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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안 당 대명궁(大明宮) 유적

중국 시안에 있는 당나라 황궁이었던 대명궁(大明宮) 유적이다. 당 고종 때(662년) 처음 지어져 220년 동안 당나라 황궁으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당나라 초기에는 장안성 안에 있는 수나라 때 정궁으로 지은 태극궁을 사용했으나 습하고 벌레가 많아 이궁(離宮)으로 건설되었는데 당 고종 때 대대적을 수리하면서 정궁이 되었다. 당나라 말 황소의 난(875 ~ 884년) 이후 지방 병마절도사들의 반란으로 파괴된 후 황궁의 기능을 상실했다.

대명궁은 궁궐배치의 기준이 되는 <주례고공기(周禮考工記)>의 원칙을 제대로 따르고 있다. ’3문3조(三門三朝)’의 원칙에 따라 황실가족의 생활공간인 내조(內朝), 집무공간인 중조(中朝), 신하들이 집무공간인 외조(外朝)가 담장으로 분리되어 독립된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건물은 정전인 함원전(含元殿), 편전인 선정전(宣政殿), 내전인 자신전(紫宸殿)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으며, 선정전 서쪽에 영녕전(永寧殿)과 외조에 해당하는 궐내각사 등이 있었다. 내전인 자진전 뒷편에는 태액지(太液池)라는 큰 연못이 있으면 넓은 정원에는 황실에서 숭상했던 도교사원 등이 들어서 있었다.

OLYMPUS DIGITAL CAMERA<당 대명궁 유적>

OLYMPUS DIGITAL CAMERA<유적 입구에 세워진 기념 조형물>

OLYMPUS DIGITAL CAMERA<대명궁 유적지 들어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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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명궁 유적지 공간배치도>

OLYMPUS DIGITAL CAMERA<입구 매표소>

 외조(外朝), 함원전 바깥 영역

외조(外朝)는  궁궐 바깥 영역으로 대명궁에서는 오문(午門)에 해당하는 단봉문(丹鳳門)에서 정전에 해당하는 함원전까지 길이 630 m의 넓은 공간을 말한다. 함원전을 중심으로 외국 사신의 접견, 황제 즉위식 등 국가의 중요 행사가 열리는 공간이다. 베이징 자금성이나 서울 경복궁의 경우 정전 정문까지 공간을 말하며 그 기능의 거의 비슷하다. 함원전 월대 아래로 바깥세상과 궁궐을 공간적으로 분리하는 금수(錦水)라 불리는 수로가 있었다.

OLYMPUS DIGITAL CAMERA<함원전 앞 광장>

함원전(含元殿, Hanyuan Hall) 함원전은 대명궁(大明宮) 중심축에 있는 첫번째 건물로 궁궐 의례 공간인 정전(正殿) 영역의 중심건물이다. 기록에 따르면 당 고종 14년(663년)에 완공되었으며 886년까지 224년 동안 사용되었다. 함원전 영역은 정전, 복도, 동.서 누각, 종루와 고루, 통로(龍尾道)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함원전 앞에는 넓은 광장과 외부세계와 분리해주는 역할을 하는 수로가 있다. 건물 양쪽에는 신하들이 대기했던 조당(朝堂)이 있었으며 양쪽 누각 아래에 함원전으로 오르는 통로가 있다. 건물 뒷편에는 내전을 출입하는 선정문(宣政門)이 있었다.

OLYMPUS DIGITAL CAMERA<대명궁 정전인 함원전>

OLYMPUS DIGITAL CAMERA<함원전 건물 모형>

함원전은 높게 쌓은 월대 위에 세워졌는데 고고학적 조사에 따르면 건물 바닥은 동서 76.8 m, 남북 43 m, 높이 3.46 m의 3층 건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함원전 월대는 수로(水路)로 둘러싸여 있으며 북쪽으로 내전으로 연결되는 길이다. 함원전 양쪽에는 비슷한 높이 큰 누각인 서봉루와 상란각이 있으며 건물들은 복도로 연결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날개가 있는 봉황의 형상을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함원전 터에 복원해 놓은 월대>

월대는 벽돌로 쌓았으며 양쪽에 월대를 오르는 계단이 있고 가운데 정전 건물이 세워져 있다. 월대는 자금성 태화전과 마찬가지로 3층으로 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함원전 월대>

OLYMPUS DIGITAL CAMERA<아래에서 본 함원전 월대>

OLYMPUS DIGITAL CAMERA<함원전 건물터>

OLYMPUS DIGITAL CAMERA<건물 바닥에 깔려 있는 전돌>

OLYMPUS DIGITAL CAMERA<남아 있는 건물 구조물>

함원전은 중국에서도 가장 큰 규모의 궁궐 건축물이다. 전면에 14개이 기둥이 있고 기둥 사이 간격은 5.35 m이다. 측면에는 6개의 기둥이 있으며 간격은 4.6 m이다. 전체 62개의 기둥을 받치는 추춧돌이 있었는데 그 중 일부만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현재까지 남아 있는 주춧돌>

OLYMPUS DIGITAL CAMERA<건물기둥을 받치는 주춧돌>

당육전(唐六典)”에 “함원전(含元殿) 양쪽에는 누각이 있는데 동쪽에 상란각(翔鸞閣), 서쪽에 서봉각(栖鳳閣)이라 한다.”라 기록되어 있다. 누각은 새의 날개와 같은 형상을 하고 있으며 함원전과는 복도로 연결되어 있어 전체적으로 봉황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이런 형태의 건물을 오봉루(五鳳樓)라고 하며 자금성 정전 입구에 있는 오문(午門)이 이런 양식을 계승하고 있다. 원래는 상란각이라 불렀든데 지금은 난상각 (鸞翔閣)이라 부른다.

