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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 조영동 고분군(사적 516호), 삼국시대 초기 신라 지방세력 무덤

경북 경산사 조영동 일대에 있는 고분군(사적 516호)이다. 이곳은 삼국시대 초기 지방세력은 근거지였던 임당동 일대에 분포한 고분군 중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 삼한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다양한 형태의 무덤이 있었는데 발굴.조사 후 4 ~ 6세기에 조성된 8기의 대형 봉토분이 남아 있다. 발굴.조사 결과 대형 봉토분에서는 금, 은, 금동 등으로 만든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어 삼국시대 초기 지방세력의 무덤으로 추정되고 있다. 서쪽 임당동고분군과의 사이에 있는 저습지에서도 다양한 생활유적과 유물이 출토되어 삼국시대 초기 지방세력의 생활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유적지로 평가 받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산 조영동고분군(사적 516호). 임당동고분군과 함께 삼국시대 초기 지방세력을 무덤을 추정되는 8기이 대형봉토분이 금호강이 내려다보이는 구릉에 자리잡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임당동고분군이 있는 서쪽방향. 금호강이 대구를 향해 흐르고 있으며 주택지가 형성된 저습지에서 생활유적과 유물들이 확인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고분군 북쪽으로는 금호강이 영천에서 대구로 동.서방향으로 흐르고 있으며 멀리 팔공산 일대 산악지대가 장벽을 형성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동쪽으로는 영천방향으로 금호강을 따라 넓은 평야가 이어지고 있다. 오른쪽 아파트 부근에 부적리고분군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서쪽편 아래에 있는 2기의 대형봉토분. 하나의 봉토분에 여러개의 무덤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동쪽편 끝에 있는 대형봉토분. 여러개의 무덤이 연결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고분군 가운데 있는 3기의 대형 무덤.

OLYMPUS DIGITAL CAMERA남쪽 주택가 옆에 있는 3기의 봉토분.

OLYMPUS DIGITAL CAMERA아래쪽에 있는 봉분들.

경산 조영동 고분군, 사적 516호
이 고분군은 임당동 구릉에 분포하는 고분들 가운데 중앙부인 ‘성말괭이’라고 부르는 곳에 위치한 봉토분이다. 이 무덤들 가운데 일부가 1987년 임당동 주택지 개발지역에 포함됨으로써 영남대학교 박물관의 조산단에 의하여 2년에 걸친 학술적인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발굴조사에서 독(항아리)무덤(옹관묘), 널무덤(목관묘), 덧널무덤(목곽묘), 돌널무덤(석관묘) 등 우리나라 원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시대를 달리하는 많은 무덤들이 이곳을 중심으로 축조되었음이 밝혀졌다. 특히 큰 무덤들에서 금동관을 비롯하여 금, 은, 금동 등으로 만든 각종 유물 등이 많이 출토되었다. 따라서 이 무덤들은 삼국시대 초기 고대 국가 중 하나인 압독국에 속한 지배계급의 무덤이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이 고분군은 앞으로 우리나라의 고대국가 형성 및 발달에 관한 새로운 연구의 근거를 제공해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주변에서는 목책을 이용한 성곽, 각종 주거지, 대형 건물지, 저습지 등의 생활 유적지 등이 조사됨으로써 고대인들의 생활전반에 관한 연구의 토대를 제공해 주고 있다. (안내문, 경산시청, 2020년)

<출처>

  1. 안내문, 경산시청, 2020년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0년
  3.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경산 임당토성과 저습지 유적, 신라 지방세력 압독국 생활유적

