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Archives: January 15, 2020

춘천 구곡폭포, 강촌에서 걷기 좋은 명소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 강촌리에 있는 구곡폭포이다. 봉화산 (486 m) 계곡에 있는 높이 50 m의 폭포로 규모는 작고 수량은 많지 않지만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아홉구비를 돌아 큰바위를 만나 떨어져 다시 아홉구비를 돌아 흐른다 하여 구곡폭포라 부른다. 경춘선 강촌역에 형성된 유원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이다. 매표소에서 폭포까지 가는 700 m의 등산로는 숲이 울창하고 맑은 계곡이 흐르고 있어 산책하기 좋은 길이다.

춘천 구곡폭포 20190703-03구곡폭포 입구 매표소. 이곳에서 폭포까지는 계곡을 따라 평탄한 산책로가 이어져 걷기에 좋다.

춘천 구곡폭포 20190703-02매표소 옆을 흐르는 개울물.

춘천 구곡폭포 20190703-04계곡에 있는 작은 카페

춘천 구곡폭포 20190703-05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산책로.

춘천 구곡폭포 20190703-06산책로 옆을 흐는 개울.

춘천 구곡폭포 20190703-07산책로는 경사가 없고 숲이 울창하다.

춘천 구곡폭포 20190703-08산책로 중간쯤에 볼 수 있는 이끼낀 작은 바위

춘천 구곡폭포 20190703-10평탄한 산책로가 끝나는 지점.

춘천 구곡폭포 20190703-11폭포 아래에 있는 캠핑장

춘천 구곡폭포 20190703-12폭포로 올라가는 길.

춘천 구곡폭포 20190703-13폭포에서 흘러 내려오는 개울. 폭포가 가까워졌음을 알 수 있다.

춘천 구곡폭포 20190703-14폭포로 올라가는 계단길.

춘천 구곡폭포 20190703-15계단길에서 내려다 보이는 개울

춘천 구곡폭포 20190703-16폭포 앞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

춘천 구곡폭포 20190703-01
구곡폭포. 높이 50 m의 큰 바위로 물이 흘러내리는데 수량이 많지는 않은 편이다.

춘천 구곡폭포 20190703-17폭포아래 개울.

구곡폭포의 유래
춘천시 남산면 강촌리의 봉화산 기슭에 있는 높이 50 m의 폭포다. 아홉 굽이를 돌아 들어가 있는 폭포라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일명 구구리 폭포라고도 한다. 시원하게 떨어지는 물줄기와 주변의 하늘 벽 바위 등의 기암괴석이 장관이다. 한여름에는 차가운 물보라와 숲 그늘이 시원함을 느끼게 하고 겨울에는 거대한 빙벽을 만들어 빙벽등반가들이 즐겨 찾는다. 일명 ‘깔덕고개’라 불리우는 우측의 재를 넘으면 자연부락인 문배마을이 나타는데 이곳에서는 산채비빔받과 토속주를 즐길 수 있다. (안내문, 춘천시청, 2019년)

<출처>

  1. 안내문, 춘천시청, 2019년
  2. 한국지명유래집 중부편, 국토지리정보원, 2020년
  3. 대한민국구석구설, 한국관광공사, 2020년


 

양평 용문산 용문사, 은행나무로 유명한 사찰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신점리 용문산(1,157 m) 자락에 있는 고찰인 용문사(龍門寺)이다. 통일신라 신덕왕 때(913년) 대경대사가 처음 창건하였다고 한다. 고려말 정지국사가 이곳에 대장견을 봉안하였으며 조선 태조 때 조안이 크게 중창하였다. 이후 수양대군이 모후 소헌왕후 심씨를 위해 보전을 짓고 원찰로 삼았다. 이후 1907년 항일의병이 근거지로 삼으면서 일본군에 의해 사찰 전체가 불타버렸으며 이후 여러차례 중건을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각으로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지장전, 관음전, 삼성각, 요사채 등을 두고 있는데 대부분 최근에 중건된 것이다. 사찰 뒷편 언덕에는 고려말 활동했던 정지국사 승탑(보물 531호) 비가 있으며 관음전에는 고려말.조선초기 불상양식을 잘 보여주는 금동관음보살좌상(보물 1790호)를 모시고 있다. 한국 불교에서 역사적,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찰은 아니지만 가장 크고 오래돤 은행나무가 있는 서울에서 가까운 경치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양평 용문사 20191109-41양평 용문산 용문사. 통일신라 때 창건된 사찰로 조선시대에는 세종비 소현왕후를 모시는 원찰로 여겨졌다. 용문산 중턱 계곡에 축대를 쌓아 터를 잡고 그 전각들을 세웠는데 공간은 비교적 넓은편이다.