OLYMPUS DIGITAL CAMERA<동쪽 상란각(翔鸞閣),  Luanxiang Pavilion) 터>

OLYMPUS DIGITAL CAMERA<아래쪽에서 본 상란각 월대>

OLYMPUS DIGITAL CAMERA<서쪽 서봉각(栖鳳閣) 터>

OLYMPUS DIGITAL CAMERA<아래에서 본 서봉각 월대와 함원전을 오르는 통로>

동조당(东朝堂)은 난상각 아래 있는 건물로 서봉각 아래 서조당과 대칭을 이루고 있으며, 함원전이 있는 정전 영역을 구성하는 주요 건물이다. 당 고조 때(662년) 함원전과 함께 세워졌다. 이 건물은 신하들이 황제를 알현하기 위해 기다리는 장소이다. 태자와 승상이 관리들을 만나는 장소이기도 했다.

OLYMPUS DIGITAL CAMERA<월대 아래 동조당 건물터>

OLYMPUS DIGITAL CAMERA<서조당 건물터>

함원전 뒷편으로는 편전인 선정전(宣政殿)과 내전인 자신전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으며, 선정전 서쪽에 영녕전(永寧殿)과 외조에 해당하는 궐내각사 등이 있었다

OLYMPUS DIGITAL CAMERA<함원전에서 선정전으로 내려가는 계단>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함원전>

 함원전 양쪽으로는 성벽 수준의 높고 견고한 담장이 세워져 와조와 중조를 분리하고 있다. 이를 제이도궁장(第二道宮墻)이라 한다. 지금읜 옛모습을 재현해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제이도궁장>

중조(中朝), 치조(治朝) 또는 조정(朝廷)이라 불렸던 정치의 중심 공간

중조(中朝)는 치조(治朝)라고도 하며 궁궐에서 국왕이 신하들과 함께 공식적인 업무를 보는 공간이다.  자금성이나 경복궁은 국가적인 행사기 치러지는 정전(正殿)이 치조의 중심공간이나 대명궁은 편전에 해당하는 선정전(宣政殿)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반면에 정전인 함원전은 외조 공간의 중심이 되고 있다. 황제와 신하들의 정치공간인 조정(朝廷)은 선정전 마당을 말하며 선정전 좌우에 궐내각사에 해당하는 중서성, 문하성, 어사대, 전중내성(殿中内省) 등 황제 직속 기관들이 들어서 있었다. 경복궁의 경우 동쪽은 왕세자의 공간인 동궁(東宮)이, 서쪽에 국왕직속 기관들이 모여있는 궐내각사가 배치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중조(中朝)함원전과 선정전 사이 공간>

선정전에서 130 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선정문(宣政門)은 함원전과 선정전을 연결하는 유일한 출입문이다. 당문종(唐文宗) 재위시 황제는 실권자였던 환관을 죽일려고 시도했지만 실패했는데 이를 “감로지변(甘露之变)”이라 한다. 당시 황제는 선정문을 통해 선정전으로 탈출하여 살아남을 수 있었다. 양쪽으로 중서성 등 황제직속 기관들이 있는 궐내각사 출입문인 월화문(月华門) 등이 있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선정문 모형>

선정전(宣政殿, Xuanzheng Hall)은 함원전에서 북쪽으로 약 300 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선정전은 대명궁에서 함원전 다음으로 큰 건물로 신하들의 접견, 과거시험 합격자 발표, 사신 접견 등 공식적인 행사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자금성 건청궁 선정전은 대명궁에서 중요한 장소이지만 아직 발굴되지 않고 있다. 선정전터에는 벽돌과 나무로 옛 형태 일부를 재현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선정전과 조정>

OLYMPUS DIGITAL CAMERA<선정전 터 내부>

선정전 건물을 앞면 11칸의 중층 건물로 대명궁에서 함원전 다음으로 큰 건물이다. 건물 형태는 가운데 5칸은 나무로 만든 판문이, 양쪽 3칸 씩은 창문이 있는 벽으로 되어 있다. 통일신라와 일본에서 이런 양식 거대 건축물들이 많이 세워졌다. 봉정사 극락전 등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건축물에서도 볼 수 있는 형태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선정전 모형>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선정전터>

OLYMPUS DIGITAL CAMERA<선정전 앞 조정>

대명궁 중조(中朝)는 선정전 좌우로 직속 관청들이 있는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서쪽에 당의 정치제도인 3성6부 중 법령 초안을 입안하는 중서성, 최고 감찰기구인 어사대, 전중내성과 창고 등이, 동쪽에 문하성을 중심으로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史館), 정책 연구기관인 홍문관 등이 자리잡고 있었다. 조선과는 달리 황세자를 위한 동궁은 두고 있지 않다.

OLYMPUS DIGITAL CAMERA<선정전 동쪽 중서성 등 궐내각사가 있었던 옛터>

중서성(中書省)은 문하성.상서성과 함께 당나라 최고 정치기구인 3성 중 하나이다. 황제가 내리는 조칙과 국가법령 초안을 작성하는 등 황제를 보좌하면서 정책을 결정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중서성 장관은 중서령(中書令)이라 불렸으며 우상(右相)이라고도 한다. 상서성  장관인 상서령을 실제로 두지 않기때문에 최고의 관직이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중서성 건물터>

OLYMPUS DIGITAL CAMERA<중서성 모형>

어사대(御史台) 중서성(中書省) 남쪽과 월화문(月华門)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어사대는 당나라 최고 감찰기관으로 조선시대 사헌부에 해당하는 기관이다. 고위직 관원을 감찰하는 기관으로 조선시대 사헌부는 의정부와 함께 광화문 앞 육조거리에 있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어사대 옛터>

전중내성(殿中内省院落)은 중서성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주로 황실과 궁궐 관청에 식사와 의복, 의약 등을 제공하는 업문를 수행했다. 창덕궁 궐내각사에도 내의원과 약방이 홍문관 뒷편에 위치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전중내성 건물터>

