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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안 시안성벽(西安城墙), 중국을 대표하는 도시 성곽

중국 시안(西安)에 있는 시안 성벽(西安 城墻)이다. 한(漢)을 비롯하여 가장 많은 중국 역대 왕조가 수도로 삼았던 시안 도심을 둘러싸고 있는 도성(都城)이다. 수(隋) 때 현재의 위치에 도성을 처음 쌓았으며 당나말 수도를 낙양으로 옮기면서 장안성은 대부분 파괴되었다. 현재의 성곽은 명(明) 때 주원장 둘째 아들이 진왕으로 봉해지면서 다시 쌓았는 당나라 황성 터의 성을 연장하여 다시 쌓았으며 그 후 여러차례 수리과정을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61년 중국 최초로 중점보호문물 및 AAAA급 관광경관 지역으로 지정되었으며 만리장성과 함께 중국 역사와 문화를 잘 보여주는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전체 둘레 13.74 km로 남북으로 2.6 km, 동서로 3.5 km 정도의 직사각형을 하고 있다. 성벽은 높이이 12 m 정도이며, 상부 너비 12 ~ 14 m이다. 성벽 바깥에는 땅을 파서 만든 호성하(护城河,해자), 성벽 위에는 갑루, 전루, 성루 등의 누각과 여인장, 타구 등의 방어시설을 두고 있다. 동.서.남.북 4개의 성문인 장락문, 안정문, 영녕문, 안원문을 비롯하여 18곳의 성문을 두고 있다. 현재의 성벽은 구운벽돌로 성벽을 쌓은 것으로 명.청대 중국 도성(都城)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시안 성벽, 명.청대 중국 도성의 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영녕문(永宁门)은 장안성 남문으로 명나라 초 장안성을 다시 쌓을 때 “영녕문”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옹성 형태의 도성 정문으로 갑루(闸楼), 전루(箭楼), 정루(正楼)를 갖추고 있으며 앞쪽에는 해자를 건너는 다리인 조교(弔橋)가 있었다. 성문 양쪽에는 성문을 호위하기 위한 돌출된 형태의 치성(雉城)과 적루(敌楼)를 두고 있다. 도성 정문 형태가 거의 온전히 남아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한양 도성 숭례문(국보 1호)과 같은 성격의 성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장안성 영녕문.

영녕문 정루(正楼)는 성문 위에 세워진 벽돌로 쌓은 3층 누각형태의 건물이다. 천안문처럼 방어적 성격보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큰 문루이다. 명나라 초(1378년) 장안성을 다시 세울 때 지어졌으며 청대(1526년) 이후 여러차례 수리가 있었다. 숭례문 문루처럼 중국 성문을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영녕문 정루

영녕문 앞은 옹성이 있으며 방어시설인 전루(箭楼)가 옹성 위에 세워져 있다. 옹성은 명나라 말(1636년) 이자성의 난 때 방어를 보완하기 위해 세워졌다. 전루(箭楼)는 성문을 방어하기 위한 벽돌로 쌓은 큰 누각 건물이다. 건물은 4층으로 앞쪽 각층에는 12개의 창을 두고 있다. 옆쪽에는 1층을 제외하고 각층에 창을 두어 총 64개의 창이 있다. 내부는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다. 양쪽에도 건물이 있었는데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OLYMPUS DIGITAL CAMERA영녕문 옹성과 전루.

OLYMPUS DIGITAL CAMERA바깥쪽에서 본 전루와 갑루

갑루(闸楼)는 옹성 바깥쪽 해자를 건너는 현수교 다리인 조교(弔橋)를 통제하기 위한 출입문 위에 세워진 누각이다. 작은 규모의 2층 건물로 바깥쪽을 향해 적을 공격하기 위한 창문을 두고 있다. 전루와 갑루 사이에도 옹성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장안성 갑루와 옹성. 그 앞에 해자를 건너는 다리가 있고 도성 출입문을 상징하는 패방이 세워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영녕문 옆을 지나는 도로.

