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Archives: February 3, 2020

청도 신지리마을 명중고택

경북 청도군 금천면 신지리마을에 있는 명중고택이다. 운강고택 주인의 손자가 분가하면서 1881년에 지은 집이다. 건물은 ‘-’자형 안채와 중사랑채가 차례로 있으며 안마당에는 곳간채와 방앗간채가 마주보고 있어 전체적으로 ‘ㄹ’자형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앞쪽에 있던 사랑채와 대문채는 도로를 개설하면서 없어졌다.

청도 명중고택 05-20200106청도 신지리마을 명중고택. 구한말에 지어진 양반가옥으로 사랑채, 중사랑채, 안채가 일렬로 배치되어있는 큰 규모의 저택이었다.

청도 명중고택 02-20200106안채와 사랑채 사이에 있었던 중사랑채.

청도 명중고택 01-20200106중사랑채 안쪽으로 보이는 안채.

청도 명중고택 03-20200106옆에서 본 안채와 마당 안족에 있는 곳간채

청도 명중고택 04-20200106옆쪽 도로에서 보이는 명중고택. 비교적 큰 규모의 저택이다.

명중고택, 경북 청도군 금천면 신지리
이 고택은 운강 박시묵의 손자인 박래현이 고종 18년(1881)에 별서로 건립한 것이다. 그후 의 차자 순희공이 입주하여 명중고택이라 하였다. 가옥의 구성은 전체적으로 트인 ‘ㅁ’자형의 평면을 이루고 있고, 대문을 들어서면 사랑마당과 지금은 없어진 사랑채가 있었다. 안마당의 좌.우측에는 방앗간채와 곡간채가 있으며, 정침의 대청 전체에 문을 달아 폐쇄적인 양반댁 부녀자의 생활양식을 보여주기도 한다. 대문채는 6.25 전쟁 때 손실되었고 사랑채도 1990년 도로확장 공사로 철거되었다. 조선 말기 경북 남부지방 상류주택의 공간구성을 잘 보여주는 건물이다. (안내문, 청도군청, 2020년)

<출처>

  1. 안내문, 청도군청, 202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청도 신지리마을 운남고택

경북 청도군 금천민 신지리 마을에 있는 운남고택이다. 대저택인 운강고택 옆에 있는 집으로 19세기에 분가하면서 지었다. 건물은 -’자형 안채와 사랑채가 앞.뒤로 배치되어 있으며 안채 마당에 헛간채를 두고 있다. 사랑채 앞 마당에는 운강고택처럼 작은 사랑을 두었는데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옆집 명중고택과 함께 후손들이 일가를 이루면서 모여살고 있다.

청도 운남고택 01-20200106운남고택 사랑채.

청도 운남고택 06-20200106사랑채 앞 마당에는 작은 사랑채가 있었다고 하는데 일제강점기에 화재로 손실되었다고 한다.

청도 운남고택 03-20200106대문채. 헛간과 대문이 있는 단순한 구조이다.

청도 운남고택 08-20200106안쪽에서 본 대문채. 작은 문간방과 헛간이 있다.

청도 운남고택 04-20200106안채는 ‘-’자형 건물을 하고 있다.

청도 운남고택 05-20200106안마당. 사랑채와 사이에 헛간채를 두고 있다.

청도 운남고택 07-20200106뒷마당

운남고택, 경북 청도군 금천면 신지리
이 고택은 조선말기 운강 박시묵의 셋째 아들인 박재중이 분가하면서 건립한 것으로 운강고택 서편에 인접해 있다. 가옥의 구성은 ‘-’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사랑채 대청의 대들보와 보고임이 특이하고 대청 끝의 보고임에는 태극문양을 그려 넣어 멋을 더하였다. 안마당 동쪽에 위치한 중 사랑채는 1935년 경 화재로 인하여 손실되었다. 운강고택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놓여서 운강고택의 주변 경관을 고풍스럽게 유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안내문, 청도군청, 2020년)

<출처>

  1. 안내문, 청도군청, 202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청도 신지리마을 운강고택 및 만화정, 조선후기에 지은 대저택

경북 청도군 금천면 신지리 마을에 있는 고택인 운강고택과 만화정이다. 조선 선조 때 박하담이 서당을 짓고 후학을 양성했던 곳에 후손 박시묵이 분가하면서 살림집으로 지은 집이다. 집은 생활공간인 안채와 사랑채를 분리해 놓고 있다. 사랑채를 중심으로 양쪽에 건물을 ‘ㅁ’자로 배치하고 있다.사랑채 앞 마당에는 중사랑채를 두고 있는데 후학을 양성했던 서당 역할을 기대했던 것으로 보인다. 마을 동창천 옆에 있는 선암서원과 비슷한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구한말 대지주 계층이 살았던 대저택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데 마당을 상당히 넓게 쓰고 있으며 큰 규모의 곳간채를 두고 있다. 만화정은 이 집을 지은 박시묵이 동강천 옆 경치좋은 곳에 정자로 지은 건물이다.