OLYMPUS DIGITAL CAMERA<전중내성 건물 모형>

경림고(琼林庫), 대영고(大盈庫)는 황실의 보물을을 보관하는 창고로 조선시대 내탕고(內帑庫)에 해당하는 공간이다. 그 위치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당나라 백자에 그 이름이 남아 있다. 이곳에 보관된 보물들을 황제가 신하들에 하사하는 용도 등으로 사용되었다. 전중내성과 서쪽편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창고 건물터에 전시해 놓은 조형물>

함원전과 마찬가지로 선정전 건물을 중심으로 양쪽에는 제삼도궁장(第三道宮墻)이라는 높은 담장이 있었으며 그 안쪽으로 내전에 해당하는 전각들이 자리잡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선정전 동쪽편 제삼도궁장(第三道宮墻) 터>

OLYMPUS DIGITAL CAMERA<궁장을 재현해 놓은 모습>

내조(內朝), 황제와 가족들의 생활공간

내조(內朝)는 황제와 가족들이 생활하는 생활 공간으로 연조(燕朝)라고도 부른다. 내조에는 황제가 일상적으로 머무는 공간인 자신전(紫宸殿, Zichen Hall)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황실가족들이 거처하는 생활공간과 불교사찰, 도교사원 등이 배치되어 있으며 서쪽에는 신하들을 접견하는 공간인 연영전(延英殿)과 사정전(思政殿), 최고 학술기관인 한림원(翰林院), 공식 연회 공간인 인덕전(麟德殿) 등이 배치되어 있다. 이는 경회루, 수정전(옛 집현전) 등이 서쪽에, 자경전(慈慶殿) 등이 동쪽에 배치된 경복궁과 같은 공간배치이다. 자신전 뒷편으로는 경주 반월지(안압지)와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는 큰 연못인 태액지(太液池)와 여름 별궁인 함량전(含凉殿)과 다양한 수목이 심어져 있는 넓은 정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대명궁 내조>

자신전(紫宸殿, Zichen Hall)은 선정정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함원전과 함께 중심축을 형성하고 있다. 당 고종 때(663년)에 지어진 이 건물은 내전의 중심건물로 황제가 거처하면서 일상적인 업무를 논의하는 공간이었다. 내부는 전실과 후실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전실에서는 업무를 처리하고 후실은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었다. 당나라 최고 관료들만 자진전에 출입할 수 있었다. 서쪽에 있는 사정전과 연영전이 일상 업무를 처리하고 신하와 외국 특사를 접견하는 공식 장소였지만 황제는 자진전을 많이 사용하였다. 자진전 건물터는 아직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건물터에 철골구조로 옛 자진전 목재 구조를 재현해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자신전터, 철골로 목조건축물 구조를 재현해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자신전 건물 모형, 앞면 9칸의 2층 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자신전 구조물 모형>

OLYMPUS DIGITAL CAMERA<자신전 건물터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자신전 정문인 자신문(紫宸門) 건물터>

OLYMPUS DIGITAL CAMERA<자신전 앞 마당>

OLYMPUS DIGITAL CAMERA<자신전 담장터>

연영전(延英殿, Yanying Hall)은 자신전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황제과 고위 관리들과 국무를 논의하고 군사적인 결정을 내린 장소이다. 황제는 국가적인 공식행사를 제외하고 일상적인 업무를 처리하던 곳으로 당나라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공간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연영전 건물터>

OLYMPUS DIGITAL CAMERA<연영전 영역 건물 모형>

OLYMPUS DIGITAL CAMERA<건물터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연영전 출입문과 부속건물터>

사정전(思政殿, Sizheng Hall)은 연영전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황제가 신하들에게 상을 주거나 간단한 연회를 여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당후기 황제의 권력약화로 국정을 관료들과 환관들이 국사를 처리했는데 자진전이나 연영전은 황제의 공간이었기때문에 주로 사정전에 모여 업무를 처리했다.

OLYMPUS DIGITAL CAMERA<사정전 건물터>

사정전과 연영전 뒷편으로는 함상전(含象殿), 명의전(明義殿), 시정원(侍政院), 내시별성(內侍別省) 등의 건물들이 있었다고 한다. 건물 이름으로 볼 때 황제를 보필하는 환관들이 근무했던 공간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사정전 옆 건물터>

OLYMPUS DIGITAL CAMERA<사정전 뒷편 건물터>

자신전 뒷편으로는 침전인 연옆전(蓮葉殿)을 비롯하여 온실전(溫室殿), 선휘전(宣徽殿)같은 생활공간과 불교사찰인 명덕사(明德寺)가 있었으며 태액지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는 청휘각(淸暉閣) 같은 휴식공간이 자리잡고 있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자신전 뒷편>

OLYMPUS DIGITAL CAMERA<자신전 동쪽편 건물터>

후원(後苑)

태액지(太液池)는 대명궁 북쪽에 있는 황실정원으로 연꽃이 아름다워 연엽지(蓮葉池)라고도 불렀다. 태액지는 동쪽과 서쪽에 2개의 연못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서쪽이 더 큰 규모이다. 서쪽 연못은 인덕전과 함께 황실을 찾은 손님을 접대하는 공간으로 경복경 경회루 연못과 같은 기능을 하고 있으며 동쪽 연못은 황실 가족을 위한 공간이다. 사각형을 하고 있는 경회루 연못과는 달리 경주 반월지처럼 타원형에 가까운 모양을 하고 있다. 서쪽 연못 가운데에는 작은 섬을 두어 신선이 사는 봉래산을 구현하고 있다. 연못 북쪽에는 여름 별궁에 해당하는 함량전(含凉殿)과 도교사원, 불교사찰 등이 있었다.