경북 경산시 임당동에 있는 임당토성이다. 삼국시대 신라 지방세력 무덤인 임당동고분군(사적 516호) 뒷편에 있는 토성이다. 해발 60 m 정도의 낮은 구릉 정상부를 둘러싸고 있는데 둘레는 950 m 정도이다. 흙을 다져서 쌓는 평편다짐기법으로 토축을 쌓았는데 현재 남아 있는 성벽의 높이는 1.5 m 정도이다. 토성은 4세기에 처음 쌓은 후 6세기까지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임당동고분군이나 『삼국사기』에 기록된 압독국 관련 내용 등으로 볼 때 지방세력의 근거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토성의 입지조건이나 쌓은 방식 등은 삼국초기에 쌓은 토성인 대구 달성이나 경주 반월성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어 같은 문화권에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토성 북쪽과 금호강 사이 임당저습지에 대한 발굴.조사가 있었는데 다양한 생활유적 등이 확인되었다. 이곳에서는 토기, 목기, 골각기, 철제유물 등이 다량으로 출토되어 당시 신라 지방세력의 생활모습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지로 평가받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산 임당토성. 영천과 대구사이를 흐르는 금호강 일대 넓은 들판이 내려다 보이는 낮은 구릉에 쌓은 토성으로 대구 달성, 경주 반월성과 비슷한 입지조건 등을 갖추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토성 앞에는 10여기의 무덤이 있는 임당동고분군(사적 516호)가 자리잡고 이다. 이곳에서 금동관, 환두대도 등이 출토되어 신라초기 압독국이라 불렸던 지방세력의 근거지임을 알 수 이다. 남쪽으로 경산시가지가 펼쳐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흙을 인공적으로 다져서 토축을 쌓은 토성으로 현재 높이 1.5 m 정도의 성벽이 남아 있고, 바깥쪽은 자연지형을 활용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토성 안쪽 구릉 정상부에는 평탄한 공간이 확보되어 있어 지배세력 생활공간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OLYMPUS DIGITAL CAMERA토성 서쪽편 성벽. 그 위로 목책을 올려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토성은 북쪽으로 금호강과 1 km 정도 떨어져 있으며 그 주위에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다. 토성 바깥쪽에는 주민들 살았던 주거지가 형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토성 북쪽 저습지에 대한 발굴.조사 결과 다양한 생활유물들이 출토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임당동 유적 발굴.조사 현황도. 토성 북쪽 낮은 저습지 일대에서 생활유물들이 발굴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토성 동쪽편 성벽.

OLYMPUS DIGITAL CAMERA토성 동남쪽 성벽 안 생활공간.

OLYMPUS DIGITAL CAMERA임당토성 남쪽 성벽.

임당토성
임당토성은 임당동 고분군 북쪽에 있는 방어시설로 1995년에 발굴되었다. 토성은 임당 유적 중 가장 높은 곳(해발 59 ~ 65 m)에 있으며, 주변에 있는 임당 뜰과 금호강을 한눈에 볼 수 있어 외부의 침입을 막기에 유리한 입지를 갖추었다. 토성의 동쪽과 서쪽 부분 250 m 정도가 발굴되었다. 토성의 성벽은 순수하게 흙으로 만들어졌는데, 지름 30 ~ 50 cm의 기둥구멍에 나무 기둥인 영정주를 1 m 간격으로 두 줄을 세운 후, 양 기둥 사이 4.5 m 정도의 공간을 평편다짐기법으로 쌓아 올렸다. 그 다음 성벽 바깥 부분도 흙으로 덧붙여 쌓아 완성하였다. 남아 있는 토성의 높이는 1.5 m인데, 이러한 시설을 바탕으로 본래 토성의 전체적인 규모는 동서 길이 120 m, 남북길이 350 m, 둘레 950 m 정도의 타원형이었으며, 토성의 벽은 아래쪽 너비 8.5 ~ 9.5 m, 위쪽 너비 4.5 m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발굴 조사에서 출토된 토기를 분석한 결과, 토성은 기원후 4세기 전반에 처음으로 만들어져 6세기까지 사용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 기간은 임당 유적에서 신라에 편입된 과거 압독국 유력자들의 무덤인 고총을 만든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토성은 신라에 통합되었으나 세력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던 이 지역 유력자들의 생활공간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토성의 근처에 있는 임당 저습지 유적에서는 토성과 같은 시기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일상생활 유물이 다수 출토되었으며, 이로써 당시의 마을을 확인할 수 있어 토성과 주변 마을의 모습과 생활상도 함께 엿볼 수 있다. (안내문, 경산시청, 2020년)

<출처>

  1. 안내문, 경산시청, 2020년
  2. 경산 임당 저습지유적 발굴조사, 영남문화재연구원, 1997년

경산 임당동 고분군(사적 516호), 삼국시대 신라 지방세력 무덤

경북 경산시 임당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사적 516호)이다. 구릉위에 쌓은 신라 지방세력의 토성 바깥쪽에 양지바른 곳에 10여 기의 고분이 확인되었다. 1980년대 이후 발굴.조사가 진행되었는데 바위를 깎아 만든 수혈식석실, 암반 위에 돌을 쌓의 만든 횡구식석살, 독으로 만든 옹관 등 다양한 형태를 하고 있다. 금동관을 비롯하여 장신구, 마구, 토기류 등 2,000여 점의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동물뼈, 씨앗을 비롯하여 순장자를 포함한 인골 등도 확인되었다.