장안성 바깥에는 성을 둘러싸는 방어시설인 해자가 있다. 호성하(护城河)라 불리는 해자는 둘레 14.6 km 정도이다. 수당 시기에 처음 건설되었는데 방어시설이면서 전시에 대비하여 물을 저장하며 홍수 때 물을 임시로 배출하는 배수시설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 수.당시기에는 그 규모가 크지 않았으나 명.청대에 여러차례에 걸쳐 땅을 깊게 파고 폭을 넓게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해자는 남문 주위 주작문에서 건국문까지 약 2.84 km 정도이며 깊이는 4.5 ~ 6 m 이다. 지금은  유람선이 운항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영녕문에서 동쪽 건국문으로 이어지는 해자.

OLYMPUS DIGITAL CAMERA영녕문에서 서쪽 주작문으로 이어지는 해자

시안성벽(西安城墙).비림역사문화경구(碑林历史文化景区) 호성하(护城河) 소개
수당 시기에 건설된 서안해자는 성을 에둘러 총 길이는 14.6 km이고, 성안으로 들어가는 첫번째 방어체제라고 할수 있다. 고대의 “외호”는 구체적으로 아래와 같은 2가지 작용이 있다. 하나는 해자밖에서 적을 막아 서안성 내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 것이고, 다른하나는 물저장, 그리고 황수가 배수에 사용되어 도시 기후를 개선하는 것이다. 역사상 서안 해자를 처음으로 판 것은 당나라말기였고 명나라초기 배수로를 넓혀서 확대하는데 서안해자의 중요한 두시기라고 할수있다. 그후 청나라 시기에 이르러 명나라에서 넓힌 재자를 여러차례에 걸쳐서 더욱 깊게파고, 넓혔으며, 준설하여 근대시기의 서안해자를 형성하였다. 2013년부터 정식 시범구역으로 된 해자의 길이는 2.84 km, 물깊이는 4.5 ~ 6 m이며, 주작문부터 건국문으로 향하는 수역을 주선으로 해자연안의 경치에 대하 종합적인 개조를 진행하였습니다. 수로청소, 오수의 흐름을 막고, 물속의 생물을 다스리며, 물양을 증가하는 등 방식으로 해자수역에 대해 기본적인 처리를 진행하였습니다. (안내문, 시안시, 2019년)

시안 성벽 바깥쪽으로는 해자를 중심으로 시민들이 산책할 수 있는 성벽을 따라 정원이 조성되어 있으며, 성벽을 성문, 적루, 성벽, 여인장, 타구 등 다양한 방어시설을 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영녕문 서쪽 성벽.

OLYMPUS DIGITAL CAMERA성벽 바깥에 조성된 공원

적루(敌楼)는 성벽 위에 세워진 누각을 말한다. 시안 성벽 위에는 적을 감시하기 좋은 곳이나 성문 주위 등에 다양한 형태의 적루가 세워져 있다. 성문 양쪽에 성문을 호위하기 위해 세워진 치성 위에 세워져 있는 적루가 대표적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영녕문 동쪽에 세워진 치성과 적루

OLYMPUS DIGITAL CAMERA성벽 위에서 본 모습. 벽돌로 지은 2층 누각 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영녕문 서쪽에 위치한 치성과 적루

OLYMPUS DIGITAL CAMERA장안성 북서쪽 모서리에 위치한 각루

OLYMPUS DIGITAL CAMERA적루가 없는 치성

장안성 남문 안쪽 문묘였던 비림박물관 앞 성벽 위에 있는 괴성루(魁星楼, Kuixing Tower)이다. 괴성루(魁星楼)는 장안성 남문 동쪽 성벽 위에 위치하고 있는데 문학의 신으로 추앙받는 괴성(魁星)을 상징한다. 한자 “魁”는 “乚”이 “斗”를 들어올리는 형태를 하고 있는데 이는 과거를 통과할 후보를 선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명나라 때 (1618년) 서안을 다스렸던 지방관이 이 지방 출신이 과거를 통과하지 못한것을 애석하게 생각해 문묘(文廟) 앞 성벽위에 세웠다고 한다. 근대에 파괴되었던 것을 최근 복원하였다.