OLYMPUS DIGITAL CAMERA<대명궁 태액지>

OLYMPUS DIGITAL CAMERA<태액지 옛모습을 그린 그림>

함량전(含凉殿, Hanliang Hall)은 태액지 동쪽 언덕에 위치하고 있었다. 사료에 따르면 황실은 여름 더위를 피하기 위하여 함량전을 세웠다. 함령전은 물방울을 뿌려주는 냉방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함량전 모형>

<출처>

  1. 안내문, 시안시, 2019년
  2. 위키백과, 2020년
  3. 百度百科, 2020년

시안 진시황 병마용박물관

진시황 병마용박물관 전시공간은 3개의 갱과 청동전차와 병마용들이 전시되어 있는 전시장으로 되어 있다. 3곳의 병마용갱은 전체 면적 20,000 ㎡ 이상이며 8,000 구 이상의 인물을 표현한 병용(兵俑)과 수백점의 말과 전차, 10,000 점 이상의 청동제 무기 등이 출토되었다. 병마용갱 옆에 마련된 전시장에는 2호갱에서 출토된 청동제 말과 전차가 전시되어 있는데 이는 진시황이 사후세계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청동으로 제작하여 묻었던 것으로 보인다. 청동제 전차는 중국 고대 청동기의 걸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진시황 병마용박물관 입구 조형물>

OLYMPUS DIGITAL CAMERA<입구 매표소>

여산(驪山)이라 불리는 진시황릉은 그가 13세 일때 시작하여 37년 동안 수많은 인력과 자원을 동원하여 건설하였다. 무덤은 높이 76 m의 여산을 중심으로 당시 수도였던 함양을 본떠서 둘레 2.5 km 의 내성과 둘레 6.3 km의 외성으로 구성되었다. 1974년 여산 동쪽 1.2 km 정도 떨어진 곳에서 병마용갱이 발견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진시황릉 능역 모형>

1호갱은 병마용갱 중에서 가장 큰 규모로 동서 240 m, 남북 62 m 규모이다. 이곳에서는 병마용 2,000여 건, 전차 20여 량이 발굴되었다. 전체 규모로 볼 때 6,000여 건의 병마용과 전차 50여 량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OLYMPUS DIGITAL CAMERA<진시황 병마용갱 1호갱>

OLYMPUS DIGITAL CAMERA<1호갱 내부>

1호갱에서 북쪽으로 20 m 떨어진 곳에 위치한 2호갱은 1976년에 처음 발견되었다. 전체적으로 ‘L’자 모양을 하고 있는데, 동서로 124 m, 남북으로 98 m 정도 규모이다. 보병 위주로 구성된 1호갱과는 달리 궁수, 전차, 기병, 보병 등이 4개 대열로 배치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2호갱>

OLYMPUS DIGITAL CAMERA<2호갱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3호갱>

OLYMPUS DIGITAL CAMERA<3호갱 내부>

진시황 병마용박물관 1호갱 앞 마당 한쪽편에는 병마용갱에 대한 이해를 돕고 2호갱에서 출토된 2기의 청동제 전차를 전시하기 위한 전시장이 있다. 이곳에는 병마용갱에서 출토된 대표적인 형태의 병용(兵俑)들과 한대 초기 양식을 보여준 한경제(孝景皇帝, BC 188 ~ 144년) 양릉(阳陵)에서 출토된 도용(陶俑)을 같이 전시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진시황 병마용박물관 전시장>

OLYMPUS DIGITAL CAMERA<전시실 입구>

OLYMPUS DIGITAL CAMERA<고급군리용(高級軍吏俑, Armored High-ranking officer), 진시황릉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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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병용(騎兵俑, Cavalry Soldier), 진시황릉 출토>

OLYMPUS DIGITAL CAMERA<채회기병용(彩绘騎兵俑, painted pottery Cavalrymen), 한경제 양릉 출토>

OLYMPUS DIGITAL CAMERA<채회기병용(彩绘騎兵俑, painted pottery Cavalrymen), 한경제 양릉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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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갑어수용(鎧甲御手俑, Armored Charioteer), 진시황릉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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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갑무사용(鎧甲武士俑, Armored Soldier), 진시황릉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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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의식채회무사용(着衣式彩绘武士俑, Painted Pottery Warrior), 한경제 양릉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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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포무사용(战袍武士俑, Soldier in battle dress), 진시황릉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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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갑군리용(鎧甲軍吏俑, Armored High-ranking officer), 진시황릉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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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갱 출토 궤사용(跪射俑, Kneeling Arc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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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관용(宦官俑), 한경제 양릉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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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용(袖手俑), 진시황릉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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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회도소의식문리용(彩绘陶塑衣式文吏俑, Painted pottery civil official figurine with molded Suit), 한경제 양릉 출토>

OLYMPUS DIGITAL CAMERA<소의식채회도공수기좌시녀용(塑衣式彩绘陶拱手跽坐侍女俑, Painted Maid with Molded Suits and in the Gesture of Salutation), 한경제 양릉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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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의식채회도시녀용(塑衣式彩绘陶侍女俑, Painted Maid with Molded Suits and in kneeling position), 한경제 양릉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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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희용(百戏俑, Acrobat), 한경제 양릉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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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자지물용(跪姿持物俑, Terracotta Kneeling figure), 진시황릉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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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의식부중용(着衣式負重俑, Pottery Figurine bearing loads), 한경제 양릉 출토>

2기의 채색된 청동제 전차는 1980년 2호갱 발굴.조사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두 전차는 목재로 만든 관에 있었는데 8년간의 복원을 통해 전차의 모습이 세상에 드러났다. 2기 전차와 말은 실제 크기의 2/1로 만들어졌으며 진시황이 탔던 전차를 상징하고 있다. 전차는 금.은으로 만들어진 부품들을 포함하여 대부분 청동으로 만들어졌다. 실제 사용했던 전차를 정밀하고 섬세하게 만들었기때문에 당시 중국 전차의 구조와 시스템을 알려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발견당시 모습>

1호 전차는 4마리의 말이 끌고 있는 것으로 햇빛을 가리는 양산이 있는 오픈카 형식의 전차이다. 진시황이 출행시 사용되었던 전차의 모습을 보여준다. 2호 전차는 가마모양을 하고 있는 것으로 진시황이 이동할 때 탔던 전차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기>에서 전해오는 자객들이 노렸던 전차의 모습을 실제로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OLYMPUS DIGITAL CAMERA<1호 동차마(二號銅車馬, The Chariot No. 2), 진시황릉 출토, 복제품>