임당동고분군에서 발굴된 유물 등으로 볼 때 4 ~ 6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며, 유물의 형태 등으로 볼 때 신라의 양식을 따르고 있는 등 초기 신라 지방세력의 무덤으로 보인다. 임당동 고분이 있는 경산 지역은 『삼국사기』 에 기록된 압독국(押督國)이 있었던 곳으로 출토유물 등으로 이를 확인해 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상 임당동 고분군(사적 516호). 삼국시대 초기 지방세력인 압독국의 근거지였던 토성 바깥쪽에 10여기의 무덤이 자리잡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봉분 앞에서 내려다 모습. 영천에서 대구를 지나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금호강에서 남쪽으로 1 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위는 넓은 평야지대를 이루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고분군 뒷편으로는 지방세력 근거지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둘레 950 m 정도의 임당토성이 있다. 경주 반월성이나 대구 달성과 비슷한 입지와 형태를 하고 있어 같은 문화권임을 알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토성 앞에서 본 임당동고분군. 앞쪽으로 백지산(486 m)을 비롯한 산악지역과의 사이에 경산시가지가 형성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임당동 고분군 중 앞쪽에 위치한 1호분. 5기 정도의 무덤이 같이 있는 연접분으로 발굴.조사 결과 금동관모, 은제허리띠, 고리자루칼 등 출토되어 압독국 최고지배자의 무덤으로 추정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1호분 발굴.조사 당시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발굴.조사 당시 무덤의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모습.

경산 임당 1호분은 5기 정도의 무덤이 연이어 축조된 연접분으로, 고분의 절반 정도를 발굴한 결과 으뜸덧널(주곽)과 딸린 덧널(부관)로 구성된 주부곽식의 암광목곽묘 2기(1A호/1B호)가 조사되었다. 1A호분은 긴지름 17.8 m, 짧은지름 15.3 m의 둘레돌(호석)이 확인되었고, 높이가 3 m인 타원형의 봉분을 가졌다. 내부는 길이 440 cm, 너비 160 cm, 길이 207 cm인 직사각형 으뜸덧널과 길이 365 cm, 너비 428 cm, 깊이 77 ~ 122 cm인 사각에 가까운 딸린덧널로 이루어져 있다. 무덤에서는 금동관모, 은제허리띠, 고리자루칼 등 최고 지배자를 상징하는 금공품과 토기, 말갖춤 등 430여 점의 유물 뿐만 아니라 상어뼈, 새뼈, 조개껍질, 살구씨 등 다양한 동식물 자료도 풍부하게 출토되었다. 또 주인공 뼈와 순장자로 보이는 인골 2개체도 확인되었다. 고분은 토기류 등의 유물로 보아 5세기 말 또는 6세기 초에 축조된 것으로 판단되며, 고분의 주인공은 옛 압독국의 지배세력인 간층(干層)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큰 것으로 보인다. (안내문, 경산시청, 2020년)

OLYMPUS DIGITAL CAMERA주택가 옆에 있는 2호분. 1982년 도굴되어 순금제 귀걸이.고리자루큰칼 등 중요 유물들이 해외로 유출되기 직전 적발되어 임당동고분군의 중요성이 확인된 무덤이다. 이후 임당동 고분군에 대한 발굴.조사가 진행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1호분 뒷편에 있는 무덤들. 앞쪽에 3호와 4호분이, 뒷편에 5~7호분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1호분 뒷편 3호분. 여러개의 무덤이 같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4호분.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 있는 5, 6, 7호분. 2호분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으며 독 2개를 포함하여 모두 15개이 무덤이 확인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뒷편 7호분에는 발굴.조사 결과를 볼 수 있도록 전시장을 만들어 놓았다.

경산 임당동고분군 41-202001057호분 내부. 이곳에 발견된 독무덤을 볼 수 있다. 봉분 주위에 둘레돌이 돌려져 있는 모습도 같이 보여준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산 임당동에서 출토된 쇠도끼.