OLYMPUS DIGITAL CAMERA비림박물관 앞  괴성루

괴성루는 2층 목조건축물로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로 크지 않은 편으로 명.청대 이전 누각 건물 형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성벽 위에서 본 괴성루.

성벽은 높이 12 m이며, 바닥너비 15 ~ 18 m이다. 성벽 내부에는 황토흙을 다져 쌓았으며 바깥쪽과 상부에는 구운 벽돌로 쌓았다. 성벽 상부는 너비 12 ~ 14 m로 마차 2대가 자유롭게 지나갈 수 있는 규모이다. 바깥쪽을 향해서는 방어시설인 여장과 타구가 설치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성벽

OLYMPUS DIGITAL CAMERA벽돌로 쌓은 성벽

OLYMPUS DIGITAL CAMERA성벽을 오르는 계단.

OLYMPUS DIGITAL CAMERA마차 2대가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넓은 성벽 상부

OLYMPUS DIGITAL CAMERA성벽에서 내려 보이는 비림박물관 부근 도심

OLYMPUS DIGITAL CAMERA성벽 안쪽 도로

장안성 북쪽 성벽은 당나라 황성 성벽 자리에 다시 명나라 때 다시 쌓은 것이다. 황성에 있던 대안궁을 비롯하여 궁궐 등은 남아 있지 않고 시안 기차역을 비롯하여 도시의 중심기능을 하고 있는 지역이다. 북쪽 성벽은 동서로 약 4.13 km이며 북문인 안원문(安远门)문을 중심으로 상무문 등 6개의 성문이 있다.

해방문(解放门)은 원래 중정문(中正门)이었는데 1934년에 이름이 바뀌었다. 1952년 시안역 광장이 확장되면서 철거되었다가 최근에 현재의 모습으로 성벽이 연결되었다. 시안 기차역은 해방문(解放门) 바깥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 뒷편에 당 대명궁이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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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YMPUS DIGITAL CAMERA해방문 서쪽에 위치한 적루.

OLYMPUS DIGITAL CAMERA해방문 동쪽 성벽(안쪽).

해방문 동쪽으로는 상검문(尚俭门), 상근문(尚勤门)이 있는데 최근에 성벽을 연결하면서 도로가 지나가던 곳에 성문이 생기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해방문 동쪽 상검문.

OLYMPUS DIGITAL CAMERA해방문 동쪽 성벽(바깥쪽)

OLYMPUS DIGITAL CAMERA상검문 동쪽 상근문(尚勤门)

OLYMPUS DIGITAL CAMERA장안성 북쪽 성벽

서안 성벽
서안 성벽은 중국에 남아있는 성벽 중에서 가장 크고 완벽한 고대 성벽건축물로, 고도 장안의 모든 역사를 한데 간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문화재입니다. 또한 그 독특한 매력으로 인하이 새인들에게 웅장하고 장대한 모습을 뽐내며 전 세계에 고대 중국인들의 깊은 지혜를 함축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서안 성벽은 기원후 582 년 (수나라 개황 2 년)에 건설되었고 오대, 송, 금, 원나라를 거쳐 명나라 홍무부년에 당나라 시대 당장안성 황성을 기초로 확대 및 복원하였습니다. 서한 성벽 둘레 길이는 13.74 km, 상부 너비 12 ~ 14 m, 하부 너비 15 ~ 18 m 입니다. 성벽에는 성보호 하천(包括护城河,해자), 조교(弔橋), 갑루(闸楼), 전루(箭楼), 성루(城樓), 각루(角樓), 적루(敌楼), 여인장(女儿墙), 타구(垛口) 등의 고대 군사 시설이 갖추이지 있습니다. 현재 중국 최초 중점보호문물 및 AAAA 급 관광경관 지역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오늘날에 있어 천년의 역사를 가진 고 성벽 도시 및 시안 시민들의 무한한 협력과 공동노력으로 양호하게 보호되고 있으며, 오랜 고도의 신비로운 자태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벽에는 세월의 변천과 역사의 흔적, 문화 정수의 축적, 풍부한 인류문화 체험을 제공하며 현대인의 생활에 풍요로움을 선사해 주고있습니다. 성벽, 환성 공원 숲, 성보호 하천, 성 보호 하천 외부 도로, 순성항 등이 “벽림하로항”(성벽, 숲, 하천, 도로, 나루터)가 5위일체가 되어 유기적으로 결합해 있어, 서안의 역사 및 문화적 특색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예로부터 국제화된 대도시로서의 중요한 지표이자 정신적인 정원과도 같은 공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세계고적 보호 계승에 있어서 모범 사례가 되고 있습니다. (안내문, 시안시, 2019년)