OLYMPUS DIGITAL CAMERA<사람이 타는 전차>

OLYMPUS DIGITAL CAMERA<뒤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2호 동차마(二號銅車馬, The Chariot No. 2), 진시황릉 출토, 복제품>

OLYMPUS DIGITAL CAMERA<가마처럼 생긴 전차>

The Color-Painted Brornze Chariots and Horses In Qin Shihuang’s Tomb-yard
A huge pit of funerary chariots and horses which takes up an area of 3025 ㎡ was discovered 20 m to the west side of Oin shihuang’s Tomb in the summer, 1978. At the end of 1980, two big sets of color- painted chariots and horses were unearthed 7.8 m deep underground during a partial excavation. The two chariots were placed facing the west in a front and behind order in a box-like wood outer coffin and according to their order, they are coded as Chariot No I and Chariot No. II. Because the coffin was rotten and the upper part collapsed, the chariots and horses were damaged and many parts of the paintings scaled when they were unearthed. After eight years of restoration, however, the bright colors and grand postures of the chariots and horses were basically represented. The two sets of bronze chariots and horses were made in the size of 1/2 of the practically used chariots and horses and they are the symbol of Qin Shihuangs chariot-horse guard of honor, All the major parts and units of them are made of tin-bronze alloy with another 14 kg of units made of gold and silver, making up a total weight of 2302 kg. The making of the chariots and horses is precise, vivid and complicated, the decoration grand and the relation among the reins for different purposes clear. The craftsmanship is fine and delicate, making them the dear objects for the research on the ancient Chinese chariot system and manufactures. <안내문, 시안 진시황병마용박물관, 2019년)

2기의 전차에서는 청동방패(銅盾, bronze shield)를 비롯하여 화살통, 허리띠 등 청동으로 무기류, 전차부속, 생활용품 등 다양한 유물들이 같이 출토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청동방패(銅盾, bronze shield)>

OLYMPUS DIGITAL CAMERA<청동화살(铜箭, Bronze arrow)>

OLYMPUS DIGITAL CAMERA<화살통(籠箙, arrow box)>

OLYMPUS DIGITAL CAMERA<허리띠(Belly-band)와  청동으로 만든 전차 부속품(活较 Hingings)>

OLYMPUS DIGITAL CAMERA<청동주전자(方壺, Square kettle)>

진시황병마용박물관(秦始皇兵马俑博物馆, First Emperor’s Terra-Cotta Army Exhibition Area)
The First Emperor’s Terra_Cotta Army exhibition area is made up of three pits containing the Terra-Cotta Army and an exhibition hall that features the Bronze Chariots and Horses. These three Terra-Cotta Pits cover a total area of 20,000 square meters and will contain nearly 8,000 facilities for disabled person life-sized pottery figures, hundreds of chariots and over 10,000 pieces of bronze weapons when fully excavated. Besides the pits, there are two sets of large painted Bronze Chariots and Horses displayed in the exhibition hall, which were intended for the First Emperor’s soul to go on his inspection of the country in the afterlife. They are known as the “Crown of the Bronze Works” because they are the biggest and most complex bronze chariots with complete driving systems ever excavated before in the archaeological history of China. (안내문, 시안 진시황병마용박물관, 2019년)

<출처>

  1. 안내문, 시안 병마용박물관, 2019년
  2. 위키백과, 2020년
  3. 百度百科, 2020년

시안 진시황 병마용갱 3호갱

시안 진시황릉 3호갱은 1976년에 처음 발견되었다. 1호갱 북쪽 25 m, 2호갱 서쪽 120 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동서 28.8 m, 남북 24.6 m 정도로 U자형 평면을 하고 있으며 전체 면적 520 ㎡ 정도로 1, 2호 갱에 비해 그 규모는 상당히 작은 편이다. 1977년 9개월 간 첫 발굴.조사 후 보존을 위해 다시 흙으로 덮었으며, 1988년 전시장을 지은 후 다시 발굴.조사가 진행되어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발굴.조사 결과 유적 대부분은 심하게 훼손되었으며 68구의 병용, 1기의 전차, 34개의 청동제 무기가 출토되었다. 3호갱은 1, 2호갱의 지휘부로 알려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진시황릉 병마용갱 3호갱>

3호갱은 동쪽 끝 경사로가 출입로로 사용되었으며 입구에 전차가 있는 방이 있다. 양쪽 복도를 통해 남쪽 방과 북쪽방을 연결하고 있다. 남쪽 방에는 통로, 2개의 작은 방으로 구성되며 북쪽방은 동쪽을 향하는 직선형이다. 1, 2호갱과 같은 구조로 흙으로 벽을 쌓아 칸막이를 만들고 목재 서까래가 있는 지붕으로 덮혀 있으며 통로에 병마용이 도열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3호갱 내부>

출입문 경사로를 들어서면 정면에 4마리의 말이 끄는 전차가 도열해 있으며 복도를 통해 양쪽 방으로 연결된다. 양쪽 통로에 병사들이 도열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3호갱 입구에 있는 방>

OLYMPUS DIGITAL CAMERA<입구 통로>

OLYMPUS DIGITAL CAMERA<통로에 도열해 있는 병사>

OLYMPUS DIGITAL CAMERA<남쪽편 방>

OLYMPUS DIGITAL CAMERA<병사들이 도열해 있는 작은 방>

OLYMPUS DIGITAL CAMERA<맞은편>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일직선 통로 형태의 북쪽편 방>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모습>

Preface
Pit 3 was discovered in June 1976, located north of Pit 1 at the western end. It is 25 meters to the south of Pit 1 and 120 meters to the east of Pit 2. It is of U-shape about 520 square meters, measuring 28.8 meters long from east to west, 24.57 meters wide from north to south and 5.2 ~ 5.4 meters deep. Investigation shows that Pit 3 was destroyed seriously in history. Only 68 pottery figures, one chariot and 34 bronze weapons were unearthed from this pit. Pit 3 is now known as the command center of Pit 1 and Pit 2. (안내문, 시안 병마용박물관, 2019년)

