사벌국의 존재를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원삼국시대 유적에 대한 고고학적인 조사 역시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여서 원삼국시대의 상주 문화 내지는 사벌국의 실체에 접근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다만 사벌면 금흔리 일대에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는 토광묘유적과 그 인근에 위치하고 있는 이부곡토성을 통해 어느 정도 접근해 볼 수 있다. 이부곡토성은 하천변의 나지막한 구릉지를 이용하여 축조한 포곡식 산성인데, 출토 유몰로 볼 때 1차 축성의 하한 연대는 적어도 5세기 이전으로 추정된다. 또한 병성동, 지천동, 함창읍 신흥리, 사벌면 화달리 등의 지역에는 대형분이 포함된 광범위한 고분군이 형성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상주지역에도 강력한 정치 세력이 형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신흥리유적과 성동리유적에서는 4세기 대의 무덤이 조사된 바 있는데, 이들 유구는 신라가 상주지역으로 진출하기 이전에 조영된 것으로 보여 앞으로의 추가 조사에 따라 사벌국의 실제가 확인될 것으로 기대된다. (안내문, 상주박물관,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마형대구, 성동리고분군.청리고분군, 삼국시대

 

OLYMPUS DIGITAL CAMERA옹, 바리, 양범리 유적, 초기철기시대

OLYMPUS DIGITAL CAMERA잛은목항아리, 성동리고분군, 삼국시대

OLYMPUS DIGITAL CAMERA손잡이잔, 성동리고분군.청리고분군, 삼국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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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 성동리고분군.상주출토, 삼국시대

사벌국과 고분
사벌국과 관련된 상주지역의 유적은 공성면에서 청리면을 연결하는 병성천을 따라 양안에 분포하는 고분군과 상주분지를 중심으로 동쪽의 능선상에 형성된 고분군, 그리고 함창분지의 이안천을 끼고 형성된 고분군, 낙동강 양안의 고분군, 금강 수계의 모서.화동고분군 등이 있다. 고분은 대체로 수계를 가까이 하면서 넓은 들이 펼쳐진 구릉이나 산의 사면에 위치하고 있다. 상주지역에서 발굴조사를 통해 그 성격의 일단이 밝혀진 고분군은 상주분지의 입구에 해당되는 청리고분군과 상주분지의 성동리고분군, 병성동.헌신동고분군, 신상리고분군, 유곡리고분군 및 함창분지의 신흥리고분군, 가장리고분군 등이 있는데, 이들 고분군은 구조와 출토유물에 있어서 각 지역별로 독특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안내문, 상주박물관,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상주 병성동 14호 돌덧널무덤

병성동.헌신동 일대의 중부내륙고속도로 건설로 인해 구제 발굴 조사 시에 확인된 6세기 경의 삼국시대 고분으로 지하에 깊은 움을 파고 할석 등으로 직사각형의 덧널을 짠 형태의 돌덧널무덤이다. 이 고분에서는 짧은목항아리, 굽다리접시, 금귀걸이 등 총 25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고분의 특징은 일반적인 돌덧널무덤이 한 사람의 시신을 묻는 것과는 달리 한쪽 단벽을 제거하고 달아내어 덧널을 연장한 후 2차로 시신을 묻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고분의 형태는 우리나라에서 경북 북부지방에서만 현재까지 확인되어 경북 북부 지방의 고분 성격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안내문, 상주박물관,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세잎무늬 고리칼, 환두대도, 상주지역, 삼국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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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상주출토), 화살촉(신흥리고분군), 투겁창(신흥리고분군), 삼국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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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구.목가리개.팔가리개, 신흥리고분군, 삼국시대