경산 임당동 고분군, 경북 경산시 임당동
이곳 임당동 구릉 위에 분포되어 있는 옛 무덤들은 오랫동안 개간 및 도굴 등으로 인해 훼손.멸실되어 왔으나, 1982년 영남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조사를 통해 무덤의 성격이 밝혀지게 되었다. 무덤은 암반을 수직으로 깍아내고 만든 수혈식석실과 암반 위에 냇돌을 쌓아 만든 횡구식석실, 독으로 만든 옹관 등 종류가 다양한 형태였고 이곳에서 금동관을 비롯하여 금 귀걸이, 반지 등 장신구류, 마구류, 토기류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무덤속에는 순장된 여러 사람들의 인골이 함께 묻혀 있어 이들 무덤의 주인공이 지배계층에 속한 사람이었을 것으로 보여진다. 발굴결과를 종합해 볼 때 이 무덤들은 4 ~ 6 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옛 문헌에 전하는 압독국 지배자들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아울러 출토된 유물이 모두 신라 문화권의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질적인 면에서는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보아 이 압독국은 신라의 지배를 받던 지방국가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안내문, 경산시청, 2020년)

<출처>

  1. 안내문, 경산시청, 202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0년

서울 호암산(해발 393 m), 역사탐방을 할 수 있는 관악산 둘레길

서울 금천구 시흥동에 있는 호암산(해발 393 m)이다. 관안산 서쪽 끝 봉우리로 금천의 주산이라 하여 금주산.금지산이라고도 불렀으며 산세가 호랑이를 닮았다하여 호암산이라 한다. 동쪽으로는 관악산과 삼성산이 가로막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안양천이 남.북으로 흐로고 있다. 통일신라 때 안양천 주변 교통로를 장악하기 위해 쌓은 호암산성(사적 343호)이 남쪽 정상부에 있으며 호압사, 불영암이 자리잡고 있다.

호암산은 비교적 높지 않아 등산하기에 수월하며 능선을 따라서 상성산, 관악산을 오를 수 있으며 중턱에는 관악산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다. 호암터널 입구 인공폭포에서 출발하여 호압사로 연결되는 둘레길이나 호암산성으로 오르는 등산로를 이용하여 정상을 오를 수 있다. 서울 금천구 일대에서 역사탐방을 겸해서 2~3시간 정도의 시간을 내면 쉽게 오를 수 있는 도심 역사공원 같은 곳이다.

서울 호암산 01-20191203호암산 정상부 능선길에서 보이는 호암산성(사적 343호). 신라가 한강유역을 장악한 이후 안양천을 따라 안양에서 한강으로 연결되는 교통로와 멀리 대부도와 인천 사이의 서해바다를 장악하기 위해 쌓았다.

서울 호암산 06-20191203호암산을 오를 수 있는 등산로 출발잠. 서울 금천구 시흥동 벽산아파트 뒷편 호암1터널 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서울 호암산 05-20191203호암산폭포는 산사태로 노출된 자연암반에 지하수를 활용하여 인공적으로 조성한 폭포이다.

서울 호암산 08-20191203호암산성으로 오르는 등산로. “한우물전망길”로 부르고 있으며 호암1터널 입구에서 호암산성까지 연결되는 오르막길이다.

서울 호암산 07-20191203등산로 중간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 멀리 광명시 기아자동차 소하리공장 주변이 한눈에 들어온다.

서울 호암산 09-20191203인공폭포 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등산로 출발점.

서울 호암산 10-20191203산성을 향해 이어지는 등산로

서울 호암산 11-20191203등산로 중간쯤 전망좋은 곳에 위치한 칼바위 전망대. 칼바위는 바위가 칼처러 뾰족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쟁기바위, 보습바위라고도 하며 마치 칼을 옆으로 뉘어 놓은 듯한 모양을 하고 있다.

서울 호암산 12-20191203칼바위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 금천구, 구로구 일대와 안양천을 따라 이어지는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서울 호암산 13-20191203호함산성 성벽 아래로 이어지는 등산로.

서울 호암산 14-20191203호암산성 서문터. 성문과 주변 성벽들은 지금 남아 있지 않다.

서울 호암산 16-20191203호암산성 성벽 바깥으로 이어지는 등산로.

서울 호암산 17-20191203호암산성 내 큰 우물인 한우물과 불영사가 보인다.