청도 운강고택과 만화정 05-20200106청도 운강고택. 사랑채를 중심으로 양쪽에 ‘ㅁ’자로 건물들을 배치하고 있는 상당히 큰 규모의 대저택이다.

청도 운강고택과 만화정 04-20200106사랑채 마당을 출입하는 대문채.

청도 운강고택과 만화정 03-20200106운강고택 사랑채. 안마당과 사랑채 마당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데 바깥주인이 일상적으로 거처하는 공간이다.

청도 운강고택과 만화정 01-20200106사랑채 마당 가운데 있는 중사랑채. 앞면 4칸 규모로 가운데 넓은 대청마루를, 양쪽에 온돌방을 두고 있는 강당형태의 건물이다. 박하담이 서당을 지어 후학을 양성했던 전통을 계승하고자 하는 의도가 엿보인다.

청도 운강고택과 만화정 02-20200106사랑채 마당에 있는 곳간채

청도 운강고택과 만화정 12-20100705안채는 앞면 7칸 규모의 ‘-’자형 건물로 ‘ㅁ’자형을 하고 있는 경북 북부지방의 전통한옥과는 달리 마당을 넓게 쓰고 개방적인 면모를 보인다.

청도 운강고택과 만화정 13-20100705안마당에 있는 행랑채

청도 운강고택과 만화정 14-20100705넓은 안마당과 행각처럼 길게 지어진 곳간채. 상당한 수준의 경제력을 갖춘 대지주계층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청도 운강고택과 만화정 06-20200106저택 뒷편에 있는 사당.

청도 운강고택과 만화정 11-20100705집주인이 동창천 옆 경치좋은 곳에 지은 정자 형태의 건물인 만화정.

청도 운강고택 및 만화정, 경북 청도군 금천면 신지리
운강고택은 소요당 박하담(1479 ~ 1560년)이 벼슬을 사양하고 은거하며 사당을 지어 후학을 양성했던 옛터에 조선 순조 9년(1809)에 현재 소유자의 6대조인 박정주가 분가하면서 살림집으로 건립한 가옥이다. 이후 순조 24년(1824)에 운강 박시묵, 1905년에 박순병이 크게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집은 안채와 사랑채가 별도로 ‘ㅁ’자형으로 되어 있는 대 주택이다. 짜임새 있는 구조와 필요에 따라 세분된 각 건물의 평면배치와 합리적인 공간구성 등이 한층 더 조화를 이루고 있는 상류주택이다. 만화정은 운강고택의 부속 정자로 동창천변에 위치하고 있다. (안내문, 청도군청, 2020년)

<출처>

  1. 안내문, 청도군청, 202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청도 선암서원, 구한말 서원 훼철 이후 서당으로 다시 지어진 곳

경북 청도군 금천면 신지리 마을에 있는 선암서원이다. 삼족당 김대유와 소요당 박하담을 모시기 위한 서원으로 조선 선조 때(1567년)에 향현사라는 사당으로 처음 세워졌다 현재의 위치로 옮긴후 선암서원이라 하였다. 구한말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졌다가 박하담의 후손들이 서당으로 다시 지었다.

일반적인 서원과는 달리 사당이 없고 강당이 있는 선암서당과 살림집인 안채로 구성되어 있다. 선암서당은 앞면 5칸.옆면 2칸 규모이며, 문집 목판 등을 보관했던 장판각이 있다. 운문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낙동강 지류인 동창천 옆 경치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청도 선암서원 01-20200106청도 선암서원. 구한말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된 후 서당으로 다시 지어진 곳이다.

청도 선암서원 03-20200106서당으로 다시 지어진 강학공간. 큰 규모의 강당 건물과 사랑채, 목판을 보관했던 장판각이 있다.

청도 선암서원 04-20200106‘선암서당’ 현판이 걸려 있는 강당. 앞면 3칸의 강당 형태 건물로 가운데 넓은 대청마루를 두고 양쪽에 온돌방을 두고 있다.

청도 선암서원 05-20200106일상적인 생활공간인 사랑채. 행각 형태의 건물로 왼쪽편은 사랑방이, 오른쪽은 창고 등이 있다.