<출처>

  1. 안내문, 시안 병마용박물관, 2019년
  2. 위키백과, 2020년
  3. 百度百科, 2020년

시안 진시황 병마용갱 2호갱, 발굴현장 모습을 체험할 수 있는 곳

1호갱에서 북쪽으로 20 m 떨어진 곳에 위치한 2호갱은 1976년에 처음 발견되었다. 전체적으로 ‘L’자 모양을 하고 있는데, 동서로 124 m, 남북으로 98 m 정도 규모이다. 보병 위주로 구성된 1호갱과는 달리 궁수, 전차, 기병, 보병 등이 4개 대열로 배치되어 있다. 전체 대형은 독립된 것처럼 보이지만 전투시 유연하게 병력을 재배치할 수 있는 형태로 진(秦)의 독특한 군사전략과 대형이 잘 반영되어 있다. 현재까지 발굴이 진행중이며 발굴된 토용 중 아주 적은 수만 갱내에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 같은 1호갱과는 달리 고고학 발굴 현장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되고 있으며, 병마용을 대표하는 토용들을 별도의 전시공간에서 가까이 살펴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진시황 병마용갱 2호갱>

OLYMPUS DIGITAL CAMERA<2호갱 내부>

진흙으로 쌓은 벽이 견고한 서까래가 있는 지붕을 지탱하고 있다. 지붕은 섬유매트가 있는 진흙으로 덮혀 있다. 병마용 유물 발굴 과정에서 지붕들은 해체되었지만 아직 발굴되지 않은 부분에서 갱을 덮고 있는 지붕을 확인할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붕목유적(棚木遺跡, remains of Roof beams), 병마용이 도열해 있는 갱의 지붕>

1호갱과는 달리 2호갱은 출토된 병마용들을 도열해 전시하지는 않고 있으며, 바깥쪽에 앉아서 활을 쏘는 궤사용, 서서 활을 쏘는 입사용, 장교로 보이는 중급군리용, 장군으로 추정되는 고급군리용 등 병마용을 대표하는 유물들을 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전차가 배치된 것으로 보이는 부분>

OLYMPUS DIGITAL CAMERA<천차로 보이는 병마용들>

OLYMPUS DIGITAL CAMERA<지붕이 남아 있는 부분>

앉아서 노(弩)를 쏘는 모습을 하고 있는 이 궤사용(跪射俑, Kneeling Archer)은 2호갱 북동쪽에 위치한 궁수 중심의 대열에 발견된 것으로 갑옷을 입고 있다. 원래 노(弩)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호갱에서는 160명이 궤사용이 발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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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갱 출토 궤사용(跪射俑, Kneeling Archers)>

OLYMPUS DIGITAL CAMERA <궤사용들이 주로 출토된 부분>

2호갱에서는 약 116명이 기병용이 말과 함께 출토되었다. 말들은 하곡마(河曲馬, Heque horse)라 불리는 티벳 북서부지방에서 가져온 품종이라한다. 말들은 안장이 얹혀 있지만 유목민들이 사용했던 등자는 아직 없다. 기병은 꽉끼는 바지를 입고 모자를 쓰고 있으며 한손에는 고삐를, 다른손에는 활을 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 <기병용 출토현장(騎兵俑, Cavalry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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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마기병용(鞍馬騎兵俑, Cavalryman with his saddle war-horse)

OLYMPUS DIGITAL CAMERA<안장을 얹은 말>

OLYMPUS DIGITAL CAMERA <기병용이 출토된 부분>

2호갱에서 출토된 입사용(立射俑, Standing Archer)이다. 갑옷이 아닌 전투복을 입고 있는 보병으로 양손의 포즈는 활을 쏘는 자세를 하고 있다. 2호갱에서는 172구의 입사용이 출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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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용(立射俑, Standing Archer)>

2호갱에서 출토된 중급군리용(中級軍吏俑, Middle-ranking Officer)이다. 모자와 네모난 신발을 신고 있다. 갑옷아래 군복은 무릎까지 늘어져 있다. 중급장교의 갑옷은 2가지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가습갑옷만 있고 다른 하는 가슴갑옷과 검은 갑옷을 같이 입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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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군리용(中級軍吏俑, Middle-ranking Officer)>

2호갱에서 발견된 장군으로 보이는 7구의 고급군리용(高級軍吏俑, High-ranking Officer) 중 하나이다. 고급군리용의 키, 의복, 투구는 그의 높은 지위를 보여주고 있다. 화려한 미늘 갑옷을 입고 있으며 턱아래 리본으로 묶은 투구를 착용하고 있다. 갑옷을 장식하기 위해 리본으로 만든 8개의 매듬, 전면에 3개, 후면에 3개, 어깨에 각각 1개의 매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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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군리용(高級軍吏俑, High-ranking Officer)>

진시황 병마용갱은 3곳 모두 비슷한 토목 구조로 만들어졌는데 그 크기와 모양은 다르게 조성되었더. 갱은 지하 5 m 정도이며 흙으로 만든 칸막이벽으로 공간을 분리한 긴 복도형태를 하고 있다. 바닥은 도기 벽돌로 포장되어 있으며 강한 서까래가 있는 지붕으로 덮혀 있다. 지붕은 섬유매트와 흙으로 덮혀 있으며 경사지니 도로를 통해 지상으로 연결된다. 전체적으로 병마용을 은폐하기 용이한 구조를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붕목유적(棚木遺跡, The traces of timber), 병마용갱을 덮고 있는 지붕>

OLYMPUS DIGITAL CAMERA<지붕과 그 아래에 묻혀 있는 병마용>

OLYMPUS DIGITAL CAMERA<병마용갱에 사용되었던 벽돌들>

OLYMPUS DIGITAL CAMERA<복도에 묻혀 있는 병마용>

OLYMPUS DIGITAL CAMERA<복도에 묻혀 있는 병마용>

OLYMPUS DIGITAL CAMERA<철전판(鐵栓板, Iron belt), 철추(鐵錘, Iron hammer), 철부(鐵斧, Iron axe)>