OLYMPUS DIGITAL CAMERA발걸이, 신흥리고분군, 삼국시대

OLYMPUS DIGITAL CAMERA발걸이.병성.헌신동고분군, 편자, 성동리고분군, 삼국시대

OLYMPUS DIGITAL CAMERA말안장장식, 신흥리고분군, 삼국시대

OLYMPUS DIGITAL CAMERA재갈, 신흥리고분군, 삼국시대

OLYMPUS DIGITAL CAMERA말띠드리개, 신흥리고분군, 삼국시대

사벌국의 말갖춤과 무기
말갖춤은 말을 효과적으로 다루기 위한 것으로 말에 올라타기 위한 발걸이나 말 등에 얹는 안장, 말을 제어하는 재갈 등이 있다. 초기에는 실용적인 말갖춤이 주류를 이루다가 점차 금은으로 화려하게 치장된 말갖춤이 등장하게 되어었다. 상주지역의 고분에서는 다량의 말갖춤 유물이 출토되어 삼국시대 당시의 말갖춤 문화의 수용과정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또한 무덤에서는 말갖춤과 함께 화살촉, 큰칼, 쇠창, 도끼 등 당시의 무기들도 함께 출토되는데 이는 신분에 따라 그 부장량에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이 말갖춤과 무기를 통하여 당시의 전쟁 방식이나 무기를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안내문, 상주박물관,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금동관, 전 상주출토, 삼국시대, 복제품

신라 금동관의 전형적인 형태는 경주의 적석목곽분에서 출토되는 금관인데 대륜 위에 3개의 출자형 세움장식이 세워지고 그 양쪽에 녹각형 장식이 1쌍씩 세워진 형태입니다. 상주 출토로 전하여지는 이 금동관은 녹각형 장식이 없고 대신 출자형 세움장식 5개가 세워져 있습니다. 6세기대이 유물로 추정되는데, 신라 금동관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는 유물입니다. (안내문, 상주박물관,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허리띠고리, 청리 출토, 삼국시대

OLYMPUS DIGITAL CAMERA굽다리 긴목항아리(오대동고분군), 삼국시대

OLYMPUS DIGITAL CAMERA긴목항아리(신흥리고분군), 뚜껑굽다리접시(병성.헌신동고분군), 삼국시대

OLYMPUS DIGITAL CAMERA그릇받침, 긴목항아리.그릇받침, 병성.헌신동고분군, 삼국시대

OLYMPUS DIGITAL CAMERA굽다리접시(성동리고분군), 뚜껑손잡이굽다리그릇(병성동고분군), 새모양손잡이잔(청리고분군), 삼국시대

OLYMPUS DIGITAL CAMERA오리모양 토기, 청리 출토, 삼국시대

신라 세력의 확장과 상주
경주에서 발흥한 신라는 서서히 낙동강 서안의 가야를 정벌하는 한편 주변 지역으로 확장하기 시작했다. AD 400년 고구려의 남정 이후 고구려에 정치적인 수모를 당했던 신라는 눌지왕 대부터 고구려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발전을 모색하기 시작했으며 433년 고구려의 남진 정책에 대항하여 나제 동맹을 결성하면서 고구려와는 적대적인 관계로 급변하였다. 고구려의 남하에 대비하여 신라는 소백산맥의 계립령로와 죽령로 곳곳에 삼년산성, 굴산성 등 산성을 쌓았다. 그리고 이찬 실죽으로 하여금 신라 서북 방면의 방어를 담당케 하였다. 6세기 중반 이후에는 지금의 상주정을 두어 서북 지방 경영의 거점으로 삼아 소백산맥에서 한강유역으로 이어지는 교통로를 통제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이 상주는 신라가 고구려이 남하를 효과적으로 막고 한강유역으로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였다. 진흥왕 18년(557년) 남쪽의 가야를 공략하기 위해 상주정이 감문주(지금의 김천 개령)로 잠시 이동한 경우를 제외하면 상주는 줄곧 신라 북방 개척의 중심지 역할을 해 왔다. 고고학적인 조사 결과로도 대략 5세기 이후가 되면 토기와 장신구 등의 유물에서 신라적인 요소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이와 같은 일면을 뒷받침해 주는 것으로 보인다. (안내문, 상주박물관, 2019년)

<출처>

  1. 안내문, 상주박물관, 2019년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0년

 

[상주박물관] 선사시대의 상주

상주는 경북 서북부에 위치하며 서북쪽으로 소백산맥이 둘러싸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낙동강이 남북으로 흐르며 주변에 넓은 분지가 형성되어 있다. 영남과 중부지방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로 경상감영이 설치되는 등 지역의 중심이 되었던 고장이다. 반면에 해안에서 먼 낙동강 중류에 위치하고 있어 선사시대 유적지는 많지 않은 편이다. 청동기 시대 이후 정착생활을 하면 농경에 적합한 환경과 주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었던 점에서 점차 지역의 중심지로 자리잡았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경북 상주시 사벌면에 있는 상주박물관. 조선시대 경상감영이 설치되었던 상주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는 시립박물관이다.