한우물전망길
한우물 전망길은 호암1터널 부근 서울둘레길이 교차한 곳에서 시작하여 칼바위전망대를 거쳐 석구상까지 금천구 시가지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0.8 km의 산책로이다. 통일신라시대 축조된 사적 제343호인 한우물 및 호암산성 등 문화유적지를 답사할 수 있으며 날씨 좋은날 멀리 북한산까지 내다볼 수 있는 탁 트인 경관이 일품이다. 주변엔 잣나무 치유의 숲과 호암늘솔길이 있어 숲내음 가득한 휴식을 즐길 수 있으며 등산객들이 즐겨 찾는 우리구의 명소로서 손색이 없다. (안내문, 금천구청, 2019년)

서울 호암산 21-20191203호암산 남쪽 정상부 호암산성 내에 있는 작은 암자인 불영암.

서울 호암산 22-20191203불영암 마당에서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

서울 호암산 19-20191203전망대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 멀리 한강이 보이고 앞쪽으로 구로구, 영등포구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서울 호암산 20-20191203불영암 마당에 있는 한무물. 통일신라 때 이곳에 산성을 쌓으면서 식수를 확보하기 위해 만든 큰 우물이다. 조선시대에 다시 확충하여 사용하였다.

서울 호암산 24-20191203불영암 주변으로 비교적 넓은 공간이 형성되어 있고 안양천을 따라 형성된 교통로가 한눈에 들어온다.

서울 호암산 23-20191203마당 한쪽편에 있는 헬기착륙장

서울 호암산 31-20191203호암산성 북문 안쪽에 있는 석구상 주변

서울 호암산 32-20191203석구상은 호암산의 호랑이 기운을 제압하기 위해 조성한 것으로 개의 형상을 닮았다.

서울 호암산 30-20191203석구상으로 남쪽으로 이어지는 능선길. 이곳에 약 300 m  정도 석축이 남아 있는 성벽을 볼 수 있다.

서울 호암산 26-20191203호안산성 남쪽 정상부 부근.

서울 호암산 27-20191203정상부 부근 장대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이는 지점.

서울 호암산 28-20191203이곳에서는 동쪽 관악산과 삼성산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상당히 넓고 깊은 관악산 산세를 볼 수 있다.

서울 호암산 29-20191203안쪽으로 들어가면 산성내에 있던 건물터와 작은 우물이 있다.

서울 호암산 33-20191203호암산성 북문 앞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등산로. 호암산 정상을 향해 걷기 좋은 등산로가 이어진다.

서울 호암산 34-20191203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등산로.

서울 호암산 35-20191203능선에서 볼 수 있는 봉우리.

서울 호암산 02-20191203호암산 정상을 향해 이어지는 등산로. 부근에 호압사로 내려다는 샛길이 있다.

호암산능선길
조선시대 축조한 사찰인 호압사에서 출발하여 호암산 정상방향으로 넘어 가다보면 어느새 숨이 차오른다하여 깔딱고개라고도 불리는 고개를 지난다. 금천구, 관악구, 안양시 경계인 호암산 정상 부근에 다다라 석수역 방향으로 능선을 따라 내려가면 완만한 산책로와 큰 바위가 어우러져 있어 산행하는 즐거움이 있다. 덤으로 한눈에 보이는 금천구 시가지 광경이 일품이며, 인근 사적 343호인 한우물 및 호암산성 등 문화유적지도 볼 수 있다. (안내문, 금천구청, 2019년)

서울 호암산 03-20191203호암산 정상 아래에 있는 호압사. 조선초 태종때 호암산의 호랑이 기운을 제압하기 위해 세운 사찰이라고 한다.

서울 호암산 04-20191203호압사에서 인공폭포로 이어지는 둘레길. 관악산 둘레 중 하나로 총 1 km 정도이며 “호암늘솔길”이라 부른다. 주변은 “잣나무 치유의 숲”이라 부르는 산림욕장이 있다.  5 ha의 넓은 지역에 잣나무가 빽빽이 자생하며 숲을 이루고 있다.

호암늘솔길은 ‘언제나 솔바람이 부는 길’이라는 뜻으로 시민공모 결과 선정되었다. 호압사 입구에서 잣나무 산림욕장을 지나 호암산 폭포까지 총 1 km이고, 보행 약자를 포함하여 누구나 쉽게 산을 이용할 수 있도록 조성되었다. (안내문, 금천구청, 2019년)

<출처>

  1. 안내문, 금천구청, 2019년
  2. 위키백과, 202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