양평 용문사 20190603-02용문사 산문.

양평 용문사 20190603-03산문에서 계곡을 따라 20여분을 걸으면 용문사 사천왕문이 보인다.

양평 용문사 20190603-04용문사 앞을 흐르는 계곡

양평 용문사 20191109-49용문사 사천왕문

양평 용문사 20190603-10천왕문 부근에서 본 모습. 수령 1,100년이 넘은 은행나무과 용문산 정상을 배경으로 우뚝 솟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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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용문사 은행나무(천연기념물 30호)

양평 용문사 20191109-46은행나무를 지나 계단을 올라서면 주불전인 대웅전이 보인다. 동쪽으로는 지장전을 비롯한 불전들이, 서쪽으로는 승려들이 기거하는 요사채가 배치되어 있다.

양평 용문사 20190603-13대웅전 내부

양평 용문사 20190603-12용문사 마당에서 보이는 은행나무.

양평 용문사 20191109-45대웅전 옆에는 죽인이의 명복을 비는 공간인 지장전이 있다. 신도들을 위한 공간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수도권 사찰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양평 용문사 20190603-16지장전 내부.

양평 용문사 20190603-15경내 마당 동쪽편에 위치한 관음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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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전에 모셔진 금동관음보살좌상(보물 1790호). 고려말.조선초 불상양식이 잘 반영되어 있는 불상이다.

양평 용문사 금동관음보살좌상
관음전에 모셔진 이 금동관음보살좌상은 전형적인 고려 후기의 조각 양식을 계승한, 15세기 초의 우수한 작품으로 전체적으로 당당하면서도 화려한 귀족적인 분위기를 띠고 있다. 관음보살은 자비로써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로, 손에 보명이나 연꽃을 들며 머리에는 아미타불이 새겨진 보관을 쓰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다. 높이가 73 cm인 이 보살상은 자비로운 표정을 짓고 있다. 높게 묶은 머리에는 보관을 쓰고 있으며 계율을 지키고 열심히 수행한 사람이 태어날 수 있는 극락 세계를 의미하는 중품중생인의 손 모양을 하고 있고 참선할 때의 자세인 길상좌로 앉아 있다. 왼쪽 가슴께에는 아래 내의를 고정시킨 삼각형 고리가, 배 위쪽에는 치마를 묶은 매듭이 있다. 이처럼 신체에 자연스럽게 걸쳐진 옷은 발목 부분에서 부드럽게 주름지며 양 무릎을 덮었고 그 위에 영락이 장식되었다. 이 보살 좌상은 전형적인 고려 후기의 보살상의 양식적인 특징인 높게 묶은 머리, 가슴 및 무릎의 구슬을 꿰어 만든 영락 장식, 왼쪽 가슴의 삼각형 고리를 갖추고 있어 장육사 건칠보살좌상(1395년, 보물 933호)이나 파례사 목조 관음보살 좌상(1447년 이전, 보물 992호) 등과 더불어 고려 말과 조선 초기의 조각 양식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안내문, 양평 용문사, 2019년)

양평 용문사 20191109-47경내 동쪽편에 있는 요사채.

양평 용문사 20190603-20뒷편으로 승려들이 생활하는 공간이 있다.

양평 용문사 20191109-42요사채 뒷편에 있는 산령각.

양평 용문사 20191109-43산령각 아래 칠성각.

양평 용문사 20191109-44그 아래에는 미소전이라 불리는 불전이 있다.

양평 용문사 20190603-07관음전 뒷편 정지국사탑이 있는 곳을 오르는 길에서 내려다 보이는 용문사 경내. 깊은 산중에 있지만 공간은 넓은 편이다.