<출처>

  1. 안내문, 시안시, 2019년
  2. 위키백과, 2020년
  3. 百度百科, 2020년

시안 비림(碑林), 고대 중국의 비석을 모아 전시한 곳

시안(西安) 비림(碑林)은 고대 중국의 비석을 모아 전시한 곳으로 송나라 때(1087년) 처음 조성되었다. 당나라 말 혼란기에 중요한 비석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문묘에 집중시켰으며 북송 때(1087년) 유교 주요 경전을 새긴 개성석경비(开成石经碑)을 보관하기 위한 건물을 세우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각 왕조에서는 수집된 귀한 비석들을 이곳으로 옮겼으며 청나라 때 비석들들이 늘어서 있다고 하여 비림(碑林)이라 불려지게 되었다. 비림에 있는 비석들을 시대 순서가 완전하고 각종 서법의 모범이 되었던 중요한 비석들을 두루 갖추고 있으며 동시에 고대 문헌들을 살펴볼 수 있는 도서관 성격을 갖는 곳이기도 하다.

국자감내에 당 현종이 효경에 주석을 달고 글과 글씨를 쓴 석대효경과 문종 때 유교 경전을 돌에 새긴 개성석경을 두면서 비림의 역사는 시작되었으며 북송 이후로는 공자를 모시는 문묘를 그 역할을 이어왔다. 비림의 현재 모습은 북송 때 문묘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베이징 국자감이나 취푸(曲阜) 문묘에 비해 그 위상은 낮은 것으로 보인다. 비림의 역사에 걸맞게 국자감의 벽옹(辟雍)이나 문묘의 행단을 역할을 석대효경이 있는 정자가 하고 있다. 개경석경을 비롯하여 다양한 서법을 살펴볼 수 있는 비석들이 보관했던 건물들을 중심으로 공간이 배치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시안 비림박물관 출입문.

비림은 출입문으로 목패방과 대리석으로 만든 패방을 두고 있으며, 두 패방 사이에 반지(泮池, Pan Pools)라 불리는 작은 연못을 두고 있다. 목패방은 다포계 공포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어 한옥을 연상시킨다. 반지는 반원형의 작은 연못으로 가운데 출입문으로 연결되는 다리가 있다. 황제가 학문을 논했던 태학의 벽옹 연못과 비슷한데 당나라 국자감이 있었곳임을 강조하고 있는 듯 하다.

OLYMPUS DIGITAL CAMERA비림 입구 목패방.

OLYMPUS DIGITAL CAMERA목패방을 들어서면 비림으로 반지 사이의 좁은 길이 연결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반원 형태를 하고 있는 반지(泮池, Pan Pools)

OLYMPUS DIGITAL CAMERA2번째 출입문에 해당하는 패방. 삼문 형식을 하고 있는데 가운데 출입문에 문묘(文廟)라는 글씨가 적혀 있다.

패방을 들어서면 출입문에 해당하는 극문(戟門)까지 연결된 길이 있고 극문 앞에는 비석이 있는 비정이 세워져 있다. 양쪽에는 관리들이 근무했던 사무실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원에는 다양한 수목이 심어져 있는데 베이징 국자감이 비해 간소해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패방에서 극문까지 이어지는 길.

OLYMPUS DIGITAL CAMERA비림 마당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인 극문(戟門). 원래 삼문인데 변형된 것으로 보인다.

극문을 들어서면 석대효경이 있는 비정(碑亭)까지 직선으로 길이 연결되며 양쪽에 역대 황제 등이 내린 것으로 보이는 비석이 있는 6개의 비정이 세워져 있다. 양쪽에는 이곳을 문묘였음을 보여주는 품위있는 고목들이 비석과 함께 정원을 이루고 있다. 입구에는 이곳이 박물관임을 보여주는 국보급 유물인 대하석마(大夏石馬)와 당 경운종(景雲鐘)을 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극문에서 석대효경 비정 사이 정원.