상주, 천혜의 자연환경을 품다
상주는 경상북도 북서부에 위치하며 북쪽으로는 문경과 예천, 서북쪽으로는 소백산맥을 넘어 충북 괴산, 남쪽으로는 김천, 동쪽으로는 예천과 맞닿아 있다. 북서쪽으로는 백두대간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고, 속리산에서 시작된 물줄기는 금강.남한강.낙동강의 삼파수로 나뉘어 흐른다. 서쪽은 높은 산지가 연속되고 동쪽은 낙동강에 의해 형성된 분지와 저지가 발달하여 서고동저를 이룬다. 상주는 동쪽에는 낙동강이 만든 평야지대가 펼쳐져 있고, 북쪽과 서쪽으로는 소백산맥이 능선으로 통하는 주요 교통로가 연결된 수륙교통의 결절지이다. 낙동강의 지류가 모여 큰 강을 형성하면서 조성된 넓은 충적평야는 일찍부터 농경이 발달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또한 소백산맥의 주요 교통로인 조령과 계립령을 통하여 들어오는 북방문물은 상주를 통하여 수계를 타고 영남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바탕으로 선사시대부터 활발히 싹튼 문화는 시대를 흐르며 번창하여 조선시대에 이르러 꽃을 피웠다. (안내문, 상주박물관,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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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지도 중 상주, 조선시대 18세기 중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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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지도 중 함창, 조선시대 18세기 중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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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지도 중 문경, 조선시대 18세기 중엽

18세기 중엽(1746 ~ 1760년)에 제작된 영남지도(상주, 함창, 문경)이다. 크기는 78×98 cm로 세 지도 모두 동일하다. 조선후기 국가의 지역 파악이 도별 단위에서 군현단위까지 확대되면서 비변사와 홍문관 주도하에 각 고을의 지도를 책으로 엮은 다양한 지도책이 제작되었다. 채색필사본으로 1리 방안이 표기된 대축적지도이며, 규장각에 소장된 영남지도 <비변사인방안지도>와 동일본으로 추정된다. 총6책 77장으로 구성된 것 중에 상주박물관에 총34점이 소장되어 있다. 현재, 당대 채색필사한 지도가 거의 없는 실정일 뿐만 아니라 당대 상주 지역의 역사, 지명, 미술, 지리 등의 다양한 측면에서 포괄적으로 연구할 수 있어 귀중한 문화재적 가치를 지닌다. (안내문, 상주박물관,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찌르개, 찍개, 복합석기, 낙동면 신상리 출토, 구석기시대

OLYMPUS DIGITAL CAMERA긁개, 낙동면 신상리 유적 출토, 격지, 청리 A-나구역 유적 출토, 구석기시대

OLYMPUS DIGITAL CAMERA망치돌, 몸돌, 낙동면 신상리 출토, 구석기시대

구석기시대의 상주
낙동면의 신상리유적은 경북지역 최초로 발굴 조사된 구석기시대 유적이다. 이곳은 지형적으로 장천이 북류하여 낙동강과 합류하는 지점으로 해발 120 m 정도의 나지막한 독립성 구릉이 말단부에 위치하며, 인근의 장천이 범람하면서 형성되어싿. 모두 2 ~ 6개 토양 쐐기층이 형성되어 있으며, 문화층은 3개 층이 확인되었다. 석기는 3개의 문화층에서 골고루 출토되었는데 대부분 석영으로 만든 것으로, 긁개.찍개.몸돌.망칫돌 등 다양하다. 이들 서기에는 사용흔적이 대부분 잘 남아 있다. 석기 제작의 기술적인 측면과 지층의 상태로 볼 때, 이 유적은 전기 구석기시대까지 연대가 올라갈 사능성이 있으며, 영남지방에서 확인된 구석기 유적 중 가장 이른 시기의 것으로 평가된다. 이밖에도 청리유적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후기 구석기시대의 석기가 일부 채집되는 점에서 상주지역에서는 구석기문화의 흐름이 계속 이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안내문, 상주박물관,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돌도끼, 상주 출토, 신석기시대