양평 용문사 20190603-08용문사 정지국사비(보물 531호). 고려말 활동한 정지국사(1324 ~ 1395년)의 사리를 모신 승탑이다. 조선초에 조성한 것으로 목조건축물 형태를 하고 있는 통일신라 이래 전통 승탑 양식을 따르고 있다.

양평 용문사 20190603-09용문사 정지국사 비(보물 531호). 비는 부도에 딸린 탑비로 조선 태조 7년(1398)에 건립되었으며 조성당시의 찬조자 명단과 정지국사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양평 용문사 20190603-05최근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요사채 성격의 건물들

양평 용문사 20190603-06승려들의 사리를 모신 승탑들.

용문사
신라 신덕왕 2년(913) 대경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며 일설에는 경순왕이 친히 행차하여 창사하였다고 한다. 고려 우왕 4년(1378) 지천대사가 개풍 경천사의 대장경을 옮겨 봉안하였고 조선 태조 4년(1395) 조안화상이 중창하였다. 세종 29년(1447) 수양대군이 모후 소현왕후 심씨를 위하여 보전을 다시 지었고 세조 3년(1457) 왕명으로 중수하였다. 성종 11년(1459) 서현스님이 중수한 뒤 고종 30년(1893) 봉성대사가 중창하였으나 순종 원년(1907) 의병의 근거지로 사용되자 일본군들이 불태웠다. 1909년 취운스님이 큰방을 중건한 뒤 1938년 대욱스님이 대웅전, 어실각, 노전, 칠성각, 기념각, 요사 등을 중건하였으며, 1982년 선결스님이 주지로 취임하여 대웅전, 삼성각, 범족각, 지장전, 관음전, 요사, 일주문 등을 새로 중건하고 불사리탑, 미륵불을 조성하였다. 경내에는 권근이 지은 보물 531호 정지국사 부도 및 비와 천연기념물 제30호 은행나무가 있다. (안내문, 양평 용문사, 2019년)

<출처>

  1. 안내문, 양평 용문사, 201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0년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천연기념물 30호),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나무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신점리 용문사 경내에 있는 은행나무(천연기념물 30호)이다. 수령 1,100살 정도이며 높이 42 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나무이다. 통일신라 경순와의 아들이 망국의 한을 품고 심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유서깊은 나무이다. 조선초 세종 때 정3품에 해당하는 벼슬을 받았다고 하며 당시에도 전국적으로 크고 오래된 나무였던 것으로 보인다. 수령 천년이 넘은 고목이지만 지금도 열매가 열리고 있으며 생생하고 살아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양평 용문사 정지국사탑20191109_094926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수령 1,100년 된 고목으로 다른 고목과는 달리 지금도 살아있는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20190603-02울창하고 생동감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초여름의 은행나무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20191109-11가을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20190603-03은행나무 둘레는 뿌리 근처가 약 15.2 m 정도이며, 지금도 상한 부분 없이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20190603-05용문사 경내에서 본 은행나무.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20191109-12
가을에 본 모습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20190603-04양평 용문사. 사찰 전각들은 의병전쟁 중 불타버린 것을 중건한 것들이다.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천연기념물 30호
동양 최대의 용문사 은행나무에 얽힌 이야기는 많다.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세자 마의태자가 나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다가 심었다고도 하고,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았더니 이 지팡이가 부리를 내려 성장한 것이라고도 한다. 이 나무는 오랜 세월 전란 속에서도 불타지 않고 살아남은 나무라 하여 천왕목이라고도 불렀으며, 조선 세종 떄에는 정3품 이상에 해당하는 벼슬인 당상직첩을 하사받기도 하였다. 정미년 의병이 일어났을 때 일본군이 절을 불태웠으나 이 나무만은 화를 면했으며, 옛날에 어떤 사람이 이 나무를 자르려고 톱을 대는 순간 피가 쏟아지고 하늘에서는 천둥이 쳤다고 한다. 또 나라에 변고가 있을 떄에는 이 나무가 소리를 내어 그것을 알렸으며, 조선 고종이 세상을 떠났을 때 큰 가지 하나가 부러져 떨어졌다고 한다. (안내문, 양평 용문사, 2019년)

<출처>

  1. 안내문, 양평 용문사, 201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