OLYMPUS DIGITAL CAMERA대하석마(大夏石馬). 대하(大夏)는 동진시대 5호16국 중 흉노족에 의해 세워진 왕조로 24년 정도 지속되었다. 단순한 형태이지만 생동감있게 조각해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당 경운종(景雲鐘). 시안 종루에 걸려있던 종으로 그 역할을 다하고 박물관으로 옮겨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중요 비석을 보관하는 비정, 극문과 석대효경 사이에는 6개의 비정이 세워져 있다. 명.청시대 건축 양식을 하고 있다. 취푸(曲阜) 문묘에는 13비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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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 내부에 있는 비석. 문묘의 권위를 높여주는 신도비 성격의 비석으로 역대 황제들이 내린 것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비정 뒷편 행각 형태의 건물. 성균관 유생들이 공부하던 동.서재와 비슷한 역할의 건물인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비림 정원

가성호조비(加聖號詔碑, Stele of an Imperial Edict)이다. 원나라 성종 때(1307년) 공자께 “대성지성문성왕(大成至聖文宣王)”란 시호를 올린 이후 이를 전국적으로 공포하는 칙령 성격의 비석으로 1313년에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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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성호조비(加聖號詔碑), 원 1313년, 조세연 서예 발문

비림 중심건물은 석대효경이 있는 “비림”이라 적힌 현판이 있는 비정이다. 국자감은 황제가 학문을 논하던 벽옹(辟雍)이, 취푸(曲阜) 문묘는 공자가 제자들을 가르치던 행단(杏壇)이 중심인 반면 이곳 비림은 황제가 직접 주석을 달고 글을 쓴 “석대효경”이 있는 비정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 그 뒷편에는 유교 13경전을 새긴 개성석경을 보관하는 건물이 있다. 사당이나 강당보다는 유교 경전이 새겨진 비석을 중시했던 비림의 성격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광장에는 원나라 성종 때(1307년) 공자께 “대성지성문성왕(大成至聖文宣王)”란 시호를 올린 이후 이를 전국적으로 공포하는 가성호조비 등 여러 비석들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비림”이라 적힌 현판이 있는 석대효경 비정. 청말 아편전쟁의 원인이 되었던 관리 임칙서가 현판 글씨를 썼다고 한다.

서안비림
서안비림은 북송 원우 2년(1087)에 건설된 것으로 지금까지 9백년 남짓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현재 한나라로부터 근대까지의 비석, 묘지를 4천여개 보존하고 있으며 중국에서 고대 비석을 가장 많이 보존하고 있으며 비석이 임목처럼 죽 늘어서서 비림이란 이름을 득한 것이다. 비림에 있는 비각은 시대의 순서가 완전하고 각종 서법이 겸비되었기에 극히 높은 서법 가치가 있다. 동시에 고대 문헌전적을 집중시켰기에 깊은 역사 문화의 내포를 갖고 있으며 서법 예술 보고, 역사 문화 전당이라 불린다. 1961년에 전국 제1기 중점 문화 보호재로 발표되었다. (안내문, 시안 비림박물관, 2019년)

제1전시실에는 개성석경(開成石經, Kaicheng Stone Classics)을 볼 수 있다. 동아시아 사회규범의 기본이 되었던 유가 경전을 돌로 새겨놓은 것이다. 당나라 문종 때(837) 전해오던 여러 유가 경전을 모아 돌에 새겨 여러 경전들의 착오를 바로잡는 표준이 되게 하였다. 청나라 강희제 때 <맹자>가 추가로 새겨재 13경이 완성되었다. 비석이 처음 새겨진 연대가 당나라 문종 때여서 그 연호(開成)를 따라 개성석경이라 부른다. 북송 때 개성석경을 보관하는 건물을 세우면서 비림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개경석경이 있는 제1전시실로 들어가는 계단. 오랜 역사를 보여주듯 계단에 많은 글자들이 새겨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개경석경을 볼 수 있는 제1전시실.