OLYMPUS DIGITAL CAMERA<포지전(鋪地磚, The pottery floor bricks)>

OLYMPUS DIGITAL CAMERA<붕목유적(棚木遺跡, The traces of timber)>

진시황 병마용에서는 동노기(銅弩機, Bronze crossbow trigger), 동월(銅鉞, Bronze battleaxe), 동극(銅戟, bronze halberd), 동모(銅矛, Bronze spear), 동피(銅鈹, broze pi), 동성(銅殳, Bronz Shi), 동과(銅戈, Bronze Gi) 등 약 4만여 개의 청동무기가 출토되었다. 이 무기들은 모형제작, 주조, 마무리 과정을 통해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무기의 표면에는 크롬처리기술을 통해 도금되어 발굴 당시 새것처럼 반짝여 보였다고 한다. 이것은 진나라 때 도금기술이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으며 무기제조 과정이 표준화되었음을 보여준다.

OLYMPUS DIGITAL CAMERA금균(金鈞, Bronze hook)

OLYMPUS DIGITAL CAMERA동전촉(銅箭鏃, bronze arrow-heads), 철정동촉(鐵錠銅鏃, Bronze arrow with iron sha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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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노기(銅弩機, Bronze crossbow trigger), 동월(銅鉞, Bronze battleaxe)

OLYMPUS DIGITAL CAMERA동검(Bronze Sword)

OLYMPUS DIGITAL CAMERA동극(銅戟, bronze halberd), 동모(銅矛, Bronze spear), 동피(銅鈹, broze pi), 동성(銅殳, Bronz Shi), 동과(銅戈, Bronze Gi)

Preface
Located 20 meter to the north of Pit 1 at the eastern end, Pit 2 is in “L” shape. This pit was discovered in April 1976, covering area of 6,000 square meter. It measures 124 meters long from east to West, 98 meters wide from to south and 5 meters deep. Different from Pit 1, Pit 2 consists of mixed military force in four arrays: archers, war chariots, cavalrymen and infantrymen. The four arrays seemed to exist independently, but could be assembled immediately to constitute a complete battle formation during the war times. This reflects the unique strategy of Qin military affairs. The excavation work of Pit 2 is still continuing. At present a large area of the remnants of the roof beams and small part of the pottery warriors and horses are being exhibited in the Pit. It is a rare chance for visitors to enjoy the archaeological digging at the site. (안내문, 시안 진시황 병마용갱박물관)

<출처>

  1. 안내문, 시안 병마용박물관, 2019년
  2. 위키백과, 2020년
  3. 百度百科, 2020년

시안 진시황 병마용갱 1호갱, 처음 발견된 곳

진시황 병마용갱(秦始皇兵马俑坑, Emperor Qin’s Terracotta pits)은 진시황릉에서 동쪽으로 1.5 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큰 구덩이로, 진시황의 수도를 지키는 군사력을 상징한다. 이 유적은 1974년 농부가 우물을 뚫기 위해 구덩이를 파면서 병마용 유물들이 발견되면서 그 존재가 알려졌다. 이후 고고학적인 발굴.조사가 체계적으로 진행되어오고 있으며 병마용 박물관을 통해 그 내용이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현재까지 4호갱까지 확인되었으며 세부적인 발굴작업은 지금도 진행중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진시황 병마용갱 1호갱>

1호갱은 병마용갱 중에서 가장 큰 규모로 동서 240 m, 남북 62 m 규모이다. 이곳에서는 병마용 2,000여 건, 전차 20여 량이 발굴되었다. 전체 규모로 볼 때 6,000여 건의 병마용과 전차 50여 량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OLYMPUS DIGITAL CAMERA<1호갱 내부>

1호갱은 전차와 보병이 공동으로 군사대형을 만들고 있다. 가운데 행렬은 정면을 향하고 있으며 동.서쪽 끝 행렬은 동.서쪽을 향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가운데 열>

OLYMPUS DIGITAL CAMERA<서쪽 행렬, 끝부분은 병사들을 서쪽을 방어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동쪽 행렬, 끝부분 병사들은 동쪽을 방어하고 있다,>

1호갱 앞부분에 1974년 농부가 우물을 파다가 병마용을 처음 발견한 지점을 확인할 있다.  발굴.조사가 처음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1호갱 4면에는 갱을 건설하기 위해 사용했던 5 개의 통로가 있으며,출입구는 나무 기둥으로 봉인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1호갱 앞부분>

OLYMPUS DIGITAL CAMERA<문도(門道, The sloping entrance)를 볼 수 있는 앞부분에 통로를 막은 나무기둥 흔적을 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타정위치(打井位置, The Site of the Well), 병마용갱이 처음 발견된 지점>

병마용들은 격랑(隔梁, The Partition Wall)라는 담장으로 구조를 받치는 갱속에 도열해 있다. 바닥은 45 cm 두께의 벽돌이 깔려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지면(地面, The brick Floor), 병마용들이 세워져 있는 통로 바닥>

병용(兵俑)은 장군, 장교, 하급 군사 등 다양한 지위와 역할을 맡은 인물들을 군사들을 실제 모습과 가깝게 표현하고 있다. 키는 184 ~ 197 cm로 실제 보다 큰 편이며 장군을 병사보다 크게 만들었다. 사람의 모습을 형상화한 토용을 무덤에 묻는 것은 고대 이래 사후세계에 동행할 사람들을 같이 묻었던 순장(殉葬)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후에도 꾸준히 유지되었으며 당나라 삼채인형을 비롯하여 다양한 형태로 유지되었으며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후기 영조가 비인간적이라 하여 금지할 때까지 유지되었다. 병마용을 통해 당사 군사들의 무장, 대형, 신분관계, 복식 등 다양한 내용들을 확인할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행렬 앞 부분 병사들>