청도 선암서원 09-20200106살림집이 있는 안마당. 사랑채 한쪽편에 있는 창고가 보인다.

청도 선암서원 02-20200106선암서원 앞을 흐르는 낙동강 지류인 동창천.

청도 선암서원 07-20200106담장 바깥쪽 동천을 따라 이어지는 숲길.

청도 선암서원 06-20200106서당이 있는 마당을 출입하는 작은 출입문.

청도 선암서원 08-20200106출입문 앞에서 내려다 보이는 동창천. 경치가 빼어난 곳에 서원이 자리잡고 있다.

선암서원, 경북 청도군 금천면 신지리
이 건물은 삼족당 김대유, 소요당 박하담의 위패를 모시는 곳으로 원래 매전면 동산동 운수정에서 향현사로 건립되었으나 조선 선조 10년(1577)에 군수 황응규가 지금의 위치로 옮기고 선암서원으로 개칭하였다. 고종 15년(1878)에 다시 중건되고 선암서당으로 고쳐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건물은 강당인 소요당, 안채, 사랑채인 득월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선암서원 건축이 특징은 주택에서 서당으로 쓰일 건물이 추가된 유형이라고 할 수 있으며, 서원이나 서당보다는 지방 향리초호의 저택으로 더 가치가 있다. 선암서당의 뒤편 장판각에는 보물로 지정된 배자예부운략판목과 지방문화재 해동숙소학판목, 14의사목록판목 등이 보관되어 있어 한국학의 보고라 불렸다. 현재 이 유물들은 청도박물관과 안동 한국국학진흥원에 전시.보관 중이다. (안내문, 청도군청, 2020년)

<출처>

  1. 안내문, 청도군청, 202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청도 박곡리 석조여래좌상(보물 203호), 통일신라 전성기 불상

경북 청도군 금천면 박곡리에 있는 석조여래좌상(보물 203호)이다. 운문사와 함께 서쪽 대비갑사로 창건된 사찰인 대비사로 들어가는 계곡 입구 마을에 모셔져 있다. 화재 등으로 광배와 대좌, 불상 등이 큰 손상을 입어 얼굴은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다. 신체는 가슴은 당당하지만 허리는 잘록하고 표현되어 있다. 옷은 몸에 밀착되어 있으며 옷주름도 간략하게 표현되어 있다. 전체적인 양감이 풍부하면서 세려되게 표현되어 있으며 세부적인 조각수법은 뛰어난 편이다. 석굴암 본존불의 양식을 따르고 있는 통일신라 전성기 불상으로 추정된다.

청도 박곡리석조석가여래좌상 보물203호05-20200106
청도 박곡리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203호). 석굴암 본존불 양식을 따르고 있는 통일신라 전성기 불상이다. 대좌는 팔각형을 기본으로 상.중.하대로 구성되어 있으며, 연꽃무늬를 새겨놓고 있다.

청도 박곡리석조석가여래좌상 보물203호01-20200106얼굴 형체를 알 수 없으며 훼손된 부분이 많지만 전체적인 신체비례나 세부적인 표현이 뛰어난 작품이다.

청도 박곡리석조석가여래좌상 보물203호03-20200106불상은 대비사 계곡 입구 마을에 건물을 세워 그 안에 모셔져 있다. 그 앞에는 삼층석탑이 놓여 있어 작은 사찰같은 분위기를 주고 있다.

청도 박곡리석조석가여래좌상 보물203호04-20200106마당 한쪽편에 있는 석재. 화재로 크게 훼손된 광배처럼 보인다.

청도 박곡동 석조석가여래좌상, 보물 203호, 경북 청도군 금천면 박곡리
이 불상은 높이 276 cm의 석조 석가여래좌상으로 대비사 골짜기 입구의 보호각 속에 모셔져 있다. 몇차례의 화재와 인위적인 파손을 당해 원래의 모습을 잃었으나 지금의 모습으로도 예술적 안목과 세련된 솜씨를 느낄 수있다. 얼굴의 구체적인 모습은 알 수 없으나 이 불상은 풍만하면서도 박력있는 모습, 힘찬 어깨와 당당한 가슴, 몸에 밀착된 법의 등에서 강건하면서도 긴장감 넘치는 통일신라시대의 조각수법을 볼 수 있다. 대좌는 상.중.하대로 구분된 8각 연꽃모양으로 당대의 불상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 불상은 석굴암 불상과 그 양식이 비슷한 통일신라 전성기의 불상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안내문, 청도군청, 2020년)

<출처>

  1. 안내문, 청도군청, 202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