OLYMPUS DIGITAL CAMERA전시실을 연결하는 회랑

2실은 당나라의 유명한 비석들이 전시되어 있다. 당나라 때 기독교 일파가 중국에서 활동했음을 보여주는 “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秦景敎流行中國碑)”를 비롯하여 당나라를 대표하는 명필 구양순, 구양통, 저수량, 왕의지, 안진경, 이양빙, 서호 등이 글씨를 쓴 비석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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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진경교유행중국비, 당 781년, 석경정 찬 여수암 서

OLYMPUS DIGITAL CAMERA황보탄비, 당 627 ~ 649년, 우지녕 찬 구양순 서

OLYMPUS DIGITAL CAMERA동주삼장성교서비, 당 663년, 저수랑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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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씨가묘비(颜氏家庙碑, Stele of Yan’s Family Temple), 당 780년, 안진경 찬 및 서 이양빙 전액

OLYMPUS DIGITAL CAMERA전시실 마당에 전시해 놓은 비석들

3실은 역대 서체들을 살펴볼 수 있는 비석들을 모아서 전시하고 있다.  한대 비석 《희평석경》 잔석, 《조전비》 등에서는 초기 예서를 볼 수 있으며 서진 《사마방비》는 예서에서 해서에로 변화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들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비림박물관 3실

OLYMPUS DIGITAL CAMERA 사마방잔비(司馬芳殘碑, Broken Stele of Sima Fang), 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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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원신천시서비, 당 688년, 위원단 찬.서 가언숙 시 윤원개 서

OLYMPUS DIGITAL CAMERA회소초서천자문(懷素草書千字文), 명 1470년, 회소 글씨

OLYMPUS DIGITAL CAMERA단천자문(断千字文, Broken Stele of Thousand Character Classic), 당, 장욱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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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수 초서 및 두통첩(彦修草書·肚痛帖), 북송 1058년 석각, 각석 언수 장욱 서

시안 비림박물관 4번째 전시실에는 비석에 새겨진 그림인 석각도화(石刻圖畵)가 전시되어 있다. 주로 송, 명, 청 시기에 새겨진 것들로 당시 중국의 건축과 명산 등에 대해 살펴볼 수 있다. <태화산전도>, <태백산전도>, <광중팔경> 등이 있으며 청나라 때 새긴 <공자상>이 유명하다.

OLYMPUS DIGITAL CAMERA비림박물관 4실.

OLYMPUS DIGITAL CAMERA집귀거래사시비(集帰去來辞詩碑), 소식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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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상(孔子像), 청 1734년, 청 과친왕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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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전도(太白全图), 청 1700년, 가립 회

OLYMPUS DIGITAL CAMERA비림박물관 전시실과 통로. 명.청대 건물양식을 보여주고 있는 크지 않은 건물들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건물 외벽에 있는 글자를 새긴 석판들.

석각예술실(石刻藝術室) 동관에는 한나라, 당나라 시대 무덤을 장식하고 있던 석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주로 유교문화가 정착한 한대 이후의 것으로 한반도의 왕릉이나 무덤 등에서 볼 수 있는 석물들과 비슷한 형태이다. 서역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석관(石棺)을 비롯하여 무덤을 지키는 다양한 형태의 석수(石獸), 불을 밝히는 석등(石燈), 수호신 성격의 인물상 등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석각예술실 동관.

OLYMPUS DIGITAL CAMERA노군상(老君像, Potray of Laojun),

OLYMPUS DIGITAL CAMERA짐승얼굴 석관(獸面石棺), 당, 1964년 셴양시 싼위안현(三原縣) 출토

OLYMPUS DIGITAL CAMERA달리는 짐승(走獸), 동한, 셴양시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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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등(石燈), 당, 섬서성 건현(乾縣) 서호촌 석우사 출토

OLYMPUS DIGITAL CAMERA비림박물관 야외에 전시되어 있는 석조유물들

OLYMPUS DIGITAL CAMERA 비정 앞 광장과 극문에서 들어오는 길.