OLYMPUS DIGITAL CAMERA빗살무늬토기 깊은 바리, 두귀달린 단지, 김천 송죽리 출토, 신석기시대, 복제품

신석기시대의 상주
신석기시대는 빙하기 이후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면서 새로이 토기와 간석기를 만들고 정착 생활을 시작한 시기로 중국, 일본 등 주변지역과 필요한 정보를 교류하였다. 고기잡이와 사냥, 채집 활동과 함께 부분적인 농사를 지었던 신석기인들은 실로 짠 옷감이나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으며, 꾸미개로 몸을 치장하였다. 상주지역에서 신석기시대 유적은 아직까지 확인된 바가 없지만, 인근의 김천지역에 신석기시대 유저과 유물이 발굴 조사된 바 있으며, 상주교육청 소장 유물 중에 신석기시대 유물이 지표 채집된 것이 있어 상주지역에도 신석기시대 유적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 (안내문, 상주박물관,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돌화살촉, 검자루 끝장식, 청리고분군, 청동기시대

OLYMPUS DIGITAL CAMERA돌자귀(상주출토), 돌자귀.돌도끼.(청리고분군), 반달돌칼, 청동기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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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돌칼, 청리고분군, 청동기시대

OLYMPUS DIGITAL CAMERA두귀달린바리(청리고분군), 붉은간토기항아리(상주), 청동기시대

OLYMPUS DIGITAL CAMERA편평통형동기, 요녕식동검, 전 상주 낙동면 출토, 청동기시대, 복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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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령식 동검, 전 상주 낙동면 출토, 청동기시대

청동기시대의 상주
상주지역에 남아 있는 대표적인 청동기시대 유적은 고인돌, 선돌 그리고 주거 유적이다. 고인돌은 낙동강이 내려다 보이는 구릉 사면이나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소하천변에 위치한 평지와 야산이 연결되는 구릉 사면에 위치하며 대체로 5 ~ 10기가 하나의 군집을 이루고 있다. 현재 철리면, 협신동, 부월동, 풍덕동 등 약 10개소 이상의 유적이 알려져 있다. 이들 가운데 청리 유적에서 15기의 고인돌에 대한 정식 발굴조사가 이루어졌으며, 그 결과 고인돌에서 석검, 석촉 등 석기류와 붉은간토기, 완 등 토기류가 다수 출토되었다. 선돌을 상주시 부원동, 풍덕동, 현신동 등에 다수 분포하는데, 고인돌군과 유사한 분포를 보이고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주거 유적으로는 청리유적과 최근에 조사된 복룡동유적에서 주거지와 수혈 유구 등이 확인되었다. 특히 복룡동유적에서 조사된 송국리형 주거지는 청동기문화의 전파와 관련하여 아주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이 밖에 상주시 남적동, 낙동면 구잠리, 사벌면 금흔리 등 여러 곳의 무문토기와 석기 산포지가 알려져 있다. 또한 상주지역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해지는 요녕식 동검은 소백산맥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에 이른 시기부터 청동기문화가 전래되었음을 짐작케 해준다. (안내문, 상주박물관,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탄화미, 손잡이 항아리, 원형점토대토기, 주머니후, 바리, 병성동고분군, 초기철기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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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모, 전 상주출토, 청동기시대,  한국식동검, 전 상주출토, 초기 철기시대, 복제품

초기 철기시대의 상주
상주지역에서는 초기철기시대에 해당하는 철기가 발견된 바는 없으나, 병성동 유적에서 일반적으로 철기의 도입과 궤를 같이 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원형점토대토기가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이를 전후한 시기에 철기가 전래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한편 낙동리에서 출토된 것으로 아려진 청동 일괄 유물 중 거울, 창 등은 중국 및 일본과 교류한 흔적으로 추정되고 있어, 기원전 2세기 경에는 상주지역이 비교적 먼 지역과도 직간접적인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안내문, 상주박물관, 2019년)

<출처>

  1. 안내문, 상주박물관, 2019년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문화재청, 202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