OLYMPUS DIGITAL CAMERA<동쪽편 행렬 앞부분>

OLYMPUS DIGITAL CAMERA<행렬 가운데 병사들>

OLYMPUS DIGITAL CAMERA<다양한 복식을 하고 있는 병용들>

OLYMPUS DIGITAL CAMERA<갑옷을 입은 병사들>

OLYMPUS DIGITAL CAMERA<갑옷을 입은 병사들>

OLYMPUS DIGITAL CAMERA<동쪽 방면을 엄호하는 병사들>

OLYMPUS DIGITAL CAMERA<행렬 뒷부분>

1호갱에서는 20여량의 전차들이 같이 발굴되었다. 전차는 4마리의 말이 끄는 형태로 몽고말처럼 작은 말이다. 전차는 목재로 만들어졌는데 금속제 마구를 제외하고는 거의 남아 있지 않고 그 흔적들만 확인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전차유적(战车遗跡, The Remains of Chariots)>

OLYMPUS DIGITAL CAMERA<4마리의 말이 끄는 전차와 갑옷을 입은 병사들>

OLYMPUS DIGITAL CAMERA<갑옷을 입은 병사와 말>

격량은 나무로 만든 지븡을 지탱하기 위해 흙으로 지어진 벽으로 폭은 약 2.5 m이다. 대들보 등 나무로 만든 구조물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목재로 만든 지붕은 섬유로 덮혀 있었으며 그 위에 흙이 채워져 있다. 동남쪽에 무너진 벽을 벽돌로 쌓아 보수한 부분이 있는데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벽돌구조물이라 한다. 격량 위에는 후대 주민들이 무덤으로 사용되었던 구덩이들을 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모습, 대열 사이에 격량들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격량이 받치고 있는 지붕>

OLYMPUS DIGITAL CAMERA<근대묘굴(近代墓穴, The tomb in modern time.>

격량 벽면 양쪽에는 대들보를 지지하기 위한 기둥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지름은 약 30 cm 정도이며 기둥 사이 간격은 1.1 ~ 1.5 m 정도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입주(立柱, The Pillars)>

OLYMPUS DIGITAL CAMERA<발굴.조사 중인 부분>

OLYMPUS DIGITAL CAMERA<격량과 병마용이 전시된 공간 뒷부분>

OLYMPUS DIGITAL CAMERA<동쪽에서 본 모습>

1호갱은 1974년 처음 발견된 이래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는데 앞부부은 발굴이 끝난 병마용들이 도열해 있으며 뒷부분은 발굴.조사 지금도 진행중이다. 갱을 파내기 전의 모습을 비롯하여 흙속에 묻혀 있는 병마용, 복원작업이 진행중인 병마용 등 발굴.조사 과정에서 볼 수 있는 유적지의 다양한 모습들을 살펴볼 수 있다. 땅속에 묻혀 있는 병마용들은 여전히 작은 조각들로 부러진 상태로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발굴.조사가 진행중인 1호갱 뒷부분>

OLYMPUS DIGITAL CAMERA<격랑 사이 땅을 파서 발굴.조사가 진행중인 부분>

OLYMPUS DIGITAL CAMERA<부서진 채로 흙속에 묻혀 있는 병마용들>

OLYMPUS DIGITAL CAMERA<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병마용들>

OLYMPUS DIGITAL CAMERA<발굴.조사가 진행중인 뒷부분>

1호갱 뒷부분에는 발굴.조사과정에서 복원되어 그 형태를 갖추고 있는 병마용들을 볼 수 있다. 병용은 머리, 몸통, 팔, 다리 등을 각각 제작한 후 결합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다리부분은 거의 동일한 형태로 같은 틀을 사용해서 만들었으며 여러 가지 형태의 부위를 조합하여 하나의 병용으로 만들었다. 일부에서는 채색했던 흔적들이 확인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1호갱 뒷부분에 전시해 놓은 병용들>

OLYMPUS DIGITAL CAMERA<1호갱 뒷부분에 전시해 놓은 병용들>

OLYMPUS DIGITAL CAMERA<갑옷을 입은 병사들>

OLYMPUS DIGITAL CAMERA<뒷면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복원작업이 진행중인 병용들>

OLYMPUS DIGITAL CAMERA<복원작업이 거의 완성된 부분>

1호갱은 뒷부분은 대부분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아직 조금씩 땅을 파면서 발굴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단계의 발굴.조사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뒷부분>

OLYMPUS DIGITAL CAMERA<흙을 끍어내고 있는 부분>

OLYMPUS DIGITAL CAMERA<아직 발굴작업이 진행되지 못한 부분>

OLYMPUS DIGITAL CAMERA<격량 윗부분이 드러나 보이기 시작한다.>

OLYMPUS DIGITAL CAMERA<발굴.조사가 진행중인 부분>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1호갱 전경>

Preface
Emperor Qin’s Terracotta pits are the large attendant pits, located 1.5 kilometers east of Emperor QinShihuang’s mausoleum, symbolizing the main defending force that guarded the capital before the emperor died. The pits were never mentioned in the the in the historical records until Pit 1 was discovered in March, 1974 by local farmers while drilling a well. Then archaeologists began the explorations and excavations. On October 1th, Emperor Qin’s Terracotta Warriors and Horses Museum was opened to the public. Pit 1, the largest pit, is a subterranean earth-and-wood structure. It measures 230 meters long from east to west, 62 meters wide from north to south. It’s assumed that more than 6,000 pottery warriors and horses will be unearthed from this pit. All the statues are big in lite-size and exquisitely made, representing, high technology in Chinese sculptural history. They are reputed as the “Eighth Wonder of the World”. The excavation of the terracotta warriors and horses provides extremely valuable data for the research of Chinese ancient politics, military affairs, science and arts. (안내문, 병마용박물관, 2019년)

<출처>

  1. 안내문, 시안 병마용박물관, 2019년
  2. 위키백과, 2020년
  3. 百度百科, 2020년