시안비림박물관(西安 碑林博物館)
시안 비림박물관은 900여년의 역사를 가진 시안비림(송 1087년에 처음 건설되었음)을 기반으로 공묘 고대 건축군을 이용하여 확대 건설된 테마박물관이다. 역대 비석, 묘지와 돌조각의 수집, 연구 또는 진열을 주요 역할로 한다. 현재 7개의 비석전시실, 8개의 비정(碑亭) 그리고 6개의 묘지 회랑이 있고, 한나라부터 근대까지의 다양한 비석 4,000여 개를 소장.전시하고 있다. 동쪽 돌조각관에서는 종교 돌조각인 <장안불운>을, 서쪽 돌조각예술실에서는 한나라, 당나라의 묘지 돌조각을 전시하고 있다. 이에 “동양 문화의 보고”, “서예 예술의 화랑”, 또는 “한나라, 당나라 돌조각 작품의 전당” 등으로 불리운다. (안내문, 시안 비림박물관, 2019년)

<출처>

  1. 안내문, 시안비림박물관, 2019년
  2. 위키백과, 2020년

[시안(Xi'an) 비림박물관] 전마장(拴馬桩), 말을 묶어 두는 기둥

시안 비림박물관 마당에 전시되어 있는 전마장((拴馬桩, Hitching post)이다. 섬서성 위수(渭水) 북쪽 지방에 있던 명청시대 전마장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전마장은 말을 묶어두는 기둥으로 관청 출입문 앞에 세워져 있던 것이다. 기둥 상단에는 동물이나 인물이 조각되어 있는데 민간 조각 예술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전마장(拴馬桩, Hitching post), 명청시대

OLYMPUS DIGITAL CAMERA전마장은 말을 묶어 두었던 돌기둥으로 관청 출입문 앞에 세워졌다. 상단부에 동물이나 인물상들을 조각해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비림박물관 야외에 전시되어 있는 석조유물들

The hitching posts are collected from Northern part of the Weihe River, Shaanxi province. In the Ming and Qing Dynasty, the hitching posts were used to the horses in front of the officials’ gate. They are auspiciously decorated with animals and human figures on the top, which animals and human figures on the top, which are excellent works of folk sculpture art.  (안내문, 시안 비림박물관, 2019년)

<출처>

  1. 안내문, 시안 비림박물관, 2019년

 

[시안(Xi'an) 비림박물관] 가성호조비, 공자께 시호를 올린 사실을 알리는 비석

시안 비림박물관에 있는 가성호조비(加聖號詔碑, Stele of an Imperial Edict)이다. 원나라 성종 때(1307년) 공자께 “대성지성문성왕(大成至聖文宣王)”란 시호를 올린 이후 이를 전국적으로 공포하는 칙령 성격의 비석으로 1313년에 세워졌다. 거북받침돌 위에 비몸과 머릿돌을 올려놓은 전통적인 당나라 비석 양식을 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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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성호조비(加聖號詔碑), 원 1313년, 조세연 서예 발문

OLYMPUS DIGITAL CAMERA머릿돌

OLYMPUS DIGITAL CAMERA거북받침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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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면

<출처>

  1. 안내문, 시안 비림박물관, 2019년
  2. 위키백과, 2020년

 

[시안(Xi'an) 비림박물관] 황자안서왕성덕지비, 원나라 송덕비

시안 비림박물관 마당에 전시되어 있는 황자안서왕성덕지비(皇子安西王盛德之碑, Stele of Anxi Prince Shengde)이다. 원나라 황자로 안서왕에 봉해진 성덕(盛德)을 업적을 기리는 송덕비로 보인다. 당대 비석과 외형은 비슷하지만 머릿돌과 비몸이 하나의 돌에 새겨져 있으며 받침돌은 특별한 장식이 없다. 원나라 비석의 형식을 살펴볼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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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자안서왕성덕지비(皇子安西王盛德之碑, Stele of Anxi Prince Shengde), 원 1277년, 맹문창 찬 부산조영 서예 낙천양 전액

OLYMPUS DIGITAL CAMERA비의 이름의 적혀있는 머릿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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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면.

<출처>

  1. 안내문, 시안 비림박물관, 20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